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속칭 기레기라고 불리며 언론 본연 업무 대신 다른 일로 주목을 끌던 국내 유수의 언론들이 알고 보니 수출역군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놀랍군. 그렇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뉴스나 기사들을 외국으로 송출하는 걸까?

 

물론 그건 아니었다. 그들의 생산물은 정도의 고품격 퀄리티를 담보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생산된 신문지들이 자그마치 해외 각국으로 수출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처는 어느 나라였을까? 주로 동남아 각국에서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 세계 인구 5위의 인구대국 파키스탄(어제 처음 알았다)과 가나에도 많이 수출된다고 한다. 으응, 가나? 그 가나 초콜렛의 나라 가나? 오래 전에 아마 가나가 골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거의 처음으로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로 기억한다. 갑자기 국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들이 동남아를 석권하고 이역만리 파키스탄과 가나까지!!!

 

근데 그 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아나 보다. 한글로 인쇄된 신문이 왜 필요하지? 아니면 한글 부교재로? MBC 스트레이트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의 무지를 준엄하게 일깨운다. 그네들이 대한민국의 신문이 필요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 이제 카메라가 빙빙 돌아간다. 동남아에서 나는 과일이 유명한 건 모두가 아실 것이다. 바로 그 과일을 포장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종이 포장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내에서 모자라니, 당연 수입선을 해외로 돌려 품질 좋고 가격도 싼 한국 신문들이 대량으로 필요한 것이다. 친환경 잉크(콩기름?)로 제작되어, 인체에도 무해하고 또 기름을 잘 흡수하여 음식물 포장에도 적합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증언이다. 역시 우리나라 유수의 신문에서 만든 신문들이 그런 국제사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빼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구나. 그 외에도 이케아 같은 매장에서도 한 번 펴보지도 않은 한국 신문들을 소품이나 기타 물건을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 비치해 두고 있더라.

 

다시 카메라는 신문지를 수출하는 업체로 렌즈를 돌린다. 그곳에서 듣자하니, 컨테이너 하나당 300만 원 정도의 이익이 남는다고 한다. 잘 나가는 업체는 한 달에 천 개 정도의 컨테이너를 해외로 수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달 장사가 30억 정도 되는 셈이다. MBC의 추산에 따르면 신문 한 부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이것저것 다해서 8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윤전소에서 바로 따온 따끈따끈한 신문들의 폐지가격은 80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문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가. 도대체 왜 이런 밑지는 장사를 왜 하는 걸까. , 업자들이 국내에서 이렇게 생산된 고품질의 폐지 신문들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국내에서 기존에 이 신문들을 이용해서 계란판 만들던 회사들이 가격인상으로 낭패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수출된 우리의 귀중한 수출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재활용 수입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져서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수입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웃기는 것 중의 하나는 언론들이 생산한 신문지가 국내에서 선순환이 되지 않으면서 종이값이 올라가고 그것은 다시 신문() 제작 단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거다. 어쨌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스트레이트는 단순하게 신문지들이 해외에 수출되는 현상만을 겨냥하지는 않는다. 진짜는 밑지면서도 윤전기를 계속해서 돌리는 진짜 이유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신문의 유료부수를 인증하는 ABC인지 뭔지 하는 업체로부터 인증을 받기 위한 꼼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정부의 세금 보조로 이어진다. 아니 근데 왜 언론사가 국민의 세금을 지원 받는 거지? 단지 언론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국의 정기 세무조사도 거부하지 않았나? 지원은 웰컴 앤 쌩유지만, 우리는 어떠한 규제도 거부한다? 왜냐고? 우리는 언론사니까. 할 말이 없다.

 

내 생각에 다른 이유 하나는 일등신문 백만 유료부수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그걸 무기로 해서, 광고주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나 하는 합리적 추정이다. 이렇게 영향력이 있으니 자연히 지면 광고의 단가를 올려 주셔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언론은 진실 보도라는 본연의 업무 대신에, 영업을 추구하는 일개 사기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많은 비용이 드는 지면 광고는 누가 사갈까? 개인이? 그럴 리가... 물론 개인이 살 수도 있겠지만 주요 고객은 바로 대기업일 것이다.

 

기업이 광고 수주라는 명목으로 언론사를 길들이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태생적으로 이익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광고라는 달콤한 멋잇감을 던져주는 기업에 문제가 있다면, 과연 그런 기업에게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입장인 언론사가 과감하게 주인님을 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경언유착이 시작되는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수년 전에, 다수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이 어느 기업 사장인가에게 보낸, 충성 맹세를 하는 문자들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산 적 있다. 수오지심조차 모를 댕댕이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분노보다, 왠지 밥벌이의 어려움이 떠올랐다. 다들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구나.

 

아침마다 회사로 배달되는 경제신문이라는 언론들은 대놓고, 수치들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입맛대로 기사를 주무르기 일쑤다. 물론 그들이 팩트를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팩트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하고 해석하는가가 문제다. 팩트를 비틀고, 꼬는 방식으로 그들은 외눈박이 독자들의 입맛에 착 달라붙는 새로운 퓨전 요리를 생산해낸다. 자신들의 생산물을 주로 소비하는 열혈애독자들과 주인님의 입맛에 맞는 그런 기사를 말이다.

 

지난주에 아버지하고 가짜 뉴스 때문에 싸웠다. 안부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도발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나도 해당기사를 찾아보았는데,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일개 지자체가 발주한 용역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치 정부에서 엄청난 비용(자그마치 5조원!!!)을 들여 북한을 지원한다고 (기정사실로) 해석하시는 패기에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자나 깨나 불조심, 아니 가짜 뉴스를 조심해야겠다. 21세기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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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5-17 11: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신문뒤에 이러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니요~~
요즘 거의 종이 신문을 안보는데 왜 1년씩 무료로 제공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신문을 수출까지 한다는게 더 놀랍네요~~
문득 신문에 얽힌 옛생각도 나고~~
레삭매냐님께서 아버님과 싸운 얘기도 재밌고^^
한 편의 좋은 생활칼럼 입니다**

레삭매냐 2021-05-17 11:50   좋아요 5 | URL
언론의 영향력이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주입 반복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잘못된 기사는 특종이라며
대서특필하고, 정정보도는 아무
도 못볼 만한 구석탱이에 배치
하는 편집의 미학에 그만...

뉴스를 분별하는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보입니다.

새파랑 2021-05-17 11: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수출하는 건 첨 알았네요. 요즘 뉴스는 정말 잘 가려서 봐야할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7 13:20   좋아요 5 | URL
타국에서 아주 인기라고 합니다.
심지어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이...

바람돌이 2021-05-17 12: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이 기사 봤어요. 한 때는 국내에서 신문 구독하면 1년 공짜로 넣어주고 자전거도 주고 한다고 집의 초인종을 눌러 댔었는데요. 요즘은 수출로 해결하네요. ㅎㅎ
모 케이블 방송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북한 방송이랑 굉장히 비슷해요. 굉장히 선동적이고 격앙되어서 얘기하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이런 방송이 약간 어르신들 감성에 좀 맞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방송을 하루종일 오랫동안 보시면 어느새 거의 동화되어가는, 거기다 카카오톡으로 친한 지인이 그럴듯한 근거를 대며 가짜뉴스를 가져오면 뭐 ..... 저희 집 어르신들하고도 그래서 자주 부딪히는지라 레삭매냐님 상황이 남일 안같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17 13:23   좋아요 5 | URL
저의 dodge 기술의 패배입니다.

저희 동네 E마트 앞에 가면 지금도
자전거 주신다고 하더라구요.
아 자전거 타고 잡다 ㅋㅋ

개인적으로 가짜뉴스가 불량식품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먹을 땐 아주 좋
으니깐요. 부작용은...

청아 2021-05-17 12: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어나는 광고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신문,방송 결국 언론매체들이 광고 때문에 대기업에 발목 잡혀서 공정한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눈치보기에 연연하니 악순환입니다. 과일,가구 포장이라니....

레삭매냐 2021-05-17 14:07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구독자를 늘려 신문의 독립
을 이루어야 하는데 광고와 협찬 그리
고 요상한 돈벌이(뭔 기사 등재 조건
으로 기업에 비용 청구하는 사례 등등)
에 그렇게 치중하는지...

과일 및 다양한 품목의 포장재로 아주
유용하다고 하네요.

mini74 2021-05-17 2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부수에 따라 주는 보조금도 폐지해야 된다고 봅니다 제목낚시도 심하고요.ㅠㅠ

레삭매냐 2021-05-18 11:34   좋아요 1 | URL
저도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보조금 폐지!

어뷰징으로 낚시하는 건 정말 노답
입니다.

붕붕툐툐 2021-05-17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부수 벙튀기는 언론에 잘 나오지도 않고 이슈화도 안 되는 거 같아요. 자기네 치부는 어찌나 잘 숨기는지... 세금 도둑! 부들부들~
신문 수출 이유가 웃프네요..

레삭매냐 2021-05-18 11:35   좋아요 0 | URL
선택적 공정에 아주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균형 있는 보도란 자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치부는 숨기고 타인의
치부는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로
남불의 전형이죠.

페크pek0501 2021-05-20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고기 구울 때 기름이 튈까 봐 신문을 덮을 때가 있었어요.
뚜껑을 덮으면 기름 묻은 뚜껑을 또 씻어야 하니깐 그게 편해서요.

다 이유가 있었구먼유.^^

레삭매냐 2021-05-21 16:59   좋아요 0 | URL
친환경 신문이 만방에 위력
을 떨치고 있었네요 ㅋㅋㅋ

감은빛 2021-05-2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대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젠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죠.
저도 이 기사 때문에 엄청 화가 났다가,
수구꼴통 언론 다운 모습이다 싶어서 그냥 헛웃음만 나왔어요.

레삭매냐 2021-05-21 17:03   좋아요 0 | URL
해외에서는 종이신문 특히 지역
신문들이 소멸하고 있다고 하더
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포털을
통해 뉴스가 소비되다 보니,
종이신문들이 하루가 다르게
수익성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그리구 수구언론은 노답니다.
 















 

어제 주문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트의 소설집이 오늘 도착했다.

섬과 달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인가. 1번은 대만족이었고, 2번은 1번만 못해서 지금 읽다 말았다.

 

요즘 독서 슬럼프인지 이 책 저 책 시작만 하고 끝내질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다 읽어야 하는데.

 

이름부터 마음에 든다. 팬케이크라니...

오래전 줄창 먹어대던 아이홉의 팬케이크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그 땐 진짜 자주 가곤 했었지. 두툼한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으면 정말... 그땐 그랬지.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26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는 1952년 생이고, 1979년에 죽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책으로 만나 봐야지 싶다.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12편의 소설들이 담겨져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로 읽기에 돌입한다. 렛츠기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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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에게 주기만 하던 남자,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인별그램 이웃이자 달궁 두목님께서 이 작가의 라스트 네님 팬케이크가 본명이냐고 물으셨다. 위키피디아를 돌려 보니, 본명은 브리스 덱스터 팬케이크가 맞다. 오 놀랍군.

 

서문을 제임스 앨런 맥퍼슨 교수가 맡았다.

그분도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브리스 디제이가 살아 생전에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책의 서문을 썼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브리스 디제이의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첫 단편은 브리스 디제이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에게 선물했다는 그 귀한 <삼엽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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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6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홉이라면...제가 아는 그 아이홉 맞습니까? ㅋㅋㅋㅋ 따뜻한 팬케이에 시럽 쳐부터 먹는 맛이란 ㅎㅎㅎ 음하.
팬케이크님의 책도 아이홉의 팬케이크처럼 치명적일까요?

레삭매냐 2021-05-16 18:15   좋아요 0 | URL
책의 표지에 힐빌리 헤밍웨이
라고 되어 있네요...

넵, 아이홉은 말씀하신 고
아이홉이 맞습니다.

미쿡인 친구가 인별그램에 댓글
을 달아 주었는데 애팔래치아
사투리를 번역본에서는 어케 다
루었는지 궁금해 하네요.

잠자냥 2021-05-17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 님께 땡스투 갔삼.

레삭매냐 2021-05-17 11:00   좋아요 0 | URL
매우 쌩유~합네다.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쇼트리스트가 발표되었다. 그 정보는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여튼 정보 하나는 빠르다.

 

롱리스트 12권 중에서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6권이 남은 모양이다. 이 중에서 한 권이 대망의 수상작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프랑스 소설가 에리크 뷔야르 뿐이다. 후자는 그나마 공쿠르상 수상빨로 국내에 소개된 것 같다. 국내에는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그 책들은 모두 읽었다. 서사가 너무 짧고 아예 모르는 부분들이 아니라 좀 아쉬운 느낌이었다. <콩키스타도르><콩고>도 읽고 싶다. 이번에 노미네이션이 된 작품은 2019년에 발표된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이다.

 

 

영어로 된 번역서를 찾아보니 달랑 80쪽이다. 왜 너튜브 리뷰어들이 책이 짧아서 아쉽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종교개혁 당시 천상에서의 평등이 아닌 현세에서의 평등을 주장한 토마스 뮌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리뷰를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열린책들은 이 책의 분량도 적은데 신속하게 번역해서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기존에 나온 책의 저자 소개에 책 제목이 나온 걸 보면 아마도 판권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말이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6권의 책 중에서 나의 우선 픽은 프랑스 작가 다비드 디옵이 2018년 발표한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영어제목 At Night All Blood Is Black)>. 디옵은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세네갈에서 자랐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 반대가 아니었던가. 그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디옵은 대학에서 예술과 언어 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문 분야는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17세기 아프리카 연구라고 한다.

 


 

불어를 할 줄 알면, 저자가 출연한 프랑스 대담 프로그램을 좀 들어 보겠는데 아쉽다. 좀 들어 보니 어느 외계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놀라운 건, 프랑스에 저자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가. 과거에 있었다면 나의 무지의 소산이고.

 

 

1914년 그레이트 워라고 불린 1차 세계대전에 23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와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이 참전했다. 그 중에서도 세네갈 출신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빌헴름 카이저의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히틀러 시대에 만연한 인종주의 정도는 아니었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프랑스 식민지 병사들을 두고 라인 강의 검은 공포라는 말로 선전을 해댔다. 나중에 참전하게 되는 미국도 40만 명 정도의 흑인 병사들을 동원했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는 짐 크로우 법으로 수많은 흑인들이 차별당하고,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되고 있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굉장히 어두운 색채의 전쟁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알파 엔디아예(발음은 내 마음대로 정해봤다, 나중에 번역이 되면 달라질 수도 쿨럭). 소설은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내던져진 알파의 내적 고백으로 시작한다. 형제 이상이었던 전우 마뎀바 디옵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내장이 튀어 나와 죽어 간다. 마뎀바는 알파에게 세 번이나 자신의 고통을 끝내 달라고 간청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마뎀바는 알파에게 자신의 목을 그어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마치 번제물로 받쳐진 희생양처럼 말이다. 전장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노라고, 알파는 고백한다.

 

알파의 후회가 이어진다. 마뎀바가 처음 부탁했을 때 그의 청을 들어주었어야 했다고. 나의 브라더가 산 채로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던 늙고 외로운 사자처럼 죽게 만들지 말고, 그의 고통을 자신이 끝냈어야 했다고. 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을까. 친구의 시신을 소중하게 자신의 코트와 셔츠로 단단하게 감싼 알파는 참호로 되돌아간다.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마뎀바에게 용서를 구하며.

 

참호에서 병사들의 두목인 아르망 대위는 독일놈들이 검은 아프리카의 쇼콜라 병사들을 야만적인 니그로, 식인종 그리고 줄루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고 사기를 북돋는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백인 프랑스 병사들 역시 쇼콜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르망은 또 쇼콜라들에게 사기를 친다. 프랑스가 그들을 존경한다고. 훗날 식민지를 모두 잃은 프랑스는 세계대전에서 한때 그들의 조국이었던 프랑스를 위해 싸운 알제리 출신 병사들에게 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허위와 위선은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그렇게 친구를 잃은 알파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복수심에 불타 폭주하기 시작한다. 독일군 진지로 넘어가 마체테로 적군을 죽이고 그들의 손을 잘라 오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 동료 병사들은 그야말로 용감무쌍하다며 칭송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알파의 영혼을 살인이 계속될수록 피폐해져 갈 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나라 세네갈이 아니라, 자국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식민 모국 프랑스의 용병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그들이 그레이트 워라고 불리는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경쟁이 평생 자신의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던 알파와 마뎀바 같은 시골 청년들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동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알파가 네 번째 손을 가져오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동료 쇼콜라 병사들은 전쟁의 광기에 물든 알파를 디몬 혹은 소서러라고 부른다.

 

영어 번역서로 160쪽 정도 되는 다비드 디옵의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소설인 <1889, l'Attraction universelle>2012년에 발표됐다.

 

다음에는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에 대해 디비 보자.

 

 

오늘의 점심 메뉴, 존슨네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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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5-14 10: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멋진 소식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세상엔 작가와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고 많아서... 장수해야해요;;;; (홍삼을 마시며)

레삭매냐 2021-05-14 11:38   좋아요 3 | URL
도무지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
나기 위해서라도 부디 장수만세!!!

잠자냥 2021-05-14 1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정보 빠르셔~ ㅎㅎ

레삭매냐 2021-05-14 11:39   좋아요 3 | URL
인별그램을 겟하고
여기저기서 퍼온 정보로
다가 구성해 봤습니다.

아마존 킨들 맛보기로 소설
서두를 본 것은 안 비밀입네다.

청아 2021-05-14 1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핫한 뉴스를 실어다 주셨습니다.ㅋㅋ👍<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빨리 번역되면 좋겠네요!!!전쟁때 귀,코...저런 기념물?들 많이 챙겼다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을것 같아요. 으..

레삭매냐 2021-05-14 11:40   좋아요 3 | URL
급한 마음에, 아마존에서 제공
하는 맛보기를 조금 읽었는데
정말...

해외 너튜버들이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있었네요 기래.

페넬로페 2021-05-14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신선하고 핫한 뉴스~~
감사합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
넘 기대되는 작품이예요

레삭매냐 2021-05-14 13:37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얼렁 번역이 돼서
출간되었으면 바램입니다.

분량도 적으니 속히 -

새파랑 2021-05-14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정보력이네요. 전 항상 정보만 얻어가는데 ㅎㅎ 저기에 있는 작가는 아무도 모른다는데 반성합니다 ㅜ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5-14 13:38   좋아요 4 | URL
저도 에리크 뷔야르 외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작가들이랍
니다.

아,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들어는
보았군요.

세계문학은 정말 파고들수록 대단
하다는 느낌입니다.

바람돌이 2021-05-14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고급정보를 알려주시다니요. 레삭매냐님 항상 감사!!!
저는 맨부커상 수상작들은 거의 다 좋더라구요. 올해도 설레면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4 16:14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이 어느 작가에게 돌아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다음달 6월 21일 발표네요.

coolcat329 2021-05-14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이런 정보 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1-05-14 16:15   좋아요 2 | URL
부족한 정보가 도움이 되셨
다니 다행입니다.

mini74 2021-05-1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비보자. 너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5-15 08:23   좋아요 0 | URL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
위해서 토마스 뮌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디비~보도록 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5-1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정보력 갑!!
지금 번역이 안 된 작품이라도 상 받으면 바로 번역되어 나오겠죠?
올해도 완전 기대!! 행복한 기다림 주셔서 감사해용~ 언제 상 받는지는 몰랐어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5-15 08:25   좋아요 1 | URL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마이클
온다치의 <워라잇>이 여적 뭉개
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분량이 적어서 번역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외전인 인터내셔널은 봄이고,
본상은 가을에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분주한 하루였다. 지금은 SealCrazy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듣고 있다. 기타 사운드가 정말 죽인다.

 

어제는 퇴근하고 집 근처의 타잔목물공방으로 젓가락을 만들러 갔었다. 달궁 오프라인 모임이 스탑된 이래, 이런 모임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그것은 하나의 자극이자, 즐거움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녀석들을 만들고 싶다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처음으로 도전한 나의 젓가락 깎기는 나의 예상처럼 그렇게 멋들어지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 만족했다. 명상음악을 들으며, 나무를 깎는 동안 그야말로 무념무상이었다. 그러다 나무를 너무 많이 깎아 낭패를 보기도 했다. 우드카빙의 단점 중의 하나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거였다. 우리가 인생에서 하는 어떤 결정들처럼 말이다. 좀 거창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우드카빙은 우리네 인생의... 뭐 알아서 해석하시라.

 

타잔목물공방의 두목님은 두 시간을 예상하셨지만,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네. 집에 와서는 주차 자리가 없어서 고생했다. C'est la vie.

 

간만에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전리품으로 얻어온 보성녹차 막걸리는 참 맛있었다. 아 배불르다. 이제 자야지 아디오스.



이 두 권의 책들은 어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냥해 온 녀석들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우루과이의 양심 에두

아르도 갈레아노 작가는 지난 2015년에 천국

으로 가셨다고 한다. 미처 몰랐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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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2 06: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젓가락 우드카빙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곳에서 인생의 배움을 느끼시기 까지~! (알라딘 우주점은 사냥터죠. 완전 좋음^^)

레삭매냐 2021-05-12 10:19   좋아요 3 | URL
젓가락 깎기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더라구요.

젓가락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셨는데 말이죠 ㅋㅋ

어제 업어온 녀석들은 컨디션이
상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 꽝
이었습니다 에잉~ 퀄리티 판정
을 우짜 하는 것인지.

바람돌이 2021-05-12 09: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렇게 공을 들여서 젓가락을 만들면 그걸로는 절대 밥도 못먹고 반찬도 못먹고 그냥 장식용으로 둬야 할 거 같은데요. ^^ 나무를 깎아서 모양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재밌을 듯하네요. 거의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듯요. ^^

레삭매냐 2021-05-12 09:42   좋아요 3 | URL
제가 한 젓가락 셋트가 다른
동지들의 그것 중에서 가장
후졌다는 건 안 비밀입네다.

두목님의 말쌈 대로 나무탓
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나중에 라면 먹을 때 잘
이용하는 것으로 ㅋㅋㅋ

청아 2021-05-12 0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젓가락 모양이 좋은데요?^^ (써보기만 한 사람) 문진도 보이는데 깎다 만 듯한 느낌이 묘하게 눈에 들어옵니다.ㅋㅋ

레삭매냐 2021-05-12 09:52   좋아요 3 | URL
우왓, 네모진 모양의 무엇인가가
문진이었군요. 기록을 위해 기계적
으로 셔터를 누르다 보니 피사체가
뭔지도 몰랐네요 ㅋㅋㅋ

대충 깎은 것 같은데 엣지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 정도는 저도
할 수... 쿨럭.

blanca 2021-05-12 10: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젓가락이라니. 근사합니다. ^^ <시간의 목소리>는 소설인가요?

레삭매냐 2021-05-12 10:13   좋아요 3 | URL
젓가락 우습게 봤다가 어제
된통 고생했답니다.

칼 다루기가 정말 조심스러
라구요. 아이들은 1/3 정도
가 다쳤다고 하더군요.

<시간의 목소리>는 333개
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
이집입니다.

페넬로페 2021-05-12 1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든다는게 쉽지 않을것 같은데~~
젓가락을 매끈하게 잘 만드신것 같아요^^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을 차단하고 사는것 같아 아쉬워요**

레삭매냐 2021-05-12 13:54   좋아요 1 | URL
저의 첫 시도는 무지 허접했답니다.

갈수록 균형감 있게 깎는 데 그만
실패했습니다. 삐뚤빼뚤 ㅋㅋㅋ
결 따라 깎기,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고저 모여서 털고
그래야 제 맛이지효. 저희 달궁 두목
님께서 저의 저세상 드립이 그리우시
답니다.

coolcat329 2021-05-12 12: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다음 도전 작품은 무엇인가요? 요리도구들 만들면 음식할때마다 뿌듯할거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2 13:59   좋아요 1 | URL
일단 도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클라스 참가비가 7만원빵이었습니다.
디자인도 마음 대로 할 수가 있구요.

저는 찻잔을 추천했습니다. 숟가락
만들기가 생각보다 재밌다고 하시네요.

후보작으로는 버터 나이프도 뒤집개
도 있었습니다.

mini74 2021-05-12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젓가락은 도저히 못 쓸거 같아요 아까워서. ㅎ 저는 가끔 심난할땐 연필을 깎습니다. 그럼 아침에 아이가 짜증냈지요. 누가 연필 이렇게 못생기게 깎았냐고 ㅎㅎㅎ

레삭매냐 2021-05-12 15:41   좋아요 1 | URL
전 균일하게 깎는 건 아닌가봐요...
연필은 스테들러 연필깎기로 깎는
답니다. 균일하게 깎기에는 아무래
도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ㅋㅋㅋ

조그만 메모수첩 2021-05-12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 손은 생각도 못할 큰 일입니다 ㅠ 북플 통해서 매냐님 작품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젓가락 너무 예쁩니다 👏

레삭매냐 2021-05-13 09:12   좋아요 0 | URL
원타임 이벤트라 계속해서 유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평일에
시간 내기도 쉽지가 않네요.

부끄러운 조각 좋게 봐주셔서 감
사합니다.
 
댄서
콜럼 매칸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으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사람의 발인가 싶었다. 루돌프 누레예프의 삶을 그린 칼럼 매캔의 <댄서>에서도 오페라단 소녀들의 발에서 흘린 피로 하수구가 피로 물들 거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미디어나 영화에서 본 바츨라프 니진스키나 영화 <백야>에 등장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그리고 강수진 정도가 전부였다. <댄서>를 통해 전설적 발레리노 누레예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댄서>는 기이하게도 대독일전쟁, 구소련에서는 애국전쟁이라 부른다, 이 한창이던 혹한의 전쟁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같은 밀덕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겠지만, 예술 중의 예술이라는 발레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쟁으로 시작하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타타르계 무슬림 집안 출신 누레예프의 삶이 그런 전쟁 같았다는 하나의 비유일까.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아직 다음어지지 않은 원목 같은 소년 누레예프를 가르친 것은 소비에트의 소도시 우파에서 추방생활을 하던 전직 발레리나 안나와 사샤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부는 미래의 전설이 될 타타르 소년에게 발레의 기초를 가르친다. 혁명과 뒤따른 숙청의 엄혹한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재능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그에게 정식 발레를 가르치는 건 삶에 하나의 활력소가 된 게 아니었을까. 아, 서두에 파리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발레계의 스타가 된 누레예프에 대한 간략한 초상으로 시작하는 점도 기억해 둘만하다.

 

물론 누레예프의 발레 인생이 순탄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하멧은 아들 루딕이 의사나 기술자 혹은 공산당 정치위원이 되길 원했다. 그것도 어쩌면 소비에트 혁명을 경험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은 춤이 좋았고, 그 대가는 아버지의 혹독한 매질이었다. 항상 삶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등장하는 법이다. 하멧의 매질은 오히려 춤에 대한 루딕의 열정을 밀어 붙이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한 것처럼 하멧은 결국 루딕에게 레닌그라드로 가는 차비를 마련해준다.

 

<댄서>를 흥미롭게 해주는 요소 중의 하나는 메인 캐릭터인 루디 누레예프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의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그에 대한 서사다. 칼럼 매캔은 이 소설의 스타일을 빌린 위대한 발레리노의 평전의 객관성을 더 높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뇌피셜이 종종 공식적인 서사로 인정받는 이 시대에, 그런 점에서 칼럼 매캔은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선구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의 존중과 숭배를 통해 깨닫게 된 천재의 오만함이 소설을 그대로 관통한다. 물론 그런 점들은 <댄서>를 통해 그려지는 누레예프의 초상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전설에 광휘를 빛나게 만들어준다.

 

거의 야만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야성미를 자랑하는 이 타타르 남자에 대한 내러티브는 황홀하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성격이야말로 루디 누레예프를 상징하는 그 무엇일까? 그는 또한 주변인들에게 요즘 대세인 힐링의 원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파의 안나에게는 제자에게 발레를 가르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매너리즘에 빠진 안나의 딸 번역가 율리아에게는 영감을 제공한다. 발레 아카데미의 동료들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들의 발끝을 저릿저릿할 정도의 노력과 희생을 자극한다.

 

1부에서 누레예프에 대한 주변인들의 탐색전이 주를 이루었다면, 드디어 2부에서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1961년 6월 16일, 빈번하게 파리 공연 중에 게이 바를 드나든다는 첩보를 입수한 KGB는 그들의 인민예술가 누레브(Noureev:누레예프의 프랑스식 표기)를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핑계로 모스크바로 소환할 계획을 꾸민다. 이에 눈치를 챈 누레브는 문화상 앙드레 말로의 아들 지인이었던 클라라 세인트와 파리 경찰을 협력을 받아 결국 망명을 시도한다. 1부 말미에서는 그렇게 서방세계로 망명한 인민예술가를 회유해서 조국으로 끌어 들이려는 공안요원들의 가족을 동원한 공작이 펼쳐진다. 한창 서방세계와 체제 경쟁을 하던 소련에게 천재적 안무가의 정치적 망명은 그야말로 국가적 망신이 아니었던가. 누레브는 결석재판에서 결국 7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조국의 배신자라는 오명이 뒤따른다.

 

다른 예술 장르가 아이디어를 실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도구(회화와 음악)를 필요로 한다면, 발레는 태초의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가능했다. 물론 토슈즈나 발레부츠, 무용벨트 그리고 발레 복장이 필요하겠지만. 아, 연습을 위한 사방에 거울이 달린 댄스 스튜디오도 필요하겠구나. 결국 예술이란 장르는 어떤 식으로든 비용이 든다는 걸까.

 

인기의 정점을 달리던 순간, 서방세계로 망명한 누레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일약 안무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한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으로 주변인들을 서슴지 않고 놀라게 만든다. 예전에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가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닥친 명성과 불나방으로 달려드는 여성들의 물질 공세는 천재를 나락으로 인도하는 모양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파리와 런던 그리고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를 누비며 누레예프가 유명인사들의 찬사에 휩싸여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들의 공연을 보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소비에트 체제에 갇혀 있는 어머니와 누이 타마라의 빈곤한 경제적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누레예프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였을까.

 

전성기를 지나 은퇴할 무렵의 마고 폰테인(1919년생)과의 만남은 누레브 전설의 시작이었다. 자그마치 19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이십대의 야성미 넘치는 타타르 청년과 원숙미를 자랑하는 로열 발레단 출신 발레리나의 만남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가름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1964년 마고 폰테인의 남편 파나마의 국회의원이자 국제변호사, 저널리스트 출신 로베르토 아리아스(전직 대통령의 아들)가 파나마시티에서 정적에게 저격을 당해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게 됐다. 그 결과 그녀는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야 했다고 한다. 소설 <댄서>에서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자세한 설명 없이 무심하게 넘어가기를 반복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사건으로 추모 열기에 쌓인 미국에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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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예전에 미리 써둔 리뷰였다. 아마 이렇게 써두지 않았다면 난 아마 다시 <댄서>를 펼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성공의 정점에서 이 바닥의 관종이라 불릴 수 있는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특히 당시만 하더라도 금시기되던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레예프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덴마크 출신 발레리노 에릭 브룬과의 스캔들은 시작일 뿐이었다. 오로지 무대 위에 공연 밖에 몰랐던 누레예프는 밤이 되면 쾌락의 노예가 되어 에버라드를 드나들고, 노즈캔디(nose candy:코카인)를 즐기는 엽색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부분은 베네수엘라 출신 빅터 파레치의 증언 형식으로 이어진다. 구두점이 없고, 너무 자극적인 부분들이 많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 외에도 파리의 저택에서 그의 시중을 든 가정부 오딜, 그리고 솜씨 좋은 영국 출신 제화공 톰 같은 주변인들의 증언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1975년 6월 뉴욕에서 마사 그레이엄이 연출한 <루시퍼> 공연을 앞두고 방탕하기 짝이 없던 누레예프의 그것은 피크를 친다.


모든 서사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설적인 미스터 누레예프의 무대 위의 퍼포먼스들을 찾아봤다. 나같이 발레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의 퍼포먼스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보다 더 선배격인 니진스키는 무대에서 공중을 나는 동안, 잠시 쉬라고 했던가. 발끝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누레예프의 육신은 그렇게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40대를 넘긴 누레예프의 몸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1980년대를 휩쓸 AIDS로부터 누레예프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망명한 지 사반세기가 지나 드디어 소련 당국은 조국의 배신자 누레예프에게 48시간짜리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우파를 찾아왔건만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칼럼 매캔은 1991년 영국 브라이턴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앞에 배치하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으로 그야말로 풍운아 누레예프의 불꽃같았던 삶을 그린 전기소설을 끝맺는다.


내가 어떻게 해서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년 전에 이미 책은 절판된 상태였다. 아주 추운 겨울날, 중고서점에 버스를 타고 가서 책을 산 기억이 난다. 퇴근 길 버스에서 마지막 몇 장을 결국 다 읽는데 성공했다. 3년 걸려서 책을 다 읽어서 그런지 너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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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에 걸쳐서 읽은 책이어서 더 뿌듯하실거 같아요. 표지에서 절판의 냄새가 납니다^^

레삭매냐 2021-05-11 14:53   좋아요 1 | URL
넵, 2년 전에 이미 절판된
책이었답니다.

다 읽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답니다.
리뷰로 쓱싹쓱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