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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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책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밥바라기별이라,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이 금성, 샛별의 다른 이름이라는걸 알게 됐다. 모두들 식사를 마치고 날 무렵, 개가 자기도 밥을 바랄 즈음에 보이는 별이라고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나. 마치 책의 주인공인 준 그리고 그 준에게 투영된 황석영 작가 자신이 모습이 느껴졌다. <개밥바라기별>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언가를 희구하면서 살지만 정작 그 무언가를 찾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루어지는 만남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허무적인 방황을 통해 성장해온 우리네 부모 세대의 이야기다.

물론 작가가 말한 대로 그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가로 놓여 있지만, 청춘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 보다. 학교라는 제도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된 인간상으로 제조되어지면서도 우리의 뜨거운 가슴은 그런 위선과 허울들을 견뎌내지 못한다. 게다가 4월 혁명과 5월의 쿠데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정치적 격랑의 세월과 근대화를 통한 수출입국의 기치 아래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던 세대에게 평범한 삶에서의 일탈은 바로 낙오를 의미했다.

이야기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문학청년의 꿈을 꾸던 준이 월남파병을 앞두고,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한 자조적인 회상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친구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총탄에 맞아 죽는걸 목격한 이들에게, 삶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장이 아니었을까. 고도 성장기의 과정에서, 넘쳐나는 수많은 서적들은 그 어느 누구도 제도화 교육 내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현실들과 만나게 되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몰래 담배와 술을 배우며 성장통을 앓아 나간다.

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학교는 그들을 가두는 울타리였고 족쇄였다. 그들은 학교를 빼먹고 산행을 즐겼고, 연상의 여대생들과 얼치기 연애를 했으며, 서울 인근의 산에 아지트를 만들고 보급투쟁을 한다. 그런 모든 과정들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형상화된다. 때로는 명상을 통해, 때로는 자신만의 절대고독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혼란스럽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앞으로 뭘 해먹고 살 것인가와 같은 생존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들의 성장과정은 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준은 지기 인호와 휴학과 자퇴의 어중간한 선상에 있던 어느 해 여름, 전국을 일주하는 무전여행에 나서게 된다. 어떤 여행의 뚜렷한 목적 없이 때로는 고적답사의 길을 가기도 하다가, 고향에 내려가 있는 친구들의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들의 나름의 모험을 경험한다. 그리고 여행의 말미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여정에 올랐음을 인지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사회는 그들의 장기적인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대학이라는 관문에 들어선다. 다시 제도권이라는 소행성 궤도에 오른 이들의 고민들은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다. 어떤 이는 연애라는 방법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래의 설계로 또 누구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길을 개척해 나간다. 준은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가담했다가 유치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대위 장 씨와 두해 남짓 전국을 떠도는 부평초 인생길에 나선다. 동래에서는 승려가 되기 위해, 행자생활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을 버리려는 시도도 해본다.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다시 삶과 죽음이 확연하게 갈리는 월남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

황석영 작가의 젊은 날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의 그 때는 어땠나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12년간의 제도 교육을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일탈을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런 시도조차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에 가서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들이 일순간에 폭발해 버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순 유치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참 많이도 고민했던 것 같다.

주인공 준을 중심으로 해서, 상진 영길 정수 등 그의 친구들의 시선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의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 한 명이 말하는 것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다채롭기도 하고, 타인의 속마음을 엿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소설 속의 준이 무전여행을 떠나던 시절만 해도, 세상을 경험해 보겠다는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무전여행에 호의적인 시선들이 있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이라는 명목 아래, 다른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이 되어 버렸다.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낭만을 논하는 것은 정말 “개밥바라기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된게 아닐까하는 자조감이 문득 들었다.

실용, 경제 그리고 취업이라는 살풍경한 키워드들이 점거한, 그야말로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보다 더 격렬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새로운 천년에 이순(耳順)의 나이를 훌쩍 넘긴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누구든지 삶의 본질을 물으며, 이 세상을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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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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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드가 A. 포에 대해 아는 건? <검은 고양이>와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정도. 하지만 이번에 조엘 로즈가 자그마치 18년간에 걸쳐 저술한 <가장 검은 새>를 통해 에드가 포가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시문학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엘 로즈는 뉴욕타임즈를 필두로 해서 LA 타임즈에 이르기까지 많은 매체에 기사를 쓴 바 있다. 그리고 <마이애미 바이스>와 <코작>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쓰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존했던 저명한 작가 에드가 포를 등장시키면서, 미스터리 팩션 소설의 막이 오른다.

<가장 검은 새>는 19세기 인구 35만 명이 살고 있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메리 로저스, 뉴욕의 어느 시가 가게에서 일하던 누구나 흠모해 마지않을 그런 미모를 가지고 있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이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베테랑 상급 치안관인 제이컵 헤이스(올드 헤이스)가 등장한다. 그는 사건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관이라고 믿고 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가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가 이 아리따운 아가씨를 살해했단 말인가? 그와 관련되어 그녀의 전 애인과 약혼자가 수사관들의 용의자 명단에 오르고, 당시 뉴욕 시에서만 3만 명에 달하던 갱들 역시 의심스럽다. 그 와중에 메리 로저스의 약혼자인 다이엘 페인은 자살을 하고, 제3의 인물인 존 콜트의 살인과 뉴욕에서 한가락 하는 갱단의 두목인 타미 콜먼의 살인사건이 겹치면서 스토리 전개는 급물살을 탄다.

여기에 올드 헤이스의 유일한 혈육으로 등장하는 메리 올가 헤이스는 에드가 포의 열혈 팬으로, 메리 로저스 사건에 핵심이 되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쫓는 아버지 올드 헤이스의 보좌역을 자처한다. 에드가 포가 발표한 글들과 그가 자신의 전작들을 통해 보여준 ‘사건의 재구성’이란 방식을 아버지 올드 헤이스에게 전수해주는 올가. 이 북새통에 재판을 통해 사형수가 된 존 콜트와 타미 콜먼을 구하기 위한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면서 존 콜트의 사형집행 당일, 우스꽝스러운 그의 약혼자와의 결혼식에 이어 대화재가 발생되면서 존 콜트의 자살과 타미 콜먼의 탈옥이 벌어진다.

에드가 포 역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작가로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긴 했지만 경제적 곤궁과 죽어가는 자신의 어린 아내 버지니아와 숙모이자 장모를 봉양해야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의 영혼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연약하며, 소설가라기보다는 비평가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면서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는 독자들이라는 강한 우군이 있지만, 성공에의 집념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책 안쪽에 붉은 색으로 채색된 고담 시티의 지도였다. 21세기 밀레니엄 캐피탈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19세기 미국이 건국된 지 채 70년 남짓한 시절의 고담 시티의 전경에 대한 조엘 로즈의 묘사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직 경찰조직이 정비되지 않았던 시기에, 고담 시티 뉴욕은 그 시작에서부터 살인과 폭력이 난무했었다고 한다. 그런 무질서가 횡행하는 가운데, 질서를 확립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지난 40년간 한결같이 범인색출에 투신해온 올드 헤이스의 모습은 에드가 포가 자신의 작품들에서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탁월한 탐정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 작가 조엘 로즈의 주장이다.

아울러 올드 헤이스의 브레인으로 등장하는 딸 올가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에드가 포의 추리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현실에 적용을 하고 신문에 난 기사들을 토대로 해서 보통의 경우 흔히 빠뜨리게 되는 실수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잡아내면서 재구성하는 기술은 여느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에 버금갈 정도였다.

아울러 타락한 도시에서, 사형수마저 금권과 결탁한 일단의 무리들이 사법집행을 방해하고 다수의 죄수들을 탈옥시키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대전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다름이 아니다. 새뮤엘 애덤스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은 존 콜트가 수감 중에 누리는 온갖 특권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유감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존 콜트의 형으로 콜트 리볼버를 발명해서 돈방석에 앉은 콜트 대령은 다가올 남북전쟁에 다량의 총기들을 보급 유통시킴으로써 미국 사회가 오늘날에까지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총기관련 사고들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정당한 사법집행을 방해하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에드가 포에 대해서는 몇 편의 단편소설 외에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책의 분량에 반비례하면서 흥미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엘 로즈는 분명 미국 문학계에 큰 별로 에드가 포를 바라보는 것 같다. 소설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끊임없이 현실세계로부터 도주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작가의 태생적 한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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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 별난 화가에게 바치는 별난 그림에세이
카트린 뫼리스 글.그림, 김용채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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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짧은 그림 에세이인 <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를 읽다 보니, 옛 중국의 고사인 ‘지음(知音)’이 떠올랐다. 거금고의 명수였던 백아(伯牙)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지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었던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고 했던가.

색채예술의 대가로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봉장이었던 외젠 들라크루아가 죽은 해였던 1864년 12월 우리에게는 삼총사로 널리 알려진 대문호 알렉상드로 뒤마가 들라크루아를 추모하며 발표한 <들라크루아에 대한 한담>을 바탕으로 해서 21세기에 카트린 뫼리스라는 역시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재구성해서 한 편의 책으로 내놓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몇 개의 선으로 그려내는 카트린 뫼리스의 일러스트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1798년에 태어난 들라크루아는 게랭의 지도 아래 제리코와 함께 동문수학하면서 그림을 배워 나갔다고 한다. 그의 화풍은 책에도 나오지만, 당시 고전주의 양식이 판을 치던 프랑스 미술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것처럼 대담한 색채의 사용과 도발적인 주제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색채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는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822년 <단테의 조각배>라는 작품으로 살롱전에 출품을 하면서 일대를 풍미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이 작품에서, 죽음의 강 스틱스를 배를 타고 건너가는 단테 자신과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 뒤를 이어 1824년에 발표된 <키오스 섬의 학살>은 2년 전인 1822년 그리스 독립전쟁의 와중에 그리스 키오스 섬에서 오스만 제국의 의한 학살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등장하는 ‘손’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가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난 영국의 대시인 바이런 경에 대한 들라크루아식의 오마쥬였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들라크루아와 관계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을 한다. 살롱전에 출품을 해야 하는데, 프레임을 만들 돈이 없어서 고생했던 이야기, 오를레앙 공작이 빅토르 위고에서 선물하기 위해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구입을 하도록 뒤마가 손을 쓰지만 선물대상을 모르고서는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뻐팅기는 들라크루아, 평생의 적수였던 앵그르를 체제전복적인 그림들을 그려대는 들라크루아의 대항마로 출전시키는 미술평론계의 편협한 모습들에 이르기까지 화가로서의 들라크루와 뿐만 아니라 인간 들라크루아의 참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뒤마의 글과 카트린 뫼리스의 절묘한 공동 작업이 너무나도 멋들어졌다.

역시 들라크루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830년에 발표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일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자유의 여신 옆에 나팔총을 가지고 뒤따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이 사람이 바로 들라크루아 자신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뒤마는 들라크루아가 공화주의자였다기 보다는 귀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 가설을 부인하고 있다. 자신과는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들라크루아와 그의 예술세계를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대하고, 평생의 지기로 지냈던 이 둘의 우정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1833년 뒤마가 살던 생나자르 가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에서, 뒤마와 그의 화가 친구들이 공동 작업으로 무도회장을 꾸민 이야기는 뒤마가 경험한 들라크루아 예술인생의 백조의 노래처럼 다가온다. 루이와 클레망 블랑제, 알프레드와 토니 조아노, 드캉, 자댕, 바리, 그랑빌 그리고 낭퇴이 등이 그 작업에 참여했는데, 유독 들라크루아만이 무도회가 다가올수록 코빼기도 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할당된 벽면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자는 의견을 들라크루아의 지음 뒤마는 온 몸으로 막아냈다고 증언하고 있다. 뒤마의 기대대로 들라크루아는 밑그림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그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모든 것을 처리해냈다. 뒤마의 표현대로 ‘정말 좋은 시절’의 이야기였다.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길이 남을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지만, 죽을 당시에는 끝까지 시중을 들었던 시종과 가정부만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는 것을 개탄하는 글로 책은 끝이 난다. 정말 들라크루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뒤마의 ‘지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들라크루아의 예술세계에 대해 다시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들라크루아와 로트렉을 헷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마가 남긴 글에, 21세기식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진 이 책을 통해, 19세기 가열찬 혁명과 반동의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리던 시대를 살았던 어느 예술혼에 불타는 작가와의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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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목사님의 즐거운 유머
오카와 쓰구미치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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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지 반드시 그 목적성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카와 쓰구미치 목사님이 쓴 <유쾌한 목사님의 즐거운 유머>는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건 기존에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딱딱하고 고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유머를 통해 한 방에 날려 버리고,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라는 거다. 너무 뻔한다구?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오카와 목사님이 비장의 무기처럼 준비한 유머들이 어디선가 한 번 정도는 들어본 듯한 기시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유머라는 본질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면 그만 아닌가 말이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 중에서 일본의 전통문화와 관계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기독교가 일본에 전래되었을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대개의 경우 무사계급의 사무라이들이었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사무라이들은 얼굴에 희로애락을 들어내면 안되었다고 한다. 한 번의 미소가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유추해 보았을 때, 무표정한 사무라이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이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으랴. 그 자체가 유머였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그 반대였다고 하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엄마를 따라 슈퍼마켓에 간 꼬마가, 엄마에게 초콜릿칩 쿠키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계산할 무렵, 카트에서 벌떡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초콜릿칩 쿠키를 사달라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선포하자 무려 23상자의 초콜릿칩 쿠키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역시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세속적인 욕망들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아는 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에 합당한 바람이 아닌 자신들의 희망사항들이 우선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바람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먼저 그 바람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부합되었는가를 먼저 물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하지만 실제의 적용에서는 아무리 좋은 유머라고 할지라도 듣는 상대방이 어떤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바로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다. <도베르만>(37페이지)의 블랙유머를 말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관계의 상처가 주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제시하지 않고 유머만 말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이 작은 책을 통해서, 사랑과 치유의 종교인 기독교가 고난에 찬 세상살이에 시달린 이들에게 즐거운 웃음과 행복을 되찾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조금 더 바란다면 책을 읽고 나서, 가까운 교회에 설교를 들으러 나간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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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17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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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덱스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나서,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작가 제프 린제이가 쓴 덱스터 시리즈가 미국의 케이블TV인 쇼타임을 통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책을 읽기에 앞서 이미 3번째 시즌까지 제작된 드라마 <덱스터>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마디로 말해서, 제프 린제이가 창조해낸 덱스터 모건이라는 캐릭터에 완전 반해 버렸다.

덱스터 모건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 소속 경찰국의 과학수사반에서 일하는 혈흔전문가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일주일에 주 5일을 일하고, 아이가 둘 있는 이혼녀 리타와 연애를 하고, 역시 경찰인 입이 걸한 여동생 데보라와 팀을 이뤄서 사건을 다룬다. 그게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보통 사람으로 ‘위장’한 덱스터에게는 유리 슬라이드의 비밀이 있다. 낮의 덱스터는 온순한 혈흔전문가이지만, 밤의 덱스터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사회적 법망을 피해 다니는 최고 악당들을 응징하는 연쇄살인범이다. 덱스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처치하고, 일종의 기념품으로 그들의 혈액이 담긴 유리 슬라이드를 남긴다.

전작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와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를 통해 냉혈한 킬러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모습을 정착시킨 ‘몬스터’(드라마에서 덱스터는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인 덱스터는 세 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는 <어둠 속의 덱스터>에서는 드디어 리타와의 결혼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위장의 완성에 다가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은밀한 프로젝트를 그만 둘 리는 없다. 결혼 후에도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덱스터.

이번에는 마이애미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범죄를 벌이는 것으로 사료되는 알렉산더 “잰더” 맥컬리를 잡아 응징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관찰자’가 있으니. 이 부분에선 드라마 시즌 1에서 쿠바 난민들을 수장시킨 악당 호르헤 카스티요를 처리하는 덱스터를 누군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쨌든 덱스터는 ‘그’(IT)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덱스터의 모교인 마이애미 대학의 교정에서 불에 타고 머리가 잘린 두 구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14살부터 덱스터와 생사고록을 같이 해온 그림자 “검은 승객”(Dark Passenger)은 어느 순간 덱스터의 곁을 떠나 버린다. 덱스터의 어두운 자아였던 검은 승객은 덱스터의 은밀한 프로젝트 수행에 항상 영감을 주고, 공모를 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파트너였다. 그런 검은 승객이 아무런 말도 없이 결별을 선언하자 덱스터는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덱스터의 관찰자는 덱스터가 자신을 추적해 오도록 패턴화된 연쇄살인을 계속하고, 살인현장에 오직 덱스터만이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을 남긴다. 어느 고대의 종교적 의례와 같은 패턴의 집요한 연구를 통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암호 MLK의 해석에 성공한 덱스터. 하지만 파트너 검은 승객마저 자신을 떠나고, 홀로된 덱스터는 분명 자신보다 한수 위가 분명한 ‘그’로부터 시시각각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와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최근 7명의 여성들을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 아직 자세한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아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대개의 경우에서처럼 유년기의 정서불안이 사회적 일탈행위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둠 속의 덱스터>의 주인공 덱스터도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경찰인 양아버지 해리 모건에게 입양되어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덱스터가 어려서부터 살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덱스터를 위한 규칙을 세워주고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전수해주기 시작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덱스터 본인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된다.

자신의 본질을 철저하게 감추고, 해리의 가르침을 통해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체포된 연쇄살인범도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전작들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의 창조에 성공한 제프 린제이는 이번에는 좀 더 어려운 시도에 도전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다. 소설의 전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와 쫓고 쫓기는 치열한 심리전을 치르는 동시에, 덱스터는 리타와의 결혼 그리고 아이들을 둔 가정을 이루는 아슬아슬 외줄타기 모험을 벌인다.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에서 나오지만, 전 남편은 가정폭력을 시도 때도 없이 저지르는 약물중독자이고, 앞으로의 남편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리타의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밤의 완벽한 시리얼 킬러로서의 면모를 자부하는 덱스터가, 낮에는 이런 보통 사람들의 문제들로 번민하는 것은 역설적인 유머로 다가온다.

이미 드라마와 전작들을 통해 엽기적인 살인행각들이 선보여 왔지만, <어둠 속의 덱스터>에서 다뤄지는 살인 에피소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대의 인신공양적인 희생제례의 정수로 보인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 그리고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잠깐잠깐 소개되는 ‘그’의 이야기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역시 뛰어난 스릴러 작가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이용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유도하는 절묘한 방식의 접근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추후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역시 자신과 같이 유년의 고통을 경험한 리타의 아이들인 애스터와 코디가 덱스터의 파트너인 “검은 승객”의 존재를 알아보고 있다는 설정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과연, 덱스터는 해리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전수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연쇄살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블랙 유머가 넘치는 캐릭터들을 조종해서 환락과 조용한 삶이 병존하는 마이애미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제프 린제이의 글 솜씨에 반해 버렸다. 세 편의 소설을 통해 계속해서 진화하는 캐릭터의 전형을 선보여준 그가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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