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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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분더킨트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는 <모든 것이 밝혀졌다>로 처음 만났다. 그의 데뷔작이었다. 우리나라에는 9-11 사건과 드레스덴 대폭격의 트라우마 속에서 사는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한, 두 번째 작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하 <엄청>으로 표기)이 먼저 소개됐다. 두 소설 모두 영화화되었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우크라이나로 떠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소설과 영화 봤다. <엄청>은 아직 영화로 만나 보지 못했다.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 셸은 9 살배기 꼬마다. 그는 아버지 토머스를 9-11 사건(2001)으로 잃었다. 책의 나오는 빌딩에서 떨어지는 어느 사람의 이미지는 그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소년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곤충과 우주 그리고 발명하기를 좋아하는 오스카는 아버지의 유품 중에 꽃병에 담긴 열쇠를 발견한다. 오스카가 사는 뉴욕에만 16천만개가 넘는 자물쇠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또 다른 단서인 블랙이란 사람의 이름을 바탕으로 자물쇠 수색전을 시작한다. 아무리 미국의 뉴욕이라지만, 일개 꼬마가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낯선 사람을 찾아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오스카가 <엄청> 소설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라고 한다면, 또다른 서사의 한 축은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머스다. 독일 드레스덴 출신의 토머스는 유서 깊은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폭격(19452)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는다. 자신의 가족, 사랑하는 연인 애나 그리고 애나가 임신한 아이까지. 히로시마 원폭보다 더 파괴력이 강했다는 드레스덴 대폭격에 대한 작가의 기술은 현현된 지옥도를 떠올리게 한다. 홍학을 잡아먹는 사자, 피부가 녹아내린 피해자들, 아수라장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들은 9-11 사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빌딩이 무너져 내리기 전,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같이 뛰어내렸다고 했던가. 분더킨트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런 가공할 만한 폭력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단순한 전개를 서술한다. 모든 것의 시발인 정치적 요소는 배제하고, 그저 현상만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전에 자상했던 오스카의 아버지 토머스가 가업을 물려받아 보석상인으로 일하면서, 뉴욕타임즈나 타임의 오자 찾기 놀이(진정한 교열자)를 책에 구현한 빨간 똥글뱅이를 보면서 처음에 나는 도서관에서 먼저 이 책을 빌린 독자의 만행이라고 생각하고 규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책에 곳곳에 등장하는 타이포그래피와 더불어 작가가 고안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만 무안해지기도 했다. 이 작가, 만만하게 볼 위인이 아닌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커트 보네거트를 꼽는다. 미국 출신의 반골 작가는 전쟁 중에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할아버지 토머스와는 달리, 그는 이 참상을 목격하고 적극적으로 문학(<5도살장>)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할아버지 토머스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말하기를 그만 둔다. 말을 할 수가 없게 된 그는 빈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필담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그 뿐인가, 삶이 죽음보다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 임신한 아내를 두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한 세대를 건너 뛴 할아버지 토머스는 아들 토머스가 죽은 다음에 다시 뉴욕에 나타나 손자 오스카와 조우한다.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수많은 편지와 함께. 소설 초반에 할아버지 토머스와 오스카의 이야기 그리고 오스카 할머니이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면서 조금 헷갈린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나는 왜 오스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작가가 복잡하게 만드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단서라도 되듯, 자물쇠와 열쇠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열쇠 구멍 사진을 보며 난감했다. 무언가 비밀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자물쇠를 여는 순간의 희열을 기대하도록 풋내기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잔뜩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 다음은 말하지 않으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보다, 주변의 것들이 더 신경쓰이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들도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지만, 10년에 이미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미국 소년 오스카의 물질 조건에 더 관심이 갔다. 잘 나가는 변호사 엄마를 둔 덕분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비용에 대한 걱정 없이 택시를 타고 자물쇠 수색에 나서고, 낯선 꼬마가 찾아와도 놀라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나중에 오스카는 엄마가 모든 걸 셋업해 두었다고 추정한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영국출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게 끊임없이 편지 쓰고 마침내 답장을 받아내고야 마는 장면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불가능한 일에 대한 또다른 형태의 희망고문이 아닐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고인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감정몰입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너무 무리하게 어린 소년에게 이십대 청년의 생각과 조변석개하는 감정을 우겨 넣은 건 아닌지 궁금하다. 지나치게 조숙한 아이의 사고와 태도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저 아버지를 상실한 아이의 시선만으로 치부하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허핑턴 포스트의 아니스 쉬바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를 줌파 라히리, 주노 디아스 등과 함께 당당하게 15명의 가장 과대평가된 현대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9-11 사건에 얄팍하게 편승한 독창성(originality)이 결여된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미국에도 문학권력이 존재한다면 프린스턴 출신에 미국 문학계를 주름 잡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애제자인 분더킨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엄청>을 읽었지만 여전히 특별한 감흥 대신 기교감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이려나. 남편이 그렇다면 그 부인인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참고로 <엄청>은 그의 엄청나게아름다운 여신인 부인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뱀다리] 그런데 뭐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깝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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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의 경제학
헨리 조지 지음, 전강수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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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끈 이슈가 바로 경제민주화였다. 사회에서 생산된 부의 불공정한 분배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선거를 앞둔 각 정당의 고민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에 대해 이미 130년 전에 치열한 고민을 한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회문제의 경제학>의 저자 헨리 조지다.

 

사실 돌베개에서 나온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칼 마르크스는 알았어도 산업자본주의 신생국가 미국에서 토지단일세라는 과격한 주장(?)을 전개한 경제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의 원 제목인 <Social Problems>이 말해주듯 이 책이 나온 1883년의 미국 사회의 다양한 경제 문제들을 저자는 냉철하게 분석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실제로 평등과 자유를 기본 모토로 삼은 미국을 지배하는 건 기업이라는 진단에 도달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세기에 말했던 것처럼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은 19세기에 나온 말이었다.

 

헨리 조지는 토지의 사유화가 오늘날 그리고 현대에까지 지속되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의 원흉이라고 이 책을 통해 적시한다. 그는 이미 그의 대표작인 <진보와 빈곤>(1879)에서 사회의 모든 생산활동은 토지를 기반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고,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도 예의 문제를 심화시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토지를 소유한 계급이 노동생산물을 독점하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당한 억압을 일삼는다고 그는 꼬집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지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생산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토지야말로 사회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이 토지에 대한 토지단일세 개혁을 통해 공공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아울러 헨리 조지는 민주국가 미국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들려준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에는 성공했지만, 토지를 독점한 지주 계급은 야만적인 노예제도 보다 더 효율적인 착취 도구로 산업노예 제도를 창안해 냈다고 선언한다. 최소한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리면서 부의 영구적인 대물림을 고안해냈다. 자본가 계급은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불의와 불평등한 분배, 입법 로비, 주가조작 그리고 사기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부를 축적했다. 미국의 어린 아이들은 가계를 돕기 위해 가혹한 유아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19세기 미국에서도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이런 악의적인 정치선전에 동원된 프로파간다의 한 축으로 교회 설교자가 있었노라고 그는 증언한다. 빈곤, 범죄, 저임금, 과잉생산, 정치적 부패 같은 존재하는 모든 불의한 존재도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에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구호단체나 애스턴이나 밴더빌트 가문의 자선 사업은 어떻게 보면 민주국가 시민에게는 모욕이나 다를 바 없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일면 과격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에게 마땅히 공여되야할 토지 사용 지대나 독점 사업으로 벌어들인 재화를 빈민들에게 시혜라도 베푸는 듯이 투척하는 모습은 기만적이라고 헨리 조지는 일갈한다.

 

신생국가 미국의 방대한 미개척지는 구세계의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산업혁명을 거친 영국의 토지는 이미 귀족계급이 독점했고, 유산계급은 이제 막 새로 개척 중인 신대륙에 눈을 돌렸다. 토지 가치의 상승이 이자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임금 하락과 대량의 실업자를 양상하게 되는 역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나같은 아마추어 독자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그 대표적인 예로 투하자본이 집중된 미국 철도사업의 실태를 헨리 조지는 들었다. 기계화와 분업을 통한 노동력절감 역시 분배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따름이다. 어떤 종류의 개선의 혜택도 모두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은 부의 집중과 독점을 강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은 지주의 (산업)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인권선언에 명시된 공적 재난과 정부 부패는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멸시 때문이라고 헨리 조지는 주장한다. 천부적인 권리이면서 양도불가능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연권에 입각해서, 토지 사용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 미국 국부 중의 하나인 토머스 제퍼슨의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 권력에 대한 직접 통제를 강화해야 공적 재난과 정부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부분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도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상품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다양한 간접세와 공공부채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헨리 조지는 지적한다. 어쩌면 이렇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태와 꼭 들어맞는지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의 연속이었다.

 

 

19세기 미국의 주력 산업이 철도사업이었다면, 21세기 미국을 선도하는 산업은 에너지산업일 것이다. 엔론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정한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지계산을 맞추기 위해 담합은 물론이고 주가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추악한 민영화 사업의 폐해는 이미 130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주도할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와 감시가 필요한 것이다. 막대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한 대기업과 재벌집단에 대해서도 중과세를 부과해서, 투기를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헨리 조지의 혜안은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다.

 

어쨌든 헨리 조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토지 사유화와 물질적 진보에 두었는데, 과연 그의 토지단일세 이론이 21세기 현재에도 모두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실주의 경제학자답게 그는 자신의 주장이 19세기 미국의 사회경제제도를 단번에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높은 지능과 고결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개인이 각성하고, 사상의 전달을 통해 사회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독서였지만, 시대를 앞선 선지자의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기회가 된다면 헨리 조지의 주저인 <진보와 빈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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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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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로 일하던 미국 여성이 스위스로 여행을 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골격근 마비를 거쳐 결국 전신 마비에 이르게 됐다. 한 번의 여행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금세 낫는 병이라면 모르지만 어언 20년을 병마와 싸워야 한다면, 주변에 있는 이들과 통섭은커녕 연락도 쉽지 않았으리라. 이런 절체절명의 시기에 불현 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달팽이였다.

 

초반의 전개는 정말 절망 그 자체로 다가온다. 건강함을 잃는 순간,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먹고 마시는,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영위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동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절망에서 도대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순간, 저자 엘리자베스 토마 베일리의 친구가 숲에서 잡아다준 달팽이 한 마리는 그야말로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해 주었다. 연체동물이자 복족류의 한 없이 느리게 사는 동물의 상징인 달팽이 한 마리가 어떻게 전신마비 환자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달팽이 안단테>는 그 과정을 아주 느리게 그리고 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역시 어떤 상황에도 적용된다고 믿고 싶다. 저자의 날카로운 관찰은 그녀의 삶에 슬며시 침투해온 달팽이뿐만 아니라 자기 그녀 주변의 인간관계도 그대로 꿰뚫는다. 자신을 찾아오는 건강한 사람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 같은 병자들이 의미하는 불확실성, 상실 그리고 죽음의 백척간두가 연상시키는 두려움이라고 적확하게 지적한다.

 

병세의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면서, 저자와 한 계절을 보낸 이름조차 짓지 않은 달팽군(암수 한 몸이니 적절하지 못한 별명이려나)이 무언가 사각거리며 먹는 소리에서 아마 이 책의 원제를 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었던가. 자신처럼 병원체에 감염되어 느리게 살 수 밖에 없는 인간 존재와 무려 5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오면서 포식자와 잔혹한 환경에 느긋하게 적응해온 달팽군의 그것이 다를 바가 없노라고 그녀는 담담하게 진술한다. 자신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 달팽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진 저자는 다양한 방면의 연구와 관찰 그리고 자문을 통해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친구가 흰입술숲달팽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일본의 하이쿠와 19세기 다양한 연구 기록을 남긴 박물학자들이 큰 도움이 됐음은 불문가지다.

 

한 없이 느려 터진 걸음으로도 다른 동물들에 붙어 하룻밤 사이에 놀라운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고, 포토벨로 버섯을 즐겨 먹으며 습지에서 여름잠을 좋아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4년 동안이나 겨울잠을 잘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관찰을 통해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 인간도 휴면 상태에 들어가 훗날을 도모하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저자는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나도 예전에 본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에서 농밀한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한 달팽이는 암수한몸으로 심지어 자가 수정도 가능한다고 한다. 그러니 짝이 없더라도 저자의 달팽군처럼 무려 118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을 수도 있단 말이다.

 

경계 없는 자유를 갈망하던 저자는 달팽군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한다. 물론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어 가면서 병이 심각하던 시절처럼 지속적으로 녀석을 관찰할 수 없었기도 했지만, 모름지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원래 자기가 있던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달팽군과 117마리의 새끼 달팽이들을 원래 발견했던 숲으로 놔주고, 나머지 한 마리도 결국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외롭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라면, 한 마리쯤 데리고 있을 법도 한데 저자는 신념에 충실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달팽군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이렇게 멋진 글을 썼다면 너무 빤한 인간 승리 스토리텔링이려나.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는 법이다. 후천성 미토콘드리아병/진드기매개뇌염에 감염되어 삶의 최전선에서 물러난 저자에게 달팽군의 존재는 특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없이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군의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야말로 빠름증후군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달팽이 안단테>는 짚어준다.

 

 

[뱀다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을 비롯해서, 달팽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기회가 되면 구해서 하나하나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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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0, 드디어 고대해 마지 않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스마트폰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예상했던 하루키는 이번에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사실 작년에 중국 출신의 모옌이 받았는데 2년 연속으로 아시아권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건 아마도 부담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사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이 순수문학이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수문학 지향성을 지닌 스웨덴 한림원의 간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섞인 내용을 다뤘다. 일견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기사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다뤘지만 이만하고 패스하자.

 

 

캐나타 온타리오 주 출신으로 1931년생인 올해 우리 나이로 83세의 앨리스 먼로가 영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당장 살 수 있는 책은 웅진씽크빅의 문학계열 임프린트인 <>에서 나온 그녀의 데뷔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1968, 2010년 뿔)이 유일하다. 그나마 나온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은 품절 상태란다.

 

그리고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실린 마지막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영화화한 <어웨이 프롬 허>가 우리나라에서도 20083월에 개봉했었다고 한다. 놀랍군!

 

 

앨리스 먼로의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산본 램프의 요정 재고를 검색해 봤다. 그리고 딱 한 권,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스택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폐점을 코앞에 두고 램프의 요정에 안착해서 구매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절실하게 책과 만난 적이 있었던가.

 

관심은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책은 앨리스 먼로의 데뷔작이 유일한데, 웅진에서 이 책을 품절의 상태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가이다. 나야 뭐 어제 사서 걱정이 없지만.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살까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다 볼까 생각 중이다. 현재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많아서 일단 빌리기부터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네. 아무래도 그녀 작품 세계의 효시부터 읽는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마 이 책이 품절된 상태라 더더욱 절실하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데뷔작은 현재 판매 중이라 주문만 하면 만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절판/품절의 운명에 처한 책들은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야 만날 수 있으니까. 사실 도서관 책들은 너무 너덜너덜해서 잘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어제 빌린 <파과> 같은 신간은 그나마 낫지만 말이다.

 

 

 

어느 기사에서 보니 앨리스 먼로 할머니는 올해 1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노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여전히 글을 발표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아직 10권도 넘게 그녀의 책이 출간되지 않았으니 이제 노벨문학상의 파도를 타고 출판사들이 그녀의 책을 경쟁적으로 내게 되겠지. 아마 장편보다는 단편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아직 한 편의 글도 읽어 보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우선 이 책부터 읽은 다음에 리뷰로 말해야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나온 앨리스 먼로의 작품인 <디어 라이프>. 반즈앤노블의 미리읽기를 통해 검색해 보니 모두 14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타이틀인 <디어 라이프>는 맨 끝에 달려 있구나. 이 단편들은 모두 그전에 <그란타>, <하퍼스 매거진>, <뉴 요커> 그리고 <틴 하우스>라는 잡지에 게재된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어서 빨리 판권을 가진 출판사들이 이 호재를 놓치지 말고, 앨리스 먼로 작가의 글을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다. 부디 서둘러 주시길. 이상 끝.

 

[추가정보] 최신작이자 어쩌면 앨리스 먼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디어 라이프>가 다음달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고 한다. 역시나 발빠른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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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미시간 주 입실란티, 때는 20064.

 

독자는 부활절 토끼가 쇼핑몰에 출몰하는 것으로 미루어 부활절 즈음이라는 것을 유추해낸다. 그리고 꼬마들을 현혹시키는 온갖 것들로 넘쳐나는 쇼핑몰에서 5살 난 소년이 납치됐다.

 

아들 로비를 능동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 다이너를 주차장 게임을 고안해냈다. 그 와중에 납치범은 다이너를 둔기로 가격하고 아들을 빼앗아 달아났다. 황망한 가운데 다이너를 납치법이 탄 밴을 막기 위해 맞섰다가 15미터나 끌려가는 수난을 겪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결정적 순간인 로비의 납치 장면을 반복해서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은 납치사건에서 납치사건을 주도한 괴물 순회목사에게로 이동시킨다. 무대를 뉴저지의 외딴 곳으로 옮겨 납치한 아이가 매력을 잃을 때까지 달콤하면서도 이중적인 대디 러브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 과연 이제 로비에서 기드온이 된 소년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납치된 로비도 그리고 로비의 부모도 잃어버린 자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현실이 되었을 때, 과연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반응할까.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대가의 테크닉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올해 노벨문학상은 그녀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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