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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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아마 어쩌면 역사상 중국에서 활동한 가장 유명한 외국인이 아닐까. 하지만,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을 읽기 전까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 중국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그저 풍문으로 들어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중국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16세기 말, 중국 명나라 만력제 시대에 예수회 사제의 신분으로 전교를 위해 중국에서 남은 생을 마친 인도자이자, 전교자 그리고 연금술사로 알려진 마테오 리치의 삶을 그가 개발한 이미지 기억술을 통해 재구성한다.

마테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의 로마 교황령 마체라타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황청 산하 예수회의 부속학교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리치는 1571년 수련수사로서 종교에 귀의한다. 일생을 전교에 바치기로 서원한 리치는 스페인과 함께 당시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포르투갈 코임브라에서 한 때 수학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동양 거점이었던 인도의 고아를 거쳐, 1582년 마침내 중국 마카오에 상륙한다. 1610년 베이징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리치는 자신의 반생을 중국 전교에 매진하게 된다.

대항해시대와 반종교개혁의 분위기가 서유럽을 휩쓸고 있던 중상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리치는 명나라의 만력제가 다스리는 중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전투적 가톨릭주의의 사도로 등장한다. 예수회 사제이자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던 리치는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해 서구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구조로 되어 있는 중국어 배우기에 전념한다. 동시에 중국인에게 그리스도교 선교를 위해, 자신이 개발한 기억술(기억의 궁전 짓기)이 무척이나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중국인의 꿈인 과거시험을 치르고, 관료의 자리에 오르길 희망하는 수험생에게 암기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진 리치의 기억술은 비장의 무기였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이 흥미진진한 전교사 마테오 리치의 전기를 여느 평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서술한다. 그는 리치가 선보인 기억술. 기법(記法)을 다음의 네 가지 한자로 기억의 궁전 네 모퉁이 각각 배치한다. 武-要-利-好는 각각 싸우는 자세로 고정된 두 명의 전사, 후이후이족 여성, 이익과 수확을 상징하는 농부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하녀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리치는 자신이 상상 속에 짓는 기억의 궁전에 체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는 의미를 가진 이미지를 배치함으로써, “서양의 과학지식과 신학상의 수양을 원용”하면서 전교와 중국인 교화의 방법으로 사용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졌다(43쪽).

작가는 사제로서 마테오 리치의 개인적인 삶을 저술의 기조로 삼으면서, 당대 시대상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중국 예수회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교를 위한 재원 확보를 했는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중국 마카오에 이르는 원양 항해를 직접 체험한 리치의 진술을 토대로 16세기 말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5백 년 전의 다양한 기록을 통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당대 생활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때, 종교인이 우대를 받는 서양의 사고로 승복을 입고 전교에 나서기도 했던 리치는 중국 사회에서 승려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는, 보다 현실적은 접근을 시도한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지식인 계급을 상징하는 유학자 옷을 입은 그의 초상을 볼 수가 있는 것 같다. 당시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태엽 시계와 다양한 서양의 문물을 통해 전교에 전념하던 리치는 문자와 인쇄술이 발달한 중국에서 서적의 유포를 통한 선교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착수한다. 자신의 기억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교리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천주실의>와 <교우론> 같은 저술은 중국 지식인에게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 신앙이 유교 경전이 목표로 삼는 국가의 안위와 평화 달성에 이바지할 거라는 점을 리치는 확신했다.

리치는 중국에 대한 열렬한 찬양가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인 숭배자는 아니었다. 그리스도교 정신에 반하는 노예 제도가 엄연히 상존하고 있었고, 중국의 악습 중의 하나인 어린이 인신매매에 대해서도 리치는 눈을 감았다. 교황이 거주하던 로마가 그랬듯이, 중국에서도 매춘업은 성행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의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던 동성애 역시 일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에서의 합법적인 거주허가를 얻기 위해 부패한 명나라 관료를 상대하는 데도, 리치를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레이 황 교수가 자신의 저서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꼽았던 리즈(이탁오) 같이 저명한 지식인과의 교류에 대한 사실 역시 인상적인 지적이었다. 역사 저술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텍스트 간의 유기적인 상호연관성이다.

리마더우(利瑪竇)라는 이름으로 28년간 중국에 살았던 전교사 마테오 리치의 삶을 통해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16세기 말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의 스펙트럼을 분석해낸다. 너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조금 산만한 경향도 없지 않지만, 개인의 삶과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멋지게 잡아낸 대가의 노고가 돋보이는 역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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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이산의 책 1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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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9월의 추천도서 <룽산으로의 귀환>을 통해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 교수를 알게 됐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중국사 전문가로, <룽산으로의 귀환>을 비롯해서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왕여인의 죽음>, <반역의 책> 그리고 이제 이야기할 청나라 네 번째 황제 <강희제>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방대한 고증을 통해,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기간 기록을 가진 강희제의 삶을 재구성한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부황 순치제의 갑작스러운 죽음(23세)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강희제는 자그마치 61년 동안이나 제위를 지켰다. 치세 초기에는 보정대신의 간섭을 받던 강희제는 친정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무를 숭상하던 만주인의 피를 이어받은 강희제는 잦은 사냥으로 철저하게 중국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첫 번째 장인 <사냥과 원정>에서 강희제의 이런 모습을 조너선 스펜스는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는 청조 이전의 이민족 왕조인 금나라와 원나라가 한화(漢和)되면서 멸망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말을 달리며 활을 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강희제는 짐승을 쫓는 사냥과 자신에 반대하는 정적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원정을 동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8년간 청조를 뒤흔들었던 우싼구이(吳三桂)가 이끄는 삼번의 난과 1696-1697년 2년간 세 차례에 걸친 준가르부 갈단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태평성세의 기초를 닦는다.

한편, 강희제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 무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피를 토할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문치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만주귀족과 한인 관료의 갈등을 조절하면서도, 훗날 자신의 황태자 인렁의 후계 문제로 파당이 결성되었을 때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번째 ‘치세’(다스림)편에서는 ‘훌륭한 정치란 백성들로 하여금 편히 쉬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치세 원칙을 설명한다. 백성과 신하의 의견을 듣기 위해 주접제도를 활용한 강희제는, 자신에게 올라오는 상주의 본질을 꿰뚫는 명철한 권력자이기도 했다. 사대부들이 상주를 정적을 음해하고 보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중앙으로 올라오는 상주문의 진위를 파악하는 일은 엄청난 정력과 집중력을 요구했다. 한편, 명대 말기 환관의 발호로 국정이 어지러워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강희제는 환관의 본연의 임무 외에는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했다.

삼번의 난 진압 시, 투항한 적을 다룰 때에도 철저하게 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희제는 난이 아직 진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항복한 반란군을 주살하면, 남은 반란군이 철저하게 항전하리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온건한 유화책을 채용했다. 물론, 반란이 끝난 다음에 반란 주모자들은 모두 주살시키는 냉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희제는 형벌은 앞으로 벌을 내리지 않게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치세 동안 문자옥으로 벌을 받은 사람은 다이밍스(戴名世) 하나뿐이라는 선언은 자화자찬처럼 들린다.

반란 진압으로 소요되던 재정은 반란이 진압되면서, 막대한 흑자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강희제 치세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강희제 역시 의전과 전례로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평생 황성인 자금성을 떠나지 않았던 명나라 시대의 황제들과는 달리 백성을 돌보고 각종 치수 사업 등을 시찰하기 위해 각지로 순행에 나서기도 했다. 각성을 다스리는 순무와 총독에게 명령을 내려, 철저한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재정확보의 내실을 도모했다. 인재 등용에서도 기존의 과거제의 폐단을 지적하고, 바로잡는데 힘을 기울였다.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면, 과거에 합격한 진사가 아니라도 등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60년에 걸친 치세를 함께한 노 대신의 은퇴 요청에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었다. 실무는 젊은 관료에게 맡기게 하고, 국정에 대한 조언자로서 역할을 당부했다. 대신들의 건강을 고려해서, 조정에 출석하는 의무와 공적인 책임까지도 면제해 주는 세심한 면도 보여준다.

진시황처럼 영생불사라는 허황된 꿈 대신, 생로병사라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잘 알았던 강희제는 생전에 상유라는 이름의 유조를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 영명한 군주였던 강희제 역시 후계 문제에서는 황태자 인렁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하늘 아래 절대 권력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말해주듯이, 황태자 인렁 편에 서서 파당을 결성했던 세력은 모두 강희제에 의해 불벼락을 맞았다. 인렁이 폐위된 후, 수많은 황자 가운데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는 인전이 후계자로 내정되고 강희제의 뒤를 이어 청나라의 다섯 번째 황제 옹정제로 등극하게 된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강희제>에서 1인칭 관점으로 강희제 자신이 직접 말하는 양식을 취한다. 강희제는 내외의 적들을 쉴 새 없이 토벌하여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치수와 농업생산을 장려하여 국가 재정을 소위 말하는 강건성세(康乾盛世: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황금기)의 기틀을 닦았다. 수많은 자손을 두고, 최고 권력자로서 수십 년간 제국을 통치한 군주였지만, 할머니 황태후의 병환을 직접 간호하는 충실한 손자였고, 원정길에서도 황성에 남은 가족들에게 진귀한 과일을 보내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많은 현명한 신하들의 조언을 듣고 국가정책을 정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황제 자신의 몫이었다. 실패한 인재 등용이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참된 위정자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이런 위정자가 다스리는 태평성대가 재현될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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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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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 절대권력자는 자신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원하지 않았고, 유력한 비판세력인 지식인 그룹을 통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면정책을 사용한 현명한 군주도 있었지만, 흉포한 독재자는 대개 당근 대신 채찍을 선택하곤 했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의 저자 왕예린 선생은 중국 왕조역사 가운데, 글과 말로 말미암아 화를 입은 것을 문자옥(文字獄)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설화로 인한 인신의 구속, 관직의 삭탈, 참수와 주살 같은 결과를 가져온 일단의 사건에 방점을 찍는다.

왕예린 선생은 중국사에 등장하는 문자옥의 기원을 춘추전국시대에까지 소급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 문자옥의 영예는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 유명한 분서와 갱유가 모두 진시황 시대에 벌어졌다. 통일제국 진나라의 승상 이사는 법가 신봉자로 왕도정치와 봉건제의 구현을 주장하는 유가의 이데올로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제국의 통치 질서로 법가사상을 채택한 이사는 반대파 숙청을 위한 수단으로 여타 사상을 탄압했다. 분서가 이사의 작품이라면, 갱유는 시황제는 자신의 절대권력에 사사건건 도전하는 유생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단행했다고 볼 수가 있겠다. 천년제국을 꿈꾸었던 독재자의 제국은 시황제의 사후, 유방과 항우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진시황의 문자옥이 특정 계급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진나라에 이어 등장한 한나라 시대 양운의 문자옥은 개인의 글이 가져온 최초의 문자옥으로 볼 수가 있다. 관료로 개인적 성취를 이뤘던 양운은 태사공 사마천의 외손자로, 세도가로 활동하던 중에 탄핵을 받아 서인으로 강등된다. 하지만, 서인으로 강등된 뒤에도 지역 호족으로 세력을 행사하던 양운에게 손회종이라는 이가 충고를 했지만, 이에 대한 답을 글로 남겼다가 화를 당했다. 그의 죄명은 대역죄였지만, 실상은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과 충돌하던 지방 호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황제권의 발동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렇게 문자옥은 태생적으로, 권력자의 반대파 숙청의 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대부와 문인의 비판에 너그러웠던 당송시대는 그야말로 그들의 태평성대였다. 특히, 무인정권으로 출발했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문인 사대부를 우대했던 송나라 시대에는 태학생을 중심으로 한 문인정치가 절정에 달했다. 황제에게 올리는 상주는 국정을 위한 우국충정의 발로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정적을 음해하고 공격하려는 방법이기도 했다.

송나라 인종 시대의 명신 범중엄은 엄격하고 강직한 사대부의 전형으로, 세간의 사대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이간으로 대표되는 범중엄의 정적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범중엄이 군신 간을 어지럽히고, 그의 잘못을 공격했다. 범중엄의 무고함을 아는 대신들이 변호에 나섰지만, 황제의 노여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는 구법파로, 한림원학사를 지낸 당대 최고의 지식인 구양수는 편지로 범중엄을 변호했다가 자신마저 귀양 길에 오르게 된다. 이런 일단의 사건으로 의기 있는 사대부는 천 년 동안 칭송받을 방명을 남기게 되었지만, 그 반대편에 섰던 고약납과 간신의 대명사 진회는 영원토록 세간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왕예린 선생은 서술하고 있다.

명청시대의 문자옥에 비하면, 그래도 송나라 시대의 문자옥에는 낭만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몽골족의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중화제국을 세운 주원장은 제목 그대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란 격언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래 배움이 깊지 않았던 유민 출신의 주원장은 홍무제로 명나라의 태조로 등극한 다음, 어설프게 배운 학문을 바탕으로 수많은 지식인을 황천길로 보내 버렸다. 전혀 다른 뜻임에도 황제를 능멸한다는 이유로 문인들을 주살했다. 물론, 그의 그런 이면에는 공포정치로 인한 황제의 독재권 강화라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명태조의 아들 연왕 주체는 적통을 이은 조카 건문제를 3년간에 걸친 <정난의 변>으로 축출하고 자신이 보위에 오른다.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연왕 주체(성조 영락제)는 당대의 뛰어난 학자 방효유를 회유하려고 하지만, 건문제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았던 방효유는 찬탈자 주체의 요청을 거절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분노한 주체는 방효유 일족과 자신에 반대하는 문인을 악랄한 방법으로 주살했다. 명나라 시대의 지식인 계급은 송대에 정주리학으로 완성된 충효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확고한 행동 원칙과 가치관에 입각한 시대정신의 화신이었다. 그 결과, 만주족이 이끄는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했을 때, 멸청흥한이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한족이 대의를 위해 아끼지 않고 목숨을 내던졌다.

왕예린 선생의 서술에 의하면, 청나라 시대의 문자옥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강희-옹정-건륭 연간을 이르는 ‘강건성세’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문자옥으로 얼룩졌다. 그 결과, 수많은 사료가 소실되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제국의 치세 초반, 왕권강화와 권력투쟁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청나라 황제들은 문자옥을 이용했다. 특히, 군부지도자 연갱요와 자신의 외삼촌인 융과다의 제거를 위해 치밀하면서도 교묘한 숙청을 진행한 옹정제의 작전은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한편, 증정의 역모를 역이용해 자신의 관대함을 과시하면서 또 한편으론 여유량의 저서를 불태우는 강온전략을 구사한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 출신의 역사가 조너선 스펜스가 저서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도도한 장강의 흐름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듯이, 진실을 감추고 사상을 통제하겠다는 의도에서 권력자가 일으킨 문자옥 역시 영원할 수는 없었다. 역사적 사실은 정사가 아니더라도 패관 문학 같은 야사를 통해 후세에 전승되었고, 역사의 흐름이라는 순리에 저항한 독재자와 간신 무리의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기는 순효과를 불러왔다. 그런 점에서 중국 역대 왕조에 나타난 문자옥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왕예린 선생의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는 과연 일독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 사건을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그 깊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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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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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가 2005년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에 내놓았다는 두 번째 소설집 <더블> 비사이드를 읽었다. 모두 9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더블>의 두 번째 권부터 먼저 읽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연작소설이 아닌 바에야, 무엇부터 먼저 읽으면 어떠리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박민규 작가는 글 쓸 줄 아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유일했다. 어려서 삼미 슈퍼스타의 팬이어서 그런지 그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곰돌이 베어스에게 처절하게 연패당하는 슈퍼스타답지 않은 삼미 팬의 심정이 마치 나의 고백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뛰어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서설이 길었다. 단편 소설의 핵심은 초반 독자의 몰입이다. 장편 소설과는 달리 서사의 캐릭터와 구조로 단기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단편에서는 독자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민규 작가는 <더블>에서 단박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1번 타자로 등장하는 <낮잠>에서는 상처를 하고 재산도 정리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여생을 보내는 주인공의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만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서사의 중심에 둥지를 튼다. 별이 인간 나부랭이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인간이 별을 헤아려야 한다는 노년의 고백은 애잔함 그 자체로 다가선다. 첫사랑은 그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야 했던가? 요실금으로 기저귀를 차고, 떨리는 옛사랑과 모교를 찾은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만다. 비루한 일상은 말년의 로맨스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집 <더블>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龍龍龍龍>을 선택하고 싶다. 이제는 잊힌 장르가 된 무협지를 현대에 맞춰 패러디한 이 소설은 금강불괴 영원불사의 몸으로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네 명의 무림 대협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제강점과 독립,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같은 파란만장한 한국현대사가 절대 무공을 가진 무림 고수의 회상을 통해 펼쳐진다. 신의와 의리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강호세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협의 제자들은 오로지 돈이 최고라며, 무예가 아닌 기예가로 비루한 일상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상상에 바탕을 둔 판타지는 현실세계에서마저 힘을 못 쓰고 스러져 버릴 뿐이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루디>는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빙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미국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질극의 주인공이 된 나는 ‘기적의 아기’에게 포로가 되어 갖은 수모를 당하고, 라이플과 권총으로 무장한 냉혈한이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를 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한다. 폭력의 극한에서 비로소 구원의 길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뉴스에서나 볼법한 일상의 폭력을 경험하게 된 어느 방관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아스피린>은 정말 한 번 상상해 봤을 법한 판타지의 구현이다. 서울 상공에 거대한 비행물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비루한 일상의 삶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경쟁 피티를 해야 하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인 주인공은, 수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끼니를 때우고 야근해야 한다. 회의와 일의 반복이라는 일상에 이 기이한 비행물체의 등장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급기야 재난지구로 선포되기까지 하지만 주인공의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비루한 일상의 포로가 된 현실에 작가는 예리한 시선을 투척한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에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한때는 잘 나가던 차팔이였으나 이제는 영락해서 계약직으로 밀려난 세일즈맨의 비루한 일상이 등장한다. 몇 개월째 차를 팔지 못했으니 당연히 수입이 없을 테고, 카드마저 정지되어 서민에서 빈민으로 사회적 자체강등에 반항해 보지만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암울한 현실은 도대체 어쩔 거냔 말이다. 게다가 거시기마저 서지 않아, 아내가 딜도를 장만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벼랑 끝에서 추락을 경험한다. 한바탕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찜질방으로 도피한 나는 예전에 동료로부터 화성으로 판로를 넓혀 보라는 충고를 듣는다. 경기도 화성? 아니다, 달나라 화성 말이다. 기발하다 기발해.

신자유주의 경쟁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파라다이스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주변의 일상은 왜 이렇게 비루하기만 한 것일까.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빨대짓으로 거덜 난 남자는 콩밥을 먹고 나서 살기 위해 대리운전을 뛰고, 산재로 다친 남자는 직장에서 잘려 한강다리 아치에 오르고, 잘 나가던 가장은 영락해서 죽고 싶다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비루한 일상은 고작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기를 펼 수 있다는 묵시일까?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것은 아마 우리네 삶만큼 복잡하고 해석이 불가할 따름이다.

표지를 보면서 회사 동료가 <복면달호>냐고 물었다. 난 송강호의 <반칙왕>을 떠올렸는데 말이다. 확실히 세대 차다. 비루한 현실에 이런 복면을 씌우면 판타지로 변하게 되는 걸까? 그야말로 엉뚱한 상상이다. 작가의 말대로 깊어가는 가는 가을에 독자를 찾아온 멋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는 A Side...

B Side와 마찬가지로 A Side에도 모두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인데, 긴 호흡으로 가는 장편보다 단편에 작가의 내공이 더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비교적 넉넉하게 캐릭터와 시공간의 배경을 다룰 수 있는 장편에 비해, 단편에서는 짧은 시간에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강박관념이 작가에게 있지 않을까? 물론, 소설을 써보지 않은 어느 독자의 생각이겠지만.

A Side에서도 일상의 비루함은 이어진다. 현직에서 은퇴한 가장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자식들의 뒤를 돌봐준다. 사업하겠다고 나섰다가 망한 아들의 빚을 갚아주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딸내미의 임용을 위해 아낌없이 남아 있는 집을 처분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앞으로 30년 이상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좌절한다. 예전에는 삶의 미덕 중의 하나로 칭송받던 장수를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는 변한 세태를 반영하는 송가라고나 할까. 부세를 조기라고 우기면서, 시부모님을 대접하는 며느리를 보면서 그저 열심히만 살아 달라는 부탁을 속으로 되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모습이 애잔하기만 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은 병원에서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낙향한다. 태평양 바다를 유영하던 연어가 고향을 찾듯, 주인공 역시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고향이란 그런 것일까? 이렇다 할 고향의 추억을 갖지 못한 이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컨셉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묻은 타임캡슐을 파내 추억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마치 물에서 막 걷어올린 붕어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시나브로 주인공을 찾아온다. 얼떨결에 살을 섞게 된 옛 여자 동창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란 말은, 죽음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끈질긴 생명력의 선언처럼 들릴 뿐이다.

행사장 도우미를 하는 여친과 몰래 동거하는 동민 역시 비루한 삶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요즘 즐겨봤던 케이블 텔레비전의 <루저전>이 떠올랐다.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주인공들이 지하셋방에서 살면서, 취업과 신분상승을 사다리를 밟고 언젠가는 폼나게 한 번 살아보겠다는 좌충우돌 모험기가 동민의 그것과 묘한 동조를 이루고 있다. 시골 마을에까지 대형마트가 진출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동민의 보스는 기구를 띄워서 홍보하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하지만, 기구 제플린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와중에 기구는 날아가 버리고 동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구를 되찾아 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에 비호감 제이슨 형과 함께 출동한다. 은근히 이 모든 문제가 제이슨 형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동행 길에 제이슨 형에 대한 재발견으로 갈등은 저절로 해결된다. 결말 부분의 요양원 할머니의 등장은 쌩뚱 맞았지만.

지구 멸망을 하루 앞두고 이웃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며 폭음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프레데터스>의 전주곡처럼 어디선가 끌려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을 마치 팝콘을 튀기듯이 학살하기도 하고, 극한의 해저에 도전하는 신인류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자신이 전생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육체파 여배우였다는 자전소설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박민규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물론, 너무 낯설어서 소설의 진행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적도 있긴 했지만, 역시 대단한 구라꾼이라는 생각에 잘 정제된 두 권의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데, 책을 읽다가 옥에 티를 하나 발견했다. 자전소설을 표방하는 <축구도 잘해요>에서 마릴린 먼로의 남편이자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등장한 조 디마지오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유리창을 깰 수 있다는 장담하던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니라 뉴욕 자이언츠였다. 자이언츠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로 이사 간 것은, 디마지오가 은퇴하고 나서 7년 뒤의 일이었다.

이 멋진 작가가 다음번에는 또 어떤 소설적 경이로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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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탈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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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다큐멘터리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보고 리뷰를 남긴 적이 있다. 지금 보니 장황하게도 썼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런 극적 이야깃거리를 소설로 쓰면 좋겠다 싶었는데 조정래 선생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이 바로 오늘 단박에 읽은 <사람의 탈>이다.

1944년 6월 6일, 나치 독일 제3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서유럽 해방을 위해 고대해 마지않던 제2전선이 열렸다. 이날 잡힌 나치 동방대대 소속의 병사 사진과 그에 대한 기록이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의 모티프로 작용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소설은 1939년 만소국경의 노몬한에서 벌어진 소련과 일본의 충돌을 이야기의 발화점으로 삼는다.

한 때 천하무적이라 불리던 일본 관동군은 소비에트의 주코프 장군이 이끄는 기계화 병단과 맞붙었다가 참혹한 패배를 당한다. 중국에서 군벌집단을 상대해온 관동군은 오로지 황군 정신으로 소비에트의 전차대에 도전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계속되는 침략전쟁으로 병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사지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조선에만 주둔하고, 돌아오면 면 서기직은 준다는 달콤한 제안을 남발한다.

그렇게 노몬한 전선에 파견된 주인공 신길만은 보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무지막지한 소련군을 상대한다. 황군에게 항복이나 포로가 되는 것은 수치라고 외치면서 수많은 일본군이 옥쇄를 감행하지만, 신길만과 일단의 조선 청년에게는 모두가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아버지가 전장으로 향하는 길만에게 화두처럼 던진 총알을 피하는 살아남는 게 최고의 선이다. 동귀어진하자는 옥쇄 파트너를 찌르고 길만은 소련군의 포로가 된다.

기미독립선언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세대에 해당하는 신길만은 소작농의 자식이라는 계급적 이유로 인해 징병당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산계급은 희생의 대상일 뿐이다. 일본의 통치가 영원할 것 같았던 변절의 시기에 그들이 과연 조국 독립의 꿈을 꿀 수가 있었을까? 소련군의 포로가 된 길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소련 군복을 입고 나치 독일의 마수에 맞서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된다. 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그가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혹독한 포로수용소 생활 끝에 동방대대라는 이름으로 노르망디 전선으로 파견되고 미군의 포로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조명한다. 어쩌면 이렇게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을까.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개연성과 상상을 더하긴 했지만, 정말 그럴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 모든 역경을 거쳐 살아남은 길만네를 기다리고 있는 비극은 참으로 가혹했다. 일본, 소련 그리고 독일은 모두 주인공 신길만을 필요에 따라 철저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고, 나라 없는 백성은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비애를 조정래 선생은 예리하게 짚어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재라 그런지 확실히 책은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왠지 결혼식 피로연에 가서 뷔페를 먹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언가 많이 먹은 것 같긴 한데, 헛헛한 느낌이 든다. 노몬한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역사의 큰 흐름에 저항할 수 없는 개인의 기구한 운명이 묻혀 버렸다는 느낌이랄까.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마음에 들면서도, 2% 부족함 느낌이다.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신길만네가 포로수용소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떠올렸다. 그랬다면 이야기가 더 복잡해졌을까? 주인공 신길만의 개인적 고뇌와 간난을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계속되는 투항 그리고 연이은 적(敵)으로의 변신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식민지 청년의 애환에 보다 방점을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소설을 읽던 중에 문득 “인두겁”이란 말이 떠올랐다. 보통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말이, 총탄이 빗발치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그야말로 종이 한 장처럼 갈리는 순간에 오로지 생존을 위해 몇 번의 서로 다른 인두겁을 뒤집어써야 했던 어느 무국적자의 비운과 공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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