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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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될 때부터 고대하던 윈스턴 처칠의 짧은 전기를 읽었다. 저자는 독일 출신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다. 이 책은 처칠이 죽고 난 뒤, 2년 후인 1967년에 발표되었다. 히틀러의 전격전으로 전 유럽이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마지막 보루였던 영국마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절망적 상황에서 패전의 위기를 승리로 이끌어낸 정치가 처칠의 다른 면을 나는 이 평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주 어려서 꽤 두꺼운 처칠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젊은 시절 처칠이 보어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게 된 그의 본질은 반혁명주의자에 뼛속까지 제국주의자였다는 점 정도.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대영제국의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전시 총리로 거국내각을 이끌었지만 전후 총선에서 패배해서 실각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7세기까지 근원을 올라가는 말버러 공작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윈스턴 처칠은 영국 귀족 자제들을 위해 준비된 엘리트 코스를 수행하기 위해 매질 지옥으로 알려진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는 모국어인 영어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과목에서는 낙제생이었다. 개인의 개성을 말살시키고, 오로지 체제에 충성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이름의 횡포가 수세대를 거쳐 입증되었다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혹독한 시기를 버틴 처칠의 뚝심과 불굴의 의지가 어쩌면 이 매질 지옥에서 탄생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인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던 그의 부친 랜돌프 처칠 역시 한 시대를 주름잡은 풍운아였다. 스캔들로 아일랜드에 유배를 당했던 랜돌프는 토리 민주주의라는 기발한 정책으로 보수당 혁신의 기수로 등장한다. 물론 그의 호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고, 정치적 자살 같은 행위와 요절로 후계자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거의 망나니 낙제생에 가까웠던 처칠의 운세는 약관의 나이에 기병 소위가 되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고난 전사였다. 쿠바, 인도 그리고 수단의 전장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1898년 영국 최후의 기병 돌격이었다는 옴두르만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9세기 전사의 전형이었다. 한편, 종군기자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첫 정치도전인 하원의원 선거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 젊은 처칠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보어전쟁이었다. 종군기자로 참가한 보어전쟁에서의 맹활약은 그의 정치적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그가 정치인이 되자마자 한 일은 바로 기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갈아치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정치 철새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었다. 훗날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런 이유로 해서 자당 의원들에게도 믿을 수 없는 기회주의자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쨌든 정치 천재 데이빗 로이드 조지 밑에서 장관직을 연달아 맡으면서 젊은 정치가 처칠은 승승장구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처칠이 자유당 내각에 있으면서 시행한 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디테일이 이 책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본위제 부활과 노조파업에 대한 강경대응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참조해야할 것 같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해군장관으로 대전쟁’(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슐리펜 계획을 꿰뚫어본 혜안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갈리폴리 전투에서의 육해군 합동공격 실패는 처칠의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예전 같은 영화는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전사로서 처칠은 전쟁에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평화로운 시절에 그의 존재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가 한량 생활을 하는 동안 유럽 대륙에서는 커다란 변화들이 발생했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에 제국주의자 처칠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과 일란성 쌍생아 같았던 독재자 히틀러의 나치즘이 독일을 휩쓸었다. 어떤 면에서는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칠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약자를 압제를 견딜 수가 없었다. 계급적으로도 처칠은 신사였고, 교육을 통해 유전된 도덕률이 그를 세계의 데몬과 맞서 싸우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우리에게는 승리의 “V”로 각인된 위대한 정치가 처칠의 과대평가된 지점들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처칠에게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조국을 내던져서라도 히틀러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더 중요했다. 그보다 한수 위였던 정치 천재들인 로이드 조지와 체임벌린이 구사한 유화정책은 노동당과 인도에서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도무지 욕심을 채울 수 없었던 히틀러에게는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쟁으로 한 세대가 소멸하고, 제국의 여력을 까먹은 영국으로서는 도저히 새로운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전시 거국내각의 총리가 된 처칠은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총력전에 돌입한다. 전사였던 노년의 총리에게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은 희생되어야 했다.

 

하프너 작가는 처칠의 유효성을 19406월부터 일 년 정도로 잡고 있다. 세계사에서 처칠의 중요성은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사실 육지에서 독일을 상대한 것은 영미군이 아니라 동쪽의 소련군이었다. 1941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 그리고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세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처칠은 소련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했고, 유럽 대륙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남부전략(북아프리카-이탈리아-트리에스테-)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의 막강한 독일군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전진이 지지부진해지고, 2전선을 열어 달라는 스탈린의 거듭된 요청을 더 이상 연기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전쟁 초반 독일 전쟁경제의 목줄을 조르기 위해 실시했던 나르빅 작전의 실패도 총사령관 처칠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스 원정의 실패는 또 어떤가. 자신이 구상한 남부전략이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처칠은 스탈린과 단독으로 유럽의 지도를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스는 영국이, 루마니아는 스탈린이 그리고 전쟁의 원인이자 자신들이 해방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폴란드는 서방으로 넘기는 딜을 서슴지 않는다. 처칠은 어디까지나 대영제국의 존속과 조국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영국의 애국자일지는 몰라도 세계적 정치지도자라는 기존의 위상과는 너무 다른 게 아닌가 말이다.

 

저자는 냉정하게 히틀러의 몰락이 이제 기정사실이 되자, 전쟁에서 처칠이 할 일이 없어졌다고 기술한다. 전쟁 후반 영국 대신 전쟁의 주역이 된 미국이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동쪽으로 진군해 엘베강에서 소련군과 만나게 되면서 전쟁은 끝났다. 미국과 소련이 전면에 부상했고, 대영제국은 예전의 영화를 뒤로 하고 몰락했다. 처칠은 전사로서 강인한 인내와 끈기로 조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 주저하던 미국의 루즈벨트를 설득해서 결국 군수품 지원과 참전을 이끌어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국 전쟁에 승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영국 시민들은 처칠이 전후 수습을 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갈리폴리 패전 때처럼 모두가 처칠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1951년 불사조처럼 부활해서 두 번째 총리의 자리에 올랐지만 노쇠한 정치가가 할 일은 없었다.

 

독일 출신 이방인으로 비교적 객관적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윈스턴 처칠의 공적 뿐만 아니라 실책 그리고 본질적 삶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영도하는 지도자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평화 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기회주의적 독재자의 모습 때문에 적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과 비슷한 내면세계를 지니고 있던 운명의 숙적 히틀러를 쓰러뜨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처칠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자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가 그동안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실에 관한 전후사정을 알게 된 점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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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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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아베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일본과 경제전쟁으로 기해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민간의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 안사고 안가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반성과 사과가 없는 전범국가 일본과의 평화공존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326년 전,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 세기가 흐른 뒤 조종의 강토인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에 나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의 이야기를 그린 <강치>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위정자들이 아니었다. 고종이나 순종이 국권이 침탈될 때,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가. 아니다. 동학운동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건 농민들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또 어떠했는가. 임금이 조정을 버리고 몽진을 가자, 의병이 나서서 왜군에 맞서 싸웠다. 위민이야말로 성리학을 주창하는 선비 사대부들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평화 시에 양반 행세를 하며 반상의 도 타령하는 게 그네들의 모습이었다.

 

팩션인 <강치>의 역사성을 알아보기 위해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숙종 연간에 등장하는 소설 <강치>의 주인공 안용복은 모두 11번 숙종실록에 등장한다. 1693년 계유년 봄에 울산에서 도해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 박어둔과 안용복 2인을 꾀어 납치했다는 기록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당시 39세의 외거노비 출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등잔에 쓸 기름과 고기 그리고 가죽을 얻기 위해 독도에 사는 강치를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조국의 자원은 물론이고 조종의 강토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왜인들에게 택견으로 저항해 보기도 하지만, 동료들을 구하고자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순순히 납치되기에 이른다.

 

이어 오키섬, 요나고와 돗토리 그리고 나가사키와 쓰시마를 반년 동안 아우르는 간난신고를 겪게 된다. 그 와중에 쇼군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 일본인들의 울릉도와 독도 출입을 금지하는 서계를 발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문제는 귀국길에 일본 본토를 지배하는 쇼군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쓰시마 도주의 농간으로 서계를 강탈당하고 안용복과 박어둔은 본국 초량으로 귀환한다.

 

조국의 기개를 왜국에 가서 드높인 안용복이었지만, 지역을 담당하는 동래부사에게 안용복은 도해금지령이라는 지엄한 국법을 어긴 범죄자일 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충무공 이순신이 간신의 모함에 걸려 백의종군하게 되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맞서 모든 것을 희생한 의병장들의 최후가 연상되지 않는가. 아무리 도해금지령이 조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곤장 100대에 유배형까지 당하게 된 안용복의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사실 팩션 <강치>의 정점은 여기까지가 아니었을까. 쓰시마 도주의 악행에 대한 소송과 쇼군의 서계를 되찾겠다는 의지에서 실행된 두 번째 일본행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소설적 밀도도 현저하게 격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기존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강치>를 썼다고 하는데 조선 대표선수로 위장하기 위해 공직을 사칭하고, 두 번째로 도해금지령을 어기는 장면에서는 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귀국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천민 출신으로 국법을 어기고 외교 문제를 초래한 안용복에 대한 처벌 문제로 조정은 두 파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은 대미를 장식할 만했다. 안용복의 사단을 일죄(사형)로 다스려야 한다는 영돈녕 윤지완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성리학적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선에서 국가 질서를 어지럽힌 안용복을 용서한다면 추후에 벌어질 기강문한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파로 등장한 영부사 남구만은 안용복을 처형할 경우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쇼군이 내린 왜인들의 울릉도 독도 해금령이라는 쾌사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결국 주상이 두 개의 공과 실을 가감해서 안용복을 유배형에 처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를 짓는다.

 

첫 번째로 안용복이 일본에 납치되었을 때, 숱한 왜인들의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우선 일본인 뺨치는 일본어 실력이다. 무역을 하는 상인으로 자신들과 별다를 게 없을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가진 안용복이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어떨까. 탁월한 택결 실력과 사무라이들도 감탄할 만한 정상급 무술 실력을 갖춘 이가 나는 어부요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는 게 더 우습지 않을까. 2차 도일에서는 사맹들과 일단의 용병들을 지휘해서 폭풍 속에서 세키부네를 맹렬하게 추격하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정도라면 조선 슈퍼히어로급 선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주목한 것 중의 하나는 이상룡이라는 초량 바닥에서 한다하는 행수급 토착왜구의 존재다.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과 횡포는 그렇다 치고, 그들에게 협력해서 동래 지역 밀무역은 물론이고 살인교사와 안용복의 의붓동생 선화 납치에 가담하는 등 왜인 못지않은 악행을 일삼는다. 거상 오다에게 부역해서 돈을 벌고, 한양의 두둑한 뒷배를 둔 악당은 조정의 법망을 비웃으며 자객을 고용해서 안용복에게 보복을 실행한다. 가상의 인물 설정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작금의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들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모를 정도였다. 학자로서 말도 되지 않는 연구로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매국적인 선동도 문제지만, 그런 선동에 아무런 비판 없이 부화뇌동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더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소설의 제목으로 뽑은, 그렇게 일본인의 손에 멸종된 독도 강치들의 운명은 조국이 지켜줄 수 없었던 조선 민초들에 대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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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8-28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레삭메냐님 제목이 더 좋아요.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에휴.... ㅠㅠ

레삭매냐 2019-08-28 13:05   좋아요 0 | URL
하하 ~ 제 속 마음을 읽으셨나요.

역시나 단발머리님이십니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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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을 받고 나서 그야말로 걸신들린 책을 씹어 먹... 아니 책을 읽었다. 평소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걸출한 입담으로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시던 황교익 선생이 책을 냈다고 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요즘 한풀 꺾이긴 했어도 먹방 쿡방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유행이 언제나 그렇듯 먹방의 호시절도 지나고 있다.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제작비 대비 가성비가 뛰어났기 때문에 방송에서 대유행했다는 썰도 들은 듯 싶다. 그리고 어느 맛집이라는 데 가보면 텔레비전에 나온 집, 아니 심지어 곧 텔레비전에 나올 집이라는 광고까지 있을 정도로 어지간한 음식점이면 맛집 타이틀을 달지 않은 곳이 없더라.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회사에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피디가 와서 맛있게 먹어 달라며 한 마디 해달라고 하는데 어느 동료는 화를 버럭 내며 내 돈 주고 밥 먹는데 왜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피디를 꾸짖던 패기가 문득 떠올랐다. 나도 한 때 인터뷰 따느라 고생한 적이 있어서, 피디의 말대로 온순한 양처럼 하긴 했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항상 그렇지만 시작부터 삼천포다. 시작부터 삼천포로 가야 제대로 이야기가 되는가. 암튼 대한민국 맛 칼럼니스트 1호라 부를 수 있는 황교익 선생의 썰은 까칠하다. 아니 이런 양반이 썰전에 나가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우리의 입맛은 우리가 주로 먹는 음식에서 비롯되었다. 삼겹살 신화는 수출장려운동이 벌어지던 시절, 등심과 안심을 죄다 외국으로 수출하고 남은 찌끄래기를 먹을 방법을 고안하다 생겨났다지. 그래서 족발 삼겹살 순대 기타 등등 요리들이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80년대 LPG 가스의 도입으로 지글지글 타는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 놓고 쐬주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음식에 대한 입맛은 지극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황선생의 주장이다. 한국인은 왜 밥을 먹어야 하나? 빵을 먹고 살면 안 되나. 다른 먹거리들이 지천인데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교조주의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도 사람이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아니 빵이나 고기를 먹고도 힘을 잘 쓸 수 있는데, 아니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해본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도 공감하다. 이러다 황선생 교도가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다른 걸 먹어 봤어야 그게 맛있는지 알 수 있지.

 

내가 어릴 적에는 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치킨 이런 건 없었다. 오로지 시장에서 파는 통닭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 닭집에서 튀긴 통닭은 거대했다. 어쩌면 시중에서 우리가 먹는 육계는 산업상 필요하기 때문에 덜 키워서 육향도 나지 않고 그런다는 황선생의 지적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닭이 너무 작다는 거다. 뉴스공장에서도 선생이 주장했듯이, 다른 고기들은 보통 근수로 파는데 왜 닭은 마리 기준으로 파는 걸까? 그만큼 닭고기가 대중에게 접근성이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봤다. 여전히 한우 소고기는 비싸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돈만 있다면 삼시 세끼 흡입할 수 있지만 아직 나의 소비 수준은 그 정도는 아닌가 보다.

 

모든 건 산업의 논리에 따르게 되어 있다는 선생의 말에 수긍이 간다. 대량구매, 대량생산 시스템의 유통재벌이 서민들을 위해 내놓은 통큰 시리즈를 구입하는 사는 우파 논리를 그리고 조금 까다롭고 비용이 들더라도 원산지와 생산자를 확인하는 공정구매를 선택하는 이들은 좌파 논리를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식탁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되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도래는 어쩌면 농업국가에서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노동자들을 위한 자본의 필연적 개입이 아니었을까. 어느 책에서는 짜장면이야말로 한국 산업화에 투신한 다수 노동자들의 전투식량이라는 표현도 썼다. 어릴 적 나에게 짜장면은 한 달에 딱 한 번 아버지 어머니 월급날 먹을 수 있는 별미기도 했지만.

 

황교익 선생이 도전하는 음식 신화는 무궁무진하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지는 떡볶이가 사실은 떡탕이나 떡고추장조림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생각, 일제가 만들어낸 천일염 신화, 공감할 수는 없지만 김밥의 원조가 일본의 후토마키라는 썰 등 <음식은 어떻게 진화가 되는가>에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해 오던 음식에 대한 다양한 서사가 독자를 유혹한다. 아 그리고 추석 상에 오르는 음식들이 사실은 절기상 가장 맛이 없으며, 전통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음식 준비도 남자가 해야 한다는 주장 앞에서는 환호작약했다. 뭐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시던 바나나나 파인애플 그리고 맥주 같은 음식을 올리면 왜 안 되는지 나는 궁금했는데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억압된 집단 기억으로부터의 해방감마저 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읽는 동안, 유쾌하고 즐거웠으며 덤으로 집단기억의 속박으로부터 해방까지 얻을 수가 있어 좋았다. 타자화된 관성적 미각의 판타지로부터 해방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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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상실사
청얼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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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26, 민국 30년 그리고 민국 34년이라는 연호가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쇼와니 헤이세이니 하는 연호가 익숙하듯이 중국 사람들에게도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저런 시기는 중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 같은 이방인이라면 좀 이해가 되지 않는군 하고 넘어가겠지만.

 

중국 출신 천재 영화감독 청얼이 자신의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단편집으로 풀어낸 게 바로 <로맨틱 상실사>라고 한다.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으니 영화에 대해 알 길은 없고, 소설을 통해서나마 그의 작품 세계를 가늠해 보련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로맨틱 상실사>에는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민국 2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과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는 구조를 띠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 다이 선생, 그러니까 중화민국 장제스 정부에서 특무조직을 이끌었던 수장 다이리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1946년 다이리가 죽었는데, 그가 죽지 않았다면 국공내전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설도 있을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30년대 상하이는 개항장으로 국제도시였다. 동시에 중일전쟁으로 기세등등하던 일본군이 베이징, 난징과 더불어 전략 목표로 삼은 도시기도 했다. 일제의 패망을 일찍이 예상한 인사들은 일본에게 무조건적인 항복과 전범 처벌을 요구한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로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의 파죽지세에 놀라 충칭으로 옮겨 항전을 이어가고 있지 않았던가.

 

정치적 상황이 그랬다면, 민중들의 삶은 어땠을까. 시골 마을에서 올라온 청년들은 오로지 성공을 하겠다는 일념에 범죄조직에 가입해서 그들이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저지른다.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팔뚝을 자르질 않나, 삽으로 살인도 한다. 그러다 자신도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에게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물론 영계는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해 보답하지 않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회와 권력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세상에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작가 청얼의 메시지를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편, <인어>도 마찬가지다. 수족관에서 인어 연기를 하는 어느 여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두 남자를 그녀를 돕겠다고 결심하지만 말 뿐이다. 술자리에서의 한담 같다고나 할까.

 

다이리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여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고 있던 시절은 수상했고,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던 각자도생의 시대였다. 그나마 그 시절에는 풍류와 낭만이 있었고 의리 같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감성이 전설의 중심에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는 얼결에 결혼해 버리고, 바람을 피다가 납치된 남편을 건사하기 위해 암흑계의 거물 두 선생에게 청탁을 넣는다. 그 다음에 이야기가 어떻게 됐더라.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배우의 남편이 그대로 죽었어도, 아니면 정상에서 추락한 여배우가 신산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말이다. 청얼 감독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에 방점을 찍는다. 그땐 그랬지 하고 말이다. 사회주의의 탈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자본주의 물질사회를 이룩해 나가고 있는 현대 중국의 모습은 인간이 원하는 구원의 그것과 너무 괴리가 있지 않은가. 물질적으로도 말이다.

 

장삼봉 선생이 장무기에게 태극권을 전수해 줄 때처럼, <로맨틱 상실사>를 읽을수록 이전의 이야기들을 기억할 수가 없더라. 현재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너무 몰입해서? 아니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스토리에 그만 길을 잃어서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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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고 미워했다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 <사랑했고 미워했다>의 원제목은 <야곱, 내가 사랑했던가> 정도가 될 것 같다. 1940년 초반, 미국 체사피크 만에 있는 라스섬이라는 가공의 무대를 배경으로 미국 출신 작가 캐서린 패터슨이 198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십대 소녀 사라 루이스 브래드쇼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신보다 훨씬 나약하고 잘난 쌍둥이 여동생 캐롤라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 유년의 기억들을 죄다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이 큰 병을 앓은 캐롤라인을 우대했고, 성장해서는 뛰어난 목소리로 아버지의 굴 채취선 포셔수호를 타고 나가 집게로 굴을 채취하고, 탈피 과정에 있는 게를 잡는 루이스(휘즈)와는 다른 삶을 살았으니까. 어째 우리나라 콩쥐팥쥐 설화가 생각나는구만 그래. 물론 상황은 좀 다르지만.

 

그리고 일본 해군기가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전쟁의 막이 올랐다. 반공 구호가 난무하던 우리나라의 예전이 그랬던 것처럼, 전시에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 나타나면 의심을 사기 마련이다. 꼬마 루이스는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월리스 선장 할아버지가 잠수함을 타고 온 나치 스파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건 아마 라스섬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려운 가정형편의 콜과 우정을 쌓고, 월리스 선장을 도와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려는 순간, 라스섬을 덮친 엄청난 폭풍으로 월리스 선장은 자신의 집을 잃게 된다. 그리고 발작으로 쓰러진 트루디 할머니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고 월리스 선장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십대 소녀 휘즈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사춘기 증상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서는 자신의 동생 캐롤라인에게 가족의 관심이 온통 가 있질 않나. 굴과 게를 잡아 판 돈으로 언젠가 라스섬을 떠날 계획을 세우는 휘즈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월리스 선장이 트루디 할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캐롤라인을 볼티모어로 유학 보내겠다는 말에 휘즈는 충격을 먹는다. 믿었던 월리스 할아버지마저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휘즈가 그런 자신의 문제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의 지나친 편애에 대해서도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했다면 문제가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엄격한 감리교도 가정에서 성장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에서 마침내 제목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다. 도대체 원제에 나오는 제이컵(야곱)이 누군가 싶었다. 소설에는 제이컵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편, 캐롤라인이 성악가로서 꿈을 이루기 위해 볼티모어로 떠나고 콜마저 해군에 입대하면서 휘즈의 외로움은 깊이를 더해간다. 전시경제 속에서 학교마저 때려치우고 아버지의 일을 돕는 휘즈의 모습은 야곱이 아니라 에서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전쟁이 계속되면서 휘발유 배급이 엄격하게 통제되었기 때문에, 휘즈와 아빠는 체서피크 만 멀리 나가 어로행위를 할 수도 없었다. 가계를 돕기 위해, 포셔수호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가 굴과 게 그리고 게의 미끼로 사용할 청어를 잡는 휘즈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안타까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 이상 교회는 물론이고 학교 나가기까지 거부한 휘즈는 어머니와 집에서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교사였던 어머니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고 해야 할까.

 

, 그렇다면 과연 사라 루이스 브래드쇼의 미래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라스섬을 떠나 메릴랜드 대학에 진학한 사라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여자 의사의 탄생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간호사가 되어 산골 마을로 가 돈을 모아 의사의 꿈을 이어가겠다고 결정한 사라는 평소에 가고 싶던 산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 수잔이 걸었던 길과 비슷한 인생의 행로를 걷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사라는 에서였을까? 저자가 선교사였고, 남편이 목사라는 사실에서 보듯 <사랑했고 미워했다>에는 성경에 나오는 코드들이 다수 등장한다. 가장 밉상 캐릭터인 사라의 할머니는 모두를 증오하면서 곧잘 성경을 인용하지 않던가. 어쩌면 그녀는 다른 라스섬의 소녀들처럼 하이럼 월리스 할아버지를 사랑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50년 만에 돌아와, 트루디 할머니와 결혼했을 그렇게 저주를 퍼부었을 지도. 사랑에서 증오로 바뀐 뒤틀린 감정은 반세기라는 세월도 무디게 할 수 없었던가.

 

예상대로 사라 루이스 브래드쇼의 삶은 결국 라스섬과 가족을 떠나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독자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다만 어떤 수순을 거쳐 그것이 이루어지는지가 궁금했을 뿐.

 

탈피하는 게 잡이와 굴 채취가 사라 루이스에게는 고역이자 노동이었겠지만, 문득 나도 그녀처럼 그런 단순한 노동에 몸을 맡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주의, 가족에 대한 의무 그리고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발견 등 캐서린 패터슨의 사랑과 미움의 파노라마 <사랑했고 미워했다>를 읽으면서 내 마음을 스쳐간 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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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24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삭매냐님처럼 ˝저도 OOO을 읽었는데....˝랄지 ˝XXX은 사 놓고 아직이네요˝랄지 그런 댓글을 달아보고 싶은데, 레삭매냐님이 소개하시는 책은 작가조차 초면일 때가 많아서 맨날 망해요...... 이것이 바로 클라스의 차이인가.

레삭매냐 2019-08-26 09:46   좋아요 0 | URL
책의 세계는 참말로 넓고
깊은 것 같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네요.
새로운 작가들과 그들이 펴내는
책들의 행렬은 끝이 없구요.

기존 작가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작가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계속 도전해 보게
되네요.

물론 망할 때도 많지만요 ㅋㅋㅋ
클라쓰는 무신... 무식하게 책읽는
인간의 모습이지요.

목나무 2019-08-24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이 댓글에 심하게 공감합니다. ㅋㅋㅋ

레삭매냐 2019-08-26 09:47   좋아요 1 | URL
아니 이게 무신...

허접 클라쓰랍니다.

psyche 2019-08-25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의 클라스가 다르다는 syo 님과 설해목님의 말씀에 공감!
근데 두 분 역시 클라스가 다르신 분들!! 이 책의 작가 캐서린 패터슨을 모르시는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 작가이기 때문일 거에요. 이 책 Jacob Have I Loved를 비롯하여 뉴베리 상을 세번이나 받은 유명작가이지만 아동문학에 관심이 없으시면 당연히 모를 수 밖에요.

레삭매냐 2019-08-26 09:49   좋아요 0 | URL
아하 그랬었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책 읽으면서 흠 어른이를 위한 책
은 아닌 것 같더라니, 그랬었군요.

야곱과 에서 변주곡, 나름 즐겁게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