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내가 이달에 사들인 책들은 이 세 권이 전부가 아니다.

실컷 땡기길래 어렵사리 수배해서 산 홋타 요시에 선생의 <고야>는 아직 1권도 마저 읽지 못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같은 저자로 한길사에서 나온 <라 로슈푸코의 인간을 위한 변명>이다.

이 책 역시 고야 시리즈처럼 절판된 책이다.

 

지난주에 인천에 갔다가 램프의 요정에서 데리고 왔다. 바로 읽기 시작해서, 2/3 지점을 돌파한 것 같다. 이 책부터 읽었어야 했는데...

금발 귀신이라 불리던 바이킹들이 갈리아 지방을 노략질하던 첫 번째 천년말부터 시작되는 유구한 역사를 다룬다. 바이킹의 배를 드라칼이라고 부른다지. 먼 훗날, 육지로 배를 실어 나른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도 그들에게서 기술을 배웠던 게 아닐까.

 

베르퇴유에 근거한 로슈푸코 가문 역사는 프랑스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를 포함한 근세사 그 자체다. 잉글랜드와 왕위계승 문제로 다툰 백년전쟁은 물론이고,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신구교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위그노 전쟁에도 로슈푸코 집안의 당주들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공작력에 사는 이들은 모두 프로테스탄트인데 정작 당주는 가톨릭편에서 서서 내전을 치르는 아이러니란.

 

성 바르텔레미의 학살 당시 당주였던 프랑수아 3세가 살해되었고, 종교전쟁의 와중에 프랑수아 4세도 저격당해 죽었다. 역사소설의 주인공 프랑수아 6세는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에 대항해서 프롱드의 난의 주역으로 전장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 역시 전장에서 저격당해 실명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배신과 음모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던 당시 프랑스에서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했던가. 자신의 집사 출신 능력가 구르빌의 활약을 보고 주인공은 자신을 돈키호테에 그리고 해결사 구르빌을 돈키호테의 시종 산초 판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홋타 요시에 작가는 당시 부르주아 계급이 상업과 매관 등의 방법으로 경제적 제패를 사회적 제패로 이어 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주인공이 활약하던 17세기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다가올 대혁명의 여명기라고 해야 할까.



다음은 오늘 램프의 요정에 달려가 산 켄 리우의 소설집이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에서 나온 책이다.

그리고 보니 다른 소설집인 <종이 호랑이>도 지인의 추천으로 읽다 말았던 것 같은데...

어제 간만에 우리 달궁 멤버들하고 채팅을 하고 나서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사자! 점심시간에 나가서 책을 샀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부터 읽었다. 소설집 가운데 가장 분량이 긴 소설이었는데 단박에 읽어 버렸다.

내가 켄 리우였다면 전설의 군신이자 관제라고 불린 의리와 충성의 상징인 관우를 중국집 주방장이나 라이더로 그리지 않았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로 대중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중화요리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그런 쉐프 말이다. 중화 요릿집의 이름은 <관운장>, 어떤가 나의 발칙한 상상력이.

 

켄 리우는 그 대신 남북전쟁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합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쿨리라는 이름으로 수입한 중국인 노동자들의 신산스러운 삶에 방점을 찍는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이다호는 아직 준주였고,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다. 얼마 전에 만난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 만난 쿨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책읽기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서둘러서 단편 2개를 읽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를 읽기 시작한다. 이제 열 개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월요일에 광활한 우주점으로 주문해서 오늘 받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그 후>. 이 책은 순전히 지난 주말에 한겨레 기사로 만난 로쟈 선생의 펌프질 덕분이다. 토요일날 살 수도 있었으나 민음사 세문보다 현암사 버전을 원해서 기다리던 중, 중고서점에 떴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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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1-20 20: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현암사 <그 후> 중고로 떠서 바로 샀었어요. 물론 안 읽었지만요 ㅎㅎ
켄 리우 <종이 호랑이> 는 몇 작품이 아직도 안 잊혀집니다.ㅠ 레삭님은 추진력이 굉장하신거 같아요. 바로 나가서 사오시고...👍

레삭매냐 2021-01-21 11:00   좋아요 2 | URL
아 그러시고나... 저도 지난 주말부터
노리고 있었는데 중고로 떠서 일단
사두었답니다 :> 민음세문은 왠지
땡기지가 않아서요.

책은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네요.

아유 <종이 호랑이>도 마저 다 읽
어야 하는데...

scott 2021-01-20 20: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찬 책쇼핑! 저도 홋타요시에 라로슈푸코 먼저 읽고 프랑스 영국 백년전쟁 종교 전쟁 귀족들끼리 서로 죽이고 싸웠던 시절 역사 책들 찾아 읽느라 정신없었던 적이 ㅋㅋ소설보다 더 잼나요 번역이 좋아서 당시 상황이 눈앞에 생생 . 전 그후 윤상인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아직 다른 소세키 책들을 완독 하지 못해서 딱 정의 하기 힘들지만 산시로-그후 -행인은 소세키 3대 명작이라고 ㅋㅋㅋ 켄리우는 종이 호랑이 읽고 그냥저냥이였는데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이책은 킨들에 묵혀두었는데 꺼내 읽어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1-01-21 11:02   좋아요 2 | URL
전 요즘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
어케 구하나 고민 중이랍니다.

고야는 예상 외로 쉽게 구할 수가
있었거든요. 1-2권은 새 책으로
나머지는 중고사냥으로 ㅋㅋ

뒤마의 <여왕 마고>가 완역으로
소개되면 치열했던 위그노 전쟁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보니 작년엔가
<여왕 마고>도 영화로 만났나 봅니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 삼부작도 만나야
하는데... 일단 책부터 지르려고 하니 ㅋ

<순록 떼> 중에 일단 관우 아메리카
정착기는 갠춘했습니다.

scott 2021-01-21 11:13   좋아요 3 | URL
매냐님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보면 몇권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요 ?
뒤마는 뻥을 너무 많이 쳐서 마고를 불쌍하게 묘사했으요
전 토마스만 형 하인리히 만이 쓴 역사서를 읽었는데 엄청 두꺼움 앙리 4세
이책이 역사서에 담지 않은 야사가 많아여 ㅋㅋ
매냐님을 자꾸 책사냥꾼으로 만드는것 같으 ^0^

레삭매냐 2021-01-21 19:21   좋아요 3 | URL
그렇지 않아도 토마스 만 샘의 형님
이 쓰신 <앙리 4세>도 컬렉션 모음
에 들어 있답니다.

근처에서 판다고 하면 바로 달려갈
뻔 했습니다. 사냥꾼으로 전업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뒤마가 카트린느 드 메디치
는 희대의 악녀로 그리고 마고 공주는
아주 지고지순한 사랑꾼으로다가...

여튼 읽으면 읽을수록 빠지는 16세기
17세기네요.

mini74 2021-01-20 2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가 켄 리우랑 테드 창 좋아해서 알게 됐어요. 저도 관우 이야기 기억에 남아요.~

레삭매냐 2021-01-21 11:03   좋아요 1 | URL
오옷 책읽는 패밀리? 대단하십니다.

전 SF 팬도 아닌데, 주변에 SF 마니아
들이 있어서 덕분에 줍줍하고 있답니다.

켄 리우의 글쓰기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붕붕툐툐 2021-01-20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램프의 요정에 자꾸 달려가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1-01-21 11:03   좋아요 2 | URL
고만 가야 하는데...
이건 뭐 습관적으로 들락거리니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오늘 아침 기사를 스캔하다가 쇼킹한 뉴스 하나를 보게 됐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3년 전 발표된 대학생의 글을 표절해서 무려 5곳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래.

 

일단은 표절가의 양심 없음을 탓해야 할 것이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무단 표절해서 문학상에 응모할 수 있었단 말인가. 가끔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는 걸 보면 그나마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자신이 썼다고 하면서 당당하게 공개될 응모전에 도전했는지 그 배짱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다음 지적은 도대체 지역에서 실시하는 문학상이 표절작을 걸러내는 검증 작업이 얼마나 허술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 구글링만 해봐도 바로 뽀롱이 날 표절작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서 망신을 당하느냐는 말이다. 수상작에 갖은 주례사 찬사를 붙인 이들의 얼굴이 얼마나 뜨거울 것인지 궁금하다. 이래서 글로 쓴 것은 지울 수가 없다고 했던가.

 

그 외에도 해당 표절가는 각종 공모전에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컨텐츠로 재미를 본 모양이다. 이 정도면 표절가 수준을 넘어 공모전 사냥꾼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공모전에 따르는 금전적 이득도 취했을 텐데 이럴 경우, 환수하게 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그리고 원저자는 표절가를 상대로 어떤 조취를 취할 지도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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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18 1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기사를 봤어요. 굉장히 엄하게 금전적 손해를 입혀야 된다고 상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돈이 제일 무서울 테니까요. 허언증도 있다는 증언에, 그 상금들 모아 외제차를 샀다더군요.

레삭매냐 2021-01-18 15:33   좋아요 1 | URL
후속 보도에 따르면 공모전 전문가
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미니74님의 말씀대로, 지급된 상금
외에도 피해 보상을 물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Falstaff 2021-01-18 14: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표절하는 인간의 호칭은 ‘표절가‘가 아니고요, ˝도둑놈˝ 또는 ˝도둑년˝으로 부르셔야 합니다.
상금은 당연히 회수하는데, 그거 자진해서 돌려주는 도둑놈/도둑년 못 봤습니다.
제가 빌어먹고 사는 회사의 사보에서 현상 글짓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담당 팀장이었습니다. 시 부분에서 현직 교사이자 회사에서 친한 동료의 아내가 차석을 했습니다. 이 현직 교사가 초딩 교사였는데, 에그머니,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최우수상 탄 작품을 그대로, 토씨하나 빼지 않고 응모했습니다. 독자 가운데 한 명이 제보해서 원문을 입수했더니 그랬더랍니다.
그래 그 도둑년한테 전화해서 표절로 상금, 상패 반납하라고 했더니, 도둑년은 상패만 반납하고 상금은 못하겠다고, 표절 아니라고, 기분 나빠서 못하겠다 지랄하더군요. 하, 어이가 없어서. 남편 새끼도 표절은 무슨 표절이냐고, 마치 성추행범이 사랑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그래 담당 팀장으로 상사에게 이실직고하고 단 세 번만에 행사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그 도둑년은 아직도 초등학교 선생질 잘 해먹고 있습니다.

제가 남의 글 도둑질하는 년/놈에게 유독 가혹한 게 이 영향도 작지는 않다, 싶습니다.

blanca 2021-01-18 15:22   좋아요 2 | URL
충격적이네요. 제자를 그것도 초등학생 글을 표절했다니요.

레삭매냐 2021-01-18 15:3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만,
반응이 장난 아니에요.

표절에 대한 부인은 수긍할 만하나,
기분 나빠서 상금의 반환은 못하겠다
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런 닝겡들에게는 고소미를 먹여서
개망신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비양심적 인사-폴스태프님의
표현에 의하면 도둑0-가 교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더 충격입니다.

누구처럼 하도 필사를 해대다 보니
타인의 작품을 내가 쓴 것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상상이었습니다.

Falstaff 2021-01-18 16:09   좋아요 1 | URL
자기 제자는 아니고요, 전국 초딩들 대상으로 했던 백일장에서 장원했던 시랍니다. 그러니 한정된 사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현상응모엔 차석 정도는 가능했습지요. 당시엔 구글이란 것도 없던 때였는데, 우연하게 사보를 본 일반인이 제보를 해서 알게 됐습니다.
햐, 근데 아니래요. 나중에 남편새끼가 뭐라 하느냐면, 선생들 보는 교안에서 읽고 비슷하게 써본 거라더라고요. 완전 CTL-C, 물론 제목만 달리 해서 말입죠. 완전 이번 사건의 도둑놈하고 판박입니다.
사람은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요, 훌쩍 늘씬한 키에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이었습니다. 뭐가 모자라 그 지랄을 하는지 원...... 아들 공부 안 한다고 교복 찢어발기고 교과서 불태운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

han22598 2021-01-20 05:46   좋아요 0 | URL
충격적이네요..

scott 2021-01-18 14: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말인가요 표절 정도가 아니라 CTRL C로 문학상을 몇관왕씩이나 이런걸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은?? 아니면 이런 놈을 심사하는 위원들도 같은 부류 !!

레삭매냐 2021-01-18 15:40   좋아요 2 | URL
선정한 심사위원들은 나
몰라라 하겠지요.

또 표절작에 또 얼매나
낯 뜨거운 상찬을 해댔을까요.

어쩜 심사위원들이 해당 문학상
주최측을 멕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니었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2021-01-18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8 15:42   좋아요 0 | URL
오우 노우!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왠지 고스트 라이터가 생각나네요.

blanca 2021-01-18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걸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서 검증 작업이 없었고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도 너무 놀랐어요.

레삭매냐 2021-01-18 15:45   좋아요 1 | URL
네 해당 기사에서도 바로 그 점을 지적
하고 있더라구요.

요즘은 표절이 횡행하는 지라 해당 부분
에 대해서도 빡센 검증이 필요했는데
주최 측에서 너무 안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chika 2021-01-18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쁜 핑계로 세상소식에 담쌓고 살고 있는데, 이 무슨? 찾아봐야겠어요.
댓글들도 추..충격적입니다.
평생 자기글은 못쓰고 다른이의 글을 필사하는 벌을 추가로 때리고싶습니다.

레삭매냐 2021-01-18 17:45   좋아요 1 | URL
이 분은 글 쓰는 분이 아니라
그런 형벌은 효과가 없어 보이고
수익금 환수 및 징벌적 벌금 조치
가 합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chika 2021-01-18 17:50   좋아요 1 | URL
ㅎ네. 말씀하신 당연한 처벌과 상금회수뿐아니라 추징금, 그에 더하여 평생 남의글만을 쓴다는 낙인이...
근데 낙인은 너무한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하고요. 쓰읍

페크pek0501 2021-01-18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절이 밝혀지면 당연히 수상 취소가 되어야지요. 문학상 공모에 그런 내용을 밝혀 놓은 걸 본 적이 있어요. 수상한 뒤에라도 표절 같은 문제가 생기면 당선이 취소된다는.
신경을 좀 쓰면 인터넷으로도 표절을 걸러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제목의 글이 있는지 알아보면 될 텐데요. 그런데 원작이 인터넷으로 뜨지 않는 거라면 표절을 가려 내기가 어렵겠네요. 게다가 제목을 바꾸기까지 했다면요.
유명한 여성 소설가가 표절 문제로 외국으로 떠난 게 떠오르네요. 슬픈 현실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8 17:49   좋아요 2 | URL
위의 폴스태프님이 말씀 하신 대로
수상자가 상금을 반납하지 않고 버티면
법적 조치가 없이 강제로 환수가 되는지
궁금하네요.

주최 측에서 사전에 표절 여부를 걸러내
지 못한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오는 게 습성이지요.
일전에 표절로 떠들썩했던 양반도 올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깡이냐! 그동안 내공을 수련
해서 뻔뻔함을 장착한 걸까요?
무슨 핑계를 대고 컴백할 지 너무 궁금합니다.

2021-01-19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야 1 - 에스파냐 - 빛과 그림자 한길그레이트북스 109
홋타 요시에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나중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책은 더 이상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럴 경우,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중고책으로 데려와야 한다. 나의 경우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홋타 요시에의 <고야> 시리즈가 그랬다. 물론 중고로도 구할 수가 있겠으나, 시간이 없어서 그냥 도서관을 이용했다. 무려 4권이니 대충 300쪽만 잡아도 1,200쪽 되시겠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우리의 저자 홋타 요시에 선생의 글은 이런 대작 쯤은 금세 읽을 수 있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니 말이다.

 

3년 전에 사둔 고야를 그린 독일계 유대인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도 있었구나. 사서 첫 몇 페이지를 읽긴 했었는데 홋타 요시에 작가의 책만큼 흡입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요시에 상의 책을 읽고 나서 포이히트방거의 책도 만나봐야지 싶다.

 

일본에서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장장 4년간 신문 연재로 발표된 <고야> 시리즈는 이방인으로 에스파냐 현지답사까지 마다하지 않은 저자의 노고가 담뿍 담긴 그런 책이다.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장정으로 우리에게는 그저 열정과 플라멩코의 나라로 알려진 에스파냐의 실체를 알려 준다. 카스티야 고원에 자리 잡은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가 북위 40도 정도(우리나라로 치면 신의주 정도에 해당한다)로 굉장히 추운 날씨의 나라라는 사실부터 찍고 들어가자. 에스파냐를 대표하는 춤이라는 플라멩코 역시 주류가 아닌 집시의 춤이라는 사실도 격파하자.

 

로마의 식민지로 출발해서 이슬람 세력에게 장장 800년간의 통치를 받은 뒤, 레콩키스타라는 국토회복운동으로 북부로 쫓겨난 기독교 왕국들이 무슬림 세력을 쫓아내고 카스티야 아라곤 연합으로 마침내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정치는 에스파냐 귀족들이 담당하고 기술은 이슬람 세력이 그리고 상업과 유통은 유대인들이 맡는 분업으로 에스파냐 국가는 굴러갔다.

 

홋타 요시에 작가는 에스파냐를 에스파냐답가 만드는 요소로 에스파냐어와 가톨릭을 꼽는다. 전자에는 800년 무슬림 통치의 영향으로 10%에 달하는 말들이 아랍어에서 온 말이라고 했던가. 가톨릭 왕국 에스파냐에서 종교는 국가적 단일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보수적 종교재판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일단의 에스파냐 출신 모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신대륙의 부가 모국 에스파냐로 흘러 들면서 제국은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구가하기에 이른다.

 

좋았던 시절은 짧게 끝나고, 종교재판소가 사회 모든 차원에서 발목을 잡는 보수반동의 시대가 도래한다. 신대륙에서 흘러들어온 막대한 재화가 국가 재정을 파탄시키는 역효과의 원인이었다는 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런 노력 없이 획득한 재화 때문에 에스파냐 사람들을 힘든 일, 다시 말해 노동을 경멸하는 풍조마저 생기게 되었다. 여튼 홋타 요시에 작가는 우리의 주인공 프란시스코 고야가 에스파냐 북부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 부근의 푸엔데토도스에서 1746330일 태어나기 전까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18세기 에스파냐가 처한 현실을 개진한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275년 전에 태어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풍문과 전설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도 요시에 작가의 저작을 흥미롭게 만드는 점 중의 하나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속설과 달리 그는 도금 기술자인 아버지와 하급 귀족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른 저명한 천재 예술가와 달리 그는 어려서 그렇게 빛나는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사실 그의 재능은 삼십대가 지나서야 비로소 만개했다고 하니, 대기만성형 예술가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17세기만 하더라도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걸출한 화가의 존재로 에스파냐 회화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화가들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에 나오는 난쟁이나 광대 같은 존재로 그림쟁이나 화공에 불과했노라고 저자는 묘사한다. 화가들은 귀족이나 사제들의 주문에 따라 인물화를 그리는데 주력했다. 벨라스케스만 하더라도 맞선용 그림을 그리는 그림쟁이였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작품과 작가의 주관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회화가 제작되었다. 오로지, 발주자의 주문에 의한 그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영혼이 없다는 지적도 일견 타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그리스 출신 엘 그레코의 시대까지는 에스파냐 회화가 명맥을 유지했으나, 18세기 접어들면서 기존의 합스부르크 왕가를 대신한 부르봉 왕가가 에스파냐 왕위를 차지하면서 에스파냐는 그야말로 이웃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예술적 식민지 같은 위치가 되었다나. 종교재판소의 엄숙주의는 당시 각국에서 유행하던 나체화 따위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자체 검열이 진행되던 그런 시기였던 것이다.

 

철저하게 현실순응주의자였던 젊은 날의 소년 고야는 사라고사에서 엄격한 도제식 예술교육의 진수를 전수받는다. 고전 예술의 창조 뒤에 이런 고된 과정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주제들을 골라 그렸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철저한 오산이었다.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숱한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도 칭송을 받는 걸작들이 탄생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십대 소년이 된 고야는 마드리드를 거쳐, 이십대에는 예술세계의 중심이라는 로마도 경험했다.

 

그러는 동안 고야는 지금으로 치면, 그림쟁이들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도전했다. 아직 자신의 재능이 꽃을 피우기 전이라 두 번 모두 떨어졌다.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경연대회와는 운이 닿지 않았는지 고야는 족족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세 번의 경연도전 실패였다.

 

1766년에 발생한 민중폭동은 한 세대 뒤, 나폴레옹 군대에 유린된 에스파냐 민중봉기와 조응하는 전초전이었다. 예수회 탄압과 챙모자와 망토 금지령에서 촉발된 민중봉기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아라곤의 사라고사에서 격렬했다. 그 결과 250명에 달하는 이들이 즉결 처분되었다고 하던가. 젊은 청년 고야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것보다도 쇠사슬을 찬 채 끌려가는 사제들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동안 에스파냐 사회를 지배해온 종교권력에 대한 세속권력에 대한 승리라고 분석해야 할까.

 

거의 전설이 되어 버린 고야가 가는 곳마다 발생하는 폭력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전설과 풍문이야말로 자신 같은 글쟁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냐는 홋타 요시에의 유머감각에 그야말로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이백 수십 년 전에 생존했던 실존 인물의 빈 공간을 마구 파고 들어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렇지 이 맛에 바로 역사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싶다.

 

25세의 고야는 다시 고향 사라고사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래의 매형 바예우의 조언으로 사라고사 엘 필라르 대성당의 천장화 수주를 맡는다. 사전에 경쟁자 곤살레스 벨라스케스의 낙찰가를 알고,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발주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고야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꼬집는다.

 


홋타 요시에 선생은 고야가 처음으로 그린 초상화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아주 의미심장한 시도도 등장한다. 그의 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중년에 귀머거리가 된 실제 상황에 대한 예언처럼 들린다. 사실 청각 상실의 진짜 이유는 천둥 번개 때문이 아니라 젊은 시절 로마와 마드리드의 유곽에서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출세를 위해 바예우의 동생과 정략결혼해서 자그마치 스무 명에 달하는 자식들을 생산한 고야의 가부장적 태도에 대해서도 저자는 신랄한 비판을 감추지 않는다. 고야는 훗날 궁정화가로 활동하면서 숱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것은 당시 대외적으로 엄숙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타락할 대로 타락한 귀족사회의 그것과 견주어 비판한다.


일단은 여기까지... to be continued...


어쨌든 신분세탁을 위해 하급 귀족 출신이었던 어머니 집안의 데(de)라는 귀족 칭호까지 날조하고 가문의 인장까지 만드는데 열중했던 고야는 이십대 후반에 드디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대세순응주의자였던 고야는 스승님인 루산이나 처남 파코까지 제치고 사라고사에서 명실상부하게 제일 잘 나가는 그림쟁이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전체를 중시하고 세부는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고야의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것도 엘 필라드 대성당의 프레스코 천장화에 이어 아울라 데이 수도원의 벽화를 정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데 힘입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에스파냐 세게의 중심 마드리드 정복이었다.

 

한편 세계제국 에스파냐의 현실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왕실에서는 모직물이나 태피스트리 공장 같은 생산시설에 투자했지만, 그것은 민중을 위한 기초제품 생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왕실의 사치를 위한 것이었다. 세기의 라이벌 영국이 훗날 모직을 대체할 면직물 생산에 전력투구하면서 에스파냐가 영국을 따라잡을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기사 계급 이상에선는 육체노동을 경멸하는 사회풍조가 대세였다. 홋타 요시에 선생은 이런 17세기 에스파냐의 사회경제적 요소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작업을 시전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단순하게 어느 한 예술가의 삶만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가가 살던 시대에 대한 조망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작업이었을까. 이방인 예술가의 삶을 추적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요시에 선생의 노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다 할 산업시설이 부재한 왕실과 귀족들의 사치품 구매를 위한 자금은 어디에서 왔을까? 구매 대금은 아메리카와 필리핀의 식민지에서 왔다고 한다. 특히 멕시코에서 유입된 대량의 은은 에스파냐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식민지에서 유입된 자금이 아니었자면, 에스파냐 경제는 단박에 붕괴되었으리라. 저자는 정확하게 에스파냐가 해외 식민지를 잃는 순간, 국가는 바로 알거지가 될 판이었다고 증언한다.

 


(결국 절판된 책 1-2권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책도 구했으니 진도를 쑥쑥 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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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15 1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야에 대한 책 몇 권은 읽어봤지만, 훗타 요시에가 쓴 책은 안 읽어봤어요. 안 읽은 이유는 단순해요. 네 권짜리 책이니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1-16 09:58   좋아요 0 | URL
저는 홋타 요시에로 처음 고야를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작년에 카라마조프 만나면서 시리즈
에도 면역에 생긴 모양입니다 :>

요시에 선생의 책을 마치고 나면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고야>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stella.K 2021-01-15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따, 좋으시겠어요. 그런 책 있죠.
더구나 절판되면 어찌나 뿌듯한지...ㅎㅎ

레삭매냐 2021-01-16 09:59   좋아요 1 | URL
아니... 제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절판의 운명인지라.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어제
수소문해서 1-2권 득템한 다음에 바로
갈아 탔습니다.

23년 전에 나온 책은 정말...

공감하는 바입니다.

scott 2021-01-15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드커버판은 도판이 칼라인데 그래도 대출 받자마자 후딱 읽으신 매냐님 진정한 독서人!

레삭매냐 2021-01-16 10:00   좋아요 1 | URL
급하게 읽긴 했지만 1권도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이자 묵을까봐
선 리뷰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읽으면서 쓰는 리뷰 되겄습니다.
하드커버 신판이 역시 좋네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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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리뷰란 책을 읽고 나서 바로바로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번 경우처럼 미루다가 열흘이나 지나서 리뷰를 쓰게 되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책을 연초부터 마구 달리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일단 책은 읽고, 리뷰는 한참 뒤에나 쓰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는 자기확신으로 힘차게 출발해 보자. 일단 스캔으로 리뷰에 앞서 훑어 보았다.

 

일단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즉위와 더불어 정권을 차치하는데 성공했다. 기백년 동안 조선 국가를 좌지우지해온 안동 김씨 세도가들은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대원군은 곧바로 개혁정치에 돌입한다. 가장 문제였던 전정, 군정 그리고 환정을 개혁하고 조선 후기 적폐의 온상이었던 서원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철폐령을 내려 일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에 그런 처방들은 그저 미봉책일 뿐이었다. 이웃 일본의 예를 따라 보다 근본적인 국가 개조에 나섰어야 했는데, 조선 군왕의 아버지가 실시하는 개혁 정책은 필연적으로 그 한계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혁은 조금이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세운답시고 불필요한 대토목공사였던 경복궁 중건에 나서면서 국가 재정이 그야말로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경복궁 중건이 대원군이 시작한 삽질의 시작이었다면, 대대적인 천주교도 박해로 서구 프랑스 함대가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는 대표적인 외부에서 온 위기였다. 그전에 굽시니스트 선생은 비엣남에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군대가 사이공 부근을 집어 삼킨 썰을 잠시 다루나, 솔직히 관심 밖의 일이라 패스하도록 하자. 대원군만큼이나 삽질 전문가였던 나폴레옹 3세는 국내 정치에나 신경을 쓸 것이지 이집트, 멕시코, 베트남 등에 개입하면서 밑지는 식민지 개발 장사로 국가재정을 신속하게 말아 드셨다. 멕시코 원정에서는 자그마치 3억 프랑에 가까운 전비를 들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철군해야 했다.

 

병인양요도 마찬가지였다. 7척의 함대로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은 머스킷 스타일의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에게 미니에탄이라는 신병기의 매운 맛을 선사한다. 병기와 기술에서 200년이나 뒤지는 조선군이 무슨 수로 프랑스군을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대 프랑스 양이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베이징에 파견한 오경석으로부터 프랑스 함대가 장기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보고서를 받은 대원군은 그저 존버 정신으로 버틸 것을 주문한다. 결국 대원군이 예상한 대로, 별 소득도 없이 보급과 지원을 기약할 수 없었던 프랑스군은 강화성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을 챙겨서 철군했다.

 

이전에 대동강에 출현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꼴랑 무장상선 하나 상대하는 데도 평양성이 모두 동원되어서야 간신히 제압할 수가 있었다. 평양 감사 박규수가 임지에 도착한 지 석달만에 벌어진 이 사건에서도 조선군은 순전히 운빨로 해적에 가까운 무장상선의 난동을 수습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그리고 신미양요로 이어지는 양이전쟁에서 조선은 배운 게 전혀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이웃 일본의 번들은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래 서구 열강의 압도적인 힘을 깨닫고, 그들의 선진 문물을 도입하는데 힘을 썼다. 결국 대원군을 필두로 한 지도층의 무능과 무대책이 이후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의 단초가 된 것이다.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압에 국가가 총력을 들인 태평천국전쟁을 마무리한 뒤에도 사방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다시 한 번 증국번, 이홍장 그리고 좌종당 한인관료 트리오가 출동해서 소방수로 각지에 투입해서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한다. 특히 증국번에 이어 두각을 드러낸 이홍장이 이끄는 회군은 1868628일 가오탕 부근에서 염군의 잔당을 소탕하고 토벌을 완수했다. 한편, 청나라 조정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한편,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서양 업무를 배우겠다는 양무운동도 관 주도로 활발하게 전개된다. 문제는 양무운동의 방향성이 오로지 선진 서양의 기술의 전수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에 입각한 동도서기론으로는 서양 문물 도입에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전개하며, 개항과 교역을 거부하는 조선만큼이나 답답한 상황이었다. 물론 중국의 경우에는 두 번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서양 열강의 매운맛을 단단하게 본 결과, 앞선 서구의 문물을 받아 들여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의 존속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시아 3국은 서구 열강에 의해 반강제로 근대화 과정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역사만으로 예의 과정이 추동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굽시니스트 작가는 당시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맛보기식으로 설명을 시도한다. 프랑스의 코친차이나 정복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7주전쟁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였던 프로이센이 혁신적인 방법과 전략으로 소독일주의를 주장하는 대국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단기간에 승리로 이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새로 개발된 후장식 드라이제 소총으로 전장식 소총을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대파한 것은 국민개병제로 무장한 프로이센 전술의 승리였다. 전쟁으로 북독일연방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배제시키면서 비스마르크와 프로이센는 지도부는 통일독일의 주춧돌을 세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때, 동양삼국에서 형태를 달리하면서 전개된 양이전쟁은 어쩌면 근대화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유일한 선택지였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어느 자주국가가 외세의 간섭을 환영한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이 서구 열강들과 맺은 일단의 조약들은 모두 자국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불평등조약이었다. 무력에 의한 강제 개항과 교역 상의 불이익으로 해당국의 민중들은 부당한 행위를 통해 이윤을 약탈해 가는 외세를 배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민주공화국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군주국가에서 외세에 대항할 이데올로기로 존왕양이론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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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1-01-14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난거는 다 ~ 읽으시네예..부럽심다^^

레삭매냐 2021-01-14 13:12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님도 도서관 이용해 보셔요.

전 이 시리즈는 죄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보았답니다 :>

붕붕툐툐 2021-01-14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흘이나 지나 리뷰를 쓰시려고 다시 책을 뒤적이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21-01-14 16:47   좋아요 2 | URL
왠지 책 읽고 나서 허접하나마 조금이라도
리뷰를 쓰지 않으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

스캔으로 한 권을 다시 본 느낌입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 블러디 선샤인 신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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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9편에서는 그동안 아쉽다 싶을 정도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쉬운 분량으로 진행된 조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일단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화학자는 개뿔,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남의 나라 임금의 할아버지 묘를 파헤친 도굴꾼이다.

남연군묘에는 나도 가보았는데 정말 두 명의 천자를 배출할 만하다는 그런 명당 자리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강제 개항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비하면 조선의 경우는 상당히 양호했다.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공식적인 직함도 없이 실질적인 조선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대원군 석파 이하응은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실시해서, 서양문물과 교류를 사전에 차단한다. 그가 격렬하게 쇄국정책을 시행한 이유를 제공한 에른스트 오페르트 일당의 남연군묘 도굴사건에서 그야말로 절정을 이룬다. 종주국 청나라마저 양이에게 무릎을 꿇은 마당에 소중화를 자처하는 조선 땅에서 파묘하는 사건이 어디 가당키나 한 설정이란 말인가.

 

한편, 일본에서는 그동안 소원했던 조선과 수교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종래 조선과의 무역은 쓰시마 번주를 통한 것이었는데, 국가 대 국가로 자신들이 강제 개항 와중에 배운 그대로 조선에 써먹기 위한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 물론 조선에서는 이미 기존의 부산에 왜관을 통해 교류하고 이는 마당에,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일본과 굳이 수교할 생각은 없었다. 문서상의 미비를 이유로 삼아, 일본의 수호 요청을 무시한다.

 

이제 본격적인 미국과의 한판 대결인 신미양요를 앞두고, 굽시니스트 작가는 그동안 풀어온 썰을 복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숨 가쁘게 진행된 1800년대를 스케치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천지개벽 같은 일들이 지구가 생긴 이래, 아마 처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시절이 아닌가 싶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은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적 표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도량형부터 시작해서 언어와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한 것이다. 그렇게 개발된 신무기를 바탕으로 식민지 경영에 나섰고, 숱한 전쟁을 통해 저항하는 세력들을 일소했다. 비로소 제국주의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신미양요에 앞서, 유럽의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알린 보불전쟁에 대한 굽시니스트 작가의 소개도 반가웠다.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출발한 프랑스와 동방의 신흥 강국 프로이센의 대결은 어쩌면 피할 수 없었던 시대적 과제였다. 보오전쟁으로 오스트리아의 대독일주의를 분쇄하고,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추진한 북독일연방은 남부의 독일어권 4개국마저 아우를 계획이었다. 당연히 유럽의 대국 프랑스에서는 이웃에 강력한 대국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괴제로 알려진 나폴레옹 3세가 불 보듯 뻔한 전쟁 개시를 주저했다는 말도 있지만, 개전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1870713일 엠스 전보 사건(비스마르크의 주작질)이 발생한다. 프랑스 대사가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엠스에서 휴양 중이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를 모욕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에서는 대 프랑스 개전 강경론이 대두하고, 남부 독일의 4개국마저 독일 편에 서면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프로파간다가 성공한 것이다.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전쟁은 1870719일 시작되었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전에 사용된 크루프 24파운드 후장식 대포의 발사 장면, 1870.9.19-1871.1.28)


프로이센군은 이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철도를 동원한 신속한 병력 이동으로 개전 후, 지지부진한 프랑스의 군대 동원령을 압도했다. 실제 전투에서도 수만 많았던 프랑스군은 전략과 전술에서 노련한 프로이센 참모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메츠와 스당 전투에서 막마옹 원수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연전연패하였고, 특히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어 항복 선언을 했다. 정치공작에는 능했지만, 괴제 나폴레옹 3세는 전쟁에서 큰아버지 같이 눈부신 능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제정이 붕괴되고, 파리에서는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주력군이 부재한 가운데, 프로이센군은 파리를 포위하고 개와 쥐 그리고 동물원의 코끼리까지 잡아 먹어가며 버티던 프랑스는 결국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한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처럼, 69년 뒤 승리한 적군의 수도 퍼레이드라는 치욕이 반복될 예정이다.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의 샤스포 소총이 프로이센군의 드라이제 소총의 성능을 능가했지만,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서방의 전쟁에서는 이런 첨단 무기의 혁신이 이어지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여전히 화승총과 홍이포 같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같은 무기들을 들고 양이와의 전쟁에 나서야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함대가 1871년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전함에 올라 맥주를 받은 조선 아저씨의 사진이라고 한다. )


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대포들은 미국 전함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미국 해병대가 강화도에 상륙해서 결사항전에 나선 조선군들을 초전부터 박살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조선군은 양이 대표선수 미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나름 선전을 펼쳤다. 다수의 지휘관들이 난전 중에 전사했고, 부상당한 병사들도 양이의 포로가 되느니 자결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좀 더 대국적인 전략으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승리를 거두었지만 후속부대와 병참 등의 문제를 고려해서 철군하기에 이른다. 두 번의 양요를 승리라고 착각한 조선은 압도적인 서양의 기술에 대한 근본적이 사고를 수정하지 않은 채 근대화의 결정적 시간들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의 깃발을 올렸지만 여전히 일본의 정국은 어수선했다. 왕정이 복고되었다지만, 에도 막부 250년 동안 누적된 적폐 청산의 길은 요원했다. 우선 단일국가 완성을 위해, 메이지 각료들이 주도한 폐번치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성공시켜야 했다. 막부 말기, 조슈나 사쓰마 같이 도막에 나섰던 강력한 번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울러 원활한 계급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한 신분 제도의 정비도 필수였다. 기존의 사무라이들을 정점으로 한 계급 제도가 일본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메이지 지도자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그런 하급 사무라이 출신임에도 말이다. 일본 국왕에서 충성하는 신민들을 제조하기 위한 국민 교육의 도입도 시급한 과제였다. 그렇게 양성된 신민들은 훗날 산업의 역군으로, 또 한편으로는 군의 중심이 되어 미래 침략전쟁의 선봉에서 아시아 각국을 누빌 참이었다.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조선의 그것과 너무 비교되는 점이 아니던가.

 

신년 들어 쉴 새 없이 굽시니스트 작가의 시리즈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달려! 일단 이번 권까지 해서 시중에 나온 책들은 모두 섭렵했다. 다음 권인 <강화도 조약>의 빠른 출간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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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3 1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달려요 달려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가 성능좋은 소총을 이김 ! 메이지 유신 그리고 다음편은 강화도 조약 기대 합니다 ^.^

레삭매냐 2021-01-13 10:33   좋아요 3 | URL
아숩게도 굽시니스트 선생의 시리즈
는 9권으로 일단 멈춤이네요...

연초부터 만화만 땡기다 보니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읽겠네요 기래.

그리하야 오늘 새벽부터 <만엔원년의
풋볼> 집어 들었답니다. 빠이팅...

참, 후장식 소총의 작동 원리가 무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도 검색을 해보았네
요. 조선의 화승총은 선장식, 그야말로
무뎃뽀 정신이었네요.

겨울호랑이 2021-01-13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레삭매냐님의 명당 자리를 살피는 능력에 진심으로 탄복하고 갑니다! 배수임산 수준의 지식 밖에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레삭매냐님의 풍부한 현장 능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3 13:17   좋아요 3 | URL
오래 전, 역사학도로 현장답사를
가본 썰일 뿐입니다.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닝겡이랍니다.

그냥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붕붕툐툐 2021-01-13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주 들고 뿌듯해 하시는 저분.. 왠지 익숙한데, 아무래도 저의 조상님 같습니다!! 저는 저런 흑백 사진이 너무 좋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1-13 17:01   좋아요 2 | URL
저 분이 들고 계신 맥주는 빈 병이었다고
하던데, 그것으로 무얼을 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이런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흑백 갬성!

붕붕툐툐 2021-01-13 17:04   좋아요 1 | URL
뭐라구요? 빈 병이라구욧? 시무룩....

scott 2021-01-13 20:29   좋아요 2 | URL
툐툐님 ㅎㅎ
빈병이라는 말에 ㅋㅋ

소총으로 시작한 댓글이 풍수지리로 가서 맥주까지 ~ㅋ

굽시니스트 다음편은 언제 나오나요?

레삭매냐 2021-01-14 09:28   좋아요 1 | URL
고건 잘 모르겠네요.

저도 지난 달에 처음으로 도서관
에 들렀다가 만난 책이어서 말이죠 :>

mini74 2021-01-14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제와 병오는 신이 나서. 이렇게 외우던 근대사가 생각나요 ㅎㅎ조선아저씨 저기에 참기름을 담아 팔기 시작 , 이것이 참기름을 맥주나 소주병에 담아파는 기원이 되는데~ 라고 상상해 봅니다ㅎㅎㅎ

레삭매냐 2021-01-14 16:49   좋아요 1 | URL
역사를 배우던 시절에 이렇게 유용한(?)
만화가 있었더라면 그 내용이 더 쏙쏙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주변 배경을 알고 배웠다면 좀 더 깊숙
하게 역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마냥 외우라고만 하니 흥미도 떨
어지고... 뭐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참기름 들기름 담기
에 제격이 아니었을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