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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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뜬다>를 읽으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내가 그의 작품이라고는 <노인과 바다> 말고는 읽은 게 없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미 이 책을 샀었다는 사실이었다. 몇 년 전, 헤미웨이 책들에 대한 저작권이 풀리면서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책을 내던 시절에 아마 산 모양이었다. 그리고 물론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만난 책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소설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우리의 주인공은 제이콥 반즈, 파리에 사는 엑스팻(expatriates) 다른 말로는 고국이탈자란다. 나폴레옹 전쟁 이래 한 세기 가까이 진행된 평화시절이 지나고,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렸던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성불구가 된 남자의 이야기다. 쉥겐 조약으로 유럽의 국경이 거의 허물어지긴 했지만, 첫 번째 세계대전이 끝나고 흥청거리던 구대륙에 살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가장 빛나던 젊음의 시절을 전쟁터에서 보낸 이들을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라 부른다고 했던가.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위는 접어둔 채 오늘의 쾌락을 위해 파리에 줄지어선 카페와 레스토랑을 드나들며 과음을 일삼고, 파티와 환락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어쩌면 그네들의 그런 모습은 전쟁에서 상실한 것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사랑놀음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그 중심에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브렛 애슐리가 있다. 아마 남주 제이크와 결혼했다가 갈라섰던가. 띄엄띄엄 읽다 보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동방의 어느 나라에 유행했던 자유부인 못지않게 자유분방한 신여성으로 남자 없인 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여인네 때문에 제이크를 비롯한 친구들이 골머리를 많이 썩는다. 다양한 군상의 엑스팻들이 등장하는 <태양은 다시 뜬다>의 공간적 배경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하나는 소설이 시작된 유럽의 문화수도 파리 그리고 산페르민 축제로 유명해진 에스파냐의 팜플로나가 그곳이다.

 

이십대 나이에 이 작품을 발표한 헤밍웨이는 일약 유명 스타 작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헤밍웨이 스타일로 유명한 빙산 이론(iceberg theory)도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군더더기 없는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채,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압축된 문장으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펼치는 관계의 심연을 훑어 낸다고 해야 할까. 그런 여백의 미학 때문에 헤밍웨이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건 간에 상상 그 이상의 다양한 층위의 해석들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떤 점에서는 영화계의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이 연상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낚시를 즐긴 헤밍웨이(책 뒤편에 실란 꼬마 헤밍웨이가 긴 낚싯대를 휘두르는 사진을 보라)는 제이크 일행이 팜플로나로 가서 본격적인 투우를 관람하기 전에 들른 에스파냐 부르게테에서 송어 낚시를 즐기는 광경은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다. 낚시의 고수답게 미끼로 사용할 지렁이조차 직접 잡아내는 디테일에 깜짝 놀랐다.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물에 준비해간 와인을 시원하게 담가 두는 치밀함이며, 낚아 올리는 송어를 잡아 손수 손질하는 장면도 정말 멋졌다. 팜플로나에서 광란의 휴식을 보낸 뒤, 산세바스티안 바닷가에서 노독을 풀며 독서하는 주인공의 망중한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역자는 <태양은 다시 뜬다>를 다른 서평가의 분석을 통해 순례기로 보기도 했는데 나는 이 책을 타향에서 원 없이 삶을 즐긴 고국이탈자(엑스팻)들의 여행기로 보고 싶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말로 변명해 볼까.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가운데 하나는 역시 투우다. 예전부터 에스파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게 되면 꼭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투우였다. 요즘은 잔인한 동물학대라는 이슈 때문에 예전 같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이 소설이 발표된 1920년대만 하더라도 에스파냐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헤밍웨이는 실존했던 전설적인 투우사들의 실명을 들어가며 폭력적인 이벤트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 고장의 행사였던 산페르민 축제가 지금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서 연인원 100만 명이 참가하는 큰 행사가 되었다고 했던가. 어떻게 보면 <태양은 다시 뜬다>는 수일간 계속되는 산페르민 축제기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술을 질탕 퍼마시며 젊음을 소비한 고국이탈자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보고서다. 전쟁터에서 숱한 죽음의 파편을 접수한 젊은이들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유한한 삶을 향락적으로 소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목표로 정한 것처럼 그렇게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주인공 제이크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아피시온(열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가히 만인의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렛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주변에서 위성처럼 떠도는 남자의 모습이 ‘로스트 제네레이션’을 관통한다고나 할까. 이 남자, 저 남자와 숱한 염문을 뿌리던(심지어 열아홉 먹은 절정의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와도!) 레이디 애슐리는 어쩌면 자신이 결국 돌아갈 곳은 제이크 곁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방황을 멈추지 않는다. 하긴 그 누가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여로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소설에 나오는 멋진 문구처럼 ‘아무튼 그렇게 되고 말았다(That was it all right)’는데 어쩔 것인가.

 

좀 엉뚱하게 들릴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헤밍웨이의 고전 <태양은 다시 뜬다>를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에스파냐에 언젠가 가보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많아, 작가의 여정을 그대로 좇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구도의 길에 나선 순례자는 무엇 하나 풍족한 게 없지 않았던가. 지금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넉넉하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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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는 천재였던가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20대에 그것도! 자격지심이 느껴지네요 ㅎㅎ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9-09-26 20:40   좋아요 1 | URL
다 그렇게 가는 거지요 -

여전히 헤밍웨이의 책들을 읽지
못하고 있네요.
 
침묵을 위한 시간 - 유럽 수도원 기행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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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고 있지만 회피하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제 읽은 패트릭 리 퍼머가 방문한 수도원에서 영성을 가꾸며 사는 수도사들, 특히 트라피스트로 알려진 시토수도회에 소속된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이야기를 읽어 보니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읽은 <침묵을 위한 시간>의 저자 패트릭 리 퍼머는 영국 출신의 전쟁 영웅이다. 황현산 선생이 추천한 <그리스의 끝, 마니>란 책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2년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을 아직도 못 다 읽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은 분량의 책이라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꾀로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금세 다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공지영 작가가 쓴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모양이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의 수도원 피정 이야기가 주를 이뤘던 것 같은데(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수십 년을 수도원에서 묵언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행적을 뒤쫓으며 생활하는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며칠간의 체험으로 과연 글로 담아낼 수 있는지 나도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 패트릭 리 퍼머 역시 자신의 책이 출간되고 난 후에 어느 익명의 수도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받고 반성하는 신문에 실었다고 했던가.

 

<침묵을 위한 시간>에는 사실 많은 수도원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베네딕토 수도회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생 방드리유 드 퐁트넬 수도원, 솔렘 대수도원,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시토회 라 그랑 트라프 대수도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는 폐허가 되어 유적만 남은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오 수도회의 카파도키아 바위 수도원이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의 그것과는 달리 일천한 지식으로 독서한 바에 따르면, 고대 수도원의 유래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식과 학문의 보고이자 교육기관으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중세를 거쳐, 프랑스혁명이라는 암흑기를 거쳐 다시 속세와 분리된 자급자족적인 공동체로서 수행에 방점을 둔 고유의 목적으로 돌아간 현재(그것도 반세기 전의 기록이다)를 그리고 있다.

 

근대 수도원의 위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세 봉건질서의 한 축이 종교집단이었던 사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프랑스혁명기의 성난 군중들이 종래 신분질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와 수도원을 타깃 삼아 공격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고행을 통해 개인의 영성을 강화하고 수도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세속화되고, 종교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았던가. 패트릭 리 퍼머가 자신의 글을 가다듬기 위해 수도원을 순례하던 시절과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카파도키아에 산재해 있던 바위 수도원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오로지 시간이라는 제한을 초월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었을까. 이교도들의 침입을 피해 신의 계시를 피해 주상고행이나 수상고행을 하며 그런 숭고한 유적을 남긴 이들이 또 무슨 이유에서 흔적도 사라졌는지에 대한 작가의 문제제기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시대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역사 그리고 종교에도 정통한 이들의 노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절로 공감이 갔다. 서두에 작가가 인용한 것처럼 그런 진실을 풀기 위해서는 어쩌면 때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천한 독서후기는 아마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이 책을 접으면서 난 먼저 읽기 시작한 패트릭 리 퍼머의 <그리스의 끝, 마니>부터 다 읽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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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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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마야 안젤루의 신간을 펴들었다. 사실 그녀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통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흑인이 사람대접을 못받던 시절에 태어난 작가는 여성에 인종차별까지 감내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싱글맘으로 신산한 삶의 격랑을 헤쳐나와야 하는 그런 극한의 상황을 어머니 레이디비비언 백스터 여사와 신의 축복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아직 그녀의 다른 책을 만나 보지 못해 자신의 긴 삶을 회고하는 <엄마, 나 그리고 엄마>만으로 그녀의 삶을 가늠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야 안젤루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왔다.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엄마 비비언이 자신과 오빠를 아칸소에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살 때. 나중에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패밀리 리유니언을 하게 되었을 때, 가족 간의 화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레이디라는 호칭으로 마야가 부른 이유였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가 레이디에서 어머니로, 다시 어머니에서 엄마를 찾는 과정이 소설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작고하신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야 안젤루는 참 남자복도 없는 여인이다. 속칭 두 손가락마크란 작자는 질투심에 못 이겨 마야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아 붙였다. 어린 나이에 비슷한 또래 남학생과의 불장난으로 사랑하는 아들 가이를 낳았지만,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노라고 레이디에게 고백한다. 백인남성 토시 앤젤로스와는 공식적인 결혼에까지 골인했지만 레이디의 예언대로 흑백 간의 결합은 쉽지 않았다. 돈을 벌어 생활비를 조달하고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좋아하는 댄스를 돈벌이 접목해서 스트립 댄서로 무대에 서기도 했단다. 그리고 보니 전 남편 토시가 그녀가 춤추러 다니는 것과 교회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싫어했었지 아마. 마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슈퍼히어로는 바로 레이디 백스터 여사였다. 자신 역시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그녀만의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서 약자에게는 무한의 동정과 위로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그리고 마크 같은 무뢰한에게는 총기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강단을 보여 준다. 마야가 스트립 댄서로 무대에 설 적에는 직접 무대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마야 안젤루의 인생유전을 따라 가다 보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남긴 상흔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흔들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엄마 백스터 여사의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백스터 여사는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서서 쟁취하라고 격려한다. 통금시간을 지키지 않은 딸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는 폭군 같은 이미지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로 든든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 사랑의 전도사라고나 할까. 멀리 스톡홀름까지 날아가 단박에 분위기를 휘어잡는 백스터 여사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둔 멋진 작가의 영웅이었다.

 

이런저런 행사로 분주했던 가정의 달 5월에 내가 만난 마야 안젤루의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참 가슴 훈훈해지는 그런 책이었다.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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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라이프 1
다카기 나오코 지음 / artePOP(아르테팝)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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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인데...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아니 그녀의 만화는 거의 다 구해서 본 것 같다. 단순한 선으로 그린 심리묘사가 일품이라고나 할까. 최근에 그녀의 느긋한 작가생활에 대한 만화를 읽었는데 오늘 읽은 다카기 나오코의 <뷰티풀 라이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더라.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안고 대도시 도쿄로 상경해서 고군분투하는 삶, 많이 비슷하다고. 다만 마스다 미리가 오사카에서 왔다면, 다카기 나오코는 미에 현에서 왔다고.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분야에서 성공하는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 같다. 다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다르지 않을까. 우선 성공의 가능성이 더 많은 대도시로 향한다. 일단 고향에는 성공하러 대도시로 간다고 말했기 때문에, 집에 손을 빌릴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전까지 생존을 위해 월세와 식비 각종 청구서를 내야 하는 비용도 필요하고, 또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공모전과 일거리도 구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두 만화를 비교하면서 거의 공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가생활 만화가 성공한 후에 과거를 회상하는 거라면, 다카기 나코오의 이야기는 아직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전의 고난의 역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알바를 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 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치솟는 거주비와 불안정한 일자리는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지 않나 싶다. 다카기 작가는 추첨행사 알바에, 수상쩍은 물건을 파는 알바직을 전전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그녀가 그린 성공기의 핵심이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알바 동료를 만나 생활의 꿀팁을 얻기도 하고 아낄 것은 최대한 아끼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한 비용(일러스트 학원비나 미술 재료)은 아낌없이 지출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한 시간과 비용의 소모 때문에 알바 동료와 자연스레 멀어지는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이질적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비정규직 삶과 먹고사니즘에 찌든 현대인의 일상이 전지구화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가가 다양한 알바 자리에 도전하면서, 특별한 기술 다시 말해 스펙이 없어 당하는 설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다카기 작가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생활전선에서 알바로 돈도 벌어야 하고, 친구 하나 없는 삭막한 도시에서 어떻게든 돈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고향에 있을 적에는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푸념이라도 늘어 놓을 가족이라도 있었지만 도쿄에서는 무엇 하나 가능한 게 없다. 정작 더 무서운 건 생활고에 찌들어 꿈인 일러스트마저 게을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언젠가는 유카타 디자인 연구소에 알바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지만 연구소의 사정으로 채용이 취소가 되면서 의기소침해 하는 24세 방년의 다카기 작가. 또 하나 1998년 일본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점은 장기간 이어진 불황 그리고 일러스트 작가를 꿈꾸는 작가지망생들이 엄청 많았다는 점이다. 다카기 작가가 일러스트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쩌면 현장에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라이벌들이 아니던가. 엄청난 작품을 그려 제출하는 N씨가 고향에서 자신처럼 유복한 가정에서 생활하며 일러스트에 전념할 거라는 작가의 추측은 보기 좋게 엇나가 버렸다. 그녀 역시 작가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고 자신의 꿈을 좇아 도쿄로 나온 드리머(dreamer)였다. 그리고 작가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삶과 꿈에 도전하는 선배였다고 해야 할까.

 

아직 1권에서는 다카기 작가의 고난에 찬 회상기가 이어질 뿐이다. 어쩌면 어느 정도 자리잡힌 작가가 된 후에 그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기가 돼서, 하루살이 알바생에서 잘 나가는 전업작가가 되었는지 2부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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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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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서경식 교수의 <내 서재 속 고전>을 통해 알게 되었노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제목은 출간된 제목과 사뭇 달랐다. 선인이 추천한 책을 찾아 헤매는 책사냥꾼의 아찔한 여정은 그래서 참 재밌다는 느낌이다. 작년엔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돌베개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미시사의 거장으로 알려진 카를로 긴즈부르그(출판사마다 표기법이 제각각이다)의 어머니이자 반파시스트 운동 중에 세상을 떠난 부군 레오네 긴츠부르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가족어 사전>은 그녀가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그려낸 수작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소설인지 사실인지 헷갈린 것도 사실이다. 완고한 생물학자, 교수인 아버지 주세페 레비의 영도 아래 자라난 나탈리아는 세상이 모두 파시즘화 되어 가는 시절의 가족의 일상을 소설화했다. 당신의 기준에서 품위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니그로’ 같다고 비난하고, 말썽꾸러기 아들들을 당나귀 같다며 힐난을 마지 않는 아버지, 아이들을 다섯이나 낳고서도 집안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타인을 돕거나 친분관계에 더 집중하는 어머니 리디아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결국 반파시즘 운동에 나섰다가 위험천만한 탈출극 끝에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마리오 오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힘썼으나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게 되는 알레르토 오빠.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이탈리아의 재벌 가문이다)의 열렬한 구애로 결국 그의 아내가 되는 파올라 언니. 나탈리아 역시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상징 같은 레오네와 결혼에 골인하지 않았던가. 올케 언니 중의 한 명은 아마 저명한 화가 모딜리아니의 딸이었지. 정말 대단한 집안이 아닐 수 없다.

 

레비 집안의 가족사를 들여다 보면 20세기 현대 유럽사를 주름잡은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이라면 치를 떠는 이웃 독일과 추축동맹으로 전쟁에 뛰어 들었지만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경멸하는 지식인들이 도처에 가득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어쩌면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어릿광대 같은 두체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사실 아버지 주세페는 집안에서 두체 같은 권력을 휘두르며 아내의 머리 스타일에 잔소리를 해대고, 자식들을 데리고 등산에 나서는 횡포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 거의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구시대 가장의 전형이라고 해야 할까.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국가 파시즘에 대해서는 경멸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런 한 개인의 역설적인 이중성이야말로 현대 이탈리아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을 통해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까지도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정작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자신과 남편 레오네 간의 로맨스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어떻게 둘이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이탈리아의 추축동맹 이탈 후 이탈리아를 점령한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서 비명에 간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 레오네의 이야기는 빈 칸으로 남겨 놓았다. 결혼하기 전까지 가정부를 부리는 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작가가 결혼 후 자신의 가정을 꾸린 뒤에는 타인의 피곤과 노동에 의존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각성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부분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남편의 영향 때문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였던 부르주아적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평온했던 레비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전쟁의 불길은 긍정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 리디아를 아버지 주세페가 수감된 감옥으로 인도해서 옥바라지를 하게 했고, 자신의 남편 역시 감옥을 수차례 들락거려야 했으며, 남편이 투옥된 뒤에는 자신과 아이들까지 체포될 위기를 겪기도 한다. 수많은 자신의 친구들이 유형지로 끌려가고 또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모두가 죽어가는 세상은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게 강제한 모양이다. 그렇게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던 그런 엄혹한 시절일수록 사람들은 삶을 상상하기 마련인가 보다. 뛰어난 문학가로 이탈리아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였던 친구 체사레 파베세가 준비한 죽음에 대해서도 작가는 덤덤하게 진술하고 있다. 날카로운 직관으로 다른 결점들을 커버했던 파베세가 일상에서 책을 읽을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고 했던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탈리아의 해방공간 역시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방향상실로 점철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거의 반동에 가까운 보수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남매가 제각각 다른 성정을 가지고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신기했지만,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의 역사와 다채로운 인물들과의 조화를 이룬 관게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나온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책인데, 앞으로 또다른 그녀의 저작들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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