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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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아이 장난감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폐관이 오후 5시라고 착각해서 그전에 가려고 자동차 액셀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그런데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다. 6시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감을 반납하고, 망중한을 즐기며 마스다 미리 작가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편을 도서관에서 앉은 자리에서 후딱 다 읽었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서 일을 하며, 구두수선 가게를 하는 사쿠짱과 오순도순 사는 아키야마 치에코 씨의 삶은 아기자기하다. 아마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그렇게 여유자적한 삶은 아니겠지만 퇴근길에 백화점 도시락 코너에서 신랑 사쿠짱이 좋아하는 도시락을 고르는 재미,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맥주라면 사죽을 못쓰는 사쿠짱을 꼬시기 위해 맥주 미끼를 놓는 그녀의 이야기는 단백한 재미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들이대는 남자 후배와 모종의 썸을 타는 스릴를 즐기기도 한다. 일종의 어장 관리라고 해야 할까. 남자 후배를 애타게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고백하는 센스라니. 남편 사쿠짱을 도발하기 위해 종종 그 이야기도 꺼내 보곤 하지만, 무심하기 그지없는 사쿠짱에게 부인의 작전은 도통 먹히질 않는다. 알뜰 주부답게 시장에서 사온 배가 상했을 때는 바로 가서 다른 것으로 바꿔 달라고도 하지만, 사쿠짱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부부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가끔 치에코 씨는 자기나 혹은 사쿠짱이 먼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니 당장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찌해서 사후의 걱정까지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미리 사서 고민하는 게 아닌가라고 마스다 미리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1권과 2권에 잠깐 소개되기도 했는데, 치에코 씨와 사쿠짱이 만나게 된 계기도 3권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원래 치에코 씨는 사귀는 남자가 있었는데, 구둣가게에서 도제로 일하던 사쿠짱을 알게 되면서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에코 씨의 전 남자친구는 있는 그대로의 치에코 씨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로서 치에코 씨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대기도 한다. 어쨌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는 남자야말로 자신의 짝이라고 생각한 치에코 씨의 선택이니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의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화의 주인공 치에코 씨가 가끔 이유 없이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는 장면이 귀엽게 느껴진다. 말미에 달린 하코네 여행기는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 온갖 군것질을 즐기는 커플의 소소한 행복 이야기로 아주 조금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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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대니 - 그래픽노블,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성장의 기록
진 루엔 양 지음, 이청채 옮김 / 비아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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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긴 분량의 장편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도통 짬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그렇다면 그래픽노블을 읽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픽노블이라고 해서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도 좋지만, 작년엔가 나온 비아북의 <의화단>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의화단>의 저자가 먼저 내놓은 책이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진 루엔 양 작가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인 <진과 대니>에 앞서 <의화단>을 먼저 읽었지만 리뷰 순서는 뒤로 밀리게 됐다.

 

먼저 표지에 있는 <American Born Chinese>란 글에 눈길이 갔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 사람들을 흔히 ABC라고 부르는데, 그 연원이 떡하니 크게 박혀 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책의 시작은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손오공은 갖가지 비술을 배워 불세출의 동양판 슈퍼히어로지만, 자신이 원숭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신선들의 파티에서 봉변을 당하고 깽판을 치다가 자유자를 만나, 500년 동안이나 바위산에 갇혀 있다가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삼장법사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이 진 왕/대니의 미국 생활과 더불어 펼쳐진다.

 

진이면서 진짜 미국 사람인 대니가 되고자 하는 정체성 혼란을 겪던 청소년기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과 가공의 서유기에 투영해서 만들어진 <진과 대니>에는 새겨볼 상징들이 차고 넘친다. 약방의 할머니 말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전설은 되고자 하는 것은 무슨 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영혼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위험한 거래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내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정체성을 버려여 한단 말인가. 꼬마 아이에게는 풀 수 없는 난제 같은 숙제는, 자유자의 손바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손오공의 운명과 묘한 공명을 이루고 있다.

 

역시 만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야말로 <진과 대니>에서 진 루엔 양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미국 여자친구와 만나고 머리도 곱슬거리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대니가 되고 싶지만, 자신의 본성은 중국에서 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친키'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 왕은 삼장법사를 만난 손오공처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정체성을 극복하는 방법일까. 다인종사회인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삶들이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는 질문을 진 루엔 양은 동양의 고전 <서유기>와의 퓨전 해석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 나이를 먹도록 진짜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사람은 어떤 특별한 환경 속에서 그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진 루엔 양 작가처럼 미국에서 자란 중국 사람이라는 캐릭터라면 몰라도 한 나라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라 보통의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그런 고민이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절박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가지고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해낸 이들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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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신 -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
카노 유미코 지음,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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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란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가져와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재료를 가지고 셰프들이 즉석 요리 대결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인데, 15분 만에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셰프들의 창의성에도 놀랐지만, 그렇게 다양한 식재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사실 요리는 먹을 줄이나 알지 하는 것에는 문외한이다 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점에서 채소요리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카노 유미코의 <채소의 신>은 생소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채소에 관련된 요리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도쿄에서 빵집을 운영하면서 개발한 찜구이 빵을 2만 개 이상이나 파는 대박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의 번 돈을 밑천 삼아 네팔의 포카라에 가서 살면서 본격적인 채식요리에 대한 구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직업이 채소요리전문가이다 보니, 저자는 요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나 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오니기리에도 그녀 삶의 사연이 묻어 있고, 급식을 없애고 다 같이 도시락을 만드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요리의 준비하는 과정과 아이의 조력자로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도록 돕는 과정인 육아와도 닮았다는 그녀만의 고유한 생각들을 전파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럼 저자는 전혀 육식은 하지 않는 비건(vegan)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는데, 카노 유미코 씨는 그런 독자의 마음까지 미리 파악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20대에는 육식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가끔 달걀이나 유제품, 생선과 토종닭을 먹는단다. 하긴, 일전에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도 채식이 좋기는 하지만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기억이 난다. 건강을 위해서는 면역력 강화와 더불어 밸런스가 잡힌 조화로운 식사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독한 편식쟁이인 독자는 순간 뜨끔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자각의 순간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라는 걸 잘 알면서도 오랜 시간 길들여진 식습관을 고치기란 너무 어렵기만 하다.

 

물론 채소요리전문가답게, 저자의 채소 섭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도 훌륭하다. 우리는 가끔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란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을 접하게 되는데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두 가지가 서로 배치되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그녀가 또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요리는 (채소) 재료 특유의 맛을 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요리들을 항상 접하고 있는 일반소비자 입장에서 과연 지금 먹고 있는 먹을 것들이 제대로 된 식품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특정 채소에 들어 있는 피토케미컬이라는 성분은 식물 속에 들어 있는 성분으로 경쟁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미생물이나 해충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인체에 흡수되면 항산화작용을 높여 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며, 면역 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특히 마늘이나 콩류에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카노 유미코가 쓴 <채소의 신>의 부제는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란다. 우리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할 레시피에 열광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40편의 채소요리 에세이를 통해 자연식 혹은 자연치유력의 위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좋은 경험을 했다. 무엇에든 카노 유미코처럼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대한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1만 시간의 깨달음의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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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라오스 -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
한명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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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삼국하면 꼽는 나라는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다. 하지만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비해 내륙 오지에 위치한 라오스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메콩 강을 배경으로 튜빙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관광정보를 보고, 또 승려들의 탁발하는 풍경을 보고 남들이 찾지 않는 여행지로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수도가 비엔티안을 그나라 말로는 위양짠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만큼 내가 라오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피상적이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놀라운 건 인구 700만 정도의 라오스를 찾는 관광객 수가 자그마치 약 400만명(2014년 기준)이나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작은 나라를 찾게 만드는 건지 궁금해졌다.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라오스의 천천히매력에 빠져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장기간 머물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나선다고 한다. 또 한가지 몰랐던 점 중의 하나는 라오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소수민족이 49, 비공식적으로는 1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소수민족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해졌다.

 

소위 라오스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 한명규 씨에 의하면 어떤 의미에서 라오스는 신의 축복을 받을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기온 때문에, 추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따로 경작하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어쩌면 지상낙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구식 자본주의의 세례로 빈부격차가 커지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도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토바이의 천국인 동남아시아에서 라오스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연애를 하려면 오토바이가 필수라는 얘기도 흥미롭다.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올라탄 두 연인이 그렇게 밀착해서 다니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집에 바래다 줄 때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등하교까지 책임지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야말로 우리나라 자동차 같이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다. 인도차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안 어디서고 등장하는 도마뱀(찌끼암)을 징그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이자 생활의 반려자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오래 전에 즐겨 읽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이 책에서는 빠텟라오라고 표기한 파테트라오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항해서 독립운동을 벌인 펫사랏 사후, 왕당파와 파테트라오 간의 내전을 벌여 결국 후자가 승리하여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한다. 한편 외세를 몰아내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라오스도 영어 광풍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이다. 오래전 프랑스 식민지 경험 때문에 프랑스어가 더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지만, 현지 사정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실질적인 이유로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고급 직장에 취업해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 역시 영어를 못하면 큰 일 날 것처럼 타령을 해대지만, 막상 취업하고 나서 현장에서 영어를 얼마나 써먹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인구의 65% 이상이 불교신자라는 라오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승려들이 탁발하는 장면이다. 책의 초반에 저자가 라오스에 없는 세 가지 중의 하나로 죽은 사람을 위해 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는데 역시 장례 의식도 전적으로 승려들이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불교 윤회 사상에 입각해서,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그들을 미리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이승의 이별에 대해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추정해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군대에 가듯, 라오스에서는 남자라면 평생에 한 번 승려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3개월이 기본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엔 단기속성으로 1주에서 2주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디에서고 통한다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도 천천히가 일상화된 라오스에선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서둘러봐야 본인에게 고통과 번뇌만이 엄습할 따름이라고 한다. 어쩌면 라오스 뿐만 아니라 동남아 특유의 만만디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비밀의 라오스> 후반에 등장하는 먹거리 이야기를 읽을수록 라오의 나라를 찾아 보리가 아닌 쌀로 빚은 맥주 비어라오를 한 잔 마시며, 구운 바나나나 대나무 밥 카오람을 먹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아마 본격적인 힐링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 이웃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은 세계적인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지만, 그 전부터 존재한 라오스의 왓푸 사원이 있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왓푸 근처의 낭 시다 사원 복원에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했다.

 

농업국가이면서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라오스의 현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국민의 75%가 농민이지만, 형편없는 생산력과 농업에 필수적인 관개수로의 부족으로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코라오그룹에 대한 깨알홍보도 빠지지 않는다.

 

여느 국가에 대한 소개와 마찬가지로 <비밀의 라오스>를 읽으면서 한 나라에 대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식이 피상적이고,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힐링 여행이 천편일률적인 주마간산식 단체관광여행 스타일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 기착지로 라오스를 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언제나 라오스에 가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어본 것이 그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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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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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을 왕창 빌려 왔다. 긴 연휴 동안 읽을 책이 혹은 읽어야 할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의 일탈을 하고 싶다고나 할까. 왜 시험 기간에 시험 공부 하지 않고 만화 보는 그런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망중한 가운데 난 그렇게 슬슬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열심으로 접하고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이 제목을 보자마자 난 삶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는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건 아마도 어떤 결정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아닐까. 아니면,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세상에 어느 순간 지고의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질문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이 없다는 것 또한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해결에 매진할 테니까. 물론 나도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또 하루를 살게 되겠지. 간바떼 ~

 

이 만화의 주인공 역시 내가 읽은 전작 <주말엔 숲으로>처럼 삼십대 중반의 여성 모리모토 요시코, 여기서는 수짱으로 통한다. 싱글 여성에게 절친은 필수요건처럼 비친다. 수짱에게는 이쁘고 똑똑한 영업부 사원 마이코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 그런데, 유부남과 교제 중인가 보다. 친구라면 다 털어 놓을 법도 한데, 선을 그어 놓고 서로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있는 모양이다.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기, 우리는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은근 생각보다 많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된다.

 

다시 수짱의 이야기로 돌아가 우리 수짱은 어느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친구나 친하다고 생각하는 직장 동료에게도 말하지 않는 은밀한 이야기들, 예를 들면 자신이 일하는 카페에 물건을 납품하는 나카다 매니저에게 반해 연정을 품기도 하지만 선뜻 용기를 내서 고백하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다.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들에게는 용감한 녀석이 미인을 얻는다 따위의 무용담이 있지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결국 그렇게 키워가던 연심은 직장 동료 이와이 씨가 나카다 매니저와 몰래 연애하다가 결혼한다는 발표를 듣고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친구가 없는 미혼여성에게 결혼이란 참.

 

본 이야기가 끝나고 끄트머리에 한 컷으로 실린 만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보통 때 같으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감행했겠지만 바로 옆에 꼬맹이가 서 있어서 그렇지 못했다는 둥,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가 누가 오는 걸 빤히 알면서 모른 척하고 슬며시 닫힘 버튼을 눌렀다던가, 귀찮아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연애비법 책을 몰래 샀다거나 하는 그녀들의 소심한 고백에 공감 한 표다. 누구나 다 한 번 정도는 해 보지만, 슬쩍 모른척하고 넘어가기 신공이라고 해야 할까.

 

만화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처음에 했던 질문인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라는 자문에 도달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살아도 아무도 우리의 용감한 수짱에게 뭐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안정과 자존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절친인 마이코 마저 유부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남자와 만나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수짱도 카페의 점장으로 승진하긴 했지만, 쥐꼬리만큼 올라간 월급에 비해 하는 일은 많아 매일 같이 피로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도 괜찮다 아니 나쁘지 않다며 수짱의 이야기는 일단 마무리된다.

 

확실히 여자들의 싱글 라이프는 남자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남자들이 어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서 맛있는 케이크나 사쿠라모찌 혹은 디저트 같은 걸 사가지고 갈까.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나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섬뜩할 일도 없지 않을까. 수짱의 어느 일기 문구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그만큼 자신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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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5-05-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봤는데,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공감되는 장면들을 적절한 거리 감각으로 표현한 게 좋더라구요 ^^ 저도 쉬고 싶은 날 휴식처럼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