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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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SF소설에 재미가 든 모양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사냥을 갔다가 예전부터 눈여겨 두고 있던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읽기 시작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콘솔 전문가(해커) 헨리 도셋 케이스가 등장하는 저자의 1984년 작품으로 한다하는 싸이파이 소설상을 모두 휩쓸었다고 한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일본의 지바 시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흐르던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주인공 콘솔 카우보이 케이스(24세)는 2년 전만 하더라도 잘나가던 업계의 전문가였지만, 고용인의 돈을 훔쳤다가 그에 대한 처벌로 모든 신경계가 파괴되고, 그의 밥줄인 글로벌 컴퓨터 네트워크이자 가상현실 데이터베이스 “메이트릭스”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당시 신경외과 기술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손상된 신경을 회복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돈만 날리고 거리의 싸구려 청부업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중이다.

 

물론 작가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에게 기회를 한 번 준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설작법의 순서일 것이다. 아미티지와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그의 신경계를 회복시켜 주는 대가로 모종의 미션을 수행할 것을 종용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줄 필요가 없다, 역시 충실하게 공식을 따른다. 어쨌거나 나락으로 떨어진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가 자신을 완벽하게 고쳐 준다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제안을 마다할 리가 있나. 첫 번째 꼭지에서는 그런 배경설명과 상황 설정을 뒤로 하고, 신경외과 수술을 마친 케이스가 부활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윌리엄 깁슨은 케이스에 이어 그를 조종하는 또다른 문제적 인간 아미티지/윌리스 코르토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직 군사요원인 아미티지는 “스크리밍 피스트” 작전에 참가해서 소련의 컴퓨터 시스템을 분쇄하는 임무에 투입되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그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는 비극을 겪는다. 자신도 실명하고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정부 요원에 의해 치료 받은 뒤 암흑세계로 잠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인간을 조종하게 된 쌍둥이 인공지능(AI) 윈터뮤트와 뉴로맨서의 사주를 받아 케이스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맥코이 폴리의 ROM을 탈취하면서 엄청난 인명피래를 가져온 사건을 벌이게 된다.

 

사실 SF소설 <뉴로맨서>는 저자 윌리엄 깁슨이 창조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제대로 읽고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부끄럽지만 위키피디아 영문 <뉴로맨서> 부분의 플롯을 참조하면서 팔로우업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의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의 전체적 전개를 놓치기도 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국가권력기관인 정부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업(테시어 애시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뉴로맨서>는 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미래관을 보여준다. 많은 SF소설이 그리고 있듯, 과연 미래의 하이테크의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반복해서 묻게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류를 능가하게 되는 시절이 온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시절에도 과연 인류는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는 있는 걸까.

 

다시 소설로 돌아가 싸이버펑크 걸작물답게 불멸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설립된 테시어 애시풀의 슈퍼 인공지능 윈터뮤트가 바로 아미티지의 뒤에서 케이스 일행을 조종한 배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장애물들을 없애고, 쌍둥이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결합하기 위해 인간의 피조물인 윈터뮤트가 역설적으로 인간을 조종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케이스 일행은 이스탄불에 들러 도둑이자 홀로그래픽 아티스트이기도 한 피터 리비에라를 영입하고, 테시어 애시풀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이라이트 빌라에 침투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마지막 미션에 도전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느낌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메이트릭스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들의 현란한 무용담과 스타일에 빠져 들다 보면, 내러티브가 실종되고 반대로 내러티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길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4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기엔 정말 세련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발표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윌리엄 깁슨의 원작은 영화 <코드명 J>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준 바 있다.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공각기동대>의 그 유명한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의 원형이 분명해 보이고, 키애누 리브스 주연의 <메이트릭스>도 대놓고 깁슨의 아이디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드디어 <뉴로맨서>의 영화화가 발표되었는데 과연 21세기 사이버 주술사의 혼돈에 가득찬 이야기가 영화화될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소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인도의 어떤 이는 이 소설의 각 장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박사 논문을 다 썼을 정도였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쓸 당시 컴맹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이버스페이스 개념과 메이트릭스를 이용해서 현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거의 사이보그 혹은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복제인간 그리고 인체공학 기술을 접목시킨 신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신경계가 파괴된 주인공 케이스를 부활시킨 하이테크 기술과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의 경우를 보자. 전자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불멸의 단계로까지 격상시킨 바이오테크의 개가라고 한다면, 후자는 불멸의 중간단계라고나 할까. 냉동인간, 클론, 대기업 네트워크 해킹 당시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둘씩 현실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이야기들이 주르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윌리엄 깁슨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년 전에는 지금은 한물간 모 정치인이 대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깁스의 문구를 인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책읽기에 급급해서 과연 내가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중에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원작에 나오는 스타일에만 집중하더라도 대성공을 거두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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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2-22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초반부 읽다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고 내내 눈에 띄는게 왠지 그래서 알라딘 중고로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읽으셨군요 대단하세요.
쓰잘데없는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레삭매냐 2018-02-22 18:0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저는 나름 초반에는 재밌게 읽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길을 잃게 되더라구요.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 - 멸종위기 동식물이 당신에게 터놓는 속마음 만화에세이
녹색연합 지음, 박문영 만화 / 홍익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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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 근처에 맹꽁이들의 서식처가 있다. 녀석들은 주로 밤에 활동하는지 선선한 여름밤 녀석들이 군거하는 곳을 거닐다 보면 맹꽁이들이 즐겁게 우는 소리가 아주 상쾌하게 들린다. 이번에 읽은 녹색연합에서 펴낸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바로 그 맹꽁이가 우리의 환경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환경지표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래도 우리 동에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꼬맹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덩달아 주변 동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동물들을 좋아했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방법, 아마 녹색연합 분들이 보면 기겁을 하시겠지만,으로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꼬맹이 덕분에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도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남방돌고래들의 수중공연을 보러 가곤 했었다. 남방돌고래들의 현란한 공연을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렇게 갇혀 있는 것보다 자연에서 뛰노는게 훨씬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긴 그런 생각이 어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걸까?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는 처지의 수많은 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 인류가 개발해낸 발명품 중에 동물원 만큼 인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도 드물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실린 다양한 에세이들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육식을 줄이기 캠페인 같은 부분은 좀 불편했다.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에는 공감하는 바도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사실 문제가 되는 건 현대에 개발된 공장식 축산이 문제지, 육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식으로 축산이 이루어지고,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살을 찌우고 비참하게 도살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 게 옳은 게 아닐까? 하긴 푸른 초장에서 뛰어 놀던 녀석들을 사려면 배나 비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게 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 생각에 반대한다. 물론 그렇게 매일 같이 고기를 사 먹을 돈도 없긴 하지만.

 

지난 세기의 뛰어난 아인슈타인이 지적했듯이, 꿀벌이 멸종한다면 우리 인류도 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왜 이렇게 나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1년 전에 읽은 마야 룬데의 <벌들의 역사>는 지구별에 벌이나 나비가 멸종되면, 그들이 하던 수정이라는 중요한 작업을 인류가 직접 해야 한다는 비극을 그린 소설이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지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과일이나 모든 종류의 채소 그리고 곡식도 그들의 노고가 없다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인공 수정을 위해 과실수에 매달려 붓으로 직접 수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상만 해도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읽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전기나 잘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용기들에 대한 사용을 자제하고, 좀 더 재활용에 신경을 쓰자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좀 더 귀찮더라도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 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고, 나무젓가락 보다는 쇠젓가락을 사용해야 하자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문제는 이상과 실천 사이의 괴리다. 다른 사람의 뭘 그렇게 까다롭게 사느냐는 핀잔보다 귀차니즘이 더 문제가 아닐까. 아울러 나 하나 아끼고 줄인다고 해서 대세에 무슨 영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줄여 나간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자연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같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들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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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반양장) 렘 걸작선 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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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순전히 절판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오멜라스 그 세 번째 작품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이고. 정말 <사이버리아드>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패러디와 블랙유머로 점철된 사이버펑크 시대 유머의 절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진중하면서 묵직한 울림이 있는 주제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고나 할까.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굳게 닫힌 문 뒤에 존재하는 어두운 미로와 비밀스런 장소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와 다른 문명을 이해하려고 우주로 진출했다. (222쪽)

 

이야기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거대한 원형질로 구성된 “생각의 바다”가 있는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 외계심리학자 주인공 크리스 켈빈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인류는 분명히 외계 어딘가에 인류와 같은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주탐사에 나섰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우리의 내부조차도 모르는 인류가 어떻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소통하는 법을 가진 미지의 외계생명체와 조우하겠다는 건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다. 아마도 우리 인류는 우리가 가진 방식대로 그들과 소통하려고 들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19세기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동양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질서를 강요하던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쩌면 인류의 우주탐험은 시작에서부터 일방적 소통 혹은 상대가 원하는 않는 방식으로의 소통이라는 난제에 봉착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솔라리스>를 읽으면서 느낀 점 하나가 이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다른 하나는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접촉이 다른 하나의 축을 차지한다. 소위 그에게 ‘방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방문자의 정체다. 우주탐사의 모든 출발점은 지구다. 지구에서 출발한 인류가 우주비행을 거쳐 모선 프로메테우스에서 솔라리스 스테이션으로 이동하게 되는 과정인데, 켈빈이 스테이션에서 만나게 된 인물은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존재로 바로 십 수 년 전에 죽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레야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은 바로 거대한 원형질의 바다가 스테이션의 과학자들이 X-선으로 생각하는 바다를 자극하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솔라리스의 바다가 바로 크리스 켈빈과 스노우 그리고 사토리우스들의 기억을 참조해서 ‘방문자’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기억에 근거한 재창조(re-creation)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진짜를 대신하는 복제된 방문자들이 스테이션의 어느 곳이라도 침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야를 처음 만난 켈빈은 그녀를 우주선에 가두어 쏘아 올리지 않는가. 하지만 잠에서 일어나 보니 다시 자신의 곁에 와 있는 레야, 뭐 이 정도면 충분히 호러급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복제인간의 창조라는 점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외부와의 교신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스노우와 사토리우스 그리고 죽은 기바리안이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크리스 켈빈은 130년 남짓된 솔라리스학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잔존한 자료들이 그를 혼돈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사실 그 부분에서는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은 맡은 영화에서는 <솔라리스>가 스페이스 로맨스로 부활했다고 하는데,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영화가 되어 버렸다는 전언이다.

 

인간이란 그 누구도 절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 내지 상황을 적든 많든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순간적인 착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광기의 산물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만 있던 그것이 어느 순간 피와 살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지. 문제는 그게 전부야. (104쪽)

 

한 집단으로서의 과학자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몇 세대에 걸쳐 헌신적으로 일해온 사실. 지적 생물과의 접촉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희망. 인류의 긴 역사와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리의 확신. 그리고 인류의 사명을 위해 어떠한 개인적 희생과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우리의 결의...... 당신이 의식해야 할 사항은 이런 것들이오. (227쪽)

 

켈빈은 레야가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 기억 속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어쩌면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솔라리스>는 바로 이 점에 방점을 찍었던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소설화시킨다. 충격, 현실부정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의 수용. 레야 역시 자신이 켈빈이 사랑했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지구에서와 같은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액체 산소를 들입다 마시지만 그녀는 죽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과정 속에서, 켈빈은 레야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생성하기에 이른다.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감정 대신, 그 사실을 수용하게 되자 켈빈은 자신이 만들어낸 감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걸까. 스타니스와프 렘은 정말 개인의 사적 감정으로부터 시작해서 과학자들의 윤리문제 그리고 인류의 거시적이고 근원적 질문에 이르는 방대한 컨텐츠들을 소설 <솔라리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외계에서 미지와의 조우한 인간이 느끼는 혼란한 감정의 바탕 위에 인류가 가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수놓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보면 결말에 등장한 스노우와 켈빈이 토론하는 불완전한 신에 대한 형이상학이야말로 <솔라리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 위에 결국 인간은 유한한 필멸의 존재라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까지 얹는다면 화룡점정일 것이다.

 

내가 만난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는 정말 아름답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책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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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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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월의 독서는 아마도 SF소설과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노변의 피크닉>으로 시작된 나의 싸이파이 소설 독서여정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를 거쳐 시간 여행을 떠나 중생대 공룡들과 만나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야심차게 출발한 오멜라스 시리즈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지난 주말부터 오멜라스 시리즈 수집에 나서게 됐다. 스타니스와프 렘에 이어 두 번째 나의 오멜라스 도전작이 바로 캐나다 출신 로버트 제임스 소여의 <멸종>이다. 그런데 읽기는 <멸종>을 먼저 읽었네.

 

싸이파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시간 여행일진대, 거기에 6,500만년 전 과거로 돌아가 공룡과 조우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기발하지 않은가. 보통 우리는 운석충돌로 인해 지구상에 번창하던 공룡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가설을 신봉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런 이론에 반기를 든다. 소설의 주인공 고생물학자이자 공룡 매니아이자 전문가인 브랜든 새커리 박사(41세, 터론토 교외 미시사가 거주)와 마일즈 조던(클릭스) 교수가 과거로 돌아가 보니 달도 두 개나 떠 있고, 무엇보다 중력이 지금보다 절반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브랜디는 현재의 중력 G1보다 상대적으로 중력이 반절 밖에 나가지 않았고, 그래서 공룡들이 그렇게 커다란 덩치를 유지할 수 있었노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단한 가설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 <멸종>에서 적어도 로버트 제임스 소여는 자신이 신봉하는 중력 때문에 공룡에 몰살했다는 가설을 주장하기 위해 소설을 쓴게 아닐까 싶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운석대충돌설로 한때 지구상에 번성했던 공룡들이 떼죽음당했다는 가설을 믿고 있는 마당에, 소여 작가의 가설은 흥미로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소설에서처럼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해서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것들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싸이파이 소설들이 그렇듯, 소여도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시간 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리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위험요소들에 대한 자세한 방법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다. 사실 아무리 싸이파이 매니아라고 하더라도 그런 부분에까지 신경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왜 더 가까운 과거가 아닌 그렇게 오래된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가까운 과거일수록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는 가설로 적당히 퉁친다. 사실 우리는 6,500만년 전 같은 먼 과거보다는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숨쉬는 십년 전 같은 가까운 과거를 탐내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부분들은 충분히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어쨌든 뭐 그 정도면 약과다. 소여 작가는 과거 시간 여행 탐험에 또 한 가지 요소를 첨부한다. 그러니까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자신이 꼬박꼬박 쓰는 일기를 현재의 브랜던이 읽게 된다는 설정이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현재의 자신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그중에서 그가 가장 돌리고 싶어하는 일은 바로 사랑하는 아내 테스를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인 클릭스에게 빼앗기는 걸 막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허점 중의 하나는 아무리 예산부족으로 햄버거 모양의 스턴버거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지만, 최소한의 호신을 위한 무기들은 충분히 갖췄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브랜디와 클릭스는 과거로 가자마자 흉폭한 티렉스와 기타 공룡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과거 시간 여행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건 공룡 군단이 아니다. 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적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젤리 모양으로 조종이 가능한, 다시 말해 노예로 사용할 수 있는 숙주를 찾아다니는 화성인 헤트들이었다. 이 녀석들은 공룡 속으로 침투해서 성대로 지구인들과 대화에 나서기도 한다. 게다가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어 지구별의 중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중력 억제 위성’으로 조종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살던 화성과 비슷한 중력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장비들이 결국 그들의 몰락의 계기가 된다는 점도 역시나 아이러니하다. 아, 이런 기술적 디테일이라니!!!

 

이미 여기까지 쓰면서 다수의 스포일러를 제공했지만,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하나 제시하겠다. 화성인들의 정체는 바로 바이러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지구 대표들인 브랜디와 마일즈의 고군분투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향하려는 그들의 계획을 분쇄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RNA에 화학적으로 각인된 대로 숙주를 지배하려는 헤트들은 인플루엔자나 소아마비, 감기 그리고 브랜디의 아버지를 죽이고 있는 암으로 살아남아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로버트 제임스 소여의 <멸종>에는 싸이파이 소설 팬들이 좋아할 만한 거의 모든 요소들을 균형있게 잘 장착하고 있다. 시간 여행(타임머신), 공룡 그리고 외계인과의 조우. 그리고 당연히 지구정복을 꿈꾸는 외계인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전제와 더불어 브랜디의 개인적 고민인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는 테스를 친구 클릭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그런 설정까지 다양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공룡멸종에 대한 중력 가설에 대한 주장을 놓치지 않는다. 브랜디는 친구 마일즈의 패기 있는 성격을 칭찬했는데 어쩌면 나는 로버트 제임스 소여의 그런 뚝심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거기에 무신론자로 보이는 브랜디가 신에게 호소하는 장면도 백미였다.

 

아무래도 24년 전에 나온 소설이라 현재의 첨단기술이 주는 그런 디테일은 부족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싸이파이 소설이 지향하는 지점을 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의 가치가 느껴졌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었으니 금상첨화.

 

아, 나의 이제는 모두 절판되어 구할 수 없게 된 오멜라스 북들에 대한 사냥은 계속된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부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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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1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점에서 오멜라스 출판사의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최근에 정말 운 좋게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를 득템했어요. <솔라리스>도 소장하고 싶은 오멜라스 출판사의 책 중 한 권입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구판의 중고가가 어마어마하더군요. ^^;;

레삭매냐 2018-02-14 22:1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전국 램프의 요정 중고서점에서
오멜라스 책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더라구요.
다행히 저희 동네 서점에 두 권이 입고돼
있어서 바로 데려왔습니다.

<솔라리스>는 일단 오늘 도서관에 가서
빌려 왔습니다. 일단 읽고 나서 천천히
사냥에 나서려구요.

기다리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더라구요.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도 결국 샀습니다.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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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이언 머과이어의 소설 <얼어붙은 바다>에서 포경선 볼런티어호에 탑승한 선원들은 고래잡이에 나선다. 최소한 얼어붙은 북빙양에는 고래가 살고 있다는 것이리라. 책을 읽어 보면, 고래와 바다표범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 분노 그리고 채울 수 없는 갈급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존의 여러 채널을 통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다 알고 있던 터라, 독서는 확인사살에 가까웠다. 지금 읽기 시작한 책들이 하도 여러 권이라 좀 헷갈리지만 그래도 가장 읽고 싶었던 책부터 먼저 읽기로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항구도시 헐을 출발해서 그린란드로 가는 포경선 볼런티어 호에 탑승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스케치로 이언 머과이어 작가는 소설을 시작한다.

 

문제적 인간 하나, 그의 이름은 헨리 드랙스. 볼런티어 호의 작살수로 냉혈한 캐릭터의 주인공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주로 폭력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형이다. 문제적 인간 둘, 아일랜드 캐슬바 출신으로 열대의 나라 인도에서 세포이 전쟁을 겪고 본국으로 돌아온 퇴역 군의관 패트릭 섬너다. 보통 돈이 필요한 의대생들이나 탑승하는 선박의로 지원한 저의에 대해 모두가 궁금해 한다. 머지않아 들어나게 되지만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연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 신세다. 게다가 아편중독이라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지니고 있다. 볼런티어호를 침몰시켜 보험금을 타내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가진 선주 제이컵 백스터에게 고용된 섬너는 앞으로 그의 앞에 펼쳐질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지나친 낙관만 가진 채 볼런티어 호에 탑승을 결정한다. 책이나 읽고 글이나 좀 쓰면서 그 좋아하는 아편을 실컷 즐길 수 있는 유급휴가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해빙이 넘실거리는 북해 바다에서 볼런티어 호의 선원들은 잔혹한 바다표범 사냥에 나선다. 오로지 돈으로 환산되는 바다표범 가죽을 얻기 위해 성체와 새끼할 것 없이 뱃사람들은 잔혹하게 라이플과 곤봉을 휘둘렀다. 섬너는 동료들과 함께 바다표범 사냥 중에 사고로 해빙에 빠져 익사할 뻔한 위기도 겪지만 이등 항해사 미스터 블랙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자그마치 세 시간 동안이나 부빙에 갇혀 있다가 살아나다니,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다. 물론 나중에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워밍업이라고나 할까.

 

바다표범 사냥에서 보여주는 선원들의 야만적 행위는 앞으로 벌어질 비극의 전조처럼 다가온다. 13세 소년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것이다. 북빙양에 외로이 떠있는 포경선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38명의 선원 중에 범인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한다. 능수능란한 작가 이언 머과이어는 이런 이야기 속에 주인공 패트릭 섬너에게 델리에서 있었던 과거도 슬쩍 끼어 넣는다. 인도 델리에서 벌어진 세포이 전쟁 와중에, 보물 약탈에 눈이 멀어 수석군의관 코빈과 작당해서 보물찾기에 나섰다가 동료들은 모두 적군의 매복에 걸려 죽고 자신도 부상당해 구사일생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자신의 상관 코빈이 의료현장에서 이탈한 섬너의 구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불명예제대하게 된 섬너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게 섬너가 볼런티어호에 승선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배신과 음모가 휘몰아치는 세상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전직 군의관 섬너에게 포경선에서 이루어지는 순수한 노동이야말로 적격이었다. 섬너는 여가 시간에는 <일리아드>를 읽었다. 이언 머과이어 작가는 철저한 고증으로 마치 눈 앞에서 거친 고래잡이를 보는 듯한 리포트와 세포이 전쟁 당시의 처절한 현장을 시각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작가가 준비한 이야기들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술술 돌아간다. 결국 진짜 살인범이자 남색자로 밝혀진 헨리 드랙스의 난동으로 선장 브라운리가 사망하고, 일등 항해사 마이클 캐번디시가 볼런티어호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어지는 난파와 조난의 과정이 무서운 속도로 전개된다. 자신의 생명줄 같았던 아편이 든 짐 상자를 잃어버린 섬너는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눈보라가 치는 혹한에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독자는 어쩌면 양심적 의사 섬너의 생환을 적극적으로 응원할 지도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는 무심한 사나이다. 그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헨리 드랙스와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확실히 이언 머과이어의 소설 <얼어붙은 바다>는 충분히 흥미롭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바다표범과 고래사냥에 나선 포경업자들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세포이 전쟁에서 보물약탈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남는데 성공한 섬너의 이야기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래잡이 부분에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아우라를 자랑하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독일 출신 작살수 오토와의 대화도 멋졌다. 선은 악의 부재한 결과라는 패러프레이즈는 또 어떤가. 과연 패트릭 섬너에게 선(virtue)을 적용시킬 수 있을까? 그냥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절 지식인의 양심적 모습이 아닐까.

 

제국주의 자본가들에게 고래/바다표험 혹은 인도의 민중들은 오로지 착취의 대상으로만 비칠 따름이다. 내가 아닌 피아를 모두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분명 살인적 바다를 상대하는 선원들의 입이 상대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필요이상으로 거친 언어들(아마 번역 와중에 순화되지 않았을까 싶다)이 쓰인 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아마 어쩌면 그런 점들도 현대 독자들을 고려해서 이언 머과이어가 기술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얼어붙은 바다>는 맨부커상 최종심에 오르고 뉴욕타임즈에서 그해의 베스트 10에 올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재밌기도 하다. 만사를 제쳐 두고 책읽기를 마치지 않으면 다른 걸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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