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잔혹사 - 설계자 이방원의 냉혹하고 외로운 선택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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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어떻게 세워졌더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배운 바에 따르면, 40여년에 걸친 몽골의 침략과 그후 친원 세력에 의해 장악된 고려 조정은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권문세족의 토지겸병으로 일반대중들에 대한 착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도 몰락하는 국가에 역시 한몫했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으로 조정이 위태로운 가운데 친원세력으로부터 자주독립을 꾀하는 공민왕이 등장해서 잠시 개혁의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민왕의 아내 노국대장공주가 해산 중에 사망하면서 공민왕과 고려의 운명을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성계로 대표되는 신흥군벌 무장세력과 대표선수 정도전이 직접 나선 신진사대부들이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판갈이를 해야겠다며 나선 끝에 조선이 세워지게되었다. 이상이 조선 건국에 대한 기본적인 개략일 것이다.

 

배상열 저자는 조선 건국에 얽힌 이야기 중에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몽주 암살사건과 왕자의 난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참신한 주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조선 건국 잔혹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는 책의 내용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가 깔려 있으니, 유념해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우선 스러져 가는 고려의 마지막 기둥이었던 정몽주 암살사건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로 알려진 만고의 충신 정몽주의 최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26세의 혈기 방장한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전우였던 정몽주를 죽여야만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울 수 있다는 취지 아래 행동에 돌입했다고 역사에서 혹은 각종 사극 드라마에서 배워왔다. 그런데 저자는 당시만 하더라도, 이방원의 역할은 극히 미미했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사건 당시 이방원은 개경에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 추정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정몽주 암살을 주도한 주범은 누구란 말인가.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바로 이성계의 차남 이방과(정종 혹은 공정왕)이었다는 것이다. 한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원보다 장성한 이방과는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베테랑 선수였다. 발톱을 숨기고 있던 정몽주의 마지막 기회였던 이성계 낙마사건을 전후해서, 얼마 남지 않은 고려 충신들을 규합해서 이성계의 심복들을 일거에 제압하려던 정몽주의 기획 아래 돌아가는 정국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이방원보다는 이방과에게 있었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추정이다. 게다가 언제나 역사 공부에서 나오는 표현이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려사> 혹은 <고려사절요> 등의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자들이 누구인가. 조선의 녹을 먹는 조선 사관들이 아니었던가. 있는 진실만을 기록한다는 것이 사관의 임무라고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들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일 따름이다. 공민왕이 황음무도했다는 썰이나, 우왕과 창왕이 요승 신돈의 자제였다는 그야말로 확인되지 않은 그야말로 저잣거리에서나 들을 법한 요설들을 그대로 실록에 기록하는 승부수를 던지지 않았던가. 분명 훗날 태종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이방원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 만들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기는 동아시아에서도 몽골의 원나라가 북방으로 축출되고 주원장의 한족 중심의 명나라가 세워지는 시기와 절묘하게 겹쳤다. 고려가 백여 년을 섬김 북원과 명나라 사이에서 등거리외교 전략을 구사했다면 국익에 최고의 이익이 되었겠지만, 고려조 훗날 조선의 집권세력이 되는 신진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상국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올인해 버리는 악수를 두고 만다. 이에 잔혹한 독재자 주원장은 그야말로 조선을 동맹국이 아닌 하청업체 수준에서 모욕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대주의에 대한 책의 어떤 부분에서도 보다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야말로 가장 충성적인 동맹국을 공깃돌 가지고 놀듯 하며, 공식 사신 이염에게 몽둥이질을 해서 거의 죽일 뻔하기도 하였다.

 

더 웃기는 건, 우왕 시절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소국이 대국을 정벌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사불가론을 들어 쿠데타에 성공한 이성계와 정도전이 주원장의 무리한 요구에 요동정벌을 계획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사실 조선의 개국 공신들이라는 위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백성을 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기 좋으라고 내세운 선전선동일 따름이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철저하게 도모한 엘리트 이익집단의 역성혁명이었다. 경기도 전지의 1/3에 달하는 토지를 공신전으로 하사받고, 자자손손 누릴 면책특권까지 요구한 이들에게 신국에 대한 기대는 그야말로 요원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군벌과 엘리트 계급의 연합? 그로부터 한 587년 정도 지나 비슷한 케이스를 우리 현대사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저자의 다음 타겟은 첫 번째 왕자의 난이다. 어찌어찌 해서 결국 조선이 세워졌다. 비록 홍무제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해 반편이 스타일로 구겨지긴 했지만, 어쨌든 신국이 건설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바로 국본 바로 세우기, 세자 책봉이었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정몽주 암살로 건국의 지대한 공훈을 세운 이방원이 세자가 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선의 진짜 설계자 정도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술은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 강력한 왕권주창자인 이방원은 맞지도 않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 위에 올랐다. 다음 후계자 자리가 엉뚱한 형제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한 나머지 형제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특히나 야심찬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다음 순서는 몽골족의 원나라에 붙었다 다시 고려에 투항했다를 번복한 배신자 집안 이성계 집단의 근원이 사병혁파였다. 그리고 보니 이성계 집안에서 반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안 내력이었던 모양이다. 이성계의 선조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족에게 붙었고, 군벌 출신 이성계 자신 역시 고려를 뒤집어엎고 신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그런 선수의 아들 이방원 무리 역시 아버지에게 어퍼컷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배신자 집안에게 ‘해동 육룡이 나라샤’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를 쓴 조선의 어용 지식인들에겐 아마 공맹의 가르침 중의 하나인 수오지심 따위는 없었나 보다.

 

이방원에게 봉화백 정도전이 계획한 대로 배다른 막내아우 이방석이 이성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순간, 자신의 운명은 끝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를 쳐야만 했다. 아주 절박했을 것이다. 조선 최고 천재 정도전의 정보망이 가동되어, 이방원과 그의 책사 하륜 그리고 행동대장 이숙번이 모여 역적모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이마 사병혁파는 척척 진행되어, 병장기까지 반납된 마당에 가장 우수한 병사들로 구성된 왕실경호대가 포진한 경복궁을 상대로 무력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그야말로 자폭행위였을 것이다.

 

다만 정몽주 암살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이성계의 건강이 문제였다. 이방원 일당에겐 그야말로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말도 안도는 상황에서 급조된 반란은 순전히 운빨로 성공에 이르게 된다. 실제 전장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역전의 용사이자 상승장군 출신 노장 이성계가 반란진압에 나섰다면, 역도의 무리라는 오명은 정도전과 이방석이 아니라 감히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이방원 일당에게 뒤집어 씌워졌을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이번 가사의 진짜 주범은 이방원이 아니라, 이성계의 심복이었지만 거사를 앞두고 말을 갈아탄 조영무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이성계 휘하에서 수많은 전장을 누빈 전사답게, 가히 동물적 감각으로 정국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판돈을 이방원에게 올인한 것이다. 한 사람의 선택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첫 번째 왕자의 난에서 조영무의 선택이 조선 왕조의 큰 물줄기를 바뀌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조선 건국 잔혹사>를 읽으면서 느낌 점을 하나로 집약한다면, 모든 역사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말라는 점이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 아는 기본은 누구라도 다 알듯이 바로 <실록>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실록이 진실만을 다루고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아닐 것이다. 왕조에 불리한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순진한 게 아닐까. 그러니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 바로읽기에도 세심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많이 읽어야 하고, 읽고 느낀 점들이 서로 융합을 이루어 최종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를 걷어낸, 단백한 역사의 크레바스에 빠져 버린 사건을 부검하고 새로운 사실 혹은 결론을 적출해낸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보낸다. 다만, 수나라를 창건한 사람이 양제이고, 고구려가 당태종 이세민 대에 멸망했다는 오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유 때문에 별점 두 개를 제외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자유지만, 틀린 역사에 대한 기록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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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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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맹 가리를 읽으려고 시작하는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로맹 가리가 죽기 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내 삶의 의미>는 작가이자 레지스탕스 전쟁영웅, 외교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를 아우르는 로맹 가리 인생 전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깔끔한 모둠회 같은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로맹 가리는 할례 받은 유대인 출신으로, 러시아-폴란드-프랑스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최근에 귀화한 프랑스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보르 항공학교에서 장교 임관을 받지 못하고 하사관이 되어 어머니 니나가 기다리는 니스로 돌아올 때의 열패감은 진짜 대단했다. 최근 월드컵에서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이웃 독일은 외국인 혐오주의, 특히 무슬림 터키 출신 외질의 국가대표직 반납을 두고 소음이 일지 않았던가. 반세기도 더 지난 후에도 여전히 통합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유럽의 오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짧은 인터뷰 집을 통해 로맹 가리는 자신의 신화를 때로는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하기도 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는 <하늘의 뿌리>에서 프랑스 최초의 생태주의 작가로 보여준 코끼리 보호 선봉에 섰던 경력을 자랑한다. 로맹 가리 인생의 초반부에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던 어머니 니나의 영향력 자장 아래, 절대 여자의 돈을 받지 말라던 정언명령대로 파리 유학 시절 한 때 타락의 길로 들어설 뻔 했던 경험도 숨기지 않는다. 와인의 나라 후예답게 술고래라는 별명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평소부터 알코올을 멀리했다고 하는데, 왜 나같은 얼치기 독자는 술고래 작가라는 이미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로맹 가리에게 자유프랑스군의 지도자 드골 장군은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주입한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앙드레 말로를 따라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었고 아비시니아 전쟁에도 참전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번 인터뷰집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도미니크 보나가 썼다는 로맹 전기를 한 번 읽어야 하나 싶다. 어쩌면 로맹 가리 읽기의 완성은 그의 평전으로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악전고투 끝에 다 읽은 <새벽의 약속> 덕분에 인터뷰 대담집 읽기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 로맹 가리는 이때 이런 고민들을 했었지.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저자의 일생을 돌아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또 어떤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도 많았다. 특히 어머니의 소망 대로 프랑스 대사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외무장관이 되지는 못했지만(후보에까지 거론되었다고 한다) 불가리아 대사관 서기관, 유엔 대표부 대변인, 볼리비아 대리공사 그리고 훗날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이루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에 이르는 다양한 경력의 나열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연상의 아내 진 세버그와의 만남, 그리고 할리우드 판에 뛰어 들어 작가답게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아내를 주인공 삼아 만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도 있다고 했던가. 연출자로서는 혹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해당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프랑스 내의 혹평대로 영화 초반부부터 너무 과다한 노출과 폭행 장면이 부담스럽더라. 그런데 왜 나중에 진 세버그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와 바닷가를 거닐며 바닷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 걸까. 대충 봐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영화적 재미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지상 최대의 작전>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가하고,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영화에 해당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 카이사르 역으로 캐스팅 될 뻔 하기도 한 할리우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롭다. 실버스크린의 매력으로 할리우드의 부유한 제작자들은 그야말로 로맹 가리를 똥개 부리듯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들의 철저한 오판이었다. 죽는 날까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바람둥이 작가는 길들여지지 않는 “흰 개”였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로맹 가리는 자기가 사는 동안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여성, 여성성이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그건 자신의 성공을 유일한 인생의 목표로 삼은 어머니 니나 카체프의 바람에서 기원한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아들이 모든 여성의 영원한 연인이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소원대로 레지스탕스, 작가, 외교관, 전쟁영웅, 영화제작자 그야말로 남자라면 원하는 모든 걸 이룬 사람이 된 아들은 여성성에 대한 사랑을 모토로 해서 작가 생활에 뛰어들었다. 로맹 가리의 그런 경향은 나이가 들고 작가로서 원숙해질수록 동경을 넘어 집착에까지 이르렀던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시대에 기존의 작가들은 다시 읽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로맹 가리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범작도 있고, 또 예상을 뛰어 넘는 수작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네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그래서 로맹 가리의 작품들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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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레삭매냐 2018-07-24 14:25   좋아요 1 | URL
열심으로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9권 남았네요.

카알벨루치 2018-07-24 14:35   좋아요 0 | URL
화이팅 레삭매냐님~

목나무 2018-07-2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로맹 가리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는 정보 잘 챙겼습니다. ^^

레삭매냐 2018-07-24 17:39   좋아요 0 | URL
에밀 아자르 말고도 외교관 시절에 가명으로 낸
책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산책에서 다 펴낼 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로맹 가리 책들의 판권이 마음산책-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에 퍼져 있는 것도 신기하네요.
 
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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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맹 가리의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건 아니어서 어떤 책들은 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있다. 오늘도 세 권의 책을 빌려 왔다. <흰 개>는 지난 주말에 빌려온 책인데, 어제(7월 19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1968년 1월 30일 베트남에서는 테트 공세로 주월 미군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에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4월 4일에는 미국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다. 당연히 극한의 폭력이 분출했고, 문명사회는 들썩였다. 바로 이 시점에 로맹 가리는 아마 미국에 아내 진 세버그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에게 다른 사회적 이슈들보다도 심각한 당면 과제는 흑인만 보면 잔혹한 공격성을 내보이는 “흰 개”였다.

 

그가 바트카(러시아 어로 ‘키 작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라고 이름 회색 셰퍼드는 백인들이 주는 밥만 먹었다. 나중에 그 개에 대한 이력이 드러나는데, 남부에서 키워지면서 흑인만 공격하게 체포하게 훈련받은 경찰견이었다. 개 사육장에서 로맹 가리는 그런 개들을 ‘흰 개’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 이런 극심한 인종주의의 부산물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바트카의 원래 주인이 등장해서 그들이 인종주의 온상 앨라배마 출신이며, 수대째 보안관과 경찰관직을 역임해 왔다는 말에 로맹 가리는 대놓고 면박을 준다.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들이기에 이런 악랄한 방식으로 ‘흰 개’를 길렀단 말인가. 개 사육장에 있는 로맹 가리의 지인들이 바트카가 재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앨라배마 출신 노인 역시 리셋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68세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계속되고 있던 1968년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라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미국 배우 출신으로 타국 프랑스의 연인이 되고, 블랙 팬서단의 온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휴머니스트 진 세버그를 FBI국장 에드가 후버는 블랙리스트에 올리고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모략질을 일삼았다. 일국의 정보국장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어린 처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 세버그의 고향 아이오와 주의 마셜타운으로 향한다. 장례식에서 역시나 미국내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과연 분리차별정책(segregation) 밖에는 답이 없다는 걸까.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암살로 온 미국이 들끓는 가운데 흑인 친구 아니 ‘소울 브라더’ 레드를 찾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흑인 인권운동의 방식을 전해 듣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 소총수나 탄약수 등으로 동원된 흑인 전사들이 훗날 미국내 무장투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거란 레드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맹 가리는 그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수의 백인 전사들이 있노라고 대꾸한다. 정말 드골 주의자다운 대꾸가 아닐 수 없다. 레드의 아들 필립은 베트남 전에 장교로 참전해서 또 하나의 영웅이 되고자 하고, 다른 아들 발라드는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져 탈영을 감행한다. 그리고 대선 레이스 중인 밥 케네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나는 어디선가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하고 있는 건가? 단순하게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을 추적하는 것 같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프랑스는 미국 이전에 안남(베트남) 혹은 코친차이나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 아니었던가. 그 다음에는 알제리에서 빨치산들의 독립투쟁에 맞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나라가 아니었던가.

 

페미니즘과 동물보호를 옹호하면서도 우파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는 이방인 로맹 가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 진 세버그는 열렬하게 흑인 민권운동가들을 후원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흰둥이 개○일 따름이었다. 말론 브란도를 위시한 일단의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인사들이 모여서 후원 모금하는 장면도 역시 레지스탕스 영웅에겐 하나의 개짓거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자유프랑스군의 일원으로 로렌 십자가를 앞세우고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겠다는 모습도 68혁명의 대의와는 정말 거리가 있는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보니 흰 개 바트카는 백인을 공격하는 검은개가 되어 있더라는 결말에서는 정말, 이 작가가 <흰 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뭐였나 하는 혼란에 빠져 버렸다. 굳이 역자 후기는 읽고 싶지가 않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미완성으로 나의 독서를 남겨 두어야 하나 싶다.

 

이제 로맹 가리 읽기가 중반을 넘어섰다. 앞으로 남은 책은 모두 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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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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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새페죽>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내가 이 책을 언제 샀나 싶어서 기록을 검색해 보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두 번 산 것이었다. 아니 이미 알고 샀었나. 그전에 개정판으로 한 번, 이번 양장 특별판으로 한 번 구매했던 것이었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사다니. 어쨌든 만날 표제작만 읽다가 이번에는 드디어 다 읽는데 성공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난 주에 도서관에 빌린 로맹 가리의 인터뷰집 <내 삶의 의미>를 읽기 시작했는데, 천상 드골 주의자였던 레지스탕스 출신 전쟁영웅이자 (프랑스) 영토 해방 전사였던 영원한 이방인 로맹 가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폴란드로 이주했다가 결국 꿈에 그리던 프랑스 니스에 안착해서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 수 있었던 남자. 나중에는 외교관으로 미국 LA 총영사로 한 10여년을 미국에서 살았다고 했던가. 지금 같이 읽고 있는 중인 <흰 개>에서는 뜨거웠던 1968년 혁명시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자긍심 강한 이 레지스탕스 영웅의 페르소나는 소설 곳곳에 무시로 등장한다. 표제작 <새페죽>에서는 속세를 떠나 페루의 어느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작가로 분신한 페르소나는 아이티 바닷가에서 서구 영웅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상어가 득실거리는 작살총 하나만 달랑 들고 뛰어 들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이발사로 죽은 탐험가는 고향의 옛사랑에게 줄기차게 세계 곳곳의 진귀한 우표가 붙은 엽서들을 발송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보낸 엽서의 우표들은 고스란히 옛 사랑의 현재 남편의 우표 컬렉션이 되었더라는 웃기 못한 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 인간들이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 보면서 살게 되더라는 그런 말인가.

 

자신의 외교관 경험을 녹여낸 <류트>에서는 이스탄불 바자의 매력적인 골동품 시장을 누비는 멋쟁이 현직 외교관의 풍류를 읽을 수가 있었다. 절대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 혹은 아우라를 지닌 진품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앞서는 주인공은 외교관 나리의 품위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던 모양이다. 물건은 사지도 않으면서, 내내 그렇게 아이쇼핑만 해댔으니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딸이 지적한 대로 만들어진 예술품에 대한 감상이 주는 만족보다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그런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잘 아는 상인에게 선물로 받은 ‘류트’를 연주하게 되었더라는 그런 설정. 왠지 트란 안 훙 감독의 <그린 파파야>에 나오는 그런 끈쩍끈쩍하면서도 관음적인 느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트란 안 훙이 연출해 낸다면 어떤 식의 영화가 될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몰락>에서는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지도자의 복귀를 앞두고 그의 옛 동지들은 시멘트에 공구리쳐서 바다에 수장시킨 이들이 몇 톤이나 되고, 산 사람을 진짜 “그리스” 조각으로 만들 정도로 깡다구로 무장한 호보켄의 거인 마이크 사파티에 대해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동료들이 다시 만난 사파티는 진짜 행위예술가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사파티를 소재로 해서 또다른 작품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진짜 무시무시하면서도 가치 전복적인 구성이 아닌가. 소설집 <새페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였다.

 

진짜와 가짜 예술품을 판별해 내는 주인공에게 놀라울 정도로 센 어퍼컷을 먹이는 <가짜>는 또 어떠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품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예술품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보다 금전적으로 매겨지는 자산이 되어 버렸다. 그런 산업에 중심에는 범람하는 위작을 진품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감별사(왜 난 여기서 갑자기 병아리 감별사가 떠오른 거지?)가 반드시 필요해졌다. 주인공은 절대 가품을 진품으로 판별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예술산업 종사자로서의 품위를 지킨다. 그러자 그에게 앙심을 품은 의뢰자는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가짜’임을 증명하는 사진을 그에게 배달한다.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사실은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폭로해 버린 것이다. 복수라는 치졸함 뒤에 숨은 행위와 우리 눈에 보이는 미추의 구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유하게 만들어주는 수작이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온 가치가 전복되는 기가 막힌 순간에 대한 또다른 포착은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에 등장한다. 자본주의 광풍에 휘말려 원시적 순수함을 모두 상실해 버린 타히티 파페에테에서 주인공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순수함이 고갈되지 않은 마르키즈 제도의 타라토라에 정착했다고 했던가. 문제는 한 때 마르키즈 제도의 여러 섬을 지배했다는 추장의 딸 타라통가가 선의로 호두과자를 싼 천을 보내오면서 시작된다. 바로 그 천이 폴 고갱의 그림이라는 걸 확신한 내레이터는 자신만이 그 가치를 알아본다고 생각하고, 추장의 딸에게서 거금 70만 프랑을 들여 1억 프랑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천들을 사들였다. 막판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타라통가가 탁월한 모작 화가라는 사실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기극이었지만, 추장의 딸이 그에게 천조각들을 사달라고 했던가? 화자 혼자 판단해서 그런 투자를 한 게 아니었던가. 이 단편에서는 지난주에 한국을 강타했던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 호 인양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렇지, 어디에 순수가 존재한다고. 순수를 원하는 이들은 그저 타라통가 같은 선수들의 좋은 사냥감일 뿐.

 

<새페죽>에서 내가 주목한 주제는 바로 “전복의 미학”이었다. 일상대로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묵직한 한 방을 준비한 로맹 가리의 기술에 감탄했다. 작가는 이미 자신의 삶을 통해 로맹 가리 그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구도로 당대 비평가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다채로우면서도 전복적인 이야기들을 구술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개인적 체험과 독서편력이 필요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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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23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님께선 진정한 책 마니아시군요.
책 마니아중 하나가 샀던 책은 또 산 거라잖습니까?
그래도 용서하세요. 로맹 아저씨잖아요.ㅋㅋ
혹시 한 권은 필요 없으시다면 저 같은 마음에는 있으나
사지도 읽지도 못하는 길손에게 넘겨 주시면 복 받으실 텐데요...ㅋㅋ

레삭매냐 2018-07-23 13:24   좋아요 1 | URL
하하하 이미 <별을 먹는 사람들> 같은 경우엔
지난 주에 생일선물로 보내 드렸네요.

<새페죽>도 그러고 싶으나 당최 어디에 가 있
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나중에라도 그전에
산 책을 찾으면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로 2018-07-23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드디어 리뷰가 올라왓군요!! 기다렸어요~~~.^^;;;
저도 자칭 로맹가리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모르던 이야기도 있네요.
앞으로도 님의 로맹가리 읽기 순항을 응원합니다!^^

레삭매냐 2018-07-23 14:24   좋아요 1 | URL
네네 응원 감사합니다 -

방금 전에 올린 <흰 개>까지 해서 모두
열 권의 로맹 가리 책들을 읽었네요.

이제 남은 책들의 수도 열 권이네요.

로맹 가리의 대표작 <하늘의 뿌리>가
어쩌면 가장 험난한 고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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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전작읽기를 선언한 이래, 집에 있는 로맹 가리의 책들을 모두 찾아서 읽지도 않을 거면서(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도 사실 <새페죽>을 다 읽고 나서 보려고 했다. 그냥 몇 쪽만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재밌더라. 그래서 <새페죽>도 다음으로 미루고 계속 읽었다. 이번 7월은 가히 로맹 가리의 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소설의 화자는 저자 로맹 가리처럼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초로의 나이(59세)가 된 자크 레니에다.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회사는 사업이 지지부진해서 좋은 가격에 회사 매각을 고민 중이다. 자크는 미국인 갑부이자 호색한 짐 둘리 소유의 은행에 호의를 기대해야 하는 불쌍한 처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둘리보다 애인 로라 수자(22세)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 있다는 점 정도. 그것도 최근 발생한 전립선의 위기로 자존심이 상해 있다. 브라질 출신 젊은 애인을 성적으로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크는 ‘전립선 변호사’의 권고도 무시한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지켜 보다 보니 문득 영화 <광란의 사랑>이 연상된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다.

 

이 책이 나온 해는 1975년, 그러니까 로맹 가리 61세가 되던 해였다. 프랑스 문단에서는 한 때 프랑스 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었던 대가의 몰락이라고 신랄한 비평을 날렸다. 그가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을 수상한 에밀 아자르라는 걸 모른 채 말이다. 소설 속의 페르소나 자크 레니에처럼 확실히 노년의 로맹 가리는 오십대의 자신과 견주어도 노쇠했다는 느낌이 든다. 전에 읽은 <레이디 L>과 지금 읽고 있는 <흰 개>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주인공 자크는 오일쇼크의 여파 탓인지 계속해서 서구 사회에 없는 에너지 자원에 대한 갈구를 서구의 몰락으로 연결시키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자신의 성적 무능함과 다국적 기업에서 자신의 출판사를 넘길 수밖에 없는 경제적 위기를 동일선상에 올려 놓고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라는 주문한다.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흐름을 외면하고 싶은 무신론자의 발악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책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의 적나라한 전개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아마 프랑스 문단에서 그를 불편하게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젊은 애인 로라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노년의 자크가 가진 강박은 어느 날 둘이 거주하는 호텔에 침입한 강도이자 ‘안달루시아 야수’ 몬토야(자크는 그를 루이스라고 명명한다)를 고용해서 자신의 성적 대리인으로 삼겠다는 판타지에 젖는다.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라틴 사람들이나 흑인 혹은 아랍인에 대한 성적 콤플렉스 때문에 그들을 이용하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인종주의의 흔적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와중에 자크는 오랜 레지스탕스 동지이자 지금은 포주로 활약하고 있는 릴리 마를렌을 찾는다. 자신의 생명보험금 4억 프랑을 아들 장피에르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모종의 계획을 세우지만 현명한 여인 릴리의 조언으로 계획은 무산된다. 그리고 성적으로 노쇠했건 그렇지 않건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하는 애인 로라와 터키건 이란이건 어디론가 먼 곳으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확실히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기존의 로맹 가리가 구사한 희망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숭배라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남성으로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은, 오래된 레지스탕스 전사의 광휘와 문학가에 대한 일정한 존경심 정도 밖에는 남지 않는 한물간 작가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프랑스 문단에 묵직한 어퍼컷을 날리지 않았던가.

 

전성기가 지난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쇠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변의 관심은 관계의 소멸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특히 잘 나가던 시절을 경험한 로맹 가리 같은 작가라면 더더욱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지방 밤무대 혹은 미사리 라이브카페에 등장하는 예전 스타 연예인들의 심정이 그랬을까. 난 아직 죽지 않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당신의 승차권>이 <자기 앞의 생>보다 리얼한 로맹 가리의 본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긴 했지만, 노작가의 넋두리 같다고나 할까. 동정은 하지만 공감까지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무려 4년 전에 사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니 놀랍다. 읽지도 않았지만 작가의 책을 컬렉션한 것으로도 로맹 가리의 팬이라고 불릴 만하지 않은가. 좀 억지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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