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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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그동안 미뤄두고 있던 프리모 레비를 읽었다. 죽음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비애를 담담하게 소회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의 책과 블로그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 점령군에 봉기한 바르샤바 시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가 있었다. 이제 맨부커상을 빼놓고는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작가가 된 한강이 폐허가 된 도시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흰>을 읽었다.

 

시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흰>의 영어 제목은 <The Elegy of Whiteness>란다. 그냥 <흰>으로는 무슨 뜻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는데 영어제목 <흴 수밖에 없는 비애>라고 해석을 하니 좀 더 그 의미가 명징해진다고 할까. 소설의 서두에 흰색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씩 나열한 다음, 본론에서 차례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전통적 서사구조는 단호하게 배격해서, 독자는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를 읽고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그게 정확한 저자의 의도일진 모르겠지만, 심술쟁이 독자는 독자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오독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흰색하면 빼놓을 수 없는 눈도 등장한다. 차가움의 상징이지만 또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존재인 눈, 눈으로 덮인 세상에 대한 동경의 이면에는 검은색 발자국으로 훼손될 가련한 운명에 대한 감상이 살포시 지나간다. 어쩌면 폐허에서 다시 수도를 재건한 바르샤바의 이미지가 그것이려나. 밥을 짓기 위해 스페인에서 난 흰쌀을 사러 마트에 들르는 일상의 스케치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먹는다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살 수 있는 재화를 벌기 위해 매일매일의 윤회를 거듭한다.

 

배내옷에서 출발해서, 자기 삶에 앞에 존재했던 부모님의 첫 번째 아이를 앗아간 가혹한 운명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녀가 살았다면 자기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는 바르샤바 출신으로 벨기에로 입양되었지만, 6살 아이 때 죽은 형의 혼과 대화하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와도 묘한 접촉점을 이끌어낸다. 신비하기도 하여라. 극도의 리얼리즘에서 갑자기 신비주의로 전환하는 이 당황스러움이란.

 

각기 다른 맛을 대표하는 선수인 소금과 각설탕의 대조는 또 어떠한가. 요리하다가 칼에 손을 베이고 또 소금을 집다가 더 큰 쓰라림을 느끼게 된 심정을 이럴 때 상처에 소금 뿌린다라는 표현을 절실하게 배웠노라는 고백이 귓가를 스쳐간다. 지금은 설탕이 흔해빠졌지만, 예전에 물자가 귀할 시절에는 각설탕 하나만 있으면 남부럽지 않은 그런 시절도 있었다. 장방형 안에 숨어 있는 아찔하게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조금만 할짝여도 자극적인 달콤함이 입 안 한가득 퍼져나가는 순간의 쾌락이란 앞서 등장한 순백색 소금의 쓰라림과 그 결을 달리한다.

 

책에 나오는 글들에 동감하는 편이지만, 어떤 기억들을 훼손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세상에 훼손되지 않는 게, 변하지 않는 영원에 근접한 게 존재했던가. 그런 건 유토피아에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더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지도.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훼손이 모든 걸 블루어(blur)하게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에는 또 동감하고 싶어지고. 이래서 인간은 양가적 감정의 존재인 모양이다.

 

한소끔 떨어져서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저자의 글을 읽으니 상쾌한 기분이다. 열광과 환호가 잦아진 자리를 채우는 꾸준한 글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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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문구 - 매일매일 책상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 문구 카탈로그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김보화 옮김 / 벤치워머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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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존재 목적은 문자의 기록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문자와 복잡한 숫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필기구들을 애용한다. 개인적으로 부드럽게 나가는 필기구를 좋아해서 그런지 1mm대 볼펜심이 있는 펜들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냥 나처럼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덕후 수준에 오른 이들도 제법 되는 모양이다. 이웃 일본 ‘전국 문구왕 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한 저자 다카바타케 마사유키는 덕질을 바탕으로 문구 회사에 취직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업자로 나섰다. 참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싶다.

 

예전에 <연필 깎이의 정석>란 제목의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탄했던 적이 있는데 문구왕이 직접 일러스트를 그린 <궁극의 문구>에는 정말 다양한 문구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스페이스 펜의 유래에서부터 시작해서, 100엔 짜리 저렴하면서도 필기라는 본래의 용도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클래식 문구는 물론이고, 공부하다가 중요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좍좍 그어대는 형광 마커,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잽싸게 포획하기 위한 노트북 등등 다카바타케 저자가 소개하는 문구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책에 소개된 제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품은 스티커와 테이프 제거제로 사용하는 솔벤트였다. 얼마 전, 아기소독기에 붙은 테이프 자국을 지우려고 얼마나 박박 문질러 댔는지 모른다. 한편, 책에 소개된 문구마다 제조사와 단가 그리고 판매처까지 알 수 있는 사이트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덕후의 경지를 넘어 업자로 입신한 저자의 세심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감명 깊었던 점 중의 하나는 지은이가 주로 다루고 있는 문구강국 일본 필기구 제조사의 혁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고객의 편리를 극대화하겠다는 어떤 방향성이었다. 문구왕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던 자신의 체험도 등장시켜 어떻게 보면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문구에 일상성에 유머감각을 불어 넣어 주면서도 ‘일상 문구 카탈로그’로서 다양한 문구를 독자에게 소개하겠다는 책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자신 미처 모르고 있던 용도에 사용되는 기발한 아이디어 제품이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도구적 인간이라는 ‘호모 파베르’가 역시 괜히 생긴 말이 아니구나 싶어졌다.

 

 

아무래도 필기구를 좋아하다 보니 혹시 소개된 제품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제품은 없는가 하고 일본 엔커터라는 문구회사에서 나온 커터 칼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무래도 문구를 좋아하다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소개된 제품 중에 무언가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문구왕 마사유키 저자가 독자를 고객으로 만들고자 했다면 그의 시도는 대성공이지 않을까. 저자는 단순하게 다양한 문구류를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사용해 본 후기와 더불어 아쉬운 점들, 개선하면 좋은 점들 그리고 이제는 생산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는 레어 아이템에 대해서도 꼼꼼한 소개를 잊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업자 마인드가 아닐까. 이번에 문구점에 가서 이번에 읽은 달레에서 만든 슈퍼시저스 같은 명품을 만난다면 안사고 배겨낼 재간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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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2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문구의 모험> 절반의 내용은 지루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16-07-27 17:29   좋아요 0 | URL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인가 싶어 검색해 보았는데,
<궁극의 문구>와 <문구의 모험>은 상당히 다른 성격
의 책으로 보입니다.

일러스트가 반이라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우리 주변
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품도 있어 거부감이 적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문구의 모험>은 글이 상대적으로 더 많네요.
 

 

 

 

톰 드루어리는 미국 작가다.

 

그는 1956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에 아이오와 대학을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 후 5년 동안, 톰 드루어리는 1985년에 브라운 대학교에서 창작 프로그램 졸업을 위해 받아 들여지기까지 댄버리 뉴스타임즈, 리치필드 카운티 타임즈 그리고 프로비던스 저널 같은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러니까 톰 드루어리는 저널리즘을 전공한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톰 드루어리는 하퍼스 매거진, 노스 아메리칸 리뷰 그리고 뉴요커 등에 단편을 기고한 이후, 와일리 에이전시의 새라 챌펀트와 계약을 맺게 된다.

 

톰 드루어리의 첫 번째 소설인 <반달리즘의 종언>은 1994년에 하우턴 미플린에서 출간되었고, 1995년 ALA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6년 여름에는 영국 문예지 그랜타 54호에 <꿈 속의 사냥>이 발췌 소개되었고, 해당 잡지에 의해 전도유망한 젊은 미국 작가로 소개됐다. 2000-1년에는 존 사이먼 구겐하임 파운데이션 펠로우쉽을 수혜자로 선정됐다.

 

톰 드루어리는 <미시시피 리뷰>와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기고할 뿐 아니라, <블랙 브룩>(1998), <꿈속의 사냥>(2000), 영화로도 제작된 <드리프트리스 에어리어>(2006) 그리고 <퍼시픽>(2013) 등의 작품을 저술했다. 그는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사로,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와 라살레 대학교 그리고 예일 대학교에서 초빙작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플로리다에 있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즈의 편집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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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내가 지난 주말 알게된 톰 드루어리란 작가에 대한 위피키디아에 실린 소개다. 지난 1989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6편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한 개도 소개된 책이 없다. 그래서 오늘 알라딘에서 <반달리즘의 종언>이라는 책을 주문했다. 과연 그 책을 내가 읽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꿈속의 사냥> 그리고 <퍼시픽>으로 이어지는 삼부작 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반달리즘의 종언>은 북디파지토리와 딱 500원 차이가 나서 마침 가지고 있던 네이버포인트로 질러 버렸다. 공짜 책을 사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토바이어스 울프의 <올드 스쿨>도 반디에서 주문했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두 책 모두 공짜로 사는 셈이어서 일단 기분은 좋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책들도 쌓아 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과연 언제 읽게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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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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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과대평가된 작가라는 생각을 그가 쓴 몇몇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프리모 레비나 조르조 바사니의 작품들처럼 부러 수고와 시간을 내서 전작을 읽지 않고 방치해 버렸다. 그러다 이번 여름 폭염 속에서,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으면서 그런 나의 편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후기에 작가가 친절하게 알려준 대로, 이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노벨라처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런 연애소설이다. 타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예능인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광수가 자그마치 13년을 짝사랑해온 영문과 대학 동창 (이)선영과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 사이에 동창 소설가 진우라는 장애물이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결혼식 날 선영이 던진 부케가 꽂혀 있던 팔레노프시스(호접란의 학명)가 꺾여 있었다는(deflower를 의미하는 걸까) 사실을 알게 된 광수는 절친한 친구 진우에게 맹렬한 질투와 시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말로 이런 쫀쫀한 사내 같으니라고 치부하기에는 셰익스피어의 무어인 총독 <오셀로>를 찜 쪄 먹을 법한 의심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내게 너무 늦게 도착한 작가라고 해야 할까? 김연수 작가는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모든 것이 금전출납부에 계량화된 수치로 찍혀야 안심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랑학개론과 부르주아 결혼 시스템을 설파한다. 플라톤의 <향연>과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들려주는 2002년 러브 스토리의 핵심은 사실 사랑이 실은 공산품이었노라는 비밀이다. 모든 것이 휙휙 지나가 버리는 탈낭만주의 시대에 사랑은 그저 환상이고 음모이자 프로파간다란다. 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랑은 천 송이 꽃의 마지막 한 송이를 채우기 위한 개인이면서 전체이고, 또 모두이면서 특별할 수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소심한 고백으로 다가온다.

 

 

문득 우리는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생각해 봤다. 숱한 공을 들인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호기심은 추상적 개념으로 진화하게 될 거라고 작가는 청산유수처럼 거침없는 서사의 힘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학생운동과 변절 운운하면서 선영과 광수의 집들이에서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코드는 특히 일품이었다. 한편 작가는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점잖은 목소리로 충고를 아끼지 않기도 한다. 잘못하다간 주화입마, 아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는 이렇게 절묘하게 빠져 나가 버릴 지도 모르겠다. You never know!라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던 소설에 나온 다음의 문장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네(119쪽).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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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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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번역과 교정 탓을 해야 할까? 세상에 이렇게 사소한 오류부터 시작해서 오탈자가 많은 책은 또 근래에 처음이다. 그전에 읽은 돌베개에서 나온 프리모 레비의 책과 너무 달라서 어안이 벙벙해질 판이다. 역자는 이탈리아어 전공자가 아니라 영어와 중국어 전공자라고 한다. 역시 중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용비어천가, 썸씽 같은 표현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뚝뚝 끊기는 번역 때문에 과연 이 책이 같은 작가가 쓴 책일까 싶었다. 될 수 있으면 한 작가의 책은 고정 번역자가 맡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서경식 선생이 프리모 레비의 저작 중에서 중요하다고 손꼽은 5개의 작품 중에 4번째 작품에 도전한다. 그동안 읽은 세 권의 저작이 넌픽션이라면 이번에 고른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레비가 1982년에 발표한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아우슈비츠 경험을 증언한 <이것이 인간인가>와 <휴전>이 생존과 귀환의 기록이라면,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의 활약을 통한 저항의 기록인 셈이다.

 

때는 1943년 여름, 히틀러가 이끄는 베어마흐트(독일 국방군)가 불구대천의 숙적 스탈린의 소련을 침공한 지 2년이 되던 해다. 소설은 러시아의 어느 숲에 은거한 시계수리공 멘델 나흐마노비치(메나쳄, 위로하는 사람-1915년생)과 만난 십대 청년이자 모스크바에서 회계를 공부하기도 한 낙하산 낙오병 레오니드(1924년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을 이끌어갈 주인공의 공통점은 둘 다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대조국전쟁이라 불린 독소전쟁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빨치산 투쟁에 나서길 원하지만, 유대인들은 믿을 수 없다며 처음 만난 벤야민 부대에서 거절당하기에 이른다. 눈앞에 닥친 나치라는 가공할만한 적군에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보다 높은 불신의 벽을 느낄 수가 있었다.

 

러시아, 벨로루시를 거치며 멘델과 레오니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을 한다. 프리모 레비는 두 사람의 영웅적인 빨치산 투쟁기록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이면을 담는데 주력한다. 우선 폴란드를 분할한 러시아 비밀경찰 조직에 의해 폴란드의 민족주의 엘리트 인사들을 집단처형한 카틴숲 대학살로부터 시작해서, 해방은 목전에 둔 바르샤바 봉기 당시 악행으로 이름을 날린 카민스키 여단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말고 바르샤바 봉기 기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일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독일 본토 사수를 위해 재집결한 독일군에게 일격을 당한 소비에트군이 바르뱌사 봉기군에 대한 지원을 주저했다고 한다. 어쩌면 종전 후, 폴란드에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위성국가를 세우기 위해 민족주의 계열 레지스탕스의 활동이 껄끄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안, 폴란드 봉기세력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한 독일군에게 처절하게 분쇄되고 학살당했다.

 

한편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츠크 전투에서 승기를 잡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일대를 장악한 독일군이 스탈린 체제 아래서 조성된 집단농장 시스템을 철폐하고 해방군으로 행세하다가 본색을 드러내고, 러시아 침공이 결국 게르만 민족의 생존을 위한 동방정복의 목적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침략자 독일군에 대항 저항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에 기술된 대로, 독일군이 교활한 이이제이 전략으로 빨치산에 대한 강경책 대신 유화정책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읽었다. 빨치산 부대 소속으로 사랑하는 아내 리프케를 독일침략군에게 잃은 멘델의 시점에서 다룬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향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은 유대인 빨치산에게 돌아갈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동시에 스탈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읽을 수가 있었다. 볼셰비키 혁명 과정에서 붉은 유대인(특히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들의 뛰어난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풍조 또한 생긴 것도 사실로 보인다. 당장 눈앞의 대적인 나치에 맞서 싸우기는 하지만, 전쟁이 끝나는 대로 불편한 존재인 무장 유대인 빨치산 조직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리란 예상도 조금도 틀리지 않는 분석이었다.

 

멘델은 노보셀키의 도브 유격대 출신 시슬에 이어 레오니드의 연인인 라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무리 적군 혹은 아군의 손에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운명이라고 해도 생존본능과 사랑에 대한 감정마저 숨길 순 없었던 모양이다. 율리빈과 게달레 유격대로 갈아타면서 조우하게 되는 대원들의 가혹한 운명 역시 멘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역설적인 장면은 정작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현실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은 소비에트 혁명의 대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폴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더더욱 그들의 종착역일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솔리니의 인종법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그나마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판단된 이탈리아를 목적지로 삼은 게 아닐까. 그 와중에 등장한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반면, 동포 유대인들을 수용소에서 구하기 위해 등장시킨 작전은 작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너무 멀리 나갔다고 해야 할까. 제한된 지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출발한 비극의 연장선을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라는 이야기로 이끌어냈다.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극단적 시오니즘에 대한 시선과 연합국의 승전이라는 거시사에 묻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용사들의 활동을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킨다. 왜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절멸 수용소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가스실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야 할까?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치 독일의 최종해결책과 그에 못지 않은 스탈린의 강제이주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의 발굴만으로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교정과 번역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지만 말이다.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두 번이라도 읽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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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베개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절판된 시집도요. 언젠가는 꼭 나올 거라 믿습니다.

레삭매냐 2016-07-21 14:58   좋아요 0 | URL
번역 스타일에 너무 어리둥절해서 과연 제가 같은 작가
의 책을 읽고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모쪼록 말씀하신 대로, 돌베개에서 재출간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