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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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볼라뇨의 책을 꼬박 꼬박 읽어 오고 있다. 심지어 읽지는 못해도 모두 샀다. 이제 끝판왕이 나왔다. 2013년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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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 001-A000536025] 문학동네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을 따라 잡기가 너무 힘듭니다. 사서 읽기의 무한반복에도 끝이 없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이리도 꼭 마음에 드는 책들만 뽑아내는지요. 이번 물류창고 털기를 통해 그동안 애장하고 싶었지만 미처 마 련하지 못한 책들과 만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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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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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잉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는 어느 독자는 앞으로 읽게 될 소설을 접하기 전에 이미 다양한 언론 매체와 팟캐스트를 통해 해당 책에 대한 다수의 정보를 접했다. 그 독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책에 대한 선입견 내지는 작은 편견을 가지고 독서의 출발점에 설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그 책은 바로 황정은 작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아는 황정은 작가는 팟캐스트를 통해 매주 듣는 정감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우직하게 고수한다는 정도의 정보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통해 황 작가의 작품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됐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문장들을 자근자근 읊조리던 그녀가 갑자기 씨발됨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주제를 독자에게 날것 그대로 내던진 것이다.

 

 

 

소외된 이들의 부유하는 삶이 소용돌이치는 가상의 공간 고모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단순한 성장소설 혹은 가정폭력에 대한 글이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의미의 누락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기에, 이 불친절한 작가는 독자에게 풀 수 없는 숙제를 던진 느낌이다.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독자는 자신만의 독법으로 책을 읽는다. 충돌과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한편, 훈련된 독자는 이 소설의 결말에 가서 기대했던 종래의 기승전결 서사가 전달하는 뚜렷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어쩌면 이런 설정조차도 작가가 의도한 장치일까. 작가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갖가지 의문부호를 달고 내딛기 시작한다.

 

묵직한 장편소설이 무엇이든 빨리 변하는 세태와 융합하지 못하면서, 등장한 경장편 소설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경장편이든 본격 장편이든, 그 그릇에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는 오롯하게 작가의 몫이다. 그렇다면 그 그릇에 든 음식을 소비하는 건 독자의 그것인 셈이다. 내겐 너무 불친절한 황정은 작가는 폭력의 형상화라는 요리하기 쉽지 않은 재료로 독자의 구미를 돋운다. 그래서였을까? 작가는 자신이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여장 노숙자에게서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원형을 본 것 같다. 독자는 당연히 앨리스씨는 누구이고, 그가 왜 야만적이라고 불리는지 궁금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오직 약간의 확실하지 않은 추정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어디로 가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사거리에 선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는 방향성이 상실된 시대의 초상처럼 다가온다.

 

나는 궁금하다. 소설에서 거듭되는 씨발됨이 대물림된다고 하는데, 어느 세대의 지고한 희생으로 예의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지. 앨리시어가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어휘는 폭력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이 가치전도된 가해자가 되어 내뱉는 변형된 언어폭력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앨리시어도 자신이 당한 폭력을 대물림하겠지라는 냉소에 도달하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것은 황정은 작가가 전개하는 폭력 3부작의 전초라고 한다. 1/3 지점에서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퍼즐은 나머지 두 조각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난 속도전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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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케빈 - 제2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김수연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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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편견 없이 사물을 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브라더 케빈>을 읽기 시작하면서 든 상념이다. 하긴 이미 카뮈는 이십대에 세상을 뒤흔든 걸작을 쓰지 않았던가. 이십대 젊은이가 쓴 <브라더 케빈>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총 맞아 죽은 미국 출신 래퍼 투팍이 등장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우리네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원, 특목고 그리고 보충수업 등의 낯익은 어휘가 달려오자 곧 반갑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올해 열다섯 살 난 김성준 군의 눈을 통해 독자는 그들의 세계 속을 탐험하게 된다. 소설은 공부에는 그다지 소실 없는 청소년이 부유하고 극성맞은 엄마의 닦달 때문에 특목고 진학전문학원에 들어가고, 같은 반이 된 초딩들과 지도를 맡은 선생님에게 수모를 받으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정도라면 여느 성장소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성장소설 스타일의 클리셰이가 들어서려는 순간, 젊은 작가는 우리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린 전설적인 래퍼 투팍을 소환한다. 누구나 투팍의 음악을 세 번만 들으면 바로 브라더가 된다는 말을 내뱉으며 성준의 세계에 진입한 케빈은 그야말로 성준과 호형호제하는 브라더가 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부재한 부상(father figure)을 대체하기 위한 장치였을까? 무리 없이 혼연일체가 된 둘은 고난이도의 씨워크와 문워크를 즐기며, 한 마음이 되어 홍대클럽을 전전하며 그 유명한 놀이터 랩배틀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독자는 곧 성준의 독백처럼 현실성 떨어지는 서사를 늘어놓는 브라더 케빈의 무용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누구는 해리 포터에 나오는 죽음의 저주마저 불사하고 엄마 카드를 훔쳐 호그와트로 가겠다고 하는 판에 말이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희극으로 출발한 소설은 비극을 목전에 두고 극적인 유턴을 감행한다. 어쩌면 청소년기를 이제 막 겪은 작가가 또래의 무수한 후배들에게 정신 차려 임마,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느낌도 들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원에 투입되어 미래를 설계하는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홍 아무개 국회의원처럼 자신이 설계한 대로 인생이 재단되어진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성공이 개인의 노력으로 치환되고 평가받는 시대에 이 청년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스토리라인에 빠져 울고 웃는 독자에게 계속해서 골치 아픈 질문들을 투팍의 랩처럼 그렇게 툭툭 내던진다.

 

소설 <브라더 케빈>에서 보여주는 확실한 점 한 가지는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별리(別離)라는 원치 않는 과정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이 되기 위해 부모의 이혼 때문에 발생한 아버지의 부재로 남자다운 자신감을 갖추지 못했던 주인공 성준은 브라더 덕분에 비로소 청소년이 되기 위한 전환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그 브라더의 그림자 뒤에 투팍이라는 희대의 래퍼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좀 생경하지만, 모두에게 성장하기 위한 방식이 똑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브라더 케빈>은 한 세대가 공감할 만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잘 버무린 비빔밥 같다는 느낌이다. 이제 문단에 나온 청년작가가 무럭무럭 자라나길 기원하며, 자신의 데뷔작으로 성장소설을 고른 새내기 작가가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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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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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의 원제부터 살펴보자. 원제가 <King's Ransom>이란다. ‘랜섬이란 무슨 뜻이냐, 그렇다 몸값이란 뜻이다. 범죄의 세계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범죄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범죄는 어린이 유괴라고 생각한다. 55편이나 되는 87분서 시리즈를 써 제낀 상고수 에드 맥베인은 <킹의 몸값>에서 어린이 유괴 범죄에 도전한다.

 

개인적으로 전작주의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렇게 많은 작품 컬렉션을 갖고 있는 작가라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킹의 몸값>은 비정한 기업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주식매집을 통한 경영권 확보를 추구하는 냉혈한 사업가 더글라스 킹의 집에서 시작된다. 고급 여성화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그레인저 제화에서 잔뼈가 굵은 킹은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자는 사건 전개와 더불어 그가 얼마나 냉정하고 유능한 인물인지 알게 된다.

 

더글라스 킹은 스모크 라이즈라 불리는 아이솔라 시에서도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미모의 아내와 아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그에게 끔찍한 비극의 징조가 엿보인다. 유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복수의 범인들은 50만 달러라는 거금을 이 부자 주인공에게 요구한다. 문제는 이 얼치기 3인조 유괴범들이 킹의 아들인 바비가 아니라 바비의 친구이자 킹의 운전사네 아들인 제프리 레이놀즈를 잡아갔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소설은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분절로 접어든다.

 

당연히 자기네 관할에서 유괴사건이 발생하자, 87분서 소속 형사들이 현장에 파견된다. 사실 <킹의 몸값>은 형사들의 활약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위기에서 빗겨 나간 더글라스 킹과 유괴범 트리오가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라디오 장비를 훔쳐 경찰간의 교신 내역을 죄다 엿들으면서 경찰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에디 폴섬은 어려서부터 학교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기술을 습득한다. “학교라는 별칭이 딱 어울리는군. 그의 아내 캐시는 이런 에디를 사랑하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사랑의 방조죄라고나 할까. 딱 한 번만 은행을 털고 멕시코로 도망가서 살겠다는 그녀의 의도는 이렇게 유괴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불쌍한 제프리를 도와 탈출시도도 해보지만, 악당 사이 바너드의 마수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다.

 

,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빼먹었다. 범인들은 물주 더글라스 킹에게 제프리 레이놀즈의 몸값을 요구한다. 당연히 비정한 사업가이자 자본가인 더글라스는 한창 집중하고 있던 그레인저 제화의 주식매집을 위해 2/3에 해당하는 50만 달러를 내놓을 용의가 전혀 없다고 목놓아 외친다. 그러자 그의 아내이자 선량한 사마리아 여인으로 등장하는 다이앤은 더글라스를 협박한다. 제프리를 위해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의 곁을 떠나 버리겠다고. 이야기가 정말 재밌게 흐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더글라스와 다이앤이 목소리 높여 싸우는 갈등이야말로 소설 <킹의 몸값>을 이끌어 가는 추동의 근원이다.

 

1959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나름 과학적 초동대응을 위해 범인들이 훔친 차량의 타이어 자국을 유심히 조사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긴 요즘처럼 DNA나 각종 첨단장비를 이용해서 범인검거에 나서는 시대에 비하면 격세지감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초반에 더글라스의 아들이 유괴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될 줄 알았던 독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면서 에드 맥베인은 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다.

 

킹의 아내 다이앤은 성공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남편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가난을 모르고 자란 그녀가 과연 입지전적 성공을 이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외치는 남편 더글라스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대척점에는 어린이 유괴 공범이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캐시가 서 있다. 두 캐릭터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얄궂게도 피해자와 가해자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독자는 87분서 소속 형사들이 뛰어난 수사 실력을 발휘해서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짓길 바라지만 그것 또한 요원할 따름이다. 에드 맥베인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어쩌면 스스로 추동되어 굴러가는 플롯에 더 매력을 느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토리를 방임하는 느낌이다. 하긴 우리네 삶이 언제는 기승전결 구조로 전개되었던가.

 

이젠에 읽은 <아이스>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처음으로 만난 에드 맥베인의 <조각맞추기>보다는 낫다는 느낌이다. 이제 다음 타자는 <살인의 쐐기>가 될텐데 그 작품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읽을수록 찰진 맛이 나는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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