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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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달 출판사에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나의 고마운 인별그램...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열흘 전 쯤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주문장을 날렸다.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염통에 텐션을 불어 넣으니까. 책은 그렇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 지역의, 이른바 힐빌리들이 사는 곳이 배경이다. 작가 브리스 디제이가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이라고 했던가. 작가는 기이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 참. 어쩌면 그의 요절은 자신을 전설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어떻게 해서 달랑 생전에 6편의 단편소설을 그리고 사후에 6편 해서 모두 12편의 소설들을 남기고 지구별을 떠난 작가를 사상 최고의 작가로 꼽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의 작품을 만나 보는 수밖에.

 

나의 미쿡인 친구 브랜던이는 내가 인별그램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피드를 올렸더니, 한국어 번역에서 고 동네 다이얼렉트를 어떻게 다뤘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 원서를 만나 보지 못했으니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 특유의 다이얼렉트를 알 수 없으니 오롯하게 역자의 지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런 디테일들을 잡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쉽다고나 할까.

 

어제 열흘 걸려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니, 아련하기만 하다. 아내가 죽고 아들마저 고향을 떠난 뒤, 눈 치우는 일을 하며 사는 어느 힐빌리는 아르덴 대공세 때 프랑스에 떨궈진 공수부대원이었다고 한다. , 후방에 있던 82공수나 101공수 모두 트럭에 실려 생비트와 바스토뉴로 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밀덕답게, 책에서 작가가 다루는 서사보다 그런 디테일이 더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월남 스키 부대 같은 이야기인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바디백에 담겨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한다. 매사추세츠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노숙자 아저씨는 무려 MIT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같이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바로 눈앞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걸 보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의 친구는 해군으로 안전하게 후방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1970년대 많은 미국 청년들이 캐나다로 도망갔었다고 했었나. 다른 소설에서 징병기피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힐빌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로 가야 했나 보다. 우리에게 서울이 그런 공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위탁 가정 양부모의 학대로부터 도망갔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 했던 갑갑한 삶의 서사를 읽을 때면 왜 이리 답답하던지. 무모한 치킨 게임인가를 하다가 불구가 된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롭기만 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부평초 같은 삶의 짧은 서사가 처량하게 다가온다.

 

수렵한 다람쥐 고기가 상에 빠지면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주인공이 아무 소리 안하고 엄동설한에 소총을 들고 나가 다람쥐들과 여우에게 총질하는 장면은 왠지 짠하다. 거의 눈이 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어, 형님에게 부탁해 보지만 자신의 가족 부양하기에도 벅찬 형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농사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자신은 다람쥐의 부실한 부위로 배를 채우고, 아버지에게 기름진 부위를 양보하는 장면도 역시나 짠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 그리고 가난에서 오는 피폐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브리스 디제이는 힐빌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그런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 사는 삶의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스케치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족쇄는 대처에 나가 성공하고 싶은 피 끓는 젊음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향에 남는다고 해서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광산 노동자로, 혹은 트럭 운전사로 살면서 수렵 고기로 허기를 달래는 그런 삶 가운데 어떤 희망이 있을지 나는 궁금했다.

 

그런 무기력하고 잔잔해 보이는 삶 가운데 힐빌리들은 다소 폭력적인 유희를 추구한다. 피 비린내 풍기는 닭싸움이나 내기 판돈을 걸고 벌어지는 싸움판이 그랬다. 자신을 물 먹인 배신자를 찾아가 응징하겠다는 말이 실현될 줄 누가 알았을까. 동행한 여자 친구는 텍사스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집에 전화한다. 뉴욕에 나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고향에 뿌린 공연 티켓에 홀린 이들도 있다고 했던가.

 


단 하나의 소설집만을 남기고 별이 된 어느 힐빌리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낸 마음이 쓸쓸했다. 한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알았던 책은, 다 읽는데 열흘이 걸렸다. 내가 무언가 놓치는 게 있을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읽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밑줄 긋기와 그 부분을 읽을 때의 단상들을 메모해 두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런 책은 곁에 두고 재독해야 하나 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려나.

 

더 이상 브리스 디제이의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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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브리스 팬케이크 약력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미국 작가다. 그는 1952629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의 찰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생전에 그는 6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어틀랜틱>에 게재되었다. 사후인 1983년에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문학계의 대선배인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새무얼 베킷에 견줄 정도였다. 현재 팬케이크의 소설집은 미국 단편 소설계에서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브리스 디제이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유니언 카바이드의 직원이었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나중에 사서가 되었다. 책에 대한 브리스 디제이의 사랑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 헬렌은 브리스라는 이름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찰스턴 가제트> 스포츠란에서 골랐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성인 Pancake은 독일어 Pfannkuchen(판쿠흔)을 미국식 줄임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는 카벨 카운티의 밀튼에서 성장했는데, 밀튼 고등학교를 나왔다. 웨슬리언 칼리지를 거쳐 1974년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턴의 마셜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는 아버지가 알콜중독 합병증으로 돌아 가셨고, 3주 후에는 친한 친구 매튜 허드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으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23살의 브리스 디제이는 다음 2년간, 포크 유니언과 스톤튼 군사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브리스 디제이는 나고 자란 밀튼에서 스톤튼까지 반나절 걸리는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곳의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느 글에서는 브리스 디제이가 12편의 단편 중 9편을 이곳에서 완성하거나 시작했다고 한다.

 

교단을 떠난 뒤에는 1976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시작했다. 그의 은사 중에는 퓰리처상에 빛나는 제임스 엘런 맥퍼슨을 비롯해서 존 케이시와 피터 테일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스 디제이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77<어틀랜틱><삼엽충>을 발표했다. 이 때, 어틀랜틱의 편집자가 덱스터와 존을 헷갈려서 DJ로 잘못 기재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는 이 이니셜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1979년 그가 죽던 해에 찍은 사진이다)


브리스 디제이는 샬러츠빌에서 197949일 밤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세 편의 소설을 어틀랜틱에게 팔았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삼엽충>을 어틀랜틱에 팔고 받은 돈 750달러를 가난한 이들을 먹이라고 기부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죽음은 그의 머리 뒤편에 난 총격 자국으로 공식적으로 자살로 판단되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믿고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브리스 디제이를 자신이 읽은 최고의 작가이자 성실한 작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 오탈자 : 135쪽 6째줄 - 프랑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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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26 11: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아, 제발 쫌 두려워하삼! ㅋㅋㅋ 매냐 님 신간 너무 빨리 읽으심. ㅋㅋ 저도 이 책 사두고만 있어요. 아직 안 읽음....

레삭매냐 2021-05-26 13:31   좋아요 2 | URL
과연 힐빌리 헤밍웨이라는 별명
으로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애잔하고 뭐 그런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 진도 빼기가 쉽지 않았
습니다.

바람돌이 2021-05-26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말에 동의함요.
이 작가는 이름도 정말 특이하네요. 어떻게 하면 성이 팬케이크가 될 수 있을까? ^^ 찾아보니 제가 좋아하는 커트 보니것이 극찬했다는데 관심책으로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

레삭매냐 2021-05-26 13:33   좋아요 3 | URL
커트 보네거트 작가가 최고의 작가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하니 더더욱 아쉽더라구요.

오래 살면서 더 좋은 작품들을 내줄
것이지...

새파랑 2021-05-26 1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만 봐도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드네요. 게다가 단 하나의 소설집이라니~ 이런 책을 발굴하시는게 정말 대단하세요~~!!

레삭매냐 2021-05-26 13:36   좋아요 3 | URL
미국 독자들은 기이하게도 그렇게
요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호하
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5-26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모가 언뜻 D.H.로렌스를 생각나게 하네요. 아까운 작가가 여기 또 있네요. 12편의 이야기만을 남겨놓고 가다니...

레삭매냐 2021-05-26 14:3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그래도 책이 나온 지
38년 만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요.
 
만화 체 게바라 평전
시드 제이콥슨 외 지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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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처음으로 만난 에르네스토 게바라, 우리에게는 혁명적인 이름인 체 게바라로 더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를 만난 건 장 코르미에의 평전을 통해서였다. 한 때 신세를 지던 동생은 책의 표지에 나온 예수보다도 더 유명하다는 말에 불끈했던 기억이 난다.

 

젊은 시절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그 어렵다는 의사시험을 패스하고 의사가 된 체 게바라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위험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혁명가의 삶에 투신했다. 결정적 계기는 이십대에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도는 모터사이클 여행이 그 계기였다. 청년 게바라의 눈에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에 사는 민중들이 가난하고 억압된 삶을 살게 된 주 이유 중의 하나는 미제국주의와 매판 자본가들 때문이었다.

 

책으로 만난 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제국(諸國)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은 청년 게바라는 혁명에 투신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과테말라에 들어선 아르벤스 민주정권을 군부 쿠데타를 획책해서 전복시켜 버렸다. 모든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과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와 도전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여러나라를 돌아 멕시코에 도착한 게바라는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 쿠바에서 벌어지고 있던 무장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체 게바라를 포함한 일단의 게릴라 전사들은 어렵게 장만한 자금으로 그란마 호를 타고 조국 쿠바에 상륙해서 고난 가운데 투쟁을 이어나갔다. 지병인 천식을 앓으면서도 코만단떼 게바라는 혁명의 최전선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결국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서방세계의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에 대한 인식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강경한 공산주의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의 안마당으로 불리던 쿠바가 일단의 국유화 조치와 반자본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쿠바의 혁명지도부는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유혹하던 소련 측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반세기 가량 진행된 미국의 금수조치는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기 시작했고, 결국 쿠바 미사일 사태로 전 세계는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냉전의 격돌이 바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활약한 쿠바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 혁명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체 게바라의 존재가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점점 더 부담으로 작동했던 모양이다. 결국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맡고 있던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비밀리에 아프리카 콩고로 혁명의 무대를 옮겼다. 1965424일 체는 열댓명의 동지들과 함께 콩고에 도착했다. 문제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으로부터 해방이라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혁명전쟁을 치렀던 쿠바와 달리, 체 게바라가 마주한 콩고에서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군벌에 가까운 콩고 반군들이 이방인인 체 게바라의 지휘를 따르려고도 하지 않았고, 반군의 기강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이 성공하길 바라는 게 오히려 기적일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콩고에서의 체 게바라 행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그래픽 노블을 통해 적게나마 그의 활동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체는 당시 독립의 열기가 뜨거웠던 아프리카가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고 혁명전선의 최일선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959년 이래 체와 각별한 관계였던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체의 콩고에서의 모험이 현명하지 못한 것이며, 그가 콩고에 간다면 타잔이 될 거라고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맞아 들었다.

 

그렇게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체 게바라는 대머리 중년 사업가로 변장해서 이번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의 해방을 도모했다. 그는 여러 후보지 중에서 포코 이론에 따른 혁명거점으로 교통의 요지였던 볼리비아를 선택했다. 1964년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르네 바리엔토스는 정부군을 동원해서 1967624, 산후안 축제 전날 카티바 광산의 광부들을 학살했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1971년에는 <산후안의 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체 게바라는 1966113,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거쳐 볼리비아의 라파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남부의 발레그란데 지역으로 떠나 게릴라 투쟁을 시작했다. 체는 볼리비아에서 쿠바에서와 같은 빛나는 승리를 기대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쿠바와 달랐다. 동료전사이자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사람으로 이방인인 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지만, 볼리비아에서는 외부인이 자신들의 혁명운동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게릴라 전투요원의 모집도 여의치 않아 고작 50여명 남짓한 병사들이 전부였다.

 

요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자국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볼리비아 특수부대와 미국 CIA의 합동으로 체의 추격에 나섰다. 쿠바망명자 출신의 펠렉스 로드리게스가 CIA 소속으로 활동했고, 나치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가 체의 추격에 조언했다고 한다. 결국 체의 게릴라 부대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쿠바에서처럼 볼리비아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체의 게릴라 투쟁은 사실상 실패했다.

 


1967108,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볼리비아 특수부대에 포위된 체는 교전 끝에 부상당한 채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볼리비아 대통령 르네 바리엔테스는 재판도 없이 체의 처형을 명령했다. 39세의 한창인 나이에 비운의 혁명가는 그렇게 세상의 떠났다.

 

훗날 전직 CIA 요원은 체 게바라를 라틴 아메리카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혁명의 기운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순치화된 21세기에 체 게바라는 반항의 상징으로서의 실존은 사라지고, 티셔츠에 담긴 이미지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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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5-25 1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체의 삶을 통해서 ‘혁명‘과 ‘정치‘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체의 삶이 짧게 마무리되었기에, 그가 우리 곁에서 ‘영원한 혁명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레삭매냐 2021-05-25 17:34   좋아요 2 | URL
너무 적절하신 지적이었습니다.

혁명과 이후의 정치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체는 나머지
를 피델 카스트로에게 맡기고 자신
은 혁명에 투신했던 게 아닌가 싶
습니다.

때이른 죽음이 전설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요정이다
스노우캣(권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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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을 먹고 인근 중고서점을 찾았다. 복귀하기 전까지 짧은 책을 하나 만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웹툰만한 게 없지.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으니까. 여러 후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때 진짜 즐겨 보던 <마음의 소리>, 파괴왕의 <신과 함께> 등등. 근데 왠지 어둡거나 정치적 색깔의 웹툰들은 보고 싶지가 않다. 그전에 보던 게 있었는데, 마저 봐야지 싶으면서 선 듯 손이 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간택을 받은 책이 바로 스노우캣의 운전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너튜브에서 요즘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오마이걸의 리더 효정이 장롱면허로 새롭게 운전 도전에 나서는 영상을 봤는데... 예의 장롱면허 드라이버는 모의 운전에서 주차를 하다가 1억 상당의 물적 손해를... 뭐 그랬다고 한다. 나도 초보 시절을 생각하니 그 땐 그랬지~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그렇다고 지금 간지나는 드라이버도 아니지만.

 

나도 오랫동안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드디어 차를 끌고 도로주행에 나섰다. 동네 운전도 못하면서 첫 드라이빙 코스가 아마 파주였지. 사실 파주에 들어가서는 운전이 쉬웠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길을 몰라 고생했었다. 생각해 보니 네비게이션이 있었다고 해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마 네비를 볼 여유가 없었으리라.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로 전후 측방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스노우캣 양반의 첫 사고가 좌측의 사각지대를 못 본 탓이었지 아마. 숄더 체크가 기본이라는 건 알지만, 모두가 알 것이다. 운전 시작하면서 아는 것을 모두 액션으로 옮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스노우캣은 자신의 귀염둥이를 데리고 야무지게 주차부터 마스터했다. 과연 요정이라 부를 만하다. 나도 주행연습하면서 스승님이 지시를 듣긴 했지만, 원체 그렇게 생겨 먹어서 그런지 내 스타일 대로 하게 됐다. 스노우캣처럼 지금도 후방카메라를 보지 않고 숄더체크로 후진 주차를 하곤 한다. 습관은 자고로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어느 것도 날로 먹는 건 없다는 것도 몇 차례를 사고를 통해 배웠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동안 인사 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숱한 스크래치와 지금도 좁다란 지하주차장으로 갈 때면 등짝에 땀이 나곤 한다. 스노우캣이 종로 모처에 갔다가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에 양편에 난 숱한 스크래치들을 보고 기겁했다지. 난 일산 주엽의 그랜드마트 지하 7층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무섭더라.

 

지난 주말에는 나의 귀염둥이를 끌고 간만에 서천/장항에 다녀왔다. 180KM 남짓한 길이 가는 데만 세 시간 넘게 걸렸다. 그놈의 고질적인 서해안고속도로 평택-행담도 구간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까먹어 버렸다. 다른 길이 없으니... 원래 서해 금빛열차를 타고 가고 싶었으나 시간도 맞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기차타기를 포기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시절이라 기찻간에 뭘 먹는 것도 안된다고 하지. 그런 맛도 없이 뭔 놈의 기차를 타니 그래.

 

물 빠진 갯벌에 나가서는 황해비단고둥, 밤게, 긴게 그리고 이름 모를 녀석들을 사냥했다. 장항 맛나로 골목(정말 시골스러웠다)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는 정말 코지한 분위기의 카페 램프에 들러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실컷 수다를 떨면서 오니 180KM 운전이 금방이더라. 간만에 하는 장거리 야간운전이었는데 나를 노리는 숱한 카메라들을 제치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것도 다 짬밥이겠지, 세상에 무엇 하나 거저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뭐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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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24 15: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해안 자주 다니는데 너무 심하게 막힙니다 ㅜㅜ 운전은 짜증나셨겠지만 그래도 즐거운 서천 여행이었겠네요. 부럽네요 ^^

레삭매냐 2021-05-24 21:33   좋아요 1 | URL
내려 가면서 각오는 했었지만
아주 돌아삐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막상 가서 바다와 멋진
꽃들을 보니 맴이 사르르...
닝겡은 이렇게 간사한가 봅니다.

mini74 2021-05-24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면허가 앖어요. 편도 1시간30분까진 걸어다니지요 그외엔 대중교통. ㅎㅎ 그래서 저는 로봇을 닮은 네모나고 우람한 팔다리를 얻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24 21:34   좋아요 1 | URL
우와 1시간 반!
넵 사실 저도 뚜벅이 시절이 그립
더라구요. 인제는 노쇠하야 그렇게
못 걷습네다.

미미님의 고급진 유머에 빵빵 터져
부렀습니다.
 


뜨아, 아니 지난번에 그렇게 네이것을 욕했건만...

그렇게 내가 고대해 마지않던 치킨은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아마도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고마워요 네이것.

 

이달초 네이것에서 블챌 오늘일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면서 숱한 이들을 치킨 한 마리 값으로 꼬였었다. 그리고 작심삼일 만에 부작용이 속출하는 바람에 네이것 포인트 천원을 주고는 이벵을 종료해 버렸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그래.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포인트와 알라딘에 있던 적립금으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의 소설집을 사서 일주일 동안 잘 읽고 있다.

 

우리 미쿡 친구 브랜던이는 애팔래치아 특유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브리스 디제이의 원문을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해 했다. 사실 원문을 접해 보지 못해 비교할 수가 없는 게 아쉽다. turtletuckle로 표기했다는 역주가 없다면, 아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걸.

 

달랑 12개의 단편을 세상에 남기고 요절한 산사람의 글은 참 좋다.

어떤 부분들은 진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이 이게 아니었지. 우리의 치킨 프로젝트가 다시 다음 주부터 가동된다고 한다. , 조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작심삼일 이벵에 성공한 닝겡들만을 상대로 해서 주겠다고 한다. , 관문이 하나 있었구나. 버뜨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난 지난 21일 동안 이벵이 종료되었음에도 꾸역꾸역 일기를 쓰고 있었걸랑. 며칠 전, 중단의 위기가 있었지만 사진 한 장 올리기로 오늘일기 이어달리기에 성공했다.

 

본 프로는 아직 시작 전이다. 새로운 치킨 프로젝트는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걸 다 해내면 15,000원 준다고 한다. 사실 이미 치킨은 사다 먹었다. 내돈내산인가.

 

뭐 좋다, 치킨은 사먹었으니 그렇다면 이번에는 책을 살테다.

후보로는 흠, 다음달에 창비에서 나올 예정이라는 앨런 홀링스워스의 <스위밍풀 라이브러리> 어때? 하도 부도가 자주 나서 믿을 순 없지만.

 

이번에는 젭알, 사단내지 말고 완주하게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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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21 14: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네이것‘ 이번에는 치킨 겟 성공하세요. ㅋㅋㅋㅋ
그나저나 앨런 홀링허스트(본문에 매냐 님 이름 잘못 쓰셨삼) 신간이 또 나오는군요.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1-05-21 14:37   좋아요 4 | URL
그렇구만요, 그바게 적다 보니
늘상 그렇듯이 오타만발이...

홀링스워스는 근데 뭐랍니까 핫

넵 홀링허스트의 무려 첫 소설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 보렵니다.

바람돌이 2021-05-21 15: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치킨은 언제나 진리!!!
이번에는 꼭 성공하세요. 책은 내돈 내산하고 치킨 드세요. ^^
앨런 홀링허스트가 누군가 했더니 부커상 받았던 아름다움의 선의 작가군요. 이 책도 관심이 가던데 새 책도 역시 관심이.... (저는 작가 이름 똑바로 썼습니다. 칭찬해주세요. ^^)

레삭매냐 2021-05-21 15:58   좋아요 3 | URL
제가 또 치킨을 살항하지
않습니까 그래 ㅋㅋㅋ

앨런 홀링허스트의 책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신간은 <수영장 도서관>
이라는 제목으로 나온다고 하
네요.

전 책을 읽었는데도 이 모냥
이네요 ㅋㅋㅋ 헐배 낫습니다.

청아 2021-05-21 16: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설마 이 그림도 직접 그리신건가요?!! 저는 그렇담 그림이 가장 쇼킹이고 돌아온 이벤트가 두번째 입니다! 반짝이는 눈과 도도한 자태라니요! 프렌차이즈 이미지로 바로 쓸수있겠어요😆 글솜씨만 좋으신게 아니네요~작가이름도 쓱 담아갑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1-05-21 17:04   좋아요 3 | URL
그림은 제가 또 인터넷에서 보고
베낀 다음에 스캔 떠서 포토샵질
을 좀 해봤습니다.

앨런 홀링허스트,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작가들의 작가라
고 하는군요.

페넬로페 2021-05-21 16: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때 열받아 당장 일기쓰기 그만둔 1인입니다~~치킨은 제돈으로 사먹을 팔자인가봐요^^
저 위의 그림은 저번과는 달리 잘 먹어주기를 원하는것 같아요^^ㅎㅎ

레삭매냐 2021-05-21 17:05   좋아요 4 | URL
지난 번에 삐약이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컸습니다.

접 때 3일 채우셨으면 조건이 되실
겁니다. 다시 한 번 달리시는 것으로.

새파랑 2021-05-21 18:56   좋아요 2 | URL
아 3일만 해도 되는거면 다시 도전해봐야 겠네요 ~!!

레삭매냐 2021-05-21 20:08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3일은 아니구요...
접 때 3일 완수한 분들을
상대로 해서, 11일 동안 오늘
일기를 쓰면 15,000원 포인트
로 준다고 하네요.

새파랑 2021-05-21 20:21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이상하게 썼군요 ㅎㅎ찾아보니까 저번 이벤트때 4일을 완수 했더라구요. 이번에 다시 한번 ㅋ

붕붕툐툐 2021-05-21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왠지 이번엔 뛰어들지 않을 거 같지만, 이런 마음을 이용하는 네이버가 얄미워서라도 치킨값을 벌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페이퍼네요~ 오늘의 닭도 아주 귀엽네용!ㅎㅎ

레삭매냐 2021-05-21 20:09   좋아요 1 | URL
넵, 지난 번에 3일 달리셨다면
이번에도 11일 가뿐하게 하실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번보다는 조건을 세운
모양입니다.
 
별별역사의 몽골 제국 정복사 :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편 - 18만 유튜버 별별역사의 대유잼 콘텐츠, 이젠 만화로!
김도형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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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징기스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한 1206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 몽골은 서하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제국 건설에 나섰다. 그리고 보니 내가 저자 별별역사의 컨텐츠를 보기 시작한 게 지난 가을이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그저 전설로만 알려진 몽골의 유럽 원정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고, 호기심으로 가득했기에 연재되는 동안 내내 본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뜸하다가 요즘 다시 너튜브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출발은 오래전 즐겨 듣던 팝송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천 가물치 연못에 빠져 있다. 그리고 냥냥이가 등장하는 다른 컨텐츠의 몽골 제국 호라즘 정벌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즐겨본다.

 

몽골의 제국 건설이 왜 그렇게 독자들의 호기심과 재미 유발을 유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건 아마도 적은 수의 인원으로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신화에 바탕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왜 몽골 기병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전문적 분석이 같이 책에 실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역사전달자로 자처하는 저자에게 그런 전문적인 정보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였을까. 보다 높은 수준의 디테일이 알고 싶다면, 너튜브나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해야지 싶다.

 

그리고 보니 서구인이 쓴 수부타이에 대한 전기(리처드 A. 가브리엘)도 그전에 읽었었다. 수부타이는 대칸의 사준사구 중의 한 명으로 존재 자체로 전설적인 명장이다. 어쨌든 별별역사의 <몽골 제국 정복사>는 탕구트족의 나라 서하원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서하의 건국자는 무열황제 이원호로 기억하고 있는데, 서하는 송나라를 압박해서 해마다 막대한 세폐를 삥뜯은 그런 유목민족의 나라였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장악해서, 동서교역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12071차 서하정벌에 나선 초원에서 경기병으로 회전을 주력으로 하던 몽골족은 서하를 상대로 처음으로 공성전을 경험했다.

 

내가 보기에 징기즈 칸의 서하원정은 어쩌면 몽골의 다음 목표였던 금나라 정벌에 앞선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금나라는 몽골족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역시 유목민족으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몽골이 통일되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그런 강적으로 탈바꿈하리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금나라는 이간책으로 몽골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이용하는 전형적인 이이제이 전술이다.

 

송나라를 남쪽으로 쫓아내고 중원을 차지한 금나라의 인구는 대략 5천만 명이었다. 그런 금나라를 상대로 몽골(인구 300)이 정벌에 나선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칸이 이끄는 몽골은 그야말로 떠오르는 태양 같은 존재였고, 여진족의 금나라는 한화(漢和)디면서 유목민족으로서의 기상을 잃고 있었다. 게다가 위소왕 같은 암군이 등장하면서 국운이 쇠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봉건시대 금나라와의 전쟁은 국가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여실하게 증명한다. 금나라 지도부가 몽골의 침략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몽골 전사들은 그야말로 사지로 뛰어드는 목숨을 건 야호령 전투(10118)에도 너도나도 자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칸은 무칼리는 지명해서 금나라 군대에 대한 공격을 명령한다.

 

결국 몽골의 계속된 공격에 금나라 조정은 대도(지금의 베이징)에서 보다 방어가 용이한 남쪽의 카이펑으로 천도한다. 첫 번째 금나라 정벌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국 금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23년이 걸렸다. 그동안 초원에서는 반란의 불길이 치솟기도 했고, 서방의 무슬림 국가였던 호라즘과도 분쟁이 일어 무함마드 샤를 정벌하기 위해 대칸은 대군을 동원해서 중가리아 분지를 넘는 고난이도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몽골의 사신을 죽이는 패기를 보여주었던 무함마드 샤는 결국 수부타이와 제베의 추격전에 휘말려 수도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잃고 타지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대칸의 몽골군은 호라즘의 숱한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 때 찬란했던 이슬람 문화는 몽골군의 침략으로 한줌 재로 변해 버렸다. 한편, 사준사구의 일원이었던 수부타이와 제베는 샤를 추격하던 중에 광대한 킵차크 초원의 존재를 발견하고 대칸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샤를 추격해서 죽이라는 명령 대신 훗날 유럽정벌을 위한 초석을 닦았다고나 할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무함마드 샤의 아들 잘랄 웃 딘이 오늘날 아프간 가즈니를 거점으로 삼고 6만의 군사를 모아 몽골군에 대한 저항에 나선다. 그리고 파르완 전투에서 쿠투쿠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겨주었다. 뒤이은 바미얀성 공략전에서 대칸의 손자 무투겐이 전사하자, 대칸은 그야말로 바미얀성을 도륙하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대칸은 대제국의 건설을 보지 못하고 서하 원정 중에 병사했다. 자신을 여러 번 배신한 서하라는 국가 자체를 말살하라는 말과 금나라 정벌을 위한 계책(정금가도를 송나라에게 요청하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삼남 오고타이에게 알려주고 후사를 맡겼다. 대칸의 유언대로 오고타이를 비롯한 몽골 지도부는 서하를 문자 그래도 지도상에서 지워 버렸다. 몽골이 대제국으로 가는 마지막 걸림돌은 바로 금나라였다. 서하 이래, 금나라와의 연이은 전쟁 그리고 호라즘 정벌을 하면서 새로운 공성무기들을 도입하는데 성공한 몽골은 결국 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책을 다 보고 나서 너튜브로 별별역사의 서하와 금나라와의 전쟁을 다룬 동영상을 보니 책보다 훨씬 풍부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책으로 호기심을 촉발시키고 또 다른 매체인 너튜브를 찾게 만드는 전략은 적어도 나한테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후속편에서는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 원정에 대해서도 어떻게 역사전달을 해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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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1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튜브 잘만 활용하면 음악감상도 무료로 하고 역사 공부도 맘껏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몽골까지 들여다보시다니 레삭매냐님 역시 보폭이 넓으심요^^*

레삭매냐 2021-05-21 14:35   좋아요 1 | URL
너튜브의 세계는 증맬루...

암튼 평균 시청 시간이 30시간
이 넘는다고 하니, 일주일에
하루는 너튜브 보는 셈이더라구요.

고만 봐야지 하는데 잘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