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장 12년을 기다린 요사스러운 마리오 바르가스 작가의 <켈트의 꿈>이 드디어 출간될 모양이다.
2010년 좌파 지지자에서 우파 자유주의자로 변신한 요사가 모든 문인이 꿈에 그리는 노벨문학상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한 때 자신의 정치적 동지이자 절친이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는 라틴 아메리카 붐 4인방의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0년에는 페루 대선에 나가 그 악명 높은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하기도 한 정치인으로 변신도 했다.
확실히 요사의 초기 작품과 말년에 접어들면서 나오는 책들의 색깔은 다른 모양이다. 초기가 사회참여적이며 동시에 비판적이라면 후기로 갈수록 왠지 매운맛보다는 순한맛이 되어 간다고나 할까. <염소의 축제> 같은 전기소설에서는 탁월했던 그의 성과가 연애담을 그린 그냥 그런 소설들에서는 맥이 빠져 버린 느낌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성기의 매운맛을 기대하며 문제적 인간 아일랜드 출신 로저 케이스먼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전기소설 <켈트의 꿈>의 정발을 오랫동안 기대해 왔다. 그렇게 12년이나 흘러 드디어 다음 주에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가장 최근에 나온 그의 신작은 2011년 <나쁜 소녀의 짖궂음>이었지 아마. 그 뒤에도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그리고 <도시와 개들>이 출간되긴 했으나 신작은 아니고 그의 초기작 번역이었다.
번역으로 700쪽을 가뿐하게 넘는 <켈트의 꿈>은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콩고, 아마조니아 그리고 아일랜드. 1864년 9월 1일, 로저 케이스먼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버렸다. 소설을 보면 홀수장에서는 1916년 4월 21일 체포된 이래 런던의 펜턴빌 교도소에 수감된 이야기들을 그리고 짝수장에서는 콩고와 아마조니아 등지를 누비며 외교관으로 활동한 시절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다.

1884년부터 콩고에서 탐험가 헨리 모튼 스탠리와 일하기도 했던 로저 케이스먼트는 1890년 <암흑의 심연>을 발표한 조제프 콘래드와 만났다. 1903년에는 영국 정부로부터 1884년 베를린 회의 이래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로 인정받은 콩고 자유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학상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고 다음해인 1904년 케이스먼트 보고서를 발표해서 서구 사회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식민지 콩고에서 상아와 고무를 수탈하기 위해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이 벌인 엽기적인 행각을 상상을 초월했다. 이 부분은 지금은 절판된 아담 호크쉴드의 <레오폴드왕의 유령>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참조해도 좋을 것 같다.
로저 케이스먼트의 다음 무대는 페루의 푸투마요 원주민들이 사는 초레라 지역이었다. 1906년 브라질로 간 그에게 미국인 출신 기술자 월터 하든버그의 폭로로 페루 아마존 컴퍼니(Peruvian Amazon Company:PAC)가 푸투마요 고무제국에서 저질러온 각종 만행을 조사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PAC의 지배자였던 훌리오 세사르 아라나는 관리자들을 통해 푸투마요 원주민들에게 고무채취 노역을 강요하고, 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마체테로 난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각한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PAC의 고무사업소 직원들은 노예노동과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
1907년 3월 17일, 영국 외무성 보고서로 PAC에 아마조니아의 고무사업소에서 저지른 참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로제 케이스먼트는 이 공훈으로 1911년 대영제국 기사 작위와 훈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1912년 은퇴한 케이스먼트의 다음 행로는 바로 아일랜드 독립운동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완전 독립을 위해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맞붙은 독일의 카이저 황제와 결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퇴 자금도 아일랜드 봉기대의 비용으로 쓸 정도였다고 하니 이 풍운아의 삶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1916년 4월 21일, 카이저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은 그는 독일 유보트에 탑승해서 영국에 상륙한 로저 케이스먼트는 콩고 시절 걸린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았지만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결과는 영국에 체포되어 반역죄로 기소되고 사형 판결을 받았다. 소설은 그렇게 그가 펜턴빌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16년 7월의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다.
각처에서 로저 케이스먼트의 사면을 청원하는 요청이 빗발치자, 영국 정부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른바 <블랙 다이어리>라는 로저 케이스먼트가 쓴 일기였다. 가톨릭에 경도된 동성애자였던 케이스먼트가 직접 기록한 일기를 입수한 영국 정부는 당시까지만 해도 법으로 금지되었던 동성애를 즐긴 파렴치한으로 대역죄인을 몰면서 케이스먼트에 우호적인 여론을 되돌리는데 성공했고 결국 그는 1916년 8월 3일 교수대에 오르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블랙 다이어리는 영국 정부의 주작질이다라는 음모설이 횡행했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블랙 다이어리는 진본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음모설 신봉자들에게는 그 역시 음모로 치부되겠지만.
이렇게 팔색조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문제적 인물 로저 케이스먼트야말로 요사스러운 선생에게는 소설의 소재로 써먹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자신의 조국인 페루 그리고 아마조니아까지 등장하니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자신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요사샘과 로제 케이스먼트는 동질감을 자랑한다.
참고로 푸투마요 고무 제국의 비극에 대해서는 존 헤밍이 저술한 <아마존> 7장 “핏빛 황금 고무”에서 상세하게 다뤄졌다고 하니 본격적인 독서에 앞서 워밍업으로 아마조니아의 비극에 대해 조금 공부해 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시작되는 걸까. 이달에는 요사스러운 선생의 두터운 책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래 전에 영어판으로 구해 놓은 <켈트의 꿈> 하드커버가 아주 조용하게 나의 책장 한 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 꺼내 보니 2010년 4월 19일에 마드리드에서 요사스러운 선생이 탈고를 한 모양이다. 정발 책 수급에 앞서 아주 조금 맛만 볼까 싶기도 하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읽기의 기록들 >>
[1]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2009년 12월 13일)
[2]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2009년 12월 24일)
[3] 새엄마 찬양 (2010년 6월 16일)
[4] 천국은 다른 곳에 (2010년 10월 18일)
[5] 염소의 축제 (2010년 10월 27일)
[6] 나쁜 소녀의 짖굿음 (2011년 1월 7일)
[7]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2018년 10월 9일) * 재독
[8] 세상 종말 전쟁 1 (2019년 6월 28일)
[9]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2021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