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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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키로가 작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가지 주제들을 아우르는 그런 제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는데 영어 단어 'end'에는 죽음이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는 자신의 소설집에서 사랑과 죽음이 빚어내는 광기에 대한 초현실적 르포로 전달해 준다.

 

키로가 집안 삼대에 걸친 죽음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후기에서 잘 다루고 있으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삶의 종착역인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녹색 지옥이 제공하는 타나토스적인 유혹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날것 그대로인 대자연이자 매혹적인 공간으로서 녹색 지옥을 소재로 삼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에 그들의 선배격인 오라시오 키로가가 존재했다는 점도 내게는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가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지경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키로가 작가가 소설집에서 그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왠지 광기의 동의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비이성적인 요소들은 광기로 연결되고, 예의 광기가 카이로스(특별한 시간)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결국 크로노스(죽음 혹은 소멸)에 이르게 된다는 그런 설정이라고나 할까.

 

레콩키스타 이래,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 이달고들의 후예인 이민자들은 원주민들과 달리 녹색 지옥의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아기레나 코르테스 같은 무법자들이 그랬다면 이해하겠지만, 수세기가 지나서도 무모한 도전이 계속되는 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혼을 앞두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겠다고 나섰던 객기 넘치던 청년은 어이없게도 코렉시온 개미떼의 습격을 받아 백골이 되었다. 훗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하나의 특질이 된 주술적 리얼리즘의 원형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정글 전설의 문학적 재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녹색 지옥의 특징 중의 하나인 벌목장의 현실을 겨냥한 <멘수들>도 수작으로 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이 경작지 확장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수십 년간 파괴되어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기후 위기의 도래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녹색 지옥에 침투한 서구 자본주의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무진장한 산림자원을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지금처럼 고도의 기계문명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재를 베고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직종이 바로 멘수, 나무를 베고 임가공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었다. 자본가들은 솜씨 좋은 멘수들에게 처음에 목돈을 안겨 주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던 멘수들은 그 돈으로 흥청망청하며 유흥에 그 돈을 탕진했다. 그런 방식으로 멘수들은 관리인들에게 종속되어 갔다. 빚쟁이가 되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멘수들이 관리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탈출이라도 하게 되면, 윈체스터 소총으로 무장한 현장 감독들은 인부들을 동원해서 바로 인간 사냥에 나섰다. 녹색 지옥을 소중한 현금으로 바꿔줄 귀중한 자산이 도망치는 걸 그들은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동료를 정글에서 말라리아로 잃고 탈출했지만 결국 다시 벌목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멘수의 모습에서는 키로가 작가가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리얼리즘에도 비범한 안목을 가졌구나 싶었다.

 

니퍼 더 도그(Nipper the dog)가 그려진 축음기를 얻기 위해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파라나 강변의 베테랑 칸디유는 서구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홀렸다. 축음기를 손에 넣기 위해 칸디유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홍수에 떠내려 오는 나무들을 건져 올린다. 이것은 사랑이 유발한 광기와는 다른 차원의 광기다. 칸디유와 거래에 나선 영국인은 고급 목재인 자단나무를 요구한다. 물욕에 대해 칸디유가 보이는 광기는 소중한 자단 원목을 지키겠다고 홍수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이의 그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구에서 이식된 폭스테리어가 라틴 아메리카의 야구아이(강아지)가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일단 대지를 달구는 타는 듯한 더위와 가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짐승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놈의 야구아이는 다른 사냥개들처럼 뛰어난 사냥 솜씨도 발휘하지 않고 그저 취미로 도마뱀붙이 정도나 잡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에게는 유익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만디오카며 옥수수마저 모두 말라 죽게 되자, 비굴하게 야구아이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생존에 올인한다. 야구아이는 설익은 옥수수를 훑고, 이웃의 닭장을 기웃거리며 빠르게 살아남는 법을 습득한다. 이 지점은 왠지 우루과이 민중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 키로가 스타일의 헌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소중한 암탉을 털린 주인들은 소총으로 응징에 나서고, 야구아이라는 존재의 소멸로 귀결된다.

 

소설집의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술은 결국 모두가 덧없는 환영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간이 갖는 소멸성은 한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까지 모두 휘발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다. 녹색 지옥의 대자연이 빚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광기의 실체는 낯선 유혹인 동시에, 파멸의 전주곡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때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설정도 등장해서 서사를 곱씹게도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가 차린 성찬에 감탄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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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10-09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_-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
인데, 정말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
는 작가들은 천지삐까리인가 봅니다.
 

 


연휴를 앞두고 퇴근하여 꺼벅꺼벅 졸던 차에 108일 오후 8시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노벨문학상 발표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즈음해서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작가의 책들을 미리 사제껴 두어야 하나 어쩌나 아주 살짝 고민도 했더랬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 정도는 읽어 주어야 한다는 허영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에 작년에 발표된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인가 하는 책을 펴들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내팽개쳐 버렸다. 노벨상 받은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재밌는 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업무 때문에 피로해서 글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나 할까.

 

엊그제이던가, 투자하는 마음으로 헌책방에 가서 절판되었다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를 사서 처음의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독서광인 주인공 여자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그런 책이었는데...

 

어쨌든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초는 모든 국내출판사들이 각각 로또 한 장씩을 쥐고 자기네와 계약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고대해 마지않는 그런 시즌이란다. 밥 딜런 때도 그랬지만 그리고 더 오래 전에 무슨 스웨덴 작가가 상을 받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출판사들은 보기 좋게 물을 먹었다. 올해 수상자는 미국 출신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라고 한다.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해 왔지만(물론 시는 읽지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국내에 출간된 책도 하나 없더라. 그러니 공평하게 배부된 로또는 모두 꽝인 셈이다.

 

그동안 가장 흥행이 잘된 노벨문학상 작가는 오르한 파묵이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마 가즈오 이시구로도 좀 재미를 보지 않았나 어쨌나. 나의 원픽이었던 페루의 MB라고 불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샘도 생각보다 그렇게 노벨문학상 빨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노벨문학상의 여진이 모두 가시고 나니 요사샘은 계속해서 신간을 발표했지만 그의 신간들은 아예 출간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했기 때문일까.

 

온라인 서점에서는 재빠르게 루이즈 글릭의 시가 수록된 책들을 랜선 매대에 올렸는데 참으로 초라하구나. 왠지 업자들이 허탈해 하는 그런 심정이 느껴진달까. 올해는 틀렸으니 다시 내년을 겨냥한 로또를 한 장씩 돌려 보자.

 

여담으로 예전에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 받았다는 소식 듣고서는 동네 중고서점에 달려가 저자의 책을 사들인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책을 여직도 읽지 않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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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09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랜선 매대에 올려진 그녀의 시가 과연 얼마나 살아남아 있을까요? 시는 자고로 한국인이 쓴 시가 최고인것 같은데 ㅎㅎㅎ

레삭매냐 2020-10-09 21:13   좋아요 0 | URL
소설은 몰라도 시는 정말 그 나라
언어가 아니면 다른 언어로 번역
되어 얼마나 시가 품은 감성이 전달
될 지...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페크pek0501 2020-10-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맨 끝줄... 저와 비슷하십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4   좋아요 0 | URL
해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라고나
할까요.

우와 노벨상 받았단다, 책을 사
야지. 그리고는 안 읽게 되네요.

그나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의 책은 재미나 있어서 많이
읽었네요.

coolcat329 2020-10-0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발표 듣고 출판사 생각이 젤 먼저 났네요. ㅎㅎ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5   좋아요 0 | URL
노벨문학상 특수를 땡겨야 하는데
세상에 국내에 나온 책이 1도 없다니 -

가히 멘탈이 날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발표 직후 혹은 한두달 안에 쇼부를
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
네요.
 
오다 노부나가 7 - 혼노 사의 변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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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다 노부나가>의 후반부는 마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5권 미카타가라하 전투가 그랬고, 6권 나가시노 전투가 그랬다. 마지막인 7<혼사 사의 변>도 마찬가지였다.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쿄토 상경 작전 이래, 천하의 공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간 사 세력과 결탁한 쇼군, 아사쿠라-아사이 연합군 그리고 카이의 타케다 신겐으로 이루어진 반 노부나가 연합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방이 적이었다. 우군은 오로지 미카와와 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를 영지로 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뿐.

 

<오다 노부나가> 마지막 권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무려 세 번이나 배신을 감행한 마츠나가 히사이데가 자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쪽에서 자신을 위협하던 우에스기 겐신을 막고, 사이고쿠의 패자 모리 정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정에서 우다이진 벼슬도 제수 받아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우다이진의 운빨은 정말 대단했다. 미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군에게 괴멸적 타격을 가한 신겐이 죽으면서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그의 사후에는 그렇게 대결을 피하려고 했던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의 대결에서도 결국 겐신이 병사하면서 천하포무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다만 시대의 혁명가이자 풍운아였던 우다이진은 내부 단속에 결국 실패한 영용한 군주였다. 외부의 적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성공에 일조한 가신들에게까지 가혹했던 것은 결국 그의 운명을 끝장낸 패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오와리 이래 후다이였던 하야시 사도노카미를 숙청하고 모반한 아라키 무라시게 일족에 대한 처참한 주벌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칸파쿠 히데츠구 일족 처형을 연상시키는 그런 무시무시한 오판이었다.

 

하마마츠의 사돈 도쿠가와 가문에도 사단이 났는데, 그것은 바로 시나노의 타케다 카츠요리와 내통한 이에야스의 정실 츠키야마 부인과 그의 아들 노부야스 문제였다. 우다이진의 장녀 토쿠히메가 전한 오카자키 내전의 스캔들과 이에야스 가신들의 실수로 장차 천하를 다스릴 패자로서 우다이진은 사위에게 할복을 명령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정실 부인과 적장자에 대한 구명을 호소할 수도 있었으나, 당시 자신보다 기령과 무력에서 앞선 상전 격인 동맹자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우다이진에게 운명의 해가 된 덴쇼 10(1582)의 출발은 산뜻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처참한 패전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카이와 시나노의 패자로 군림하던 타케다 카츠요리의 실정으로 다수의 가신들이 이탈한다는 첩보를 접수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미카타가하라의 최종 복수전에 나선다. 수대를 거쳐온 미나모토 씨 명문 출신의 카츠요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멸문하는 장면도 이미 읽었기에 기시감으로 넘어가련다.

 

우다이진의 진짜 문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사천왕 중의 한 명인 아케치 미츠히데에 대한 처우였다. 원래 아사쿠라 가문에 출사하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백부는 바로 오노/노히메의 아버지였던 미노의 살무사 사이토 도산이었다. 도산 역시 미츠히데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었다. 물론 그것은 사위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오다 군단에 합류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축성의 달인으로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 성을 건축했으며, 무장으로서도 숱한 전공을 세워 단바와 오미의 54만 석의 영지를 받은 오다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었다.

 

위기를 극복한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바로 이런 사나이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대머리라고 부르며 자신의 측근들인 코쇼들 앞에서 망신 주기를 거듭한다. 십대인 모리 란마루를 시켜 대신 폭행하는 장면에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게다가 카츠요리 정벌 후에 미츠히데 자신의 결정적 말실수까지 겹치면서 미츠히데는 자신이 결국 우다이진에게 팽당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된다.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의 중신이 모반할 생각을 품게 한 우다이진 노부나가에게 돌려야할 것 같다. 교토를 방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접대역을 맡겼다가 자신의 의중을 읽지 못한 미츠히데에게 다시 한 번 벼락 같은 호통을 친 우다이진. 한 때 천하를 품을 만한 기량을 가졌던 무장에게 그런 모욕을 가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빗추의 다가마츠 성에서 사이고쿠의 모리 군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에 들어가 싸우라는 명령에 결국 아케치 미츠히데는 병력을 동원해서 혼노 사에 머물고 있던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습격한다.

 

할복을 거부하고 혼노 사에서 끝까지 싸우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어느 지점에서 이시야마 혼간 사가 있던 오카사에 거성을 쌓고, 사이고쿠의 모리 가문을 치고 그 다음에 칸토 오다와라의 호죠 가문을 정벌하는 유언 같이 남긴 말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다. 그는 과연 자신의 죽은 뒤까지도 예언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였단 말일까.

 

오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타령하던 아츠모리처럼 그는 인생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풍운아의 삶을 혼노 사에서 마무리지었다. 평소 관습과 전통을 우습게 알고,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려던 그의 천하포무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고수처럼 전장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그의 전략 전술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바타 카츠이에나 하시바 히데요시 같이 야심만만한 가신들을 부리고, 동맹자이자 라이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내로라하는 무장들을 다루는 솜씨 역시 대단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새로 쌓은 아즈치 성을 킨키의 새로운 중심지로 삼아 쿄토의 국왕을 근왕이라는 미명 아래 통제하면서 각지를 제압하려는 시도도 인상적이었다. 일찍이 교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통행의 제한을 풀고 물산의 유통을 장려한 것처럼 아즈치 성 일대를 일체의 세가 없는 자유도시로 만들어 사카이 버금가는 상업 요충지로 만드는 경세의 달인이기도 했다. 난세의 어둠을 걷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과연 천하인 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오와리의 난폭자라는 킷포시 시절의 별명처럼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게 문제였다. 덕분에 후세에도 그에 대해 무력만 앞세우는 무자비한 폭군이라는 세간의 평이 남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실패를 옆에서 조용히 관찰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포용과 평화의 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성공했다. 결국 천하제패에 실패한 군주가 주는 교훈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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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1 - 아버지와 아들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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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오다 노부나가다. 장장 32권에 걸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났더니 7권 짜리 오다 노부나가는 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참 읽을 적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사서분께서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고 이 자리를 빌어 밝히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서선생님.

 

일단 1권은 구입했고,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놓았다. 이번 추석 명절을 끼고 <오다 노부나가>를 읽을 그런 계획이다. 일단 이야기는 나고야 성의 성주 오다 사부로 킷포시 노부나가가 15세에 관례를 올리고 장가까지 든 덴분 17(1548)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오와리의 멍청이라는 별명으로 난폭한 행동을 일삼은 킷포시 노부나가를 어느 나그네 무사가 찾는다. 이 나그네 무사는 그를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삼은 미노의 영주이자 살무사라는 별명을 가진 사이토 도산이 파견한 정보원이다. 참외를 도둑질해서 먹고, 벌거벗다시피 한 여자들의 씨름을 독려하는 킷포시의 모습에 나그네 무사는 혀를 찬다. 관례라는 성년식을 치른 킷포시는 이미 폭군 스타일의 아버지 노부히데도 어쩔 수가 없는 그런 망나니 같은 사나이다. 게다가 그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아버지 노부히데가 킷포시에게 붙여준 노신 히라테 마사히데도 이 철부지 도련님을 다루지 못한다. 킷포시는 특히 승마와 수영도 잘했는데, 자신이 미카와의 고아라고 부르는 마츠다이라 타케치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오와리의 인질로 잡혀와 있는 타케치요를 데리고 엄청난 거리를 같이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한다. 거물은 자신과 비슷한 거물을 미리 알아 본다고, 평생의 동지이자 미래의 사돈이기도 한 타케치요에게 보이는 애정이 눈길을 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다른 방식의 편집 때문인지 <오다 노부나가>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짧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이다. 전자가 좀 더 긴 방식이라면, 후자는 탁탁 치고 나가는 그런 느낌. 뭐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더 좋기는 하지만 약간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전직 승려이자 기름장수 출신으로 미노의 살무사라는 별명으로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 사이토 도산은 애지중지하는 막내딸 노히메를 오와리로 시집 보낸다. 모두가 알다시피 난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정략결혼의 일환이었다. 도산은 노히메에게 신랑감인 킷포시가 정말 멍청이라면 가차 없이 칼로 찌르라는 엄명을 내린다. 하지만, 노히메가 누구인가. 센고쿠 시대를 주름잡은 재기 넘치는 여걸 중에 원탑이 아니었던가. 아버지가 내린 칼날이 방향이 어쩌면 친정 아버지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며 되받아친다.

 

센고쿠의 영걸 킷포시의 아내답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킷포시의 기행을 노히메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우선 미카와 출신 고아인 타케치요를 애정하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 노부히데가 자그마치 25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두는 바람에 친족이 아닌 라이벌 같은 동생들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킷포시의 행동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한다. 정월부터 마에다 이누치요(토시이에)를 위시한 8명의 코쇼들을 데리고 키요스 성 주변에 방화를 저지르고 다닌 망동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노히메를 멀리하던 킷포시는 마침내 그녀를 자신의 진짜 아내로 받아들인다.

 

센고쿠 시대의 종결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킷포시 노부나가는 이미 십대 시절부터 일체의 구습을 경멸하고, 새로운 질서 창조에 골몰했다. 난세에 어울리지 않게도, 아버지의 중신들은 다이묘의 후계자다운 복식을 고집했고 예의범절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오다 가문을 떠받치는 신하들에게 난폭한 언행을 일삼는 킷포시는 후계자감이 아니었다. 사실 어떤 점에서 센고쿠 시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혹은 성주는 자신의 가문 뿐 아니라 그 가문에 딸린 가신들의 호구도 책임져야 했다. 자신의 영지를 침범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격렬하게 싸우다가 패색이 짙어지면 할복을 하는 것도 패자는 난세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살벌한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니 훗날 오와리의 멍청이 혹은 깽깽 말이라는 비하를 듣는 킷포시 대신 같은 어머니 아래 태어난 준수한 노부유키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주군이었다고나 할까.

 

킷포시의 나와버리인 오와리는 서쪽에서는 미노의 살무사로 알려진 장인 사이토 도산이 그리고 동쪽에서는 미카와-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 일대를 장악하고 상경전을 준비 중인 이마가와 가문의 요시토모가 호시탐탐 침공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아버지 노부히데가 42세에 뇌졸중으로 급서하면서 얼결에 오와리의 태수 자리를 물려받은 킷포시는 이제 드디어 자신의 실력을 천하에 내보일 시간이 되었다.

 

자신의 사부로 언제나 자신을 지지하던 노신 히라테 마사히데가 할복으로 자신의 주군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다. 그나마 오와리에서 자신의 방패막이었던 히라테 노인이 죽으면서 킷포시는 점점 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다. 그때쯤 미노의 살무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신의 달인답게 사위에게도 미노의 살무사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자기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놈이라면 계책을 발동해서, 사위와의 첫 대면 자리에서 간단하게 죽여 버리겠다는 미노의 살무사 특유의 전술을 구사한다.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전략의 귀재 노히메는 절대 킷포시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안된다고 만류하지만, 킷포시가 누구인가. 하지 말라는 일은 죽어라고 하고, 하라는 일은 기가볍게 무시하는 그런 사나이가 아니었던가. 이미 아버지의 장례식날 정중한 분향 대신 향을 집어 아버지의 위패에 뿌리는 기행으로 중신들을 놀래키지 않았던가. 동시에 자신에 반대하는 친 노부유키 인사들의 자중지란을 유도하기도 했다.

 

카즈사노스케 노부나가는 장인 도산을 능가하는 술책으로 당시 한 자루도 구하기 힘들다는 총포를 자그마치 300자루나 장만하고 장창부대를 동원해서 미노의 살무사를 압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 모든 것이 사분오열된 오다 가문의 단결을 위한 카즈사노스케의 포석이었다. 다음은 모리야마 성의 성주이자 자신의 숙부인 오다 노부미츠였다. 그를 설득해서 성에서 물러나게 만든 카즈사노스케의 다음 목표는 키요스 성에서 자신에게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고 있는 히코고로 노부모토였다. 과연 카즈사노스케는 어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히코고로를 키요스 성에서 몰아낼 것인지 2권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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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8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권짜리가 껌이라니요? 전 3권짜리 장편소설을 살까 말까 하고 있는데요...
저도 님 덕분에 용기를 내는 걸로... 껌이다, 그러면서...ㅋ

일본은 할복이 많아요. 실제로 할복한 작가들이 있지요.

레삭매냐 2020-09-28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다 사서 읽지는 않고
시작만 ㅋㅋㅋ
나머지는 죄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답니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가 그랬
다고 하는 걸 들은 것 같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32 - 제3부 천하통일 32 입명왕생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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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일이 걸렸다. 지난 727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32권을 읽는데 걸린 시간이다. 물론 그동안에 다른 책들은 만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이 시리즈부터 끝내야 한다는 그런 모종의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난 두 달간 나의 모든 독서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간사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희대의 영웅이자 권력가 그리고 모략의 달인 이에야스는 고희의 나이를 넘어 이제 자신의 사후를 대비한다.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인 시대에 74세의 노인은 확실히 천수를 넘겼다. 그러나 여전히 천하는 평정되지 않았고, 센고쿠 시대의 기운은 빠지지 않았다. 이미 오사카 대전에서 결전에 나섰던 사나다 유키무라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인 전국인의 모습이었다.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신불을 앞세워 노래하고 있지만, 전쟁이 춤추는 시대를 좋아하는 무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야규 무네노리나 세키슈사이 같은 이들이 신카게류의 사람을 베지 않는 활인검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전란의 시대를 칼과 창 한 자루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씨가 먹히지 않는 소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난세에 꽃을 피우는 무사들과 달리 상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상인들에게 평화의 시대는 교역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소중한 시기이기도 하다. , 그런데 전란의 시대에 상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 오고쇼 이에야스에게 올리브유로 튀긴 도미 요리를 올린 3대 챠야 시로지로도 오사카 전투 당시 동군에게 남만에서 수입한 대포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했던가. 지금의 내로라하는 일본 재벌들도 모두 일본 제국주의 시절 전쟁을 계기로 부흥한 그런 기업들이 아니던가.

 

어쨌든 미카와 너구리 선생의 생애 마지막 미션은 바로 아들 마츠다이라 타다테루와 오슈의 도쿠간류(외눈박이 용) 다테 마사무네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오사카 전쟁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히데요리 모자를 죽게 만든 일로 해서 오고쇼 이에야스는 큰 심리적 부담을 안게 됐다. 어쨌든 도요토미 타이코가 남긴 유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점은 천하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런 과오가 아닌가. 2대 쇼군 히데타다와 그가 거느린 가신들의 생각과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경험한 오고쇼의 생각은 결이 달랐다.

 

그런 점에서 방자한 언행을 일삼하는 자신감 넘치는 아들 마츠다이라 타다테루의 문제를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는 어려웠다. 우선 타다테루는 장인 다테 마사무네의 영향으로 자신 역시 다음 쇼군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오고쇼에게 히데요리가 죽은 오사카 성을 넘겨 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었다,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십대 청년의 생각과 고희를 넘긴 노장의 생각은 접점이 없었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도 타다테루는 전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동군 측에 위기를 불러올 뻔 하기도 했다. 무례를 들어 쇼군의 가신을 죽이기도 했고, 난전 중에 아군 부대를 적군과 함께 몰살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유를 만들면 한이 없겠지만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재능과 야심을 겸비한 타다테루를 숙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을 좀 더 파보면 모든 문제는 이에야스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일단 오쿠보 나가야스라는 문제적 인간을 타다테루의 중신으로 붙여 주고, 더 큰 야심가인 다테 타다테루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한 결정은 모두 자신이 내린 게 아니었던가. 저자는 그런 이에야스의 인간적 고뇌를 다루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어쨌든 누가 뭐래도 예의 결정과 문제의 시발은 오고쇼가 잘못 내린 결정의 후과였다.

 

다양한 전술을 동원해서 우선 타다테루를 자중시키고, 에치고 외지에 유폐하는 데 성공한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마지막 상대를 굴복시키는데 나선다. 하지만 타이코에게도 반항한 전력의 도쿠간류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이에야스가 죽던 해인 1616년 정월에 쇼군이 대군의 하타모토를 동원해서 오슈 정벌에 나설 거라는 소문이 에도 성에 파다하게 퍼졌을까. 오고쇼와 쇼군이 술책을 부려 자신을 체포하고 카이에키에 나설 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도쿠칸류는 자신의 사위 타다테루 숙청 와중에 매사냥을 핑계로 자신의 영지인 무츠로 튀어 버렸다. 어쩌면 이런 기략을 무시로 구사하는 다테 마사무네야말로 마지막 전국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칸토에서 매사냥을 핑계로 대규모 군사연습이라는 무력시위를 보이기도 했던 오고쇼는 챠아 시로지로가 진상한 도미 튀김을 먹고 발병했다. 다음 순서는 죽음을 대비한 행사들이 차례로 진행된다. 우선 무츠의 도쿠간류가 병문안에 나서 진심으로 오고쇼의 질서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긴 사위 타다테루의 실각, 전쟁이 나면 자신을 보좌할 참모 카타쿠라 카게츠나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무츠의 호랑이는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타다테루를 뺀 나머지 아들들을 불러 자신이 이룩한 에도 바쿠후 쇼군이 지배하는 질서유지에 만반의 대비를 하라는 유지를 남긴다. 자신은 비록 무()로 천하를 제패했지만, 평화의 시대에는 오직 유가의 장유유서로 대변되는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체험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선배격에 해당하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달리 천수를 넘어선 수명과 많은 자손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농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영주에 대해 쇼군에게 직접 고할 수 있는 언로를 만들어 놓은 것은 탁월했으나, 영주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그리고 수탈 사실을 고한 농민에게는 반역이라는 책임을 물어 책형으로 처벌하라는 결정은 역시나 시대적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처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순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던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인생나무라는 비유를 들어가며 드디어 극락왕생의 길에 올랐다.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 씨가 센고쿠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나치게 미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들었다. 제 아무리 천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에야스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할 수는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신은 요도 부인과 히데요리 모자를 끝까지 살려 주고 싶었으나, 쇼군의 직계 부하들이 그들을 할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모두 신이라는 존재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천명 의식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바지 사장인 아들 히데타다 대신 실제적인 권력의 중심은 슨푸에 자리잡은 오고쇼 이에야스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천하의 모든 이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오고쇼가 오사카 여름 전투 말미에 엄명을 내려 히데요리 모자를 보호하게 했다면, 그들의 운명이 비극으로 끝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그저 후다이 가신들의 뿌리 깊은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적대감의 발로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큰 사건이지 않았던가. 히데요리 모자의 죽음은 미카와 너구리 선생 말년을 장식하는 명백한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나의 지난 57일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이번 추석 전에 다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니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었는데 작심하고 읽으니 그다지 어렵지 않은 도전이었던 것 같다. 한창 도서관으로 책을 빌리러 다닐 적에 동네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이 책을 읽기 전에 <오다 노부나가>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젯밤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지막 권을 다 읽기 전에 미리 <오다 노부나가> 1권을 주문했다. 이 시리즈는 달랑(?) 7권이라 그다지 부담이 가지 않을 듯 싶다. 이번 추석 때는 아마도 <오다 노부나가>를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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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9-21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을 여유있게 남겨두고 완독하신거 축하드립니다. 🎉 오다 7권은 이거에 비하면 정말 ‘달랑‘ 이네요.ㅎ

레삭매냐 2020-09-21 13: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역쉬 자랑질은 알라딘이 최고더라는.

오다는 쉬엄쉬엄 가보렵니다.

단발머리 2020-09-21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32권 진짜 실화입니까!!! @@

레삭매냐 2020-09-21 13:06   좋아요 1 | URL
읽는 분들마다 다 사연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비교적
수월하게 완독한 것 같습니다.

다 읽고 나니 일본 센고쿠 시대
에 대한 관심이 늘어, 오다 노부
나가와 미노의 살무사라는 별명
을 가진 사이토 도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도 읽어 볼까 합니다.

다 읽고 나니 정말 뿌듯하네요.

겨울호랑이 2020-09-21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빠른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요 ㅜㅜ 제가 읽은 것은 아버지가 읽으시던 세로로 읽던 방식의 가독성 떨어지는 옛날 책이긴 했지만요... ^^:)

레삭매냐 2020-09-21 16:10   좋아요 1 | URL
센고쿠 시대 매력에 푹 빠져 버려서
이번에는 오다 노부나가를 읽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이토 도산-오다 노부
나가-아케치 미츠히데가 나오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봐야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종서가 읽기 힘들죠 :>
응원 감사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9-21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랑 7권이라뇨? 저와 수준 차이가 너무 납니다.
그래도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부럽다는... ㅋ

레삭매냐 2020-09-21 16:11   좋아요 0 | URL
ㅋㅋ 32권을 읽고 나니
7권 정도는...
상대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2020-09-21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축하합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생긱을 되돌릴 수 있었답니다.
언젠가 일본 드라마에 이에야스를 아주 방정 맞은 캐리터로 만들어 놓은걸 보고
속으로 엄청 의아했던적이 있는데 보통 우리는 속을 알수없는 너구리쯤으로 본다는 거지요.

레삭매냐 2020-09-21 16:12   좋아요 0 | URL
몇 년 전에 NHK에서 만든
<사나다마루>라는 시리즈가 보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네요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사카 전투 이야기라
궁금한데 말이죠.

미카와의 너구리라는 말이 어찌나
딱 들어 맞던지요. 감사합니다.

syo 2020-09-21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걸 해내시는군요..... 입틀막.... 리스펙...

레삭매냐 2020-09-21 20:26   좋아요 0 | URL
캄솨합니다... 꼬박 두 달이 걸렸네요.

페넬로페 2020-09-21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32권 완독!
너무 대단하세요^^
어릴적 아버지가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둔 책이 지금도 생각나요~~
완독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0-09-21 20:34   좋아요 1 | URL
렉이 걸리지 않고 내쳐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감사합니다.

han22598 2020-09-21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두도 내질 못할일을 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완독 축하드려요 :)

레삭매냐 2020-09-22 10:52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으니
한 번 도전해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이뿐호빵 2020-09-21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2권의 완독을 위한 긴 ~여정의 마무리 ㅎㅎ진심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0-09-22 10:52   좋아요 1 | URL
지난 두 달 빡시게 읽었습니다 -

이제는 <오다 노부나가>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20-09-26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2권이라...역쉬 엄청나신 분!!! 머릴 숙입니다 넙쭉! 괜히 읽고싶어지네요!

레삭매냐 2020-09-27 13:49   좋아요 1 | URL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고 나서
도전 중인 오다 노부나가 7권까지
더하면 39권이네요 ㅋㅋㅋ

거의 무협지 읽는 수준의 재미이니
한 번 도전해 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