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빌려다 봐야지 하던 책을 어제 발자크의 <사촌 퐁스>를 빌리러 간 길에 빌렸다. 그리고 원래 보려고 했던 책들에 앞서 보게 됐다. 아무래도 만화라는 생각이 앞선 게 아닐까.

 

박시백 저자가 그려내는 일제강점기 35년 역사의 무게는 내 생각처럼 가볍지 않았다. 요즘에도 토착 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시절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반역과 부역의 역사였다. 대한제국의 녹봉을 먹던 관리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배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꼬맹이가 즐겨 부르는 한국을 빛낸 위인들 100에도 나오는 매국이완용(그 노래에 그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을 필두로 한 부역자들의 명단을 보면서 기가 찼다.

 

페리 제독의 강제 개항 이래, 일본 제국주의는 부국강병을 국가적 슬로건으로 삼아 해외진출을 도모했다. 이웃의 조선/대한제국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첫 번째 목표였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정국을 장악한 정한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의 후예들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제국 사무라이들은 무력을 앞세운 병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동학운동과 국권상실에 반대한 전국 각지의 의병활동에도 불구하고 서양 식민지 모국들을 다년간 연구한 조선은 결국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은 조선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군부의 실권자들을 총독으로 파견해서 무단통치에 나선다. 일제는 가장 먼저 척식 다시 말해 식민지 개척과 수탈을 목적으로 다년간의 토지 조사를 실시했다. 산업발전이 전무하다시피 한 농업국가 조선에서 경제개발의 기본이 되는 것이 토지라는 점을 명확하게 꿰뚫은 정책이었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철도와 도로(신작로)를 내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도시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도시들을 거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는 서구의 박람회 스타일이긴 했지만, 전시를 위해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건물들을 훼손하는 등 부작용도 심했다고 한다.

 

내가 <35> 1편에서 주목한 점 중의 하나는 일제 강점 초기, 일제에 대항하던 지식인 그룹 중에서 일제의 통치가 계속될 거라는 판단을 내리고 항일에서 친일로 돌아선 부역자들의 존재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재산과 생명을 포함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 조국의 독립에 진력했지만, 친일이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 추구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한 이들은 가랑비에 옷 적듯이 변신을 거듭했다. 그런 기득권층의 모습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달라진 게 없다.

 

일제는 이완용과 송병준, 박영효 같은 매국에 앞장 선 인사들에게는 귀족 작위를 내리는 당근을 주고, 격렬하게 투쟁하는 항일지사들에게는 체포와 고문 그리고 사형이라는 채찍을 가하는 방식의 무단통치를 이어나간다. 일제는 군대 조직을 동원한 경찰 조직과 밀정을 활용해서 국내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분쇄하는데 성공했고, 무장투쟁 단체들은 만주와 간도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로 무대를 옮기게 됐다.

 

어제 모두 세 권의 <35> 시리즈를 빌려 왔는데, 어제 바로 1권을 읽고 지금은 2권을 읽는 중이다. 2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해외 독립운동과 3·1혁명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을 통해 1920년대 연해주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알렉산드라 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마침 다음에서 웹툰 <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이어서 몇 편을 읽게 됐다.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그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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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라서 저도 얼른 읽어보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더 잘 알게 될 거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2-07 22:33   좋아요 0 | URL
오늘 2권 끝냈습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연해주 한인들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과정도 알게 되었
네요.
 
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쇼킹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진 필립스 작가의 <우물과 탄광>을 만났다. 어느 여인이 앨버트와 리타리 그리고 버지와 테스, 잭이 사는 무어 씨네 집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도망간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때 충격적이지?


그런데 소설은 누가 그리고 왜라는 영아 유기 사건의 핵심 주제보다 무어 씨네가 살고 있는 앨라배마 카본힐이라는 동네의 고단한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때는 1931년. 대공황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탄광촌 마을 카본힐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갤러웨이 탄광의 감독관으로 가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도 막장에 내려가 탄을 캐는 앨버트의 사지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미래의 진폐증에 대한 기미도 보였던가. 순수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스케치가 반가웠다.


테스와 버지가 누가 아기를 버렸는지를 추적하는 동안 전개되는 카본힐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한 시절에 대한 향수 혹은 추억으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어머니 리타리는 빵 만들기 선수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빨래와 식사 준비, 병조림 만들기 등의 가사노동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어떤 경제학 박사는 세탁기가 현대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킨 최고의 현대 물물로 꼽은 것 같은데 석탄 채광 도중에 찌든 앨버트의 빨래감을 삶고 헹구고 너는 리타리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 소녀 탐정 테스와 버지의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진 필립스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카본힐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체험한다. 아이들은 수 차례에 걸친 결혼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엄마 리타리의 옛 친구기도 한 롤라 아줌마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롤라 아줌마네를 방문한 뒤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벌써부터 아름다운 숙녀 티를 내기 시작한 버지에게 달려드는 숱한 소년들의 구애 과정에서, 교회에서 집에 오는 동안 에스코트하기 위해 아빠 앨버트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1930년대 보수적인 남부 지방의 특색을 엿볼 수도 있었다. 소녀는 훗날, 동생 잭이 트럭에 치는 교통사고로 대도시 버밍행의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알게 된 간호사들을 지켜 보면서 자신도 결국에는 대처에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은 그렇게 성숙해져 가는 법이지.


우물 영아유기 사건이 소설의 하나의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남부 지방의 극심한 인종차별이다. “경건한 사람”의 대표 주자인 앨버트는 탄광 동료인 흑인 조나에게서 자기집 우물 사건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듣게 되면서, 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흑인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행동에 나서진 않았지만(아직 흑인 민권운동이 시작되려면 한 참 더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나를 자신의 동료로 인식하고 저녁 초대를 하는 작은 행동을 시작한다. 물론 언제나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었던 아내 리타리의 반대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앨버트. 아들 잭의 교통사고로 75달러에 달하는 병원비를 갚기 위해, 추가 노동을 하는 장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의 고단한 삶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리타리 역시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그야말로 무릎이 닿도록 가사에 전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물과 탄광>은 버지와 테스 그리고 잭 삼남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시골 마을  카본힐에서 자란 삼남매가 어떻게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게 되는지 진 필립스는 느린 속도로 차분하게 관조한다. 당시의 판단 기준으로 아버지 앨버트는 딸들을 단도리하고, 아들 잭의 교통사고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자녀 교육에 있어 그게 옳은지 아닌 지에 대한 판단은 아마 부모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말에 등장하는 작은 구원의 메시지 그리고 아이들이 지닌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도 좋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내가 <우물과 탄광>을 읽으면서 퍼 올린 메시지는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는 언제나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일 뿐. 진 필립스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한 <우물과 탄광>에서 우물 영아유기 사건에 대한 결말은 좀 싱거웠다. 아무래도 초보 작가가 두 세대에 걸친 방대하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전개 설정에 있어 성급하게 결말을 낸 게 아닐까 싶다. 진 필립스의 이전에 나온 <밤의 동물원>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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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1-31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아요. ^^ 리뷰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0-01-31 08:44   좋아요 0 | URL
책은 아주 재밌답니다. 스릴러와 193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의 조합이라고나
할까요.

동시에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구원에 대한
메시지도...
 
룽산으로의 귀환 - 장다이가 들려주는 명말청초 이야기 이산의 책 50
조너선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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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에 읽은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룽산으로의 귀환>을 다시 읽었다. 명말청초라는 시대의 격변기를 살아낸 포의 장다이의 기록은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명나라 시절,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 장씨네 일족이 살았다. 원래 근거지였던 쓰촨을 떠나 바야흐로 물산의 중심지였던 강남에 자리 잡은 장씨네는 우리의 주인공 장다이의 고조부 시절부터 3대에 걸쳐 그 어렵다는 진사를 배출한 지역 명문이었다. 부잣집 장손으로 태어난 장다이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장다이에게 부족한 것은 개인의 입신이었다. 수당 대에 관료 선발제도로 고착화된 과거제는 중국 신사계급에 있어 통과의례적인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모든 독서인들은 과거를 통과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글을 배우고, 과거에 출제되는 경전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장다이가 살던 16세기 말이나 지금은 폐지된 사법고시에 이르기까지 본질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수년간에 걸친 과거 시험을 후원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집안이 총력을 기울여야 중앙정부에서 치르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서 비로소 진사가 될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처럼 장다이의 부유한 환경은 그를 도락의 세계로 이끌었다. 치열한 과거 공부와 그에 따른 보상보다 장다이는 주위의 쾌락에 전념했다. 등 전문가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민물 게나 오리고기 먹기를 즐겼고, 연극무대 연출에도 제법 실력을 보였다. 이런 즐거움 대신 방구석에 쳐 박혀서 과거에 출제될 문제들을 연마하는 걸 한량이 즐거워했을 리가 없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포의 신세는 장다이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한편, 그의 주변에는 특이한 캐릭터들이 차고 넘쳤다. 사설 역사가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장다이는 <도암몽억>이라는 개인 문집을 통해 화려하고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꿈같은 회상을 도모한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그것도 다 문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재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훗날 명나라가 망하고 가산을 잃게 되면서 노년에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곤란함이 청년 시절부터 존재했다면 장다이가 노고를 쏟은 <석궤서> 같은 역작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거시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종래의 중국사 대신, 명말청초라는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강남 지방의 포의 장다이의 시선을 통해 당시를 분석한다. 장다이는 명태조 주원장부터 시작해서 천계제에 이르는 15조에 대한 상세한 기전체 서술을 시도했다. 그에게 태사공 선생은 역사 서술의 전범이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저서도 태사공 선생이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넣어 두었던 석궤에서 따왔을까.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조너선 스펜스는 남북조 시대 활약했던 도연명을 소환한다. 장다이가 기술하는 조정에 진출한 장씨 가문 인사들 역시 안분지족을 알지 못하고 권력의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가 아니었던가.

 

후반에 가서 장다이는 본격적으로 명나라 왕조의 멸망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다. 한국 만동묘의 주인공이기도 한 만력제 연간으로부터 명나라는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약관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만력제는 치세 초기 대학사 장거정의 조력으로 선정을 베풀기도 했지만, 후계자 선정을 두고 조정의 중신들과 충돌을 빚으면서 아예 정치를 태업하기 시작했고 결국 환관이 발호하면서 조정의 부정부패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명나라 말기를 상징하는 내우외환으로 무거운 세금과 학정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농민반란과 동북 변방에서 흥기한 만주족 전사들을 명나라 조정을 상대해야 했다. 결국 1644년 명나라는 이자성의 반란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장다이는 냉정하게 이자성과 청군의 공격이 아닌 내부에서 시작된 중병으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자성의 일격은 우연일 따름이었다.

 

망국의 신민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였다. 유교사상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불사이군이라는 대의명분을 쫓아 지기 치뱌오자처럼 순국하거나, 청조에 투항해서 목숨을 연명하고 협력하는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장다이의 친구 화가 천훙서우도 변발령을 피해 산으로 도주해서 스님 행세를 했지만, 나중에는 청나라에 부역했다고 매섭게 꼬집지 않았던가.

 

명왕조 부활에 나선 노왕 일행과의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감군 복왕에 대한 장다이의 비평은 신랄했고, 장다이가 준비한 연회에서 말술을 들이키던 노왕 역시 명나라 부흥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일 뿐이었다. 어디 그들뿐인가, 전장에서 청군에 맞서 싸워야 할 장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선동으로 괜히 백성들에게 헛바람만 들게 하고, 일말의 희망도 없이 반청운동에 나선 이들만 억울하게 도륙되었다.

 

망국의 군주 숭정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망국의 모든 책임을 숭정제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 과한 게 아닐까? 하지만 지나친 세금을 거두면서도 정작 돈을 써야 할 때는 쓰지 않았던 황제에 대해 비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정의 곳간에는 자금이 가득했지만, 북방의 일선에서 청나라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지원을 하지 않아 결국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군에게 연전연패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쨌든 망국의 유민 장다이의 나라의 흥망성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석궤서> 집필에 몰두했다. 역설적으로 장다이가 자신의 조상들처럼 과거에 급제해서 입신양명하고 고위직에 올랐다면, 자의반타의반으로 순국의 길을 걸어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장 지방의 포의였던 장다이에게 순국은 선택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망국의 지식인으로 아주 잠깐 자결할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장다이 인생의 전반부는 분명 실패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고,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노련하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대표가 바로 과거였다. 하지만 한량이자 포의로 얻게 된 고상한 취미는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서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망국의 신민이 된 다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저술에 전념했다. 자신이 사는 시대의 역사를 쓰겠다는 장다이의 신념이 돋보이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도 인간이다 보니 역사에 자기 가족사를 집어 넣고, 균형을 깨뜨리는 실수도 했다. 병란과 망국 그리고 먹고사니즘으로 단련된 노년의 장다이는 그전보다 훨씬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어쩌면 스펜스 교수의 <룽산으로의 귀환>은 인간의 일생을 한 나라의 흥망에 견준 그런 비유가 아닐까 싶다.

 

[뱀다리] 조정에 나가 축재와 비위를 일삼은 장다이의 둘째 숙부는 명조의 멸망에 일조를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다이 일족 역시 부정부패로 망해가는 왕조에 일말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장다이가 보다 뛰어난 사가였다면 바로 자신에게 불리한 점들도 예리하게 짚어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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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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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완벽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35년 만이라고 했던가전작 <시녀 이야기이후 시퀄이 우리에게 걸린 시간은작년 가을부터 기다려왔다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증언들>이 번역되기만을사실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은 책이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그랬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생각은 싹 바뀌어 버렸다너무 당연한 귀결이었노라고.

 

항상 그렇지만 서설이 길다우리는 현대판 베르길리우스 애트우드 여사의 안내로 다시 맹신과 폭력의 저주 받은 땅 길리어드 내셔널 홈랜드로 향한다훌루 드라마와 전작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과 수호자들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종교적 맹신으로 무장한 길리어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나라인지이 땅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은 그저 재생산(reproduction)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그들에게는 심지어 읽기와 쓰기마저 가르치지 않는다불임이 만연한 상황 가운데신정국가의 존속을 위해 시녀들을 동원해서 사령관들의 자식을 생산하는 야만을 거침없이 저지른다그리고 그런 파렴치한 사령관을 대표하는 저드는 어린 소녀들에게서 성적 욕망을 채우고어린 아내들을 지속적으로 갈아 치운다마치 전설에 등장하는 푸른 수염처럼.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그런 폭압적인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이미 우리는 지난 세기에 퓨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의 광기를 보지 않았던가미세한 균열이 보이는 그 지점에 애트우드 여사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들 배치해서 어떻게 해서 철옹성 같은 길리어드의 파멸이 도래했는지에 대한 스케치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전작과 드라마에서 길리어드 창설에 있어 뛰어난 활동을 한 리디아 아주머니와 예의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십대 소녀 아그네스 제미마 그리고 길리어드의 무력한 이웃나라 캐나다의 데이지가 증언대에 오른다.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배신과 위선 그리고 궁극적으로 길리어드를 파멸로 인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정말 통쾌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연속이다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소설의 디테일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부디 <증언들>을 몸으로 느껴 보시기 바란다.

 

리디아 아주머니데이지 그리고 아그네스가 그리는 여성상은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바라는 그런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다각성을 통해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판이 뛰어든 세 명의 전사들이다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사방에서 조여오는 의심을 피하면서 길리어드를 탈출하는 여성들을 돕는 내부 조력자의 역할을 담대하게 수행하는 캐릭터를 필두로 해서출생의 비밀을 안은 이부 자매라는 설정 그리고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빅토리아 아주머니 같은 캐릭터에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베카 혹은 임모르텔 아주머니였다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그녀의 숭고한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었다그리고 보니 초중반을 휩싸는 그런 스릴 넘치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는 좀 기운이 빠진 그런 느낌이랄까애써 애트우드 여사를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소설이 달려가는 동안 내내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게 쓸 수 있단 말인가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정말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고는 다른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어마무시하면서도 압도적인 서사에 감탄했다오랜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었다영화든 드라마든 좋으니 부디 <증언들>의 유려한 영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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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레삭매냐 2020-01-25 12: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하나의책장 2020-01-26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0-01-28 09: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나의 책장님! 설 연휴 잘
보내고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단발머리 2020-01-28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던 작가의 기다리던 책을 만난 레삭매냐님의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전 이번에 출간된 책을 종이책으로 살까 이북으로 살까 아직도 고민중입니다. 대여는 또 50%할인이라 하구요. 이북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는데, 올려주신 책 사진에 다시 마음이 동하는군요. 어떻게 할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01-28 09:50   좋아요 0 | URL
뭐... 말이 필요없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저희 허접한
리뷰로 풀어 내기에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은 사주셔야 합니다.

인스타에서 보니 아빠에게
딸이 묻습니다.
˝아빠, 이북이 뭐에요?˝

아빠가 대답합니다.
˝책 읽는 독자들을 파괴하기
위해 미래에서 보낸 evil robot이다.˝

저는 그래서 책을 삽니다.
이블 로봇에게 정신을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서요 ㅎㅎ

단발머리 2020-01-28 0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쩜!! 훌륭하신 아빠네요. 알라딘 크레마 그런거 안 좋아하는 아빠신가 봐요. 그럼 일단 종이책에 한 표를 더하구요~~~ 혹 이북에 한 표 하실분 없을까 기웃거려봐야겠어요!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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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인가 인스타의 피드를 한 소설이 장악하다시피 한 적이 있다. 영어 제목은 <The House of Broken Angels>였다.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라던가. 우리말로 해석하면 망가진 천사들의 집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번역이 되어 내 곁을 찾아왔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우선 책의 표지를 살펴보자. 오래전 어느 수업 시간에 영화의 포스터와 오프닝을 보면 그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대강을 파악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레아 작가의 소설 표지가 상징하는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중앙의 메히코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가 눈에 띈다. 어떤 식으로든 메히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거라는 점을 상징한다. 그 다음에는 한 쌍의 천사 날개다. 천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국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누군가 곧 죽을 거라는 그리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이 가능하리라. 마지막으로 세 채의 집들이 하단을 장식한다. 아마도 메히코 패밀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 위에 겹쳐진 반원들은 약속을 의미하는 무지개로도 볼 수 있을 듯 싶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 보자. , 이 책을 수중에 넣기 전에 우레아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봤다. 작가의 실제 생활을 너무 투영하는 것도 독해의 오류겠지만, 작가가 말미에 적어 놓은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잘 훔쳐야 한다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한 동시에 유한하기도 하니,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서사를 훔쳐서 새로운 형태로 수정하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미국 중에서도 메히코로부터 미국이 강탈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다. 평소 메히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시간 엄수에 목숨을 걸어 독일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우리의 주인공 빅 엔젤(앙헬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 파파 아메리카의 장례식이 늦었다. 바이 골리!!!

 

메히코 라파스에서 천조국으로 건너온 데 라 크루스 집안의 총수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바로 다음날 자신의 성대한 70세 생일파티를 치를 예정이다. 모든 일가붙이들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그 어느 예외도 없다. 시애틀에서 사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 리틀 엔젤 교수를 필두로 해서 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트랜스젠더 가수 엘 인디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차례로 등장하는 데 라 크루스 집안 선수들의 면면은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가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능가한다. 이런 선수들이 총수의 명령으로 총집합했으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장례식과 생일 파티를 치른다면 그게 더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빅 엔젤이 지금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던가? 데 라 크루스 총수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모여서 한바탕 신나는 잔치를 벌이길 원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멋진 한 판 승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총수는. 한 편으로 공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 아무래도 좀 그건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경찰이자 바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린 바람둥이 아버지 돈 안토니오로부터 시작해서 빅 엔젤 그리고 그 다음 자식대인 엘 인디오, 브라울리오, 랄로 그리고 여걸 라 미니에 이르는 메히칸 가족 3대에 걸친 이야기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속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우레아 작가는 물론 거기에 유머라는 양념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초반에 복잡한 데 라 크루스 집안의 가계도를 상상하지 못할까봐 리틀 엔젤 교수님이 그린 가계도를 말미에 붙여주는 서비스 정신도 칭찬할 만하다.

 

두집살림을 차린 돈 안토니오 덕분에 빅 엔젤과 리틀 엔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링고 여인 베티를 만나 라파스의 가족을 버리고 월경한 돈 안토니오 덕분에 빅 엔젤 가족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고생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베티와 리틀 엔젤이 호의호식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두껍게 쌓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에 우레아 작가는 소설의 방점을 찍는다.

 

우레아 작가가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도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야말로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엔딩에서 돌아온 탕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낸 엘 인디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국을 위해 머나먼 이라크까지 가서 당한 부상으로 퍼플 훈장까지 받았지만 결국 불법체류자 딱지를 떼지 못하고 마약중독자가 된 아들 랄로, 티후아나에서 미국 국경을 넘으면서 앵무새 밀수를 하려다 실패한 마마 아메리카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서사들이 빵빵 터진다.

 

내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면서 짚어낸 주제는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다. 미대륙에 원래 살던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주한 이방인들이 누가 먼저 왔냐에 따라 후발주자들을 무시하고, 더 이상의 이민을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살벌한 장벽을 세우겠다는 일단의 선동가들의 난센스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레아 작가는 애써 유머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히스패닉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가족뿐이라는 결말에 순순히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또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우레아 작가가 절묘하게 설계한 엔딩에서는 아주 쬐끔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기도 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이라고 하는데 다른 소설들은 어떤 서사로 무장되어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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