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나하고 줄리언 반스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세상에 6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10월달에야 마무리를 짓게 되다니. 사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금세 다 읽을 줄 알았건만, 정확하게 나의 오산이었다. 소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시대, 파란만장한 굴곡의 삶을 살았던 구 소련의 위대한 음악가 드리트미 쇼스타코비치가 1936년, 1948년 그리고 1960년 윤년마다 겪어야 했던 소극처럼 보이는 비극을 그려냈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였는데 악전고투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혹자는 번역 탓을 하기도 하는데, 원서를 접하지 못해 비교할 수가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소련이 자랑하는 천재 작곡가 미트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십대 시절에 자신이 직접 작곡한 교향곡을 발표한 바 있고,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위대한 소비에트 작곡가다. 문제는 모든 소련 인민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의 비위를 맞춰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시기를 살았다는 점이다. 한 때 ‘붉은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투하쳅스키 원수조차도 스탈린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숙청의 회오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는데, 붉은 나폴레옹과 친분이 있었던 일개 작곡가가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시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붉은 베토벤’이 야심차게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혹평을 가하자, 숙청의 시기에 곧 자신의 차례가 될 거라고 짐작한 우리의 주인공 미트는 가방을 싸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제 자신을 찾아올 줄 모르는 비밀경찰을 기다린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948년, 이번에는 미국을 방문한 미트에게 또다른 차원의 시련이 닥친다.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한 애국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은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선수가 되어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에 미트를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파견해서 사회주의 음악의 우월성과 체제 선전에 이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 보듯이, 정치를 배제한 순수한 예술이 과연 존재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예술이 보여주는 연성적 코드야말로 대중의 호응을 열렬하게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자신 스스로도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공식 석상에서 비난해야 하는 미트의 심정을 줄리언 반스는 소설가적 차원에서 뛰어난 심리분석을 통해 제공한다.

 

모든 것이 독재자의 심기경호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시대에 과연 음악이 순수하게 음악으로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었을까? 음악이 어쩌면 시대가 원하지 않는 소음은 아니었을까라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이 아니라, 독재자가 지시하는 방향에 맞춰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는 점으로도 충분히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트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시련은 1960년, 독재자가 죽고 나서 흐루시초프 시절에 찾아왔다. 암울한 시절은 이제 모두 지나가 버렸지만, 권력의 주구에 봉사하던 잔존 세력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예술가에게 새로운 시대는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게 말이 되냐고 덤비는 이들에게 미트는 하는 수 없이 굴복하고 만다. 스탈린 시절에도 꿋꿋하게 당원 가입을 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자존심이 부러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바로 이 점 때문에, 드미트리 스쇼타코비치가 훗날에도 공산당에 부역한 예술가였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게 아니었을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술가의 실존적 고뇌를 그렸다는 점에서 줄리언 반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를 휘두른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을 복기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왜 그렇게 정치권력은 집요하게 예술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피상적 접근보다 보다 실존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그 내면을 파고드는 마치 일종의 르포르타쥬적인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소극처럼 보이는 비극이 소용돌이치던 시기에 살아남은 예술가에 대한 줄리언 반스의 서술은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접근장벽이 의외로 높았던 게 아닐까 싶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사실 냉전 기간 동안 우리에게 금지되었었고,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낯설었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에 가서는 마치 못다한 숙제를 하는 것처럼 읽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조사해 보기도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작곡가를 알게 된 흥미로운 독서였다.



[뱀다리] 난 특히 이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그는 새우 칵테일 소스 속의 새우처럼 명예 속에서 헤엄쳤다(171쪽).


He swam in honours like a shrimp in shrimp-cocktail sauce.


[뱀다리2]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았습니다.


그는 새우 칵테일 소스로 새우처럼 우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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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23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읽다 만 책이나 읽기 진행이 느린 책을 완독하려면 최소 두세 달 걸리잖아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7-10-23 15:0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
어떤 책들은 아무리 페이지 수가 많아도
며칠이면 거뜬하게 읽어 내는데 말이죠 ~

단발머리 2017-10-23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정리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저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이후로 줄리언 반스 좋아라 했지만.....
했지만... 이 책은 어려워서 리뷰도 안 쓰고 패쓰했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메냐님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7-10-23 15:03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뭘 읽었는지 몰라서
얼결에 리뷰를 적은 느낌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할 말은 참
많았었는데, 리뷰로 풀어 내려니
답답하기만 하네요.

무지한 독자의 부끄러운 글쓰기
였습니다.

stella.K 2017-10-23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은 독자를 위해 쉽게 쓸 마음도 없는 사람은
아닐까 싶어요. 콧대가 워낙 쎄서.
너 아니어도 읽어 줄 사람 많고,
내 책 어려워 못 읽겠다면 뭐라고 하지말고
니 수준을 생각해.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17-10-23 15:33   좋아요 1 | URL
만만하게 보고 덤벼 들었다가 큰코
다쳤습니다.

에잇 이런 불친절한 작가 같으니라구.
저처럼 무지한 독자를 위해 쉽게 쉽게
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ㅋㅋ

sprenown 2017-10-23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하다는 ‘줄리언 반스‘가 쓴 책이군요..리뷰나 댓글을 보니 아무래도 이 책은 저에게 무리일 것 같네요. 이 작자가 쓴 좀 더 쉽고, 감동적인 작품은 뭘까요? 진짜, 마지막 새우관련 문장은 압권이군요!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었다는 뜻인가? ㅋㅋ

레삭매냐 2017-10-23 17:27   좋아요 1 | URL
예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더라구요.

줄리언 반스, 개인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요 ㅠㅠ

비로그인 2017-10-24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저는 있는 그대로 이해했어요... 새우칵테일 속의 새우, 처량해 보이지 않나요? 넓고 푸른 바다가 아닌 좁디 좁은 붉은 소스 안에 푹 담겨 있는 모습. 권력층에 기대어 살아남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으로요. 아, 게다가 마침 새우칵테일 소스가 붉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볼 수도 있겠네요, 쓰다 보니~~

레삭매냐 2017-10-24 10:16   좋아요 0 | URL
원작자의 글보다 아이다호피쉬님의 해석이
더 유려한 것 같습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Falstaff 2018-01-31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앞에서 같은 비유를 하는 문장이 95쪽에 나옵니다. 비행기 기내식 이야기군요.
˝그들은 자기에 담긴 음식과 리넨 천에 싼 묵직한 커트러리를 날라왔다. 새우 칵테일 소스 속에서 헤엄치는, 정치인처럼 살이 찌고 매끈한 엄청나게 큰 새우. 버섯과 감자.....˝
이 문장과 연결해 읽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좋은 글 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18-02-01 09:36   좋아요 0 | URL
아마 제가 대가의 비유 혹은 은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찾아봐야지
싶네요.

미트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전했는데 기대만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Falstaff 2018-02-01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스가 대가라기 보다....
흔히 작가들은 독자가 자신이 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두, 집중해서 읽어줄 것이라 착각하는 거 같아요. 반스 역시 독자가 95쪽에서 사용한 (2부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자기 생각엔 기막힌 묘사였던) 문장 또는 묘사를 171쪽에서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던 것처럼 보입니다.
칵테일 소스 안을 헤엄치는 살찌고 엄청 매끈한 새우처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뜻 아닌가 싶네요.
 

 

기대했던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아토믹 블론드>를 봤다. 개봉하기 전부터 고대하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좀 그랬다. 아무래도 기대만 못하다고 해야 할까. 우선 28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절 베를린을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냉전 시기 영국 MI6, 소련의 KGB 그리고 미국 CIA 3파 첩보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무래도 약점이었던 것 같다.

 

리메이크된 <매드 맥스>에서 퓨리오사라는 여전사로 줏가를 올린 샤를리즈 테론이 이번에는 매력적이면서도 못하는 게 없는 유능한 영국 MI6 소속 스파이 로레인 브로튼으로 등장해서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다. 장신의 여배우가 보여 주는 액션 시퀀스는 이제 하도 영화를 많이 봐서 닳아 버린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 세계 모든 스파이들의 정보가 담긴 시계, 그 다음에는 그 모든 정보들을 암기해 버린 동독 슈타지 출신 스파이글래스를 호위해서 안전한 서방세계로 넘기겠다는 로레인의 야심찬 계획은 이중스파이 역할을 맡은 배우 덕분에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도대체 누가 누굴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아사리판 같은 베를린 첩보세계에 대한 짤막한 정보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압도적이고 역사적 사건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가 없다. HBO 전쟁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신출내기 배우로 출연했던 제임스 맥어보이는 이중스파이 데이빗 퍼시벌 역을 맡아 열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샤를리즈 테론 원탑에 사이드킥을 하다 보니 비중이 떨어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샤를리즈 테론은 베를린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녀의 정체를 이미 파악한 KGB 브레모비치 휘하 스파이들의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미 소련에서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요즘 같이 않게 몸에 마이크를 장치하고 비밀을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서는 역시 과거로 돌아가는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가 느슨해지려는 순간마다, 샤를리즈 테론의 시원시원한 액션 씬들이 무시로 등장한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스파이글래스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져 가며 자신을 쫓는 스파이들과 계단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최고였다.

 

영화는 그렇게 격투로 만신창이가 된 로레인 브로튼이 CIA 참관 하에, MI6지부로 와서 베를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보고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존 굿맨이 CIA 연락관으로 등장한다. 영국 정보 담당관은 예전에 드라마 셜록에서도 등장했던 분인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모든 작전을 총지휘한 C라는 양반은 거울 뒤에 앉아서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정황을 치밀하게 듣고 있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킹스맨> 1편에서 냉혹한 킬러로 등장했던 소피아 부텔라가 프랑스 정보요원 델핀 라살 역을 맡아 이중스파이의 정체를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샤를리즈 테론의 동성 애인으로 고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 <아토믹 블론드>의 결말에 준비된 반전에 반전은, 아무래도 오래 전 영화 <노 웨이 아웃>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보여준 숨막히는 긴장과 반전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반전은 나름대로 신선했지만, 이미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 장면을 숱하게 경험하다보니 마지막에 준비된 앙뜨레에서 이미 배가 불러 제 맛을 몰랐다고 해야 할까. 혹시 시퀄이 나오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듯 싶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그랬을까? 이야기 구조가 어느 순간, 뚝뚝 끊긴다는 느낌도 들었다. 샤를리즈 테론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맥이 빠졌다.

 

영화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으로, 뉴오더의 <블루 먼데이> 리메이크 버전(by Health), 퀸과 데이빗 보위의 <언더 프레셔> 그리고 조지 마이클의 <파더 피겨>, 클래시의 <런던 콜링> 같이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들이 등장한다. 잘 나가던 뮤지션들이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어 버렸으니 지난 28년이란 시간이 더더욱 실감이 났다. 그 시절에는 이런 뉴웨이브 사운드가 대세였구나. 여담으로 <언더 프레셔>의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서주를 들으면서 난 바닐라 아이스의 <아이스, 아이스 베이비>를 생각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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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민음사에서 발간 중인 모던클래식 책들을 훑어 봤다. 어쨌거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혜택을 본 게 민음사가 아니었을까. 지난 2년 동안 모던클래식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사살하고 싶다. 컬렉션에는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 작가들이 제법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존 맥그리거다. 그동안 출간한 네 권의 책 중에서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 속속 절판되어서 헌책방을 이용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들조차도> 말고 나머지 두 권을 지난 주말에 샀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나의 선택은 <너무나 많은 시작>.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어 빛바랜 책처럼 고색창연한 스토리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일랜드 도네걸 출신 십대처녀 메리 프리엘이 런던으로 일하러 왔다가 불의의 임신을 하게 되고 아기를 출산한다. 그리고 아기를 어딘가에 떠맡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잘 지냈다는 서두가 등장한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 아기가 도대체 누군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겠지.

 

다음 장면에서는 소설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간호사 줄리아 아줌마와 도로시 카터가 어떻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되기 전에 무도회장에서 윌리엄 피어슨 소령을 만나 인내심 없이 결혼에 골인하게 된 줄리아 아줌마는 자신의 임신에 대한 남편의 답장과 전사통지서를 동시에 받는다. 그 줄리아 아줌마네 집에서 둥지를 틀고 살던 카터 집안은 코번트리로 이사한다.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 카터의 아버지는 해군 출신의 강인한 남자로 아내 도로시와 함께 수전과 데이비드를 기르면서 평범한 나날을 살아왔다.

 

열두 살 때 꿈이었던 모든 것을 소장한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된 데이비드는 애버딘 출장길에 우연히 만난 엘리너 캠벨과 편지연애 끝에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결혼 전에 알츠하이머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줄리아 아줌마로부터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듣게 된다. 그러니까 데이비드가 바로 아일랜드 처녀 메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시간의 밀도에 집착하는 남자 데이비드는 말한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그리고 데이비드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흩어진 기억의 파편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다.

 

소설의 한 축에 자신이 누구인가 찾아 헤매는 남자 데이비드 카터가 있다면, 데이비드의 반쪽으로 등장하는 엘리너 캠벨 역시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엄마 아이비의 학대를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입학 허가를 받는데 성공하지만, 데이비드와 결혼하게 되면서 자아를 잃게 되는 과정이 처연하게 그려진다. 캠벨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졸업장을 받을 기회를 받고, 언니 테서처럼 거침없이 집을 떠나왔지만 새로운 곳에서 출발은 상상 속의 그것과 너무 달랐다. 결국 데이비드와 엘리너의 결혼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엘리너의 우울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물관 동료 애너와 바람피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데이비드는 애너 남편의 어이없는 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런 뒤에 박물관장 승진에서 누락되고, 결국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마는 데이비드. 12살 때부터 꿈이었던 자신만의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이제 십대가 된 반항기 넘치는 딸 케이트로부터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는 타박을 받기도 한다. 존 맥그리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어그러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데이비드와 엘리너 사이의 결혼을 그려내고 있다. 뭐 보통의 평범한 삶들이 다 그렇게 가는 거지. 과연 데이비드는 친엄마 메리를 찾는 데 성공할까?

 

개인적으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데이비드가 자신을 길러준 엄마 도로시 카터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3자이다 보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순수한 분노가 이해되지 않았다. 생모를 찾는 그렇게 중요할까?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준 엄마 도로시의 공로는 왜 전혀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걸까?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나 중년이 되어서야 젊은 날의 과거를 후회하는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그런 장면들이 아니었던가. 고리타분하다고 할진 몰라도, 부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소설의 1/3 지점을 통과하면서 <너무나 많은 시작>에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존재 찾기에 나서는 한 남자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이야기에서 출발한 존 맥그리거의 소설 <너무나 많은 시작>은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들 그리고 탈선할 뻔한 삶의 궤도를 바로 잡아가는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하도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니 이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은 마치 조미료가 빠진 그런 집밥 같은 맛이 난다고나 할까. 존 맥그리거의 다른 책도 순차적으로 읽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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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맨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폴 비티의 작품 <The Sellout>이 국내에서 <배반>으로 번역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무지한 독자의 짧은 영어 탓을 해야겠지.

 

오늘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질러 버렸다. 그렇다, 폴 비티의 신간은 알라딘 배송트럭을 타고 열심히 내게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혹시 이웃 반디서점에 깔렸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천만에. 10월 26일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알라딘이 신간 서적의 수급에 있어 다른 서점을 압도한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방심하지 마시라. 여기에 또 맹점이 있나니. 그렇지만 MD의 게으름 탓인지 미리보기 싸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 제현들은 책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난 그럴 수 없다고 선언하고 분연하게 키보드 자판을 박차고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다른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찾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자백하자면 난 지난 3월에 전세계 무료 배송을 한다는 북디파지토리를 통해 폴 비티의 <셀아웃> 원서를 수중에 넣었다. 묵직한 하드커버로. 다만 288쪽에 달하는 그의 책을 원서로 읽을 능력이 되지 않아 첫 페이지들을 읽다가 묵혀 두었다.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읽느라 용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했던가. 그리고 번역이 되어 나오길 기다렸다. 뭐 맨부커상도 받은 작가라고 하니 언젠가 번역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내 바람이 완성되었다.

 

주인공 Me가 미국 대법원 상고심에 소환되었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 <배반>은 출판사 책소개에 등장하듯이 한때 인종의 도가니라 불렸던 미국에서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인종차별을 역설적으로 패러디한 그런 작품이다. 궁금한 것이 과연 백인 작가들이 이렇게 신랄한 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마침 막 읽었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고 있다는 미국 친구에게 물었듯이, 어떤 내용을 써도 모두에게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고 했던가. 인종차별을 반대해도, 그리고 찬성해도 어차피 욕 먹긴 마찬가지라는 게 아닌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 걸 각오해서인지 폴 비티는 욕받이 무녀가 될 각오를 단디 하고 <배반>에 도전한 게 아닐까. 첫 18페이지를 읽으면서 이거 물건이구나 싶었다. 비슷한 인종차별이라는 소재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발표한 콜슨 화이트헤드가 전통에 입각한 내러티브 전개를 구사한다면, 폴 비티는 그 대척점에 서서 인종차별 문제를 저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악명 높은 투 라이브 크루가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주석에 충실하게 그들이 불러서 법정 소송까지 갔다는 <프리티 우먼>을 유투브를 통해 듣기도 했다. 아, 이런 노래도 있었구나.

 


어쨌든 어젯밤에 존 맥그리거의 책을 다 읽고 나서 허탈해 하던 차에, 이렇게 따끈따끈한 책을 바로 만나게 되다니 역시 책과 만나게 되는 운명은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진격의 독서에 오늘밤부터 돌입할 예정이다. 기다리시게나 폴 비티 양반!

 

[뱀다리] 그의 첫 번째 작품 <화이트 보이 셔플>도 대단히 궁금하다. 아마 역시나 특유의 패러디 조롱조의 구조 때문에 점잖은 독자들이 다수 포진한 국내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배반>이 맨부커상의 위상을 뒤엎고 부디 선전해서 폴 비티 씨의 다른 책들도 번역으로 만나보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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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8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 빼고는 올해 맨부커상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아요. 작년에 한강 효과가 컸습니다. ^^;;

레삭매냐 2017-10-18 18:1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강 씨가 받은 상은
맨부커 본상이 아니라 인터내셔널이라 상대
적으로 위상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죠.

결정적으로 제가 지금까지 봐온 맨부커상 수
상작들은 대개 재미가 없었습니다 !!!

게다가 작가들도 생소하니 더더욱 그랬었죠.

그래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올해는 또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네요.

앗, 지금 확인해 보니 바로 발표가 났네요.
바로 작가들의 작가라는 조지 손더스 ~

장편소설 단 한 편으로 맨부커상을 먹었네요.
대단합니다.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 이제 드디어 연휴 때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마지막 책에 대한 리뷰를 쓰게 됐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경건한 마음으로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에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연출의 <남아 있는 나날>을 감상했다. 젊은 날의 휴 그랜트와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의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등장해서 잠시 충격을 먹기도 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영화는 소설만큼이나 그렇게 훌륭했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십 년간, 옥스퍼드셔 달링턴 홀에서 수석집사로 작고한 달링턴 경을 모셔온 스티븐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능한 집사(butler)다. 그의 유일한 관심을 주인님인 달링턴 경을 어떻게 모시고, 그가 초대하는 수많은 저명인사들을 대접하고, 잦은 행사를 무사히 치르는가이다. 그러기 위해서 스티븐스는 마치 제각각 개성이 다른 하인과 하녀들 그리고 조리사들로 구성된 집단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영화에서는 달링턴 하우스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여우사냥에 나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특이하게도 여성들은 한쪽으로 다리를 모으고 말을 타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마 고증을 거친 뒤에 촬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절에는 여성들이 말을 그렇게 탔었구나.

 

물론 수석집사 홀로 그 수많은 직원들을 부릴 순 없다. 그래서 그는 최근이 눈이 맞아 달아난 보조집사와 하녀장의 자리에 자신의 아버지 스티븐스 시니어와 켄턴 양을 배치한다. 스티븐스 삶에서 가장 우선은 주인님의 심기경호다. 그리고 보니 모처의 감옥에 있는 인사 생각이 떠오른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오로지 그의 심기경호에만 전념하다가 결국 주군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시구로 선생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된다.

계급이나 재산 같은 유형의 자산보다 주인을 모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moral statue)라고 스티븐스는 자신 있게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달링턴 경이 사망하고 미국인 갑부 패러데이는 스티븐스의 고용을 승계했지만, 달링턴 하우스에 예전과 같은 흥청거림 혹은 영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대전으로 구질서 자체가 붕괴되어 버린 탓이다. 어쨌든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던 스티븐스는 유능했던 옛 하녀장 켄턴 양의 편지를 받고 들뜬 마음에 재고용 위해 패러데이 주인님의 허락을 얻어 정말 오랜 만에 여행에 나선다. 주인님의 포드차까지 빌려 타고 가다 보니, 들리는 곳곳마다 진짜 신사 취급을 받는다. 문제는 저간에서 느끼는 고 달링턴 경에 대한 야박한 평가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매국노라고까지 하는데, 전쟁 중에 히틀러에 협력한 나치 동조자라는 평가에 스티븐스는 마치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자신은 달링턴 경 밑에서 일하지 않았노라고 선언한다.

 

그러니까 스티븐스 자신도 달링턴 경 삶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자기 삶에 최우선하는 가치로, 주인님을 충실하게 모셔야 한다는 대의는 자신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적 가치 덕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임종도 돌보지 않고, 자신에게 호감이 가지고 대했던 켄턴 양의 애정마저도 무시했던 스티븐스가 말년에 알게 된 달링턴 경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호전적 제국주의자 처칠과는 달리 달링턴 경은 인류애적인 관심에서 독일의 재건과 재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독일외상 폰 리벤트로프의 사탕발림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히틀러가 평화를 원했다고?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당시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는 상당 부분 호응을 얻었던 모양이다. 전간기의 중요한 모임에서 미국 출신 하원의원 루이스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리브가 연회장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독일의 재무장에 부정적이던 프랑스 대표마저 넘어가 버린 마당에, 루이스는 정치와 외교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고한 신분제에 의거한 아마추어 외교관들이 정세판단을 잘못해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 뮌헨 협정 같이 중대한 외교가 달링턴 하우스의 서가 같은 밀실에서 소수에 의해 결정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이시구로 선생은 지적한다. 소설에서 달링턴 경들의 외교관 동료들은 마치 수백만의 무지한 영국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스티븐스를 지목해서, 그가 대답할 수 없는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의견을 묻고 스티븐스의 잘 모르겠다는 대답에 그것 보란 듯이 무시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민주주의와 공론의 장에서 그런 국가적 대사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를 망각한 이들의 정치놀음을 보는 것 같았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그런 인사들이 한 때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국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게 지금에서야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1930년대 독일 이외에 유럽에서 가장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린 나라가 영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이미 오래 전에 조지 오웰이 지적한 대로, 유서 깊은 반유대주의가 영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블랙셔츠 단으로 대표되는 반유대주의에 경도된 달링턴 경 역시 집안 하인들 중에 유대인을 색출해서 쫓아내라는 결정을 스티븐스에게 전달한다. 켄턴 양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하지만, 그녀 역시 스스로를 비겁자라고 부르면서 달링턴 하우스에 잔류를 선택한다. 달링턴 경은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오하게 되지만, 이미 열차는 떠난 다음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주인님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텐데, 스티븐스의 달링턴 경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결국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의견 없이 주인님의 결정에 대한 스티븐스의 맹신이 아니었을까. 엄정한 역사는 사소한 역할을 맡은 이에게도 이렇게 책임을 묻는 모양이다.

 

<남아 있는 나날>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플래시백으로 처리하면서, 동시에 일종의 로드무비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달링턴 하우스라는 공간이 전부였던 스티븐스는 켄턴 양을 서쪽으로 여행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스티븐스에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동력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아버지 스티븐스 시니어처럼 평생 죽어라고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그렇게 죽는 것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인 것이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좀 더 극적인 장치들을 차용했다. 가령 예를 들면, 미국 하원의원인 잭 루이스가 소설과는 달리 달링턴 하우스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다. 켄턴 양 역할을 맡은 삼십대 초반의 엠마 톰슨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스티븐스와 묘한 감정의 썸을 타면서도, 자기가 말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장면에서는 감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옹고집쟁이 버틀러 역할의 앤소니 홉킨스의 열연 또한 일품이었다. 달링턴 경의 대자 역으로 등장한 기자 역할의 휴 그랜트 역시 감초 같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도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있어 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모쪼록 영화를 보게 된다면 부디 원작 소설을 보시고 영화를 보시길. 영화를 먼저 보게 되면 원작에 대한 감상이 훼손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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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래히 2017-10-14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이 먼저 이군요^^

레삭매냐 2017-10-14 23:48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영화가 잘 만들어져도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서기란 버거운 것 같습니다.

<네버 렛 미 고>도 마찬가지구요.

shuai 2017-11-05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라는 표현을 저도 사용했는데 제가 나중에 썼으니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독후에 이런 꼼꼼한 리뷰를 보니 소설을 제대로 복기하는 기분이 듭니다. 영화도 보고싶어지는군요.

레삭매냐 2017-11-05 10:44   좋아요 0 | URL
표절이라뇨 무신 그런 말쌈을 -
공감대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도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원작소설과
다른 점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영화도 한 번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