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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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에는 두 편의 노벨레가 실려 있다. 어떻게 츠바이크의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걸까. 아마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되어 출판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3년 츠바이크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 날 바로 <과거로의 여행>을 읽었지. 그리고 오늘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아무래도 후자에 더 방점을 찍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순전히 기억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192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화자는 리비에라 바닷가 휴양지의 어느 펜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대는 대전쟁이 벌어지기 10년 전인 1904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잘 생기고,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이십대 청년의 등장으로 비롯됐다. 화자가 머물던 펜션에 있던 리옹 출신 뚱보 공장주의 아내 앙리에트와 야반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첫눈에 반해서 자신의 아이들과 부유한 공장주 남편을 내팽쳐 버리고 갑자기 등장한 연인과 도망가 버렸다. 한가하고, 타인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모두 이 사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독일인, 이탈리아인 부부와 달리 화자는 도망간 앙리에트가 시도한 사랑의 모험을 지지하면서 토론은 곧 상호비방전으로 격화됐다. 여러 가설들을 부정하면서, 완벽한 진실만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문제는 그 완벽한 진실을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국 출신 67세의 C부인이 등장해서, 토론을 멈추고 팽팽하게 맞선 두 진영을 중재한다. 품위가 있고 나이가 지긋한 C부인은 무려 24년 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비슷한 사건을 재구성해서 화자에게 들려준다. 어린 나이에 군인 남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C부인은 나이 마흔에 남편을 열대지방에서 걸린 질병으로 잃었다. 배우자의 상실에서 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의 감정은 바로 어제 읽었던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우연히 찾게 된 몬테카를로의 녹색 카지노 테이블에서 작고한 남편이 알려준 손들의 관찰법 대로 손들을 보던 C부인은 아름답고 열정으로 가득한 한 쌍의 손들과 만나게 된다. 그 손의 주인공은 탐욕과 광기로 가득한 도박에 미친 어느 인간(24세 정도)이었다. 승리의 감정과 실망을 오가는 그의 모습에서 발현된 "강력한 어떤 것"에 홀린 C부인은 도박판에서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무일푼이자 자포자기 상태가 된 청년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심연에 빠진 낯선 청년을 구원했다는 사실도 잠깐, 싸구려 호텔에서 깨어난 C부인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빠져 도주를 시도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게 된 구원이라는 과제를 끝내기 위해 청년과 짧은 여행을 하며 사악한 도박을 끓으라는 맹세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십대의 C부인은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아니었을까? 청년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마술적 자기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광기에 가까운 열정에 휩싸인 C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구제불능의 청년이 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간다. 그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정은 클리셰이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C부인이 한 때 도박에 미친 남자에게 품었던 비정상적이고 광적인 열정은 결국 망각이라는 이름의 시간의 위력이 해결해 주었다. 과거에 대한 강박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잔재들을 화자에게 고해성사처럼 풀어 놓은 C부인은 과연 구원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1929년에 발표된 <과거로의 여행>에서는 주인공 루트비히가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그야말로 독일식 에로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사장을 배신할 수 없는 그런 족쇄에 묶인 루트비히는 사장의 부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야속한 시간들은 두 연인을 무려 9년 동안이나 갈라놓았고, 다시 만난 그들은 하이델베르크로 무작정 떠난다.

 

시간이란 마법은 관계를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들기도 또 반대로 모든 걸 부수기도 한다는 자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9년이란 시간은 루트비히와 사장 부인 모두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변모하게 만들기에 넘치게 충분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던 존재와 함께 있지만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그 때와 달라져 버렸다. 바로 그 순간에 존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욕망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진실과 타협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불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면 시간이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왠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바로 그 뜨거운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찬양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 결과가 초래할 눈앞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경계에 선 우리 인간의 고민과 갈등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이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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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8-25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 코멘트를 제가 최근에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뜨거운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성자와도 같은 자기 성찰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작가들의 모습을 투영해서 계속 서술하더라구요.

레삭매냐 2025-08-25 20:05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고 책도 한 번 수배
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츠바이크 책을 읽
으면서 느낀 건데, 한 출판사에서
츠바이크 전집 같은 걸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중복되는 책들이 많아서
헷갈릴 지경이네요.

Forgettable. 2025-08-25 22:28   좋아요 1 | URL
크리스티네.. 와 우체국 아가씨인가 그것도 완전 제목 다르게 해서 여럿 낚였었죠..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전집 혹하네요 ㅋㅋ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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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달궁모임까지 21일 남기고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를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사실 지난 6월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10쪽 정도 읽고 나서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강의를 들으러 책방연두에 출동했다가 <바움가트너>를 빌려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틀만에 다 읽었네. 이런 걸 보면 책과의 시절인연이 존재하는가 보다.

 

소설 <바움가트너>의 주인공은 20184월 현재 70세 노인이 된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미스터 바움가트너가 사는 뉴저지의 프린스턴이다. 그리고 흙수저 출신의 바움가트너는 무려 프린스턴 대학교의 철학교수님이시다. 그는 10년 전에 사랑하는 아내 애나 블룸을 케이프코드에서 사고로 잃은 홀아비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주인공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는 필연적으로 상실에 따른 소외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책들을 온라인 주문하고 그 책들을 배달하는 UPS기사 몰리와 스몰토크를 즐기기도 한다. 주문해서 읽지 않은 책들은 공공기관에 기증한다나. 그렇다면 읽지도 않은 책들을 책방 가득 쌓아 두고서 항상 고민 중인 나와도 어떤 면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는 동질감이 형성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서 메를로퐁티를 전공하고, 읽기의 현상학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했다고 했던가. 때마침 며칠 전에 들은 하이데거의 현상학 이야기를 책 읽기에 적용시켜 봐야 하는 생각에 염통이 조금 쫄깃해져 오는 그런 느낌이다. 배울 걸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건 어떤 점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타인(작가)이 직조한 이야기에 삶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내적 지향성이야말로 현상학의 핵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니 이 정도 적용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죽은 아내 애나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한 부분에서는 조금은 스릴러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미스터 바움가트너의 환상 혹은 착각이 아니었을까. 번역가이자 편집자였던 아내 애나가 남긴 시들과 여러 글들에서 폴 오스터는 과거를 소환해낸다. 애나의 첫사랑이었던 프랭키 보일의 죽음에 대한 서사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애나의 죽음에 앞선 대과거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안치오 전투에 참전한 애국자 베테랑 프랭키의 아버지는, 아들이 베트남 전쟁 참전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당시는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격렬해지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던가. 결국 프랭키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징병에 응했지만, 베트남의 정글도 밟아 보지 못하고 훈련소의 폭발 사고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폴 오스터 작가는 그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우화적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자란 바움가트너는 철이 들면서 자기가 나고 자란 뉴어크를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깨닫는다. 흙수저 청년은 자신이 원하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적을 유지해야 했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허드렛일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그가 사랑한 애나는 전혀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왔다.

 

우연한 만남은 바움가트너와 애나를 연결지어 주었다. 소위 말하는 사랑의 쌍곡선은 그렇게 완성되기 마련인가 보다.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던 애나는 작은 출판사의 신출내기 편집자/비서로 자신의 경력을 출발한다. 그리고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는 바움가트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를 당하고 나서 바움가트너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죽고 나서, 재능 넘치는 애나가 남긴 유고 가운데 시들을 발굴해서 시집을 발표한다. 이것은 마치 죽은 이들의 유작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미국 문학 소비자들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보니 <바움가트너> 역시 폴 오스터의 유작이 아니던가. 물론 로베르토 볼라뇨처럼 사후에 더 유명해진 작가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시간 속에서 폴 오스터는 또다른 이야기들을 퍼올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가족의 친구였던 영화평론가 주디스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바움가트너가 사별한 홀아비라면, 주디스는 결혼생활을 정리한 이혼녀다. , 그리고 바움가트너와 애나는 불임부부로 아이가 없다. 이것은 애나가 사고로 죽은 뒤, 노년으로 접어드는 바움가트너에게 그의 아버지 야코프(제이컵)와 달리 가족 부양의 의무를 제거하는 하나의 장치였다고나 할까.

 

우리의 홀아비 바움가트너는 주디스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한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주디스에게 청혼하기 위해 장미 꽃다발을 준비하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의 대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대신, 만남의 횟수를 늘이자고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제안일 뿐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주디스가 다른 대학의 영화학과 학과장 자리를 맡으면서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다. 주디스와 바움가트너의 인연 역시 서로의 필요에 따른 시절인연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냉정한 분석일까.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의 슈타니슬라프에서 시작된 바움가트너 집안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기억의 재조립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업인 재단사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 야코프.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사라진 뒤 외삼촌에게 위탁되었다가 야코프의 가게에서 일하게 된 바움가트너의 어머니 루스 오스터 여사. 우크라이나 슈타니슬라프 방문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잔혹했던 나치 독일의 슈타니슬라프 유대인 학살극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한다. 아니 이 순간에 바로 여기서!

 

그리고 다시 2019년 현재로 돌아와 자신의 저서 <운전대의 신비>를 마무리 지으면서 당분간 모든 것이 멈추었노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옛 동료로부터 자신의 제자 베브(비어트릭스) 코언이 애나의 유고를 위해 바움가트너와 연락을 원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종신 교수직 은퇴를 고민하고, 바지 지퍼 닫기에 고민하던 바움가트너에게 무언가 새로운 삶의 기폭제가 될 하나의 전환점의 등장하는 순간이다. 아까 낮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커다란 돋보기를 드시고, 글을 읽고 쓰시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시간에 연동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어떤 노력이 필요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베브 코언을 위해 자신의 집에 머물 장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첫 장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패한 마이너리거 투수 에드 파파도풀로스를 소환하는 폴 오스터. 그리고 보니 안톤 체홉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각각의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했던가. 애써 등판한 선수를 한 번만 쓰고 그렇게 내버릴 수는 없었나 보다. 베브에게 심지어 자신의 차까지 제공하겠다는 바움가트너의 적극적 호의가 오히려 베브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청년 학자 베브 코언과의 교류는 다시 한 번 미스터 바움가트너를 오래 전 애나와 서신교환하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아 구성이론에 빗대,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설교하는 장면 그리고 은근 슬쩍 MAGA에 대한 비판을 끼워 넣는 장면들은 과연 폴 오스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무한한 불가해성 그리고 예측불허한 가능성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변화구를 던진다. 그리고 작가가 소설에서 구사한 문장대로 어떤 것이든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방식으로 멋진 작품의 항해를 마무리한다.

 

사는 순간, 왜 정말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반대로 덧없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자세하고 끈질기게 다가온다. 폴 오스터 같은 소설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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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4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의 기존의 책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 전 달의 궁전같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던 폴 오스터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나이 들면서 원래의 뉴욕3부작 스타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레삭매냐 2025-08-25 09:4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인생의 황혼이다
보니,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네요...

잔잔바리로 시작해서 과거
시간의 바다로 항해해 간다
는 느낌이랄까요.

가속이 붙으니 책이 휙휙
넘어 갔습니다.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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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서가 정리 중이다. 왜 이렇게 사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은 건지. 하긴 그전에 읽었다고 하더라도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읽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기억을 위해서라도 리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딱 25년 전에 나온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내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그 책을 읽을 시간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파스칼 키냐르에 반해서 한동안 그의 책들을 사 모으지 않았나 싶다. 아마 <로마의 테라스>도 그렇게 해서 사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1617년 파리에서 태어난 조프루아 몸므라는 에칭 판화가다. 유럽의 각지를 떠돌며 도제로 판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해서는 안될 여인 나니 베트 야콥스를 사랑한 죄로, 그녀의 약혼자 방라크르에게 질산 테러를 당해 흉측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예술혼마저 빼앗아 가진 못했던 것 같다. 역설적으로 그런 고난이야말로 예술가에는 어떤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이들의 내적 갈등이나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분리하려는 심정의 근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는 그런 겉돌기식 이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적에 의해 얼굴이 망가진 몸므는 일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는 도주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런 와중에서도 몸므는 판화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불안정한 일상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판화가라는 직업에 열중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나니에 대한 사랑과 미련은 몸므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부분들은 소설적 클리셰이스러운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플루아 몸므가 보다 뛰어난 예술가 혹은 장인이 되고 싶었다면, 이런 혹독한 시련을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또한 너무 지나치게 작동한다면,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파스칼 키냐르 작가는 적당한 선에서 그리고 마리 에델이라는 또다른 몸므의 뮤즈를 등장시켜 타협한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자신의 아들 방라크르의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극적 사건이다.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한 번 아버지 방라크르에게 데인 적이 있던 몸므는 이번에는 그의 자식으로 성장한 아들 방라크르에게 피습을 받아 황천길에 오를 뻔하는 위기를 맞는다.

 

그렇게 부유하던 이야기는 독자를 니힐리즘의 끝으로 인도한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라는 몸므의 독백 같은 문장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주인공 몸므 뿐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들의 필연적 운명이 아니던가.

 

짙은 허무의 안개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나만의 해석을 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독서는 파스칼 키냐르의 책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라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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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7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책장 정리를 했어요. 더 이상 꽂을데가 없어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제 책은 거의 다두고 애들 학교 때 읽던책만 방출했네요.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른건 평생 고쳐지지 않는 버릇인데 우리 모두 비슷하죠? ㅎㅎ 저는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를 오늘 처음 들었는데 알라딘 검색하니 번역된 책이 굉장히 많네요. 세상의 모든 아침이 대표작이라니 고 책을 살짝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레삭매냐 2025-08-17 21:40   좋아요 1 | URL
아니 어찌 이리 저와 상황이
비슷하신지요. 저도 꼬맹이
책들만... 그랬다고 합니다.

열심히 추려내고 있는데,
역부족입니다 ㅠㅠ
사고 읽고 팔고의 무한반복
책쟁이의 숙명인가 봅니다.

그레이스 2025-08-1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마의 테라스 언젠간 읽어야지 하고 쟁여논 책인데,,, 별3개, 빨리 읽고 정리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까요?**
저도 무한반복!

레삭매냐 2025-08-20 07:22   좋아요 0 | URL
저도 수년 동안 쟁여 두었다가
드디어 읽은 책이랍니다 ^^

저 같이 우매한 독자가 고매한
저자가 추구하는 깊은 뜻까지
도달하지 못하야 별 세 개를...
쿨럭~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무한반복, 고저 빠이팅입니다.
 
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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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5년 만에 다시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다 보니 그 시절에 읽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났다. 역시 책은 다시 읽는 법인가 보다. 그리고 그 때보다 부수적으로 너튜브란 녀석이 있어서 관련된 여러 정보들도 같이 업그레이드하면서 읽을 수가 있어 좋았던 독서 체험이었다. 다시 읽기와 책 다이어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나 할까.

 

조선 역사에서 역모는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체제를 뒤집어 엎으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고, 딱 두 번 성공했다. 한 번은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그리고 나머지는 이번에 읽은 광해군을 저격한 인조반정이다. 성공하면 반정, 실패하면 역모로 그야말로 집안이 풍지박산나는 그런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일단 이야기는 선조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의 즉위로 중종 이래 치열하게 이어져온 훈구파와 사림의 대결은 사림의 승리로 귀결된다. 사화로 수많은 사림 출신 선비들이 죽어 나갔고, 최종장에서 권력은 사림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붕당정치가 시작되면서 사림들끼리의 헤게모니 투쟁이 전개된다.

 

일단 그 부분은 상당히 복잡하니 패스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광해군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이다. 형님 임해군에 이어 선조의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난 광해군은 조선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임진왜란 중에 세자에 책봉되었다. 군주국가에서 후계자 문제는 가장 중요한 국가 대사 중의 하나였다. 자질이 시원치 않았던 임해군 대신 선조의 선택은 광해군이었다.

 

왜군이 동래에 상륙한 이래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함락시키자,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몽진길에 오른다. 조선 개국 이래, 수도를 버리고 몽진길에 나선 첫 번째 임금이 바로 선조였다. 그리고 조선 군주 가운데 몽진 삼총사야말로 최악의 군주 트리오로 봐도 될 것 같다. 선조, 인조(3) 그리고 고종이 그들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라가 망할 지도 모르는 위기 가운데, 세자가 된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아마 조선의 군주 가운데, 수도 말고 다른 곳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군주는 광해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나 싶다.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가서 자신의 일신을 위해 명나라 망명까지 시도했지만, 그의 아들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면서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위무하고 각지에서 병력을 끌어 모아 그야말로 사그라져 가는 사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전쟁 발발 다음해에는 병까지 들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광해군 인생에서 빛나는 1부였다면, 그 다음부터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정비가 없었던 선조는 늘그막에 아들 광해군보다 더 젊은 인목대비를 들이고, 인목대비는 영창군을 낳는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이미 장성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전란을 극복해낸 장성한 예비 군주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영창군의 탄생으로 광해군 즉위를 위한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 말기는 광해군에게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선조가 1608316일 사망하면서,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암투는 광해군이 조선 15대 군주로 즉위하면서 종결됐다. 일단, 광해군은 16년을 기다린 끝에 대권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첩첩산중처럼 보였다. 우선 임진왜란 이후의 국가 재건 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전쟁으로 실추된 왕권 강화 사업도 필수였다. 마지막으로 중원에서는 명청 교체기라는 조선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적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재조지은이란 표현으로 대표되듯 명나라의 지원이 없었다면 조선 국가는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의식이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무조건 명나라 편을 들어야 한다는 강상 윤리를 따지며 광해군을 압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국가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에 광해군은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훗날 조선의 기본 조세제도를 도입한다. 기존 공납 제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혁신적인 법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국 단위의 전면적인 시행은 아니었고,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한 시범 운영이었다. 어쨌든 중종 대, 조광조와 정광필의 제안으로 그동안 논의만 되어오던 대동법의 시행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광해군의 치적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다음에는 대규모 궁궐영건 사업과 각종 편찬사업에 착수했다. 임진년 7년 대전란은 조선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개국 이래 200년 동안, 그 전란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보낸 조선은 임진왜란을 통해 신분제를 필두로 해서 그동안 공고하게 지켜져 오던 사회 질서들이 무너져 내렸다. 정통 성리학이 국시인 조선에서 아무리 강상 윤리를 따져본들, 당장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전쟁 시기에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어지러워진 사회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그리고 전란으로 건강을 해친 이들을 위해 비싼 중국산 약재 대신 토산 약재를 이용할 수 있는 <동의보감>도 펴냈다. 전쟁 와중에 소실된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복간하는 작업도 동시에 추진했다. 그나저나 이런 도서 편찬작업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양반 계층에나 해당되는 일일 텐데, 민생과는 좀 동떨어진 이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해군은 전란 동안 불에 타고 무너져 버린 궁궐을 영건해서 국왕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노력했다. 전쟁 복구가 우선이라는 신료들의 반대에도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모되는 궁궐 영건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자고로, 이런 대규모 토목사업은 가능하면 치세 기간 내에 자제하는 게 권력자의 기본이 아닌가. 그것도 전쟁으로 입은 피해들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대단위 궁궐 영건사업은 아무리 왕권강화를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반대자들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광해군 폐위 이유로 들었던 이른바 폐모살제의 근원이 되는 계축옥사(1613년 광해군 5)로 결국 나이 어린 영창군은 폐위되고,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광해군 집권기를 대표하는 북인의 영수는 임진왜란 의병 출신 정인홍과 훈구파 출신 이이첨이었다. 광해군 집권 초기에는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삼고, 이항복과 이덕형 같은 서인 출신 정치인들도 등용하는 연립정권을 출발시켰지만, 광해군 후반으로 갈수록 이이첨을 필두로 한 북인들이 정권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서인들에게 좀 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 주었더라면, 과연 인조반정을 막을 수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전 <광해군>의 상당 부분은 결국 외교의 달인으로서의 광해군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건주여진 출신의 누르하치는 건주-해서-야인 여진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무리들을 통합하면서, 서방의 명나라와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중에 선조에게 왜군과 싸울 기마병을 파견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건국 이래 여진족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던 조선에게는 있을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명나라에 철저하게 신속하던 누르하치의 여진족이 점점 세력을 키워 가면서, 대국 명나라를 상대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만력제 이래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명나라는 자력으로 동방에서 발흥하는 누르하치의 후금을 상대할 수 없게 되자, 재조지은을 이유로 조선에 대후금과의 전쟁에 파병할 것을 요구한다. 그동안의 냉철한 정보수집과 첩보활동을 바탕으로 광해군은 명나라가 후금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중화중심의 화이관에 사로잡힌 조선 조정의 신료들은 부모의 나라을 요청을 거절할 수 없다며 파병할 것을 강력하게 광해군에게 주청한다. 오늘날에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재조지은의 의리와 신료들의 주장 앞에 더 이상의 시간끌기 전술이 먹혀들지 않자 결국 광해군은 파병을 결정한다. 그리고 애써 기른 5천명의 조총수들을 비롯한 만여명의 병사들을 차출해서 이른바 심하전투에 파병한다. 이 때 도원수 강홍립을 불러, 가능하면 명군의 지휘를 받지 않으면서 만주 지역에서 융통성 있는 작전을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과연 현지에서 그게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심하전투는 처음부터 조선군에게 불리한 전투였다. 우선 자국 영토가 아닌 타국의 영토에서 싸우게 되어 지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오랜 행군으로 전투지에 도달해서는 이미 병사들이 지쳐 버린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버렸다. 무엇보다 주력군이 되어야 하는 명군은 수만 많았지 오합지졸이었다. 명나라에서는 동방의 오랑캐 누르하치에게 한수 가르쳐 준다는 생각으로 20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동원해서 여진족 무리를 일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그동안의 전쟁으로 단련된 누르하치의 후금군을 너무 얕봤다. 게다가 만주 팔기로 알려진 이른바 철기대는 어중이떠중이 끌어 모은 명나라 기마병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총사령관인 요동경략 양호 아래 편성된 명나라 일선지휘관들은 서로 전공을 세우기에 바빠 실제 전투에서 상호 간에 도무지 협력이 되지 않았다. 결국 버일러로 임명된 누르하치의 아들들인 다이샨과 홍타이지 등이 주력이 된 후금군의 기습으로 모조리 격파되고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조선군 역시 3만의 후금군의 맹공 앞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를 예상한 광해군의 전략적 승리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파병군의 패전은 조선에 재앙이었다. 파병군의 절반이 현장에서 전사했고, 나머지는 노동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후금의 포로로 끌려갔다. 남의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고향에 남은 가족들의 절절한 심정이 시가로 남아 있다.

 

심하전투에 명나라의 강권과 조정 신료들의 열화와 같은 주장으로 파병하긴 했지만, 결국 광해군의 예측이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요동 반도 전체가 만주족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른바 요민들이 조선에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천조국 사람들을 냉정하게 대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조선 정부 입장에서는 낭패였다. 게다가 가도에 요동에서 패퇴한 모문룡이 실지회복을 주장하면서 주저 앉게 되면서 조선의 입장은 더욱 난감해졌다. 밀수업자에 가까운 깡패 모문룡은 조선 조정에 물자를 요구하고, 명나라에도 지원을 요청하면서 요동반도를 수복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후금과 내통까지 했다. 결국 명나라의 마지막 충신 원숭환에게 잡혀 처형당하고 만다.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심하전투가 발생했던 1619년 과거에 급제해서 조정에 진출하는데 성공한 원숭환은 산해관에서 누르하치와 그의 후계자 홍타이지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천혜의 요새라는 산해관이 뚫리면 북경 역시 순식간에 함락될 지도 몰랐다. 원숭환은 산해관 서쪽에 영원성을 건축해서 산해관 이전에 후금을 저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1626년 최신무기인 홍이포로 방비가 업그레이드된 영원성 전투에서 원숭환은 누르하치의 군대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런 명나라의 충신 원숭환 혼자만의 노력으로 국운이 쇠하는 명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 보자. 광해군은 명청교체기라는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조선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전문가였다. 정보전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광해군은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을 통해, 후금의 내부 사정을 비밀리에 보고받았다. 동시에 조선 내부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도 철저하게 막았다. 이게 바로 외교의 기본이 아니던가.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했다.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 상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동안, 인조반정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평산부사 이귀가 중심이 되어 광해군이 최근에 다시 기용한 김류와 최명길 등의 서인들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의 조카 능양군 이종을 새로운 국왕으로 세우겠다는 역모가 진행되었다. 16233월 즈음해서 이들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파악한 조정의 신료들이 이귀 일당을 잡아들여 국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지만, 광해군의 움직임보다 반정군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무엇보다 국왕의 친위대 역할을 맡은 훈련대장이 반정군에 붙으면서 광해군은 결국 몰락해 버렸다.

 

그렇게 광해군은 권좌에서 물러나고, 그때까지 정권을 잡고 있었던 북인들은 일거에 숙청되었다. 광해군 시절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던 정인홍을 필두로 해서 이이첨 일당이 바로 처형되었다. 친명배금 정책을 이행하겠다고 나선 서인 반정정권이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광해군이 조심스럽게 추진해온 줄타기 외교를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일단 명나라의 반정 추인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하는 동시에 명나라와 후금 모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문제는 인조 정권의 대세가 척화로 흐르면서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광해군식 외교가 빛나던 17세기 초반의 조선의 상황과 미중 무역대결의 여파로 관세협상의 파고가 몰아붙이는 현재의 상황이 묘하게 겹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파의 무력 쿠데타로 비록 정권을 잃긴 했지만, 광해군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외교에서 사술도 마다하지 않는 군주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재조지은같은 명분보다 현재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게 바로 민생을 해결하고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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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후안 호세 사에르 지음, 유지선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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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신대륙이 발견되었던 16세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 그리고 미지의 대륙이 가져다 줄 물질적 축복에 대해 모두가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르헨티나 출신의 후안 호세 사에르 작가의 책 <목격자>에서도 그런 시선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사에르 작가는 주인공 소년에게 익명을 부여했다. 하지만 동방의 이 엉뚱한 독자는 마음대로 그를 아노니마토(무명씨)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목격자>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독서는 내 마음대로니 말이다. 이름이 있다면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안되겠지만, 주인공 소년은 이름이 없었으니까.

 

13세 고아 소년 아노니마토는 브라질 내륙으로 탐험에 나선 배의 사환으로 취업해서 대양에 나선다. 그리고 배 위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소년은 양성적 인간 취급을 당한다. 당시에는 그런 게 일상이었는지 좀 의심스럽다. 그의 여정은 내륙에 상륙한 뒤, 현지 인디언들을 만나면서 180도로 바뀌게 된다. 선장을 필두로 한 다른 동료들이 모두 인디언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아노니마토 홀로 구사일생으로 생존하는데 성공했지만, 끔찍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데프-라 부르는 인디언들이 살해당한 아노니마토의 동료들을 잡아먹은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래. 그리고 왜 그들은 또 디에고는 살려 두었단 말인가. 아노니마토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석쇠를 준비해서 거대한 말 그대로 카니발을 벌였다. 그리고 술도 마시고 교접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복귀했다.

 

인디언들과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 인디언들은 아노니마토를 해치지 않고 카누에 태워 자신이 있던 사회로 보내졌다. 아노니마토는 스페인에 돌아가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정부 관리와 사제들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케사다 신부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목격자>를 읽으면서 아노니마토가 스페인으로 복귀하면서부터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에서 아노니마토는 7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버지 같은 케사다 신부에게 글쓰기와 읽기 라틴어 히브리어 같은 전문적인 영역의 학업적 성취를 이룰 수가 있었다. 이런 배움이 훗날 아노니마토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상당히 전문적 관점에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아노니마토는 유랑극단을 만나 희곡배우이자 전속배우로 변신을 거듭한다. 브라질에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꾼이자 배우가 된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들을 아노니마토보다 더 잘하고 연기할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어느 순간, 아노니마토는 그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다. 동료 배우들의 아이들을 거둬 유사가정을 이루게 되는 아노니마토.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처음에 빌려서 읽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반납하러 가서 연장한 다음,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16세기 초,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사에르 작가는 기억과 구전에 기반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재창조해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했던 아노니마토는 반세기 전의 사건들을 기억의 저장소에서 소환하고 분석한다. 뛰어난 지식인들에 버금가는 해석과 상상력 넘치는 주인공의 서사 전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미지의 신세계와 조우했던 소년의 기억들은 그렇게 새로운 세기에 재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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