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1
엔도 슈사쿠 지음, 조양욱 옮김 / 포북(for book)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엔도 슈사쿠 선생의 <숙적>을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파죽지세 같은 기세로 어제 하루 동안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피곤했는지 잠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숙적>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던 일본 출신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다. 잘 알려진 것처럼, 두 사람 모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시 출신이다. 소설은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으로 죽고, 거의 통일을 이룬 노부나가의 뒤를 누가 잇느냐를 두고 맞붙은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도 역시 작년에 만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 덕분에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 소설은 술술 읽을 수가 있었다. 연쇄 독서를 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어떤 한 책을 읽어 기초를 닦게 되면 다음번에는 비슷한 시절을 그린 책을 만나게 되면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고니시 야쿠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고니시 일족은 사카이를 중심으로 한 약종상 출신의 집안이다. 그 때문에 타고난 사무라이였던 가토 도라노스케(기요마사)에게 장사치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전쟁에는 무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하시바 히데요시의 말처럼 돈과 쌀로 이기는 방법도 있는데 우직한 무장 스타일의 도라노스케는 오로지 전장에서 창을 휘둘러 이기는 법만 알았다.

 

고니시 야쿠로와 이시다 사스케(미쓰나리)가 행정관료 출신의 사무라이였다면, 도라노스케와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필두로 한 훗날 시즈가타케 칠본창으로 알려진 히데요시 휘하 근시들은 전형적인 무장으로 사사건건 고니시들과 맞부딪히게 된다.

 

비록 고마키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미카와의 너구리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간파쿠 히데요시는 20만 대군을 동원해서 규수와 오다와라의 호조 가를 잇달아 제압하고 결국 일본을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간파쿠는 이 와중에, 자신의 가신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드는데 고니시와 가토가 대표적인 선수들이었다.

 

전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한 히데요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꿈꾸었던 망상을 실현하는데 전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천축까지 정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실질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일본을 통일하기까지는 명석한 판단력과 실천력을 보여줬던 간파쿠가 자신의 외동아들 쓰루마쓰를 잃으면서 폭주하기 시작했다고 엔도 슈사쿠 작가는 분석한다.

 

한편, 규슈를 정벌하고 구마모토에는 도라노스케를 그리고 바로 이웃한 우토에는 야쿠로를 배치한 히데요시는 일본의 기리스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기리스탄 다이묘로 야마자키 전투 이래 간파쿠에게 충성을 다한 다카야마 우콘은 1587년 신앙을 지키던지 아니면 가독을 반환하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두 번 생각할 것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버렸다. 같은 자리에 있던 유키나가는 그러지 못했다.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을 앞두고, 자신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규슈의 기리스탄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정벌군을 편성한다. 사실 그에게 규슈의 골치 아픈 기리스탄 다이묘들은 버리는 돌일 뿐이었다. 당장에 자신의 근치 출신 다이묘였던 유키나가부터 자신의 뒤통수를 치지 않았던가.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써먹고 토사구팽하려는 주군의 속셈을 파악한 유키나가는 겉으로만 기리스탄 신앙을 버렸다고 선언하고, 속으로는 다카야마 우콘과 오르간티노 신부들과의 교류를 계속한다. 진짜 둘 사이의 피 튀기는 수싸움이 아닐 수 없다.

 

우토에서 일어난 토호들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유키나가는 결국 이웃 구마모토의 기요마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뿐하게 일기토로 아마쿠사 반군들을 제압한 기요마사의 막강한 실력 앞에 유키나가는 다시 한 번 좌절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될수록 서로 다른 종교를 신봉하고, 스타일과 출신이 너무 다른 두 다이묘들의 갈등은 증폭될 뿐이었다.

 

다음 무대는 조선이었다. 망상에 젖은 간파쿠 히데요시는 결국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조선 정벌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처음에는 조선 정벌군 사령관으로 눈엣가시 같은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내정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기리스탄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임명되었다. 역사적으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벌군의 출발지로 지목된 쓰시마의 도주 소 요시토모와 결탁한 유키나가는 조선과의 전쟁 대신 화의에 전력을 다한다. 왠지 여기서 기리스탄 다이묘로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하고 싶었던 걸까.

 

주군인 히데요시의 명령을 어겨 가면서, 그야말로 위험한 줄다리기에 나선 상황이 긴장을 자아낸다. 결국 1592년 조선으로부터 가도입명 요구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히데요시는 18,000명으로 구성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선봉을 맡겨 조선 침략에 나선다. 주군에게 내몰리듯 가토 기요마사 대신 선봉을 맡게 된 유키나가는 활로 무장한 조선군에게 상대적으로 우세한 철포부대를 앞장 세워 동래, 부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조령을 거쳐 한양으로 파죽지세의 진격을 시작한다.

 

조선에서도 고니시와 가토의 라이벌 관계는 계속됐다.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가토에게 전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니시는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충주 탄금대에서는 신립 장군이 이끄는 8,000명의 정예 조선 기마부대를 상대로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이 무적의 다케다 기마대를 상대했던 시타라가하라 결전을 모델로 배수진을 친 조선군을 격파한다. 고니시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던 가토는 조선 주력군에 대한 고니시의 승전을 시기한다.

 

조선의 수도 한양 입성의 공을 먼저 세우기 위해 가토는 아군마저 기만하고, 한양으로 내달린다. 결국 고니시에 앞서 격전을 기대하고 한양에 입성한 가토는 수도를 버리고 몽진에 나선 텅 빈 성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한 번, 고니시는 조선과의 화의를 시도했지만 그의 의도를 파악한 가토에 의해 고니시의 화의 공작은 무산되어 버렸다.

 

숙적 1부에서는 성공의 정점에 도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서 경쟁관계에 있었던 두 명의 다이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보통의 가신들이라면 주군 아래서 당연히 협력 관계를 도모해야 했음에도, 그들을 다룰 자신이 있었다고 판단한 히데요시는 그들간의 경쟁을 은연중에 부추겼다. 아마 자신은 그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싸움 밖에 모르는 무식한 무장 그리고 장사치라며 경멸하던 두 사무라이의 대결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거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했다.

 

대국을 보는 시각에서 고니시는 과연 가토를 능가했다. 무력으로 조선을 넘어 후견인 명나라까지 정벌한다는 것은 망상이었다. 일본의 국력이 그 정도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자국도 아닌 타국에서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보급이 약탈만으로 가능하지도 않았다. 결국 도요토미 가문의 멸문을 가져오는 대외전쟁은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았고, 고니시의 주장대로 화의를 주선해야 했다. 어쩌면 가토의 고니시에 대한 방해공작이 조선 원정군의 자멸을 초래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가 자신의 부대에게 엄한 군율을 강요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약탈전쟁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만행에 대해 저자가 모르고 기술했나 싶다. 전쟁 말기, 조선에서 오죽했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토 기요마사 만큼은 반드시 잡겠다고 처절한 울산성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가 말이다. 저자에 대해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전쟁 초기 부산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동래부사 송상현을 성주라고 저자는 표현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절, 일본에서는 성주만 잡으면 전쟁이 끝나던 것과 달리 중앙집권제였던 조선에서 지역으로 파견된 공무원에 해당하는 부사를 한 지역을 담당한 성주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일본군에 관군이 격파되기는 했지만, 각지에서 일어난 근왕군과 의병활동으로 대변된 조선의 저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시작한 전쟁이 침략군의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임진왜란이 끝나고 다시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재개될 숙명의 두 라이벌의 대결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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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1-08-21 1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임진왜란. 그걸 왜 그동안 안 궁금해했나 놀라는 순간입니다^♡^

레삭매냐 2021-08-21 11:47   좋아요 5 | URL
소설에 나오는 캐릭들이 그동안
의 수련으로 익숙하고 내용 또
한 너무 재밌어서 2권도 단박에
100쪽을 읽었네요.

오늘 중으로 다 읽을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1-08-21 12: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책의 내용보다는 <사람 레삭매냐님>이 다시 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치는 열정과 정열이 대단하신것 같아요.
매번 그렇게 느꼈지만 또 한 번 느낍니다.
저 레삭매냐님 따라 읽는다고 작년에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의 책 많이 샀는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어요.
급반성하는 인간인 제가 또 엔도 슈사쿠에 관심가지게 되었습니다. ㅠㅠ

붕붕툐툐 2021-08-21 14:06   좋아요 6 | URL
ㅋㅋㅋ레샥매냐님에 대해 느끼는 바를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플러스 페넬로페님 귀여우세요~😍

페넬로페 2021-08-21 21:07   좋아요 2 | URL
툐툐님!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레삭매냐 2021-08-21 21:27   좋아요 2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예전에 <침묵>만 읽고서 엔도
슈사쿠 작가의 나머지 책들을
찾아 보지 않았었는데 이 달
들어 마구 읽게 되었네요.

이젠 심지어 그의 동물 타령을
다룬 책까정 ㅋㅋㅋ 제가 그렇
습니다.

참 루이스 세풀베다는 사랑입
네다. 속히 읽어 주세요 ^^

coolcat329 2021-08-21 14:5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엔도 슈사쿠 작품이 많나보네요. 이런 대하역사소설도 썼군요.
근데 레삭매냐님 집중력과 열정에 저도 또 놀라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1-08-21 21:4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오늘 마저 다 읽었는데
그동안 만난 책들과는 좀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
았습니다.

뭐랄까 좀 힘을 빼고 썼
다고나 할까요.

mini74 2021-08-21 17:1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왕만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선조가 도망가서 일본이 우왕좌왕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요. 일본농민들에게 전쟁은 그저 세금 내는 곳이 바뀌는 것일뿐. 그래서 의병이 낯설었을 듯해요. 고니시 유키나가 저도 궁금해지네요 ~~

레삭매냐 2021-08-21 21:45   좋아요 2 | URL
소설에 말씀해 주신 부분
이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한양에 입성하니 멍청이 임금
선조가 튀어 버려서 가토 기요
마사와 뒤따라온 고니시 유키
나가가 망연자실해 하지요...

bookholic 2021-08-21 18: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한 후배가 추천한 책인데, 기회가 닿질 않아 읽지 못했는데, 다시 리스트에 추가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8-21 21:46   좋아요 2 | URL
제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책이 절판
되었더라구요.

어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
다는 걸 알고는 바로 빌려다
읽었답니다.

저도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캐모마일 2021-08-21 18: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었는데도 두 숙적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네요.

레삭매냐 2021-08-21 21:47   좋아요 1 | URL
읽는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이틀 만에 다 읽었네요.

가토 기요마사는 자신의 주군
도요토미를 위해서라고 했지
만 결국 주군의 가문 멸문한
도쿠가와를 도운 셈이었지요.

대국을 보는 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가운데 19번째 작품인 <패주>가 다음 주에 나온다고 한다.

내 생각에 가장 인기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부끄럽게도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집안에 숱하게 명멸해간 닝겡들을 통해 격변의 프랑스 사회를 그린 그의 작품들은 한 개도 읽어본 게 없다.

 

얼마 전에 2<쟁탈전>을 읽었으나 악명 높은 지만지 축약본의 덫에 걸려 버렸다.

아니 누구 탓을 하리오. 도서관에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빌린 내 잘못이지.

 

참고로 오늘 도서관에 가서 엔도 슈사쿠의 <숙적>을 빌려서 서문을 조금 읽었는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우리에겐 가토 기요마사로 알려진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 가토 도라노스케와 상인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1군 사령관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다 때려 치우고 이번 주말에는 이 책을 읽을란다.

 

또 삼천포 빠져 버렸구만 그래. 에밀 졸라의 <패주> 이야기를 하다 말고.

 


여기서 패주란 괴제 나폴레옹 3세가 자신의 실력도 모른 채,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폰 몰스케를 상대로 보불전쟁을 벌였다가 개박살이 난 사건을 그린 것이라는 게 나의 추정이다. 뭐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은 그동안 갈고 닦은 철도를 이용해서 신속하세 대 프랑스 전선으로 병력을 속속 보냈다. 일단 총동원령에서부터 나라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에 프로이센은 진심이었던 거지. 프로이센이 부상하기 전까지 대륙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를 외치던 프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엉터리 제정에서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고.

 

, 일단 끼니부터 때우고 다시 해야겠다. 밥 무러 갔다 와서. 알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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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에밀 졸라 / 1892년 발표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870년 여름이다. 1870년 여름, 에스파냐 왕위계승 문제로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는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발생했다. 훗날 엠스 전보 사건으로 알려졌다. 결국 프랑스는 프로이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프랑스 군부는 동부에 배치된 그랑 아미(프랑스 육군)가 적군의 수도 베를린까지 바로 쳐들어 가 승리를 거둘 것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였다. 신속하게 라인강을 도하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의 라인군을 격파하고 침공을 개시했다.

 

소설 <패주>의 주인공은 전작 <대지>에서 아내와 땅을 잃은 농부 장 마카르다. <대지>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걸 다 잃은 장 마카르는 1870년 여름, 조국을 침략한 프로이센군과 싸우기 위해 상병으로 군에 재입대한다. 이때 그의 나이 39, 이미 제2제정 초기 솔페리노 전투에도 참가했던 그는 역전노장인 셈이다. 소설의 주제는 보통의 병사가 느낀 야만적인 전쟁의 참상과 일반 시민들이 전쟁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상실 그리고 패전에 따른 경제적 곤궁함 등이다. <패주>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 상병으로 남부 라인 계곡으로 이동한 장 마카르가 소속된 프랑스 부대는 벨포르로 후퇴하고 그 다음에는 파리 그리고 랭스로 전쟁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기차로 이동했다. 그 즈음에 알자스 지방에서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에게 격파당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신속한 프로이센군의 진격 앞에 제2제정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프랑스군은 식량과 보급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후장식 대포 같은 신식 무기로 잘 무장되고 훈련받은 프로이센군을 상대해야했다. 랭스로 이동한 장 마카르가 소속된 프랑스 군은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된 동부도시 메츠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원래 계획이었던 메츠로의 진격은 돈좌되고, 벨기에 국경 부근의 뫼즈 강 계곡 인근의 스당 근처에서 멈추게 되었다. 장 마카르는 스당 부근에 사는 앙리에트의 쌍둥이 남동생 모리스 르바쇠와 처음에는 반목하지만, 전투를 치르면서 굳은 전우애로 뭉치게 된다.

 

2부에서는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스당 전투가 중심이다.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프로이센군은 스당을 철저하게 포위하고 덫에 걸린 프랑스군에게 대포로 포격을 시작한다.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의 포위를 뚫는 데 실패한다. 2부는 주인공들인 장과 모리스, 앙리에트 그리고 그녀의 회계사 출신 남편 와이스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와이스는 포병대 장교로 참전했지만, 투항하지 않고 프로이센군의 포로로 잡혀 아내의 눈앞에서 처형당한다. 또 한 명의 전쟁미망인 실뱅의 스토리 또한 기구하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맺어지지 못하고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오노레 그리고 적국의 스파이로 활동한 골리아가 등장한다. 스당 전투는 프로이센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고, 프랑스군(8만 여명)과 괴제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3부에서는 프랑스군 소속으로 프로이센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장과 모리스는 탈출을 시도한다. 장은 탈출 중에 부상을 당하고, 앙리에트의 도움으로 스당 부근에 숨어 있으면서 겨울 동안 치료를 받는다. 한편 원래 보나파르트 지지자였던 모리스는 1870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된 파리로 간다. 1871년 봄, 장은 모리스를 찾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새로 구성된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프로이센과 휴전 협정 협상을 개시한다. 굴욕적인 휴전 협정 협상으로 파리에는 민중봉기가 폭발한다. 프랑스 정부는 파리 코뮌을 진압하게 된다. 정부군의 일원이었던 장은 격렬했던 내전에서 모리스에게 치명적 부상을 입힌다. 소설은 장과 죽어가는 모리스 그리고 연락이 끊긴 남동생 모리스를 찾아 파리로 온 앙리에트가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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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발 번역으로 소설 <패주>의 대강의 줄거리들을 정리해 봤다.

 


밀덕으로 1870-1871년 보불전쟁의 전개와 1871년 파리 코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이자 지근거리에서 직접 역사적 대사건들을 목격한 에밀 졸라의 시선을 통해 만나보고 싶었다.

 

루공마카르 총서 가운데 후순위인지라 나중에 출간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출간되어 기쁠 따름이다.

 

당장 예약 주문 고고씽.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올라온 에밀 졸라의 <패주> 구성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패주>는 총 32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 라인에서 뫼즈까지


- 1870년 보불전쟁 개전 이래, 스당 전투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챕터 1 : 대재앙

챕터 2 : 공황 / 벨포르에서 랭스까지

챕터 3 : 두 전투 이야기 / 황제

챕터 4 : 행진 / 스파이

챕터 5 : 전투 대열 / 범죄의 밤

챕터 6 : 기병대 / 포의 추격

챕터 7 : 스당의 관점에서 / 실뱅의 이야기

챕터 8 : 마침내 스당 / 전투 전야

 

2: 스당 전투


- 나폴레옹 3세와 프랑스군이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어 패배했다.


챕터 1 : 바제이 공격 / 포화 속에 갇힌 황제

챕터 2 : 모리스 포화의 세례를 받다

챕터 3 : 스당 내부 : 한 밤중 나폴레옹 고통 / 두 여인들

챕터 4 : 여인의 영웅적 행위 / 바제이의 공포

챕터 5 : 기병대의 갈등 / 거대한 비용

챕터 6 : 백기 / 앰뷸런스

챕터 7 : 완패 / 은신처에서의 격투

챕터 8 : 휴전 협정 / 항복

 

3: 처절한 패배여


- 파리 포위전과 파리 코뮌에 이르는 과정들


챕터 1 : 실뱅의 질문 / 학살의 와중에

챕터 2 : 포위의 공포 / 기아 살인 질병

챕터 3 : 슬레이브 드라이버 / 평화의 가격

챕터 4 : 어두운 시절들 / 배신자 바쟁 / 전쟁의 물결

챕터 5 : 스파이 골리아 / 끔찍한 보복

챕터 6 : 정복자의 진동 / 어질어질한 길버트

챕터 7 : 파리 내부 / 포위와 코뮌 / 바리케이드

챕터 8 : 불타는 바빌론 / 씁쓸한 종말

 

*** 역시나 발번역으로 다음 주에 나올 정식 번역본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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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8-20 1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게 루공마카르19번인가요? 저 지금 테레즈 라캥 읽고 있는데 에밀 졸라 시작해보려구요.
네 저도 🍚 ~

레삭매냐 2021-08-20 13:14   좋아요 3 | URL
1892년에 나온 19번째 루공
마카르 총서라고 하네요.

물감 2021-08-20 11: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에밀 졸라라니! 문동 진짜 열일 하는군요!

레삭매냐 2021-08-20 13:14   좋아요 4 | URL
아마 루공마카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준비 중이라
고 들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1-08-20 1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유명한 작가의 작품 중 저도 읽은 게 없는 것 같아요. 많이 들어 본 작가인데도 말이죠.
읽고 나서 글 올려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8-20 13:15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읽은 게 없어서리...

원래 지난달에 작심하고 읽겠
다고 선포했으나 다른 책들과
바람이 나는 바람에 그만.

얄라알라 2021-08-20 11:59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 일상 생활하며 어휘력 딸린다는 생각 해본 적 없는데 알라딘 서재만 들어오면 간혹 국어사전 검색해본단 말이죠.....흑흑...˝패주˝ 패배한 주인공인가? 했어요....흑흑.

coolcat329 2021-08-20 13:14   좋아요 4 | URL
저는 조개관자 그 패주인가?했다가 불어사전 찾아보니 패해서 달아나는 그 패주네요 ㅋ

레삭매냐 2021-08-20 13:16   좋아요 3 | URL
아이고 유머 감각이 남다르십니다 :>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박살
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1-08-20 12: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쟁탈전> 지만지 축약본 아닌 것도 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360329

레삭매냐 2021-08-20 13:16   좋아요 2 | URL
제 불찰이었습니다.

폐관 시간이 촉박하야
정본이 있음에도 굳이
축약본을 빌려 다시 한 번
지만지를 욕하게 되는 시츄
를 초래하고야 말았던 것이
었습니다...

Falstaff 2021-08-20 12:30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이 <패주>가 제 아홉 번째 읽는 루공-마카르 총서가 될 겁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데, 인기가 없으리라 예상하셨으면... 이거 재미 없는 책이래요? 재미 없어도 읽겠지만 말입죠.

*1. 패주... 전투에 져서 도망가는 패주敗走죠? 키조개의 관자 패주貝柱를 말하는 거 아니죠?
*2. <돈> 읽으셨으면 <쟁탈전> 요약본 읽는 것이 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ㅋㅋㅋ 같은 주인공, 같은 내용이라서....

레삭매냐 2021-08-20 13:19   좋아요 2 | URL
아니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뭐랄까, 좀 대중에게는 흥미를
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같은 밀덕에게는 축복이지요.

전 <쟁탈전> 먼저 만나서 고기서
쫄딱 망한 사카르가 재기전을 펼치
는 <돈>을 잼나게 읽고 있답니다.

사카르의 여동생 시도니 부인이
또 <꿈>에 등장하는 여주의 친모
라는 점도 참... 아마 이 맛에 루공
마카르를 읽게 만들겠다는 졸라샘
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쿨럭.

청아 2021-08-20 13: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책 다 찜할래요ㅋㅋㅋㅋ <패주> 저 포즈는 제가 매일 하는 허리운동 자세인데.... 😆

coolcat329 2021-08-20 13:12   좋아요 3 | URL
하하 그러네요 😂

레삭매냐 2021-08-20 13:21   좋아요 2 | URL
와우 저런 포즈를 취하신다고요...
놀랍습니다.

다같이 <패주> 달려 BoA요.

blanca 2021-08-20 1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내용 설명이 없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에요. 에밀 졸라 책은 정말이지 다 걸작이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20 13:22   좋아요 2 | URL
네 그렇습니다.

전 지금 이 책이 서점에 깔렸다면
당장 달려가서 살 용의가 있습니
다.

위키피디아를 돌려 보려구요...

페넬로페 2021-08-20 1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 딱 한 권 읽었는데 생각보다 작가의 작품이 많더라고요. 계속 읽어야겠어요
신간 정보 감싸합니다^^

레삭매냐 2021-08-20 14:12   좋아요 3 | URL
일단 루공-마카르 총서만
딱 20권입니다.

제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이번 <패주>가 열번째네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주길.

읽고 있던 <돈>부터 마저
읽어야 하는데 시작만 하고
못 다 읽은 책들이 너무 많
네요.

mini74 2021-08-20 14: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신나셔서 지금 어깨춤 추고 계시죠 ㅎㅎ에밀졸라는 목로주점과 나나만 읽은 ㅠㅠ 근데 축약본하니 어린이용 목로주점 있어서 너무 놀란 적이 ㅎㅎㅎ 만화처럼 귀여운 캐릭터들이 금방이라도 춤출 듯이 그려진 무서운 책이었어요 ㅎㅎㅎ 즐독하세요 *^^*

레삭매냐 2021-08-20 16:41   좋아요 2 | URL
언급해 주신 어린이용 <목로주점>
궁금하네요.

그 책은 컨텐츠가 도저히 아이들
에게 맞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읽고 있던 졸라샘의 책들부터 마
무리지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신간
들이 나오니 그것 참.

뒷북소녀 2021-08-20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는데요? 패주... 언제 나오려나요.

뒷북소녀 2021-08-20 16:29   좋아요 3 | URL
찾아봤는데, 700페이지가 넘는데 1권짜리네요.
왜 분책을 안 했을까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1-08-20 16:43   좋아요 3 | URL
책은 다음주에 출간 예정이라고 하네요.

제 생각에는 아마 판매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700쪽 정도를 두 권으로 나누게
되면 권당 만원씩은 잡아 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소설 하나가 바로
2만원빵이라는 계산이잖아요.

아시다시피 울 나라 사람들이
또 책에 드는 비용은 아까워 하
는지라... 차라리 단권으로 하고
단가를 높이는 게 낫다고 판단
하지 않았나 뭐 그렇습니다.
 
바보 대산세계문학총서 159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나에게 8월은 가히 엔도 슈사쿠의 달이라고 불러도 될 듯 싶다. 이 달에만 신간 <사무라이>를 비롯해서 <깊은 강><바보>를 잇달아 읽었으니 말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전쟁과 사랑>도 대기 중이다. 이번에 재개정판으로 나온 <예수의 생애>도 궁금하다.

 

이번 주에 만난 <바보>는 젊은 날의 엔도 슈사쿠 선생의 작품이라 그런지 조금은 구성이나 주제를 보듬는 부분에서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라이><깊은 강>이 너무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프랑스 사부아 출신의 가스통 보나파르트(, 맞다 자그마치 나폴레옹의 후손이라고 한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소설의 끝까지 도대체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설픈 일본어를 구사하며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가스통이 왜 일본에 왔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아니 이렇게 불친절할 수가 있나 그래. 독자에게는 적어도 넌지시 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로는 다카모리와 도모에 히가키 남매가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 가스통은 예전에 다카모리와 펜팔한 인연으로 일본을 찾는다. 그리고 히가키 집안에서는 외국인 손님을 맞기 위해 난리법석이 벌어진다. 의사이자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였던 히가키 씨는 작고하셨고 어머니와 가정부 마짱이 미지의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해 열성적인 준비에 나선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은행에 다니는 게으름뱅이 다카모리는 외국인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일본이라는 공식화된 모습을 은근 비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일본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자신들보다 못사는 동남아 사람들이나 흑인들에게는 1도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다.

 

오빠 다카모리에게 절대지지 않고, 남들은 배우지 않는 이탈리아어 전공으로 뷰타포코 사에 취업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신세대 엘리트 여성 도모에도 만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오빠 말로는 혼기에 꽉찼다고 하는데, 그녀는 남자와의 연애나 결혼 이딴 거에 관심을 두는 대신 주식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최근 주식의 세계에 입문한 주린이로서는 눈이 번뜩 뜨이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건 아니고 다만 도모에 씨가 당대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프랑스를 출발해서 베트남 호의 사등칸에서 등장한 가스통은 남매에게 실망 그 자체였다. 일단 서구인답게 체격은 건장했으나 인물은 배우를 기대했던 도모에의 그것과 달리 말상이었다. 뭐 이건 외모비하인가. 어설픈 일본어 구사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히가키 남매에게는 기대 이하였던 모양이다.

 

그 다음에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일단 우리의 친구 가스는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다.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에 대한 소개가 등장하는데, 보면 볼수록 도모에가 바보 혹은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만들어 준다. 어때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나 말이다.

 

소설 <바보>1959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모양인데,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전후 12년 후인 1957년 경인 듯 싶다. <침묵>이나 <사무라이>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라는 공간에서 신의 존재와 그에 대한 이유를 구도자의 모습으로 구하던 엔도 슈사쿠 선생은 시간을 현대에 맞춰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주제 의식을 다시 한 번 독자에게 선사한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적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선하고 도대체 화를 내지도 않고 온갖 종류의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이 바로 가스통 보나파르트다. 일본 사람들은 발음이 어렵다며, 그의 이름도 가스라고 저들 편한 대로 부른다. 히가키 남매와 신주쿠 사건을 겪은 가스는 히가키 저택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달랑 3,000엔과 프랑스로 돌아가는 배표 한 장 그리고 일본에 와서 만난 떠돌이개 나폴레옹과 길을 나선다.

 

그리고 산야의 쪽방 같이 허술한 곳에서 당시 일본의 밑바닥 인생들과 조우한다. 오히려 어려운 이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가스를 돕기 시작한다. 먹을 것을 나누고, 오갈 데 없는 가스를 점쟁이 조테이 어르신에게 소개시켜 함께 기거하게 된다. 볼품 없고 일본어도 잘 하지 못하는 가스를 누가 환대한단 말인가? 하긴 가스는 고향 프랑스의 사부아에서도 포플러 나무라며 어린 시절 갖은 학대와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그의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리고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인간이란 바뀌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가스는 거리에서 산야의 소문난 살인 청부업자 엔도와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냉혹한 킬러로 알려진 엔도가 알고 보니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야쿠자였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면서(1950년대 일본에서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가스와 의사소통에 나선다. 그리고 엔도의 난폭한 비정함 뒤에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억울하게 원주민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사형 당한 형님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던가. 콜트 권총까지 마련한 엔도는 형님의 억울한 죽음에 관련된 세 명의 인사들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우리의 가스는 킬러의 사냥에서 경찰의 추격이나 검문을 피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첫 타겟이었던 가나이는 선량한 남자 가스의 방해질로 실패하고, 다음 목표였던 고바야시 사냥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엔도라는 불쌍한 영혼의 본질을 알게 된 가스는 엔도에게 이용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내 그를 버리지 않는다. 심지어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지고지순한 희생과 헌신의 모범 보여주었던 전임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야마가타의 어느 숲 속에서 한 바탕 느와르 액션활극을 방불케 하는 소동이 벌어진 뒤, 가스는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그가 도대체 왜 일본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그리고 보니 바로 전에 읽은 <깊은 강>에서 외국인 가스통이 등장하는 것 같던데, 그 가스통이 <바보>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바보 가스통 보나파르트가 아니었을까. 한 작가가 쓴 각기 다른 두 소설의 이런 연결점을 만들어 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좀 별루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 읽고 나서 리뷰를 하다 보니 역시 우리의 가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진가를 알아 가게 되는 도모에에 나 자신을 투영시켜 보기도 했다. 소설은 신문 연재소설답게 짧게 끊어가며 치고 나가는 흥미로운 포인트들이 분명 있었다.

 

피곤한 참에 아크 페일 에일을 한 깡통 마셨더니만 너무 졸립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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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20 0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맥주 마시고 이 늦은 시간에 리뷰 쓰는 대단한 사람

레삭매냐 2021-08-20 08:10   좋아요 4 | URL
굳이 변명을 하자면...

리뷰 쓰던 도중에 비루 생각
이 났고, 그걸 마시고 나니
급피곤해졌더라는.

예전에 술 먹고 시험공부한
답시고 밥상 끌어 안고 잔
생각이 나네요. 당연 시험은
망했습니다.

새파랑 2021-08-20 0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음주 리뷰군요 ㅋ 어떤 훌륭한 작가라도 모든 작품이 좋을수는 없더라구요. 이 책 대산세계문학 시리즈군요. ㅋ 표지만 봐도 가지고 싶어지는 😆

레삭매냐 2021-08-20 08:12   좋아요 4 | URL
제가 사랑하는 작가 중의
하나인 제임스 설터가
지적해 주신 부분에 정확
하게 들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작가의 모든 책들이
그렇게 다 좋을 수는 없죠.
공감합니다.

대산세문 표지는 짱입니다 역시나.

coolcat329 2021-08-20 11: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깊은 강의 가스통. 그 가스통이 맞는거 같아요.
참 체력이 좋으시네요. 저는 11시 넘으면 앉아있지 못하는데요.

레삭매냐 2021-08-20 14:10   좋아요 2 | URL
<깊은 강>을 다시 살펴 보고
싶은데 책을 반납해서리...

저의 저질 체력을 뭘로 보시고 ㅋㅋ

어제는 참 졸립더라구요. 그래도
왠지 리뷰는 마무리하고 싶어서리.
금방 나가 떨어졌답니다.
 


 

종로에 알라딘 중고책방이 생긴 이래, 전국적으로 알라딘 책방이 우후죽순처럼 그렇게 생겨났다.

 

나처럼 새책보다 중고책을 선호하는 책쟁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 같은 소식이었다. 초반에는 알라딘 중고책의 가격이 참 착했다. 그야말로 중고책 다운 그런 가격이었다. 그러다가 우려한 대로, 알라딘이 모든 중고책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참 그전에 반디앤루니스에서 중고책을 매입하기도 했었다. 알라딘에서 재고과다로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책들도 받아 주더라. 다만 현장에서 중고책 매입보다는 판매에 집중하다 보니, 종종 혼선을 빚기도 했다. 반디가 중고책 값도 알라딘보다 후하게 쳐주었다는 건 안 비밀. 결국 반디도 다 망하고 말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1탄이라고나 할까.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나는 수원과 안산의 알라딘에도 원정을 뛰곤 했다. 오늘 아침에 다 읽은 엔도 슈사쿠의 <바보>도 지난주에 알라딘 안산점에 가서 업어온 녀석이다.

 

알라딘은 전국의 많은 대형마트 중에 유독 홈플러스와 협업을 한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점포들이 홈플러스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홈플러스 매장이 문을 닫으면 그곳의 알라딘도 망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내 주위에서 사라진 매장이 알라딘 북수원홈플러스와 오늘 안내를 받은 안산 홈플러스였다.

 

지난주에 든든하게 쌓인 적립금을 부여안고 안산 홈플러스로 원정을 나섰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살 책들 3권만 딱 골라서 동선을 최소화했다. 요즘 안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40명대로 계속 발생해서 매장에 오래 머물고 싶는 생각도 사실 없었다. 고지나 노부오의 <포옹가족>과 엔도 슈사쿠의 <바보> 그리고 알렉산드르 헤몬의 <나의 삶이라는 책> 이렇게 세 권이었다. 그 중에 2권이나 읽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2층 식료품 매장에 들러서는 홈플러스가 자랑하는 천원짜리 단팥빵과 그롤쉬 비어 2깡통 그리고 간식거리를 쟁여서 부리나케 컴백했다.

 

알라딘 북수원홈플러스 점에서는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을 아마 만났더랬지. <석류나무 그늘 아래>도 거서 샀던가.

 

로또판매점의 할머니는 의자가 자꾸 미끄러지신다면서, 곧 다른 곳으로 이사가신다고 하셨었는데 그게 홈플러스 안산점 폐점 이야기였구나 싶다. 안산 홈플러스점의 매출이 전국에서 상위권이라고 하던데 왜 폐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거기서 일하시고, 장사하시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가시는 거지?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하시는 분들이 어렵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지난번 방문이 나의 알라딘 안산점의 마지막이었구나.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은 항상 아쉽다.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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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19 1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중고서점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서점 외에도 문닫는 각종매장들이 속출해 걱정입니다. 오늘은 신규확진자가 2천명대라는데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 요즘이네요.

레삭매냐 2021-08-19 13:28   좋아요 5 | URL
저도 오늘 코로나 확진자수 보고
경악했습니다. 다시 2천명선이란....
아이들 개학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
데 - 참 답답하네요.

중고서점은 책쟁이들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새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1-08-19 11: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안산점은 그럼 없어지나보군요. 가보지는 않았어도 거기서 온라인으로 샀던 기억이 있는데 ~~ 좋은건 오래가지 못하나봐요 ㅜㅜ

레삭매냐 2021-08-19 13:29   좋아요 5 | URL
그니깐요.

저도 전국 각지에 있는 알라딘
매장에서 2천원 배송비를 내고
책을 삽니다.

오늘도 송도에서 올 책이 하나
있네요.

coolcat329 2021-08-19 12: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종로책방 아시죠? 올 봄인가 갔다가 문닫은거 보고 울 뻔했답니다. 알라딘보다 30프로는 저렴,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많아 참 좋아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갔더니 그새 문을 닫았더군요 ㅠ

안산 알라딘을 종종 이용하셨군요. 얼마전 갔던 곳이 문을 닫는다니 기분이 이상하실거같아요.ㅠ

레삭매냐 2021-08-19 13:31   좋아요 6 | URL
악! 안돼 ~~~
종로책방은 이제는 코로나 때문
에 중단되었지만 저희 달궁 책모
임하던 곳이라 한 달에 한 번은
꼭꼭 들리던 곳이었답니다.

아예 문을 닫은 건가요? 슬픕니다.
가격도 착하고 좋은 곳이었는데...

***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올해 3월 27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아 -

coolcat329 2021-08-19 13:32   좋아요 6 | URL
모르셨군요.ㅠ 아예 없어졌답니다. ㅠㅠ
문닫기전 책 세일까지했다는 얘기듣고 더 속상했었죠.ㅠ

레삭매냐 2021-08-19 13:32   좋아요 4 | URL
아 증맬루...

종로에 가는 낙 중에 하나였는데.
그렇게 사라져 버렸군요...

coolcat329 2021-08-19 13:33   좋아요 4 | URL
네 제가 4월에 갔거든요. 바로 전달에 문을 닫았더라구요.ㅠㅜ

페넬로페 2021-08-19 12: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것 같아요. 대형마트까지 문을 닫는 것을 보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은것 같아요. 전엔 한번씩 중고서점에 들렸는데 시국이 그런지 안 간지 오래된 것 같아요.
중고서점이 활성화되어 좋고 적절한 가격에 책을 더 많이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워요^^

레삭매냐 2021-08-19 13:36   좋아요 5 | URL
알라딘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빨아 들이면서 중고 책값이
올라 버려서 속이 좀 상하네요.

이럴 줄은 알았지만 그래두...

암튼 그래도 중고책방 활성화
는 찬성합니다.

mini74 2021-08-19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도 좋아하던 동네착방 한 군데 남고 다 문 닫았어요. 모여고옆 중고서점들음 폐업수준이고 ㅠㅠ 슬퍼요. 제가 서점을 하고 싶다니까 남편이 고생하며 망하고 싶음 하라고 ㅎㅎㅎ

레삭매냐 2021-08-19 23:10   좋아요 3 | URL
저라도 지인이 서점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동네 서점에 가
보니 책방은 정말 책을 사는 곳
이 아닌 잠시 둘러 보고 사진
찍는 곳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렇더라구요. 에휴...

붕붕툐툐 2021-08-20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들 서점 없어지는 거 아쉬워 하시는 이 마당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식당 없어지면 그렇게 슬프고 아쉽더라구요.. 근데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요즘 특히 더요~
저도 알라딘 중고가가 사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1-08-20 08:09   좋아요 2 | URL
그렇죠 자주 가던 단골식당이
없어지면 좀 그렇죠.

제가 자주 가던 단골 도넛집
이 있었는데 분당으로 이사
가신다 하니 참 아쉽더라구요.

사악해져 버린 알라딘 중고판
매가!!!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최근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이후 아프간)에서 대테러 전쟁을 벌여온 미군이 철수할 계획을 외신으로 접했다. 원래 올해 911일로 계획된 미군의 철수는 탈레반 게릴라들이 아프간 전역과 수도 카불까지 석권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20년 전, 탈레반 집권했을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프간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국가수반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돈다발을 들고 이웃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자그마치 1조 달러의 전비를 아프간에 투입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이 나 버렸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10년 전에 제거하는 것 말고는 아프간에 건실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주말에 장피에르 필리유와 다비드 베가 협업해서 제작된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를 보면서 미국 건국 이래 중동에 개입해온 그동안 미처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다. 미국이 세워진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부터 미국은 트리폴리의 이슬람 해적들과 무력투쟁을 벌여왔다. 미국의 군함들이 이슬람 해적들에게 나포되고 미해군 소속 장병들이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중동에서 미국의 최우선 파트너가 된 와하비왕조의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를 시작으로 해서 1950년대 이란의 민족주의 모사데그 정권의 전복활동에 미국 CIA가 개입했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루홀라 호메이니가 모사데그 시절부터 활동했다는 점도 새로 알게 됐다. 중동의 석유자원은 미국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중동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의 후세인을 부추겨서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를 지원했다. 그렇게 미국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괴물인 후세인이 미국에 반기를 들자 이번에는 걸프 워라는 이름으로 그를 응징했다.

 

아프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는 무자헤딘 전사들을 자유의 전사라고 추켜올리며 스팅어 미사일 같은 최신 군사장비들을 대량으로 제공했다.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서 무자헤딘 전사들에게 소련의 정규군을 상대할 게릴라 전술을 훈련시켜 준 것도 바로 미군이었다. 무자헤딘은 1994년 아프간에 등장한 탈레반의 전신이었다.

 

소련이 철수하고 나서는 탈레반을 상대로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양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탈레반 정권이 무시하자, 미국이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정권은 미국이 아프간에 공습으로 전쟁을 시작한 지 3개월만에 수도 카불을 버리고 패주해 버렸다. 아프간에 파견된 미군에게 20세기 초 그레이트 워에서 영국군과 싸우고 냉전 시절 미국와 양강이었던 소련을 패퇴시킨 아프간 게릴라들은 장장 20년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다시 승리했다. 놀랍지 않은가.

 

미국과의 정규전에서 혹독한 패배를 경험한 탈레반은 아프간의 다수를 차지하는 파슈툰족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 그리고 파키스탄의 지원이라는 3박자를 바탕으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그렇게 빨리 아프간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전략적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종교와 인종이 다른 미군을 아프간 사람들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을 도와주러 온 우방이 아닌 침략자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미군 역시 예전의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간선도로와 도시들을 잇는 거점 확보에만 주력했지, 사실상 아프간의 바닥 민심을 대변하는 부족주의 정신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가 미국의 아프간에서의 비참한 패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의 철수도 철수지만, 구 아프간 정부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냉정하게 짚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가수반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앞장서서 타국으로 도주했다는 점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가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아프간 민중들의 생명과 자산을 지키기보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 수호에 열심이었다. 이런 정부가 무너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영국의 그레이트 워 이래 아프간이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이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대사관을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천명했다. 아프간은 미국이 비슷한 시기에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라크와는 달리 석유라는 자원이 전무했다. 한 마디로 말해 먹을 게 없는 그런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전비를 들이고서 도대체 미국이 얻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바이든은 물론이고 전임자였던 트럼프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은 이미 결정되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결정하고 바이든이 시행한 철군 결정에 대해 46년 사이공 철수를 운운하는 공화당의 비판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제국(諸國)에 민주주의 이식이란 정말 요원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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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8-17 11:2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수한 메커니즘이 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들어 있는것 같아요. 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될지 안봐도 뻔합니다. 1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은데는 단지 미국이 아프간만을 위해서는 아닌것 같아요 ㅠㅠ
미군도 많은 사상자가 있기에 또한 안타깝습니다. 오늘 뉴스에는 중국과 러시아는 탈레반 점령을 반긴다고 하네요.
은근히 돈을 대서 도와주었고요.
여전히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는 아수라장인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1:50   좋아요 7 | URL
적절하신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강의 쟁탈부터 시작해서 온갖 메커
니즘이 작동하는 곳이 바로 21세기
아프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발을 빼는 미국의 모습이 참...

아프간 사람들이 제일 불쌍한 것 같
습니다.

그래도 여성부 장관은 끝까지 남아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하던데 멋짐
폭발...

단발머리 2021-08-17 11:41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미군 철수 후 수도 점령되자마자 비행기에 몰려가는 사람들 보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정치가 안정이 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제한되는지....
돈 가방 들고 헬기타고 도망갈 수 있는 대통령이 아닌 경우에 그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이 얼마나 클까 싶어요. 탈레반에 무기 공급했던 미국이 철수한다고 이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제일 안 된건 탈레반 지배하에 들어간 아프칸 국민들이죠 ㅠㅠㅠ

레삭매냐 2021-08-17 13:09   좋아요 4 | URL
미군에게 협력하던 이들은 탈레반
이 정권을 잡는 순간, 바로 숙청
대상이라 기를 쓰고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생각도 보통의 아프간 사람들
이 제일 안된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8-17 11: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부정부패 무능한 정부니... 아프간 국민들만 너무 불쌍합니다.
석유도 없는 척박한 아프간 땅,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안하고 사리사욕만 챙기는 정부, 월급만 챙기는 유령군인들 ..미국도 자국 군인 죽여가며 돈 버리고 떠나는게 답이다 생각했겠죠.
대통령이 도망치다니...
답답하고 저 지역은 참 말도 안 나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3:10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미국이 사용한 전비
의 상당 부분이 유령 군인들에게
흘러 갔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무력하게 탈레반에게 무
너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겨울호랑이 2021-08-17 13: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점령으로 꺼져가던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탄력을 받게 될 듯 합니다. 2019년 중국 허베이성 최대 관음상 폭파 모습에서 2001년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 폭파가 연상되었다면 지나친 연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의 발빠른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접근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후 발빠르게 빠져나간 무책임한 미국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의 압제도 아프간 민중들에겐 원망의 대상일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7:24   좋아요 3 | URL
아프간의 바미얀 석불이 파괴된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로군요.

츠바이크처럼 저도 어떤 종류의
광신에도 반대합니다.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에 점점 파국
으로 치닫는 아프간 사태가 걱정이
되네요.

초딩 2021-08-17 1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명시선 잘 보았습니다~ 너무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보면서도 결국 미국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민주주의니 세계평화니 이런 기치를 걸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자헤딘과 탈레반처럼 이용한 후에는 팽하는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사례도 미국은 참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17:26   좋아요 2 | URL
디모크라시와 월드 피스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과 맞아 떨어질 때만 작동
하는 원리일 뿐입니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 그리고 칠레의 아옌데
정권 모두 미국의 국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는 가차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입해서
전복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까요.

무자헤딘-탈레반 역시 마찬가지죠.

그레이스 2021-08-17 14: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계속해서 분쟁지역을 만들어야 이익을 얻는 나라들과 집단이 있기 때문인거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승하는 것은 우리 역시 그 역학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겠죠?!

레삭매냐 2021-08-17 17:29   좋아요 3 | URL
마이클 무어의 패런하이트 911인가
에서 미국의 군수회사의 지도자들이
돈이 얼마나 들던 미국 정부가 지불
할 거라는 말에 충격을 먹었던 기억
이 납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돈벌이의 수단일
따름이죠.

그레이스 2021-08-18 19:11   좋아요 1 | URL
미국은 철수하고, 무기는 다 놓고 갔으니 탈레반이 중국을 저지하게 하고, 여성인권이나 그밖에 지금 정권이 내놓고 있는 사항과 관련된 물밑 협상이 있었겠죠?!

얄라알라 2021-08-1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자극적인 짤과 제목의 신문기사말고 이런 깊이있고 고민이 담긴 글로 이번.사태진행을 설명해주시니.기사 여러편 읽은 것보다 더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7 17:30   좋아요 4 | URL
어느 이상한 언론에서 또 46년 전
사이공 철수 타령을 해대서 졸문
을 써보게 되었네요...

읽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17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글이네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너무 유익한 정보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17 17:31   좋아요 3 | URL
보다 전문적으로 다룬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냥 마침 중동
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시의적절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han22598 2021-08-18 0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저에게는 전쟁터로만 인식되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회상의 글을 보고...한 사람의 소중한 아름다운 삶을 터전을 망쳐버린 건 누구인지.. 망쳐버린 자들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질책할 대상이 명확하기라도 하면 탓이라고 하겠는데, 실체가 명확하지 않아요. 참. 답답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8 10:05   좋아요 1 | URL
정말 오래 전에 칼레드 호세이니
의 소설들이 인기를 끈 적이 있죠.

그런데 정작 책은 사두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네요.

아무래도 이번에 정부를 내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지도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싶습니
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 내부의
고질적인 분열도 문제구요...

말씀해 주신 대로 총체적 난국이
라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네요.

다락방 2021-08-18 0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최근의 뉴스를 보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었고, 언급하신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글 써주셔서 좋네요.

레삭매냐 2021-08-18 10:07   좋아요 1 | URL
어제 저녁에도 아프간 뉴스가
계속해서 텔리비전에서 나오더라구요.

160명 정도 타는 미국 수송기에
640명의 아프간 난민이 타고 있는
장면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