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캐리커처 - 유쾌한 20세기 디자인 여행 디자인 그림책 1
김재훈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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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른한 한여름의 휴일 오전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디자인 책 한 권을 읽었다. 사실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일주일 동안의 업무 스트레스로 그만 몇 장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아침에 다시 집어 들었는데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가독성과 재미가 있다는 방증이리라.

오래전에 모 신문에 연재하던 만화를 보고 팬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작가가 바로 <디자인 캐리커처>의 지은이 김재훈 씨였다. 당시 그의 홈피를 바지런히 드나들며 그가 그린 일러스트들을 모으곤 했던 좋은 기억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당시에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을 탁월한 후발 주자 출신 마케터라고 평했던 일러스트를 보고 고개가 갸웃거렸었는데 그가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한때 신학교에 몸담았었다는 말에 바로 이해가 갔다. 자, 초장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디자인 캐리커처>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우선 표지에 나와 있는 “디자인 그림책”이라는 말대로 나 같이 디자인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만의 스타일로 빚어내는 디자인과 그에 얽힌 이야기 삼매에 빠져드는 마력을 가진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살바도르 달리나 코코 샤넬 혹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거장뿐만 아니라 정말 생소한 디자이너들의 향연이 <디자인 캐리커처>를 통해 펼쳐진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막대사탕 추파 춥스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말이다. 마치 사탕을 포크에 찍어 먹듯이, 막대에 쿡 찍어 놓은 단순한 발상이 대박 신화의 비밀이었다고. 더 놀라운 건, 추파 춥스 포장의 로고 디자이너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은 더 놀랄 노자였다. 하나의 상품에도 그런 디자인과의 하르모니아(조화)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지하철 노선도의 창시자인 해리 벡의 아이디어 역시 세상을 바꾼 디자인 중의 하나다. 사실 실제와는 엄연한 차이가 보이지만, 대도시의 지하를 미로처럼 누비는 지하철 노선에 대한 정보를 ‘왜곡’해서 단순함을 극치화한 해리 벡의 디자인 작업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시 살펴봐도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뮌헨 올림픽에서 픽토그램이라는 기호로 인류 공통적인 소통 방식으로 논리적 규칙성을 강조한 오틀 아이허 역시 대단한 디자이너였다. 책 후기에 등장하는 잉게 숄이 그의 부인이었다는 말에 짠한 감동이 몰려오기도 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몇 번 본 기억이 나지만, 김재훈 작가가 들려주는 것만큼 현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자동차 디자인 열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도 세계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존재한다는 나만 모르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몇몇 정치인들이 <디자인  서울>입네 하는 행정구호식 디자인을 외쳐 대지만, 전 세계의 명물이 된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 같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는 만들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디자인이 유행을 선도하는 걸까, 아니면 유행을 디자인이 좇는 걸까라는 단순한 질문이 들었다. 디자인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애플의 아이팟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배제해 버리고,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라는 신개념을 선도한 애플의 초대박 밀리언셀러다.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아이폰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도약을 마련해 준 그야말로 효자 같은 녀석이 아니던가. 아이팟 이후에 출시된 제품들도 선배의 길을 따라 너무 복잡해서 소비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그런 복잡한 기능보다는 쉽게 작동할 수 있고, 쿨해 보이는 디자인을 좇게 되지 않았던가.

이 세상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처럼 포스터 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의 빛을 본 영국의 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굳이 가짜가 진짜를 대신한다는 보들리야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량 복제의 시대에 김재훈 작가가 말하는 오리지널 아우라의 광휘는 점점 더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디자인이 그 첨병의 자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밀턴 글레이저의 <I♥NY>처럼 언제 봐도 미소가 떠오르는 그런 멋진 디자인을 기대해 본다. 물론 그의 저작권 프리 정책처럼 나눔의 미덕까지 함께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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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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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아메리칸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건, 연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덕분이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이제는 절판된 디 브라운의 ‘미국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가 붙은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를 통해 다시 한 번 미국 인디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번에 읽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비둘기 재앙>으로 다시 한 번 고달픈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삶을 한 발짝을 내딛는다.

2009년 미국 유수의 문학상인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서 수상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경합을 벌였던 <비둘기 재앙>은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독일계 미국인 혈통을 지닌 루이스 어드리크의 최신작이다.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비둘기 재앙>을 통해 과거 조상의 영광과 부족의 전통을 오늘날에도 영위해 가는 그네들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책에 나오는 지명이 실재하는 지명인 줄로 알고, 이번에도 역시 구글맵의 도움을 빌려 보려고 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가공의 지명이 지도에 나올 턱이 없지 않은가! 책의 뒷부분에 실린 글을 보고서야 나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노스다코타와 미네소타 탐험은 유쾌했다.

이야기의 첫 번째 주자로는 에블리나 하프가 등장한다. <비둘기 재앙>에는 여럿의 화자가 등장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주 이야기꾼 중의 한 명인 에블리나의 성장기도 다루었다가, 그녀의 무셤(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들려주는 과거의 끔찍했던 일가족 몰살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 그에 대한 사적인 보복 그리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삶을 교차하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채색된다.

무셤과 할머니인 주네스의 운명적인 만남과 필연적인 도주, 미치프족의 영웅 루이 리엘 등에 대한 이야기에, 무셤과 그의 동생인 로맨티스트 샤멩과를 자주 찾아오는 캐시디 신부와의 위스키 한담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에블리나는 사촌인 코윈 피스의 이름을 자신의 몸에 백만 번 쓸 정도로 애착해 하면서도, 새로 학교로 부임해온 메리 애니타 버큰도프 수녀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그녀에게 ‘고질라 수녀’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서 고민하는 에블리나의 모습에서 여느 십 대 같은 이중성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사는 타운인 플루토에서 벌어진 끔찍한 한 사건이다. 한 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되고, 그 범인으로 일단의 인디언들이 지목되면서 살해당한 가족의 이웃인 버큰도프와 와일드스트랜드 집안의 무장한 남자들이 세 명의 무고한 인디언들을 잡아서 교수형에 처했다는 비정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실체가 드러난다. 보안관으로 대표되는 공권력도 제지하지 못하는 사적인 폭력인 린치에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억울한 외침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인 홀리 트랙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또 다른 중요한 화자인 안톤 바질 쿠츠 판사의 좀 더 객관성이 담보된 시각이 반가웠다. 사실 에블리나나 뒤에 등장하는 만 월데(만 피스)의 이야기는 신화화된 상징성 탓에 현실계에서 조금은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운의 어느 연상녀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안톤 쿠츠가 어느 날 자각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는 법률가의 길을 걷게 되고 에블리나의 이모인 제럴딘과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확실히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부족 중심의 사회 시스템이 갖는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안톤 쿠츠가 들려주는 부모 이전 세대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원정대 이야기에서는 잔혹한 린치를 휘두른 폭도로 변한 버큰도프네가 공유한 운명 공동체의 원형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뒤에 나온 빌리 피스와 존 와일드스트랜드가 벌이는 어이없는 부인 인질극에서는 정확하게 영화 <파고>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실제로 1987년에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일을 영화화했다고 하는데, 루이스 어드리크도 아마 같은 소재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사건의 주모자 중의 하나인 빌리 피스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는 얼토당토않은 신앙 공동체를 건설한다. 그의 법적인 부인인 만 월데의 입을 빌려 듣는 거의 불사신 같은 빌리(그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과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의 지배를 받는 미국 중산층의 단면을 엿보기도 한다.

<비둘기 재앙>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등장인물이나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 이 사실 역시, 책의 뒷부분에 나온 설명을 듣고서 서로 다른 잡지에 발표된 글들을 한데 묶어서 출간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가 있었다. 근사한 외모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맨티스트 샤멩과의 장례식에서 캐시디 신부가 지껄이는 어이없는 추모사 부분에서는 어드리크 작가의 블랙유머가 돋보였다. 드디어 대학생활을 하게 된 에블리나가 영원의 도시 파리와 아나이스 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병원에서 보조사로 일하게 되는 과정은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해둔 복선과 암시의 부비트랩은 맨 마지막 화자로 배턴을 이어받은 코델리아 로크렌이 맡아서 확실하게 폭파시켜 준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독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부분을 명징하게 물 위로 떠올려준다.

어드리크의 문장은 아주 매혹적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마치 노을이 지는 황혼녘이 연상된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관조적인 서술은 애잔함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에블리나가 일하는 정신병원에 찾아온 코윈의 바이올린 연주 묘사다. “음악의 낫이 너른 공간을 휙 베”었다는(394쪽) 구절은 플루토를 감싼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이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우표수집에 목숨을 건 에블리나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우표가 “값비싼 작은 먼지 무덤”이(427쪽) 되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물질이 무엇이건대 채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소설의 어디선가 로맨티스트 샤멩과의 바이올린 연주에 파편화된 상식과 인정받지 못한 갈망이 담겨 있다고 했던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괴리된 채, 보호구역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뻑뻑한 삶이 읽혔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는 마음, 머리 그리고 손에 있다는 샤멩과의 고백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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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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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북부에 있는 메인 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Vacationland"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예전에 부시 대통령 부자가 임기 중에 여름휴가를 보내던 케네벙크포트도 메인 주에 있을 정도로 휴가지로는 그만이다. 남쪽의 떠들썩한 플로리다 바닷가와는 달리 조용한 대서양 연안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다고나 할까. 바로 이 메인 주 출신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2009년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겨 준 <올리브 키터리지>는 메인 주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을 그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차를 타고 20여 분을 가야 집이 한 채씩 나올 만큼 인적이 드문 메인 주에(물론 포틀랜드나 뱅고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의 이야기다)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가 있을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모두 13개의 서로 연관된 단편을 읽고 있자니, 마치 던킨 도넛에서 커피를 마시며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크로스비 주민의 가십을 듣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편안하다는 방증일 게다.

소설의 주인공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입이 걸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아무런 유서나 쪽지도 없이 생을 마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는 직설적인 성격이다. 그녀와는 반대로, 올리브의 남편 헨리는 약국을 경영하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공동체 생활에 헌신하는 모범적인 시민의 본보기로 등장한다. 서로 상극에 서 있는, 캐릭터들의 묘한 조화라고나 할까. 이렇게 상이한 성격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이 혼잡한 세상을 대하는 우리네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다양성에 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작곡가 빙 크로스비를 연상시키는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우선, 헨리의 약국에서 일하는 성실한 데니즈는 어이없는 총기 오발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는다. 무대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입에 달고 사는 작은 바의 피아노 연주자 앤지는 숨은 애인 맬컴에게 결별 선언을 했다가 욕만 실컷 얻어먹는다. 헨리와 올리브의 외동아들이자 족부의학 전문의인 크리스토퍼는 우연히 마을에 들린 닥터 수잔과 “샷건 웨딩”을 떠올릴 정도로 급하게 결혼식을 치른다. 부부 관계를 거부하는 마누라 대신 다른 파트너를 찾는 남성이 있질 않나, 작은 마을 크로스비의 내부는 현란한 요지경 속이다. 





일면 서로 다른 듯해 보이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상호 텍스트 작용을 통해, 서로 이어진 막다른 골목에서 ‘감정적 배신’이라는 공통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 남편의 장례식에서 그의 부정을 알게 되고, 배가 아파 들린 화장실에서 인질로 잡혀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와중에 아들 크리스토퍼가 가족을 떠나게 된 이유가 바로 그녀 때문이라는 헨리의 힐난에 올리브는 충격을 먹는다. 성급한 결혼과 결별을 경험한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올리브는 자신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이웃 라킨네 들러 조금은 치사해 보이는 위안을 찾지만, 모욕만 당하고 돌아선다. 올리브는 자신에게서 아들 크리스토퍼를 뺏어간 며느리 닥터 수잔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속옷을 훔치고 그녀의 스웨터에 매직으로 낙서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헨리는 중풍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버거운 세상살이에 지친 소시민의 대리만족이 오롯이 숨어 있다. 그녀의 발언은 거침이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머릿속에 담아만 두고 내뱉지 않았을 말도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툭툭 던진다. 막말도 서슴지 않지만, 자신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는 그녀를 누가 나무라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가 전직 수학교사라는 사실이 그녀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논리적 사고와 수학 공식은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삶의 무대에 유효하지 않다. 아니 누가 배가 아파서 잠시 들른 병원에서 마약을 찾아온 강도들에게 인질이 되리라고 예상이나 했겠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의 처녀작인 <에이미와 이자벨>(1998)을 쓰는데 6~7년이 걸렸다고 한다. 데뷔작에서 그녀가 그렸던 싱글맘과 그녀의 딸이 빚는 삶의 갈등은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더 많은 등장인물과 확대한 구조 속에서 비등점을 향해 내달린다. 이해와 사랑만으로 타인을 감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네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왜곡과 비틀림의 일상화에 삶의 무게는 더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한편,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커뮤니티에 대한 작가의 따스하면서도 동시에 냉소적인 작가의 양가적 시선이 느껴졌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병원의 기밀 유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떠도는 소문은 확대 재생산되어 간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동체 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마음의 소유자를 위한 변론이라고나 할까.

<올리브 키터리지>의 다른 제목인 <메인 바닷가에서>를 보고 찻잔 속의 담은 잔잔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예상외의 허리케인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은 예측불허의 변화무쌍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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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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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저자 제프리 디버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다. 이미 영화로 만났던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본 컬렉터>에서 시작된 범죄 스릴러는 링컨 라임이라는 탁월한 천재 법의학자라는 캐릭터를 독자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시리즈의 7번째로 소개된 <콜드 문>에서 등장한 캐트린 댄스라는 출중한 프로파일러를 따로 독립된 주인공으로 삼은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인형>(2007)이다. 놀랍기만 하다, 한 명의 빼어난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거기서 분화된 제 2의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작가의 능력이!

장장 700쪽에 달하는 이 ‘슈퍼 스릴러’ <잠자는 인형>은 희대의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의 아들로 불리는 다니엘 펠이 기발한 방법을 사용해서 탈옥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이자 동작학의 대가로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해내는 캐트린 댄스는 그 전에 펠이 탈옥하기 전에 그를 만난다. 자신에게 경도된 일단의 ‘패밀리’를 이끌던 펠은 8년 전 일가족 몰살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잠자는 인형>은 도망가는 범죄자와 그를 좇는 법집행관이라는 전형적인 스릴러 구조에, 존 스타인벡의 문학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몬터레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스타인벡의 작품인 <통조림공장 골목>을 읽었는데, 캐너리 로 같은 익숙한 지명이 등장할 때마다 아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스릴러는 자신의 뒤를 좇는 경찰의 허를 찌르는 신출귀몰하는 빼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다니엘 펠과 정확하게 딱 한발씩 늦는 캐트린 댄스의 추리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하긴, 초반에 그렇게 맥없이 범인이 잡히리라고는 얼추 한눈에 봐도 엄청 두꺼운 책의 구조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다니엘 펠의 탈옥은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캐트린과 캘리포니아 연방 수사국(CBI)이 그의 뒤를 좇으면서 드러나는 과거의 그의 행적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소통 부재로 인한 가족의 해체에 고통 받는 젊은이들을 포섭해서 철저하게 자신이 통제하는 ‘패밀리’의 일원으로 삼고자 한다. 그는 마치 중세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감언이설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어느 산 속에 자신만의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망상에 젖어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에 장애가 되는 건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간다. 수십 건의 각종 범죄를 저지르면서 용의주도하게 법망을 빠져 나가던 그는 실리콘 밸리의 천재 프로그래머 윌리엄 크로이튼 일가를 습격했다가 그만 영어의 몸이 되고 만다.

제프리 디버는 유능한 법집행관 캐트린 댄스와 신출귀몰한 범죄자 다니엘 펠이라는 구조에, 그가 이끌던 컬트 집단의 트리오, 범죄의 원형을 파헤치는 르포 작가 모튼 네이글 그리고 크로이튼 가 참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잠자는 인형’인 테레사 크로이튼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플롯에 다양성을 제공한다. 게다가 다니엘 펠의 도주를 돕는 제니 마스턴에 이르기까지 악당을 동정하는 워너비들까지 캐릭터의 일거수일투족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설의 초반부가 다니엘 펠의 탈옥과 도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중반부는 퍼즐조각을 맞추듯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캐트린 댄스의 프로파일링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소설 중간에 제프리 디버는 댄스와 자신의 다른 시리즈 링컨 라임과의 짧은 조우도 빼놓지 않고 친절하게 배치한다. <잠자는 인형>은 정말 마지막 장까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만큼 반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비트랩처럼 곳곳에 치밀하게 잠복해 있다.

사실 <잠자는 인형>을 통해 ‘동작학’이라는 학문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작가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심문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린다. 프로파일러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으로 범죄자의 사기와 기만을 폭로한다. 제프리 디버는 특히 피심문자의 스트레스 반응에 주목을 하는데, 상대방이 말할 때 보이는 동작의 패턴을 통해 심리의 저변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아울러, 프로파일링을 자신의 공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자기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데이트 상대에까지 적용하는 캐트린 댄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렇게 제프리 디버는 소설적 재미와 휴머니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개의 돌로 사냥하고 있었다.

범죄자 다니엘 펠에 동조해서 그의 범죄를 도운 ‘패밀리-컬트집단’에 대한 문제 제기도 빼놓지 않는다. 왜 그렇게 젊고 일견 똑똑해 보이는 이들이 컬트 리더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통제 받으면서 범죄마저 저지르게 되는가. 희대의 범죄자 다니엘 펠은 취약한 가족의 연결고리를 공격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이라고 받아들여진 컬트집단으로부터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범죄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개조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다니엘 펠의 희생자들은 하나 같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의 협박을 순순히 따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잠자는 인형>의 속편 격인 <노변의 십자가>가 작년에 발표되었고, 3탄인 <심문>이 2013년에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캐트린 댄스라는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할리우드에서도 곧 영화화에 착수할 전망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 슈퍼 스릴러의 아우라가 어떻게 실버스크린에 옮겨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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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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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열린책들에서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시리즈로 잇달아 출간되고 있는 <부적>과 <먼 별> 두 권이 나왔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과 <칠레의 밤>에 이어 이 두 책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앞으로도 9권의 볼라뇨 책이 출간 대기 중이라고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맛이 배어나는 그의 책이 기대된다. 다만, 대중적이지 않은 게 흠이라고나 할까. 난 개인적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의 팬이 되어 버려서 전작주의에 도전하겠지만.

<부적>에서 볼라뇨 자신이 살았던 멕시코로 잠시 문학적 외유를 떠났던 작가는 <먼 별>로 다시 조국 칠레로 복귀를 선언한다. 이미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의 마지막 장에서 선보였던 이야기를 확대한, 영화로 치자면 스핀오프 형식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먼 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의 얼터 에고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아르투로 벨라노가 화자로 등장한다.

칠레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73년 9월 11일 전, 남부 콘셉시온에서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라는 이름의 독학생에 대한 소개로 소설 <먼 별>은 시작한다. 후안 스테인이 운영하는 시 창작 교실에서 그를 알게 된 ‘나’의 서술이 이어진다. 나와 죽마고우 비비아노 오리안은 창작교실의 스타 가르멘디아 자매와의 친교 때문에 그를 운명적으로 질투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잔잔하게 고백한다. 십 대 소년의 치기라고나 할까.

자유로운 삶이 절정에 달했을 때,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고 ‘탈주’가 시작된다. 이제 루이스 타글레에서 소설의 주인공 카를로스 비더로 진화한 연쇄살인범은 가르멘디아 자매와 그들의 이모를 끝장내고 잠적해 버린다. 한편, 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임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나는 누군가 메서슈미트를 몰고 공중에 시를 쓰는 기발한 퍼포먼스를 목격한다. 그것도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창세기를 비행기에서 발산하는 연기로 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말씀하신 FIAT LUX(빛이 있으라)가 창공에 아로새겨진다.

여기서 로베르토 볼라뇨는 다시 나중에 <칠레의 밤>에 등장하게 될 이바카체 신부의 평론 활동을 짚어준다. 바로 이 재미일까? 자신이 발표하는 작품에 교차해서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 반갑기만 하다. 언제나 정력적인 활동가로 온갖 무모해 보이는 혁명의 대오에 앞장섰던 후안 스테인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주인공이 될법하다는 벨라노의 평이 이어진다. 그와는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디에고 소토는 생면부지의 남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그와 함께 소개된 페트라 이야기는 더 기묘하면서도 흥미를 자극한다.

쿠데타 이후 공군 중위의 타이틀을 달고 양지의 세계로 화려한 부활을 한 카를로스 비더의 기이한 행적이 이어진다. 예술이기보다는 곡예에 가까운 그의 비행 시 퍼포먼스와 파티장에서 자신이 개입한 끔찍한 사건에 대한 사진 전시회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카를로스 비더는 종적을 감추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예술가라는 칭송과 전설이 태동한다.

다시 아벨 로메로라는 전직 경찰관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매우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영국 경찰에 버금가는 뛰어난 조직으로 칠레 경찰을 꼽는데, 문득 볼라뇨와 같은 나라 출신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단편소설 <악어:야카레>가 떠올랐다. 칠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후원자로부터 거금을 받고 신분을 감추고 계속해서 활동 중인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내라는 밀명을 받은 로메로는 벨라노를 찾아와 그의 행적을 수소문한다. 그들은 과연 꼭꼭 숨은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볼라뇨 전집을 앞두고, 볼라뇨에 대한 <버즈북>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워밍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처음 접했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같은 유머보다는 문학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먼 별>도 초반에는 그야말로 까끌까끌한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카를로스 비더라는 인물의 행적을 좇는 추리물로 전환된다. 그리고 화자 벨라노처럼 나도 본격적으로 책에 몰입되기 시작했다.

사실 소설의 곳곳에서 줄줄이 등장하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칠레 출신 문인들의 이름 행진에 그만 주눅이 들었다. 그만큼 칠레라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FTA를 맺고 있을 정도로 굉장히 가까우면서도 문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을 통해 좀 더 칠레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자신의 작품에서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칠레의 어두운 과거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그런 차원에서 권력에 부합해서 고문과 살해를 저지른 카를로스 비더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다. 작가 자신의 얼터 에고로 작용하는 아르투로 벨라노는 이제 더 이상 악당이 해악을 끼치지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고 로메로에게 말한다. 그는 우회적으로 과거와의 화해를 종용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작가는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과거는 이미 다 알고 있을 테니, 나머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것일까? 작가가 그렇게 탈정치를 노래 부르지만, 굳이 정치적 연결을 하는 나는 우매한 독자인가 보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호흡이 짧은 볼라뇨의 글을 읽어 왔는데, <야만스러운 탐정들>이나 <2666> 같은 메가톤급 대작들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쨌든 나의 로베르토 볼라뇨 도전기는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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