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그늘 아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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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토요일 아민 말루프의 <동방의 항구들>로 독서 모임을 하면서 동지들에게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읽어 보았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아민 말루프가 낯선 레반트로 우리를 인도했다면, 타리크 알리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의 이베리아 반도를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에스파냐는 내가 그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소설로나마 방문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다.

 

1499년, 레콩키스타라는 이름으로 알안달루스를 정복한 카스티야-아라곤 군주연합의 기독교 전사들은 가르나타(그라나다)에서 불의 벽을 쌓았다. 700년이 넘도록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무어인들과 평화로운 공존 대신 말살정책을 선택한 톨레도의 대주교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가 획책한 무어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분서 사건이었다. 책을 불태운 이들이 사람이라고 태우지 못할까. 토르케마다로 불리는 종교재판관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조였다. 오래 전에 읽은 프롤로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제 다시 미완의 책을 집어 들었다. 타리크 알리가 저술한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하지만 우리가 꼭 한 번은 읽어야할만한 그런 책이었다.

 

격변기에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수백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서 평화롭게 지낸 무어인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연대 대신 분열을 택한 무어인 지배자들은 국토회복과 이교도 척결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기독교 전사들에게 참패를 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유일하고 위대한 신이라던 알라는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비참하게 조상의 종교를 버리고 가짜 기독교도로 개종해서 일신의 안위와 땅과 재산 그리고 가족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간단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순식간에 바꾸는 게 가능할까? 저자는 책 속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가톨릭 종교재판관들은 결코 개종자들에게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이교도와의 공존은 처음부터 그들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알후다일 가문의 조상, 특히 기독교 전사와의 결투로 전설이 된 이븐 파리드의 후손들은 격변기에 적응을 해야했다. 이교도 출신 아스마 부인에게서 난 총명했던 미겔(미칼)은 쿠르투바(코르도바)의 주교로 변신했고, 자라는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보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결국 방탕한 삶을 살다가 마리스탄에 갇혀 수십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에 대한 절절한 사연이 등장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큼이나 자신들이 정복해서 결국은 자신들의 고향이 된 알후다일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들의 비극적 운명은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닐까.

 

알후다일을 이끄는 가장 우마르는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기도 한다. 사악한 가톨릭 사제 시스네로스의 마수 앞에 알후다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 주바이다와 자유로운 가풍을 대대로 이어가고 싶었으나 시대는 그들에게 알라가 약속한 지상의 복락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문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동안, 가톨릭 세계의 무어인들에 대한 압박은 점증한다. 이것을 자기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 혈기 넘치는 이븐 파리드의 증손자이자 알후다일의 장남 주하이르 알팔(종마)은 23세의 젊은 청년답게 분기탱천해서 일곱 번째 천국으로 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젊은이들이 조직한 가르나타에서 봉기가 시스네로스가 무어인들을 탄압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가 과연 알고 있었을까?

 

언제라도 위기가 촉발될 지 모를 상황에서도 사랑의 꽃은 피어난다. 우마르와 주바이다의 자랑거리 딸 힌드는 아랍 여성의 그것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교리 논쟁에서는 어쩌면 신성모독일 지도 모를 그런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사촌 미겔의 아들 후안과 결혼을 시켜 후일을 도모하자는 가족의 결정에도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결국 과거를 가지고 있는 알카히라(카이로) 출신 지식인 이븐 다우드와 결혼하게 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결혼식을 치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모로코의 페즈에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는데, 우마르의 또다른 아들 야지드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레콩키스타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었던 알후다일로 대변되는 이베리아 반도의 아랍세력은 곧 안알달루스 이슬람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처지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카스티야발 가톨릭 세력 앞에 무어인과 유대인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이단 세력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였을 것이다.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기존의 질서와 관습 그리고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도 개종해서 투항하는 방법이 있었다. 훗날 역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가톨릭 사제들은 가짜로 개종한 무어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가혹한 종교재판으로 그들의 정신을 말살하는 게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나타에서 벌어진 불의 벽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백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무어인들의 출발지였던 마그레브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선택은 수백 년간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운 조상들의 뒤를 이어 저항에 나서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럴 만한 동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가르나타의 술탄은 평화로운 공존을 약속한 이사벨에게 속아 아무런 저항 없이 가르나타를 그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던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터키 술탄의 지원 아래, 지하드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주하이르 알팔은 혈기 넘치는 친구들의 지원 아래 실제로 증조부의 칼을 들고 저항운동에 나섰다. 문제는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의 지원 받기에 알안달루스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술탄의 다음 목적지는 너무 먼 알안달루스가 아니라 비엔나였다.

 

가르나타에서 주하이르와 친구들이 벌인 봉기는 그들에게 일시적 민족적 자긍심의 부활을 가져다 주었을 지는 몰라도, 후과는 비극적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구체제의 기사도 정신을 놓지 못하고 카스티야 진압군을 대표하는 돈 알론소와 결투에서 승리한 주하이르 알팔에 대한 보복으로 소년장수 코르테스(저자 타리크 알리의 변용이라고 역자는 해석한다)는 알후다일을 습격해서 일족을 몰살시킨다. 평화로운 공존을 잠시나마 꿈꾼 무어인들에게 코르테스는 혹독한 교훈을 안겨 주었다. 가르나타 사령관 돈 이니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시스네로스 주교에게 이교도들은 공존이 아닌 말살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가 추구하는 기억의 완전한 추방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나크바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나와는 다른 생각과 종교를 가진 타인에 대한 적대적 종족절멸정책은 유서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우마르 시대에만 하더라도 알후다일의 번영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도시라는 형태의 정치권력이 부상하고, 카스티야 세력이 내분으로 분열된 알안달루스 무슬림 세력들을 각개격파하면서 시작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난세에 주하이르, 쿨숨, 힌드 그리고 야지드로 대변되는 우마르와 주바이다 자식들의 운명이 각각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성에 앞선 감정적 선택은 일족에게 장례식 화환이었다. 어쩌면 주하이르가 도모한다는 미래도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결말에 등장하는 코르테스가 지휘하는 카스티야 군대의 압도적 병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우마르들의 모습은 정말 장렬하고 처연했다.

 

지난 이틀 동안 나를 16세기 초 미지의 세계 알안달루스로 인도했던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리뷰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제목에 등장하는 ‘석류나무 그늘’은 평화와 자유 그리고 풍족함이 넘치던 시절의 알후다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다. 분열과 분노 그리고 증오의 정치가 조장되는 오늘날, 저자 타리크 알리가 구상한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문학적 이상향에 대한 대서사시는 언어나 문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비극이었다.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만 절판되어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게 흠일 따름이다.

 

[뱀다리]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알제리 출신 작가 아시아 제바르의 <사랑, 판타지아>에서는 마그레브 지역에 살았던 무어인의 고난이 등장한다. 이베리아 반도 카스티야인의 역할을 이번에는 제국주의 프랑스 군대가 맡았다는 게 다를 뿐, 서구인들의 시선에서 본 ‘바르바리안’에 대한 핍박과 차별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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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자크 상페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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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소설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재개정되어 나온 상페 작가의 책을 두권 빌려 왔다. 어제 읽은 책들을 반납했으면 오늘 더 빌릴 수 있었는데, 망했다. 상페의 책 두 권, 아시아 제바르의 책 하나 그리고 하인리히 뵐의 <아일랜드 일기>를 빌렸다. <아일랜드 일기>는 벌써 품절이구나. 천상 중고책으로 구해야 하나.

 

뉴욕은 모두가 알다시피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의 경제 문화의 수도 같은 메가시티다. <뉴요커>에 카툰을 기고하던 상페가 자신의 글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뉴욕은 항상 공사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이 자본주의 성공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공간이다. 종교 문화적 차이 따위는 물신 앞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저자는 자전거에 자물쇠에 걸어 놓았다가 바퀴를 풀었다가 어쩌구를 반복하는 장면으로 만화를 시작하지 않던가. 한동안 어떤 절단기도 자르지 못한다는 유락(U-lock)이라는 자전거 자물쇠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국고사 모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날카로운 창으로 뚫지 못하는 방패가 어디 있을까.

 

상페의 대선배 알렉시스 토크빌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시작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지난 세기에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분석을 했던 그 사람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정치판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한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미국 정치판을 달구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 피츠버그 시나고그에서 벌어진 유대인 총격사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사는 공간이 바로 미합중국이 아니었던가. 상대방에 대한 격려한 증오를 더 이상의 공존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폭탄테러와 증오범죄가 들끓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도래한 게 아닌가. 아마 상페가 그린 뉴욕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뉴욕 스케치>를 읽으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던 점 중의 하나는 미국의 문인들이 상당히 많은 각종 재단의 후원 아래 문학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모두가 전업작가로 성공하기란 난망할 것이다. 내가 만난 어느 작가도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친구의 적잖은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어서 오롯하게 글밥으로 먹고 사느냐 하면 아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놈의 호구지책이 무언지. 그렇게 재정적 후원 아래 탄생한 미국 문학이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미국 문학이 가진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상페의 그림책 이야기를 하라고 했더니만 또 내 생각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구나. 상페가 짚은 뉴욕 라이프의 또다른 단면의 핵심은 바로 파티다. 작가는 어설프게 배운 영어 탓을 하지만, 사실 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본토박이 지식인들 앞에서 이방인이 그들의 어휘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은 임무였으리라.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들은 정보만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각종 파티에 참석하는 그런 재미가 아닐까. 스리슬쩍 파티에 참가한 이들의 위선적인 면면을 드러내는 것도 고수의 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출판사를 떠나겠다는 편집자를 두고 벌어지는 험담에 대해, 사실 그 편집자도 해당 출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거리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문학판도 몇몇 출판사들의 독과점 형태라 찍히면 죽는다라는 법칙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몇 통의 레퍼런스 콜 첵만으로도 충분히 해당 편집자의 전력에 대해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어떻게 보면 인간적 관계라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른 만남이 누구에게는 반가울까. “계속 연락하자”는 말처럼 허망한 언어가 또 있을까 싶다. 나도 예전에 ‘나중에 같이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된 적이 또 없었다. 정말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이 있다면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나서 밥을 한 번 먹으면 될 텐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런 말을 남발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모름지기 관계란 관리의 확장일 터인데, 게으름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보잘 것 없는 나의 관계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뉴욕 스케치>의 주인공 장폴 마르티노도 친구들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판이 커지고 자꾸만 장소가 바뀌다가 결국엔 파토가 나지 않았던가. 다른 약속이나 파티가 있어서 또 그리로 장소를 옮겨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만, 그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답게 뉴욕의 서점들은 사이즈도 크고, 개성도 확실하다. 언제 또 뉴욕에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꼭 스트랜드 서점에 들러 그 유명한 토트백을 하나 사리라. 하루키가 즐겨 찾았다는(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니면 말구) “빌리지 뱅가드”에서 시원한 IPA  한 잔은 또 어떨까. 시간 여유와 풍부한 재정이 있다면 무엇은 못하겠는가.

 

 

건강검진으로 후유증으로 속을 부글거리고, 머리는 어지러운 가운데도 책을 읽고 리뷰도 날림으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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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0-30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진정 날림으로 쓴 거 맞습니까? 혹시 건강검진을 날림으로 받으신 게 아닌지...^^;;
뉴욕 스트랜드 서점.. 저도 언제 갈지 모르겠지만 꼭 기억해둬야겠어요! ^^
오늘은 아무 생각마시고 저녁에 가족들과 맛난 거 드시며 긴장했던 몸과 마음 푸시기를요.~

레삭매냐 2018-10-30 17:37   좋아요 1 | URL
디테일을 알려 드리자면,,,
수면내시경 중에 그만 의식이 돌아오는 바람에
두 번 했답니다 카오 ~~~

스트랜드 서점은 예전에 자주 갈 수 있는 찬스
때 갔었어야 했는데...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가 없군요 ㅋㅋㅋ 도저히

저녁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나 싶습니다 헷 !

아, 지난 주 독서모임에 가서 멤버 중에 한 분
에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 했더니만 오래 살면서
읽고 싶은 책 맘껏 읽고 싶다는 말에 그만 빵!
터졌습니다 지쟈쓰.

목나무 2018-10-30 17:49   좋아요 1 | URL
아니.... 수면내시경 중 의식이 돌아올 수도 있나요?
아무튼 고생 많으셨어요. 내시경을 하셨으니 오늘 저녁은 부드러운 유동식을 드셔야겠네요. 가족들과 꼬기 먹는 건 다음에...^^

그 멤버분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더도 말고 오래 살아서 읽고 싶은 책 아니 사 놓은 책만이라도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세상틈에 2018-10-30 21:35   좋아요 1 | URL
저도 수면내시경 하다가 깼는데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담부턴 그냥 내시경 받습니다.ㅎ

독서모임의 그 분 말마따나 읽고 싶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삽시다.ㅋㅋ
 
천사는 말이 없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대학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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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제발트의 책에서 알게 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는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그런 책이 되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23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가 있어서 빌려서 읽을 수가 있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탈영병이라는 신분 덕분에, 독일 민족과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달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하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기호식품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의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한 묘사야말로 작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 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지도 모르겠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가 좀 더 전쟁 자체에 대한 고발처럼 다가왔다.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예상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라 그런지 좀 더 애착을 갖고 읽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요즘 번역과는 다른 스타일이나 표기법도 독서 진도를 원하는 대로 나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도 읽고 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책이라 그런 걸까 싶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해 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만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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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8-10-2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90년대에 안인길 교수가 뵐의 작품을 싹쓸이(?) 할 정도로 많이 번역 했죠.제가 뵐을 좋아해 거의 소장하고 있네요.밤을 새워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

레삭매냐 2018-10-29 21:35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예전 작품들을 만나려니
쉽지가 않네요.

일단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부터 하나씩
읽고 있답니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북구 유럽 소설들이 인기다.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스웨덴의 프레드릭 배크만까지는 읽어 보았는데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는 또 처음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에도 그늘은 있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고령화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이 꿈꾸는 수명연장의 꿈은 실현화되었지만, 노인들이 원하는 사회가 과연 도래했을까?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체험을 한 이들이 우리들의 그것보다 욕망이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사회에서 그들을 잉여 취급하고 도태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에서는 79세 메르타 할머니가 이끄는 5인조 강도단(나중에 군나르까지 가세해서 6인조로 확대된다)은 사회의 그런 시선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털고, 장물 다이아몬드 습득하고, 은행과 국립박물관을 터는 기행을 선보인다. 물론 메르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런 일탈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영국의 숲 속에서 의적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운 로빈 후드와 조선의 홍길동의 후예를 자처한다. 자신들의 요양원 시절을 되돌아보며, 원하지도 않는 약물과 반강제로 갇혀 지내야 했던 다른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한탕’으로 마련한 어마어마한 부를 나눠 주고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아무리 메르타 할머니의 기획력과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도구들을 직접 개발해내는 발명 천재 할아버지의 뛰어난 실력, 은행전문가 안나그레타의 해킹실력만으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곳들을 두루 터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말이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사건의 전개가 노인 강도단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해두었다. 5억 크로나(우리 돈으로 625억)를 목표로 긴장과 흥분 넘치는 한탕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노인 강도단이지만, 도중에 느닷없이 등장한 세관원에게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블롬베리 경감에게 2억 크로나를 갈취당한다. 하긴 전편에서도 한탕으로 마련한 자금을 그랜드호텔 홈통에 두는 바람에 그야말로 허탕을 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전직 선원 출신의 매력남 갈퀴 할아버지는 이웃의 점쟁이 할머니에게 빠져, 자신을 사랑하는 스티나 할머니와의 애정전선에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한다. 은행 일련번호가 매겨진 돈을 세탁하기 위해 경마장을 이용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이 양반들 이거 보통이 아닌데 그래.


잉엘만순드베리 작가가 구사하는 스토리 전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노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는 사회적 인식을 깨고, 그들에게 현대판 로빈 후드의 역할을 부여했다. 아무리 결단력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메르타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5인조로 구성된 노인 강도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다잡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때문에 메르타 할머니는 계속해서 “인생의 매 순간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역설적으로 국가가 모든 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사회복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게 되었노라는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 그들의 모습이 훨씬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담으로 ‘귄터 발라프 시니어 프로젝트’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지난여름 독일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잠입취재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고발했던 암행취재 전문 저널리스트 귄터 발라프의 이름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다. 노인 강도단이라는 도저히 현실에서 만나볼 수 없을 것 같은 판타지에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사회비판적 저널리스트의 이름을 매치시키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놀라운 실력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국가의 봉록을 받으면서 약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블롬베리 경감이 노인 강도단의 2억 크로나를 가로채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는 설정도 씁쓸했다. 게다가 그의 조력자가 다름 아닌 저명한 변호사라는 점도 그렇다. 정당한 법률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대행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과연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궤도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소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를 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는 노인 강도단이 미국에서 귀국해서 둥지를 튼 베름되 해안가 빌라의 이웃 밴드 에인절스다. 악명 높은 헬스 에인절스의 독립클럽으로 가입을 원하는 우락부락한 폭주족 톰파와 예르겐이 과시하는 미친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메르타 강도단이 보여줄 수 없는 그런 ‘피지컬’을 대신하는 행동대원이라고 해야 할까. 폭주족과 강도단의 조화도 역시 볼만하다. 사실 소설 중반에 도달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는가 싶었지만 하나하나 깔끔하게 종착점으로 인도하는 잉엘만순드베리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혹시라도 우리의 의적들이 감옥에라도 가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나 않는지 조마조마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세관원 스벤 칼손의 집요한 추적으로 메르타 강도단의 정체가 탄로날 뻔하고, 메르타 할머니의 의협심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위기도 맞지만 능수능란하게 그야말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장면은 압도적 재미의 원천이었다. 그 이면에는 치매 걸린 할머니로 위장해서 사방에서 조여드는 감시와 포위망을 뚫는다는 노인 강도단의 의표를 찌른 역설의 미학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노인들도 젊은이들처럼 긴장과 흥분 넘치는 일단의 ‘한탕’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점을 잉엘만순드베리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마다의 숨은 가족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메르타 강도단, 아웃로 올디스(Outlaw oldies) 클럽의 계속될 스릴 모험의 전조를 제시한 점도 고무적이다. 메르타 할머니들의 활약을 보니, 어쩌면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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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빠! 근데 진짜 전방위적인 독서가 인정 ^^

레삭매냐 2018-10-26 13:04   좋아요 1 | URL
전방위는요... 마구잽이 독서죠 -
게다가 소설 위주의 편식쟁이 ㅋㅋㅋ
 


The Line of Beauty / Alan Hollinghurst
아름다움의 선 / 앨런 홀링허스트

드디어 창비에서 <아름다움의 선>이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올해 기다리는 네 개의 작품 중에 조지 손더스의 <링컨의 바르도>와 비슷한 시기에 나올 모양이다.

올해는 노벨문학상도 없어서 그런지 가을의 책 출간소식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아, 나머지 두 권은 은행나무에서 나올 예정이라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좀비물 <존 원> 그리고 문동의 필립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다. 후자는 작년 여름부터 나온다 나온다 하더니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지난여름에 나온다고 하더니 또 계절을 넘기고야 말았다. 해를 넘기지 말고, 이번 겨울에는 만나볼 수 있을까.

총알도 단단히 쟁여 두고 대기 중인데, 앞으로 한 열흘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새로운 책읽기도 시작하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예감.

그나저나 <아름다움의 선>은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싱글맨> 이상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홀링허스트의 신간 <스파숄트 어페어>도 조만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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