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 타이완 희망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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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보통 사람이 일상을 뒤로하고 탈출을 감행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니, 내가 할 수 없다면 타인의 일상탈출로 대리만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을 쓴 이지상 씨는 상실의 슬픔과 20년도 더 된 추억을 찾아서 타이완 여행에 나선다. 어려서는 중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중국이나 타이완 아직 모두 가보지 못한 이방인에게 물가도 싸고, 인정 많은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타이완 소개가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사실 타이완에 대해서는 양가적 감정이 있었다. 얼마 전 타이완의 태권도 국가대표 양수쥔 선수의 전자보호구 착용 문제로 비화된 반한을 넘어 혐한에 이른 그네들의 선동에 입맛이 씁쓰름하면서도, 한류 아이돌 슈퍼주니어가 타이완 음악 차트에서 1년 넘게 선전을 한다는 뉴스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글쓴이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타이완을 기술했는데, 타이완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한 때 방대한 타이완 여행 가이드를 기획하기도 했던 나그네는 20년전 첫 해외여행지였던 타이완으로 향한다. 6번이나 타이완을 찾은 베테랑 여행자답게 한달 기한의 넉넉한 여정으로 이 작은 섬나라를 보듬는다. 유명한 관광지도 빼먹지 않지만, 지은이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가 닿아 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들른 작은 카페에서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아준 종업원의 친절함에 감동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길을 잃지 않게 성실하게 노력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온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 등 외세의 침략으로 얼룩진 타이완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타이완의 다양성을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다양성을 꼽았다. 이방인에게 개방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두루 섭렵한 그들의 문화는 특히 식문화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은이는 푹푹 타이완의 열대 기후 속에서 많이도 돌아다니면서, 또 그만큼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정말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음식 소개에 당장에라도 타이완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

이지상 씨가 소개한 진기한 타이완의 풍물 중의 눈길을 끄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식칼 마사지가 있다. 작가의 글로만 볼 적에는 잘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 단박에 필이 왔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칼날이 시퍼렇게 선 우왁스러워 보이는 식칼로 마사지를 한다는 거지?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식칼 마사지에 선뜻 몸을 내맡기는 관광객이 있을까 싶다.

다음으로는 우리에게는 월남국수로 알려진 포(Pho)에 들어가는 고수에 대해 한 수 배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수지만, 그 안에 꼭 들어가는 고수는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태국말로는 ‘팍치’, 중국어로는 ‘샹차이’ 그리고 영어로는 ‘코리앤더’라고 부른다고. 그전에 몰라서 꾸역꾸역 먹었지만, 이제 알았으니 주문할 때 고수를 빼달라고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악명 높은 ‘처우더우푸’(취두부)에는 아직 도전해볼 자신이 없다.

제목만 들으면 행복에 대한 에세이 책인가 싶지만, 지은이에게는 잃어버린 낙원 타이완에 대한 절절한 애정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를 땐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여행 고수의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도 타이완의 어느 야시장에서 먹거리 사냥에 나설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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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신부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3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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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그리스가 신문지상을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우리가 십여 년 전 치욕을 당했던 바로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에 위기를 불러온 나라 그리스의 과거는 우리의 그것과 아주 많이 닮았다. 터키에 정복되어 수백 년간 식민지 생활을 경험했고, 나치 점령이 끝난 뒤 극한의 좌우 대립도 겪었다. 그리스 출신의 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독일의 점령이 끝난 후 시작된 그리스 내전기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연대기를 <전쟁과 신부>라는 제목으로 소설화했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70대 야나로스 신부다. 그리스 정교회 소속으로 신실한 신앙으로 무장한 노신부는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타의에 의해 디아스포라를 경험한다. 한때 아토스 산에 입산해서 수도사의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신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속세로 하산한다. 하지만, 야나로스 신부가 진짜 하산한 이유는 너무나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수도사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서다. 보통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아이들은 흙을 퍼먹고 있는 마당에 어린양을 인도해야 할 성직자들은 하릴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한가롭게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현실에 야나로스 신부는 분노한다. 이것이 정녕 신의 뜻이란 말인가?

가난하고 굶주린 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 세계와 갈등하는 야나로스 신부에게 좌우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하며, 동족상쟁을 치르는 내전은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다. 붉은 두건과 검은 두건, 정부군과 반란군 유격대로 갈려 하루가 멀다고 에피루스에 있는 카스텔로 마을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간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조국 그리스에 대입한 야나로스 신부는 어느 편에 서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려 하지만, 정부군에게서는 볼셰비키로 그리고 반란군에게는 파시스트로 불린다. 도대체 어떤 것이 신의 뜻이란 말인가.

부활절 연례행사대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는 제례를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 그리고 형제애를 강조하는 현실적인 설교를 하지만 증오에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이들에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새로운 협조자가 레닌이라는 이성의 속삭임이 실제로는 악마의 말이 아닐까 하는 끊임없는 의심과 번뇌 속에 야나로스 신부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산에 오른다. 그리고 신화 같은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드라코스 대장과 담판이 기다린다. 자, 과연 카스텔로 주민들의 운명을 어떻게 될 것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신앙과 정치적 갈등의 첨예한 대립 구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 넣는다. 반란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무장도 하지 않은 7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총살한 정부군 대위, 사랑하는 애인을 그리며 죽어가는 청년 레오니다스, 무자비하게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 대위 남편에게 환멸을 느끼고 입산한 대위의 아내,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겠다며 신성모독을 마다하지 않는 신부 등 평범한 시대에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그런 역동적인 삶을 치열하게 산 캐릭터가 줄지어 등장한다.

한 때 공산주의에 경도된 카잔차키스의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은 성모의 허리띠로 혹세무민하는 수도사의 재물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으로 치환된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인류 구원을 위해 내버린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세상의 재물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 질문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야나로스 신부는 여러 사람의 전언을 통해 성경에 등장하는 협조자(보혜사, helper)가 강림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더 놀라운 건, 그 협조자가 레닌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성모독에 가까운 주장으로 카잔차키스는 당시 그리스에 만연해 있던 사회정치적 불의를 고발한다.

오래전에 읽은 그리스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게이지가 쓴 <이리니>를 통해 그리스 내전의 비극과 처음 만날 수가 있었다. <전쟁과 신부>는 <이리니>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그리스 역사의 단편과 그리스 민중 속에 스며든 종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끝을 맺기 전에 여담 한 가지.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57년 노벨문학상 후보 경쟁에서 알베르 카뮈에게 1표 차로 떨어졌다고 한다. 훗날 카뮈는 카잔차키스의 미망인에게 고인이 자기보다 백배는 더 수상의 영예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동안 카잔차키스의 많은 책을 사기만 하고 미처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읽을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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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오버
토드 필립스 감독, 브래들리 쿠퍼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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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어로 숙취를 뜻하는 “hangover"를 제목으로 삼다니 대충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온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네 명의 싸나이들이 절친 더그의 결혼식을 앞두고 Sin City 라스베이거스에서 한판 즐겁게 놀아보자고 떠난 총각파티를 다룬 영화다. 딸랑 그거면 그렇게 재밌고, 흥행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겠는가 말이다. 아니다, 미국식 코미디의 전형인 <더 행오버>는 빤한 기본 줄거리에 포복절도한 이야깃거리를 담뿍 담고 있다.

먼저 영화는 이제 결혼식을 5시간 앞둔 트레이시네 집에서 시작된다. 학교 선생으로 아이들의 돈을 삥뜯어 친구 더그를 위해 준비한 총각파티에 나섰던 필이 총대를 멘다. 신랑은 어딘가에 잊어버렸고, 사막 복판에서 헤매고 있다는. 이 말을 들은 트레이시는 뚜껑이 날아가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영화는 이틀 전으로 시간이동을 감행한다.

장인이 빌려준 으리으리한 벤츠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난 네 명의 싸나이들, 더그, 필, 앨런 그리고 스튜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내자며 호텔 옥상에 올라 독한 술을 마시며 결의한다. 그리고 뿅~!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장판이 된 호텔에 더그를 뺀 나머지 남자들만 남아 있다. 욕실에는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들어 있질 않나, 치과의사 스튜는 이가 빠졌고, 불붙은 소파는 자욱한 연기를 내고 있고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바로 결혼이 내일로 들이닥쳤는데, 신랑이 없어진 거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어젯밤의 기억을 찾는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에 앨런은 자신이 카를로스라고 이름 붙인 아기를 둘러메고 더그를 찾아 나선다. 호텔 주차장에서 벤츠를 호출시켰는데, 경찰차가 나왔다. 어쨌든 경찰차를 타고 단서를 찾아 나서는 삼총사. 하루 동안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스튜는 스트립클럽에서 만난 스트리퍼와 즉석 결혼식을 올렸고,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키는 좀 모자란 천재 앨런은 호텔 카지노에서 8만 달러나 땄다. 호랑이는 한때 챔피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에 집에서 훔쳤으며, 중국 조폭에게 걸려 흠씬 두들겨 맞고 자기 돈 8만 달러를 가져오지 않으면 납치한 더그를 돌려주지 않겠단다.

사고뭉치로 약물 루피스를 건배하던 독주에 타서 모든 문제의 발단을 일으켰던 앨런이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카지노 블랙잭 판을 휩쓴다. 어렵사리 몸값을 마련한 삼총사는 중국 조폭 초우와 약속한 사막으로 나간다. 그 사막에서 돌려받은 더그는 화이트 더그가 아니라, 앨런에게 약물을 판 블랙 더그다. 그나마 합리적인 사고를 하던 스튜가 마침내 호텔 옥상에 갇혀 있던 더그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를 구출한다. 자, 이제 결혼식장으로 돌진하는 삼총사와 달타냥.

우리와는 유머 코드가 맞지 않는 미국식 코미디라 2009년에 발표된 <더 행오버>는 우리나라에 개봉되지 못했다. 지금 속편이 개봉돼서 또다시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어쩌면 그 성공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될지 모르겠다. 예전에 마이크 마이어스의 <오스틴 파워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흥행성적인 기대를 밑돌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웃고 즐기면 되는 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몇 가지 눈여겨 볼만한 점도 등장한다. 우선 장인 시드는 라스베이거스에 간다는 사위 일행에게 선뜻 고급 차를 내주면서 적당히 놀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에 신나게 놀라는 세대를 뛰어넘는 암묵적 합의라고 해야 할까? 물론, 장인은 더 노골적인 말도 하는데 우리의 정서와는 좀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 치들이 벌인 난장판이 어이없지만, 어쨌든 no one left behind 정신으로 잃어버린 친구 더그를 찾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싸나이들의 우정과 의리라고나 할까? 3년째 동거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렇게 갈굼을 당하는 스튜도 한 시간 단위로 여자친구에게 보고하면서도, 이 어처구니없는 로드트립에서 빠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니, 나중에는 더 적극적으로 막가파식 일탈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후의 결정타는 결혼식장에서 더그가 트레이시에게 속삭인 말이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물론 그 말이 속편에서 어떻게 지켜졌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만. 과거는 과거다, 옛일은 모두 잊고 앞으로 잘살면 된다는 거다. 이런 교훈처럼 앨런이 찾아낸 디지털카메라에 잃어버린 시간이 저장되어 있다. 그걸 보면 영화의 “미싱 파트”가 고스란히 채워진다. <더 행오버>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관객들을 좌석에서 떨어뜨리지 못할 것 같다. 아, 다음은 방콕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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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트 - Prie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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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한국 출신의 만화가 형민우 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 <프리스트>를 봤다. 잔뜩 기대하고 봤는데, 역시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더라는 말을 확인했다. 아직 만화를 보지 않아서, 만화와의 연관 관계에 대해 파악할 수는 없고 다만 앞으로 이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된다면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캐낼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공존할 수 없는 두 존재인 인간과 뱀파이어 전쟁이 벌어진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을 뱀파이어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이때, 인간은 “프리스트”라는 비밀 병기로 단박에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한다. 프리스트의 활약으로 인류를 전멸시킬 것처럼 보였던 뱀파이어의 위협은 사라진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에서는 2D 카툰으로 아주 가볍게 처리한다. 역시 영화의 위력이라는 말밖에.

그런데 뱀파이어는 없어진 걸까? 교회가 지배하는 도시 밖 황무지에 외롭게 사는 루시 가족을 일단의 뱀파이어가 습격한다. 홀연히 등장한 보안관은 우리의 주인공 프리스트(폴 베타니 분)에게 조카딸이 뱀파이어에게 납치되었으니 구하라는 말을 던진다.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크나큰 공훈을 세운 프리스트는 교회 최고회의에 도시 밖으로 나가 조카딸을 구하는 걸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교회 우두머리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허락 없이 행동한다면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

이런 협박에 굴할 우리의 프리스트가 아니다. 시속 250마일에 육박하는 속도를 자랑하는 놀라운 속력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프리스트. 도시 제리코에서 보안관과 만나 사라진 루시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보호구역에서 뱀파이어 병원균에 감염된 ‘하수인’에게 루시의 행방을 묻지만, 그들은 자신의 마스터에 대한 과신으로 프리스트를 얕잡아 본다. 해가 지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뱀파이어와의 대결이 벌어진다. 신종 뱀파이어의 모습은 중세의 고전적인 드라큘라라기 보다, <나는 전설이다>에 나온 그런 식의 뱀파이어다. 태양과는 척을 지니 당연히 눈은 달려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하게 빠르다. 이건 뭐 총을 뽑을 새도 없이 당하겠는걸.

한편, 교회의 도시에서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프리스트 추적팀을 파견한다. 과거의 동료이자 프리스트를 사랑하는 프리스티스(매기 큐 분)가 합류해서 새로 출현한 뱀파이어의 본거지로 지목되는 솔라 미라로 출동한다. 그곳에서 엄청난 덩치의 하이브 가디언과의 대결은 이 영화 최고의 압권이 아닐까 싶다. 특히, 프리스티스가 던진 돌을 밟고 공중에서 하이브 가디언을 일격에 베는 프리스트의 내공은 일품이었다.

세 명의 나머지 프리스트들과 제리코를 쑥대밭으로 만든 현장에 도착한 프리스트 일행은 예전의 동료였다가 이제는 뱀파이어 퀸의 피를 받아 인간-뱀파이어가 된 “블랙 햇”이 이끄는 뱀파이어 군단과 마지막 대결을 치닫는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달달한 뱀파이어 시리즈에서부터 하드코어 뱀파이어 영화까지 요즘 뱀파이어 영화가 인기다. 아마 그런 시류에 편승해서 제작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 제작비가 대략 6,000만 달러 정도 들었다고 하는데 흥행 성적은 시원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형민우 씨의 원작의 할리우드 진출 쾌거라는 식으로 마케팅이 이루어지겠지만, 미국에서의 최종 스코어는 기대 이하인 것 같다.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도 <프리스트>에 빠지지 않는다. 아, 잠깐 잊었다. 이 영화의 원작 만화가 우리나라 작가였지. 사실 뱀파이어 영화 <프리스트>는 오프닝보다 앞으로 이어질 시퀄과 프리퀄이 더 기대된다. 뱀파이어 전쟁은 멋진 프리퀄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고, 잠깐 모습을 드러낸 뱀파이어 퀸과 대결 역시 흥미진진한 요소다. 다만, 문제는 시리즈의 시작이 시원치 않다는 점일 게다. 또 다른 네거티브 포인트로는 특정 종교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 권력화된 종교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는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사실 동료 프리스트와의 대결 구도를 예상했는데 민감한 부분은 뱀파이어 군단이 처리해 주었다. 폴 베타니가 맡은 프리스트 역할도 좀 더 종교적 계율과 인간적 성정 사이에서의 고뇌하는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졌어야 했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다. 블랙 햇과의 대결에서도 너무 일방적으로 얻어터져서 뱀파이어 전쟁에서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뱀파이어를 이겼는지 궁금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다 보고 나서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기대 중인 <혹성탈출>의 외전도 이럴까 봐 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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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 스무 살 때는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
박정석 지음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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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여행기인가? 휘바~ 책을 읽기 전부터 한 가지 나의 머릿속을 헤집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화내지 않는다는 거지? 책의 소개를 스캔해 보니 아마 혼자서 떠난 여행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나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강원도의 모처에서 닭과 개를 치고, 자그마한 농사를 짓던 지은이가 어느 날 돈오를 하고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한다. 머리말에 나오는 대강의 코스만 봐도 이거 범상치 않은 여행길이 되겠구나 싶다. 동시에 그렇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만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유럽여행이란 이제는 그야말로 판타지일 테니까.

자칭 중년의 인지 무능력자라고 칭하는 작가의 정체를 오해했다.  첫 번째 기착지인 터키 편을 보고서야 지은이가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책날개에 여자 사학을 나온 걸 봤으면서도 말이다. 아마 표지의 조금은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가방(?)을 뒤집어쓴 탓으로 돌리자. 그런데 그거 아나? 여행길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절대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걸. 몇 번의 여행경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알 테니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자.

사실 어떤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석 씨는 책을 더 풍부하게 해줄 아주 멋진 동료 여행자를 만난 셈이다. 그의 이름은 줄리안이라고 했던가. 천국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여행지에서 만난 동료 여행자와의 우연한 만남만큼 여행을 즐겁게 하는 것도 드물다.

사실 어떤 여행기를 읽어도 비슷하게 느끼는 거지만, 여행기에는 어떤 종류의 패턴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가. 그리고 코스는 어떻고, 어디 어디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어 남기자.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카메라가 필수적이다. 지은이는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소중한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통한의 체험을 했다. 아직 여행 다니면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공감이 잘 안 되지만,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이템은 카메라가 아닐까. 베네치아에서 비엔나로 오는 열차에서 홀랑 털린 친구를 도운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이제는 누구나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는 여행자의 필수품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격렬하게 공감한다. 사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여행지에서 일정 속에서 그때의 느낌이나 생각을 모두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기록자는 카메라가 꼭 필요하다. 나중에 기억을 머릿속의 창고에서 불러 오는데 그만한 장비가 없으니까. 게다가 예전처럼 필름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란 말인가. 본말이 전도된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여행자가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건 전투에 나선 병사가 소총을 잃어버린 것하고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거쳐 목적지 핀란드를 향해 거침없는 행군을 계속하는 지은이가 목적지로 다가갈수록 더해지는 여행의 피로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는 여행지에서의 사치로 맛있는 저녁 식사와 홀로 쓰는 숙소를 꼽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비용이 문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냥 문득 떠난 여행길을 기록으로 남긴 것일까? 아니면 여행 에세이를 찍을 작정을 하고 여행을 나선 걸까. 후자라면 출판사에서 지원을 받았을 테니 비용 문제는 다른 여행자들보다 낫지 않을까? 참 궁금한 것도 많다. 어쨌든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을 대비해서 항상 드는 의문이 바로 ‘그래, 여행 버젯이 모두 얼마입니까?’인데 불친절하게도 어느 에세이에서도 그런 걸 알려 주지는 않더라.

개인적으로 다른 여행지에 대서는 이미 다른 여행 에세이를 통해 접한 적이 있어서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여전히 낯선 발트 3국 편이 궁금했다. 다만, 최종 목적지 핀란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과감하게 생략하고 건너뛰어 좀 아쉬웠다. 물론 장기간 여행의 말미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라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하더라도 당장에 내 몸이 피곤하면 귀찮은 법이니까.

외국여행이 일반화되면서 범람하는 여행 에세이와의 변별점을 기대했는데 사실 그런 점은 별로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냥 동료 여행자의 편안한 글쓰기에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하긴 그런 평범함 속에 진리가 숨어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래도 유럽 여행은 무리인 것 같고, 가까운 곳이라도 한 번 바람이나 쐬러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보니 강원도도 내겐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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