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을유사상고전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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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의 르네상스 자유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로마사 논고>를 아주 오래 전에 읽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키아벨리하면 연상하는 그의 대표작 중에 대표작이라는 <군주론>은 아예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물론 책은 가지고 있었다. 7북표지 챌린지의 제물로 삼기에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었다. 오늘 아침부터 바로 읽기 시작했다.

 

바로 전에 괴짜 논객 <아레티노 평전>을 읽어서 그런지 격랑이 휘몰아치던 15세기와 16세기 사분오열된 이탈리아가 바로 연상됐다. 물론 그전에 체사레 보르자 등등에 대한 글을 충분히 읽어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와 마키아벨리의 고향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를 둘러선 프랑스와 에스파냐 그리고 교황권의 각축의 이해를 위한 충분한 독서 근육이 준비되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역시 책은 이렇게 다 읽을 때가 있는 법이지.

 

, 물론 그전에 르네상스의 또 다른 문제적 인간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어 네이버캐스트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마키아벨리는 공화국 피렌체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눈에 들어 고위직 관리로 활약하고 싶었으나, 그 때마다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결국 하위관리 신세로 자신의 웅대한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어쩌면 춘추시대 각국을 주유천하했던 공자 같은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설파하는 이상은 좋지만, 현실에 도입하기에는 좀 거시기한.

 

게다가 후대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의 상징 같은 인물로 그려져 두고두고 욕을 먹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가 저술한 희대의 저서 <군주론>을 읽어 본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왜 우리들은 저자의 생각과 주장이 담긴 저술을 읽지 않고, 다른 이들의 평가에만 의존하는가. 어쩌면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지적 수련에 너무 투자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괴리와 오류가 아닐까 싶다.

 

책의 띠지를 보면 인간본성과 권력 투쟁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문구를 새겨 놓았다. 책을 읽다 보니 충분히 공감이 간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명백하게 일반인이 아닌 군주에게 헌상된 책이다. 프랑스와 대결하기 위해 외세인 에스파냐를 불러들인 베네치아는 결국 롬바르디아 전역에서 소소한 이익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 대해 명철한 분석가인 마키아벨리는 정복과 통치/지배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논증한다.

 

정복 지역에 대한 영구적 지배를 위한 마키아벨리의 고언은 냉정하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우선 철저하게 기존의 지배층을 소멸시켜야 한다. 다시 반란을 도모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군대는 정복에는 필요하지만, 지배에는 이주민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현지인들을 동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가 취했던 정책이 아닌가. 중앙집권화된 투르크나 페르시아의 경우, 집권은 어렵지만 통치는 상대적으로 용이했다고 분석한다. 반대로 봉건제도가 발달한 프랑스의 경우, 집권은 쉬웠지만 수시로 발생하는 반란으로 통치의 지속은 난망했다는 것이다. 현대에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기득권층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채찍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통치의 마지막 방법은 아예 본거지를 통째로 옮기는 방식이다. 중세를 끝장낸,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뒤에 아예 수도를 비잔틴 제국의 중심으로 옮기지 않았던가. 본거지 이전의 이점으로는 반란의 신속한 진압과 기존 지배계층을 대신한 새로운 권력에 대한 상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분오열된 이탈리아 통일의 대업을 이룰 인재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모델로 삼았다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서자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이야기와 분석도 또한 흥미진진하다. 자수성가해서 군주의 자리에 오른 밀라노 공국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같은 입지전적 인물이 있는가 하면, 체사레 보르자처럼 순전히 아버지의 끗발에 포르투나 덕분에 승승장구한 캐릭터도 존재했다. 알렉산데르 6세 재위 기간, 아버지의 바람대로 프랑스의 지원을 얻어 로마냐와 우르비노 공국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던 냉혈한 체사레 보르자는 아버지 사후 운이 다하면서 결국 풍운아다운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의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가 선종한 뒤, 체사레 보르자가 충분히 미래에 자신의 적이 될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콘클라베에서 선출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결국 자신의 몰락을 자초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창업에 성공한 이의 성공은 그대로 포르투나의 바람을 타고 쉽게 이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순전히 운발로 성공을 거둔 체사레 보르자 같은 경우에는 좀 더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다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한다. 대부분의 예언자들은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무장한 예언자가 성공을 거둘 확률은 더 높아진다. 단적인 예로 레닌과 마오쩌둥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실력이 온전하게 나의 것인지 아니면, 인맥이나 화려한 웅변술을 이용해서 얻어온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군대의 중요성, 다시 말해 무력이 가지는 당위성에 대해 설파한다. 상대방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금전이라는 형태로 환전될 수 있겠지만, 혼란의 시대에서는 역시 무력이 최고라는 말일까.

 

어쩌면 마키아벨리는 당대 유행하던 용병의 폐해를 일찍이 깨닫고 근대국가가 마련한 상비군 시스템의 필요성을 먼저 깨달은 선각자일 지도 모르겠다. 국가나 민족에 대한 희생이나 충성심 대신 오직 돈으로 움직이는 라이슬로이퍼(스위스 용병들)가 군대의 주력이던 시절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나마 근대국가의 틀을 갖춘 프랑스나 에스파냐 군대를 상대하던 이탈리아 용병집단은 평화 시에도 전주(錢主)인 군주를 약탈하고, 전시에는 전시대로 상대방을 약탈한다는 마키아벨리의 통찰 섞인 유머에 정말 빵 터지고 말았다.

 

저자는 군주가 민중에게 베푸는 시혜에 대해서도 통 크게 쏠 것이 아니라, 찔끔찔끔 베푸는 방식을 권한다. 그게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효과가 더 크다나. 알쏭달쏭한 말이다. 그리고 후대에 큰 오해를 받게 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인 군주는 악행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큰 덕을 이루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악행의 수행에 있어 신속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것을 주문한다. 전쟁이 그렇지 않은가. 모름지기 군주는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선 그전에 먼저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먹고 먹히는 근세 초 르네상스의 전장에서 압도적인 병력으로 거세게 밀어 붙이는 적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조건 농성전에 돌입하는 게 상책이었을까? 가장 폭력적인 정치 행위인 전쟁에서 오로지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전투에 참가하는 용병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탈리아가 오늘날 이 꼴이 된 것도 상당 부분은 용병들에게 전투를 맡긴 탓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어쨌든 마키아벨리에게 군주란 민중의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 그런 존재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어떻게 보면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군주론>은 난세에 필요한 처세술로도 읽힐 수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군주론>에서 픽업한 중요한 주제는 바로 균형감각이다. 선을 넘지 않는 냉정한 판단력이야말로 난세의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군주는 필요에 따라 악행을 수행해야 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다. 또 때로는 대중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런 모든 임무를 한 몸에 지녀야 하는 게 군주, 아니 어쩌면 권력의 속성일 지도 모르겠다.

 

로마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아레나에 직접 검투사로 출전해서 군주의 품위를 떨어뜨린 콤모두스에 대한 비유부터 시작해서, 지나치게 백성들 대신 군대를 후대하다가 결국 호위군에게 피살당한 어리석고 우매한 로마 황제들의 열거는 어지러울 정도다. 그러니 제발 피렌체의 로렌초 메디치는 중용의 미덕을 지키고, 자국 병사들을 양성해서 통일 이탈리아의 대업을 이루길 바란다는 식의 권고로 <군주론>은 마감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어디선가 분명 충간과 아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덕목에 대해서도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의 모습에서 메디치 가문을 그야말로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할 구세주로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군주에게 유리한 형국이라는 곡학아세의 자세로 달려드는 걸 보니 결국 냉철한 분석가라고 자처하던 마키아벨리 역시 속물적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도대체 무슨 실력으로 피렌체가 발루아 왕조가 이끄는 서방의 대국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독일 그리고 세속화된 교황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로마 교황을 상대로 해서 약탈로 쑥대밭이 된 롬바르디아를 수복하고, 토스카나와 나폴리를 되찾겠다는 망상을 마구 퍼트린단 말인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술에서 무엇보다 실력을 기르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자신이 가진 실력 이상을 요구하는 언어도단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진언은 로렌초 메디치에게 채택되지 못했고, 유비를 도와 천하를 제패하려던 웅대한 꿈을 꾸던 제갈공명처럼 마키아벨리 역시 피렌체의 하급 공무원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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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03-05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티치아노 그림이랑 군주론이랑 어울려요~ 아. ㅠ 이 책 갖고싶네요 ㅠㅠ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신중하게 처신한다. 미래의 행동이 추하지 않기위해

레삭매냐 2020-03-05 11:47   좋아요 1 | URL
아마 이 책을 절판되고 신판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치아노의 그림이었군요 표지가.

그전에 읽은 아레티노의 그림도 티치
아노가 그렸다고 하던데.

전 아주 오래 전에 서울국제도서전
인가에서 을유문화사 부스에서 데려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서 할인행사를 하지 않아 그 다음부
터는 안가게 되네요 ㅋㅋㅋ
 
아레티노 평전 - 르네상스기 한 괴짜 논객의 삶 역사도서관 교양 12
곽차섭 지음 / 길(도서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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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의 7표지 챌린지로 읽기 시작한 토스카나 아레초 출신의 16세기 베스트셀러 작가 피에르토 아레티노의 평전을 읽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책을 샀는지 모르겠다. 마침 서가에서 읽지 않은 책이 눈에 띄었고, 바로 잡아서 챌린지를 시작했고 책도 마저 읽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던 해인 1492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아레초에서 태어난 피에트로 아레티노는 태생부터 르네상스인 다운 출생의 비밀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평민 출신 구두장이의 아들일 수도 그리고 유력 가문의 서자일 수도 있다고 한다. 하긴 500년 전의 인물에 대한 전기다 보니 정확성보다는 추정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점이 역사 평전의 재미를 더하는 게 아닌가. 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명확한 기록이 없다는 게 두통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자신의 주관적 아이디어를 집어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니 운신의 폭을 넓힐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미래의 속어를 구사하는 통속작가로 필명을 날리게 되는 아레티노는 평민 출신답게 당대 식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배우지 못했다. 아마 아레티노 같은 필력을 가진 이가 그런 고급 언어까지 익혔다면 아마 단테에 버금가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 않았을까. 사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아레티노가 도대체 무얼 하는 작자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우연한 독서는 이렇게 새로운 지식의 길로 독자를 인도하는 법이다. 그런 게 바로 책읽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뛰어난 현실감각을 지닌 아레티노는 페루자를 거쳐 로마로 향하면서, 태양을 쫓는 해바라기처럼 권력 지향적이고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본능적으로 깨달은 르네상스 전성기를 살아낸 인물이었다. 아마도 유력자의 후원을 받아 페루자에서 시집을 발표한 아레티노는 독자적 경험과 독서를 바탕으로 풍속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레티노가 빛을 보기 시작하는 장면은 아고스티노 키지의 가신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다. 뛰어난 문재와 누구와도 지낼 수 있는 천성적 친화력을 바탕으로 아레티노는 인맥을 쌓고, 그 인맥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군주를 벌하는 채찍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아레티노가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16세기 초반은 중세 교회의 속박으로 해방된 인문주의 정신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기다. 아레티노 자신은 가톨릭 신앙의 기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갈고 닦은 문재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군주들(카를 5, 프랑수아 1세 그리고 헨리 8)을 비롯해서 율리우스 2세나 클레멘스 7세 같은 교황들에 이르기까지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문제 뿐 아니라 이재에 밝았던 모두까기 신공의 대가 아레티노는 이미 당대 문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권력자들을 협박해서 후원금을 뜯어내는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정보력을 동원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점을 가지고 정계와 교계 지도자들을 들었다 놨다하는 필력을 자랑한 게 바로 아레티노였다. 아레티노의 성공 뒷면에는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활자인쇄술의 발전과 루터가 독일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평전의 앞에 소개되는 <체위><음란한 소네트>로 근대판 포르노그래피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로마에서 교황과 그들의 측근들과의 불화(심지어 암살위협)로 베네치아로 망명한 뒤에는 <예수의 수난> 같은 그야말로 신심 넘치는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서양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상업으로 부흥한 자유도시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자유인 아레티노에게 그야말로 딱 맞는 공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서민 출신 아레티노는 자신의 저술활동으로 막대한 돈을 긁어모아, 관대하게도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평민들을 도왔다. 평전의 어디선가 등장하는 자신의 집이 여관인 줄 알았더니만 병원이더라는 말은 압권이었다. 그의 고용인이었던 키지 같은 거부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데 급급했지 피고용인인 아레티노처럼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가. 왜 귀족들은 아레티노의 그런 관대함을 미덕이라고 칭송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부리는 하인들에게 너무 관대해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티치아노 같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했던가. 군주들을 기묘하게 이용해 먹으면서도, 절대로 그들의 가신이나 정신 같은 종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아레티노의 기백이 돋보였다.

 

곽차섭 교수의 아레티노 평전에서 가장 백미는 바로 르네상스 예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술비평가로서 아레티노와 벌인 설전이다. 1541년 공개된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인벤티오네와 테코룸의 격돌을 마주한다. 이전까지 모든 학문과 예술은 기독교의 시녀 같은 존재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정신의 도래로 아름다움에 대한 강조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지만, 여전히 종교적 적절성과 신심의 고양이라는 종교가 보는 입장에서의 예술의 위치는 고정불변이었다.

 

그런 마당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그린 수많은 나신들이 등장하고, 수염 없는 젊은 예수가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 비난의 최전선에 선 이들 중의 하나가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예술비평가로 자처한 피에트로 아레티노였다. 어쩌면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최고 걸작에서 시대정신을 앞서는 인벤티오네를 구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톨릭의 부패와 위선을 공격하던 루터를 필두로 한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방어하며 점차 보수적으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아레티노는 그 누구보다도 앞서 캐치해낸 것일 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지점 중의 하나는 아레티노 역시 <체위><음란한 소네트>처럼 그야말로 당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신은 정당한 언어로 구사했기에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부하는 장면이었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결국 1563년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으로 <최후의 심판>에 덧칠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아레티노의 삶은 그야말로 질풍노도 같은 시대를 그린 한 편의 초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치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영원한 도시 로마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탈리아 전쟁의 와중에서 독일 개신교 용병들에게 훗날 로마 약탈이라는 알려진 비극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르네상스 자유인 아레티노는 군주들과 교황의 비호 아래, 무시로 진영을 바꿔가며 주제를 가리지 않는 비판으로 권력자들에게 날카로운 채찍을 휘둘러댔다. 매문(賣文)이라는 기술로 돈을 번 선구자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은 혼돈의 시대를 냉철한 현실주의 감각으로 돌파해낸 문제적 인물 피에트로 아레티노 평전에 대한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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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3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모르는 작가임다. 포르노그래피의 신호탄이라니!
그도 그렇지만 이재에 밝았다고 하니 부럽네요.
작가가 부자가 되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임다.
잘 사 놓으셨네요.

근데 7일 동안 7표지 챌린지가 뭔가요?

레삭매냐 2020-03-03 16:53   좋아요 1 | URL
당최 제가 이 책을 왜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성공이었네요.

국내 연구자가 쓰신 글이라 번역서와
달리 술술 읽혔습니다. 어떤 번역은 정
말 읽지를 못하겠더라구요.

7일 7표지 챌린지는 지금 제가 인스타
에서 인친 분의 추천으로 진행하고 있
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좋아하는 책의 표지
를 포스팅하는 거랍니다. 재밌더라구요.
독서의 의욕도 생기고, 이렇게 쟁여둔
책도 읽고 말입니다.

2020-03-0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3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르노그래피나 에로티시즘 문학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사람이 아레티노예요. 이 책이 나온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어요.

페이스북에도 ‘7일 7표지 챌린지’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연히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지인이 이 챌린지를 하고 있었어요. ^^

레삭매냐 2020-03-03 19:42   좋아요 0 | URL
아레티노 평전이 어찌하여 고수님의
레이더망을 피해 갔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네요 :>

저는 오늘로 4일차랍니다. 이제 삼일
남았네요.
 


 

더 미룰 수가 없어 1,752쪽 짜리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이미 1권과 2권을 읽고 3권에서 멈춘 적이 있어 더 조심스럽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단아,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의 로베르토 볼라뇨의 역작 <2666>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과연 그전에 한 번 읽어서 그런지 기시감도 들고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지니. 이제 겨우 초반전일 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배배 꼬이고 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나의 혼을 빼놓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1920년대 프로이센 출신의 독일 출신 소설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가 있다. 아니 그의 정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었던 유럽의 중추를 이루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 출신 학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미지의 작가 아르킴볼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볼라뇨는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정밀한 타격을 가한다.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작가에 대한 태생적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 그 작가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럴수록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될 것이다. 볼라뇨처럼 요절한 작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도대체 볼라뇨는 생전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써놓았기에 사후에도 계속해서 미발표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단 말인가. 어떤 점에서 본다면 자신이 바로 방대한 메타픽션 <2666>의 샘플일 지도 모르겠다. 각각 국적을 달리하지만 아르킴볼디를 사랑하는 장클로드 펠티에, 피에르 모리니, 마누엘 에스피노사 그리고 리즈 노턴이 빚어내는 서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의 세계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들에게 언어 따위는 전혀 장벽이 아니다. 독자는 아르킴볼디의 문학 세계에 대해 네 명의 비평가들이 나누는 대화와 사유를 바탕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가 작품들이 유니크한 무언가를 유지하면서 연구자들을 꼬이게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 또한 볼라뇨가 정밀하게 설계한 소설적 장치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중심에 미지의 아르킴볼디라는 기둥이 서 있다면, 서브텍스트로는 예상한 대로 영국 출신 리즈 노턴을 두고 세 명의 지식인들이 벌이는 연애 경쟁이 존재한다. 그들은 지식인들답게 거리의 사나이들처럼 거칠게 애인을 쟁취하기 위해 주먹질을 하지는 않는다. 리즈 노턴을 존중하면서 충분한 거리와 시간을 두고 나름의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고 보니 다발성 경화 증세로 휠체어를 탄 모리니는 육체적인 이유 때문에 초반 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학회에서 아르킴볼디에 대한 연구와 수많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독자는 과연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독자는 볼라뇨의 설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펠티에와 에스피노사는 함께 런던을 찾았다가 자신들의 유사 애인이자 동료, 친구를 모욕하는 파키스탄 택시 운전사를 흠씬 두들겨 패기도 한다. 모두에게 숨어 있는 야성과 폭력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에드윈 존스라는 이름의 자신의 오른손을 스스로 자른 행위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도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진도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등장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어디선가 아르킴볼디가 멕시코 소노라 인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펠티에와 에스피노사 그리고 리즈는 산타테레사를 찾게 된다. EU 출신 네 명의 지식인들이 문학의 세계사를 대표한다면, 산타테레사라는 공간은 NAFTA라는 조건 아래 멀지만 가까운 이웃이 되어 버린 미국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는 자본과 노동을 유추하게 만든다. 수십 수백명의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산타테레사였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국경 부근의 오지에서 아르킴볼디가 출현했다고? 너무 부족한 단서와 정보 때문에 비평사 삼총사들은 자신들이 어쩌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볼라뇨 작가는 감으로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는 아르킴볼디가 그곳에 분명 있었노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준다. 물론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말이다. 어쨌든 볼라뇨가 악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탐구하게 되는 공간인 산타테레사를 찾은 비평가들은 제각각의 시간을 보낸다. 리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미 없어 보이는 산타테레사를 떠나 모리니를 찾아가고, 펠티에는 계속해서 아르킴볼디의 책들을 읽어댄다. 그리고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에스피노사는 거리에서 카펫과 잡동사니를 파는 레베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지의 칠레 출신 아르킴볼디 전문가 오스카르 아말피타노 교수가 다음 이야기의 주자로 등장한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볼라뇨의 메타픽션 <2666>의 첫 번째 이야기는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판타지일 지도 모르겠다. 네 명의 비평가들은 실존이 계속해서 의심되는 프로이센 출신 작가의 환영을 쫓는다. 그들은 미지의 작가에 대한 책사냥꾼들인 동시에, 판타지를 자신들만의 사유로 풀어내는 몽상가들이다. 게다가 절대 선을 넘지 않은 러브 라인까지 끌어 들이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낸다.

 

베노 폰 아르킴볼디의 책을 읽기 위해서 그들은 우선 독일어로 된 문장을 독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가 아닌 독일어라니!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는 영문학 관련 학회가 열리겠지만 지역어일 수밖에 없는 독일어 문학에 자신의 시간과 정열을 쏟는 이들을 쉽게 만나거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문학 자체가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방망이를 깎던 노인의 마음이 그럴까.

 

문학이 가져다 줄 상업적 성공을 예견하는 사람이라면 노벨상 후보로까지 언급되는 아르킴볼디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을 위인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세속의 맘몬에게 포로가 된 문인들에 대한 볼라뇨식 저격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볼라뇨는 슬며시 소설의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질 멕시코 소노라 산타테레사로 비평가들이 아르킴볼디를 추적한다는 핑계를 대고 독자를 유인한다. 다음 장의 화자/이야기꾼은 칠레 출신 철학 교수 오스카르 아말피타노다. 두 번째 인스톨도 거의 다 읽었다. 이제 막 첫 번째 시도를 넘어설 태세다. 나의 <2666> 읽기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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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인생은 하잘 것 없다네




예전에 볼라뇨의 메타픽션 <2666>2권까지 모두 읽었지만 결국 세 번째 권에서 완독에서 실패한 이유를 곰곰이 복기해봤다. 우선 왜 출판사는 각권의 페이지수를 연달아 붙인 걸까. 단권으로 차근차근 공략했다면 난 이 책을 수년 전에 읽었으리라. 갈수록 페이지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며 어느 순간 질려 버린 게 아닐까.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하나는 읽을 때마다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점도 짚어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읽는 대로 족족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아니 책을 읽는 중에도 쓰리라.

 

그렇다 모든 목적지는 멕시코 소노라의 산타테레사로 귀결된다. 그리고 두 번째 권의 주인공은 1권 말미에 등장했던 산타테레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칠레 출신 오스카르 아말피타노 교수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 화자의 시점을 계속해서 바뀌고, 누구의 목소리를 따라 가야 하는지 종종 잊어버릴 때가 많다.

 

우리의 아르킴볼디 삼총사는 1권에서 그가 우울한 성향을 지닌 동성애자일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아마 했었지. 홀로 딸 로사를 키우며 지내는 아말피타노 교수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스케치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학의 세계화 혹은 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볼라뇨의 대장정에서 갓난쟁이 딸을 버리고 자유연애를 찾아 유사애인 임마와 떠난 롤라가 그리는 삶의 궤적을 그리는데 작가는 왜 그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지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롤라가 몬드라곤 정신병원에 갇힌 시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정말 기이했다. 그 와중에 만난 남자들은 하나 같이 롤라를 탐한다. 대학교수 남편과 보장된 평안한 삶의 터전이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롤라는 정신병원 부근에서 만난 운전사 라라사발과의 풋사랑을 뒤로 하고 배가본드의 삶을 계속한다. 그 와중에도 남편 아말피타노에게 편지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채기에 덧나라고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거주와 노동의 자유가 보장된 하나의 연합체 EU는 방랑자 롤라에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 준다. 프랑스 국경을 넘은 롤라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돕는 이타적인 모습에 나는 놀랐다. 빛의 도시 파리에 자리잡고 브누아라는 아들을 낳은 롤라는 결국 딸 로사와 남편 아말피타노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말피타노는 페레스 교수의 가족과 함께 로사를 데리고 짧은 여행길에 나선다. 불타는 석양을 보면서 새빨간 고추가 끓고 있는 가마솥 같다고 했던가. 아말피타노를 밤마다 찾아오는 아버지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산타테레사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라도 등장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멕시코 오지의 지식인 사회는 산타테레사 대학 교수들 사이에 모습에서도 슬쩍 내비친다. 여자들이 계속해서 실종되고 시체로 발견되는 와중에서도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는 외면하고 야회를 즐긴다. 어쩌면 아말피타노도 예외는 아니리라. 디에스테의 기묘한 책을 뒤샹 스타일로 카피해서 빨랫줄에 늘어놓는 장면, 아라우코 인디오의 기묘한 텔레파시에 대한 소개 그리고 멕시코에서 가장 좋은 메스칼(로스 수이시다스)을 소개해 주겠다는 총장 아들 마르코 안토니오 게라의 등장까지 도대체 서로 무슨 연관성을 가졌는지 좀처럼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는 볼라뇨가 나는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 이래서 수년 전에도 완독을 못하고 실패했던가.

 

날건달 같아 보이는 게라가 게이 행세를 하며 시야말로 오염되지 않은 무엇이라고 항변하고, 최후의 공산주의 철학자로 보리스 옐친이 등장하는 엔딩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제 앞으로 세 권이 남았다. 부디 모두 다 읽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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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비평가와 철학 교수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비극의 현장인 멕시코 소노라의 산타테레사로 독자를 인도한다. 뭐가 좀 빠진 것 같지 않나? 그렇다 우리는 사건의 실체를 추적할 저널리스트가 필요하다. 구원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서 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의 이름은 오스카 페이트다. 뉴욕의 흑인들을 위한 잡지사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던 페이트는 자신의 이름(Fate)답게 볼라뇨가 소설의 주 무대로 삼은 산타테레사로 향할 운명이다. 멕시코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권투 경기 중계를 위해, 갑자기 사망한 잡지사 동료를 대신해서 애리조나 투산을 거쳐 산타테레사에 투입된다.

 

조금 장황하게 진행되는 배리 시먼의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 연설까지 읽었던가. 나머지는 이제부터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전에 아마 그 부분까지 읽었던가. 기억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거침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블랙 팬서 단원이자, 감옥에서 다양한 돼지 갈비 레시피를 소개하는 요리 비법을 개발했다고 했던가. 흑인 형제들을 상대로 한 연설과 강연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잇는 남자 배리 시먼의 이야기가 소설 <2666>에서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좀 위험하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읽어라. 잘못하면 또 중간에서 중단하는 수가 있으니.

 

어쨌든 결론에 가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력한 유용성에 대한 강의를 마무리지었던가. 그가 옥중에서 볼테르를 읽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정말 빵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 또한 볼라뇨가 독자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한 블랙 유머의 한 단락이란 말인가. 독자들이여, 감옥에서 유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부디 책을 읽으시라. 물론 숙련된 책쟁이로서 공감하는 바이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몽환적인 그런 드라이브 끝에 페이트는 카운트 피케트의 라이트 헤비급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산타테레사에 도착한다. 그리고 페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카운트 피케트의 경기 취재보다 산타테레사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연쇄살인당하고 있다는 비극적 뉴스를 접하게 되고, 해당 사건을 르포르타주 형식의 기사로 써보겠다고 뉴욕의 부장에게 연락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동시에 예전에 그가 취재했던 브롱크스에 남은 마지막 미치광이 공산주의자에 대한 기사처럼 말이다. 뉴욕의 부장은 오로지 인종적 차원에서 사건이 잡지에 게재할 만한 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뉴욕의 부장에게 거는 전화를 우연히 듣게 된 현지 기자 과달루페 론칼은 페이트에게 자신의 해당 사건의 담당 기자로 배치되었으며, 자신이 그의 취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을 흘린다. 동시에 유력한 용의자가 산타테레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그는 그링고(미국 놈)이라나. 그전에 만난 영화광 찰리 크루스와 대화에 등장하는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이야기에서는 무려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시절이 떠올랐다. 영화 제작비가 없어서 자신의 피를 팔아 전설의 <엘 마리아치>를 만들었다는 썰이 있었지 아마. 한 때 좋아하던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기이하게도 흑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새롭게 깨닫게 됐다. 유대인 KKK 음모론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의 채록이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자 그리고 드디어 2부와의 연결점이 이루어질 시간이 되었다. 카운트 피케트의 권투 시합에서 페이트는 역시나 운명적으로 지상에 현현한 여신 로사 아말피타노와 만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권투 경기에서 누가 이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철저하게 준비한 선수가 그러지 못한 선수를 링 위에서 싱겁게 때려 눕혔노라고 페이트는 기술한다.

 

아름다운 로사에 대한 페이트의 감정이 뒤섞인 매우 폭력적인 밤이 지나간다. 유사 애인 추초 플로레스의 손아귀에서 로사를 구해낸 페이트는 아말피타노 교수의 조력을 받아 로사를 데리고 미국 국경을 향해 출발한다. 도중에 과달루페 론칼을 다시 만나 산타테레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연쇄살인 용의자이자 미지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볼라뇨는 미국 출신 흑인 저널리스트를 등장시켜 독자에게 과연 산타테레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문학적 르포르타주를 시도한다. 한 때, 세계화는 인류에게 새로운 복음이자 소비의 신천지를 제공해 줄 거라는 신화가 존재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설계한 세계화는 자본에게는 국경 없는 무한한 자유를 선사했지만, 정작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할 주역인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과 장시간에 걸친 노동을 강요했다. 특히 멕시코같이 약탈적 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버린 제3세계 시민들의 경우에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NAFTA의 도입으로 활성화된 마킬라도라(보세임가공) 산업이 미래의 신성장 산업이라는 일부 주장들은 공허한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NAFTA의 과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에게 모조리 돌아갔고, 멕시코는 사회적 양극화와 공공 서비스의 붕괴라는 참혹한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했다. 멕시코 농민들이 희생양이었는데, 볼라뇨는 그 중에서도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현재의 지옥 산타테레사에서 연쇄적으로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본격적인 무대에 올린다.

 

디킨즈 스타일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고난의 첫 세 토막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고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이단아는 어쩌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까지 철조망으로 둘러친 드높은 진입장벽을 그렇게 세워놓은 게 아닐까 싶다. ‘그래, 뭐 이 정도의 끈기라면 나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이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들의 두 배 정도 되는 4권과 5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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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29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거 읽기 시작하셨군요. 저도 늘 벼르고만 있는데... ㅎㅎ
계속 순항하시길 바랄게요~

레삭매냐 2020-02-29 12:04   좋아요 0 | URL
책이 나오자 마자 팬이라고
사서 1-2권 읽고 나서 3권에서
멈추었더랬답니다.

이번에는 반다시 완독의 영광을~
순항 응원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0-02-29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적지에 도달하길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0-02-29 12:05   좋아요 1 | URL
초반보다 후반이 더 걱정이네요.

갈수록 두터워지니 말이죠 :>
오늘 2권 읽고 나서 바로 3권
돌입합니다.

moonnight 2020-02-2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존경합니다. 저는 나오자마자 샀지만 아직도 쳐다보기만 하고 있습니다만^^; 곧 완독하시겠군요. 훌륭^^

레삭매냐 2020-02-29 13:56   좋아요 0 | URL
수년 전부터 책장에서 저를 노려 보며
도대체 언제 읽을 거지? 라는 시선을
느끼며 죄책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2/5를 넘어
섰네요.

초록별 2020-03-03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지세요...꼭 완독하시길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20-03-04 07:01   좋아요 0 | URL
3권까지 신나게 내달렸는데
두터운 4권부터 지체되는 느낌입니다.

응원에 힘입어 완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0-03-03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완독하시길! 제 가슴이 막 두근거리네요 *^^*

레삭매냐 2020-03-04 07:09   좋아요 0 | URL
좀 지지부진했었는데 응원 버프를
받아 다시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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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당하게 최애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작가 중의 하나가 바로 로베르토 볼라뇨다. 고작 반세기를 살고 지구별을 떠난 볼라뇨는 천재작가가 그렇듯, 살아서보다 사후에 더 평가를 받았다고나 할까.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작품은 바로 11년 전에 나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이었다. 그후 꾸준하게 그의 책들을 읽었고, 사 모았다.

 

얍삽하게도 단편 소설이나 소설집들은 섭렵했지만 정작 대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 <2666>은 아직 읽지 못했다. 전자는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후자는 1권과 2권까지는 읽었지만 3권에서 멈춰서 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하나. 비슷한 궤도로 <3제국>89쪽까지 읽었더라. 샀지만 읽지는 않았다는 죄책감에 어젯밤에 책을 집어 들었고 가뿐하게 전에 읽었던 부분을 돌파했다. 이거 왜 이렇게 재밌지. 역시나 책은 읽을 때가 있는가 보다.

 

전략 게임 <3제국>의 챔피언 게이머 우도 베르거는 애인이자 자기 행복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잉게보르크와 함께 유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즐겨 찾던 스페인의 바닷가 휴양지 코스타 브라바를 찾는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25세 청년 우도는 아름다운 애인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샘을 즐기며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델 마르 호텔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긴다. 다만, 잉게는 우도의 게임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흠이라고나 할까.

 

떠오르는 전략 게임의 스타 우도는 다양한 잡지에 게임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데, 쾰른의 어느 출판사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글쓰기를 가다듬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소설 <3제국>의 내레이터인 동시에 주인공인 셈이다. 휴가지에서 만난 찰리와 한나 커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외톨이 같은 성격의 우도는 그들과 어울려 술집과 디스코텍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게임판에서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걸 더 선호한다.

 

전쟁마니아가 아니라면 전혀 들어 보지 못했을 제프 디트리히나, 파울 하우저, 하인쯔 구데리안 그리고 폰 만슈타인 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기갑군을 이끌었던 맹장들의 이름을 보니 왜 이리 친근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세계에 블리츠크리크로 알려진 세계대전 개전을 알린 폴란드 전역의 백색작전, 바로바로사 작전, 튀니스와 비제르테에서의 소모전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니 나름 마니아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들이 어쩌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3제국>의 매력 포인트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볼라뇨의 끝없는 관심의 끝이 어디였을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우도와 찰리 커플의 잔잔한 세계에 스페인 현지의 로보와 코르데로 그리고 화상으로 괴물 같은 얼굴의 페달 보트 업자 케마도가 서사에 참여하면서 서스펜스와 스릴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로보와 코르데로 듀엣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지중해의 태양을 상징한다면, 독일에서 온 두 커플은 그들이 발산하는 태양 이미지를 열심히 소비하는 구매자 같다고나 할까.

 

찰리의 실종으로 소설은 변곡점을 그리면서 하이라이트로 치닫기 시작한다. 우도가 머무는 호텔 델 마르의 여주인 프라우 엘제와의 미묘한 관계 역시 문제다. 어려서부터 품어온 연상녀에 대한 동정에서 비롯된 감정을 청년 우도는 다스리지 못하는 걸까. 화상 때문에 괴물 같은 얼굴의 케마도를 전략 게임 <3제국>의 제자로 삼은 독일 챔피언 우도는 그와의 대결에 몰입한다. 그리고 실제 제3제국의 몰락처럼, 우도의 삶도 침몰하기 시작한다.

 

보드게임 마니아이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박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망상에 가까운 판타지를 볼라뇨는 생산해낸다.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로 무시로 넘나들며, 다양한 사건에 연루된 주인공은 일상을 잊고 오롯하게 태양과 바다를 즐겨야 하는 휴가지에서 악몽의 포로가 되고 만다. 우리는 왜 자신에게 주어진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전 세계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기세로 연전연승하던 나치 독일의 베허마흐트는 영국을 굴복시키지도, 스탈린이 지배하는 적도 모스크바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의 제3제국의 영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전략 게임 <3제국>이 나치 독일의 패망의 길을 따르리라는 것을 우도는 결국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게르만 민족의 영도자를 자처했던 히틀러는 복수에 불타는 무시무시한 적군(赤軍)에게 포위되어 베를린 벙커에서 결국 죽지 않았던가. 추락하는 챔피언 우도의 모습은 그렇게 제3제국의 지도자의 길을 따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2주나 되는 휴가를 즐기는 우도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꿈만 같은 일이니 말이다. 그게 벌써 20년 전 보통의 독일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천재 볼라뇨 덕분에 전쟁작가 스벤 하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던 미군들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은 352사단의 리더 디트리히 크라이스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나의 11번째 볼라뇨 읽기는 예상 외로 수월하게 마쳤다. 이제 내친 김에 메타픽션 <2666>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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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2-25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호기심이 급 땡깁니다. ^^

레삭매냐 2020-02-26 10:45   좋아요 1 | URL
<제3제국> 마치고 나서 드디어
<2666>에 도전 중입니다.

과연 완독에 성공할 지 저 자신
도 궁금하네요.
 
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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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축약본으로 된 알렉상드르 뒤마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었다. 아마 영화로는 <여왕 마고>로 알려졌었지 싶다. 영화도 봤다. 뒤마의 <삼총사><몬테크리스토 백작> 그리고 <여왕 마고>1844년 그리고 6년 뒤에 <검은 튤립>이 발표되었다. 나폴레옹 시대 혼혈 장군으로 무용을 떨쳤던 부친을 둔 뒤마는 통속소설 작가로 그동안 저평가 되어 오다가 2002년 팡테옹으로 묘를 이전하면서 비로소 프랑스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속소설이 어째서?

 

<여왕 마고>에서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는 낭만주의 역사소설의 대가다운 솜씨를 <검은 튤립>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무협지 같은 그런 재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실제 있었던 1672820일 헤이그에서 있었던 드 비트 형제의 끔찍한 살육에서 시작해서 꽃을 사랑하는 홀란트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던 검은 튤립을 얻게 되는 일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인 탐욕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홀란트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오라녜 가문의 빌렘 3(영어식으로는 윌리엄)은 약관의 나이로 순수한 공화정을 주장해오던 코르넬리스와 얀 드 비트 형제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이웃의 강적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을 도모한다. 지난 세기 해양강국으로 군림했던 홀란트의 미래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을 상대로 한 경쟁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르주아 시민들은 경쟁국들을 제압할 수 있어 보이는 강력한 군주정을 원했고 22세의 빌렘 3세는 순수한 공화주의자 드 비트 형제를 제물삼아 권력 강화에 나선다. 드 비트 형제들의 죽음은 왠지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그라쿠스 형제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소설의 1/3 가량을 당시 정국과 상황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진짜 주인공인 코르넬리우스 판 바에를르가 등장한다.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의 코르넬리우스는 의사(첫번째 직업)이자 박사로 신실한 기독교도(신교도)의 모범과도 같은 사나이다. 코르넬리우스의 부친은 돌아가시면서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지. 그가 가진 유산과 지적 재산은 그럴 수 있을 만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작자가 그렇게 우리의 주인공 코르넬리우스를 행복하게 둘 리가 있나 그래.

 

신문연재를 하면서 다져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일일드라마의 영속성을 뒤마는 일찍이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신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신속한 전재와 피와 살이 튀는 그런 유혈극을 필두로 해서 소설 <검은 튤립>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뒤마에게는 이건 뭐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독자에게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지 않나하는 도발적인 유머까지 곁들이며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막장 드라마에 악당이 빠지면 안될 것이다. 코르넬리우스의 이웃에 사는 이작 복스텔(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유대인으로 추정된다)이라는 희대의 악당을 배치해서 주인공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역할을 맡긴다. 이 시샘과 질투의 화신은 당시 홀란트를 열광 속에 몰아넣은 취미 활동이었던 튤립 재배자로,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처럼 코르넬리우스의 중대한 도전을 철저하게 방해한다. 그렇다면 그의 도전이란 무엇이냐? 바로 하를럼의 원예협회장이 제시한 희귀한 검은 튤립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금 10만 플로린이라는 거금까지 걸렸으니, 홀란트의 모든 튤립 재배자들이 도전에 나섰다.

 

, 이제 모든 준비가 완성되었다. 한편,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의 대부 코르넬리스가 남긴 비밀편지를 맡아 두었다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복스텔의 무고로 반역자로 몰려 투옥되고 재판과정을 거쳐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관대한 청년 군주 빌렘 3(혹은 오렌지공)의 사면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미래의 검은 튤립이 될 세 개의 소구근을 간수 흐리푸스의 딸 로자의 도움으로 구하게 된다. 아하, 로자와의 로맨스가 이어지리란 것을 명민한 독자들은 예측했으리라. , 이제 중대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수감한 뢰베슈타인으로 이송된 코르넬리우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뒤마가 구사한 낭만주의 역사소설 <검은 튤립>은 요즘 쓰인 소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서스펜스와 재미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백미다. 전작 <여왕 마고>에서처럼 자신이 특정 인물에 대해 설정한 소설 전개상의 드라이브가 어쩌면 약점으로 지적될 지도 모르겠다. <여왕 마고>에서 카트린느 메디치가 그랬던 것처럼, 이중적 속성을 지닌 청년 오렌지공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초반의 묘사처럼 오렌지공이 권력의 화신이라면, 굳이 코르넬리우스를 사면하고 신원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 영명한 군주는 비교적 공정하고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창조한 게 아닌 타인의 것(검은 튤립)을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악의 화신 복스텔의 집요한 음모와 탈취 계획은 또 어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르넬리우스가 죽건 말건 상관없고 오로지 타인이 누릴 명예와 부를 가로채기에 혈안이 된 한 부르주아의 초상은, 소설 초반 등장해서 드 비트 형제를 도륙한 부르주아 군중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소설 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19세기 대가는 코르넬리우스와 로자 그리고 검은 튤립 사이에 세밀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삼각관계에서도 대단한 심리묘사를 보여준다. 간수의 딸이자 문맹인 처녀 로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드 비트 형제와 코르넬리우스를 돕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코르넬리우스의 아바타처럼 자유인으로 검은 튤립을 창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물론, 자신보다 검은 튤립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코르넬리우스에게 때때로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게 바로 이렇게 쪼는 연애소설의 핵심이 아니던가.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을 적에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가 역시나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팡테옹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의 무덤에 헌화라도 했을 텐데 뭐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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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뒤마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시작해보렵니다.

레삭매냐 2020-02-23 21:51   좋아요 0 | URL
<여왕 마고> 작년에 소개된 <카트린 메디
치의 딸>을 추천해 드리고 싶으나 축약본
이라 어떨실 지 모르겠습니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백작> 말고는
국내에 출간된 책이 거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