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책 - 옹정제와 사상통제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래 전에 산 책이다(2010년 12월 1일). 그리고 처음에 산 책은 찾을 길이 없어 결국 중고서점에서 4년 전에 다시 샀다(2014년 3월 31일). 그리고 내내 책꽂이에서 묵혀 두었다가 이번 크리스마스날 집어 들었다. 하루 저녁 사이에 절반을 읽어 내렸다. 미국 예일대 출신 중국사 전문가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저술한 1728년 벌어진 쩡징의 역모사건을 다룬 <반역의 책>에 대한 출발이었다.

 

옹정 6년(1728년) 10월 28일 시안성의 촨산총독 웨중치[岳鍾琪]에게 역모를 도모하자는 비밀편지가 인편을 통해 전달된다. 전제국가 중국에서 천자에 대한 반란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을까? 중국 송대의 명장 웨페이(악비)의 후손 웨중치에게는 이미 전적이 있었다. 망한 명나라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15개월 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 이민족의 청나라가 중원을 제패한 상황에서 멸망한 한족국가의 부흥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웨중치는 편지 심부름꾼 장시를 달래, 편지를 보낸 이가 후난성 융싱현에 사는 그의 스승 쩡징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성공한다.

 

당시 황제였던 옹정제는 선친 강희제 사후, 즉위 과정에서 순탄하지 않은 황위계승전을 치러야 했다. 제국을 계승할 후계자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황자들은 제위에 오르기 위한 보위 쟁탈전을 통과해야만 했다. 4황자 윤진이 제위를 계승하는 과정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쩡징이 웨중치에게 거병을 권하는 편지에도 현재 황제가 부정한 방법으로 제위에 올랐다는 음모론을 필두로 해서 술고래에 황음무도하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에, 중국의 전통적인 화이론을 접목시켜 역모를 꾀했다.

 

쩡징의 왜곡과 달리 13년에 걸친 옹정제의 치세는 비교적 명군의 그것에 가까웠다. 45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옹정제는 하루 평균 4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며, 나머지 시간들을 정사에 바쳤다. 즉위하면서 정치적 라이벌들이었던 형제들을 숙청하면서 황제권을 강화하기 시작한 옹정제는 군기처에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신권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다.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지방 총독과 순무들이 황제에게 직접 보고하는 주접에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붉은 먹물로 주비를 달아 지방통제를 강화했다. 쩡징의 역모 사건에 있어서도, 주비유지 제도를 활용해서 신속한 대응을 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붉은 주비의 비가 내린다는 표현을 사용했던가.

 

통신과 정보 전달 시스템이 현대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18세기 초반, 황제의 명령이 지방에 전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독재권력을 자랑하는 황제의 신임을 얻고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지방관들은 자신이 가진 재량권을 총동원해서 황제의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다. 쩡징의 역모 편지에 등장하는 13명의 인사들을 수배해서 체포하는 과정은 정말 한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쩡징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면서 옹정제는 그렇지 않아도 저장 지방의 불온한 움직임 때문에 편견을 갖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주모자 쩡징이 근거한 후난성에도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저장과 후난 지방에 풍속감찰관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을까 싶다. 쩡징 사건을 계기로 해서, 민간에 유포되는 터무니없고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단속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황제의 해명은 유언비어 제작소에 땔감을 던져주는 격이었다. 한 마디로 절대통치자의 민간에 대한 사상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절대군주 시대 문자로 남긴 기록들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주자학 해석에 탁월했던 학자 뤼류량[呂留良]이 남긴 일기와 문집을 접한 황제는 한족을 청나라 지배체제에 복속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다수의 한족 지식인들이 만주족의 청나라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청나라는 정통 중화론의 기준으로 볼 때, 오랑캐 다시 말해 금수의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던가. 청의 황제들이 제 아무리 지배의 정통성을 강조하더라도, 한족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다.

 

옹정제가 파견한 조사관들을 체포된 쩡징을 심문한 결과, 그가 범용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쩡징은 진사 출신이라는 가짜 왕수가 퍼트린 유언비어와 항간에 떠다니는 청조 지배 아래 벌어진 자연 재해를 흉조로 판단해서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장시를 시켜 웨중치에게 전달한 편지에서 청조의 혹정을 비판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명나라 시절에는 무능한 한족 황제들의 혹정이 없었던가? 오히려 청나라의 안정적 지배 아래, 황제들은 천하에 재난이 발생하면 구휼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현실세계를 도외시한 지식인들은 그저 고대 주나라의 정전제 같은 고법으로의 회귀야말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인 공자가 언급한 화이론의 선구자 관중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판단은 존재한다. 주자학적 질서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은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던가. 하지만 관중은 처음에 공자 규를 보필하다가, 공자 규가 죽은 다음에는 소백을 주군으로 모셔 훗날 제환공의 재상이 되었다. 어떤 주군을 모시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억조창생을 위한 좋은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유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니냐는 옹정제의 사고는 대단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강희 연간에 발생한 문자옥에 대한 청나라 조정의 대응은 강력한 탄압이었다. 하지만 선친 황제에 비해 정치적으로 고수였던 옹정제는 무자비한 탄압 대신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관용이었다.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반청사상으로 똘똘 뭉친 뤼류량의 경우에는 부관참시와 자손들까지 대청률에 따라 엄하게 처벌했지만, 정작 역모의 주모자였던 쩡징과 장시는 사면하고 심지어 천냥되는 은자까지 지급하는 대범함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의 상유와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온 쩡징의 반성문을 엮은 <대의각미록>을 인쇄해서 천하에 배포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황제의 이런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과연 성공했을까? 옹정제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유포되는 유언비어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민중은 오히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 골육상쟁 같은 막장 스토리를 즐기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천하의 독서인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기에 오히려 맞대응에 나선 밀정정치의 달인이자 독재군주 옹정제의 시도가 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군주의 시대,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불온한 사상의 중요 전달 방법이었던 서책의 유통과 소장은 목숨을 담보한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대현(大賢)으로 인정받는 뤼류량의 자손들도 결국 문자옥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옹정제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청년 황제 건륭제는 황고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작고한 옹정제는 역모자 쩡징과 장시에게 관용을 베풀었지만, 건륭제는 천하의 두 죄인들을 잡아 들여 능지처사로 처벌하고, 가산을 몰수해 버렸다. 아울러 천하에 유포된 수십만권의 <대의각미록>을 금서로 지정하고 회수해서 폐기해 버렸다. 이 또한 반대급부를 불러왔는데 선대에 민중들이 <대의각미록>에서 자신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부분들만 왜곡해서 수용했다면, 건륭 시대에는 민중들이 금서로 지정된 <대의각미록>의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황제가 폐기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책이 없어졌다고 해서 수년간 매달 두 번씩 강의 형태로 민중에게 유포되던 책의 내용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황제의 의도 대로 순식간에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대의각미록>은 일본에까지 유포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사건 초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촨산총독 웨중치는 옹정제의 강력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준가르부 정벌 실패 때문에 삭탈관직 당한다. 1731년 가산도 몰수당하고, 사형 판결까지 받았다가 감형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건륭제가 즉위한 뒤, 복권되었다. 독재 군주 시대에 제왕의 총애가 얼마나 덧없는지 웨중치의 경우를 통해 잘 알 수가 있었다.

 

수년 전 보수정권 아래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단순한 자본주의 비판서 같은 서적들이 무슨 이유로 “불온서적” 다시 말하자면 현대판 금서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들에서는 그런 책들을 모아 활발한 마케팅을 시도했다. 어떤 작가는 우스개 소리로 왜 내 책은 불온서적으로 지정이 되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위정자들의 어리석은 시도가 성공한 적이 없다는 걸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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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8-12-27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건성세에도 반역이 있었다는 건 이민족 왕조라 그런 거겠죠? 건륭제가 좀만 시야를 확장했다면 조선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근자에 하던 참인데 이민족 왕조로서 내치를 잘 하기도 힘들었겠다 싶네요.

레삭매냐 2018-12-28 13:23   좋아요 1 | URL
청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된 뒤에도 많은
이들이 정통 화이론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제국의 정통성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오족협화 정책도 다 허상이 아닌지 싶기
도 하구요.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개정판
장한식 지음 / 산수야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부터 눈여겨 오던 책을 지난 주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장한식 작가의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가 바로 그 책이다. 도도한 역사의 미스터리 중의 하나로, 고작 100만 남짓한 변방의 오랑캐가 1억 인구를 자랑하는 명나라를 정복하고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나 하는 의문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우리는 왜 병자호란으로 욱일승천하는 만주국, 훗날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고 청나라는 중원의 패자가 되었는가. 21세기 시진핑의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시대에 우리가 꼭 한 번 되짚어 봐야할 역사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KBS기자 출신 장한식 저자는 역사학자 찜 쪄 먹는 실력으로 16세기 후반, 인삼전쟁부터 시작된 농업국가 조선과 상업국가 여진족의 만주국(일본의 괴뢰국 만주국과 다른 나라다)의 대결로부터 시작해서 대국 명나라에서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국가 정책이 중원공략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동아시아 질서 재편기를 정확하게 타격한다.

 

우선 출발점은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한 해양무역의 발전과 신대륙에서 채굴된 막대한 양의 은광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16세기 유통과 상업의 혁명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명나라는 세계 최강국이었다. 명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을 비롯한 온갖 물자들은 서양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스페인 상인들은 앞 다투어 중국과 거래를 하고 싶어했고, 그 결과 신대륙의 어마어마한 은이 중국으로 향했다. 일조편법으로 대표되는 은본위제는 명대의 상업과 유통을 촉진시켰고, 국가재정 또한 번영일로를 달리게 되었다.

 

한편,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었던 임진왜란을 즈음해서 만주 여진족의 족장 누르하치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원래 상인으로 출발한 누르하치는 조부와 부친을 명나라 장수 이성량의 판단착오로 잃게 되면서, 대국 명나라를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명나라의 상업 부흥은 중국인들이 선호하던 백두산 부근에서 채취한 인삼 거래에 절호의 기회를 부여했다. 명나라의 막대한 은이 여진족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은이라는 자산의 축적에 힘입은 누르하치는 팔기로 대변되는 군사력을 더해 세 개의 부족으로 나뉜 여진 통일에 나선다. 여진족을 복속하고 명나라와의 본격적인 대결에 나서게 되는 1619년 사르후 전투는 동아시아 질서 개편의 일대 신호탄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누르하치는 국가 목표는 명나라의 기미체제를 벗어난 만주 지방에 독립국가 건설이었다. 욱일승천하는 기세의 동방 오랑캐에 대해 명나라 조정에서 사르후 전투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수성에 집중했다. 그동안 누르하치의 독점무역권을 보장하는 칙서경쟁은 사르후 전투 이후 명에서 만주국과의 교역을 금지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유목 수렵민족인 여진족의 생산성은 농경민족인 한족의 그것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졌다. 부족국가 정도로만 머물고 싶다면, 상시적인 전시 약탈경제로 만족하겠지만 만주의 독립국가 더 나아가서는 중원 경영이라는 웅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대국 명나라와의 교역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중원의 진상(晋商)들은 조국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명리에 더 중점을 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 특수는 상인들에게는 호기였다. 임진왜란이 첫 번째 전쟁 특수였다면, 명청 교체기의 막대한 군자금 투하는 진상들에게는 축복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전쟁이 일본 기업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홍타이지가 등장하기까지 너무 서론이 길었다. 만주국의 창업군주 누르하치는 중원 공략에 나섰다가 영원성에서 버티는 명의 명장 원숭환의 저항과 홍이포라는 당시 핵폭탄급 무기에 가로막혀 전투 중에 부상을 입고 죽고 만다. 다음 후계자로 누르하치의 팔남이자 유력한 버일러 홍타이지가 등극하게 된다. 중원제국에서는 후계자 선정에 있어 장자상속이 원칙이라면, 유목수렵국가에서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가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다. 권력욕에 있어서는 누르하치의 어느 아들보다 뛰어났던 홍타이지가 세력 간의 알력과 권모술수를 이용해서 제위에 오르는 과정도 주목할 만하다.

 

누르하치에 이어 제위에 오른 홍타이지는 우선 만주족과 비슷한 성격의 유목민족이나 한 때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족을 복속시키는데 성공한다. 다음 목표는 소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쳐 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조선이었다. 정묘년에 용장 잉걸타이에게 3만 정병을 주어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조선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형제지맹을 맺은 홍타이지는 비로소 중원 공략에 나서게 된다. 물론 홍타이지의 후금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위하는 순간부터 내부결속에 나서고, 만주족 뿐 아니라 몽골족 그리고 요동정벌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한족들까지 아우른 팔기제로 소문난 만주 철기병을 육성해냈다.

 

현대판 선군주의 국가 후금은 총 인구의 10%가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명나라와 비교해 보면, 1,500만 명 정도가 군인이라는 것이다. 명나라 같은 농업국가에서 상비군의 존재는 국가재정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다. 병사들의 급료를 비롯해서, 그들을 먹이는 비용 그리고 군마들의 마초 따위의 비용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반면, 약탈 전시경제를 추구하는 정복국가 만주국의 경우는 다르다. 병사들에게 전쟁은 약탈을 통해 전리품을 얻고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마디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는 것이다. 명나라 군대가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자면, 만주 군대는 상대방이 지키는 것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송나라를 비롯한 중국 제국들은 세폐를 오랑캐 국가들에게 제공했는데 이 또한 전쟁을 위한 비용으로 대치되길 일쑤였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들이 제공한 세폐로 오랑캐들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홍타이지와 만주 귀족으로 구성된 버일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중원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명의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는 제국의 동방을 어지럽히는 홍타이지의 만주족에 대해 아무런 국가적 전략 없이 침략하는 대로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몽골족마저 복속시킨 홍타이지는 전통적인 서방침공 대신, 몽골족의 근거지인 막남을 통한 새로운 루트를 이용해서 금성, 북경을 공략하는 신묘한 전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명의 황성이 자금성 앞에 무적이라는 만주족의 철기병이 등장했을 당시 명나라 사람들의 충격과 공포가 어떠했을 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636년 홍타이지는 마침내 대청의 설립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 선언은 명나라 천하를 빼앗아 중원의 패자가 되겠다는 만주국의 새로운 국가 목표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영명한 군주였던 홍타이지는 부친 누르하치의 만한 차별정책 대신, 만주족과 몽골족의 통혼을 통한 민족적 결합을 시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수의 한인 관료들을 등용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홍타이지의 참모로 제국의 실질적인 기초를 닦은 범문정의 존재감이 특히 부각되었다. 만주 문자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미래의 중원의 패자가 될 것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법제들을 정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형사취수제 같이 대륙의 한족들이 오랑캐의 법도라며 무시하던 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중원 공략 과정에서 요서 회랑에서 눈엣가시처럼 자신을 저지하던 원숭환을 반간계로 처치한 홍타이지는 범문정의 계책을 받아 들여 자신이 직접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자성이나 장헌충 같은 유적들의 반란을 이용한 차도살인계를 이용해서 마침내 명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실 명나라는 막대한 군비를 동북 지방에 투입하는 바람에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 결과 각지에서 유적들이 봉기해서 국가권력에 도전했지만, 유능한 장수들의 부족과 농민반란 전략의 부재로 결국 궤멸 직전에 몰렸던 이자성이 극적으로 부활해서 명나라의 숨통을 끊는데 성공한다.

 

홍타이지는 중원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대신, 권투로 표현하자만 강력한 스트레이트나 어퍼컷 대신 지저분한 잽을 수시로 구사하면서 강력한 대국 명나라를 그로기 상태로 몰고간 것이다. 그리고 만력제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명나라는 내부의 농민반란으로 자멸하게 되었다. 물론, 명나라의 자멸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나라의 집요한 침공이었지만 말이다. 중원정복 직전에 병사한 홍타이지를 대신해서 이복동생 도르곤이 어린 순치제(6)를 대신해서 섭정왕이 되어 중국 정복을 완성한다. 물론 완벽한 중원 대륙의 복속은 강희제 시대에 완성된다.

 

<책 속의 책> 코너에서는 병자호란이라는 청의 홍타이지가 계획한 국제적 이벤트를 우리의 시각에서 풀어준다. 변방의 오랑캐 군주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는 첫 번째 이벤트로 조선 공략을 계획한다. 명나라 천하라는 기존 질서를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조선을 철저하게 항복시키는 것은 중원 공략에 앞선 대내외적인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치욕적인 패배로 가뜩이나 현실파악을 하지 못하는 척화론자들을 자극해서 현실적이지 않는 옥쇄전을 택하는 대신, 나름 종주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군주 이종을 복속시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홍타이지의 12만 대군은 압록강을 건넌다.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조 최고의 못난 임금 인조는 즉위 기간 동안 세 번이나 수도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는 신기록을 세운다. 문신 위주의 척화론자들은 나라가 결딴나는 한이 있어도 재조지은의 부모 나라 명을 배신할 수 없다는 철저한 사대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못하고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고 간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강화할 수 있었지만,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면서 실기한 게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실리 보다는 그놈의 명분을 중시하는 자신도 명나라에게는 오랑캐 취급을 당하면서 사대주의자 행세를 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국가 경영을 받은 위정자라면 더더욱 큰 문제일 것이고.

 

우리는 현재 G2로 부상한 이웃의 대국이 다시 한 번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 종속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으로 이웃국가의 굴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모름지기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수성의 군주 홍타이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마침내 중원 공략이라는 대망의 꿈을 이루는 초석을 닦지 않았던가. 우리도 작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위기가 곧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재편기에 맞는 국가전략으로 다가오는 파고를 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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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트 비밀일기 KODEF 안보총서 88
제프리 브룩스 지음, 문근식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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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사에 관심이 많아서, 오래전에 타임라이프에서 출간된 <World War II>를 사 모은 적도 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관심사 부분이라, 2차세계대전 당시 대서양에서 독일 잠수함 부대원이자 통신장으로 실전에 참가했던 볼프강 히르쉬펠트의 기록은 유혹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독일 해군에서 사적 기록을 엄금했다고 하는데, 전쟁 중에 히르쉬펠트의 기록이 발견되었다면 군법회의에 회부에서 처형될 수도 있을 만한 그런 사안이었다고 한다. 후대에 우리는 히르쉬펠트 덕분에 대서양 바다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잠수함전에 대해 알 수가 있게 되었더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의 번역과 감수는 대한민국 잠수함 함장과 전대장을 지낸 문근식 대령이 맡아 주셨는데, 아무래도 잠수함과 관련된 전문 용어들이 다수 등장하다 보니 전문가의 조언이 독서에 되었다.

 

1916년 베를린 출신의 볼프랑 히르쉬펠트는 간전기에 전문 어부가 되고자 실업학교를 통해 교육을 받았다. 히틀러가 부상한 뒤, 준군사 조직인 나치돌격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국립수산학교에서 5년간의 교육을 받고, 전문어부 자격증을 받으려던 히르쉬펠트의 꿈은 나치가 권력을 잡고, 12년의 군 경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모든 일자리를 배부하면서 깨어졌다. 결국 히르쉬펠트는 1935년 군에 입대하게 되고, 1940년 유보트 승조원으로 대서양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미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0년만 하더라도 독일의 전쟁기계는 세계를 석권할 것 같은 기세였다. 폴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에서의 놀라운 전과에 힘입어 유럽 대륙에서 홀로 남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칼 되니츠 잠수함 사령관의 지휘 아래 귄터 프린과 오토 크레이머 같은 유보트 에이스들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상선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개시됐다. 이미 1차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제국의 유보트 전단은 연합군의 생명줄인 상선대를 공격하며 악명을 떨치지 않았던가.

 

문제는 히르쉬펠트가 탑승한 U-109를 비롯한 다수의 유보트들이 날이 갈수록 레이더와 대잠전투능력이 향상되어 가는 연합군 함대의 능력에 비해 낙후되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베버 대위 같이 무능한 기관장 때문에 전체 승조원들이 위협에 노출되기도 했다. 매일의 전과가 사령부에 보고되고, 비교되기 때문에 다른 유보트 간의 유기적인 협조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질적인 연료와 식량 부족과 미숙한 승조원들의 실력 때문에 히르쉬펠트의 유보트는 바로 앞에 노인 적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어뢰운반선’이라는 불렸을까. 아마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적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에 독일군에게는 보급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중에서 청음기를 이용해서 바다 위의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했으니 말이다. 유보트들이 먹잇감으로 삼은 상선대로 무장을 하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심지어 어떤 상선은 폭뢰발사대까지 갖추고 있어서 바다 속에서 자신들을 쫓는 유보트들에게 천둥 같은 폭뢰를 선사하기도 했다. 한편, 적재하고 있던 어뢰가 다 떨어지면 부상해서 함포로 적선을 공격하는 대범함을 보여 주기도 했다.

 

히르쉬펠트는 통신장으로 통신을 주관했을 뿐 아니라, 임시 의사로 승조원들의 고질병인 임질 같은 성병치료에도 나서기도 했던 모양이다. 낡은 U-109로 적도를 지나 카보 베르데에서 브라질,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플로리다 해안선까지 진출했던 대서양의 늑대들의 위용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보트들의 작전 반경일 컸는지 미처 몰랐다. 나중에는 연료를 보급하는 잠수함도 개발되어, 작전 중인 유보트들에게 식량과 귀중한 연료를 보급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작전을 마치고 귀환할 연료가 충분한 동료 유보트 함장은 U-109의 하인리히 블라이힐로트 함장에게 어뢰와 연료의 맞교환을 제시하기도 하는 유쾌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창 대서양 작전이 무르익던 1941년 대소전이 시작되면서 제3제국의 운명도 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전장의 선수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결국 독일군의 전진이 모스크바 코앞에서 멈추고, 다음 해의 카프카즈 산맥까지 도달했던 블라우 작전도 스탈린그라드 패전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해군 지휘부는 전쟁의 승패가 유보트 해상작전에 달렸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히르쉬펠트는 이렇게 낡은 유보트로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아니 그런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대서양에서의 화려한 전투를 뒤로 하고 결국 패전 직전에 준위로 진급한 히르쉬펠트는 마지막 임무로 U-234에 일본군 무관을 태우고, 산화 우라늄을 일본에 전달하라는 비밀 임무 수행에 나선다. 그동안 궁지에 몰린 히틀러라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자살하고, 전쟁이 끝나 버렸다. U-234는 항해 중이던 인근에 위치한 캐나다군에게 항복하는 대신, 미군에게 투항을 선택한다. 임무에 실패한 일본 군인들은 자결하고 관련된 서류들은 바다에 폐기된다. 실제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원들이 그들을 전쟁포로 취급하고 육군은 유보트 승조원들의 소지품을 약탈한다. 그나마 미해군이 신사적이었다는 히르쉬펠트의 증언이 인상적이었다.

 

결말 부분에서 히르쉬펠트들이 운반하던 핵물질의 존재를 알게 된 미군 당국이 막 개발된 핵폭탄을 일본에 투하해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일본으로부터 조기 종전을 이끌어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등장하는데, 그 건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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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4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레삭매냐님! 볼라뇨 책 <먼별>도 멋도 모르고 일단 빌렸습니다 좋은 이웃으로 함께 소통하게 되어 제가 달인이 되었습니다 그 공로 중에 레삭매냐님과의 소통을 빼놓을수가 없네요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클스마스 되소서!

레삭매냐 2018-12-25 10:05   좋아요 1 | URL
말씀 하시니 8년 전엔가 열책에서
볼라뇨의 책들이 우수수 나오던 시절
이 생각나네요. 그 땐 정말 기분이
좋아서 나오는 대로 족족 사모았거든
요.

그러다 열기가 빠지고 나서는 좀 적
적하다가, 작년부터 완독 주행 중이
네요.

저의 활동도 벨루치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너지라고나 할까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

cyrus 2018-12-2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레삭매냐님이 알라딘에 활동하지 않았으면 ‘달의 궁전‘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사라졌을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들이 하나하나씩 떨어져나가네요. 안 만난지 정말 오래됐는데 항상 저를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18-12-25 10:06   좋아요 0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옛 기억들은 찬란
하게 포장되고, 서서히 잊혀지겠지요.

아니 여기서 뜬금 없이 <블레이드
러너> 로이 배티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 걸까요...

달궁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달궁 뽀에바 ~~~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유다의 재판 - 가리옷 유다의 시복재판에 관한 보고서
발터 옌스 지음, 박상화 옮김 / 아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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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복음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76년 발견된 <유다 복음서>는 기독교 기준에서 보면 이단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구속사 다시 말해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 <유다 복음서>의 핵심이다. 독일 출신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고전문헌학 학자인 발터 옌스는 바로 그 <유다 복음서>의 핵심 내용에 입각해서 이스카리옷 유다에 대한 시성 재판이라는 도발적인 설정 아래 재해석을 시도한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듣는다면 바로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전 서른 닢에 대사제장들의 수하들에게 “넘긴” 희대의 배신자가 바로 시카리(열심당원, 젤럿) 출신 유다라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실이 아니던가. 그런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사를 이루는데 꼭 필요했던 신의 도구라는 주장은 재해석의 영역을 넘어, 그야말로 열띤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주장은 고대 그노시스파들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사건의 시발은 1960년 예루살렘 교구의 베르톨트 신부(독일 출신 프란시스코회 소속)가 유다를 시복 심의에 공식적으로 회부하면서 시작된다. 가톨릭에서 기적에 준하는 것을 기준으로 엄격한 심의를 거쳐야 복자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발터 옌스 교수는 먼저읽기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유다에게 시복 심의가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정통 기독교 성서해석에 따르면 열두 명의 사도 중에 재정을 맡았던 유다는 순전히 개인적 탐욕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리사이인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베르톨트 신부의 핵심 주장인 유다의 회심과 은전 서른 닢의 성전 반납 그리고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에 대한 키스 등은 죄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는 순교자가 아니라 베엘제불의 자식이라는 주장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양측의 첨예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상이한 해석을 도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은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해서 유다가 마땅히 순교자라는 입장을 취한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신자들의 청원은 반드시 심사 혹은 재판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전례에 따라 베르톨트 신부의 청원은 이른바 사도재판에 회부된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은 묘하게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자들의 주장대로 유다가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 싸운 투사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신앙검찰관들은 베르톨트 신부가 제시한 사안들을 조목조목 부정한다. 그들은 성서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처음부터 고수한다. 베르톨트 신부의 주장대로 유다가 순교자가 되어 복자가 된다면, 사탄이나 루시퍼도 다음 순서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는 논리도 등장한다. 다시 한 번 성서해석이 얼마나 어려운 임무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었다. 베르톨트 신부는 행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행간에 무엇을 채우는지에 따라 정통과 이단으로 나뉘게 되는지 신앙검찰관들은 정말 몰랐던 걸까. 재판은 무한정 길어지고 특별한 판결도 나지 않은 채 시간만 허송세월한다. 과연 현대의 시각으로 2천년에 있었던 일대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반전은 예심에 참가했던 예부성성의 전권대리인 에토레가 베르톨트 신부의 후계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단적인 주장을 펼친 베르톨트 신부는 결국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병까지 걸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베르톨트 신부가 주장한 대의는 에토레에게 전수되고, 에토레는 장장 12년을 끈 재판의 조속한 진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유다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는 발터 옌스 교수가 이 책을 발표했던 1975년에는 신선했을 지 몰라도, <유다 복음서>의 내용과 그노시스파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진 지금에는 색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다 같은 배신자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순교자로 시복하자는 설정은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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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21 14:36   좋아요 1 | URL
발터 옌스 교수의 소설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설명하더군요.

신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거부하지 않
고 받아들인 진정한 영웅이라는...

정말 영지주의적인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아마 <베아트리스와 버질>이었지. 삶에는 모름지기 안내자가 필요한 법, 연옥과 지옥에는 버질, 베르길리우스가 그리고 천국의 안내자는 베아트리스가. 그런데 왜 제목은 <20세기의 셔츠>지? 다 이유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스패니시 캐나다 출신으로 트렌트 대학을 졸업한 얀 마텔의 <20세기의 셔츠>를 읽었다. 표지를 보면 줄무늬 셔츠가 등장한다. 그리고 당나귀 베아트리스 등 위에 올라탄 붉은고함원숭이 버질도 보인다. 그 둘은 셔츠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 안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과연.

 

저자 마텔이 말하듯, 소설 <20세기의 셔츠>는 누가 봐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마텔은 유대인도 그리고 독일인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접한 홀로코스트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주로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기록이었다. 빅터 프랭클, 로베르 앙텔므 그리고 프리모 레비까지 모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대재앙에 대한 기록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들이 전하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고 무겁다. 하지만 얀 마텔은 홀로코스트에 상상력을 얹으라고 주문한다. 인류의 비극에 상상력을 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이지?

 

우선 얀 마텔은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로 헨리 로트라는 작가를 등장시킨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평론과 소설 두 편을 동시에 발표하는 헨리. 책이 출간된 뒤, 런던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헨리는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는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드러내야 하는 법이지. 글을 쓰는 이들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 사건이 있은 뒤, 헨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어느 대도시에 이방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소설로 성공한 작가로 간주되던 그에게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한다. 그 중에서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헨리라는 이름의 사나이의 편지가 그의 눈에 들기 시작한다. 희곡을 쓴다는 그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헨리와 만나야 이야기가 더 전개가 되겠지. 점점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소설가 헨리 로트가 만난 헨리는 오카피 박제상회의 솜씨 좋은 박제사다. 그가 평생을 걸쳐 쓴 희곡이 바로 <20세기의 셔츠>다. 이제 왜 제목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아니라 <20세기의 셔츠>인지 알겠지. 홀로코스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소설가 헨리는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역시 그의 일환으로 보인다.

 

희곡 <20세기의 셔츠>에서 근면 성실을 대표하는 선수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영리한 고함원숭이 버질은 배에 대해 신랄한 대화를 나눈다. 버질이 배를 몰랐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실존하는 사물을 보지 않은 이들은 배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는 어떨까? 이단적인 수정주의자들은 아예 나치의 대학살극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동물들의 우화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대입하는 순간, 소름이 쭉 끼칠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수십 년간에 쌓인 적폐청산을 위한 역사투쟁의 순간을 살고 있지 않은가. 통제받지 않는 사법 권력의 부역자들이 재판 결과를 가지고 최고권력자와 거래를 한 사실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암담한 순간 말이다.

 

박제사 헨리는 자신이 행하는 박제 행위를 옹호한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박제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그의 설득이 나에게는 적어도 유효하지 않았다. 박제사 헨리의 주장 덕분에 남아프리카에 살다가 멸종된 사바나얼룩말 쿠아가에 대해 알게 된 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싶다. 우리는 현재 대멸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지구별에 번성해온 다양한 생물종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다가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도 언젠가 멸종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열심히 읽다가 만나게 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살쾡이>(우리나라에는 <표범>으로 소개되었다)를 만난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마침 서가에 비치해 둔 책이라 잠시 살펴보기도 했다.

 

소설 초반에는 작품 속의 또다른 작품 희곡과 뒤섞이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20세기의 셔츠>에는 어떤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가 이어질 따름이다. 박제사 헨리가 소설가 헨리에게 전달한 쪽지에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에는 줄거리도 없으며, 살인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점만 적시되어 있을 뿐이다. 박제사 헨리를 황급하게 찾아간 소설가 헨리는 전직 나치 부역자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다. 전번제(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나치 부역자의 소멸은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내가 처음 만난 얀 마텔의 작품은 대단히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전개로 이어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전혀 홀로코스트 문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한국 작가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게 된다면 어떨지 살짝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얀 마텔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까 했지만 지난 가을에 산 <유보트 비밀일기>가 조금 더 궁금해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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