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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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의 도서 수급능력은 정말 알아 주어야 한다니깐 그래. 2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 줄이야. 나보다 먼저 빌려간 사람이 있어 바로 예약을 걸었고, 딩동하고 어제 문자가 도착했다. 책이 도착해 있으니 냉큼 와서 가져가란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했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는 우선 순위가 좀 밀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이 소설의 작가가 진정 할머니 킬러가 등장하는 <파과>를 쓴 사람이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다. 확실히 최근 트렌드를 저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작가의 역량 혹은 임무 같은 추상적인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름지기 작가란 동시대의 무언가를 자신의 글을 담아야 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는 난민 이야기도 좀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또 엉뚱한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 오른다.

 

<네 이웃의 식탁>은 실패를 전제로 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일단의 사람들의 육아실험이 주를 이룬 소설이다. 국가에서 변변찮은 비용을 들여 만든 전세 난민들을 위한 주거지가 있다고 한다. 한자락하는 사연을 품은 이들이 부나방처럼 공동주택으로 모여 든다. 문제는 아이 셋을 기본적으로 낳아야 한다는 거다. 하나도 버거운 판에 셋이라고? 정말 출산지도 같은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니던가. 부부 사이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판에, 서로 전혀 다른 이해관계와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툭툭 튀어 오르는 분노와 개성을 고이 접어 두고 오직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빤히 보이는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 거라는 설정 자체가 문제였다.

 

육아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홍단희 아줌마는 아들 둘을 둔 전투형 투사로서 공동육아의 지침과 계획, 실행을 도맡아 처리한다. 잘 나가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 신재강 씨는 포드 자동차를 몰며, 차고장 핑계로 카풀을 하면서 새로 입주한 요진 씨에게 교묘한 방식으로 집적거린다. 신재장 아저씨가 사다준 명품 브런치백에 들어있는 맛난 요리가 주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유혹에 그만 깜빡할 뻔하기도 한다. 약국 카운터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 전은오 씨는 영화판에서 입봉을 기다리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지망생으로 가계엔느 젬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러 출근한 아내 대신 육아와 살림을 잘 하냐면 물론 그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잉여 같은 존재로 속병을 유발시키는 존재다.

 

이제 나머지 두 집이 남았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프리랜서 동화작가로 일을 그만 두지 못하는 조효내 씨는 처음부터 공동육아 집단에 이질적인 존재였다. 리더 홍단힁 아줌마와 요리 전담 강교원 아줌마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힌 지 오래다. 그리고 보니 그녀의 남편 상낙 씨야말로 소설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나.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계약 조건 대로 충실하게 세 번째 아이까지 임신한 교원 씨는 속칭 맘충이(이런 표현을 하시는 걸 용서해 주시길)로 없는 살림에 아나바다하며 어떻게든 가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하지만, 어느날 공동육아 집단을 떠들썩하게 하는 격한 전투 끝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뭐 그 정도야. 우리 윗집에서는 매일 같이 피튀기는 전투와 고성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리고 보니 공동주택에서 전투는 가급적이면 사양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수면 시간 전인 7시나 8시에 일찌감치 시작해서 두어시간 하시고 마쳐 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아니면 오밤중에 이슈에 대해 상호간에 토론배틀과 묵상 끝에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소설은 처음 기대했던 궤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공동육아 실험이라고 했던가. 실험은 자고로 실패하기 마련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문제일 뿐.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런 실험의 실패는 이미 전제된 조건이 아닌가. 요진 씨가 이웃의 경계를 살짝살짝 넘나드는 신재강 아저씨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던 것처럼, 가족도 돌파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공동육아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 이웃들에게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네 이웃의 식탁>에는 정말 요즘 핫한 다양한 이슈들이 성찬으로 잘 차려진 느낌이다. 전세 난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심각한 거주 문제부터 시작해서, 무엇보다 가정생활에 활액을 제공하는 경제 문제들. 누가 돈을 벌며, 양육과 가사의 노동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임신과 출산으로 자아를 죽이며 사는 엄마빠들의 고민들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최소한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어쩌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하긴 우리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에 도달할 수가 있었지. 올챙인 개구리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결국 내 새끼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일까. 서구 사회에서 국가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워 준다는 판타지에는 열광하면서, 지금 당장 소주 한 병값 만큼 담배 한 갑 만큼 혹은 별다방 라때 한 잔 만큼 건강보험료를 올리고 증세해서 복지재원을 마련하자는 말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세금폭탄이라며 반대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하는가 보다. 고만 떠들고, 애나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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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7-05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도착해 있으니 냉큼 와서 가져가라는 문자 저도 받고 싶습니다 ㅋㅋㅋㅋ 🤣

레삭매냐 2018-07-05 13:43   좋아요 1 | URL
어제 빌려서 오늘 다 읽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또 책이 예약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냉큼 반납했습니다.

역시 인기가 있는 책은 다른가 보네요.
 
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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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둔 책인데(무려 3년 전에!) 나의 서가에서 읽히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에야 비로소 책장에서 빛을 보게 됐다. 마리오 베네데띠, 처음 들어보는 우루과이 출신 작가라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퇴직 7개월을 남긴 49세의 홀아비 마르틴 산토메가 일년 남짓 기록한 퇴직 일기로 우리는 그의 삶과 대면하게 된다.

 

자칭 허름한 자동차 부품 수입회사에 다니는 마르틴은 아내 이사벨과 사별하고, 남은 세 명의 자녀들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과의 불통은 일상이다. 언제나 그렇듯. 왜 소설에서 자녀들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도 등장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마르틴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직장과 사회에서 고군분투해 왔지만, 자신에 행복에 도움이 되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마 대답할 자신이 없지 않을까. 심지어 강압적이었노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은퇴를 목전에 둔 마르틴 부장님에게 회사의 경영상태를 나타내는 수치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부분을 읽는데, 왜 그렇게 절절하게 공감이 되던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의 꼰대 부장님은 자신에게 배당된 신입 직원들의 성향과 외모로 엉큼하게 판단하기도 하고, 근무 시간에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평가하기도 한다. 선을 지키는 홀아비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 지 몰라 섣불리 평가하기도 그렇다.

 

난 살아오면서 도대체 뭘 한 걸까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 수록 재밌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마르틴 산토메의 일기를 통해 독자는 그의 삶을 반추해 보게 되는 것이다. 21년 전에 요절한 아내 이사벨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는 다 자란 아이들의 심정에 대한 묘사, 느닷없이 등장해서 마르틴의 삶 속에 뛰어든 어린 시절 친구라는 아도낀 비그날레를 사랑하는 처남댁 이야기 등등. 몇 푼 안되는 회계 장부의 오차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부하직원들에게 야근을 지명했다가 곤경에 처하는 장면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해서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신인 보조직원 아베야네다 양과의 관계가 전면으로 부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 치정이 빠지면 소설이 재미가 있나 그래. 자신의 딸인 블랑카와 비슷한 또래에 대해 연정을 품다니 양심도 없는 중년 같으니라구.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마르틴 아저씨가 엄청 어린 연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고, 위기로 치닫던 가족 관계 역시 일대 전환을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 놀라운 전개로군.

 

62쪽에서 사무실 직원 산티니 보고 “왜 여태 사무실에 호모가 없나 했어”라며 자조하던 마르틴의 가족 역시 성적 정체성의 위기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죽은 아내 이사벨을 가장 닮은 막내 아들 하이메가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닌가. 1950년대 말을 살던 어머니 역할마저 감당한 가부장적 이미지의 아버지 마르틴은 당연히 커밍아웃을 한 아들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용서할 수도 없다. 무신론자이기에 아마 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겠지. 물론 이런 일종의 사적 포석들은 훗날 그가 진짜 대면하게 되는 비극의 전조였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기 보다 시에 주력했던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은 좀 이른 은퇴를 목전에 둔 중년 남자의 삶의 위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내는 임신중독증으로 오래 전에 죽었고, 아들 놈 하나는 커밍아웃을 하고 집을 나갔으며, 마초 큰아들과의 불화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젊은 여직원과의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어가는 관계 역시 문제다. 되돌릴 수 없는 젊음에 대한 미련은 라우라 아베야네다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거라는 전망에서부터 비롯된다. 젊은 연인을 위해 그 어떤 약속을 해줄 수도 없다는 현실적 문제. 그나마 블랑카는 사랑에 빠진 아버지를 이해해 주지만, 어머니의 부재 가운데 게이가 된 막내아들 하이메는 아버지가 ‘호린’ 젊은 새엄마 후보를 비난하면서 가출해 버리지 않았던가. 자자,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과연 마리오 씨가 어떤 결말로 우리들을 인도할 지 궁금해질 것이다. 충격적인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부디 읽어 보시길. 소설이 클리셰이로 접어들 무렵, 작가가 준비한 거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한테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이에요. (145쪽)

 

진짜 멋진 고백이 아니던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청춘을 회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경험 많은 남자에게 이런 고백만한 게 있을까 싶다. 우리의 염세주의적 몽상가 마르틴 아저씨는 어떤 비극을 맞이한 후, 더 이상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원제 <La Tregua>는 “휴전”이라기 보다 다른 뜻인 관계의 중지 혹은 은퇴를 상징하는 휴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굉장히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진짜 멋진 소설이다, 주위에 권해 주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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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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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퍼붓던 비가 멈추고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모양이다. 아침 출근길에 어찌나 덥던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어쨌든 여름이 왔고,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좀 부진했었는데 이달에는 출발부터 산뜻하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어 대고 있으니까.

 

문제적 독일 작가 크라흐트의 <파저란트>를 3일 만에 읽었다. 1995년에 발표된 <파저란트>의 주인공 나는 쥘트 섬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해서, 그 망할 놈의 바버 재킷을 걸치고 함부르크, 뮌헨, 하이델베르크, 린다우와 스위스 취리히에 커버하는 숱한 곳을 여행한다. 그렇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었지. 알코올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술을 들이키면서.

 

소설 <파저란트>의 화자가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뭐랄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풍류를 아는 한량이라고 해야 할까. 쓰임새와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이 아닐까. 특정한 일자리에 매어 사는 사람이 주인공처럼 시간에 대한 제약 없이 독일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가는 곳마다 알렉산더니 나이젤 그리고 롤로 같은 아는 사람들이 있어 잠자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쥘트 섬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다니는 유사 여자친구 카린과 고티에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기차를 잡아타고 함부르크로 떠나질 않나. 그야말로 보헤미안 라이프의 전형을 주인공은 제시한다. 물론 가는 곳마다 알코올이 빠지지 않는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지 약물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신, 어린 시절 첫사랑 여자친구 집에 갔다가 지나친 환대에 그만 실수를 하고 내뺀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갖은 공상 속에서 주인공은 부유한다. 한 마디로 말해 도무지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둥둥 떠다닌다고나 할까.

 

커피도 마시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단다. 대신 음악에는 좀 조예가 있는 듯 싶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모던 토킹에서부터 시작해서 클래시 등등. 그가 가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룬의 야운데니 다카, 포트모르즈비 같은 지명은 또 어떤가. 그는 글로벌화된 패션세계의 진화처럼 다양한 소비재로 포위된 21세기 호모 컨슈머티쿠스의 전형처럼 다가온다. 지난 세기에는 내가 읽은 것이 나를 규정했다면, 이번 세기에는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규정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긴 그리고 보니 책도 일종의 소비재가 아니었던가.

 

카를스루에로 가는 기차간에서 만난 재수 없는 놈 때문에 느닷없이 하이델베르크에 내리는 충동적 경험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거기서 난생 처음 만난 오이겐 일행과 합류해서 자신을 환대해주는 그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을 동성애 대상으로 생각한 오이겐에게 질겁을 해서 당장 달아나기도 한다. 아, 그전에는 지하실에서 조우한 마약쟁이 나이젤의 주삿바늘 때문에 공포에 떨기도 했던가.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 가는거지. 아무래도 데카당스한 것이 독일 통일 이후, 한 세대를 휩쓸었던 니힐리즘의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리드리히하펜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린다우인가 하는 곳에서 만난 막대한 유산상속자 롤로는 옴므 파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장을 잘 빼 입고 물 흘러가듯 유려하게 진행되는 파티에서 주인공은 역시나 파티원들과 융화되지 못한다. 그는 파티를 연 롤로 역시 마찬가지라고 정확하게 파악해 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 파티원들이 사랑하는 것은 롤로가 가진 물질이지, 그가 가진 인품이나 성격 같은 캐릭터는 아니란 것이다. 피상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파티라는 모임이 주는 위선의 쇼라고나 할까. 아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

 

롤로의 포르쉐를 훔쳐서 타고 마지막으로 달아난 곳은 바로 취리히다. 주인공이 결국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곳들은 바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독일어권이 고작이란 말인가. 과연 주인공에게 ‘파저란트’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싶다. 토마스 만의 묘지를 찾겠다고 나선 그의 모습에서는 오래전에 갔던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납골당을 찾아 헤매던 나의 모습에 연상됐다. 그리고 아마 헌화는 짐 모리슨에게 했었지. 바로 옆에서 발자크에게 헌화하던 미국 아줌마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만 그런 좋은 기억 대신, 뜨거운 똥을 싸질러 대는 멍멍이가 자신의 용변 장소로 고른 곳이 어쩌면 토마스 만의 묘자리가 아닌가 하는 상상에 그만 빵 터져 버렸다. 크라흐트 이 친구, 유머감이 아주 없진 않구만 그래.

 

이제 내가 읽어야 하는 크라흐트 작가의 책은 <제국> 하나가 남았다. 출간 당시, 인종주의 문제가 이슈가 되었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서구인들이 제3세계를 기술한 작품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주인공의 여정을 소설에서 뒤쫓다 보니 문득 독일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다시 가게 되면 처음 못지않게 맥주를 마실 수 있으려나. 기본이 1,000CC라니 그건 좀 버겁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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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리커버 에디션)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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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아버지 창피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정하고 싶은 그런 존재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얼마든지,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었던 아버지는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자비를 들여 장만한 어릿광대 분장 도구와 교통비를 들여가며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걸까.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 소설은 프랑스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명명된 모리스 파퐁 심판정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어릿광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릿광대는 바로 주인공 나였다. 어릿광대를 아버지를 그토록 수치스러워 하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어찌해서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대중 앞에 서게 되었나.

 

그 이유를 독일 군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러 갔던 날, 가스통 삼촌이 들려준다. 나치가 프랑스 전역을 점령했던 1942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레지스탕스 소속이었던 스무살난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통은 전기공으로 변장하고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장 물랭이나 로맹 가리처럼 불타는 애국심으로 조국을 위해 싸운 이들이 아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레지스탕스 활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쿨한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나치들에게는 테러행위로 보이는 변압기 폭파사건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몰랐다는 점이다.

 

얼마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요격하기 위해 동부전선에서 악명을 떨친 기계화친위사단 다스 라이히가 프랑스 북부로 향하던 중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오라루드 쉬르 글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자신들의 지휘관이 레지스탕스에게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된 다스 라이히 부대원들은 무려 천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했다. 인질로 잡은 프랑스 시민들을 거리의 가로등에 매달아 죽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앙드레와 가스통의 운명도 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축구 경기에서 자신들의 팀에 진 프랑스 헌병대원의 무고로 잡혀 변압기를 폭파한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신 죽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들이 진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실을 독일군에게 말하지 않으면 애꿎은 인질 앙리와 에밀 역시 죽게 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비통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들을 감시하는 엉성한 독일 병사 베르나르 비키와 만나게 된다. 생과 사의 기가 막힌 갈림길에서 비키의 엉뚱한 행동 덕분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한껏 웃음을 만끽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라니.

 

진흙구덩이에서 죽음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진범이 잡혀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한다. 구덩이 속의 인물들은 이송 도중에 탈출해서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엔딩 부분에서 드러 진실은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뺨치는 반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 짧은 소설이 그렇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전후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신화를 그리던 모리스 파퐁은 전쟁 중에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 범죄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파리 경찰국장, 하원의원 그리고 예산장관도 지냈으며, 1962년에는 드골이 수여한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보르도 치안부국장으로 재직하던 파퐁은 어린이들 223명을 포함한 1,69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강제이송한 파렴치한 꼴라보였다. 나치 치하를 경험한 서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다며 국가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파퐁 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심대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후세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미래로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난망한 문제다. 어릿광대로 살던 아버지 앙드레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들은 진정한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알게 됐다. 과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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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3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중학생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겉모습은 가벼워 보여도 내용은 묵직했던 책이었습니다. 중학교 독서 기록장을 열심히 썼을 때 이 책 독후감을 쓴 적 있어요. ^^

레삭매냐 2018-07-03 14:18   좋아요 1 | URL
뒤늦게 읽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
역시나 명불허전이라고나 할까요.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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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주말 저녁, 서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제목도 엄청나게 긴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신작인 <제국>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는 역시 읽다만 책들을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파저란트>로 독일 문단에서 엄청난 논란을 빚은 작가라고 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나 여기 있으리>200쪽이 채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의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1917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독일 점령지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간 게 아니라 스위스에 남아 스위스 소비에트 공화국(Swiss Soviet Republics)를 건설하고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과 영국을 상대로 96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는 가상역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지도원 동지는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말라위 치체와 말을 사용하는 장교다. 아니 스위스 공산당 장교가 말라위 흑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레닌의 소비에트 이념에 충실하게 모든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파시스트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스위스인들은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끝없는 전쟁에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미래의 병사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니안자 족들은 미처 몰랐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는 노예들이었던 것이다. 소비에트 국가에 충성할 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스위스 당국은 조직적으로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배격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뭐 배경 설명은 그 정도로 해두고, 뉴베른을 최근에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 SSR의 지도원 동지 나는 혁명위원회로부터 유대계 폴란드인 브라친스키 대령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전달받는다. 그를 추격하는 과정 중에 나와 접촉한 파브르 소장과 우리엘이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말라위의 군사 아카데미와 킬리만자로 등반을 거쳐 알프스 전장에 투입된 전사인 나는 어쩌면 북방의 전장터에서 역병과도 존재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처럼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죽음의 연무가 짙게 피어 오른다.

 

마침내 요사화된 알프스 산속에서 군의관이자 치유사로 활동하던 브라친스키 대령을 만나게 된 나는 가공할 만한 전력을 동원해서 요새를 폭격한 독일공군의 화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브라친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온 미사일 개발계획은 가공의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결국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심장이 있는 나는, 갈색 눈의 홍채에서 아쿠아마린 블루 빛깔의 홍채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리고 SSR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적 모험에 나서게 된다.

 

대체역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을 아직 읽지 않아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크라흐트 작가의 <나 여기 있으리> 역시 만만찮은 내공을 과시한다. 서구적 인종주의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프리카 출신 공산주의자 지도원 동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위기는 스릴러 못지 않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백년전쟁을 끝낼 절호를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허구와 공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느낀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소품적인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말라위로 대변되는 검은대륙 아프리카는 여전히 서구의 착취대상이었을 뿐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SSR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들이 자신들이 노예 상태인 줄 모르고,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빼어난 정치기술이 아니었던가. 물론 개개의 연결점들이 빈약하긴 했지만, 크라흐트 작가가 구사하는 압축적인 문장들의 행간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이 절실하게 요구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절대 쉬운 독법으로 작가가 의도한 지점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뭐 그런 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 저녁에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의 문제적 데뷔작이라는 <파저란트>를 읽기 시작했다. 21세기 인간의 정체성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역시 여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견이 필요없을 것 같다.

 

[뱀다리] 인도와 북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저널리스트 경험이 이 책에 다분히 녹아 있다는 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정말 말라위 니안자 사람들이나 힌두스탄 혹은 동방의 제국으로 등장하는 한국에 대한 서술들은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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