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간만에 외출을 했다. , 차가 너무 더러워서 세차를 좀 해야 하는데...

주말에 눈 혹은 비가 온다고 하니 세차하지 말란다. 아니 어쩌란 말인가 그래.

암튼 차가 너무 드럽다.

 

차에만 있다 보니 봄 같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 겨울은 물러갈 생각은 하지 않았고 여전히 겨울이 다가오는 봄과 치열한 전투 중이지 싶다. 어서 봄이여 빨리 오라. 봄이 온다고 해서 우리를 옥죄고 있는 코로나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지만.

 


재활용 쓰레기들을 버리러 리사이클링 센터에 갔다.

거기서 찾은 책이다.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녀석은 데려오지 않았다. 한국일보-타임라이프에서 나온 <인 스페이스>였는데 나는 우주에 관심이 없으니까. 예전에도 그랬었다.

 

정말 오래 전에, 청계천 책방거리에 가서 아부지와 월드 워 투 시리즈 가운데 열권을 사서 노끈에 묶어서 집에 낑낑대면서 가져온 기억이 난다. 당시 헌책 값도 상당했던 것 같은데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인천까지... 아마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책들은 수도 없이 읽었고, 본전은 톡톡히 했다. 그리고 지금도 소장 중이다. 책은 모름지기 이 정도 가치는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 득템한 책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에 나온 책이다. 단가는 40,000. 지금도 사만원 짜리 책은 잘 안사지 않나. 하긴 지금 사만원과 그 당시의 사만원은 완전 다르니까.

 

내가 이 책에서 오른 첫 번째 픽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반란군에게 의연하게 맞선 여성 민병대원의 사진이다. 최근에 읽은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에도 빈번하게 전쟁이 등장해서인진 몰라도 왠지 모르게 사진에는 비장미가 흐른다. 그리고 공화국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투입된 여성 민병대원 상당수가 프랑코 반란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1943년 미영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한 뒤, 나폴리에서 동맹군에서 점령군으로 변신한 독일군에 대항해서 수많은 게릴라 전사들이 분연하게 대항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한 학교에서 16세에서 20세 청년들이 20명이나 죽었다고 했던가.



마지막 컷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의 오판으로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30만 대병력에 포위되었다가 탈출한 성공한 미해병의 사진이다.

 

최근 너튜브를 통해 처참했던 장진호 전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잘못 있었던 사실들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시 한 번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어서 내다 버린 책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보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뱀다리]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가 도착해서 읽기 시작했다. 스러져 가는 겨울 말미의 기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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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12 23: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왕건이 건지셨네요!
이런 책을 버리다니...그래도 이 책은 더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잘된거겠죠?
축하드립니다. 부럽네요 ☺

레삭매냐 2022-02-13 22:35   좋아요 1 | URL
가끔 재활용 센터에서 득템
할 때가 종종 있답니다.

지난 번에는 갠춘한 책들을
집어다가 헌책방에 팔아
먹었답니다.

라이프 워 타이틀은 정말~

얄라알라 2022-02-17 00:25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종종 들리시는 재활용 센터가 어디냐고 묻고 싶어 촐싹거리는 맘을 눌렀습니다.

우연히 이런 보물을 만나신 날은 정말 흐뭇하시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02-12 23: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 권의 책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잘못 안 역사적 사실도 다시 교정하고...
득템한 책의 좋은 영향인 것 같아요.
저는 ‘하버드 스퀘어‘,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감상, 기대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13 22:36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
닝겡은 이래서 평생
배우고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하버드 스퀘어>는 평
소처럼 휙휙 읽지 않고
꼭꼭 씹어서 읽는 중이랍니다.

타이틀은 그땐 그랬지로 할까
봅니다.

mini74 2022-02-13 1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내전 정말 알수록 끔찍한 것 같아요. 어릴 적 은인이라 배운 맥아더가 전쟁광에 돌아이 ㅠㅠ ㅎㅎ 매냐님 득템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2-02-13 22:39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 항상 하는 말이 지난
세기에 많은 전쟁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스페인 내전과 베트남
전쟁은 인류 역사에 상흔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맥아더는 진짜 꼴통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없는 필리핀 전역을 시작
하면서 애꿎은 필리핀 사람들만
죽어 나갔으니 말이죠. 일본군이
가장 많이 죽은 전장도 필리핀
이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02-17 00:28   좋아요 2 | URL
헉! mini74님과 레삭매냐님 댓글 읽다가, 맥아더 장군?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더 알려고 해본 적 없다는 걸 알겠네요. 두 분 말씀에 우선 귀부터 종긋 해보고 지나갑니다.^^ 고맙습니다

라로 2022-02-13 17: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아!! 저렇게 깨끗한 책을 내다 버리다니,,
그런데 책 가격이 그 당시 사사사...사 만원!!
완전 득템하셨는데요!!
<인 스페이스> 가져 오셔서 당근에 파시징,,^^;;
암튼, <하버드 스퀘어> 읽기 시작하셨다고라??
저도 그럼 후다닥~~.

레삭매냐 2022-02-13 22:46   좋아요 2 | URL
그러니깐요 ^^ 아마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죠 -

아 당근 마켓 생각을 못했네요.
근데 당근 마켓에서 책은 인기
가 없더라구요 헷

<하버드 스퀘어>는 오래 전,
66번 버스와 레드 라인을 추억
들을 되새기며 찬찬히 읽어 볼
랍니다.

바람돌이 2022-02-13 17: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여기 부산은 봄날씨 같아요. 외투 없이도 나갈 수 있는.... 이러다가 꽃샘추위 한두번쯤 오고 봄이 오겠네요. 저정도 책이면 저같으면 절대 못버릴거 같은데... 진짜 오늘 득템하셧네요. 축하드립니다. ^^

레삭매냐 2022-02-13 22:49   좋아요 2 | URL
바다에 가본 지가 제법 되었네요.

어제 오늘 날이 너무 좋아서
바다 생각이 절로 나는 그런 시간
들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
에만 있어서 그랬지만요...

벌써 봄이 온 줄 착각할 뻔했네요.

책의 상태는 너무 좋았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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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폰 작가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던 모든 순간에 행복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만난 윌라 캐더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처럼 엔딩에 가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폰 작가처럼 멋진 문장으로 책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데, 신은 나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해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안타까울 뿐이다.

 

<바람의 그림자> 후반전에는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훌리안 카락스의 숙적 푸메로 경감이 등장해서 수십 년에 걸친 악연의 종결에 나선다. 다니엘 셈페레가 <바람의 그림자>의 비밀과 그 소설의 저자 훌리안 카락스에게 다가갈수록 위험은 폭증된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게 된 베아와의 위태로운 사랑도 지켜내야 한다.

 

도대체 사폰 작가는 이 방대한 이야기의 얼개를 어떻게 시작한 걸까? 미래의 천재작가 훌리안은 결국 사랑하는 페넬로페 알다야와 생이별을 하고 파리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아니 그는 페넬로페와 함께 파리로 도주할 계획이었다. 산 가브리엘 학교에서 만난 친구 미켈 몰리에르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훌리안은 한 때 자신의 후원자였던 리카르도 알다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아마 파리 망명생활이 장장 17년이나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활동에 착수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의 다니엘과 페르민이 진실이 밝히기 위해 이전투구 끝에 얻어낸 것들이다. 그 와중에 예전에 악연으로 얽힌 푸메로 경감이 페르민을 그야말로 죽기 전까지 구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폭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 자신에게 다니엘은 그만 좌절한다.

 

그 장면은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네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푸메로가 페르민에게 용접용 토치로 가한 고문의 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잠시 스페인 내전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 앞서 1936717일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킨 파시스트들이 193941일 반란군의 마드리드 점령까지 3년에 걸쳐 벌어진 스페인 내전은 정의가 불의와 부당한 폭력에 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다니엘의 집요한 추적에 진실의 끄트머리만 살짝 보여준 누리아 몽포르트 여사가 그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니엘에게 담긴 원고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바람의 그림자>에서 누리에타가 구술하는 방식의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을 통해 사폰 작가는 독자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진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내 생각에 사폰은 거의 음악으로 치면 교향곡 작곡가에 비견할 만한 그런 수준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작가의 또 다른 페르소나 훌리안 카락스. 사폰은 더블 페르소나로 자신의 한쪽 분식은 카락스에게 그리고 나머지 분신은 다니엘에게 맡긴 게 아니었을까. 이 둘은 서로 쫓고 달아나는 그런 길항적 존재들이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서로는 이해하게 된다. 아니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푸메로 경감이 훌리안 카락스에게 품고 있던 복수의 정념은 무자비하고 집요했다. 오늘 어느 사설에서 보니 사랑보다 더 강렬한 감정이 바로 복수라고 하더라. 푸메로는 복수의 순간을 위해 수십 년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엔딩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빌런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일종의 필요악이라고나 할까.

 

라인 쿠베르라는 미치광이가 출몰해서 훌리안 카락스가 남긴 모든 책을 불태우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의 책들은 오히려 인기가 치솟았다. 이 또한 사폰 작가가 정교하게 만든 하나의 소설적 장치가 아닐까. 칠레 출신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가 죽은 뒤에 비로소 그의 책들이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처럼, 파리에서의 망명과 결투 그리고 스페인 내전 발발 초창기에 미스터리한 죽음이 그의 책들에 대한 시장 가치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절판본 성애자인 것처럼 말이지. 같은 책쟁이로서 110%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지막의 티비다보 애비뉴에서 벌어지는 엔딩 시퀀스는 정말 이 화려한 미스터리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십 년에 걸친 복수의 종지부를 필두로 해서, 분노의 혈투 그리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자기희생의 현현까지 문학적 상상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사폰 작가는 그야말로 쥐어짜내는데 성공했다.

 

영화도 아닌 책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기는, 서두에서 언급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이래 처음이었다. 그냥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빌런과의 사투 끝에 잠시 스틱스강을 건넜던 다니엘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부활에 성공한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바람의 그림자>에서 개그맨 역할을 맡은 페르민의 활약으로 반전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이런 걸 탁월한 균형감각이라 부른다지. 페르민은 하신타를 찾는 과정에서 산타 루이사 보호소의 늙은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시이토와 함께 그곳을 찾는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약속들은 지켜져야 하는 법이지,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고 해도. 독자가 감동의 도가니탕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잊은 것들도 작가는 그냥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마지막 장까지 탐욕스럽게 읽은 뒤, 나는 도대체 어떤 사유와 창작의 과정을 거쳐야 이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탁월한 작가가 빚어내는 언어의 지옥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니 그가 남긴 책들을 사냥해서 읽는 수밖에. 바로 <천사의 게임>을 읽기 시작했다.

 

당신이 책쟁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어볼 것을 간곡하게 권한다. 지에브알. 그리고 롸잇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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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10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롸잇 나우~~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와 함께 이 책을 담습니다^^

레삭매냐 2022-02-10 11:29   좋아요 3 | URL
제가 왠지 책팔이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요 ㅋㅋ

버뜨 강추합니다.

청아 2022-02-10 1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교향곡 같은 느낌!!!
레삭매냐님 이렇게나 몇번씩 극찬하시니
저도 꼭 읽어볼래요^^*

레삭매냐 2022-02-10 11:30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을 못하는 게 없
는 넷플릭스에서 맹글어
준다면 정말 ~

왜 이제사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고저 후회막급
입니다.

<천사의 게임>도 진도
쑥쑥입니다. 진정 책쟁이
들을 위한 책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coolcat329 2022-02-10 1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 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10 14:56   좋아요 2 | URL
말이 필요 없습니다, 증맬루.

라로 2022-02-10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읽었는데 하나투 기억 안 나니까 다시 읽어야겠어요, 증맬루.

레삭매냐 2022-02-10 17:14   좋아요 1 | URL
읽고 잊기에 대해 제가 죽을 때
까지 써먹는 구절이 있답니다.

김용 선생의 <의천도룡기>에서
무당파의 두목 장삼봉이 절체절
명의 위기에서 명교 교주 장무기
에게 태극권을 전수하는 장면이
랍니다.

영맨 장무기는 태사부가 알려주
는 초식을 보는 족족 까 먹어버
리죠. 그런데 그것이 까먹은 거
이 아니라 내적 흡수라고나 할까
요.

우리 책쟁이들에게 수없이 읽고
까먹고 또 다시 읽기의 무한반복
이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받고, 다시 한 번 고고씽 ~~~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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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한 나의 독서 추체험에 의하면, 결국 독서라는 행위는 자기구원으로 귀결된다. 책에 파묻혀 사는 우리 고독한 책쟁이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전 지구적인 행사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제도 읽고, 오늘도 읽으며 내일도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다 만나게 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는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는지 깊은 후회를 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책이었다.

 

, <바람의 그림자>를 읽다 말고 자심 짬을 내서 사폰 작가의 데뷔작 <안개의 왕자>를 읽었다. 물론 사폰의 대표작이자 종결에 가까운 <바람의 그림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시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효했던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시절은 1945, 그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공화국을 뒤집어엎은 프랑코 총통이 통치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공간적 배경이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셈페레 서점을 운영하는 소년 다니엘 셈페레 마르틴.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잊힌 책들의 묘지로 데려 가서 한 권의 책을 고르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훌리안 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였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것으로 보이는 소년은 책을 사랑해 마지않았고, 그렇게 <바람의 그림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훌리안 카락스를 아는 구스타보 바르셀로 아저씨는 그에게 책을 팔라고 하지만, 책과 단단하게 연결된 다니엘이 그 책을 팔 이유는 1도 없다. 소년은 그리고 바르셀로의 조카딸이자 눈이 먼 연상의 여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바람의 그림자> 책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다니엘. 그리고 소년은 미지의 작가 훌리안 카락스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이런 다니엘의 카락스 추적이 과연 그의 삶에 어떤 후과를 가져오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시간은 그로부터 5년이 흘러 1950년이 되었다. 운명은 가혹하기도 하지, 소년은 자신의 생일날 자신의 여신이 피아노 교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소년은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피아노 교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소년은 노숙자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를 만나 잠깐 동안의 구원을 얻는다.

 

소설에서 개그를 담당한 활달한 성격의 페르민은 전쟁 당시의 과거를 가진 오십대 초반의 남자로, 소년과 아버지 셈페레의 호의로 취업한 셈페레 서점에서 책사냥꾼으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사폰 작가는 정말 우리 책쟁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에 완벽하게 투영했다.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한 작가의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책들을 찾아 모두 불살라 버리는 미치광이의 출현부터 시작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십대 소년의 애달픈 그런 감정들에 대한 절묘한 서사 그리고 곳곳에서 번뜩이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정말 황홀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계속해서 밑줄을 죽죽 긋고, 다섯 가지 색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를 해대면서 책을 읽는다.

 

<바람의 그림자>의 본질은 결국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해 가는 소년 다니엘 셈페레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바람의 그림자>를 넘기라는 얼굴 없는 남자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훌리안 카락스가 남긴 그림자를 추적할수록 소설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싸이코패스 푸메로 경감으로부터 치욕을 당하는 등 숱한 위기를 겪는다. 자신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집안 출신의 베아트리스 아귈라르와의 사랑은 또 어떤가. 어떤 면에서 <바람의 그림자>는 사폰의 데뷔작 <안개의 왕자>에서 보여준 십대 소년들의 완성된 이미지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고로 무언가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설픈 그 무엇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안개의 왕자>를 먼저 읽은 게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페르민과 협력해서 다니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 훌리안 카락스의 희미한 흔적을 쫓는다. <바람의 그림자>는 다니엘에게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람의 그림자>가 그를 그전과 다른 차원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 전쟁이 끝난 뒤, 콜레라로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카락스의 과거를 파헤치며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어쩌면 어머니의 상실이라는 두려움부터 자기구원을 얻지 않았나 싶다.

 

클라라 바르셀로에 대한 풋사랑이 소년에게 트라우마로 작동했다면, 절친 토마스 아귈라르의 누나 베아와의 불같은 사랑은 과연 라틴 청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도 다니엘은 본업은 훌리안 카락스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잊힌 묘지의 책들에서 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를 집는 순간, 소년이 감당해야 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무엇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낱같은 단서들을 빌미로 훌리안 카락스를 추적하는 다니엘의 모습에서는 사폰 작가의 유년 시절을, 그리고 어쩌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훌리안 카락스는 성인이 되어서도 용가리와 판타지를 좋아했다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자가 소설의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한다면, 작가 역시 다른 접근 방식으로 캐릭터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움직이게 만들었으리라.

 

사폰 작가가 구사하는 삶과 세상 그리고 인간들의 관계에 대해 깊은 통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적이면서도 수려한 문장(번역의 힘이었을까 과연?)에 나는 그만 반해 버리고 말았다.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책의 곳곳에서 그야말로 빛나는 사폰 작가의 문장에 공감해서 연필로 그어댄 밑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다.

 

지금까지가 가벼운 몸풀기였다면, 다음 권에서는 본격적인 서사의 막이 오를 차례다. 예상을 초월하는 내러티브들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휘몰아 닥친다.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문장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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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9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을 이렇게 흥분하게 만든 책이 저는 왜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지 정말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전혀 기억도 안 나고요. 😶

레삭매냐 2022-02-09 14:51   좋아요 3 | URL
외람되지만 근자에 읽은 책
가운데 단연 쵝오의 책이라
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2-02-09 14:36   좋아요 3 | URL
두 분의 엇갈린 의견으로 독서 의욕 뿜뿜 강렬해집니다~~

초란공 2022-02-09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본 작가에요~ 찜하기부터 합니다^^ 기대기대!!

레삭매냐 2022-02-09 17:49   좋아요 2 | URL
너무 너무 재밌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감동의 도가니탕 !

모든 책쟁이들에게 소개하고픈 그런
책이었답니다...

mini74 2022-02-09 1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도가니라니요 !! 동네 도서관에 있어서 넘 기쁜 ㅎㅎ 내일 오전에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

stella.K 2022-02-09 19:11   좋아요 3 | URL
ㅎㅎ 매냐님 덕분에 서재에 다시 한 번 <바람의 그림자> 붐이 일어나겠군요.
매냐님은 저 때문에 잊고 계셨다 언능 찾아 읽기 시작하셨다는데
제가 또 붐을 일으키는 사람은 못 되죠.ㅠㅋㅋ

레삭매냐 2022-02-09 19:39   좋아요 2 | URL
너무 재밌어서 결국 오늘
완독해 버렸습니다.

바로 <천사의 게임> 읽기
시작했고요 - 경하드립니다.

stella.K 2022-02-09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문장 좋더라구요. 저도 밑줄 많이 그었습니다.
저는 아직 2권을 안 읽고 살짝 외도중인데
그 사이 <안개의 왕자>를 읽으셨다닛!
곧 전작을 다 읽으시겠군요.

근데 맞는 것 같긴해요. 지금이 올림픽 기간이지만
아마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나 볼 것 같아요.
어제 겨우 차준환이 나오는 피겨 쇼트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안 볼 수가 없어서리. 넘 잘 생겼잖아요.ㅎㅎ
그것도 다 본 건 아니고. 7그룹에 속한 선수들 보니까 대단하더군요.
대회 10위 안에 드는 게 목표라는데 메달권은 아닌 것 같아
살짝 아쉽긴하지만 다음 대회에선 메달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ㅋ

레삭매냐 2022-02-09 19:41   좋아요 2 | URL
스텔라케이님을 통해 올림픽
소식을 듣게 되는군요.

전 스포츠는 오직 야구 뿐이
라고 생각하는 닝겡이라 -
게다가 이번에 사폰 작가를
알게 되어 더더욱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답니다.

이 냥반, 시인인가라는 생각
이 다 들 정도였습니다.

stella.K 2022-02-09 19:47   좋아요 2 | URL
표지 그림은 문학과 지성사게 낫지 않나 싶어요.
번역자가 같은 걸 보면 본문 그대로 출판사를 갈아 탄
거라고 보는데 맞나 모르겠어요.
약간의 번역투가 보이기는 하는데...

북깨비 2022-02-09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그림자 1,2권 주문했어요. ㅠㅠ 이번 달은 책 더 안 사려고 했는데 망했어요. 😭

레삭매냐 2022-02-10 09:03   좋아요 2 | URL
후회하시지 않을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라로 2022-02-10 17: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레삭매냐 2022-02-10 22:43   좋아요 0 | URL
참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책쟁이들의 고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leepapggot 2022-02-14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딱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14 10:44   좋아요 0 | URL
후회하시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우리 매냐님 ㅎㅎ 항상 새로운 작가와 작품 소개하주시는 ㅎㅎ 당선을 감축드리옵니다 ~~

새파랑 2022-03-08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책을 보관함에 담지 않았군요 ㅋ 바로 담아야 겠습니다 ^^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물감 2022-03-08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책쟁이들은 예 그렇죠, 저도 올림픽, 월드컵 안봅니다. 뉴스로 결과만 확인할 뿐...

가필드 2022-03-08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당선 축하드려요 🌷

북깨비 2022-03-09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제 지갑을 열었던 바로 그 리뷰로군요.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려요!

독서괭 2022-03-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singri 2022-03-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

강나루 2022-03-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려요.

오늘 투표하는 거 아시지요^^

thkang1001 2022-03-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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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작가들의 작가라는 호칭을 가진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에서도 확인한 바가 있다. 정점이 지난 작가가 발표하는 책들이 이전의 작품들만 못하다는 사실을 잇달아 확인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작가가 전작을 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오늘 나의 도마에 오른 작가는 바로 이언 매큐언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그에 대한 설명은 패스하련다. 사실 지난 작품은 <넛셸>에서도 느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작가로서의 유통기한이 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작품에서 나의 의신을 사기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확신을 주었다.

 

아 간만에 혹평을 하려니 좀 그렇다. 어쨌든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책을 읽는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중에 다른 책들을 읽어서 그런가. 참고로 이 책은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사서 읽었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아니면 곧바로 헌책방에 팔았던가.

 

지난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명백하게 노대가는 문학적 오마주를 시도한다. 이번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그 유명한 단편인 <변신>이다. 그 작품에서 인간이 아마 벌레로 변신했지. 왜 그런데 하필이면 벌레였을까? 이번에는 우리 인간의 가장 업신여김을 받는 바퀴벌레가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영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총리 제임스() 샌스로.

 

문제는 그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는 브렉시트 투표를 실시한 즈음이었다. 노대가는 그 때의 결정이 빈곤층과 노년층의 연합이었다고 못 박는다. 당시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는 그런 파국적인 결정이었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영국이 망했나? 그건 아니다. 어떤 결정이라고 해서 바로 국가 단위의 조직이 망하지는 않고 서서히 쇠퇴하다가 어느 순간, 국가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이류국가가 되는 거겠지.

 

이미 영국이 세계일류국가의 자리를 한 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내준 게 제법 되지 않았던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며, 거의 똘마니 수준으로 미국이 창조해낸 세계질서에 협조해온 역사가 그런 점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노대가는 도대체 이 정치우화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바퀴벌레가 한 나라의 총수가 되어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었을까? 그나마 미국 정치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민주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그것에 대해서는 1도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장 눈앞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 쇼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사유 체계는 버거우니 말이다.

 

바퀴벌레 총리의 인간 세계 습득과정은 놀라운 지경이다. 다리 여섯 달린 벌레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신속했다. 과연 지구별에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환경적응력의 문학적 현실화라고나 할까. 순간 너튜브에서 짤로 본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이는 일본 B급 영화 <테라포마스><조의 아파트먼트>가 떠올랐다.

 

프랑스 해안에서 침몰한 어선을 정치적 위기로 비화하는 정치적 기술이나 대서양 바다 건너 동맹국의 수장인 아치 터퍼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유쾌하다. 소설에서 정말 끝장나는 장면 중의 하나는 바로 짐 샌스가 아치 터퍼(국가분열의 상징이 된 어느 코미디언 스타일의 전직 대통령의 희화화)에게 혹시 그쪽도 다리 여섯이냐고 전화로 묻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신랄하게 자국의 총리와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을 마음껏 깔 수 있는 노대가의 패기가 부럽기도 했다. ,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별점을 하나 올려야 하나!

 

그런데 소설의 엔딩이 어떻게 되더라. 어쨌든 영국은 브렉시트로 세상에 온갖 종류의 혼돈을 초래했고 결국 유럽연합에서 자발적으로 탈퇴 아니 내쫓겼다. 이건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유로 공동체가 출범하던 시절부터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의 파운드화를 고수하던 시절부터 어쩌면 이런 브렉시트는 예정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섬나라 특유의 고립주의 그런 건 고려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영국은 처음부터 대륙국가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나의 추정이다.

 

짐 샌스의 지휘 아래 행해지는 온갖 종류의 정치적 모략도 볼만한 관전 포인트다. 바퀴벌레 총리가 실시하는 모든 종류의 우스꽝스러운 정책과 역방향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그나마 제 정신이 박힌 이들의 시도는 카크라치총리의 치졸한 음모로 분쇄된다. 하긴 우린 이미 일 년 전쯤에 부정선거라는 해괴한 논리의 세례를 받은 일단의 극단주의자들이 어느 나라 의사당에서 난동을 부린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생생하게 보지 않았던가.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하는 리얼리티의 재현이 아닐 수 없었다.

 

현실세계가 이렇게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하는 스펙터클한 재미를 제공해 주니, 우리가 더더욱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들은 분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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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8 0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슨 영국 총리가 ˝파티˝로 공개 조롱 당하는 영상을 보았던지라 리뷰 마지막 문장에 더욱 공감합니다. 저는 몇 년전(3~4년 전일까요??기억 가물) 북플 선배님들께어 이언 메큐언, 이언 메큐언 하시기에 찾아 읽다가 반했습니다. 그런데 최신간은 예전 명성에 맞지 않는 작품인가 보네요....그래도 일단 이언 메큐언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08 09:09   좋아요 2 | URL
전성기의 이언 매큐언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저도 드물게 전작하는 작가 중의
하나랍니다 ^^

오랜 로열티로 그렇게 읽었답니다.

새파랑 2022-02-08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안들어서 안끌렸던 책인데 레삭매냐님에게는 별로였나보네요 <변신>까지는 아니었나봅니다~!

레삭매냐 2022-02-08 09:10   좋아요 3 | URL
출간 되기 전부터 뭐랄까
느낌이 쎄~하더라는 -

그냥 쉬엄쉬엄 읽으면
좋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 심각하게는 말고요.

mini74 2022-02-08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민중이었는데 매냐님 별 두 개 ㅠㅠ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요. ㅎㅎ조의 아파트먼트.ㅋㅋㅋ넘 싫어요.

레삭매냐 2022-02-08 19:28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읽는데 부담
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

전 전작하는 작가라 꾸역
꾸역 읽었답니다.
다른 책들이 넘 재밌어서
상대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개의 왕자 - 오르페우스호의 비밀 안개 3부작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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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허명은 없더라. 역시 재밌었다. 결국 이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와 사폰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거지. 그런데, 2년 전에 작가는 대장암으로 이미 작고하셨다네. 55, 한창 작가로서 책을 써주셔야 할 나이에, 안타깝다.

 

지난 토요일 영하의 날씨도 무릅쓰고 그의 책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네 권의 책들을 업어왔다. 그 중에는 사폰의 소설 데뷔작인 <안개의 왕자>가 있었다. <바람의 그림자>도 다 읽지 않았는데... 그런데 데뷔작이라고 하니 자꾸만 손길이 간다. 결국 <바람의 그림자> 첫 번째 권을 절반 정도 읽다 말고 새책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어제 오늘해서 다 읽었다. 마지막 부분은 오늘 출근길 버스에서 허겁지겁 읽었다.

 

서두에서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안개의 왕자>는 청소년용 판타지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책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나는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안개의 왕자>는 새내기 작가치고는 정말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작가는 나중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다음, 첫 책의 이곳저곳을 다시 쓰거나 고치고 싶었지만, 그대로 두었다는 말을 남긴다. 있는 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고.

 

소설 <안개의 왕자>의 주인공은 13세 소년 막스 카버다. 시계공이었던 아버지가 어느 날 바닷가 마을로 이사선언을 하면서 막스의 모험이 시작된다. 사폰은 카버 가족이 살게 된 집의 이전 내력부터 시작해서 촘촘한 구성으로 222쪽을 가득 메운다. 일단 <안개의 왕자>는 가독성이 뛰어나다. 십대 소년의 눈을 통해 새로 이사 간 집 근처의 조각공원에 대한 미스터리부터 시작해서 등대지기 할아버지(72)인 빅터 크레이가 양손자 롤랑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비밀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다양한 내러티브가 끝없이 등장해서 독자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막스는 동네 형인 롤랑을 만나 우정을 쌓게 되고, 자신의 누이인 알리시아는 심지어 그렇게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롤랑과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삼총사가 된 십대 청년들은 25년 전 인근 바다에 침몰한 오르페우스호 그리고 미지의 주술사 미스터 케인과 맞서게 된다. 그리고 보니 침몰한 배의 이름이 오르페우스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수금의 명수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구해내온 이가 바로 오르페우스가 아니었던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은 그렇게 제각각 작가가 부여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카버네 가족이 바닷가 집으로 이사한 이래 기괴한 일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우선 막내동생 이리나가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막스 삼총사는 침몰한 오르페우스호 부근에서 잠수놀이를 하다가 바다괴물처럼 등장한 미스터 케인의 마수에 빠져 익사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물론 이런 사건들은 엔딩에 준비된 그야말로 화려한 대주술사와의 대결에 비하면 워밍업 정도라고나 할까.

 

모든 사건의 비밀은 롤랑의 할아버지 빅터 크레이가 알고 있었다. 미스터 크레이는 한 때 잘 나가던 영국 출신 엔지니어였지만, 운명이 인도한 미스터 케인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지독하게 꼬여 버렸다. 첫 번째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미스터 케인의 음모를 막기 위해 승선했던 오르페우스호가 침몰한 뒤, 유일한 생존자로 마을의 등대를 세우고 현재 조용하게 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늙은 영웅처럼 주술사 케인과의 대결에서 무언가 보여줄 거라는 기대는 아쉽게 무산되었다.

 

현대판 파우스트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 케인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소원을 비는 이들에게 터무니없는 그런 요구를 한다. 현재의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소원 성취는 결국 소원을 말한 사람을 파멸로 인도한다. 그걸 눈으로 직접 목격한 빅터 크레이는 미스터 케인과의 거래를 한사코 피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운명 아니 숙명은 그를 옥죄어온다.

 

엔딩에 등장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대주술사와의 대결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곧바로 최근 전세계의 모든 이야기들을 사들이고 있다는 넷플릭스 생각이 났다. 넷플릭스의 자본이라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판타지 안개 3부작도 능히 영상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희생이라는 삼박자로 무장하고 거대한 악에 맞서는 막스-롤랑-알리시아 삼총사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넷플릭스, 빨리 영화를 만들어 줘요.

 

나는 그렇게 <안개의 왕자>를 다 읽고, 다시 <바람의 그림자> 읽기로 복귀했다. 세간의 평들을 보니 사폰의 대표작인 <바람의 그림자>의 아우라가 그의 다른 작품들을 모조리 잡아먹는 그런 형세다. <바람의 그림자>가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지 결국 다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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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7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사폰 책이 꽤 있군요. 청소년 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주말에 책을 읽다 갑자기 나가서 책사냥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ㅎㅎ

레삭매냐 2022-02-07 10:45   좋아요 3 | URL
제가 생각해도 그러합니다 -
옆지기가 이렇게 추운 데
나가냐고 하더라구요 헷
재밌는 책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추위에 대한 보상이네요.

안개 3부작은 아마 청소년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나 싶네요.

페넬로페 2022-02-07 14: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아니지만 춥고 바람 부는 날에도 배드민턴 치러 나갔던 남편이 생각납니다~~
루이스 사폰 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가득 하지만 올해는 집에 있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기에 도서관을 이용해서 차곡차곡 읽어 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07 14:51   좋아요 2 | URL
저도 집에 읽지 않은 책이
한가득이지만, 사폰 작가
의 책은 도저히 유혹을
이길 수가 없더라구요 ^^

옛날 책 파먹기 프로젝트
구동해야할 것 같습니다.
읽고 정리하기 !!!

mini74 2022-02-07 14: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강렬해요. 내일은 추위를 뚫고 ㅎㅎ 루이스 사폰을 찾으러 도서관에 가야겠어요 ~~

레삭매냐 2022-02-07 14:52   좋아요 2 | URL
표지의 인물이 누구인가 했더니
바로 대주술사 미스터 케인이더
라구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면
정말 무섭지 않을까 싶네요.

라로 2022-02-07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그림자>는 알라딘 초기 시절 알라디너 분들이 막 재밌다고 해서 저도 읽고 너무 좋았던 기억 말고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저같은 사람 책은 읽어서 뭐하니? 라는 자괴감이 살짝.ㅠㅠ
암튼 데뷔작이 <안개의 왕자>ㅎㅎㅎㅎㅎㅎㅎㅎㅎ 번역가들이 일부러 사폰의 책 제목 번역을 그렇게 하는 걸까요?? <안개의 왕자>, <바람의 그림자>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넘 웃겨요. 암튼 매냐님의 별 5개는 의미심장합니다요!!

레삭매냐 2022-02-07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사폰 작가의 책들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
역시나 저의 책사냥 수고
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
이 팍팍 드네요 ^^

아 이미 오래 전에 읽으신
책이로군요. 전 새로운 세
상을 이제사 만나서리 -
아주 신납니다.

2월은 사폰 책읽기의 달
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