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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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팟캐스트 황금시대 책다방을 통해 프리모 레비라는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를 알게 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황정은 작가의 열렬한 레비 사랑 덕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첫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를 샀지만 미처 읽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출간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먼저 읽게 됐다. 작가 작품세계의 시원을 밝히는 차원에서라면 전작부터 읽었어야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마지막 작품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레비의 책 제목에서 최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상황도 그렇지만, 구조된 자 역시 가라앉은 자의 비극과 고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 드러난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어쨌든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그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제목 한 번 그럴싸하게 뽑았구나 싶었지만, 영어제목을 보니 똑 같기에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이탈리아 출신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인류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대학살의 기록, 홀로코스트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한다.

 

그가 들려주는 라거(강제수용소)의 모습은 다시 들어도 비현실적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스트들이 유대인 절멸계획에 따라 게르만 민족 특유의 효율성을 발휘해서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이 인류사의 비극이다. 모두 8개의 이루어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레비의 초기작 <이것이 인간인가>의 현재진행형의 모습이다. 아우슈비츠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마지막 장의 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들어난다. 하긴 우리 이웃나라는 자신의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저질러진 각종 전쟁범죄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레비가 자신의 작품에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점 중의 하나는 홀로코스트의 본질이 세대를 거치면서 희석화되고,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역사의 평가를 시간에 맡기자는 말이야말로 당대의 가장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시간의 경과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의적 왜곡과 망각으로 사건 자체를 희석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생각은 역시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화학자에서 문필가 혹은 작가로 전업에 성공한 프리모 레비의 글에는 라거에서의 체험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가 끝나고, 후대에 제기된 왜 유대인들은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해외로 도망가지 않았는가, 또 라거에서 탈출하지 못했나 하는 이견에 대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최대한 성실한 답변을 시도한다. 비록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화가 많이 촉진되긴 했지만, 여전히 유럽사회는 농촌사회의 전형이었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SS무장친위대가 지키는 라거에서 조직적인 탈출이나 저항을 도모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였고, 실패했을 경우 뒤따르는 보복조치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홀로코스트 시절 대다수 독일인들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은 과연 그들은 당시 진행 중이던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그리고 대학살에 침묵한 것이 궁극적으로 나치스트의 행위에 찬동하는 결과를 초래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설사 당시에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훗날 통절한 반성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독일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홀로코스트에 직접 수행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양심의 면죄부를 받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해본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소설 등의 미디어를 접하면서 어려서 받은 충격은 이제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직접 홀로코스트를 체험한 당사자가 남긴 증언은 여전히 파괴력을 가진다. 새로 라거에 도착한 신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길들이는 야만적 행위로부터 시작해서, 독일식 엄격함의 상징인 침대의 모서리 각잡기와 끝도 이어지는 점호, 배고픔보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갈증 그리고 마침내 물을 발견했지만 모든 동료와 나눌 수 없었던 그런 상황에 대한 작가의 변론 등이 인상적이었다.

 

라거의 가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고 비겁해지는 모습에 대한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라거의 공식 언어인 독일어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소중한 양식을 제공하면서 독일어를 배우기도 했다. 물론 라거에서 사용되는 독일어가 괴테나 횔덜린 같은 대문호가 남긴 그것과 많은 괴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 과학도로서의 예리함도 빠지지 않는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무척이나 더딘 속도로 읽었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노라는 프리모 레비의 증언처럼 인류의 비극을 읽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프리모 레비의 냉정하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술 방식은 탁월하다. 그렇게 때문에 희생자로서 당연한 분노조차도 절제하면서 남긴 그의 증언이 여전히 시대를 초월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전에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읽어서 가해자의 목표였던 유대인 절멸계획의 밑그림을 파악해서 그런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홀로코스트의 기록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됐다. 자, 이제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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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여자 - 최민석 연애소설
최민석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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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득 요즘 즐겨 읽고 있는 최민석 작가가 낸 책들의 출판사를 꼼꼼히 살펴보니 다 다르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보통 작가로 데뷔하고 나면 한 출판사에서 줄곧 책을 내지 않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어쨌든 <능력자>에서 자신의 페르소나인 ‘작가’를 투입해서 서사를 풀어 나가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이번 연애소설의 주인공도 작가다. 후기에선가 직접 말한 것처럼, <능력자>나 최근에 출간된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와는 다른 좀 더 진중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본인이 직접 밝혔듯이 <쿨한 여자>는 단편을 확장한 요즘 유행인 경장편 분량의 연애소설이다.

 

해마다 책을 한권씩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는 최민석 작가의 연애소설은 확실히 전작 <능력자>와 다른 궤도를 지닌다. 전작에서 얼토당토 않은 캐릭터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했다면, 이별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전혀 그러지 못한 소설지망가 경도진의 그녀에 대한 미련이 중심에 서있다. 여느 평범한 연애소설처럼 출발은 비슷하다. 7살 어리지만 재기발랄하고, 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누구보다 예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의 고백에 힘입어 예전의 추억들을 더듬기 시작한다.

 

작가의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내러티브에 집중하게 하기보다 그들도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났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추억을 되살리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야말로 작가가 진짜 쓰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선언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그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랑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던 남자의 미련 혹은 후회가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향처럼 그렇게 무시로 감상을 자극한다.

 

역시나 문학적 클리셰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방적 통고와 함께 떠난 그녀와의 재회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 누가 쿨한 여자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그렇게 주인공과 헤어지고 난 뒤에 사랑을 찾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선 그녀가 스스로 쿨하단다. 그러니 자신의 주장과 현실의 괴리가 뒤따라 올 수밖에.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한발짝 뒤에서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그만큼 피곤한 스타일도 없을 것 같다. 이런 의미 없는 훈수야말로 연애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하긴 또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계속해서 자신과 자신을 비판하는 문우(文友)가 의미 없는 소설/글쓰는 글쟁이라고 쉴 새 없이 방어기제를 돌린다.

 

모름지기 문학을 하는 이들을 이래야 한다는 사명감에 제주도 강정길에서 만난 시인과의 인연이 추가되면서 또 다른 잠재적이면서, 점진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실재적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주인공과 그녀 사이에 내던져진다. 도대체 헤어진 그녀가 언제 어디서 튀어 나와 고요한 주인공 삶에 파문을 던질지 궁금해진다. 마치 장기판에서 다음 수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장기꾼의 심정이라고 할까.

 

제주도가 전초전이었다면, 다음 공간적 배경은 나가사키다. 역시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나가사키에 갔다면 짬뽕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운명이라는 개연성을 투입해서 결국 나가사키행 비행기에서 그녀와 다시 해후한 나는 그녀와 만날 생각에 곁에 있는 시인에게 잠별이니 점별이라 부르면서 이별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만나 무얼 해보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보다 몸이 가는 대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런 대책 없음이라고나 할까. 시인과 같이 짬뽕을 먹으면서 고작 십여분 정도 되는 그런 시간에 자신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나가사키 짬뽕에 담긴 각종 해물과 기타 식재료에 대한 찬란한 비유를 통해 ‘동물성’ 짙은 페이소스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주인공의 부질없는 떡타령에 뒤이은 빠블로 교수님의 발길질 세례는 예견된 분노의 발로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의미를 찾는다. 사랑을 하면서도 너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묻는다. 그런데 최민석 작가는 너무나 현실적인 연애소설 <쿨한 여자>(라고 쓰고, 쿨하지 못한 여자라고 읽는다)에서 그런 의미타령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소설의 곳곳에서 훈수를 던진다. 소설 속의 관계는 어느 지향점을 향해 가지 못하고, 자신이 너무나 사랑한 그녀 때문에 어떤 글도 쓰지 못한다고 핑계를 능수능란하게 제조한 경도진의 삶처럼 그렇게 부유할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더 솔직하게 이렇게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모든 게 너에게 무슨 의미인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탈출구로 시간은 고스란히 흘러간다는 고전적 수법을 채용한다. 하긴 이것보다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현실적 대답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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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콩고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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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 배상민 작가의 <조공원정대>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동안 눈으로 찜해 두었던 <콩고, 콩고>를 사러 달려갔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책을 다 읽었다. 확실히 배상민 작가의 글은 재밌다. 그동안 최제훈 작가를 최고의 신진 작가로 꼽았었는데, 이제 그 반열에 한 명을 추가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뭐랄까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배상민 작가의 첫 소설인 <콩고, 콩고>는 그런 나의 기대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소설 <콩고, 콩고>는 기본적으로 두 명의 바보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존재했던 달리기와 버티기에 능한 바보 담과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바보 부, 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배상민 작가는 <조공원정대>에 나오는 <아담의 배꼽>에서처럼 기존의 전설/성경에서 모티브를 채용해서 새로운 진화론에 입각한  창세신화에 도전한다. 척 봐도 아담과 이브(이부)가 떠오르지 않는가? 유사 이래 새로울 게 없다는 이집트 피라미드 경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서기 일만년에 8천년 전에 존재했던 아종 인류를 추적하는 발굴단장에게 역사의 베일을 벗기는 임무를 부여한다. 그렇게 독자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해서 우리의 주인공들과 만나게 된다.

 

아이큐 78의 소년 담은 모자라는 지적 능력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산한 삶 가운데 내던져진다. 그리고 담의 구원자로서 사창가 출신(작가의 고의적 선택이리라) 부가 등장해서, 수확(도둑질)의 즐거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그 둘의 만남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지적 능력의 부재를 가진 소년이 태생을 알 수 없는 비천한 출신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소녀를 만나는 건 서사 전개를 위한 필연이다.

 

배상민 작가는 현대판 신화 다시쓰기에 “범죄의 재구성”과 담의 플래시백이 이어지는 정신병원 장면을 삽입한다. 전자는 담과 부가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후자는 인간 세상에 부적응한 아종 인류의 종착지로서 작동한다. 다만, 정신병원 부분은 기존의 작품들에서 많이 차용된 일종의 문학적 클리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부의 지휘 아래, 담의 세상에 대한 투쟁은 계속된다. 부는 애초부터 자신이 현생 인류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 궁리에 전념한다. 그러기 위해 수시로 ‘수확’을 기획하고, 행복 바이러스를 만들어 현생 인류를 멸종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싶어한다. 그녀의 기획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도 담은 가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부는 모든 것을 초월한 초인(위버멘쉬)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8천 년이 지난 다음에는 그녀 역시 삶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귀결시키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맞서 그런 경쟁이 없이도 충분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왠지 공허하게 다가온다. 획일화된 행복과 가치의 추구야말로 야만의 시대에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의 배식 경쟁의 위선과 허구를 깨달은 담 일당은 비로소 권력에 대한 저항을 개시한다. 부가 만들어낸 행복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할 조짐이 보이자, 로제타스톤이라 불리는 비밀결사 조직은 자신들만 누려야 할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행복 바이러스를 디지털 마약이라 규정하고 철저하게 금지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칙들에 포위된 우리네 삶에 대한 숱한 질문들을 배상민 작가는 담과 부의 종횡무진 활약상에 뭉뚱그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행복하냐고.

 

처음 제목만 보고 황당무계한 아프리카 탐험이 아닐까 하는 나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겨나갔다. 대신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에 멋진 SF 인류 진화론으로 버무려진 소설과 만나게 됐다. 중반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의 힘이 좀 달리긴 했지만, <콩고, 콩고>가 배상민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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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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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하지만, <조공원정대>의 삼총사처럼 걸그룹에게 조공을 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현실세계에 존재하지만, 굳이 내가 즐기는 하나의 판타지를 현실계까지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까. 배상민 작가의 글은 바로 현실과 이상 혹은 꿈이 부딪히는 바로 그 지점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모두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배상민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아주 유쾌하게 읽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현실을 유머스럽게 풀어낸 작가의 서사 창조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만큼 가볍지 않고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가 구사하는 유머는 독자에게 바치는 작은 “조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 조공을 밑천 삼아 작가는 한꺼풀 뒤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서사를 마음껏 풀어낸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우리의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지한 그런 무언가가 존재하기 마련이가 보다. 그저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청년들에게 실업의 위기는 실존적이다. 자기 실업의 원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악화 때문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갑자기 임신한 여자친구와의 새출발을 앞두고 무언가 추억이 될만한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소녀시대를 직접 만나 조공을 드려보자는 결의를 다지고 말하지 않고도 ‘통’하는 친구들과 작당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들을 받아들인 도시는 절대 녹록치 않다. 결국 생계와 조공을 위한 선물 마련을 위해 토니, 제리 그리고 티파니라는 이름으로 삼총사는 도시 변두리에 곁가지를 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이유마저 상실한다. 뿌리를 상실한 그들은 아마 이끼처럼 그렇게 도시의 지표에 기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또 다른 경제위기의 여파로 획일화된 행복 추구와 가치판단이 판치는 동일한 세계에서 나는 야생마 같은 할리를 꿈꾼다.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누군가 사전에 재단한 대로 S대학교, S전자 그리고 S라인을 꿈꾸는 삶은 얼마나 추레한가. 시간이 갈수록 고착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실업, 이별 그리고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경쟁에 내몰린 우리의 초상이 배상민 작가의 증언을 따라 구술된다.

 

이름 없는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번듯한 직장에 둥지를 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유글레나>에서는 ‘소라’와의 불가피한 이별을 통해 구체화시킨다. 직장과 돈벌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육아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삼포시대의 비애를 유감없이 시전한다.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수치화해서 알려주는 유사 여자친구 소라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의 엄습 앞에 무장해제당한 화자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상민 작가판 창세 버전 <아담의 배꼽>은 전 인류의 필독서라 할만한 성경의 첫 번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인간의 첫 번째 사회 조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카인의 눈물겨운 몸부림은 루빌치기라는 확대재생산을 통한 부의 축적이 자신의 꿈, 아버지에 따르면 인간이 아닌 네피림 출신의 나아마를 얻고 신을 만들어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아버지/신 되기에 도전한다. 자기만의 신화를 창조하고 싶은 창세 이래 DNA를 통해 유전된 수컷이 가진 꿈의 서술이다. 배상민 작가의 다시 쓰기는 창조신화뿐 아니라 현대판 영웅신화인 슈퍼맨도 아우른다. 다만 이 슈퍼맨은 우리가 늘상 봐온 그런 슈퍼맨이 아니라 대가를 받고 사람들을 돕는 이익창출형 슈퍼 히어로 되시겠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화된 경제위기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도 피해갈 수 없다는 작가 나름의 분석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인류애를 버린 유사영웅에게 적이 생기는 건 필연적 귀결이리라.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은 바로 <미운 고릴라 새끼>다. 아버지 되기가 그 어느 시절보다 난망해진 시대에 자유연애를 즐기는 콩고의 보노보 원숭이 타령을 하며 룸싸롱에서 계란 프라이 마케팅으로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던 나는 두목의 여자를 건드렸다가 황천길에 나설 뻔한다. 부적절한 매력 때문에 넘보지 말아야할 터부를 깨다가 죽을 뻔한 일도 그렇고, 살기 위해 DNA 유전자를 쫓아 15년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신화의 재현의 다름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자신의 근본마저 부정당한 마당에 새출발을 위해 계란을 싣는 “나”의 모습은 사뭇 숭고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비극이면서도,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적절하게 뒤섞인 유머의 조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소재로 이런 재밌는 이야기의 얼개를 짜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무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조공원정대>에 대한 나의 (독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지속적인 창작활동으로 보답해 줬으면 좋겠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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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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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어떤 책과 작가를 만나는 경로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창비에서 만드는 라디오 책다방을 즐겨 듣는데, 이번에 소개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라는 단편 소설집을 소개받고 주변에서 최민석 작가의 글을 구하게 됐다. 그러다 원래 읽고자 했던 책 대신 201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능력자>부터 읽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쿨한 여자>가 다음에 읽을 책으로 대기 중이다. 천상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연대기 순으로 읽어야할 것 같다.

 

<능력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 남루한이다. 처음에 읽을 적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가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은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삶에 맞서는 복싱챔피언 출신의 “(초)능력자” 공평수의 일대기가 아니라 등단을 꿈꾸고 자신의 책이 출간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작가 지망생들의 회한이 담긴 소설 속의 소설가 넋두리가 아니었나 추정해 본다.

 

문예지를 끼고 있는 출판사에 단편을 공모해서 신인작가로 등단이라는 코스를 거친 뒤, 그렇게 한 편 두 편씩 단편소설을 모아 소설집으로 내는 것이다. 문제는 글을 투고할만한 출판사의 수는 극히 적고, 글을 발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니 문제라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써 갈기는 이 키치 스타일의 책들을 꾸준하게 사서 읽어 자신의 문필활동을 뒷받침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렷다.

 

그렇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하고, 남루한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친 연지와의 결혼을 위해 순수문학을 하고 싶다는 절절한 욕망을 뒤로 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고통스러워하는 열혈청소년들을 위해 야설공장장이 되었다. 누구처럼 대박 작가의 반열에 올라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업작가의 길을 걷더라도 전혀 생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통장 잔고는 우리의 주인공 남루한처럼 3,320원이 찍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냉큼 팔아먹은 파우스트 박사처럼 남루한 역시 미래의 장인어른이 마련하라고 엄포한 2,000만원 돈을 만들기 위해 내키지 않는 ‘삼촌’ 공평수의 자서전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최민석 작가는 생존을 위해서 매문(賣文)은 어쩔 수 없는 최종선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역시 나의 섣부른 추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전 작가들은 자신의 책에 대한 판권을 돈을 받고 파는 일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시절이 바뀐 만큼 공식적인 매문활동이야말로 적극 권장할 일이다.

 

전형적인 키치 스타일의 서사 전개보다 <능력자>에서 내가 마음에 든 건 남루한, 희대의 건달로 나오는 남루한의 아버지 남강호, 그가 프로모션을 맡은 공평수와 양정팔 등의 캐릭터의 설계다. 작가의 페르소나 남루한을 필두로 해서 앞으로 전개될 서사의 구축을 위해 꽉 짜인 유기적인 틀에 도무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을 연달아 투입한다. 매미와 개미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왕년의 권투 챔피언은 빠른 발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경이적인 스텝은 복싱 은퇴 후, 강남을 무대로 삼아 힘차게 비상하는 제비로 거듭나게 해주었다는 전개는 압권이었다. 강호를 누빈 남루한의 아버지 남강호도 공평수 못지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기와 연관된 인물들을 끌어 모아 마지막 한탕에 베팅하는 꼼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캐릭터에 비해 남루한을 좌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여친 연지라는 캐릭터는 미미하다. 누가 봐도 이별이 뻔하고, 그를 계기로 남루한이 각성하여 다시 소설판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그렇다고 야설로 먹고 살던 작가가 순수문학으로 대성공을 거둔다는 것도 독자를 설득시키기 어렵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패턴은 예술가에게 역경과 고난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라는 메타포다.

 

어떤 글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능력자> 역시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근래 등장한 한국문학 작가들에게 실망하여 우리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분과 <능력자>는 맞지 않는 조합이지 싶다. 읽는 재미만으로는 그만이지만, 무언가 심오한 메시지를 원한다면 오리지널에 미치지 못하는 키치 정도로 만족해야지 싶다. 어쨌거나 난 재밌게 읽었으니까. 이제 <쿨한 여자>를 읽어야지. 아, 내가 계속해서 최민석 작가의 헌신적 구매자가 될지 두고 보자. 그런데 신인작가 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도 헌신적 구매자가 필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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