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서평 도서가 도착했다. 정말 오래 간만에 다시 신간평가단이 돼서 이달부터 매달 두 권의 책을 리뷰하게 됐다. 그리고 보니 그전에 2기때 할 적에는 소설/문학이 아니라 인문도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적잖이 고생한 기억이 난다. 뭐 그래도 다 지나고 나니 좋은 기억이었지 싶다. 정말 그 시절에는 거의 매주 같이 책이 날아와서 책 읽으랴 리뷰쓰랴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룰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한 달에 두 권 정도면 되는 것 같다. 뭐 그 정도면 쉬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방심하지 말지어다. 

 

안그래도 궁금해 하던 김경욱 작가의 단편 소설집 <신에ㅐ게는 손자가 없다>가 너무 반가웠다. 몇 년 전에 책콩 카페를 통해 김경욱 작가와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가졌었다. 무슨 방송에선가 나와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찍어 갔던 것 같은데 물론 볼 기회는 없었다. 나도 예전에 한 때 방송공부를 좀 해서 그런진 몰라도, 텔레비전 카메라만 들이대면 기겁하는 분들에게는 항상 별거 아니니까 성의껏 대답해 주라고 권유한다. 물론 나에게도 카메라가 오면 사양하지 않고 말한다. 언젠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참 웃겼었다. 사실 인터뷰 한 번 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직접 만난 김경욱 작가는 소박하고 마음에 드는 인상이었다. 무엇보다 카페 사하라에서 우리 찻값을 대신내 주셔서 참 고마웠다. 그 때 급하게 카페로 달려가는 바람에 다 읽고 토론까지 했던 <위험한 독서> 싸인을 받지 못한 게 아쉽다. 이번에 언젠가 싸인회를 한다면 이 책하고 <위험한 독서>를 들고 가서 싸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인데 중간에 있는 <하인리히의 심장>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궁금하다. 당장 읽어야 하나?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히가시고 게이고의 책이다. 책읽기 기록을 뒤져 보니, 딱 1년 전의 게이고의 <탐정클럽>을 읽었단다. 그런데 그 <탐정클럽> 책의 내용이 뭔 내용인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8년에 읽은 <아름다운 흉기>는 오히려 더 생생하다. 흠,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는 <새벽 거리에서>는 과연 앞으로도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게 될지 어떨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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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2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콩 카페에서 활동하셨어요? 저도 몇 년 전에 꽤 활발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
두 책 모두 너무너무 기대되요.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 읽을 때 해설에 '잘 생기고 똑똑한 청년'이라고 그랬는데, 실제로 만나본 김경욱 작가는 어떻던가요? ㅎㅎ
아무쪼록 우리 잘 해내봐요! (제가 더 걱정이지만, 킁...)

레삭매냐 2011-10-28 09:03   좋아요 0 | URL
실제로 만나본 김경욱 작가님은 역시나 멋지더군요 :>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바로 읽기 시작해서 어느새 반절
이나 읽었습니다.
역시 글쓰실 줄 아는 분이라는...
 
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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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page-turner), 다시 말해서 정말 쉬지 않고 그렇게 재밌게 읽히는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새로 출간된 와다 료의 소설 <바람의 왼팔>은 전장에서의 낭만을 아는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고 페이지 터너다. 우리나라 역사 같았다면 바로 조사를 해봤겠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패스!

작년에 나온 <노보우의 성>도 아주 재밌게 읽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의 왼팔>이 더 재밌다. 1556년, 센고쿠 시대의 전란을 무력으로 평정하게 될 오다 노부나가가 아직 그 명성을 날리기 전이다.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도자와 가문의 하야시 한에몬이다. 그는 센고쿠 시대 기마무사의 전형으로, 적진으로 말을 달려 돌파하며 적장을 수급을 베는 ‘공로 사냥꾼’이다. 한에몬이 속한 도자와 가문이 이웃의 고다마 가문과 전쟁을 벌이다가 대패를 하고 만다. 물론 상대 진영에도 그에 못지않은 전사 하나부사 기베에가 있다. 역사에 언제나 등장하는 라이벌 구도다.

도자와 가문의 차기 성주 즈쇼의 엉성한 전략으로 초장에 대패하고, 적병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한에몬은 도자와와 고다마의 경계 산속에서 살던 사냥꾼 요조와 그의 손자 고타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자신의 은인인 고타로에게 보은하고 싶었던 한에몬은 고타로의 소원인 화승총 사격대회 참가를 허락한다.

압도적인 고다마 가문의 침공에 직면한 도자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을 가지고 농성전에 돌입한다. 농성전에 앞서 성 밖 마을을 점령한 기베에를 늙은 호위무사 기베에만 데리고 찾는 한에몬. 그리고 비열한 방법을 써서, 사실상의 적진 총사령관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병사들로 하여금 호위해서 성 안으로 무사히 들여보낸다. 와다 료는 소설의 곳곳에서 이렇게 멋진 무사간의 의기(義氣)를 칭송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에몬과 기베에는 상대방의 수급을 취하는 상상을 하며 짜릿해 한다. 무사간의 정을 나누면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적장을 베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사무라이의 본심을 작가는 적확하게 잡아낸다.

어쨌든 고타로가 가진 신기에 가까운 사격 실력을 알게 된 한에몬은 고타로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도자와 성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최종 비밀병기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자, 문제는 어리숙하고 순수한 고타로의 적개심을 어떻게 불태워 전장으로 이끌어내는가이다. 승리를 위해 한에몬은 비겁하지 말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버리고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와다 료의 <바람의 왼팔>은 소년만화 혹은 무협지에 등장하는 절세 고수의 등장으로 절대 열세인 전장의 승부를 한판에 뒤집어 버리는 내러티브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초전에서 수많은 병사를 잃고 대패한 도자와 가문은 압도적인 고다마 가문의 공격 앞에 전멸 위기를 맞는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방법으로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가 없다. 물론, 깁에도 시노비를 동원하는 암수를 쓰지만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 한에몬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고타로의 주무기였던 화승총의 등장에 주목했다. 센고쿠 시대까지만 해도 기마무사의 적진 돌격이야말로 농민으로 구성된 보병에겐 전차와 같은 위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저격할 수 있는 보병 무기인 화승총의 등장으로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센고쿠 시대의 무자비한 전란을 통해 개량된 화승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을 상대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조선군의 참패였다.

권력을 위한 음모와 사투가 뒤범벅이 된 센고쿠 시대의 사무라이는 상명하복과 주군에 절대 충성과 충돌하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고통 받는다. 게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스즈는 자신이 후일 섬기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주군 즈쇼에게 빼앗겼다. 게다가 전란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했던 고타로의 이야기, 기마무사가 되어 신분의 상승을 이루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겐타 그리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수하를 처형하겠다고 덤비는 성주 도시타카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는 욕망의 도가니탕이다.

작가는 그런 센고쿠 시대 사무라이들의 낭만을 소설의 메인 테마로 삼지만, 과연 그 시대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좋은 시대였는지 묻고 싶다. 사무라이들이 칼날을 시험해 보겠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베어도 죄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봉건영주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군관계의 하부구조에 위치해 있던 사무라이에게 백성을 그저 수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이웃 영주와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도 역시 농민 중에서 충당했다. 소설에서 패배한 한에몬과 산쥬로를 쫓는 패잔병 사냥꾼 역시 전공을 노린 농민이 아니었던가.

너무 소설의 중심이 너무 하야시 한에몬에게 집중되다 보니 “신의 왼팔” 고타로의 비중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하긴 와다 료 작가의 본심이 센고쿠 시대 무사의 정신세계를 독자에게 보여주겠다라는 점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고타로는 작가가 원한 무사가 아니라 그저 철부지 십대 소년이었으니까. 어쨌든 의리에 죽고 사는 싸나이들의 치열한 투쟁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리고 재밌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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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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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대한 책 소개를 들었다. 사실 천 쪽 가까운 책을 누가 읽을까 싶었는데 지난 월요일 시중에 풀리고 나서 단박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초판으로 10만부를 찍었는데 물량이 달려서 8만부를 더 찍었단다. 어느 대형서점에서만 8,000부를 주문했다고도 한다.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고 팔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사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읽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언제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맛보기로나마 이렇게 알아 두면 스티브 잡스의 삶에 대해 아는 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로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선 이 책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부터 작업을 한 책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포괄해서 100여명으로부터 직접 취재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쓴 책이다. 물론, 스티브 잡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스티브 잡스의 기행과 괴팍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자신이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만든 애플로부터 쫓겨난 사실을 비롯해서, 자신의 친딸인 리사를 부인하기도 했다. 친자확인 결과 95% 이상 친자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결국 화해를 했다고 하던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요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은 사실이 아닌가 싶다.

그는 특히 사람들을 천재와 바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고 한다. 자신을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로 생각하면서, 애플 2, 맥킨토시, 아이북, 아이팟, 아이패드 그리고 아이폰에 이르는 수많은 제품을 돈을 벌기 위한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생각했고, 자신이 직접 설립한 애플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놀랍군!!!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자신과 같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했다.

1980년 애플을 기업 공개했을 때, 초창기 애플의 개국 공신들은 애플 지분으로 단박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동료에게는 전혀 지분을 주지 않아, 다른 이들이 자기 몫으로 돌아온 지분을 나눠 주자고 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얼마를 줄 거냐고 했을 적에 당당하게 0%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위에서도 말한 대로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가치판단 시스템(천재와 바보)으로 한 스티브 잡스의 사고를 설명해준다.

애플 신화를 창조한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 줄 아는 천재였다. 워즈니악에게는 없던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해서 소비자의 기호를 자극했고, 그가 만들어낸 제품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와 환호를 받았다. 제록스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GUI 시스템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에 적극적으로 탑재하면서 이제는 표준으로 자리잡지 않았던가. 아이팟의 경우에도, 기존의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이 이게 돈이 되겠어(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라고 생각한 기술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아이폰의 와이드스크린 펑션도 마찬가지다.

생의 마지막 14년 동안, 애플로부터 매년 1달러의 연봉을 받은 것도 세간의 화제였다. 문제는 스티브 잡스에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영속과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천재에게 돈줄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 주식 배당금으로만 매년 4,8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그러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CEO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오로지 완벽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대중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었다.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난 시대의 풍운아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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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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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뒤표지의 빼어난 ‘가족 소설’이라는 책소개가 눈에 띈다. 그런데 할런 코벤의 장르 소설이 가족 소설이란 말이지. 이거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교외에 사는 마이크 바이 가족을 줄기로 해서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이상하게도 미국 사회는 이혼이 일반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라는 단위 구성이 중요한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할런 코벤은 바로 그런 미국 사회에서 가족이 갖는 단점과 장점을 소설 <아들의 방>을 통해 멋지게 보여준다.

소설에서 한 편에서는 납치와 살인, 협박이라는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구성 요소가 등장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애라는 전통적 가치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모성애가 충돌한다. 자수성가한 내과의사 마이크 바이는 아들 애덤이 절친 스펜서의 자살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더 서먹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한편, 애덤의 엄마이자 유능한 변호사 티아는 아들이 걱정되어 아들의 사생활까지도 감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스파이 프로그램으로 아들의 이메일, 메신저 등등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족 간의 신뢰의 고리가 붕괴된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의 그릇된 결정이 사건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마이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가 하는.

마이크의 딸 질의 친구 야스민은 학교에서 조 루이스턴 선생님에게 폭언을 듣고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조숙한 야스민의 친구 질은 그런 야스민을 위로한다. 야스민의 엄마 매리앤은 바람이 나서 딸과 자신을 숭배하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한편, 마이크는 이웃에 사는 단테 로리먼의 멋진 와이프 수전의 아들 루커스가 사실은 단테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 아버지에 변호사 엄마를 둔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애덤은 막무가내로 가출을 감행하고 마이크는 아들 구하기에 나선다.

이런 게 21세기 미국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란 말인가? 아무리 모든 가정은 제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가정 중에 정상적인 가정은 하나도 없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할런 코벤은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한 이래 계속되어온 절대 가치를 소설을 통해 재현한다.

마이크 바이는 합리적인 이성의 소유자로 스파이 프로그램의 설치가 과연 아들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다. 하지만, 아들이 위기에 빠지자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왕년의 가락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자신의 가정에 위해를 가하려는 악당에게 한 치의 망설이 없이 돌진하는 그런 마초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트머스 칼리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출신답게, 마이크는 클럽의 기도이자 자신의 동문 앤서니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좋은 학벌이 중요한 걸까? 클럽 기도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교적 양호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미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들의 방>은 절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어떤 어른들은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청소년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클럽 재규어를 운영하는 로즈메리 맥디비트라는 팜므 파탈이 그런 예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술집에서 만난 매리앤과 대형마트에서 만난 레바 코르도바를 차례로 납치해서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내시와 피에트라 2인조의 활약은 <아들의 방>이라는 미스터리 소설에 독자를 홀리게 만드는 핵심적인 동기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하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카산드라를 잃은 슬픔에 결국 파멸적인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 내시의 운명에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변호사 티아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프로페셔널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이름만 들어도 바로 유대계라는 점을 알 수 있겠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인신의 구속과 증언에 관한 미국 내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의 프로 근성에 그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원칙에 충실한 필요가 있다. 물론, 헤스터는 자신의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은 티아는 가차 없이 잘랐지만.

사건의 다른 방향에서 연쇄살인 사건 해결을 도모하는 로렌 뮤즈의 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유능한 여성 형사과장의 활약과 경륜은 많지만 사건의 초동 대처에 실패한 트레몬트 형사의 첨예한 맞대결도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는 없다는 격언대로 이 무능한 트레몬트 형사도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수확을 올린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참 먼 길을 돌고, 다양한 사건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가족의 소중한 가치로 환원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스톨은 바로 이런 가치관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날린 퍽(puck)처럼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리 빼고, 저리 빼지 않고 단도직입적인 이런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올디스 굿디스’라는 말처럼 일견 진부해 보여도 역시 조금 늘어난 티셔츠가 편한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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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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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재구성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허구와 사실의 혼재 속에서 퍼올리는 작가의 이야기야말로 김훈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니었던가. 여전히 작가의 삶이 보여주는 궤적은 불편하지만, 그의 책은 재밌다. 그리고 제목만 역사에서 채취한 <공무도하> 같은 현대물보다 아무래도 역사소설이 더 좋다. 그러니 <흑산>을 읽을 수밖에.

인터뷰에서 김훈 선생은 <흑산>을 주인공 없는 소설이라 했지만, <흑산>은 사학(천주교)을 신봉한 죄로 흑산도로 유배된 자산 정약전과 정부 당국에 의해 사학의 수괴로 지목된 자산의 처조카 황사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물이라는 매개로 작가는 남해 고도 흑산도에 유배된 서울 선비 자산 선생의 행장을 정씨문중 삼형제의 고향 마재(두물머리)로 연결시킨다.

개혁군주였던 정조 시대에 사마시에 급제한 황사영은 신분의 이동을 반상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가로막았던 악랄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태어난 불우한 소년천재였다. 그의 재기를 알아본 정약현은 일찍이 자신의 딸인 명련과 짝을 지운다. 고금의 경서가 아닌 사물을 통해 진리를 구하는 도를 깨닫게 된 어린 사위에게 처삼촌 약종은 천주의 교리를 알려준다. 그렇게 가문과 개인의 비극은 시작된다.

정조가 죽고 난 뒤, 대권을 장악한 영조의 계비 정순대비(貞純大妃)가 섭정에 나서면서 조선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학, 천주교와의 일대 대결을 선언한다. 중국에서 천주교 선교를 위해 밀입국한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고, 조상의 제사를 폐하고 공화 세계를 주창하는 사학의 무리를 일소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한다. 순조시대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작가는 지식인 계급은 물론이고, 마부와 뱃사공들을 상대하는 강사녀, 퇴직한 늙은 궁녀 같이 신분제 질서 내에서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던 백성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대의 흐름을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필력으로 형상화한다.

공화세상의 도래라는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의 반동이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 흑산도로 유배되어 다시는 중앙 정계 아니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은지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던 자산 선생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훈 선생은 뭍의 질서와는 다른 물의 질서에 맞추어 사는 이들의 삶을 고찰한다. 구백 리 물길을 거쳐 도착한 흑산의 실질적인 지배자 오칠구 별장의 횡포와 미역과 농사로 근근이 먹고 사는 백성을 갈취하는 벼슬아치의 가렴주구의 실체를 엿볼 수가 있었다.

흑산의 주민을 괴롭히는 고등어와 소나무 수탈과 갈취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물사람들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린 소나무가 땅을 뚫고 나오는 족족 뿌리채 캐어 냈을까. 유배 죄인을 호송하는 관원이 흑산에 오자 섬사람들이 말리던 미역을 거둬 산으로 도망간 이유가 관리들의 수탈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고등어 다섯 마리를 몰래 감추었다고 옥섬에 가두는 장면에서는 정말 기가 찼다. 이런 백성의 고통과 피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 수호와 유지에 급급한 정순대비로 대변되는 기득권층과 세도가의 폭정이 민본을 중시하는 조선의 국시에 들어맞는지 묻고 싶었다. 유랑걸식하고 굶어죽는 백성을 보듬지 못하는 왕조국가 조선의 운명을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천주교도였다가 살기 위해 배교하고 개전한 박차돌이라는 캐릭터는 박해에 직면한 사학쟁이들의 운명을 더욱 더 가혹하게 몰고 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돈으로 공명첩을 사들인 박차돌은 관직에 진출했다가 사학에 빠졌다는 이유로 죽을 뻔한 위기를 배교와 관련자를 부는 조건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다. 우포도대장 이판수는 박차돌을 간자로 이용해서 사학의 괴수 황사영을 체포하고, 사학의 무리를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박차돌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이 천주교도로 체포되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장살시킨다.

이런 적극적인 박차돌의 배교는 과연 김훈 선생이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선택의 문제였을까. 비슷한 경우로 역시 살기 위해 처조카 황사영을 불었던 선왕 정조의 총신 정약용에 대해 작가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결국 체포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는 황사영과 신앙을 버리지 않고 결국 참수된 가형에 대해 이 위대한 유자(儒者)의 변명이 듣고 싶었다. 또 다른 유자는 멀리 흑산에서 풍진세상을 잊고 물고기 관찰을 통한 격물치지로 소일한다. 조정에서 퇴출되어 유배길에 오른 선비에게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읽을 책도, 담소를 나눌 벗도 없는 절해고도의 삶은 참담하다. 자산이나 고등어를 빼돌렸다가 옥섬에 갇힌 마을 어부 장팔수의 운명이 다를 게 무어인가. 



(김훈 선생이 직접 그리셨다는 "가고가리", 수억만년 시공을 건너서 가고 또 간다는 뜻이란다.) 

작가의 또 다른 역사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그랬지만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불편했다. 아무리 남존여비 사상이 일반적이었던 조선후기라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여성성의 묘사가 아쉽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면 강사녀나 아리 같은 캐릭터에 비중을 두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냥 문득 성리학적 질서를 국시로 삼고 있던 조선시대에 천주교도로 개종한 유자가 과연 영적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상의 신분질서 유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회에서 군주와 노비가 평등하다는 사상은 이단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문자로 만민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수용한 유자도 무시무시한 치도곤이라는 실질적 폭력 앞에서는 한낱 목숨을 구걸하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김훈 선생은 살과 피가 터지는 매 앞에 장사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이들은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은 냉혹했다.

이 모든 과정을 김훈 선생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필치로 멋지게 그려냈다. 내공이 담긴 선생의 인간 드라마는 그래서 묵직하고 진중하게 다가왔다. <흑산>과 함께 한 10월의 어느 주말은 그래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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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2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이 이 서재에 리뷰로 속속 보이니, 군침 돌아요 ㅠ ㅠ
제가 [칼의 노래]를 안 봐서 그런데 여성에 대한 시선이 그리 불편한가요?
김훈 단편 중에 [언니의 폐경]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부지런히 읽고 계시군요. 저는 잠시 방황하다 왔어요 ^^;;

레삭매냐 2011-10-28 09:04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는 정말 ~~~ 마초 스탈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덜 그렇지만요.
몰랐던 역사적 사실(신유박해) 그리고 황사영 백서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