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 멸종 오리 찾아서 지구 세 바퀴 반 지식여행자 시리즈 3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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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상한 제목의 책은 캐나다 출신의 조류학자 글렌 칠튼이 19세기에 이미 멸종된 래브라드 까치오리(이하 까치오리)의 박제라도 보겠다며 전 세계를 3바퀴반이나 돌면서 직접 쓴 육필기록이다. 전 세계에 박제된 상태로 남아 있는 54마리, 아니 53마리의 까치오리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 하에 괴짜 조류학자는 고난에 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제목을 이 책의 원제인 <래브라도 까치오리의 저주>라고 번역했다면,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번역서의 제목 한 번 기차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렌 칠튼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멸종된 까치오리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 봤다. 참 좋은 세상이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란 사이트의 정보에 의하면 지구상에 더 이상 산 채로 존재하지 않는 까치오리는 주로 북아메리카의 북동부 지방에 살았으며, 1850-70년대에 이미 희귀종이었다고 한다. 왜 까치오리가 멸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75년에 마지막 까치오리가 총에 맞은 것으로 지구상에 더 이상 살아 있는 까치오리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수집의 매료되어 '집착의 길에 들어선 글렌 칠튼 박사는 브룩본드 식품사에서 만들어 팔던 수집용 카드에서 만난 까치오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29년간 대학 강단에서 조류학자로 강의에 매진하던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까치오리를 보겠다는 신념으로 구도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의 까치오리 탐사여행은 자못 진지하다. 세계 각처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까치오리와 그 알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대로, 글렌 칠튼 박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락해서 멸종된 까치오리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글렌 칠튼의 연구 중 상당 부분은 그 이전에 이미 직접 까치오리 둥지를 찾아 나선 미국 조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1963년에 <사라진 새는 어디 있는가?>를 펴낸 폴 한(Paul Hahn)이 바로 그다. 전자가 실질적인 까치오리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직접 래브라도 탐험에 나섰다면, 후자는 글렌 칠튼 교수 연구의 전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저자가 실제로 행한 DNA 분석은 그동안 까치오리의 알이라고 알려진 가짜의 정체를 세상에 폭로한다. 글렌 칠튼 박사는 역시 학자답게 꼼꼼하게 처음 만난 까치오리의 박제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단순하게 까치오리 자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까치오리의 박제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또 누가 까치오리를 박제했는가에 대한 상상가능한 모든 정보를 요구한다. 단순하게 생물학적 차원의 연구가 아닌 인문학을 넘나들며 연구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확장하는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괴짜 조류학자인 글렌 칠튼 박사와 어쿠스틱 여행을 하며 독자는 까치오리 뿐만 아니라 까치오리들이 보관되고 있는 각종 박물관 등등에 대한 실체를 접하게 된다. 어떤 녀석들은 박제사의 창의력에 따라 훌륭하게 본박제로 살아 있을 당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들은 쥐나 해충의 공격을 받아 가짜 발을 가지고 있거나 원래의 색도 아닌 조잡한 칠을 뒤집어 쓴 가박제의 상태로 존재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본박제보다 가박제 상태가 연구가들에게는 더 유용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같은 조류학에 대한 문외한에게는 좀 더 전시와 보관에 손이 가는 본박제가 더 멋지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글렌 칠튼 박사의 까치오리 탐사를 좀 더 재밌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박사의 글쓰기 능력이다. 여느 박사처럼 젠체하지 않고, 때로는 자기 비하를 남발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맞다, 그 전에 앞서 빌 브라이슨이 있었다. 생리학 박사인 아내 리사의 연구여행에 동참해서 누드화 앞에서 공짜 와인을 즐기며, 자기가 탐내는 까치오리를 마음껏 주무를 생각에 흐뭇한 그의 모습은 연구가의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뭐 물론 모든 연구가들이 그의 족적을 따라 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괴짜 조류학자의 발로 하는 까치오리 탐사는 재밌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직접 가보지 않아도 디지털 정보로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어디서나 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글렌 칠튼 박사는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진정한 연구가라면 자신의 연구의 대상을 직접 만나 봐야 한다고 자신의 발로 입증한다. 모두가 박사의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그런 어쿠스틱스타일이 참 마음에 든다. 이 괴짜 조류학자의 다음 번 탐사여행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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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잡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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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그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읽었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빅 픽처> 그리고 <템테이션> 같은 소설 대신 이번에 새로 출간된 <더 잡>으로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최신작은 아니고 1998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글 같은 직장 생활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뉴욕 생활의 정수를 오롯하게 뽑아낸 수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컴퓨월드>라는 컴퓨터 잡지 세일즈를 전담하는 잘 나가는 광고지국장 네드 앨런은 오늘도 광고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연말에 지급되는 보너스를 위해 오늘도 그는 달린다. 메인 주 출신의 촌뜨기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뉴욕에 둥지를 튼 후, 그 누구보다 성공의 사다리를 향해 질주해왔다. 그렇게 해서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만나게 됐다. 이렇게 나간다면 소설 <더 잡>이 독자의 시선을 끌 이유는 없겠지. 바로 그에게 만만찮은 시련들이 시리즈로 닥치기 시작한다.

 

먼저 직장 동료 이반 돌린스키가 맡은 광고가 펑크가 나면서 그의 즐거운 연말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잡지 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최고 물주 중의 하나인 <GBS>의 광고담당 이사인 테드 피어슨이 초를 친 것이다. 아슬아슬한 도덕적 기준을 넘나들며, 반협박으로 그에게 다시 광고를 수주해서 위기를 넘기는 네드 앨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업계 3위로 고급독자를 상대로 나름 잘 나가던 <컴퓨월드>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모회사인 게츠브라운의 독일 상사는 네드 앨런에게 발행인 자리라는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던진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이끌어준 발행인 척 자누시에게 조금 거리낌이 없지 않지만,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든 것들이 주인공 네드 앨런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겠지만, 역시 이 소설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로 그 성공의 순간, 네드 앨런을 나락으로 떨어 뜨려 버린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컴퓨월드>를 인수한 업체는 업계의 경쟁업체였고, 가차 없이 <컴퓨월드>는 폐간의 운명에 처하고 기존 직원들은 모두 정리해고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에게 달콤한 약속을 했던 상사를 폭행한 네드 앨런은 해당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만다. 위기에 순간에 나타난 고향 친구 제리 슈버트에게 빌붙어 재기를 도모하지만,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준 친구가 실은 더할 나위 없는 악당이란다. , 네드 앨런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은 탄탄한 구성과 확실한 캐릭터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가 장점인 소설이다. 우선 캐릭터 면에서 주인공 네드 앨런을 자신의 업무에 유능하면서도 부하 직원들을 잘 다독일 줄 아는 멋진 상사로 작가는 그린다. 아마 누구나 직장에서 이런 상사와 함께 꿈꾸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 동료 이반의 치명적 실수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들의 사립학교 등록금 때문에 절절매는 데비 수아레스를 위해 보증을 서주고, 나중에 자신의 퇴직금에서 공제된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네드 앨런은 그야말로 소시민적 영웅의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도 인간인 만큼 실수도 곧잘 저지른다. 우선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아내와의 휴가에서 필요 이상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보통 사람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해도 되는 과소비를 성급하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랬다면 소설의 전개가 독자의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욱하는 성격에, 뒤를 생각하지 않고 독일인 상사를 때려눕힌 일이다. 고소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재취업하려는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네드 앨런의 더 큰 위기는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잡은 제리 슈버트가 알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에게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버진 아일랜드, 바하마 등지로 미국에서 검은 돈을 운반하고 세탁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 주인공. 이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위기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는 살인혐의에 조세회피 같은 중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소설의 주인공 네드 앨런이 위기에 빠졌을 때, 생각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어떻게든 성공하게 된다?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아직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 비교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나락에 빠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일련의 과정이 그의 소설에는 주를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과연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위기에서 생각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한 까풀 들춰내면, 냉혹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의 제목처럼 일자리는 현대인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공과금을 비롯한 각종 비용, 문화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일터에서 치환된 노동의 대가다. 그렇게 중요한 일자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주인공 네드 앨런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아내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자질구레한 문제들도 산적하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자신 있게 소설의 제목을 <더 잡>(일자리)으로 정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지인에게 권했다. 지인 역시 책을 읽으며 재밌다는 평과 함께 제목이 너무 모호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공감한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이래서 소설에 대한 상상은 끝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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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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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온전하게 상실과 무자비한 국가주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화양이라는 마을에 빨간 눈의 괴질이 퍼져간다. 전국으로 퍼져가던 구제역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처럼 인수공통 전염병인 이 병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시시각각 퍼져가는 공포 앞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무장해제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유정은 이 아수라장 속에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링고)를 투입한다. 무대와 주인공이 정해졌으니, 이제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가 폭발할 순서다.

 

예전에도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내 심장을 쏴라>였던가,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하다. 이전에 나온 <7년의 밤>은 읽지 못했다. 아니 베스트셀러에 심드렁한 나의 기질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 없이 강한 <28>은 안보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다.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서 서재형은 자신이 아끼는 개들을 모두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속죄의 마음으로 조국에 돌아와 드림랜드에서 유기견을 죽음에서 구해내고, 치료하는 일에 전념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의가 모두에게 좋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민완기자 김윤주의 기사로 졸지는 그는 선의의 천사에서 품의 없는 개장수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멋진 갈등구조의 설정이다.

 

디스토피아 소설 <28>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책임의식과 사명감 불타는 한기준 대원, “수진으로 불릴 정도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하며 열심인 노수진 간호사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이질적인 요소인 박동해까지. 마지막으로 서재형과 교감을 나누며 소설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조이는 키팩터(key factor)로서 링고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28>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부여받은 임무를 멋지게 수행한다. 개백정 악당으로 나오는 박동해는 어려서부터 엄혹한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 때문에 일탈의 전형을 선보인다. 좀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그는 다른 주인공들을 가해하는 악행을 일삼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약간 엿보이지만, 유년시절 이래 부모에게 쌓인 분노는 결국 파멸을 부른다. 그에 비하면, 초반에는 대척점에서 서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빨간 눈 괴질이 불러온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서로의 존재를 수긍하게 되는 서재형과 김윤주의 관계는 가변적으로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한기준이다. 공수부대 출신의 이 남자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일에 매진한다. 하지만 모든 파괴되는 시간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구하지 못한 그에게 남은 건 순수한 분노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주범이 개가 퍼트린 것으로 보이는 전염병과 그 매개체인 개라는 판단이 들자 그는 분노는 특정한 대상에 쏠린다.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는 필연적으로 비극을 잉태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살아야겠다고 환자 돌보기를 거부한 동료를 대신했던 노수진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 역시 비극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운명에는 공통적으로 상실의 그림자가 그늘져 있다. 괴질로 철저하게 외부와 고립된 화양에서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연명하는 수라장이 된 공간에서 상실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죽음은 무시로 달려든다. 마땅히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야 할 당국은 화양 시민들을 외면한다. 우리의 합의 아래, 구성된 조직이 도움을 거절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당국이 약속한 것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화양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대신 그들에 대한 제재 하나만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런 국가주의 폭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소설 곳곳에서 분출된다.

 

대신 화양을 고립 봉쇄시키고 봉쇄선을 탈출하려는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한다. 그에 비하면 진압작전 초기에 무자비하게 살처분된 개들은 차라리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속수무책으로 불가해한 신의 징벌을 받아 들여야 하는 미약한 존재가 결국 인간이었던 말인가.

 

인간사의 비극이 이렇게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한다면, 쿠키-스타 그리고 링고와 인간 서재형으로 이어지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쿠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박동해를 막아서고, 완전무장하고 아무 죄 없는 개들을 살처분하려는 병사들에 맞서며 결국 자기희생으로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서재형의 모습에 독자의 감정은 극한으로 내달린다.

 

글쓰기의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심모원려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의료계를 뛰어넘어 날로 확장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수년을 보낸 작가만큼 리얼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비유하고 묘사할 수 있는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장황한 설명 대신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정유정 작가의 작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체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이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올해 만난 우리 소설 중에 가히 최고라 해도 부족함을 없을 것 같다.

 

201382일 금요일 1318분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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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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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유혹?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이 읽고 싶었다. 게다가 어제 들은 문학동네 팟캐스트 채널1 문학이야기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복귀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의 책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민음사에 이문열이 있다면, 문학동네 대표작가로 김영하가 자리매김하게 되는 건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팟캐스트로 책의 저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해서, 사실 책읽기는 어쩌면 내가 들은 것의 점검 정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와 그리고 날카로운 예봉의 평론가의 포인트를 듣고 나니 책읽기의 재미가 배가 된다. 저자의 우려 대로, 비슷한 제목인 아멜리에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150쪽 남짓의 경장편인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은퇴한 살인자가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주인공 김병수는 25년간 그만 둔 살인을 다시 결심하는 걸까? 은퇴를 번복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대두된 심각한 문제 하나가 있다. 그는 지금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 현대적 병명으로 치환하자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말이다.

 

이미 이 지점에서 책은 충분히 독자로 하여금 흥미로움과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전직 수의사인 이 연쇄살인범은 아마추어 시인이자, 고전읽기를 즐기는 문인이다. 이미 십대에 폭력가장인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은퇴시켰고, 그를 시발로 살인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대인 1960~70년대는 체계적인 과학수사 따위는 없었고, 사로 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무대를 휘저을 수가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매혹적인 것이 살인이었노라고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자는 담담하게 때로는 냉혹하게 기술한다.

 

작가는 초반부터 대놓고 은퇴한 살인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치매환자라고 선포하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놓은 교묘한 덫에 바로 걸려 버린다.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정신에 대해 독자는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순간의 착란이야말로 작가가 야심차게 준비한 반전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그야말로 김병수가 잃어가는 기억처럼 한땀한땀 써낸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은 순수한 악의 본질을 관통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결코 싸워 이길 수 없는 존재인 시간이야말로 이 소설의 중심이다. 주인공 김병수는 그리스 고전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오이디푸스를 비웃으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다. 그에게 영화까지 만들어진 살인의 추억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조여 들어오는 시간의 압박에 맞서 기록을 하고, 심지어 녹음까지 하며 필사적으로 맞서지만 한 때 무시무시했던 연쇄살인범의 승부는 이미 갈려있다. 다만 타이밍의 문제다. 그가 남긴 기록조차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는 무시로 간과한다. 실제 생활에서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이 역시 문학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어쩌면 이 점이야말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아직까지 김영하 작가의 다른 소설을 충분히 접해 보지 못해, 비교평가가 어렵지만 전작들에 비해 유머가 늘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이 노련한 살인자는 교양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유머도 갖췄다. 일본 방문길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공항직원의 질문에 그는 당당하게 “killing people"이라고 대답하고, 질문자는 ”healing people"이라고 잘못 알아듣는다. 촌철의 유머가 빛나는 장면이다.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 강사도 시원찮으면 은퇴시켜 버리겠다는 그의 독백이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전자가 밝은 차원의 유머라면, 후자는 블랙유머 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살인자 김병수가 살인을 그만 두게 된 계기가 마지막 살인 후,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했는데 소설에서 그 뒤의 삶에 대한 설명부족이 좀 아쉬웠다. 살인자는 그 뒤에 어떻게 먹고사니즘을 해결했지? 소설을 보니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어 보이는데, 궁금하다. 그리고 팟캐스트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역사적 특수화라는 점으로, 한국화된 시리얼 킬러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좀 더 그 부분에 대해 다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정의를 행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덱스터와 김병수의 차이점은 무얼까.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주지 않았지만, 체포와 처벌을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물을 제거하는 냉혹한 시리얼 킬러가 어느새 문학에서 하나의 클리셰이(cliche)의 전당에 주인이 된 건 아닐까.

 

기억을 잃어가는 이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물 건너갔고, 지금인 현재도 같은 운명이다. 그에게는 역설적으로 미래기억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미래기억 역시 소멸을 전제로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렇게 존재의 소멸을 모른 채 혹은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짓궂은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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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의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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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쌩뚱맞긴 하지만, 내가 아는 오로라는 오래 전 만화에 나오던 오로라 공주와 역시 요즘 개연성 없는 전개로 황당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동명의 드라마 이렇게 두 개다. 이공계 출신으로 전업 사진가인 <신의 영혼 오로라>의 저자 권오철 씨는 이 책의 서두에서 유성우와 개기일식 그리고 오로라야말로 살면서 한 번 쯤은 꼭 봐야할 자연현상으로 꼽는다. 문제는 오로라를 보러 갈 시간도 그리고 금전적 여유도 없는 보통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사진으로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분이니 우리 같은 먹고사니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러움마저 든다.

 

남북의 극지방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오로라 현상은 태양의 대전입자의 일부가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 중으로 진입하면서 공기분자와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대규모 방전현상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태양과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오로라대(aurora oval)에서 주로 관찰된다고 한다. 권오철 씨는 극지방에서 주로 관찰되는 아름다운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추천한다. 그래서 아예 책의 표지에 보면,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이라고 나와 있다.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라 이공계 출신 저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사실 잘 모르겠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일까. 아무래도 관심 밖의 일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대신 오로라 사진 찍기나 극지방의 엽기체험 같은 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정유정 작가의 <28>을 읽으면서 예전에 갔던 퀘벡에서 개썰매 체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옐로나이프에 가게 된다면 오로라를 기다리는 낮시간에 그런 체험을 해봤으면 하는 상상도 해봤다.

 

대신 직업 사진가로서 작가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가 찍어서 책에 실은 대개의 사진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평면 렌즈가 아닌 광각렌즈나 어안렌즈였다. 사물을 왜곡시킨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미인의 드레스 자락처럼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 장관을 담기에는 평면렌즈보다는 아무래도 광각 혹은 어안렌즈가 적합하겠구나라는 생각을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하게 된다.

 

얼마 전, 영월 고씨동굴에 다녀왔는데 동굴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가 동굴 안과 밖의 온도차로 발생한 습기 때문에 동굴 밖에 나와서 전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날까지 습해서 카메라를 말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되짚어 생각해 보니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초보 카메라 애호가에게는 별무소용이었으리라.

 

오로라 전문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권오철 씨는 오로라에 대한 설명과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가장 관찰하기 좋은 최적의 시기와 장소 같은 귀중한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지 않았다면 알 수가 없는 그런 정보라고 생각한다. 말미에 그는 다시 한 번 평생에 한 번은 오로라를 봐야 한다고 권하고 있는데, 나의 이성은 나도 한 번은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럴 수 없는 현실 간의 깊은 괴리의 바다에서 고민한다. 그저 이렇게 책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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