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1313:18 포스팅]

 

5년 전에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었죠. 뭔 일로 해서 빈타운이라는 키워드로 네이버 검색을 했는데 이 사진이 뜨더라구요.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사진인거에요. 그래서 해당 사이트로 이동을 해서 보는 순간 기가 막히더군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4528일에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에서 찍은 사진인겁니다. 아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마운드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그리고 타석에는 이치로가 대결을 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3회초 시애틀의 공격에서요.

 

아주 어렵게 찍은 사진이라 절대 잊어 버릴 수가 없지요. 게다가 디카도 아닌 필카로 찍은 사진이어서 사진 정보도 없더라구요.

 

, 또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 당하네요. 네이버에 신고해서 삭제하라고 해야하나요? 어디서 퍼왔는지 궁금하네요 하도 오래 전 사진이라.

 

=====================================================================================

 

그렇습니다. 한 때 야구에 미쳐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뭐 이제는 제가 응원하던 팀이 저주를 풀고 난 뒤에는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바로 그 해에 저주를 풀었나 보네요.

 

때는 바야흐로 2004528일 금요일.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두 선수의 대결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창 필카로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까지 직접 했었지요. 필카 시절의 로망이 떠오르네요. 요즘처럼 디카로 마구잡이로 찍어 대는 게 아니라, 비싼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수전증으로 손을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샷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했답니다.

 

당시 리그를 씹어 먹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시애틀 상대로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페드로는 7이닝 8안타 4실점 그리고 홈런도 두 방이나 맞았네요. 평소의 페드로답지 않은 모습이긴 했지만 어쨌든 시애틀의 이치로와 페드로의 맞대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볼카운트 2-2에서 2루수 땅볼을 친 이치로는 1루에서 아웃, 2루 주자였던 랜디 윈은 3루까지 진루하고 다음 타자 스캇 스피지오가 희생타를 날리면서 시애틀이 2-1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어제 문득 12년 전에 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리뷰를 보고 다른 이들의 리뷰는 어떠한가 보다가 어느 브런치 쓰시는 양반이 제 리뷰에 올린 사진을 가져다 사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서 도용의 추억을 써보네요. 영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사진 두 장이 왜 이렇게 낯이 익은가 싶었더니만.

 

정말 재밌는 것 중의 하나는 21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의 주인공 판토하 대위 역할을 맡아 열연을 보여준 살바도르 델 솔라가 2년 전 페루 문화부 장관을 거쳐 페루 총리에 취임했었다는 점이죠.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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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06 10: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작가는 실패했지만 주인공역의 배우는 성공한건가요. 작가의 한을 주인공이 푼 건가요 ㅎㅎ 너무 재미있어요 ~~사진도용은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ㅠㅠ

레삭매냐 2021-08-06 15:3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작가는 대선에 실패했지만,
영화 배우는 총리까지 역임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진은 진차 오래 전 일이라 ㅋㅋ

2021-08-06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6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8-06 12: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레삭매냐님 도용의 피해를 많이 당하셨군요 ㅜㅜ짜증나실거 같아요
최소한 처 표시는 해야되는거 아닌가요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급 관심이 가네요^^

레삭매냐 2021-08-06 15:32   좋아요 4 | URL
저는 어제 정선태 교수님의 팟캐로
전모를 다시 훑게 되었답니다.

소요산 몽키하우스의 슬픈 이야기도
알게 되었구요. 국가주의에 의해 희
생된 이들이 페루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더군요.

페넬로페 2021-08-06 14: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시대에 필카로 찍을땐 필름사서 넣고 또 사진현상소에 필름 맡겨서 사진 찾아오고 그랬죠. 그때의 추억이 새륵새록 해져요. 저는 한때 박찬호선수 팬이어서 LA다저스 경기는 꼭 보곤 했는데 이치로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기억나네요. 남의 사진을 어디에서 도용했을까요? 참 그러네요 ㅠㅠ
레삭매냐님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시는건가요?

레삭매냐 2021-08-06 15:33   좋아요 6 | URL
아니 제가 브런치 작가라는 건
아니구요... 브런치 작가 하시는
분이 제 픽처를 슬쩍 하신 것
같더라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제가 뽀샵한 사진을 그대로 가져
다가 꿀꺽 시츄 *^^*

넵 그 시절에는 필름 장전하는
맛이 있었지요 :>

바람돌이 2021-08-06 17: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작가신데요. 구도가 완벽해요. 사진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확 느껴지는....
요즘은 사진같은것 가져다 쓰는거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거 다 알텐데 말입니다. 간도 크신 분이군요.
아 저는 아주 오래전에 알라딘 서재에 우리집 애들 사진 올렸는데 그게 인터넷 짤로 막 돌아다니더라는.... 그것도 우리집 큰애가 중학생 때 어디서 보고 딸 친구가 ˝야 이거 너 아니야?˝하면서 보여주더라는요. 6살때 사진 보고 알아보는 친구 눈썰미도 대단했습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저는 뭐 그냥 냅둿어요. 나쁜 말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

레삭매냐 2021-08-07 06:0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그냥 그러고 말았답니다.
그냥 왠지 칩칩하더라는.

사진 칭찬은 감사합니다.
한 때는 열심으로 찍고 그랬었는데
이젠 다 귀찮아졌습니다.

대신 책이 있으니깐요.

붕붕툐툐 2021-08-06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만능 인간을 보았나.. 하...
(책만 읽는 줄 알았더니 사진도 잘 찍고, 미국에서 야구도 보고, 부러워서 그럽니다..하하)

레삭매냐 2021-08-07 06:01   좋아요 4 | URL
필카 시절에는 증맬루 한 컷 한 컷
에 진심이었는데, 디카 시절이 되고
나서는 사진 찍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보니 대충 찍게 된 것 같습니다.

야구도 시들해지고... 낙이 없네요.

얄라알라 2021-08-07 18:56   좋아요 2 | URL
ㅎㅎㅎ툐툐님 부러워하심이 뚝뚝뚝 떨어집니다. ^^ 저도 실은 레삭매냐님께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부럽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브런치 글에 맘대로 퍼가면 ㄸㄲ이 열릴 것 같아요. 저는.

coolcat329 2021-08-07 08: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필카 시절이 있었지요. 저는 유럽 배낭여행가서 필름 7통을 찍어왔는데요...학교 사물함에 둔게 털려서 다 잃어버린 가슴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지금같으면 폰에 다 담아올 수 있는데 그 때는 그런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그래도 저는 그 시절, 스마트폰 없던 그 시절이 더 좋네요.

얄라알라 2021-08-07 18:55   좋아요 3 | URL
필카, 코닥, 현상, 현상소. 추억의 단어가 되었네요^^ 세상에 필름을 훔쳐가는 도둑도 있나봐요...두꺼운 전공책을 훔쳐가면 팔아서 현금화하려나보다 생각하는데, 필름 훔쳐서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려는 사람도 있나보네요....게다가 7통이라니^^:;;

레삭매냐 2021-08-07 19:45   좋아요 2 | URL
와우 생 필름도 아니고 다
찍은 필름을 훔쳐 가는 사람도
다 있네요...

저는 첫 유럽여행 가서 찍은
필름들을 칼라인데 흑백인 줄
알고 착각해서 현상하는 바람
에, 암튼 그랬다고 합니다.

그 시절 필름이며 스캔한 사
진들이 죄다 어디에 갔는지
찾고 싶어지네요.

에코샘인가 누군가는 여행가서
사진 찍어대기에 열중하느라
정작 그곳의 정취를 느끼지 못
했다고 다음부터는 사진 찍기를
아예 때려 치우셨다고...

coolcat329 2021-08-10 08:48   좋아요 1 | URL
책을 훔치다가 필름들어있던 봉투까지 그냥 다 가져간거 같습니다. 어딘가 버렸겠죠 ㅠㅠ

저 몇년 전 한강에서 불꽃놀이 축제 구경하는데 그 멋진 장면을 봐야하는데 사람들이 죄다 사진만 찍는거에요. 참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거 사진으로 봐봤자 직접보고 느낀 그 감동은 안 담기는데 말이에요. 😟
 




이제는 일상이 된 것처럼, 램프의 요정 신간 코너를 슬슬 문질러 보았다.

 

그랬더니만 문동에서 세문 시리즈의 199번으로 넬라 라슨이라는 작가의 <패싱>이란 책이 나왔다는 거다. 어느새 200번을 코 앞에 두고 있군 그래.

과연 어떤 책이 당당하게 200번을 차지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궁금하지 않겠지만, 참고로 100번의 모옌의 <열세 걸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끄는 건 197번과 198번이 없다는 점이었다.

197번은 존 맥스웰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두 권으로 된 시리즈란 말인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연유로 199번이 먼저 나오고 197번과 198번이 나중에 나오게 되었을까.

 

문동에서 처음 세문을 내기 시작했을 때는 양장과 무선을 같이 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양장본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 양장을 사랑하는 양장 매니아이기 때문에 무선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양장이 무선보다 한 천 원 정도 원가가 더 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양장본이 빠지기 시작한 다음부터 어쩌면 나의 문동 세문에 대한 애정이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빠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무선에는 영 정이 가지 않기 때문에, 양장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닝겡으로서는 도저히 양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앞으로는 절대 양장본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예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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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04 21: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문동 세문시리즈 양장 따로 나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네요. 말씀대로 가격차이도 얼마 안나는데 한 번 더 충격을 받았지요. 홍보가 덜 되어 흐지부지 된건 아닐까 슬픈 추리를해봅니다ㅎㅎ

레삭매냐 2021-08-04 21:27   좋아요 3 | URL
처음에 문동 세문이 출발할 적에
양장과 무선을 함께 내주어서 정말
뭇지다 싶었었는데 말이죠...

독서 인구가 줄어 들다 보니 아무
래도 제작 상의 애로사항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정적으로 돈도
더 들구!!!

이제는 모두 과거지사가 되었습죠.

mini74 2021-08-04 2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이 글 읽고 처음 알았어요. 매번 흐느적 거리는 무선판만 있는줄 ㅠㅠ

레삭매냐 2021-08-04 21:33   좋아요 2 | URL
무선... 저에게는 애증의 단어입니다.

흐느적에서 그만 빵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료수라도 물고 있었다면 바로 뿜각
이었네요.

청아 2021-08-04 21:59   좋아요 1 | URL
두분다 재밌으심요!!🤦‍♀️👍👍

얄라알라 2021-08-04 2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촉각으로도 읽는 게 분명하나봐요. 레삭매냐님의 말씀에서, 양장판 세문시리즈 제대로 한 권 만져 본 적 있나 없나 돌아봅니다^^;;; 없는 쪽으로 양심의 소리가 기웁니다^^;;;;

레삭매냐 2021-08-05 07:33   좋아요 0 | URL
하하 -
책은 촉각으로 읽는 것이다.

멋지십니다, 시적이에요.
역시나 책은 손으로 넘기는
게 쵝오지요.

독서괭 2021-08-04 2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엇 양장이 있어요?? 저도 첨 알았습니다.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1-08-05 07:33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 보니 양장이 빠진
지가 오래되었나 봅니다.

과거의 유물이 된 느낌이랄까요.

페넬로페 2021-08-04 2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장 좋아해 가격이 좀 더 높아도 양장을 샀었는데 많이 이쉽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05 07:34   좋아요 1 | URL
전 무조건 양장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니깐요.
고것은 취향의 문제지요.

cyrus 2021-08-04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도 <패싱> 번역본이 나왔던데요.. 이게 민음사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나왔으면 문학전집 사모으는 독자들은 곤란했을 거예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35   좋아요 0 | URL
이야 대단하심~

제가 넬라 라슨으로 이름을
눌러 보니 민음사 버전은
뜨질 않더라구요.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그것 참 신기하네요.

그래도 출판사 간에 아주
약간의 상도의는 있나 봅니다.

그렇게혜윰 2021-08-04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 속도가 못 따라가서...

레삭매냐 2021-08-05 07:41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독서 슬럼프인지... 쿨럭

잠자냥 2021-08-04 2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양장보다는 무선! ㅎㅎㅎ 가격이 일단 저렴 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42   좋아요 1 | URL
저도 만날 어떻게 하면 책을 싸게
살까나 하고 고민한답니다 핫하 !

바람돌이 2021-08-05 0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장보다는 무선! 양장은 어디 넣어다니기 불편할때가 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소파에 누워서 책보다가 떨어뜨리면 많이 아파요. ㅎㅎ
뭐 책이야 같이 기획들어갔고 번호 다 정해 놓았는데 예정과 달리 뒷번호인 패싱이 먼저 인쇄되었겠죠라고 속편하게 생각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43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양장책에 찍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체험담~!

구러게요. 넘버를 건너 뛰고
출간해야 할 사정이 있었나
보다 싶습니다.

chika 2021-08-05 0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패싱 전에 뭐가 나오려나,찾아봤는데 정보가...
짐작인데 정말 민음사 패싱으로인해 서둘러 먼저 인쇄들어간게 아닐까.
근데 저는 무선파예요. 벽돌책 아닌경우는 무선이 읽기 편하더라고요 ^^

레삭매냐 2021-08-05 07:45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래도 벽돌책들은 무선
으로 가다 보면 뽀개지기 쉽상이
더라구요.

제가 오래 전에 나온 파트릭 샤무와
조의 <텍사코>란 책을 하나 쟁였는
데 무선이라서 책이 그만 산산조각
이 나고 말았답니다. 양장은 그렇게
뽀사지지는 않...

미싱 넘버, 집단지성이 동원된 추리
놀이 재미집니다.

chika 2021-08-05 07:49   좋아요 1 | URL
가끔 양장도 쩌억, 갈라져버리기도하지만서도. ㅎ

근데 정말 어떤 세문이 나오려나 궁금하네요 ㅎ
 
서쪽으로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2년 전에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산 책을 구간으로 만들어서 읽었다. 모신 하미드의 <서쪽으로>.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구에서 공부하고 다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남자. 이것은 판타지인가 아니면 우리네 일상을 적나라하게 후빈 그런 르포르타주인가.

 

10년 전 독재자 알아사드를 축축하겠다고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끝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수백만 난민이 발생했다. 그렇게 발생한 난민들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다 건너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유럽 땅을 밟아 보겠다고 일엽편주 신세로 지중해 바다에 나섰다가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뿐이다. 나와는 다른 피부색과 종교 그리고 관습을 가진 이들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민 수용에 찬성하지만, 그런 내 생각에 대해 너희 집에 난민을 받아 들여 준다면 너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지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난민들에 대한 관용은 아마 거기까지였나 보다.

 

소설 <서쪽으로>의 주인공들은 내전이 벌어진 어느 곳의 남녀 사이드와 나디아다. 둘은 대학 강의실에 만나 조금씩 사랑의 싹을 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내전이 발발한다. 그냥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연애 좀 하겠다는데 극한의 폭력투쟁이 발생하다니... 조금 소심한 남자 사이드의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면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새출발을 꿈꾼다.

 

여기서부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도서의 어딘가에 이 있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아버지는 같이 떠나자는 아들과 어쩌면 미래의 며느리의 제안을 거부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죽은 아내의 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그리고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낯선 땅에 가서 난민이자 이방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말이다. 어쩌면 죽음이 난무하고, 죽은 이의 머리로 공을 차는 극악한 상황이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비교적 안전한 서방행을 택한다. 아 참, 그전에 세계 곳곳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네들의 삶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를 사이드와 나디아의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다른 곳의 안온한 일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서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그런 장치로 작동한다.

 

을 통해 사이드와 나디아가 도착한 곳은 난민들의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모신 하미드는 너무 쉽게 문을 통한 공간이동이라는 방식으로 난민들의 이주를 그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좋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긴 난민들이 어디에서 환영받는 존재였던가. 미코노스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용변을 해결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위들이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일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다음 무대는 런던이다. 런던의 빈 집들에 세계 곳곳에서 온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 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이기 시작한다. 나디아에게 가장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샤워였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물이 귀한 에티오피아에 간 서구의 선교사들이 무너지는 게 바로 샤워였다지. 하루에 물 한 양동이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부족과 결핍을 모르고 자란 이들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런던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반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폭력은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일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본고장에서 벌어지는 토끼사냥 같은 진압작전에 입안에 쓴맛이 도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이드와 나디아 같은 난민들에게는 숙명 같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인을 넘어 굳은 동지애로 뭉친 사이드와 나디아의 관계에도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 균열을 무엇으로도 봉합할 수가 없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머린이라는 곳이었다. 대서양 바다가 아닌 또다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사이드와 나디아. 원래부터 독립적이었던 나디아의 주장 대로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이드는 군말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그리워하던 사이드는 점점 종교와 영적 세계 그리고 자기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드와 나디아의 파국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오래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휴대전화라는 물건으로 이제는 모든 게 가능해진 모양이다. 이국땅에서 휴대전화로 나디아와 사이드는 각지에 흩어진 지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뉴스를 접하고, 동시에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뉴스원인 동시에 뉴스의 소비자라. 아니 어쩌면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휴대전화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수단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전기와 수도가 아니고 휴대전화가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의 어디에선가 만난 우리는 모두 시간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모든 것을 조용하게 파괴한다. 시간을 이기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의 노력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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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신간 사서 구간으로 읽는 신비한 독서나라네용~ㅎㅎㅎㅎ
마지막 따뜻한 시선 넘 좋습니당~

레삭매냐 2021-08-03 13: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뭐 그래도 2년을 넘기지 않고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려구요 ㅋㅋ

새파랑 2021-08-03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정도시면 2년 쯤이야 ㅋ 더 오래 묵힌 책들도 있으실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03 15:28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10년이 넘어가는 책들도... 쿨럭.

바람돌이 2021-08-03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2년 넘게 묵힌 책 아주 많습니다. ㅎㅎ
내전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책인가요? 난민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가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관련없다고 내버려둘수는 없는거 같아요. 자기 땅에서 강제로 내쳐져야 하는 삶들이 더 없었으면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03 15:29   좋아요 2 | URL
난민 문제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은
수작입니다.

적어 주신 말에 자극을 받아 검색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1. 2021년 세계 난민수 : 7,950만 명

2. 전 세계 인구의 1%가 난민이다.

3. 세계 난민의 50%가 어린이들이다.

4. 개발 도상국들이 85%의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5. 시리아 난민 가족의 80% 정도가 빈곤선 이하다.

6. 매 2초마다 한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책과 생각>이라는 코너를 기다렸다.

사실 신간 정보는 램프의 요정을 거의 매일 같이 문질러 대면서 기다리는 사람이라 특별한 기대도 없지만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그런 섹션이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가 보니 그 코너가 사라진다고.

그것은 마치 동네책방들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책방이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온라인서점과 택배라는 시스템이 없어서 책을 사려면 무조건 책방에 가야했다.

 

그 시절에 책방에 가면 한나절은 우스웠었지.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책방의 곳곳을 훑고 다녔다. 아마 그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헌책방에 가면 곳곳을 후비나 보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헌책방도 그리고 동네책방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헌책방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멀리 안양이나 수원에까지 나가야 하는데... 안양 도토리책방에 처음 갔을 적에는 나름 갠춘했었는데. 그곳 주인장이 헌책을 인터넷 가격을 조회해 보고 매기는 통에 쫌 그렇더라. 인천 아벨서점처럼 연필로 책가격을 정해 놓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보니 아벨서점 가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항상 그렇듯이.

 

뉴욕타임즈에서는 계속해서 책 코너를 운영하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책소개가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코너를 운영하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점점 새로운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그 경로가 없어진다는 말이니. 네이버에서도 오래 전에 책 섹션을 운영하다가 애진작에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접어 버렸지.

 

이제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희귀종이 되어 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프로젝트가 다 있다고 했지 아마. 그 시절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읽는 이들이 참 많았었는데. 이젠 신문도 책도 지하철 승객들의 손에서 사라져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쳐다본다. 재미진 웹툰에, 신박한 이야기들이 넘쳐흐르는 너튜브를 책이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지금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책 읽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대로 살아가겠지. 그런 게 세상이 아니었나.

 

뭐 그렇다고.

 


참 기다리고 있던 맥스 포터의 <래니>가 출간된 모양이다. 집에 가서 주문해면 내일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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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23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모르는 게 나오면 백과사전을 찾아봤는데 ㅎㅎ 아이들은 네이버 구글 검색. 요즘 아이들은 너튜브로도 검색을 하더라고요. 활자보다 영상이 편한 세대ㅠㅠ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흘러가지만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3 17:55   좋아요 5 | URL
제게는 그 시절에 종이접기가 정말
난관이었죠... 책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 요즘에는 아마
너튜브로 친절하게 알려 주니 그 시
절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에 점점 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7-23 17: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게 사라지는건 너무 아쉬운거 같아요 ㅜㅜ 그래도 어떻게든 좋아할만한 새로운게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7-23 17:59   좋아요 3 | URL
사라진다는 건 아쉬움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들이 그런 게 아닐까
제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핫하.

청아 2021-07-23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캐이블 가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집의 티브이가 꺼지자 어떤 사람이 책을 펼치면서 끝났던걸로 기억하는데 떠오르네요. 북플하기전에 지하철에서 책 보는 분들 발견하면 때로는 연락처라도 물어보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 귀해서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4 00:12   좋아요 2 | URL
바로 케이블 가이 엔딩 시퀀스
를 찾아 봤습니다. 예전에 분명
본 영화인데 1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텔리비전이 먹통이 되자 바로
끄고 침대 맡에 있던 책을 펼쳐
들고, 바로 미소를 띄는 장면이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ㅋㅋㅋ

그땐 그랬지...

stella.K 2021-07-27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자체가 좀 씁쓸하네요.
그냥 공익을 목적으로 해도 좋을 텐데.
책이 원래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면 말임다.
조선일보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래 전 주말이면 아예 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속으로 거의 환호하면서 봤는데.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전에 말임다.
그러고 보면 매냐님도 디지털 보단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이신가 봅니다.ㅋ

레삭매냐 2021-07-28 08:13   좋아요 1 | URL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부터 돈벌이에 치중하니 말이죠.
독서의 중요성과 비즈니스는 뭐랄까
다르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전 누가 봐도 아날로그
세대지요. 요즘에는 메타버스가 대세
라고 하여 공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요
ㅋㅋㅋ
 
보존지구 지만지 고전선집 571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나에게 7월의 작가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왠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여행가방>을 필두로 해서 도블라토프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에는 <외국 여자> 그리고 다시 지만지에서 나온 <보존지구>를 읽었다.

 

로씨야 소설들은 왠지 엄근지하다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뽀개준 작가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이 작가의 책들을 만나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비에트식 유머라고나 할까? KGB, 보드까 그리고 시베리아로 압축되는 쏘비에트 시절에 대한 통념 대신 그 동네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는 글들이다.

 

일단 <보존지구>는 그전에 읽은 <여행가방><외국 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쏘비에트 체제에서 지난 15년 아니 20년 동안 글을 썼지만 주인공 보리스 알리하노프는 한 편의 글도 발표할 수가 없었다. 왜냐구? 검열이 일상인 나라에서 반체제 서정 시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니까. 하지만 공산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돈을 필요했고다. 비록 이혼했지만 전처 타냐와 딸 마샤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는 보리스.

 

로씨야의 대문호 푸시킨 보존지구에서 보리스는 가이드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돈벌이다. 보존지구를 찾은 관광객들은 푸시킨과 관련된 별의별 질문들을 던지면서 보리스를 괴롭힌다. , 이런 게 궁금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니, 푸시킨을 그렸나 하는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둘째 아들의 부칭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알고 싶다고?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남자 동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동네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며 보리스는 가이드로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푸시킨 보존지구에 활동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따라지 인생 같다는 인상을 준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천재 대우를 받았지만 응용력은 전무하고 심지어 귀찮으면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배짱의 사나이 미트로파노프, 벽촌에서는 제법 실력 있는 작가 취급을 받았지만 대처에 나와서는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포토츠키가 대표 선수들이다.

 

무식하고, 냉소적이며 금전욕을 지녔다고 보리스는 자신을 비하한다. 재밌는 건 또 그 분석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착실하게 가이드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내는 보리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보리스 앞에 어느 날 이제 소련은 지긋지긋하니 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선언을 위해 아내 타냐가 등장한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갈등상황이 연출된다. 비록 책을 낸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보리스는 모국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작가에게는 사망 선고라며 아내의 미국 이주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타냐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리스는 그 순간, 과연 저 여자가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여자가 맞는가라는 10여년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자고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썸타는 남녀가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을 한다면, 로씨야에서는 아마 보드까 한 잔 마시고 갈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려나. 그 생각을 하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보리스, 그러니까 도블라토프의 페르소나에게는 이 순간이 그렇게 절체절명한 순간이었을 때 동방의 어느 나라 독자는 그런 그의 감정을 훔쳐보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타냐는 보존지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보리스는 그야말로 술에 쩔어 고주망태가 되어 세월을 보낸다. 게다가 보리스의 곁에는 로씨야답게 그의 고통과 음주를 함께 할 동료 주정뱅이 마르코프들이 넘쳐난다. 다른 거에는 인심이 박하지만, 서로 술 사겠다고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로씨야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 전, 제천을 찾은 대학 동기가 다른 동기가 하는 식당에 가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계산하면서 격투에 가까운 몸싸움을 했다고 하던데 그것 참.

 


어쨌든 그렇게 술독에 빠져 살던 보리스는 타냐가 딸과 함께 조국을 떠난다는 전보를 그들이 떠나기 바로 전날 수령한다. 문제는 요주의 인물이었던 그에게 KGB 소령인 벨랴예프의 소환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리스는 벨랴예프의 태클을 돌파하고, 타냐와 마샤가 조국을 떠나기 전에 레닌그라드에 도착해서 과연 그들의 이주를 막을 수 있을까.

 

이미 결과는 <여행가방><외국 여자>에서 나왔다시피 결국 도블라토프는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에게 우상은 푸시킨이었다. 그리고 그의 언어사랑은 가족애를 뛰어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던가. 쏘비에트는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된 유대인과 요주의 인물들에게 해외 이주를 허용했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 동서방의 인적 교류는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도블라토프는 마음대로 글을 쓸 수가 있어 과연 행복했을까?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쓰기보다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한 무명시절의 작가가 남긴 삶의 기록들은 참 애잔하다. 오늘 <수용소>가 도착할 예정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 결국 샀다. 며칠 전에 <보존지구>와 같이 빌린 에밀 졸라의 <쟁탈전>도 읽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독서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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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2 1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보존지구>가 도서관에 있나 보군요? 저희 동네 도서관은 도블라토프 책 1권도 없어서 제가 다 주문해 넣었습니다만.... <보존지구>는 출간 년도 5년이 이미 지난 책이라 희망도서 신청 안 받아주드라고요. ㅎㅎ 걍 제 돈 주고 사서 일으려고 중고 뜨길 기다리는 중인데 워낙 읽는 사람이 없어서 안 뜰 듯 싶습니다... 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2 11:42   좋아요 6 | URL
저도 깜딱 놀랐답니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전에 빌려다 바로 읽었지요.
하나 더 있는데 그 책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리모델링 휴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이기 찾는 이들이 없어서 중고책으로
는 거의 로또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