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주말에 인천집에 갔다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발견했다. 최근에 읽은 정명섭 작가의 <살아서 가야 한다>를 읽고 나서 마르탱 게르 생각이 자꾸 나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읽던 조르지 아마두의 책을 접고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다.

 

이미 영화와 소설로도 여러 번 소개가 돼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미국에서도 영화 <서머스비>라는 영화로 소개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좀 더 학문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16세기 중반 프랑스 랑그독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툴루즈 고등법원 판사 출신 장 드 코라스가 남긴 <잊을 수 없는 판결>를 일차 사료로 삼았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8년 간, 아버지 상시 게르와 불화 때문에 아내와 집을 떠났던 탕자 마르탱 게르가 귀환한 것이다. 처음에는 탕자의 귀환을 환영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주변인들이 새 마르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나 상시의 사망 후, 게르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던 상시의 동생 피에르가 선봉에 서서 조카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재판정에까지 가게 되었다. 자,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바스크 출신 상시 다게르가 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랑그독 지방의 아르티가로 일족을 이끌고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기와 제조업자로 부를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아르티가는 부근을 지배하는 영주가 없어서 외지인들도 비교적 쉽게 촌락공동체에 편입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게르라는 성도 랑그독 지방의 상황에 맞춰 게르로 개명하고 아들 마르탱을 지역 유지의 딸 베르트랑드 드 롤스와 혼인시키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문제는 1548년 스물네 살이 된 불만에 찬 게르 집안 미래의 가장인 마르탱이 아버지의 곡식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집을 떠나면서부터 발생한다. 마르탱 게르는 프랑스 국왕과 앙숙인 스페인 국왕의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젊은 혈기를 발산했다. 그러다 참전한 생캉탱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 살게 됐다.

 

그동안 아르티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8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마르탱 게르가 돌아온 것인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가짜였던 문제였다. 아르노 뒤 틸이라는 이름의 사기꾼이 어딘서가 마르탱 게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남편이 떠난 뒤 정조를 지키던 베르트랑드를 공략하고 나머지 식구들을 속여 게르 집안의 상속자의 위치를 따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새 마르탱의 욕심이 발단이 되었다.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가산을 맡아온 숙부 피에르에게 정산을 요구하면서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귀향 초기에는 모두가 새로운 마르탱을 지지했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그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증명할 신분증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 지금처럼 의학기술이 발전되어 DNA 검사를 해볼 수도 없었다. 결국 피에르 게르는 조카 며느리 베르트랑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가짜 마르탱 게르를 재판에 회부하기에 이른다. 종교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신세대 마르탱 게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신교도인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숙부 피에르를 지지하는 이들은 구교도 가톨릭이 나뉘었다. 어떻게 보면 세대 간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잠자리를 같이 한 아내 베르트랑드는 진짜로 아르노의 정체를 몰랐을 지 궁금하다. 어쩌면 지난 8년간 정조를 지켜온 아내 베르트랑드는 새롭게 등장한 샛서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던게 아닐까?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요조숙녀 베르트랑드와 아르노의 결합을 창안된 결혼(invented marriage)라는 개념으로 도입해서 설명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에 의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조건에 따른 결혼이라는 말일까.

 

1심 재판이 열린 리으에서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는 완승을 거둔다. 하지만 새 마르탱은 즉시 항소에 나서고 2심 재판은 랑그독 지방의 중심지였던 툴루즈로 옮겨 계속된다. 바로 여기서 <잊을 수 없는 판결>의 주인공 장 드 코라스가 등장한다. 종교귀족과 더불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법복귀족을 대표하는 지식인 코라스는 달변가 새 마르탱/아르노의 파렴치한 거짓말에 넘어가 피에르와 베르트랑드를 감옥에 가두고 가짜 마르탱의 승리를 선언할 뻔 했다.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아니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아닌가 말이다. 어떤 식으로 마르탱 게르의 드라마틱한 귀환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사기꾼 아르노 뒤 틸은 진실을 자백하고, 사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영화 <서머스비>에서도 아마 리처드 기어가 아내 조디 포스터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교수형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에 실제 생활에서 진짜 마르탱 게르가 돌아왔다고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베르트랑드가 아르노에게 침대를 허락한 3년 동안, 그녀는 가짜 마르탱의 아이를 낳았지 않았던가. 그녀와 가짜 남편 사이에 합의된 ‘창안된 결혼’은 무산되었고, 이제 남은 진짜 남편의 냉랭한 시선 뿐이었다. 가짜 마르탱이 자신들의 오빠가 맞다고 극력 주장한 게르 집안의 누이들은 또 어떤가.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장성한 혈족의 얼굴을 몰라 본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묻게 된다.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인 나탈리 저먼 데이비스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고증을 통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설보다 더 재밌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역사적으로 남은 문서들을 바탕으로 빈 공간에는 자신의 상상력을 채워 넣은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년 전 재판기록에서 당대 랑그독 농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재창조해낸 발굴 작업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도 중국 사료를 통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히 기록문화를 바탕으로 한 서구인들의 내러티브 설계작업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12-1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8-12-20 08: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저보다 훨씬 잘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부끄럽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묵향 2018-12-19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함께 축하드립니다^^ 좋은 연말 보내십시오~

레삭매냐 2018-12-20 08:14   좋아요 2 | URL
네 감사합니다 ~

묵향님도 즐거운 연말연시 되시길
기원합니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주제인데다 서스펜스적인 요소가지 겸비해서 읽는 데 제격이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에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문제작 <로즈메리의 아기>를 발표한 아이라 레빈은 히틀러의 충실한 후계자 요세프 멩겔레가 제4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대안역사를 가정에서 놀라운 소설을 시작한다.

 

1974년 가을, 브라질의 상파울루 일식집에 백색 양복을 입은 노신사와 함께 6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집결한다. 이른바 나치 친위대 잔당들의 비밀조직인 “카메라덴베르크”의 요원들이었다. 백색 양복의 리더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악명을 날린 친위대 장교 요세프 멩겔레였다. 실제 역사에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의 끈질긴 추격으로 브라질의 밀림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멩겔레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멩겔레 박사는 6명의 전직 친위대 요원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린다. 미국와 캐나다를 비롯해서 영국, 서독,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9개국에 산재한 94명의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책에서 은퇴한 65세 가량의 남성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일절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밀조직의 명령이란 그런 게 아닌가. 요세프 멩겔레는 오로지 아리안족의 영광과 죽은 총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만 간략하게 덧붙인다. 사명을 받은 킬러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이들의 회동에 대한 기록이 비밀리에 소형 녹음기에 녹음된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출신 유대계 청년인 배리 쾰러가 저명한 나치 사냥꾼 야코프 리베르만(시몬 비젠탈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는 순간, 나치 킬러들이 등장해서 청년을 죽이고 은폐를 시도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야코프 리베르만이 그렇게 등장한다. 나치의 음모를 캐려는 청년 쾰러의 시도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쾰러가 전달해준 메시지를 추적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카메라덴베르크의 충실한 킬러들은 멩겔레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10월 16일부터 다음해 4월 23일까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한다. 나치의 살인기계들은 그야말로 톱니바퀴 돌아가듯 그렇게 성실하게 암살 임무를 수행한다.

 

리베르만은 연쇄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고를 추적하던 중, 희생자들이 모두 13~4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을 불법적으로 입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놀랍게도 서로 닮았다는 점도.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멩겔레가 수용소에 억류된 유대인들에게 시도하던 실험이 쌍둥이와 우생학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른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는 마침내 멩겔레가 인간 복제, 다시 말해 당시만 하더라도 충격적인 클로닝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복제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걸 누설하면 안되기에 그 부분은 패스하도록 하자.

 

역시 나치 전범이었다가 사실이 드러나 독일로 송환된 프리다 말로니를 통해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입양아를 불법적으로 공급했다는 점도 소설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다. 리베르만의 끈질긴 추격으로 카메라덴베르크 작전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이베르트 대령을 필두로 한 지휘 그룹은 작전 취소를 명령하고 요원들을 소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멩겔레는 자신이 직접 나치 사냥꾼 리베르만을 제거하고, 남은 암살 명단에 오른 인원들을 처치하겠다며 변장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 아이라 레빈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은 대안역사를 창조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많은 나치의 잔당들이 독일 국내에 숨어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연루된 책임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연합군의 의중을 파악한 이들은, 오데사 프로젝트 아래 조국 독일을 떠나 남미에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았다. 가장 유명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은 모사드와 협력해서 아이히만과 슈탕글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길 노력에도 불구하고 멩겔레와 그의 하수인이었던 알로이스 브루너 같은 이들은 끝내 역사의 재판정에 세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치 잔당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서 제 4제국을 만들겠다는 허황된 계획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부상도 처음에는 절대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라 레빈 소설의 핵심은 독자로 하여금 히틀러와 나치들이 부상하게 된 세계적 위기 상황의 재연과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 심리에 대한 하나의 경고장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 있지 않은가. 이런 수상한 시절이야말로 히틀러 같은 엉터리 지도자들이 득세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나치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93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그 어느 누구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정당이 독일 국가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2018년에 보면 좀 억지스러워 보이는 나치 음모설에 입각한 클로닝도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발표된 42년 전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이 발표되고 2년 뒤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 시리즈의 말썽쟁이 마호니가 미국 청년 배리 쾰러 역을 맡은 트레일러를 유투브를 통해 봤는데, 상당히 소설에 부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고전영화로도 만나 보고 싶다. 다시 영화화가 된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아직 현실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읽기] 보헤미안 랩소디 / 브라이언 싱어


감상일 : 2018년 12월 15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입소문이 자자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모두 아시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이 1975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오페라의 밤>에 수록된 곡으로 퀸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서 내가 보기 시작한 부분은 퀸이 밴드로 결성되어 소규모 클럽을 전전하며 틀린 가사로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대학생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 집안 출신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는데, 파르시라 특이하지 않은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그의 성적 정체성 만큼이나 복잡한 연대기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만난 메리 오스틴은 프레디의 평생의 연인이었다. 나중에 밴드가 뜨고 나서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하는데,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고, 시대의 명곡이 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내가 처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적에는 그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어디선가 튀어나온 빽판의 첫 번째 곡으로 실린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그 때 이미 헤비메틀에 심취해 있어서 어지간한 로큰롤은 취급도 안했었는데 퀸의 노래는 확실히 클라스가 틀렸다. 그리고 바로 퀸의 팬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까탈스러운 여왕(hysterical queen)을 뒷받침하는 re-write의 대가였다. 사사건건 프레디 머큐리와 부딪히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과 의사가 될 지도 모를 청년이었고, 조용하지만 팀에서 개그맨 역할을 맡은 베이스주자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프레디가 엘튼 존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미래의 자신들의 매니저와 만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 거라고 했던가. 투어에 꼭 필요한 밴을 팔아 만든 데모 앨범이 EMI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그들은 비로소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초창기 퀸의 음악적 특성은 실험(experimental)이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워 가며 갖가지 실험성 짙은 창조성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브라이언 싱어는 기가 막힌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다. 자, 다음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등장할 차례다. 당시 디스코가 판을 치던 음악계의 히트 공식(formula)은 3분 이내의 짧고 강렬한 노래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퀸의 멤버들이 제시한 오페라적 요소를 가미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두 배나 되는 6분에 달라는 음악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음악을 고집하겠다는 퀸의 멤버들과 EMI 관계자들의 사투는 결국 퀸의 승리로 끝이 났고, 희대의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 파트는 목이 찢어라 하이톤을 반복하는 로저 테일러의 작품이었다는 걸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느 밴드가 그렇듯, 완성작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박터지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밴드의 엄청난 성공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우선 평생의 사랑이라던 메리와의 관계는 프레디가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계속되는 앨범과 투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속적 부를 거머 쥐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주변에 그가 원하는 진정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폴 같은 날파리(fruitflies)들만 들끓을 뿐. 설상가상으로 밴드 내의 불화도 한 몫했다. 자신이 밴드를 대표한다는 프레디의 생각에 다른 밴드 멤버들은 질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관중들을 음악에 참여 시켜 보자는 브라이언 메이의 ‘꿍꿍따’ 아이디어로 시작된 "We Will Rock You"나 존 디컨의 환상적인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같은 명곡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마약을 의미하는 "the dust"를 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정말 웃겼다.


어쨌든 그렇게 정상에서 선 프레디 머큐리의 추락은 시작된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티를 열고 화려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훗날 그를 배신하게 되는 폴의 말마따나 그는 그저 외로운 파키스탄 소년(Paki boy)였을 따름이다. 파티 서버로 일하던 짐 허튼이라는 아저씨에게 집적거렸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와의 파트너 관계는 프레디가 에이즈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지 아마. 록 허드슨에 이어 치명적인 에이즈로 죽은 유명인사로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밴드와 거의 해체 수준까지 이르렀던 솔로 앨범 제작을 하면서 프레디의 무분별한 성관계에 대한 폭로는 비열한 폴이 방송 인터뷰로 다 까발렸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영국의 한다하는 기레기들이 총출동해서 퀸의 새로운 앨범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도 최고였다. 브라이언 메이가 거듭해서 앨범에 대해서 질문해 달라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추문에만 열중하는 기레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언론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기능도 있겠지만, 본질보다 가십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1985년 7월 13일, 밥 겔도프가 기획한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자는 라이드 에이드 공연이었다.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 두 곳에서 열린 세계의 공연에 퀸도 당연히 초대 되었지만, 폴이란 놈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메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회심한 프레디가 그동안 소원했던 멤버들에게 사과하고(초장부터 쎄게 나간다), 자선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합주 연습을 하던 중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물론 이건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영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끝낸 건 정말 탁월한 엔딩이었다. 그 이후는 추락의 연속이니 가장 강렬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밴드에 대한 에피타를 마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에 “I don't wanna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가 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뱀다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디 말렉의 키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키와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라이브 에이드> 실황 가운데, 프레디가 연주하던 피아노 위의 펩시 콜라(처음에는 단순한 PPL인 줄 알았다)와 피아노 연주를 마친 프레디에게 스탭에 무선 마이크를 건네 주는 장면 같은 디테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wasulemono 2018-12-1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곡 제목이 빠져 있네요.

레삭매냐 2018-12-17 19:43   좋아요 0 | URL
제가 불초한 탓입니다...

2018-12-1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5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의 경우를
보면 또 꼭 그런 게 아닌 듯 합니다.

퀸도 전성기를 지나면서는 좋은 곡들이 예전
같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감이 마구 솟아나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cyrus 2018-12-17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와 심장을 즐겁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몇 년 후에 보랩처럼 어떤 팝스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대박날 수 있을까요? 보랩의 성공이 대단해서 아무리 뛰어난 팝의 전설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6   좋아요 0 | URL
다음 주자는 비틀즈나 혹은 롤링 스톤즈가
되지 않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스톤즈를 더 좋아하지만
믹 재거를 주인공으로 한 롤링 스톤즈 영화
가 개봉한다면 아마 보랩 정도의 인기는 끌
지 못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시대정신 혹은 타이밍의 문제가 아
닐까 싶네요.

stella.K 2018-12-1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까지 만해도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샵에 팔았다는 거 아닙니까?
영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이끌어낸 마당에
제가 그런 시대착오를 범했습니다.ㅠㅠ
빨리 봐야할 텐데 시간 끌다 나중에 VOD로 보는
시대착오를 또 범할지도 모릅니다.ㅠㅋㅋ

레삭매냐 2018-12-17 19:47   좋아요 2 | URL
오호 통재라 ~~~

보랩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

제가 관람한 곳은 떼창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다들 조용하게 관람하더군요.

마마~! 하면서 막 따라 부르고 그러면
정말 라이브 콘서트를 방불케 하지 않았
을까 싶네요 ㅋㅋ

stella.K 2018-12-18 12:33   좋아요 0 | URL
마마~! ㅋㅋㅋㅋ
그거하고 갈릴레오 하면 완전 흥분의 도가니...ㅎㅎㅎ
 
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사를 한 달 앞두고 책 정리에 들어갔다. 아쉽게도 그림소설 <푸른 알약>은 처분 대상이 되었다. 그전에 읽고 나서 기록을 남기려고 아침에 부리나케 읽고 리뷰를 쓴다.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만화가 프레드다. 그의 여자친구 카티는 에이즈 양성보균자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더라. 친구를 따라간 파티에서 그녀를 만났던가. 풀장에서 거침 없는 행동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 그리고 우연이 이끄는 대로 파티와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 프레드. 카티는 프레드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에이즈 환자라고.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역시 에이즈 환자라는 걸.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관계는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프레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러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관계를 계속한다는 거지. 일단 놀랍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다가올 운명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 프레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운명’이라고 했지 아마.

 

아이에게 프레드는 아빠가 아니다. 아이가 없는 여느 청년처럼, 프레드 역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가족이 되어, 병든 몸의 아이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카티가 깊은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인 아이에 대해서도 동정, 아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워 나가지 시작한다. 그렇지 이런 상황이라면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동정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카티와의 스토리가 프레드에겐 하나의 소재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세상에서 너무 닳은 모양이다. 세상 탓을 해야 하나.

 

갑자기 바이러스 수치가 급상승해서 아이에게 시멘트 맛이 나는 독한 약을 먹이는 과정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이 부분이야말로 그림소설의 강점이 아닐까. 좀 더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순화시킬 수 있다는.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를 것 같다. 그런 고통의 순간들의 총합이 결국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게 아닌가.

 

 

어쨌든 프레드는 에이즈에 걸린 카티와 아이를 돌보면서 일상을 영위해 간다. 관계하던 중에 얇은 막으로 만들어진 콘돔이 찢어지면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일화도 인상적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닌가. 에이즈 환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좀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엄청난 걱정, 아니 당장 눈 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고민을 들고 의사를 찾은 프레드에게 의사 선생님인 에이즈라는 질환에 무지한 이들에게 프레드가 감염될 확률은 진료실 밖으로 나갔을 때, 흰 코뿔소를 만날 정도라고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문 앞에서는 흰 코뿔소를 만나는 유사체험을 한다.

 

그렇게 프레드는 카티와 아이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셋이서 방콕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그림소설 <푸른 알약>은 끝을 맺는다. 그런데 나는 좀 더 궁금하다. 그들의 운명이. 과연 카티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레드는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는 것 같던데. 수년 동안 나의 서가의 한 구석을 차지해 온 그림소설 <푸른 알약>과 헤어질 순간이 되었구나. 이젠 안녕 친구.


*** 책 판매는 실패했다. 처음에는 상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직원 분이 더 자세히 살펴 보더니 책 옆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매입불가 판정을 내려 주셨다는. 할 수 없이 쿨하게 기증이나 해야겠구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14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4 20: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서구인들과 우리들의 성풍속
이 달라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림소설의 소재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무심 2018-12-21 0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렵기만 한 에이즈 환자들을 소재로 작품이 나오다니, 기막힐 뿐입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연명치료가 된다지만 글쎄 회의적입니다. 여하튼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이 죽지 않고 발동한다니 여운이 쉬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8-12-21 14:33   좋아요 0 | URL
문득 유명한 농구선수 매직 존슨이 아직
도 살아 있는지 궁금하네요.
예전만 하더라도 에이즈에 걸리면 바로
죽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 삼천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역시 올해의 놀라운 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삼천리에서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 콩고의 젊은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의 죽음에 대한 책을 내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세계화(globalization)이라는 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낯설게 되지 않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서는 일어나는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1960년 8월, “자그마한 한국”이 걱정거리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석 부분을 구글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찾아보니 정락현 북한군 소위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고(8월 3일), 같은 달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식민지에 자주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콩고가 독립한 1960년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17개의 나라가 독립했다. 벨기에 레오폴드 왕의 개인 식민지였던 콩고는 80년간의 벨기에의 악랄한 식민통치를 끝내고 독립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청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가 있었다. 식민 종주국 벨기에는 콩고가 독립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독립을 추진하다 보니 갖가지 문제들이 돌출했다.

 

아프리카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콩고는 큰 덩치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수많은 부족이 난립해 있었고, 남부 카탕가의 분리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분출하는 수많은 정치적 요구를 건국 초기에 해결하기란 난망했다. 정당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루뭄바는 바콩고족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카사부부와 연립형태의 정부를 출범시킨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은 카사부부가 그리고 실질적 권리를 행사하는 총리는 루뭄바가 맡게 되었다. 열렬 민족주의자였던 루뭄바는 독립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식민 종주국 벨기에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노선을 추구했다.

 

문제는 콩고에서 막대한 이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던 벨기에의 군주 보두앵과 충돌이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보두앵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에스켄스 내각을 뒤흔들면서 콩고에 대한 노골적입 개입을 시도했다. 벨기에 국왕은 카탕가의 지도자 모이스 촘베를 후원하면서 루뭄바가 주장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대신 느슨한 연방제 형태의 콩고 국가를 선호했다.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전형적인 식민지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80년간 콩고를 폭압적으로 통치해온 제국주의자들은 반성할 줄 몰랐다.

 

일단 벨기에라는 루뭄바의 강력한 적이 형성되었다. 그 다음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목줄을 겨눈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하자, 임기 말 아이젠하워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부에서도 루뭄바가 이끄는 민족 자결주의가 성공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루뭄바가 미국에 요청한 지원 요청을 무시하자, 루뭄바는 당연히 냉전 시대 미국의 라이벌 소련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었다. 독립 후, 카탕가와 카사이를 비롯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하기 위해 소련이 지원하는 수송기와 트럭이 레오폴드빌에 도착하게 되었다. 루뭄바를 활용할 줄 몰랐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는 루뭄바에 대한 추가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 독립 초기 루뭄바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판단을 유보하던 미국은 마침내 루뭄바가 세계 평화의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판단하고 제거 작전에 나서게 된다. 여기에는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8월에 내린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루뭄바를 암살하려는 <마법사 프로젝트(Project Wizard)>를 가동시키면서 ‘죽음의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독극물학자 시드니 고틀리브를 동원하기도 했다.

 

한편, 콩고 사태에 개입된 또 하나의 키플레이어로는 스웨덴 관료 출신 다그 함마르셸드 UN 사무총장이 있었다. 그는 미국 출신 위험한 수석보좌관 앤드루 코디어의 코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보좌관은 루뭄바를 “작은 히틀러” 그리고 가나의 대통령 은크루마를 “무솔리니”라고 부르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콩고 위기 초기, 루뭄바는 블루 헬멧을 쓴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콩고의 치안과 질서를 잡아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콩고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들이 독립 후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서구인들의 시선을 일소시킬 만큼 루뭄바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자들은 열의만 있었지 실력은 없었다. 그 점이 바로 루뭄바의 실각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대안으로 유엔에 의한 신탁통치도 있었지만, 콩고 사람들의 민족 자결주의 의지는 더 이상의 외세 개입은 원하지 않았으리라. 콩고에서 자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토 동맹을 깨겠다고 나서는 벨기에의 왕정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루뭄바의 정치 성향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는 미국, 자력갱생의 실력이 없다고 판단한 유엔의 고위 관리들에게 루뭄바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벨기에와 미국 그리고 유엔 서구 삼각동맹은 카사부부를 조종해서 콩고의 합법정부 총리인 루뭄바를 9월 5일 실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여전히 루뭄바가 콩고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루뭄바가 다시 권좌로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쿠데타 성공으로 희대의 독재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조제프 모부투가 루뭄바가 발탁한 인사라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카사부부-모부투 동맹은 실각해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인 루뭄바를 체포해서 그의 최대 정적 카탕가의 모이스 촘베에게 보내는 차도살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사실상 콩고를 장악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루뭄바가 카탕가에서 비극적으로 살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콩고 사태에 개입된 모든 정파들은 루뭄바의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루뭄바는 죽었고,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아프리카 최고의 영웅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그가 계속해서 살아 콩고의 지도자로 남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독립투사로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합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친 독재를 하다가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가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 두 저자는 루뭄바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대해 가감 없는 서술을 이어간다. 서방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콩고의 지도자의 운명을 좌우할 권리는 없다. 아울러 유엔을 비롯한 서구 제국들도 빈번하게 콩고 내정 개입에 반대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실제로 반대로 행동했다. 앨런 덜레스가 이끄는 미국 CIA는 1950년대 과테말라 아르벤스 정권과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을 무너뜨린 성공신화를 밑천 삼아 콩고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어쩌면 주적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하나의 시험장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루뭄바 암살 시도가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루뭄바의 패기와 능력을 제대로 평가했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표지에 실린 파트리스 루뭄바의 사진을 보면, 사로 잡힌 맹수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서구 열강들에게 루뭄바의 이미지가 그랬던 건 아닐까.

 

파트리스 루뭄바는 냉전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나오는 설정대로 콩고 사태에 연루된 모든 이들이 루뭄바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루뭄바는 벨기에가 말하는 과거 식민 지배를 위장한 ‘협력과 연대’를 과감하게 거부했다. 서구 열강의 보호와 감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국가운영을 위해 유엔과 미국의 원조를 기대했다. 어쩌면 자력으로 신생국 콩고를 운영할 수 없었다는 점이 루뭄바가 가졌던 절대적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할 수송 장비도 부족했고, 그들에게 지급할 돈도 없었다. 화폐를 찍어내는 능력까지도 벨기에에 의존해야 하지 않았던가. 내부의 심각한 분열과 끊이지 않는 외세의 개입을 저지할 수 없었던 한 민족주의자의 죽음은 결국 조국 콩고에 조제프 모부투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를 읽기 전에 애덤 호크쉴드가 저술한 <레오폴드왕의 유령>을 읽고 싶었지만 미처 그러지 못했다. 1960년 콩고 사태의 원류가 되었던 콩고 자유국의 식민화 과정에 대한 호크쉴드의 책을 읽어 보면 우리에겐 여전히 머나먼 나라 콩고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