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 79 -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김영주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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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책의 서두에 여행을 끊었다가 다시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노라고 글쓴이는 밝히고 있는데 정말 순수하게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책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사실 그저 단순한 여행객이라면 이렇게 꼼꼼하게 글을 쓸 수 없겠지. 그리고 사진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정리를 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더라. 이젠 기억마저 오래돼놔서 정리할 자신도 없고. 어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하면서 책까지 낼 수 있다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부럽다 부러워.

 

글쓴이의 이번 여행 목적지는 안달루시아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안달루시아행 직항편이 없으니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 출발하겠지. 예상대로 글쓴이와 동행 T라는 분은 카탈루냐 지방의 거점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만끽하고, 그리고 몬주익 스타디움에서 무엇보다 부러운 U2의 공연(아직까지도 U2는 우리나라 공연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단다, 놀랍군. 더 놀라운 건 앞으로도 그들의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볼 기회가 없을 거라는 암울한 전망!)을 즐겼다는 것이다. 80년대 U2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나에겐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With Or Without You"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단 이야기는 정말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않았다.

 

좀 냉소적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동안 숱한 스페인 기행 서적을 섭렵해 온지라 그녀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안토니 가우디의 걸작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감상 등은 시큰둥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책으로 만나는 타인의 감동은 온전하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몸이 깨달은 모양이다. 람블라스 거리의 낭만도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많이 듣고 봐온지라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행서적 베테랑으로서는 좀 그랬다.

 

글쓴이와 동행 T는 어쨌든 바르셀로나의 황홀한 추억을 뒤로 안달루시아의 첫 번째 도시 세비야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공간이동을 감행한다. 도보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고, 자동차로도 길 한 번 잃지 않고 족히 10시간은 달려야 하며 직행열차도 없으니 비행기가 가장 합리적인 이동수단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어제 막 읽은 일본 에세이 작가의 카미노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서도 굳이 도보로 걸어야 하나 하는 글을 읽었는데,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여행 방법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그러다 저자가 준비한 신의 한수가 등장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타리파에서 마주한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땅 탕헤르에서의 한나절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 같은 휴양을 즐길 수 있었던 타리파 아파트 발코니도 그랬지만, 스페인 무데하르 양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여행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좋은 가이드의 도움으로 마티스와 윌리엄 버로스 같은 예술가들의 족적을 따르는 여정이 조금은 뾰루퉁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다고 할까. 여행가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의 내공을 갖추어야 하지 않았을까.

 

탕헤르 한나절에 비하면 나머지 일정은 여느 여행자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금지되었다는 투우 경기를 보지 못해 안도했다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듯 싶기도 하다. 미하스 푸에블로 광장에서 만난 거리의 플라멩코 공연 같은 행운도 마냥 부러웠다. 뜨내기 여행자가 그런 공연을 찾아서 볼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여행 팁 중의 하나인 알함브라의 온전한 투어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예약이 필수라는 중요한 사실을 나같이 무계획한 여행을 선호하는 나그네에게 알려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여행은 평소의 안락함 대신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불편함을 추구하는 고행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여행의 끝에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하게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그네의 고행과 무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되짚어 보니 여행길에서의 어떤 고생도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총천연색 멋진 추억으로 시냅스에 각인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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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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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하다 :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부고((訃告) : 사람의 죽음을 알림. 또는 그런 글.

 

마음산책에서 나온 최윤필 기자가 그동안 한국일보 오피니언 <가만한 당신> 코너를 통해 소개한 35명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출간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코너는 현재진행형인 것 같은데 앞으로도 자주 살펴보게 될 것 같다. 제목인 ‘가만하다’라는 형용사의 뜻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는데 표준국어대사건 도움으로 그 뜻을 알게 됐다. 가만하다에는 “부고”의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은 순서대로 읽는 대신 마음 가는대로 읽는 편이라 첫 번째 인물로 누구를 고를까 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선택은 델머 버그였다. 이유는 그가 죽었을 때 어디건사 부고를 보고서 뉴욕타임즈에 실린 그의 ‘오비추어리’를 읽은 탓으로 돌리자. 어렵게 대공황기를 나던 미국 청년이 물설고 낯선 나라 스페인에서 프랑코 반란군과 싸우는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목숨 걸고 링컨국제여단원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연대라는 대의에 헌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29년간의 옥살이 끝에 무죄로 풀려났지만, 자신을 가둔 주정부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1년 뒤에 폐암으로 사망한 글렌 포드의 기막힌 사연은 또 어떤가.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 삼십대에 혈기 방장한 연방검사 마티 스트라우드가 기소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고 죽음을 앞둔 글렌 포드는 그를 끝내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흑인이고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변호조차 받지 못하고 긴 세월을 보낸 무고한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 지원과 치료비 지원조차 거부하는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공권력의 피해자가 된 글렌 포드에게 저절로 동정이 갔다. 하긴 어디 그런 일이 미국에서만 일어났던가? 우리나라에서도 온갖 잘못된 판례들이 뒤집어지고 있지만,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나 검사들의 진정한 사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란 억울하게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범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우호적인 저자의 시각에서 연유한 탓인지 1960년대 발흥한 2세대 페미니스트를 필두로 한 세계 각처에서 양성평등, 존엄사 그리고 여권신장의 현장의 일선에서 오늘도 투쟁을 벌이다 죽음으로 은퇴한 인사들의 이름도 연이어 등장한다. 광물자원 확보 때문에 벌어진 내전을 뛰어넘는 국제전 성격으로 비화된 콩고전쟁의 희생자 마시카 여사의 비극을 이겨낸 활약을 필두로 해서, 1970년대 여성 오르가즘이야말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뉴욕에 여성전용 섹스토이샵을 낸 델 윌리엄스, 스스로를 “crip"리라고 부르며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는 코미디언 출신 스텔라 영의 재기발랄한 감동 포르노에 대한 발언, 전통 여성할례 때문에 수많은 아프리카 출신 여성들의 고통과 비극을 전세계에 증언한 에푸아 도케누, 이제는 합법화되었지만 기나긴 동성결혼에 대한 공식인정을 위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지리한 소송전을 불사한 니키 콰스니 등의 이야기는 무심함 때문에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사건과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페미니즘 전사로 부른 데니즈 마셜 부고에서는 후진국도 아닌 선진국 영국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160억 파운드에 달한다는 기가 막힌 현실도 접할 수가 있었다. 아울러 나이지리아 라고스 출신으로 런던에서 성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가디언이 만든 아비케 스토리(Abike's story) 애니메이션은 유튜브로 동영상으로 감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부고 에세이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시대의 불의에 맞선 용감하고 특출한 인물들만은 아니다. 땜빵 메이저리거였던 로키 브리지스처럼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메이저리거들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연봉에 각종 특권을 가진 특권계층이 되었지만, 로키 브리지스처럼 이름 없는 메이저리거도 분명 존재했다. 메이저리거 통산 16개의 홈런을 기록한 그는 전설 베이브 루스처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홈런을 쳤노라고 고백한다. 훗날 마이너리그 감독이 되어서는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후져서 경기에 졌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한편, 존 마이클 도어 같은 인사의 경우는 또 어떤가. 누구나 다 기피하던 1960년대 인권담당 검사였던 도어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뜨거웠던 시절을 직접 경험했다. 제임스 메리디스의 미시시피 대학 입학 건으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과 살해협박이 쏟아지던 가운데 메리디스의 수호천사를 자처해 가면서 딥 사우스(deep south) 지방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투쟁을 이끌어냈다. 저자는 그가 시대가 요구한 불굴의 투사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묵묵하게 해낸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증언한다.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현재까지도 총기사고를 비롯한 온갖 사건사고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미국을 정상궤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저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부고는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고를 통해 아무래도 고인에게 후한 평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가만한 당신>에는 해당되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문득 그런 경우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공헌하고 기여한 이들 말고 비평받을 만한 인사들의 부고는 어떤 모습일까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신문 칼럼에 그런 부고를 기대해봐도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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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발칙한 혁명 - 비틀스, 보브컷, 미니스커트 - 거리를 바꾸고 세상을 뒤집다
로빈 모건.아리엘 리브 지음, 김경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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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울한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해 볼까. 지금으로부터 그러니까 반세기도 전인 53년 전인 1963년에 가능했던 그 모든 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가위와 펜, 붓 그리고 기타로 무장한 베이비붐 세대는 영국에서부터 하나의 혁명을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문명 자체를 시험에 들게 했던 전대미문의 전쟁이 끝난 뒤, 대륙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대영제국은 빈사상태에 빠져 버렸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식민지들은 하나둘씩 독립을 쟁취했으며 식민지 모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식량배급 제도로 자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간신히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을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보내지 않아도 될 징병제가 폐지되면서 비로소 새로운 세대에 의한 혁명의 맹아가 싹텄다. ‘젊은이 반란의 해라고 명명된 1963년 어느날 비틀스와 뉴욕 출신의 음유시인 밥 딜런이 대영제국의 공중파 방송을 통해 데뷔하면서 공식적인 반란이 선언됐다.

 

<1963 발칙한 혁명>의 저자 로빈 모건과 아리엘 리브는 생존한 63 혁명 세대의 생존자 48명을 상대로 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부활시킨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살인적인 주거비가 들지도 않았고, 도처에 일자리에 널려 있었다. 획기적인 피임약의 개발로 프리섹스주의가 만연했고, 리버풀이나 뉴캐슬 지방에서 튀어나온 노동자 출신 밴드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고리타분한 영국 고래의 계급주의를 일거에 해소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가령 예를 들어 롤링 스톤스(이하 스톤스라 부르겠다) 같은 밴드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산층 출신의 보컬리스트 믹 재거와 나머지 노동자 출신 멤버들의 이질적 집단이었다. 이들은 미국 시카고발 리듬 앤 블루스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머디 워터스와 척 베리를 추종하며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개발해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경이적인 사실 중의 하나는 블루스 기타의 신이라 추앙받는 에릭 클랩튼과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사실은 악보조차 볼 줄 모르는 기존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 본다면, 이런 점이야말로 기존 질서를 뒤엎은 천재들에게 그런 장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기타를 잡은 청년들이 놀고 먹는 클럽문화의 전위대였다면, 패션 계에서도 역시나 그런 스타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고등학생들까지 즐기는 미니스커트의 실질적인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메리 퀀트의 옷을 입고, 비달 사순에게 머리를 맡긴 젊은이들이 런던을 뒤덮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머리는 어머니가 잘라 주었으며, 옷도 어머니가 물려주신 옷들을 입던 그들에게 기상천외한 헤어스타일과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껏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부티크들이 넘실대는 런던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던 모양이다. 테리 오닐이라는 불세출의 사진가는 바로 그 시절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데 전력했노라고 저자들은 증언한다. 데이비드 베일리라는 사진가의 이름 역시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고, 최초의 슈퍼모델 타이틀에 빛나는 진 쉬림튼도 생소하기만 했다.

 

한편, 일체의 규제의 속박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음악을 생산해내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넘치는 당대 음악계의 모습은 거대 메이저 음반회사나 기획사에 소곡된 아티스트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음악을 생산해내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이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의 후예들이 어쩌다 오늘날 기성세대의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두리에서 뛰노는 신세가 되었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1963 발칙한 혁명>의 저자들은 대서양 왼편의 미국보다 반대편의 영국에 좀 더 비중을 둔 느낌이 든다. 전술한 대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동질의 영어문화권이라는 바탕에서 미국과 영국은 서로 상호보완하며 문화혁명을 선도해 나갔다.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밴드를 조직해서 소위 말하는 첫 번째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나선 반면, 미국에서는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로 무장한 걸출한 뮤지션들이 차례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한때 자동차의 천국이라 불리던 디트로이트 모타운 출신의 마빈 게이를 필두로 한 일단의 그룹들에 대한 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여성보컬그룹 슈프림스와 다이애너 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소녀들이 마침내 빌보드 차트를 정복했지만, 터무니없는 불공정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던 현실에 대한 리포트가 이어진다.

 

말미로 가면서 미국의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던 JFK의 죽음에 대한 애도 그리고 곧 망각에 빠진 이들이 이제 막 미국에 상륙한 비틀스를 필두로 한 영국 밴드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케네디의 암살은 신장하고 있던 시민권 운동의 종말이기도 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시장에 나오는 대로 소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시기에 등장한 밴드들의 음악은 무한정으로 팔려 나갔고, 메리 퀀트와 비달 사순이 창조해내는 스타일 역시 비슷한 속도로 소비되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 중의 하나는, 당대를 살았던 셀리브리티들이 나이 들어 회고하는 장면이 상당 부분 미화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마리화나와 각성제, LSD를 즐겼지만 자신은 안하고 대신 와인을 마셨다고 했건다. 영국 보수당 맥밀런 정권을 공중분해시킬 뻔했던 프러퓨모 스캔들에 연루된 맨디 라이스-데이비스은 자신이 빌 애스터 의원의 공공연한 정부(情婦)였노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 내용은 훗날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단다. 히트 차트에 들기 위해 자신들의 음반을 사재기하기도 했노라는 고백도 이어진다. 지금이라면 비도덕적이라며 비난받을 만한 일들이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시절을 체험한 노동계급 출신 스타들이 이제 꼰대가 되어 기사 작위를 받으며 기득권층이 된 지금, 반세기 전의 그런 혁명은 이제 어디에서고 가능하지 않다. 빅뱅을 외치며 무한자유를 주창하던 이들이 이젠 반혁명의 선봉에 서 있는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963 발칙한 혁명>은 반세기 전 시대를 바꾸었던 젊은이들의 반란의 이모저모를 자세하게 취재한 흥미로운 보고서다. 동시에 그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변명이기도 하다. 물론,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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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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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9년 전, 6월 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너무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80년 광주에 이어 내 고향 인천에 공수부대가 투입된다는 유언비어가 끝도 없이 퍼지고 있던 시절, 난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무더운 날에 도서관에 올라갔지만 도시 전역을 뒤덮은 시위 때문에 아마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았던 것 같다.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에서 작가는 바로 29년 전 그 시절을 달구었던 한 청년의 운동화 복원에 관한 과정을 소설화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 팟캐스트로 실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한 과정을 이미 들어서 그런지 소설의 전개는 생각보다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런 종류의 기시감이라면 항상 대환영이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소설 <L의 운동화>의 화자는 열사가 남긴 운동화의 복원을 맡게 될 복원전문가 “나”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왜 작가는 이한열이라는 본명을 놔두고 굳이 "L"이라는 이니셜을 사용해야 했을까. 세상 모든 이들이 이 소설의 무엇에 관한 그리고 누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어쨌든 나레이터 나의 관점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한열 기념관의 채 관장이 열사의 운동화 복원을 의뢰하면서 나의 고민은 시작된다. 사실 고미술품을 전문으로 복원해온 나는 폴리우레탄 소재로 된 신발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설의 모든 전개가 그렇듯, 나는 숱한 고민 끝에 의뢰를 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테고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다양한 현대미술과 복원 사례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특히 나치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현대미술 퍼포먼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요셉 보이스의 죽은 산토끼 퍼포먼스는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리움 미술관에도 오리지널이 전시된 거미엄마 루이스 부르주아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스코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복원은 창조가 아니고 최소한의 복원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절로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잠시 곁길로 샜다. 어쨌든 소설은 필연적으로 열사의 운동화 복원 과정 중에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재구성을 들려준다. 다른 계절도 아닌 바로 6월에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떤 영화 비평 글에서 좋은 영화란 모름지기 사유,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철학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주장을 읽었는데 소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는 그런 점에서 정말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동아리 출신으로 다른 학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크(SOC)가 되어 시위대 최전선에 아픈 몸을 이끌고 섰던 젊은 청년의 미래를 앗아간 민주화의 대의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사유는 정확하게 복원작업대에서 오랜 시간의 풍화와 보존상의 문제로 빈사 상태에 이른 그의 운동화를 대면하게 된 복원전문가 “나”의 실존적 질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복원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가라는 질문 역시 의미심장하다. 열사가 신던 타이거 운동화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하기 전까지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대량생산된 아무런 의미 없는 기성제품(ready-made)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슬픈 죽음의 기억이 담긴 그의 운동화는 암혹했던 시절의 역사를 증언하는 유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비물질적 가치를 담은 오브제가 되어 역사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작가는 동시에 보존연구소에서 묵죽도를 담당한 이소연 복원가의 이야기를 투트랙으로 진행한다. 보관상의 실수로 훼손된 묵죽도(열사의 운동화 역시 마찬가지였다)를 복원하기 위해 한지를 한 겹 한 겹 핀셋으로 덧대는 그녀의 모습은 전작 <바느질하는 여자>의 연장전처럼 작가가 집요하게 파헤치는 장인의 아우 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신산한 삶의 여로 역시 그렇지 않아도 진중한 이야기에 시간의 더께와 무게를 더한다.

 

김숨 작가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등장시킨다.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 혹은 살아 있는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요셉 보이스의 죽은 산토끼를 비롯해서 잇 아트(eat art)의 창시자 다니엘 스포에리 같은 현대미술가를 필두로 해서 아흔도 넘어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 받은 나치 전범 오스카 그로닝 에피소드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래도 요셉 보이스의 죽은 산토끼의 그것을 이소연 복원가의 남편이 아들을 보러 다녀오는 길에 로드킬한 토끼 이야기에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 어딘가에 나오는 작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은 환(幻)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소설을 이번 달에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그렇게 허겁지겁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 2년 전에 만난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그랬던 것처럼, <L의 운동화> 역시 다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참 오래갈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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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작업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위화의 에세이에 나온 내용처럼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잊을까 봐 걱정됩니다.

레삭매냐 2016-06-27 22:02   좋아요 0 | URL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위화 작가의 말대로, 국내 작가들이 뜬구름 잡는
타령보다 좀 더 리얼리티에 접근한 이야기들을
다뤄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홉 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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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영어선생님과 함께 베니건스에서 술을 마시면서 페이퍼 수정을 하곤 하던 시절이 났다. 가장 인상 깊은 노래들 그리고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물론 그녀가 말하고 나는 주로 들었다, 그 때 선생님이 꼽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호밀 밭의 파수꾼>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책에 대해 읽어보지 못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흘러 그 책을 읽었는데 사실 명성 만큼이나 그렇게 대단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독서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으란 법은 없잖아? 그런 이유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사두기만 하고 언제 읽은진 나도 모르겠다. 고전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읽게 되는 그런 책이 아닐까. 서설이 길었다, 이번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된 <아홉가지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다.

 

이달 독서 모임 책 발표가 나자마자 헌책방에 달려 가서 냉큼 사왔다. 헌책방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 책이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보기도 하지만(경제적인 이유로) 개인적으로 책은 사서 보는 게 편하다. 헌책이라 가격도 저렴하니(거의 커피 한잔 값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왠지 밍밍한 느낌이다. 단박에 9개의 이야기 중에서 6개를 읽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단편을 남겨 두고 지지부진했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화장실에 앉아서 7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사실 앞의 6개 이야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순전히 리뷰와 독서모임을 위해 이미 읽은 이야기들을 뒤적여야했다. 흠,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구만. 오늘 바로 읽어서 그런진 몰라도 7번째 이야기 <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에서 묘령의 여인과 함께 있던 리는 아서의 전화를 받는다. 그 둘의 사이는 한밤중에 전화해도 부담 없는 그런 사이겠지 아마도. 파티에서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는 아서에게 리는 기다리면 곧 아서의 부인 조아니가 돌아올 거라며 술 한 잔을 권하지만 이미 아서는 만취한 상태다. 여기까지 읽던 나는 리와 함께 있는 여자가 조아니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1950년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대한 저격이라고 해야 할까.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듯, 재판에 져서 낙담해 있던 변호사 아서는 아내가 막 돌아왔노라고 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고한다. 역시나 어리둥절한 결말의 이야기.

 

사실 이전의 이야기들은 좀 뜬금없다. 아무래도 내가 샐린저가 소설을 쓰던 시절의 배경을 몰라서 그랬을까. 처음에 만난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강제노동수용소를 목격하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을 무시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젊은 남자에 대한, 어쩌면 샐린저의 이야기였다는 건 위키피디아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설에 나온 이야기만으로는 절대 부족했다. 코네티컷 중산층 부인네들의 수다가 등장하는 미국판 교외 신화에 대한 <코네티컷의 비칠비칠 아저씨>는 또 어떤가. 여대시절 친구였던 엘로이즈와 메리 제인이 줄담배를 피고 술을 질탕 퍼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기만 하다. 상상 속의 친구를 가진 엘로이즈의 딸 라모나 이야기는 훗날 무언가의 원형질 같은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작은 보트에서>는 부 부 탄넨바움에 고용된 산드라와 스넬 부인이 부 부의 아들 라이오넬에게 들려준 반유대주의(라이오넬의 아버지가 유대인이다) 생각들을 자신들의 고용인에게 알릴까봐 걱정하는 일상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저 도망가려는 꼬맹이 라이오넬에 대한 이야기다. 꼬마 라이오넬은 역시 절반은 유대인이었던 샐린저의 초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후 널리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 여론을 아주 살짝 엿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 중에서 그나마 지혜와 위안을 찾은 작품은 바로 <에스메를 위하며,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작은 걸작”이라는 평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글 중에서도 최고라고 했다지 아마. 때는 1950년, 6년 전 영국 데번에서 D-day 직전에 만난 신부로부터 청첩장이 도착했다. 화자는 조용하게 그 당시의 인연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독일군이 삼엄하게 방비하고 있던 노르망디 해변 상륙작전을 앞둔 화자는 어느 교회를 방문해서 어린이 성가대 연습을 듣게 된다. 그곳에서 화자는 세상 “살맛을 잃은 듯한 두 눈을 가진 열 세 살쯤 먹어 보이는” 소녀와 조우한다. 그리고 들른 민간 찻집에서 예의 꼬마 숙녀 에스메와 다시 만나게 된다. 화자를 지적이고 외롭다고 판단한 에스메와의 대화를 통해 에스메의 삶을 엿보게 된다.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는 북아프리카에서 잃은 에스메는 고상한 프랑스어도 할 줄 알고 미래에 재즈 가수가 되어 돈을 왕창 벌어 싶어하는 당돌하면서도 상냥하고 지적인 꼬마 숙녀였다. 화자의 결혼생활과 직업 등을 물은 에스메와의 대화는 이제 곧 작전에 투입될 병사와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간 소녀의 감정을 교차시키면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엮어낸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드디어 끝나고 X하사(화자)에게 에스메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에는 아버지가 유물로 물려준 알이 엄청 큰 크로노그래프처럼 생긴 손목시계와 직업적인 단편소설 작가의 재능을 가지고 무사히 귀국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겪은 이들이 가진 비참한 전쟁에 대한 생각들을 추체험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소설 <에스메>가 매스터피스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 두 이야기인 <드 도미에 스미스의 청색 시대>와 <테디>는 신비주의적 성향의 작품들이다. 전자에서 만화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오노레 도미에의 증손자이자 파블로 피카소와도 친분이 있다는 그럴싸한 말로 몬트리올 미술학교에서 일본인 요소토 교장의 미술교사 채용공고에 당당하게 응모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두 남자(자신과 자신의 의붓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멋지게 들렸다. 그리고 물설고 낯선 몬트리올에서 새출발을 시도해 보지만 나에게 모든 곳은 천국보다 낯설 뿐이다. 얼토당토않은 미술 선생직이 오래 갈 리가 없지. 슬렁슬렁 넘어가는 서사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테디>는 또 어떤가. 샐린저의 신비주의 정점을 찍을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야릇한 분위기의 단편소설은 아마도 천재소년으로 보이는 주인공 테디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저격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떨까? 불운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유려한 단편은 끝을 맺는다. 예상한 대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설정, 대단하군.

 

샐린저의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최근에 읽기 시작한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이 생각났다. 엄청난 속도로 읽어 대기 시작했지만 샐린저의 단편처럼 어느 순간 멈춰서 버린. 일상의 균열과 붕괴를 잡아낸 대가의 솜씨는 어쩌면 샐린저가 먼저 발휘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하면 독서 모임 전에 <호밀 밭의 파수꾼>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많은 버전이 나왔지만 추천할 만한 번역이 부재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가능하면 김욱동 교수님의 버전으로 만나 보고 싶은데, 드물어서 과연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샐린저의 대표작은 걸작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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