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하룻밤의 지식여행 41
리우스 지음, 윤길순 옮김 / 김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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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십년 전에 영어로 된 멕시코 출신의 만화가 리우스가 그린 마르크스 입문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다 읽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헌책방에 갔다가 다시 리우스가 그린 쿠바혁명과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리우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바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알아보니 비교적 최근인 올해 초에 김영사를 통해 하룻밤에 지식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마르크스> 개설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미 그전에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융>을 이 시리즈를 통해 본 적이 있어서 선뜻 구매를 했다.

저자인 리우스의 표현대로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볼 수 있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역시 사회과학의 대가인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본격적으로 소개가 되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여느 마르크스를 다룬 책처럼 그의 일생에 대한 소개로 시작을 한다. 유대계 독일 출신으로 아버지 대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유대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았다. 본대학과 베를린대학에 수학하면서 본래 법학 전공으로 시작을 했지만, 철학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사상적으로 헤겔 좌파의 영향을 받아, 헤겔의 관념론을 배척하고 그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 들여 자신의 사상의 기초로 삼게 된다.

그 후, 파리 망명시절 프랑스의 여러 사상가들 푸리에, 생시몽 그리고 프루동 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가다듬는다. 하지만, 역시 그의 삶 가운데 있어 가장 최고의 만남은 평생지기가 된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만남이었다. 경제적으로 평생 가난했던, 마르크스의 경제적 후원자이자 사상적 동지로써 마르크스 사후 그가 미발표한 저작들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게 되는 역할도 맡게 되는 엥겔스와의 조우는 마르크스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리우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다음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한다. 첫 번째로 마르크스의 철학, 두 번째로 경제이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철학적으로 세상의 존재들이 불변한다는 형이상학과 기계론적 사고에 의문을 품으면서, 그 대안적 방법론으로 변증법을 채용한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세상과 그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항상 변화발전이 가능한 동적 요인들이었다. 헤겔이 제시한 방법론 가운데 변증법과 관념론을 배격하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서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도출해 내기에 이른다.

두 번째 경제이론에 있어 그는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등장하게 된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그들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규정한다. 독일 철학, 영국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를 연구를 통해 노동 대 자본의 대립쌍(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기원한)에서 유추한 경제적인 문제에 자신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가들은 자본, 화폐 그리고 지대를 소유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을 시간단위로 구매하면서 창출해낸 잉여가치를 독점하면서 착취의 순환구조를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848년에 발표된 <공산당 선언>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 궁극적으로 정치투쟁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울러 착취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원인을 사유재산제의 존재에 두고, 소유관계의 혁신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가정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간의 생산관계로 규정하면서 뛰어난 선견지명을 보여 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서는 인간의 역사를 생산양식에 의거한 5가지로 분류한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그것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서기 전 단계인 봉건제 사회에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대한 부르주아지 혁명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데, 이는 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지들이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노동 밖에는 소유하지 못한 농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한다.

부르주아지 혁명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산업혁명은 산업의 기계화와 더불어 생산양식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일으키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이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계급투쟁이란 불가피한 역사 발전의 과정이라는 것을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본가들의 내적 모순에 의해 붕괴하게 되고, 이에 대비해서 노동자들이 각성을 통해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1989년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블록이 붕괴하면서, 지난 세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자본주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이미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경제적 모순들의 현현(顯現)이었다.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통제되지 않은 금융자본의 투기와 시장자본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맹목적 믿음은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 대공황기의 총체적 난국의 극복을 위해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가 대두한 이래, 시장의 논리에 의해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말라는 구호는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상들이 현재의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과 여러 가지 오류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그의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 역사발전 이론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서로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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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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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개인적으로 영미권 혹은 일본 외의 제 3세계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지난 여름에 접했던 <엉덩이에 입맞춤을>의 작가 에펠리 하우오파, <곡쟁이 톨로키>의 자케스 음다의 책들을 접하면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그들의 작품세계가 궁금해졌다. 오늘 이야기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의 저자 하산 알리 톱타시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미 우리들에게는 터키 출신의 작가 오르한 파묵이 재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관심을 끈 바 있다. 터키는 우리하고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전 당시 16개 우방국의 하나로서 참전한 적이 있으며,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전에서 대결한 바가 있다. 지리적으로 동양에 속하면서도 유럽대륙에 걸쳐져 있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슬림 국가이면서도 가장 친서방적인 성향을 보이는 신비의 나라 터키. 그 중에서도 터키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고원 출신의 하산 알리 톱타시는 세무공무원 출신의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은 시간적 배경을 알 수 없는 이발소에서 시작된다.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교차로 등장하는 사건의 주 배경이 되는 어느 마을 이야기에서는 전지적 작가 관점이 배열되면서 이야기는 서두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스터리로 몰아간다. 마을의 이발사 즌글 누리가 아내와 세 명의 자식들을 놔두고서 어느 날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혼이 오그라든다”라는 실존 자체에 대한 질문처럼 보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혀져서 인근 각처를 뒤지지만 이발사 즌글 누리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

이에 읍장이 나서 대도시로 나가 상급관청에 실종신고도 하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지만 누리를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을에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 귀베르진(비둘기를 뜻하는 이름이란다)이 사라져 버린다. 읍장과 파수꾼은 이 사건을 유괴로 단정하고, 젠네트의 아들을 잡아다가 혹독한 고문을 가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고문의 여파로 젠네트의 아들은 바보가 되어 버린다.

계속해서 이야기는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와 중첩이 되면서 점점 일상적인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독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처음에 사라졌던 즌글 누리는 수년 만에 다시 마을에 나타나지만 소설에서 그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그동안 그가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소외된 마을에서는 인간 군상들의 비루한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되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주술적인 이슬람의 종교지도자 이맘에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의 연약함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여타의 터키 농촌 소설을 다룬 책들에서 대개 다루고 있는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결 대신 이 책에서는 철저하게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의 실존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제대로 못 짚어서인지 엇갈리는 두 개의 이야기가 주는 혼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인 이야기의 전개는 철저하게 무시가 되고,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분열과 자기 분석적인 질문들만이 그렇게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첫 문장을 생각하는데 무려 여덟 달이나 구상을 했다는 완벽주의자 톱타시답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묘사들은 탁월했다. 아마도 자전적 경험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실제적 묘사는 영화가 주는 가시적 효과들을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이해력에 많은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 톱타시의 빼어난 창조력과 이야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놀라움이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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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 터널 시리즈 1
로더릭 고든.브라이언 윌리엄스 지음, 임정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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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에 전 세계의 엄청난 팬을 가진 해리 포터 시리즈의 뒤를 이을 판타지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은 다음과 같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선과 악의 대립이 뚜렷해야 한다. 이런 대립구조는 판타지 소설의 주요 소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것이다. 다음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학교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걸출한 주인공들의 존재다. 역시 해리 포터 그 자체를 생각하면 된다, 해리 포터가 없는 시리즈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 그럼 본격적으로 <터널>의 세계에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야기의 배경은 영국 런던 교외의 하이필드(물론 가상의 공간이다)다.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도시 중에서 런던을 골랐을까. 건국 200년이 남짓한 미국을 배경으로 하기에는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지하도시의 건설을 설명하기에 시대적 연륜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영어를 쓰는 곳 중에 런던보다 더 적합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로저 버로스와 그의 아들 윌은 발굴 마니아다. 버로스 박사는 하이필드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그전에도 로마에서 역사 유적지를 발굴한 적이 있지만, 다른 팀에게 그 공헌을 빼앗기는 통에 아들과 단 둘이서 비밀스러운 발굴을 계속해 나간다. 윌에게 발굴은 무엇일까? 아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윌은 유명해지기 위해 발굴을 한다고 말한다. 이 14살 먹은 소년은 벌써부터 자본주의적 성공주의에 중독이 된 모양이다.

버로스 박사는 우연히 발광구체를 기증받게 되고, 어둠 속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되는 이 물체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한편, 아들 윌은 새로 사귄 친구 체스터와 더불어 자신이 발견한 사십혈 발굴 작업에 나서게 된다. 윌의 가족은 윌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 레베카와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 매달려 사는 엄마가 있다. 이런 와중에 버로스 박사는 ‘모자 쓴 남자’라는 수상한 이들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버로스 부인과 대판 싸운 후 버로스 박사는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사방으로 조사를 해봤지만 종무소식이다. 결국 아들 윌이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아버지가 일하는 박물관으로 몰래 잠입해서 아버지의 일지를 찾아 단서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제는 절친이 된 체스터와 더불어 자신의 집 지하의 ‘터널’을 파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윌과 체스터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지하세계와 만나게 된다. 족히 2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지하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윌과 체스터는 바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된다.

하지만 윌이 원래는 지하 세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래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제롬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윌은 홀로 감옥에 갇혀 있는 체스터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게 되고 반드시 그를 구해내리라는 다짐을 한다. 윌의 지하세계에 대한 탐험이 계속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인디아나 존스는 숨겨진 고대의 보물을 찾아 정글과 사막을 헤집는 모험을 하고, <반지의 제왕>에선 주인공 프로도가 악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위험천만한 원정에 나서며, 네모 선장은 심해의 바닷속을 누비며, 해리 포터는 마법의 세계에서 자신의 부모를 해친 악당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자, 이제 판타지의 세계에 어떤 미지의 공간이 더 남아 있는가. 바로 지하세계다. 우리네 삶의 대부분은 지상에서 벌어지지만, 그동안 지하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바로 이 점에 <터널>의 공동저자들인 로더릭 고든과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착안해서 신비하면서도 미스터리로 가득한 새로운 스타일의 판타지를 독자들에게 선보여 준다. 가브리엘 마르티노라는 18세기 하이필드에 살았다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지하세계에 대한 희미한 복선을 준비한다.

그리고 표토인(Topsoilers:지상에 사는 사람들)과 콜로니라는 지하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의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마르티노 경이 썼다는 <대재앙의 화>란 묵시록적인 책을 언급하면서 스틱스(Styx)들은 콜로니 인들을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통치를 한다. 물론 표토인들과의 접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스틱스들은 경찰국가의 우두머리 행세를 한다. 그리스어에서 온 스틱스는 “증오”를 뜻한다. 콜로니 사람들은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증오한다, 바로 윌의 삼촌 탐이 대표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터널>의 주인공인 윌은 자신의 사이드 킥으로 체스터와 칼(윌의 콜로니 세계의 동생) 그리고 바틀비라는 덩치 큰 고양이와 일행을 이룬다. 이들은 지하세계에서는 물론이고, 표토 세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자아를 대표하는 캐릭터들이다. 물론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캐릭터의 발전이 이루어지겠지만, 조금은 냉철한 사고보다 행동이 앞서던 윌은 다양한 위기들을 경험하면서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정립해 나간다.

버로스 박사는 지상세계에서 실종된 후, 존재감이 희미해지지만 계속해서 윌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다음으로 정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레베카가 있다. 원래부터 버로스 가족에서 이질적인 요소처럼 보이던 레베카는 이야기의 진행과 더불어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에 당연히 할리우드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영화화 작업에 들어간 <터널>은 2010년 개봉예정이라고 한다. 이야기 막 시작되는 순간에 급작스럽게 끝이 나서 아쉽지만, 윌과 체스터 그리고 칼의 계속되는 지하세계 탐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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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
칼 J. 리차드 지음, 박태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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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건네준다, 바로 그리스와 로마에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서양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고찰해 보는 좋은 경험을 했다. 그 유구한 세월 동안 많은 영웅과 호걸 그리고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등장했던가.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당대 12명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들을 조명해 본다.

가장 먼저 신화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기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트로이 전쟁과 그 후의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그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시작을 해서,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와 여러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 철학의 기원을 찾는다.

다음으로는 동방세계를 제패하고 서방의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대변되는 그리스 문명권에 대한 침략을 개시한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그리스 폴리스들의 저항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진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항해서 그리스를 이끌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서양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 그리고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편에서는 직관론과 사물에 대한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 등 현대 철학의 근본이 되는 분야는 물론이고, 혼합정체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준 고대 철학의 정수들이 소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서구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기에 이은,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벌이는 제국의 명운을 건 투쟁이 로마시대로 넘어 오면서 이어진다. 로마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주요 스타들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마르쿠스 키케로 그리고 제정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3명을 통해 격변하던 로마 공화정 말기의 역사가 펼쳐진다. 대미를 장식한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는 서양 문화의 한 축을 맡게 되는 기독교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었던 구성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각 장마다 한 개인에 맞춰진 역사가 아닌, 그 인물이 등장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들을 자세하게 다루면서 그 장의 주인공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8장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에서 보이듯이, 포에니 전쟁 이후 치열했던 계급간의 갈등 양상과 그라쿠스 형제들의 개혁 이후의 전개과정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필연적이었던 제정으로의 이행 과정이 멋지게 묘사됐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시대 최고의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르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룡점정 격이었다.

보통의 경우에 통사적으로 다뤄지는 정치적인 부분들뿐만 아니라, 철학과 신학의 정신세계까지 아우르는 편집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새로이 그리스 로마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아주 유익한 입문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로마사 쪽보다는 아무래도, 그리스사 쪽이 더 유익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천년 이상의 역사들을 다루려다 보니 넓이에서 만큼 깊이 있게 다양한 부분들을 다루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배경과 그 전개 과정에 대한 부분들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들에 대한 약사나 디테일 면에서 취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전에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읽어서 그런 진 몰라도 나름대로 로마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는 독자로서, 후반부에 해당하는 로마사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다루려다 보니 많은 사실들이 나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였는진 모르겠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전설이나 혹은 야사 같은 일화들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을 다룰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이해가 가긴 하지만, 조금은 소외되거나 평민계층을 대변한 스파르타쿠스나 혹은 그라쿠스 형제들과 같은 이들을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나 주류 일색의 인물 선정은 아무래도 다른 그리스 로마사를 다룬 책들과 변별력 면에서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어느 사료를 근거로 삼았는진 모르겠지만, 10장 아우구스투스 편에 나오는 2대 황제 티베리우스 황제는 폭군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사관을 따른 것으로, 좀 더 객관적인 측면에서 다루어 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공화주의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이야기가 등장을 하는데 이 부분 역시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역사적 담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최근에 불고 있는 고전에로의 회귀 경향에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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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 서희태의 클래식 토크
서희태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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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라마와 전파방송의 위력은 정말 무섭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다룬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급증하고, 클래식 음반 판매가 호황을 띠고 심지어 악기 판매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대성공은 주연을 맡은 김명민 씨를 비롯한 출연자와 연출가 이재규 감독의 노고도 있었겠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의 꽃은 바로 음악을 맡은 예술 감독의 몫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직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서희태 씨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라마의 감동을 만나 보게 되는 재미와 즐거움이 쏠쏠치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쉽게도 드라마 첫 번째 에피소드 말고서는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의 전개나 극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책을 저술한 지휘자 서희태 씨가 워낙 드라마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설명을 해주어서 캐릭터들에 살을 붙여 가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역시 책의 초반부에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뤘다. 등장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실제 연주와 연출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등장을 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나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 같은 연주자들의 카메오 출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참 재밌었다. 게다가 배우들이 실제 연주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활싱크’처럼 실제 연주와 오디오 싱크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음원의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었었는데, 원작곡자가 모두 사망한 고전 음악의 경우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리베르탱고>나 <가브리엘의 오보에> 같은 곡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드라마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실제 오케스트라와 그 오케스트라에 편성되는 악기들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하는 설명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클래식 음악이 그동안 너무 대중들과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하더라도, 내가 들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할 수가 없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떨어내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은 철저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오케스트라에 편성된 악기들의 이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편성된 악기들의 유래와 오케스트라에서의 역할 그리고 해당 악기에 있어서 당대의 일류 연주자들을 배열한 구성이 지휘자로서의 서희태 씨의 꼼꼼하면서도 완벽주의적인 일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수록된 총 48곡의 클래식 음악들에 대한 선정이유와 더불어 그에 관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 대중적이면서도 유명한 곡들이 많아서 제목은 모르더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을만한 곡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 곡들 중에 개인적으로 다시금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던 리스트의 <사랑의 꿈:리베스트라움 No.3>이 들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군대 시절에 듣게 된 곡이었는데, 그 곡을 연주한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CD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있는 진 모르겠지만 십 수 년 전에 명동의 <디아파송>이나 <부루의 뜨락> 같은 CD 가게들을 찾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드라마에 의한 추진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좋은 양질의 음악들을 계속해서 들음으로써, 개인적 소양을 닦고 더 나아가서는 악기를 연주해 보고자 하는 의욕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한편, <베토벤 바이러스>는 오케스트라에서 그 수많은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봉과 눈빛 그리고 손짓 다시 말해서 상호간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조화와 화합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저자가 초반에 나오는 전도사의 역할을 오로지 전도에만 있다는 한정지었는데 실제 전도사는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자를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진 독일 출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관한 부분에 있어 그가 히틀러 집권 시절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기 전인 1933년에 나치당원이었다는 과거의 오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던 점이 그랬다.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을 혐오했던 브루노 발터, 에리히 클라이버 그리고 아트투로 토스카니니 등은 당시에 아예 파시즘이 판을 치던 유럽을 떠났었다. 아이작 스턴,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그리고 이츠하크 펄만 같은 유대인 출신 연주자들은 그런 이유로 해서 카라얀과의 연주를 거절했었다고 한다. 카라얀이 뛰어난 지휘자이긴 했지만, 동시에 이런 어두운 과거를 가졌던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음악을 들었다. 베토벤이 이 곡을 발표한지 딱 200년 만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알고 음악을 들으니 더 감흥이 새로웠던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진전이 돼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했듯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의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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