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작가의 시원을 읽는 건 뜻깊은 일일 것이다. 내한에 즈음해서 요 네스뵈 작가의 데뷔작 <박쥐>를 읽기 시작했다. 400쪽이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북구 출신 신예 작가의 글(이제는 오버그라운드 작가의 글이 되었지만) 예상대로 읽기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읽는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요 네스뵈 작가의 책은 비교적 근간이 <스노우맨>으로 처음 만났는데, 시발점은 자신의 구역인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하다니. 그 기백이 보통이 아니다.

 

<박쥐>는 노르웨이 출신의 준 셀레브리티 잉게르 홀테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오슬로 경찰서에서 주인공 해리 홀레(오지 사람들은 모두 ‘홀리’라고 부른다)를 파견해서 사건을 맡긴다. 나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 경찰이 오지 경찰들과 협력해서 사건과 영어로 진행되는 각종 회의에 통역 없이 참석하고 다양한 부류의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장면에선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번에 방한한 요 네스뵈 작가를 직접 만나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해리 홀리 형사는 오지 경찰에서 파트너로 정해준 앤드류 켄싱턴 형사와 짝을 이뤄 살해당한 자국민의 죽음을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광활한 대륙에서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그리고 어느 순간 독자는 소설 <박쥐>가 범인을 쫓는 하나의 과정과 애버리진(오지 원주민) 출신으로 ‘도둑맞은 세대’를 대표하는 앤드류 켄싱턴의 과거와 정체성, 그리고 왈라-무라-버버로 이루어진 애버리진 전설이 서로 엉킨 그야말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실타래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소설 중반에서 헤맨 나의 개인적 경험 탓이지 싶다.

 

짧은 호흡으로 탁탁 치고 나가는 맛은 좋지만,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구성이 조금은 아쉽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모름지기 독자도 작가와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미완성의 트랙에서 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 홀리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시드니에서 잉게르 홀테르와 관련된 주변 인물 탐색에 나서면서 아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연달아 만난다. 우선 그가 도움을 받고 있는 오지 경찰들은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하자. 첫 작품에서부터 경찰을 범인으로 고르는 작가는 없을 테니 패스. 배우이자 복장도착자 오토 레흐트나겔, 잉게르가 일하던 바의 동료인 스웨덴 출신의 비르기타 엔퀴스트, 앤드류의 소개로 알게된 아마추어 권투선수 로빈 투움바(요즘 유행하는 오지 식당의 파스타 이름과 똑같다), 킹스크로스의 여인 샌드러, 시드니의 최고 악질 포주 테디 몬가비, 잉게르의 집주인이자 노출증환자인 로버트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전 남친으로 이민자 출신의 드럭킹 에반스 화이트. 뭐 이 정도면 용의자 리스트는 차고 넘칠 정도다.

 

자꾸만 요 네스뵈 작가가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는 이제 막 썸타기 시작한 같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매력녀 비르기타와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습관처럼 맥주를 들이키는 오지 사람들은 상대하면서 유난히 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해리 홀레는 알코올 섭취를 기피하고 애꿎은 콜라만 거푸 들이킨다. 두 가지 추정을 해본다. 처음부터 마실 수 없거나, 이제 더 마시면 안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마시길 거부하는. 그렇다, 해리 홀레는 알코올중독자다. 이거 공무원인 형사에게 너무 치명적인 거 아닌가. 단서는 그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로니 스티안센이라는 이름이다.

 

책의 표지에 술병 속에 들어 있는 죽음, 애버리진에겐 죽음을 상징하는 박쥐가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두 가지가 각각 상징하는 것을 깨달았다. 병이 상징하는 알코올중독에 빠진 채, 차라리 동료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는 자책이 파도처럼 해리 홀레를 엄습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범인을 추격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동료 스티안센은 죽었고 그가 몰던 차에 친 소년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 슬슬 오슬로에서 잘 나가던 형사가 본국도 아닌 멀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내쫓긴 이유가 설명된다. 앞으로 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해리 홀레인데 이 정도 트라우마는 갖추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뭐 부족한 부분들은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채워 넣으면 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기가 한결 여유롭다.

 

초짜 작가답지 않게, 능란하게 범인일 거라고 생각한 인물을 쫓다가 브레이크를 걸고 급반전 시키는 실력이 탁월하다. 아직 분량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쉽게 범인이 잡히진 않겠지하는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용의 선상에 오른 범인 리스트가 하나둘씩 지워지고, 설상가상으로 해리 홀레 형사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범인추적은 그야말로 미궁 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결정적인 단서 대신 아주 희미한 힌트를 발판으로 해리 홀레의 추격은 피날레를 맞이한다.

 

엽기적인 싸이코패스가 등장했던 <스노우맨>의 오싹한 공포에 비하면, <박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이제 겨우 2편을 읽었을 뿐이다. 본국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 종횡무진 활약을 전개하는 해리 홀레는 확실히 한 때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로 필드를 누비던 요 네스뵈 작가의 분신일 수밖에 없다. 그가 구사할 또 다른 스릴러 드리블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그거 참 제목이 요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청접대과>라는 제목 만으로는 이 소설을 짐작할 요량이 없다. 하지만, 이 요상한 제목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가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의 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야릇한 기대가 들기 시작한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줄까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작가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한 소설 <현청접대과>는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재밌었고, 단박에 읽었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소설의 무대가 되는 일본 시코쿠 섬의 고치 현이 어디쯤 있는지 구글맵으로 검색해 봤다. 그러자 소설의 주인공 가케미즈가 판다 유치론의 기요토 가즈마사에게 강제로 떠밀려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묘진산을 비롯해서, 서포터 묘진 다키와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아키 바닷가 그리고 고치현 관광부의 접대과가 일본 전국에 홍보하려고 노력했던 시만토 강과 니요도 강 같이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지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시코쿠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회와는 다른 산과 일급수로 유명한 강 그리고 바닷가로 둘러쌓인 관광에 최적화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정보다. 이런 정보가 빛을 보기 위해[觀光] 유람을 떠나는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관광입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고치 현의 공무원들이 이 중차대한 문제를 맡았다는 점이다.

 

이십몇년전에 이미 고치 현에는 관광객을 동원하기 위해 서일본에서 처음으로 동물원에 판다를 유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낸 기인이 있었다. 문제는 복지부동, 비효율의 대명사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공무원들이 이 기발한 기획을 내던진 입안자를 내쳤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그렇게 흘러흘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고치 현은 많은 돈을 들여 관광입현을 목표로 공무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민간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공무원들은 그저 기획과 공무원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한 나머지 실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쌈박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가케미즈 역시 그들 중의 하나지만 고치 출신의 소설가 요시카도 씨를 홍보대사로 임명하게 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루게 된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요시카도 씨는 전화로 따끔하게 가케미즈를 혼내면서, 고수가 하수를 훈련하듯 접대과의 말단 공무원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공무원 마인드에 푹 절은 가케미즈에게 요시카도의 지적은 그야말로 복음처럼 들린다. 그의 지적을 따르기만 한다면, 고치현의 목표인 관광입현도 불가능한 임무는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선 똑똑한 여성 스태프를 한 명 고용하고, 민간의 관광 전문가에게 쌈박한 기획안을 의뢰하는 것으로 가케미즈는 요시카도가 던져준 화제를 풀기 시작한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여성 스태프로 묘진 다키가 등장하고(독자는 바로 그녀와 가케미즈가 썸을 타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연이어 20년 전 판다 유치론의 주창자 기요토 가즈마사 씨와 만남을 통해 고치 현을 통째로 레저랜드로 만들자는 그야말로 야심찬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다 좋은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예산과 심의를 맡은 고치 현 간부들의 승낙을 얻느냐는 것이다.

 

융통성 없지만 정면돌파를 선택한 가케미즈는 기요토의 딸 사와 씨에게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또 뺨까지 맞아 가면서 이 어려운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고치현 레저랜드 계획을 세운 기요토 씨가 현청의 고루한 고집쟁이들 때문에 도중하차하는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 때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리카와 히로 작가는 그 때마다 적절한 유머와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하는 남녀간의 미묘한 관계 설정 그리고 역시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작가 요시카도와 그의 양아버지 기요토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조금씩 풀어가며, 풋내기 가케미즈를 멋쟁이 남자로 거듭나게 만드는 구성으로 소설 <현청접대과>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쾌한 소설로 유도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한창 규제개혁과 더불어 각종 사회공공시설의 민간참여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관료개혁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민에게 복부해야할 관료 계급이 하나의 기득권층이 되어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형세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불필요한 규제 또한 개혁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관료/공무원이 아닌가. 소설 <현청접대과>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일본과 무역 거래를 하면서 문서 타령을 수도 없이 해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관청의 각종 규제와 씨름하고 있는 그네들의 일면을 볼 수도 있었다. 트러블슈팅에 있어 문서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불필요한 문서 작업으로 요시카도가 소설에서 지적하는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 잡아먹기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 <현청접대과>에서 재밌는 점 중의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역할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공무원들을 조종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고, 퍼블릭 코멘트/옴부즈만 시스템을 이용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포인트야말로 여론에 약한 그네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클린 히트였다고나 할까.

 

이 소설로 우리에게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시코쿠 고치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할거리 그리고 먹거리로 넘치는 곳이라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리고 관광의 빈틈을 메워주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권리에 대한 지적도 멋지다. 훗날 내가 시코쿠에 가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현청접대과> 덕분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벨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달 책 모임을 앞두고 정용준 작가의 <바벨>을 읽었다.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던가. 고래로 신화의 재창조는 작가들의 단골 메뉴가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다시 맛깔나게 창조하는가라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일종의 독이 든 성배라고나 할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독자의 이목을 비교적 쉽게 끌 수는 있지만, 무언가 특별한 한 방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릴 수 있다.

 

내가 처음 만난 정용준 작가의 글은 <얼음의 나라 아이라>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얼음 나라의 아이라 여왕을 만나 편지를 가지고 오지만, 전언이 녹자 괴상한 소리만이 남았다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리뷰는 책을 읽는 대로 써야 하건만. 어쨌든, 말이 화근이 된 시대를 소설은 배경으로 한다. 닥터 노아라는 미치광이 박사에 의해 “펠릿”이라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생성되는 유기물은 사람들로부터 ‘말’을 빼앗아 버렸다. 말을 하면서 만들어진 푸른 가스는 발목 주변에 칙칙하고 냄새 나는 덩어리가 되어 달라붙는다. 각종 설화로 이러저러한 스캔들에 시달린 연예인들의 얼굴이 얼핏 떠오른다. 기록의 시대에 시간이 지나도 그런 설화는 당사자의 발목을 잡는다. 소설 <바벨>에서 펠릿은 공평하게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그 반대에 서 있는 가난뱅이도 모두 펠릿을 달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렇게 한 십년을 살게 되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포기하고 팜패드라는 것을 발명해서 필기로 의사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아마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사람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쓰겠지. 이 모든 게 그 닥터 노아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런 와중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말을 하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분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신문사에 근무하는 요나가 소설 <바벨>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연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펠릿이 바이러스 같은 형태로 전 인류에게 전염되어 아무도 펠릿 없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전개와 설정은 일품이다. 다만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거대한 고기 뱃속에 갇혀 죽을 뻔한 불손한 선지자 요나의 지향점이 어떠하리라는 것 정도는 상식일 게다.

 

어린 시절 유달리 말을 더듬었던 닥터 노아의 끈질긴 말에 대한 연구가 전 인류에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을 맡은 이가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모든 서사의 초점은 과연 유일한 희망인 닥터 노아가 펠릿을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개발할 수 있는가에 맞춰진다.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가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물의 심판에 앞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원했듯이, 닥터 노아 역시 그런 비슷한 임무를 맡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성서에 나오는 서사와 주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자못 궁금해졌다.

 

펠릿이 지배하는 세상에 순응해서 살자는 방식을 고집하는 마리 그룹과 그에 반대해서 몸으로 저항을 마다하지 않는 전투적인 아벳 그룹 사이에서 주인공 요나는 방황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요나의 타자화된 시선을 통한 객관성의 담보는 그렇기 때문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기까지 밖에 올 수 없었나 하는 그윽한 아쉬움에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신에게 도전하겠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오리지널 바벨탑 스토리의 거창함 대신 그저 살기 위해 커터로 펠릿을 잘라내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묘사가 잔상처럼 그렇게 드리워져 있다.

 

독서 모임 시간에 나온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소설 <바벨>은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서사와 영화의 그것은 또 다르겠지만, 말이 족쇄가 되는 세상에 아주 적합한 영화 소재가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이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하게 사랑의 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 씨의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각각 한 번 씩 배교한 레자 아슬란의 <젤롯>을 같이 주문했다. 부활절이 다가 오면서 종교 관련 서적이 읽고 싶었던 걸까. 후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전자는 한국 기독교계가 작금에 처한 상황과 맞물려 현실과 소설적 상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서술 때문에 단 이틀 만에 완독할 수가 있었다.

 

쌤앤파커스의 임프린트 <박하>에서 출간된 <서초교회 잔혹사>는 당당하게 표지에서 “장편소설”이라고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서초교회 잔혹사>가 과연 소설일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 현실을 빼닮은 소설의 배경은 정지만 목사가 설립한 서초교회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이 교회 청년부 출신 간사로 신학교를 졸업해서 사역 중인 장세기 목사다. 그저 그런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야말로 평신도 출신 장세기 목사는 한 번 사람을 쓰면 끝까지 믿는 정지만 목사의 간택으로 청년부 교역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은퇴를 앞둔 정 목사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지역 주민을 상대로 교역 중인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소설은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목사 담임목사 부임을 앞두고 어수선한 가운데, 핵심, 잉여 그리고 건전지 목사라는 세 부류로 작성된 소위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사역하는 교역자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이렇다할 스펙이 없는 장세기 목사 역시 잉여보다는 좀 낫지만 쓰고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건전지 목사로 분류되고 만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청년부에 헌신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달마다 월급통장에 찍히는 사례비와 자동차 그리고 교회에서 제공 받은 사택이라는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는 보통의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은 사역자의 심리 상태를 저자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짚어낸다. 이런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교회 개척이라는 황무지로 나갈 자신이 있는가하고 장세기 목사는 거듭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드디어 담임목사로 등장한 김건축 목사는 세계선교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글로벌 미션”이라는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로 포장해서 교역자 회의부터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파격을 선보인다. 비전 성취를 위해 토익 시험을 치르는 건 오히려 약과다. 그리고 자신이 요루바 어로 작곡했다는 “쌀루디 긴다” 송을 모든 교역자들에게 뜻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암기해서 회의 때마다 부르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담임목사와 부목사 시스템이던 기존 시스템을 부장목사, 과장목사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고쳐서 수직적 관계로 재편성한다.

 

서초교회의 이런 파격적 행보는 보수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로 진행되는 교역자 회의 취재에 들어가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교회는 또 한 번 술렁이게 된다. 장세기 목사는 사전 교역자 회의 리허설을 통해 김건축 목사의 허풍과는 달리 실제로 그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알게 되고, 담임목사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게 될지 궁금해 한다. 동료 차명진 목사의 예언대로 립싱크로 마지막 영어 기도로 마무리가 되면서 허깨비 같은 그의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김건축 목사가 야심차게 출간한 책이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미국 출신의 재미교포 목사가 대필했다는 사실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또다른 파란을 몰고 온다. 그야말로 아스트랄한 사건사고가 새 담임목사 부임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한편,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할 새로운 청년부 목사가 청빙 중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장세기 목사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벼랑 끝에 놓였던 장세기 목사의 운명은 김건축 목사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면서 극적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잉여나 건전지 요원이 아닌 핵심 포스트에 배치되면서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장세기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세상의 안락함과 물질의 지속적 공급을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양심을 내려놓고, 김건축 목사와 공동운명체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철저하게 왜곡되는 순간을 저자는 일관된 과정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김건축 목사를 옹호하기 위해 청년부를 대대적으로 동원해서 대여론전에 나선 장세기 목사는 자신에게 부여된 물질과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담임목사의 각종 비리 방어전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비로소 잉여/건전지 요원에서 일약 핵심 포스트의 자리에 올랐지만, 한 번 이탈하기 시작한 정상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김건축 목사 그룹은 불가피한 무리수를 지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화천 지역에 당회의 승인 없이 임의대로 계획한 잉글리시 타운 설립이 언론에 알려지고, 이 상황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원로목사인 정지만 목사가 서초교회는 자신이 시무하던 시절의 서초교회가 아니라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파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건축 목사의 최측근인 마홍위 전무목사의 지휘 아래,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되고 그 총대를 장세기 목사가 매게 되면서 잉태된 비극은 건강이 좋지 않던 정지만 목사가 급작스러운 소천으로 마무리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있던 장세기 목사가 회심해서 김건축 목사의 전횡에 맞서는 최후의 영적 전쟁에 나서길 바랬다. 하지만 기득권이 보장하는 세상의 물질적 유혹은 너무 강했고, 담임목사가 제시한 권력의 맛은 너무 달콤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고난을 체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그는 온전하게 김건축 목사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자신이야말로 절대순종하는 주의 종이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는 블라스피미(blasphemy)가 아닌가. 하나님과 물질의 신인 맘몬을 두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는 성경 말씀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 땅의 교역자들에게 외치는 예언자의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공의를 주장하며 늦기 전에 회개할 것을 부르짖는 예언자의 말은 구약시대부터 대중과 권력자들을 설득하지 못해왔다. 그게 현대에는 소설에 나오는 마 전무목사가 지휘하는 SNS 여론부대의 활동으로 세련되었지만 말이다.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성직자들이 성무를 집행한다는 이유로 소득세 납부조차 거부하고 있는 마당에, 장세기 목사조차 일인당 국민소득을 월등하게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간접 정황이나 탈식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겠냐는 식의 설정이 그것이다. 하긴 사자 사냥을 취미로 삼는 목사나 있는 마당에 그 정도쯤이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디 이 소설에 묘사된 이야기들이 그저 작가의 상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계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논문 표절을 하고도 충분한 회개 없이 주일 강단에 서고, 배임 횡령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처참한 현실이 겹쳐지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자고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과 성역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21세기 서초교회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500년 전 민중의 가슴을 울렸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요구에 다시 한 번 귀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배교자가 쓴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신의 아들이라기 보다 혁명가로서의 조망이 어떻게 서술되었는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