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이면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책과 생각>이라는 코너를 기다렸다.

사실 신간 정보는 램프의 요정을 거의 매일 같이 문질러 대면서 기다리는 사람이라 특별한 기대도 없지만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그런 섹션이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가 보니 그 코너가 사라진다고.

그것은 마치 동네책방들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책방이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온라인서점과 택배라는 시스템이 없어서 책을 사려면 무조건 책방에 가야했다.

 

그 시절에 책방에 가면 한나절은 우스웠었지.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책방의 곳곳을 훑고 다녔다. 아마 그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헌책방에 가면 곳곳을 후비나 보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헌책방도 그리고 동네책방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헌책방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멀리 안양이나 수원에까지 나가야 하는데... 안양 도토리책방에 처음 갔을 적에는 나름 갠춘했었는데. 그곳 주인장이 헌책을 인터넷 가격을 조회해 보고 매기는 통에 쫌 그렇더라. 인천 아벨서점처럼 연필로 책가격을 정해 놓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보니 아벨서점 가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항상 그렇듯이.

 

뉴욕타임즈에서는 계속해서 책 코너를 운영하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책소개가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코너를 운영하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점점 새로운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그 경로가 없어진다는 말이니. 네이버에서도 오래 전에 책 섹션을 운영하다가 애진작에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접어 버렸지.

 

이제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희귀종이 되어 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프로젝트가 다 있다고 했지 아마. 그 시절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읽는 이들이 참 많았었는데. 이젠 신문도 책도 지하철 승객들의 손에서 사라져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쳐다본다. 재미진 웹툰에, 신박한 이야기들이 넘쳐흐르는 너튜브를 책이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지금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책 읽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대로 살아가겠지. 그런 게 세상이 아니었나.

 

뭐 그렇다고.

 


참 기다리고 있던 맥스 포터의 <래니>가 출간된 모양이다. 집에 가서 주문해면 내일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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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23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모르는 게 나오면 백과사전을 찾아봤는데 ㅎㅎ 아이들은 네이버 구글 검색. 요즘 아이들은 너튜브로도 검색을 하더라고요. 활자보다 영상이 편한 세대ㅠㅠ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흘러가지만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3 17:55   좋아요 5 | URL
제게는 그 시절에 종이접기가 정말
난관이었죠... 책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 요즘에는 아마
너튜브로 친절하게 알려 주니 그 시
절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에 점점 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7-23 17: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게 사라지는건 너무 아쉬운거 같아요 ㅜㅜ 그래도 어떻게든 좋아할만한 새로운게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7-23 17:59   좋아요 3 | URL
사라진다는 건 아쉬움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들이 그런 게 아닐까
제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핫하.

청아 2021-07-23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캐이블 가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집의 티브이가 꺼지자 어떤 사람이 책을 펼치면서 끝났던걸로 기억하는데 떠오르네요. 북플하기전에 지하철에서 책 보는 분들 발견하면 때로는 연락처라도 물어보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 귀해서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4 00:12   좋아요 2 | URL
바로 케이블 가이 엔딩 시퀀스
를 찾아 봤습니다. 예전에 분명
본 영화인데 1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텔리비전이 먹통이 되자 바로
끄고 침대 맡에 있던 책을 펼쳐
들고, 바로 미소를 띄는 장면이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ㅋㅋㅋ

그땐 그랬지...

stella.K 2021-07-27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자체가 좀 씁쓸하네요.
그냥 공익을 목적으로 해도 좋을 텐데.
책이 원래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면 말임다.
조선일보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래 전 주말이면 아예 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속으로 거의 환호하면서 봤는데.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전에 말임다.
그러고 보면 매냐님도 디지털 보단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이신가 봅니다.ㅋ

레삭매냐 2021-07-28 08:13   좋아요 1 | URL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부터 돈벌이에 치중하니 말이죠.
독서의 중요성과 비즈니스는 뭐랄까
다르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전 누가 봐도 아날로그
세대지요. 요즘에는 메타버스가 대세
라고 하여 공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요
ㅋㅋㅋ
 
보존지구 지만지 고전선집 571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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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7월의 작가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왠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여행가방>을 필두로 해서 도블라토프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에는 <외국 여자> 그리고 다시 지만지에서 나온 <보존지구>를 읽었다.

 

로씨야 소설들은 왠지 엄근지하다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뽀개준 작가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이 작가의 책들을 만나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비에트식 유머라고나 할까? KGB, 보드까 그리고 시베리아로 압축되는 쏘비에트 시절에 대한 통념 대신 그 동네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는 글들이다.

 

일단 <보존지구>는 그전에 읽은 <여행가방><외국 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쏘비에트 체제에서 지난 15년 아니 20년 동안 글을 썼지만 주인공 보리스 알리하노프는 한 편의 글도 발표할 수가 없었다. 왜냐구? 검열이 일상인 나라에서 반체제 서정 시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니까. 하지만 공산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돈을 필요했고다. 비록 이혼했지만 전처 타냐와 딸 마샤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는 보리스.

 

로씨야의 대문호 푸시킨 보존지구에서 보리스는 가이드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돈벌이다. 보존지구를 찾은 관광객들은 푸시킨과 관련된 별의별 질문들을 던지면서 보리스를 괴롭힌다. , 이런 게 궁금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니, 푸시킨을 그렸나 하는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둘째 아들의 부칭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알고 싶다고?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남자 동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동네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며 보리스는 가이드로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푸시킨 보존지구에 활동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따라지 인생 같다는 인상을 준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천재 대우를 받았지만 응용력은 전무하고 심지어 귀찮으면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배짱의 사나이 미트로파노프, 벽촌에서는 제법 실력 있는 작가 취급을 받았지만 대처에 나와서는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포토츠키가 대표 선수들이다.

 

무식하고, 냉소적이며 금전욕을 지녔다고 보리스는 자신을 비하한다. 재밌는 건 또 그 분석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착실하게 가이드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내는 보리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보리스 앞에 어느 날 이제 소련은 지긋지긋하니 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선언을 위해 아내 타냐가 등장한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갈등상황이 연출된다. 비록 책을 낸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보리스는 모국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작가에게는 사망 선고라며 아내의 미국 이주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타냐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리스는 그 순간, 과연 저 여자가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여자가 맞는가라는 10여년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자고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썸타는 남녀가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을 한다면, 로씨야에서는 아마 보드까 한 잔 마시고 갈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려나. 그 생각을 하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보리스, 그러니까 도블라토프의 페르소나에게는 이 순간이 그렇게 절체절명한 순간이었을 때 동방의 어느 나라 독자는 그런 그의 감정을 훔쳐보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타냐는 보존지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보리스는 그야말로 술에 쩔어 고주망태가 되어 세월을 보낸다. 게다가 보리스의 곁에는 로씨야답게 그의 고통과 음주를 함께 할 동료 주정뱅이 마르코프들이 넘쳐난다. 다른 거에는 인심이 박하지만, 서로 술 사겠다고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로씨야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 전, 제천을 찾은 대학 동기가 다른 동기가 하는 식당에 가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계산하면서 격투에 가까운 몸싸움을 했다고 하던데 그것 참.

 


어쨌든 그렇게 술독에 빠져 살던 보리스는 타냐가 딸과 함께 조국을 떠난다는 전보를 그들이 떠나기 바로 전날 수령한다. 문제는 요주의 인물이었던 그에게 KGB 소령인 벨랴예프의 소환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리스는 벨랴예프의 태클을 돌파하고, 타냐와 마샤가 조국을 떠나기 전에 레닌그라드에 도착해서 과연 그들의 이주를 막을 수 있을까.

 

이미 결과는 <여행가방><외국 여자>에서 나왔다시피 결국 도블라토프는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에게 우상은 푸시킨이었다. 그리고 그의 언어사랑은 가족애를 뛰어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던가. 쏘비에트는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된 유대인과 요주의 인물들에게 해외 이주를 허용했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 동서방의 인적 교류는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도블라토프는 마음대로 글을 쓸 수가 있어 과연 행복했을까?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쓰기보다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한 무명시절의 작가가 남긴 삶의 기록들은 참 애잔하다. 오늘 <수용소>가 도착할 예정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 결국 샀다. 며칠 전에 <보존지구>와 같이 빌린 에밀 졸라의 <쟁탈전>도 읽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독서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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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2 1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보존지구>가 도서관에 있나 보군요? 저희 동네 도서관은 도블라토프 책 1권도 없어서 제가 다 주문해 넣었습니다만.... <보존지구>는 출간 년도 5년이 이미 지난 책이라 희망도서 신청 안 받아주드라고요. ㅎㅎ 걍 제 돈 주고 사서 일으려고 중고 뜨길 기다리는 중인데 워낙 읽는 사람이 없어서 안 뜰 듯 싶습니다... 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2 11:42   좋아요 6 | URL
저도 깜딱 놀랐답니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전에 빌려다 바로 읽었지요.
하나 더 있는데 그 책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리모델링 휴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이기 찾는 이들이 없어서 중고책으로
는 거의 로또가 아닌가 싶습니다.
 
외국 여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서상국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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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알라딘 동지 잠자냥님께 쌩유를. 아마 잠자냥님이 <여행가방>의 친절하게 덧글을 달아 주시지 않았다면, 난 아마 세르게이 도블라또쁘의 책은 한국에 달랑 한 권만 있는 줄 알았으리라.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추천해 주신 <외국 여자>를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분량부터 마음에 들었다. 아주 가뿐했다. 더더욱 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가끔은 이런 불량식품 스타일의 책들도 읽어야 제 맛이지.

 

<여행가방>에서도 말했지만,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추구하는 쏘비에트 리얼리즘은 소련의 스타일이 되어 버린 진지하고 엄숙하고 무언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만한 체제 비판적인 그런 글들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블라토프 동지는 그런 고리타분한 편견에 핵펀치를 날린다. , 도블라토프의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하는데 인종적 분류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유대인은 모계로 전승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긴 나의 가계도 잘 모르는 판에, 외국 사람까지.

 

소설 <외국 여자>외국 여자는 바로 주인공 마루샤 타타로비치다. 이 여성은 쏘비에트 체제의 수혜를 잔뜩 받은 소위 특권층이라는 노멘클라투라 출신이다. 아버지는 공장장에 어머니는 무슨 디자이너였지 아마. 그러니 쏘비에트 체제에서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그런 존재였다. 학교에서도 인기 만점이었고, 학교와 직장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마루샤의 연애사업은 그닥 성공적이지 않았다. 첫 애인인 라지카라는 녀석은 프롤레타리아 유대인이었고, 마루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루샤는 장군의 아들 디마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당근 실패로 끝났다. 너무 바른 싸나이였던 디마의 무심함에 질린 마루샤는 가능한 모든 이들과 바람을 피운다. 두 번째 결혼은 유명 가수 브로니슬라프 라주달로프와 했는데, 가수의 바람기 때문에 결국 아들 료부시카만 덜랑 남기고 역시 실패로 끝났다. 마루샤가 죽겠다고 협박하자, 브론카는 물 속 가장 깊은 곳을 알려 주겠다는 노래로 화답한다. 끝내 주는 커플이 아닌가!

 

, 소설은 미국으로 이주한 마루샤네 동네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묘사로 시작했지 아마. 108번가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면서도 또 동시에 이질적이기도 하다. 뉴욕의 케이타운 같다고나 할까. 뉴욕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햄버거 대신 케이타운에서 순댓국을 한 사발 먹고 구겐하임 뮤지엄을 찾았던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어디 사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문제는 마루샤의 친구이자 작가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작가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망명이나 이민을 떠난 작가에게 그것은 언어적 사망 선고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롤리타>의 나보코프 같은 대작가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따름이다. 모국 소련에 창작의 자유는 없는 대신 독자들이 있었지만,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창작과 출판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정작 예의 문학을 소비할 독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바로 문제였다. 오호 통재라.

 

소련에 남아 살아도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마루샤는 아무 생각 없이 라지카와 결혼한 뒤, 아들 료부시카와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의 퀸즈에서 마루샤 모자는 1도 모자라지 않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아무리 볼셰비키가 지배하는 조국에서 잘 나가던 이들도 모두 미국식 자본주의 앞에서는 조금 더 평등했다. 아니 평등하다 못해,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느냐가 최우선하는 가치가 되었다. 쏘비에트식 평등주의에 물들어 있던 이들에게, 돈벌이에 혈안이 된 미국의 살벌한 경쟁이 달가울 리가 있나 그래. 특권층으로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이 산 마루샤의 추락은 예상한 대로 그대로 진행된다.

 

그렇게 버거운 이방인으로서의 살이에 지친 마루샤는 자본주의 본고장에서 암약하는 조국의 KGB 요원들에게 포섭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어 외국 여자가 된 마루샤에게 쏘비에트 조국은 그렇게 만만하게 응대하지 않았다. 조국의 대리인들인 KGB 요원들은 마루샤에게 반성문인지 논문인지를 요구한다.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 같은 반체제 인사라면 당연 씨도 먹히지 않는 수작에 거창한 방식으로 대응했겠지만,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민길에 오른 마루샤는 그런 KGB 공작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흘려버린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미주 공연에 나선 브론카의 공연을 찾기도 하고, 그런 마루샤를 질투하는 바람둥이 라파 곤잘레스의 질투를 사기도 하는 마루샤의 좌충우돌 미국 생활기는 계속된다. 결국 그렇게 속을 썩이던 라파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마루샤. 소설에서 이기적인 조지아인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모두 다 차지한다고 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는 명백하게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과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의 수장이자 스탈린의 멍멍이로 불렸던 라브렌티 파블로비치 베리야를 겨냥한 냉소적 비판이다. 그 둘이 활개를 치던 시절, 이런 글을 썼다면 도블라토프는 당장 총살형 아니면 시베리아 종신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도블라토프는 이국땅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살게 된 신산한 이민자들의 삶이라는 층위에 바스락거리는 페이스트리 같은 망명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어떤 모습들을 고명처럼 얹었다. 밀푀유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어떤 이유로 그곳에 흘러들었건 간에, 그들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행가방에 자신의 과거를 바리바리 싸서, 물 건너온 이들을 맞이한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들보다 그렇지 못한 따라지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읽을수록 더 땡기는 맛이다. 잘 버무렸다.


[뱀다리]



우연히 도플라토프의 사진이나 검색해 보려고 하다가 2018년에 나온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런 영화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구나.


이 작가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질 법도 하다 싶었는데, 내 생각에 앞서 아예 영화로 만든 이가 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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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19 22: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가방> 오는 중요.
내일 온대요^^
품절이라 중고로.. 알려주신대로!
언제 읽고 올리게 될지는 모르지만.ㅎㅎ

레삭매냐 2021-07-19 23:26   좋아요 4 | URL
일단 사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또 언제 구할 수 있을 지
모르니깐요. 읽는 건 천천
히 가셔도 됩니다, 넵.

독서괭 2021-07-19 23: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구해서 읽는 속도가 엄청나시네요. 여행가방 리뷰 본지 얼마 안 됐는데..!

레삭매냐 2021-07-20 00:19   좋아요 5 | URL
<여행가방>이 넘 재밌어서
다 읽고 나서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려다 어제 출근길
버스에서 다 읽었답니다.

다른 책(보존지구)도 빌려다 읽을라구요.

청아 2021-07-20 0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리 말씀하시니 안 담을 수가 없네요! <여행가방>도 <외국여자>도 쏙😊

레삭매냐 2021-07-20 00:21   좋아요 4 | URL
<우리들의>라는 책도 있는데
그 책을 소장 도서관이 이달
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가방> <외국 여자> 모다
모다 재밌습니다.

새파랑 2021-07-20 0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품절이군요 ㅜㅜ 글이 아주 흥미 만땅이네요. 러시아는 역시 KGB, 보드카, 그리고 시베리아~!!

레삭매냐 2021-07-20 07:25   좋아요 5 | URL
지만지에서 나온 <외국 여자>는
시중에서 구하실 수 있고,
뿌쉬낀하우스에서 나온 <여행가방>
은 품절이랍니다.

로씨야는 역시 KGB-보드까 그리고
싸이베리아로 귀결된다는 말쌈,
핵심이네요.

바람돌이 2021-07-20 0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 세상에 읽을 책은 정말 널리고 널렸습니다. ^^ 그동안 잘 지내셧죠? 좀 오랫만에 들어왔어요. ^^

레삭매냐 2021-07-20 07:25   좋아요 4 | URL
웰컴 백입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책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1-07-20 09: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잘 읽으셨군요! 정말 피식피식 약간 헛웃음 나오는 작품이죠? 도블라토프의 참맛을 아는 독자 분이 또 한 명 나타난 것 같아 기쁩니다. (내가 왜;; ㅋㅋㅋㅋ)
전 얼마전에 중고로 <우리들의>가 나왔기에 덥석 구매했어요.
<여행가방> 그 책은 아주 오래전 사 읽고 갖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품절, 레어템이 되니까 왠지 볼때마다 더 흐뭇? ㅋㅋㅋㅋ
<수용소>나 <외국여자>는 지만지 책이 좀 비싸서리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고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0 10:50   좋아요 4 | URL
피식피식 헛웃음이야말로 도블라토프
작가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식스~

도블라토프의 책들이 대중적이지
않아 더 찾아 보는 재미가 있네요.

지만지 책들은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네요. 희귀한 작가들을 번역
해서 그런지 어쩐지...

잠자냥 2021-07-20 09: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살하겠다는 아내에게 불러준 이 노래 진짜 웃기지 않습네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대가 만일 강으로
빠져 죽으러 갈 것이면,
내게 안녕을 고하러 와 주오.
내가 그대와 함께 강으로 가서
가장 깊은 곳을 가르쳐 주리다. (56쪽)

레삭매냐 2021-07-20 10:55   좋아요 4 | URL
그렇지 않아도 잠자냥님의 리뷰를
보고 기대하던 시퀀스였는데
역시나 빵빵 ~ 터졌습니다.

로씨야식 유머?

mini74 2021-07-20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도 내용도 홈쇼핑 매진임박보다 더 혹하게 하는 ㅎㅎㅎ 러시아소설 은근히 매력있고 재미있는거 같아요. 이름은 낯설지만 ㅠㅠ

레삭매냐 2021-07-21 06:05   좋아요 2 | URL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도끼 선생이나 톨스
토이의 엄근지 모드에 질려서...
로씨야 소설들을 멀리 하였으나
도블라토프를 통해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달에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도블라토프로 급변경했네요 ㅋ

초딩 2021-08-06 17: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아이구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부랴부랴 책 사들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관왕 완전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1 | URL
앗 한 개가 아니었군요 :>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가방도 받았고, 덕분에 재밌는 독서!
축하도 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졸라 읽는다고 하고선
다른 작가로 ㅋㅋㅋ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1-08-06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 달에는
뽀나스를 더 주셨네요.

하나의책장 2021-08-14 0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1-08-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여행가방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지음, 정지윤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작가를 어떻게 알게 됐지? 이 책은 나의 램프의 요정 중고책 장바구니에 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냥감이 뜨자,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같이 산 책 중에 올리비에 롤랭의 <수단 항구>. 절판된 책들을 만날 때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왠지 구소련 작가들의 책들은 엄근지하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반체제 서정 시인임을 자처하는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가 쓴 여덟 개의 단편들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쏘비에트 작품들에 대한 인식과 그 궤를 달리한다. 한 마디로 재밌다는 말이다.

 

가난을 벗 삼아 살아온 도블라또프는 구소련 시절, 모국에서는 반체제 작가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이 하나도 출간되지 못하는 그런 비운의 작가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한 후 명성이 알려져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50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이국땅에서 영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에 요절한 작가의 전설을 선호하는 미국 팬들이 그를 전설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로베르토 볼라뇨처럼 말이다.

 

도블라또프는 미국으로 가는 망명길에 싼 여행가방에 든 여러 아이템들을 추억을 회고한다. 마치 셰헤라자데가 폭군 앞에서 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그렇게 작은 가방에 담긴 사물들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분명 구 쏘비에트는 공산당과 KGB가 인민의 삶을 통제하는 독재사회였다. 도블라또프가 전면으로 그런 사회 체제를 비판했다면, 아마 그가 구수하는 리얼리즘은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대신 작가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체제 비판에 나선다. 이놈의 나라는 술 그러니까 알코올로 대변되는 보드까가 들어가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보드까도 내가 아는 스미노프 따위는 짝퉁 알코올이고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다. 이름이 어려워서 외우지도 못하겠다. 그러니까 공산당도 결국 보드까의 벽은 넘지 못했다는 말일까.

 

소설의 화자는 도블라또프의 분신으로 보인다. 청년 도블라또프는 대학 진학 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류 계급의 일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숱한 빚을 지게 되고 손쉬운 돈벌이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핀란드산 양말 밀수업에 나선다. 왜 그런데 미국처럼 코카인 같은 마약이 아니라 양말일까? 이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쏘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고작 이웃나라 양말을 수입해서 일확천금을 노린단 말이지? 밀수범들의 계획과는 달리 전혀 품질이나 가격에서 수입산 양말에 뒤지지 않는 국내산 양말이 시중에 대량으로 풀리면서 나는 20년 동안 연두색 핀란드산 양말을 신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것 참.

 

그의 조국 어딘가에서는 항상 도둑질이 행해지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도 엉터리 기념 조각상 작업을 하면서 일보다 현장의 막내로 보드까 사러 다닌 추억만 가득할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납기일에 맞춰 위험천만하게 작업을 마치고 개통식에 등장한 시조프 레닌그라드 시장의 구두를 저자는 훔쳤다고 고백한다.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는 방식일 테니 말이다.

 

죄수 호송 중에 보드까에 취한 동료에게 쇠 벨트로 얻어맞은 불상사는 또 어떤가. 가만 보면 모든 사단의 근원은 바로 그놈의 보드까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면 체제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하는 게 보드까라서 그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쏘비에트 인민들에게 공급한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했다.

 

직장 동료에게 배우 역할을 제안 받고 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 표트르 황제로 분장해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워낙 이상한 주정뱅이들이 많으니 황제 복장을 하고 거리를 다녀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대신 쏘비에트 인민들은 술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새치기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그런 그들의 분노를 유발하라는 주문을 저자에게 날린다. 그게 바로 쏘비에트식 리얼리즘의 날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을 읽으면서 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쌌던 여행가방에 대해 생각해봤다. 장거리 여행이기 때문에 짐은 최소한으로 싸야만 했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도블라또프는 자신이 나고 자란 쏘비에트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하는 이주였기 때문에 내가 싼 짐하고 아마 차원이 달랐으리라. 도블라또프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라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아마 자신의 여행가방에 담지 않았나 싶다. 아니 어쩌면 그 여행가방을 싸는 순간부터, 작가는 훗날 이런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기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원래 작가는 그런 종족들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글밥 소재에 시달리는 그런.

 

도블라또프의 또 다른 책이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유일무이한 번역서였다. 그의 유쾌한 서사에 매료가 돼서, 얼마든지 그의 팬이 될 요량이 있는데 더는 읽을 책이 없으니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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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8 0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블라토프 책 여러 권 번역되어 있습니다! 도블라토프로 검색하세요. 지만지에서 <수용소>, <외국 여자>, <우리들의>, <보존지구> 그리고 이 책 <여행 가방>도 있습니다. 제가 도블라토프식 유머를 좋아해서…. ㅎㅎㅎ <외국 여자>부터 추천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7-18 17:47   좋아요 1 | URL
도블라토프였군요 !!!

지만지가 하도 축약 번역을 한
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동안
꺼렸었는데...

오전에 당장 달려 가서 <외국
여자> 빌려다 절반 정도 읽었
습니다. 역시나 재밌네요.

도서관에서 도블라토프 책들
은 그닥 애용하지 않는가 봅
니다, 띄엄띄엄 있더라구요.

잠자냥 2021-07-18 20:22   좋아요 1 | URL
지만지는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출판사에 질문한 적이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축약본은 ‘천줄읽기’라고 표시되어 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도블라토프는 축약본 아닙니다. <외국 여자>, <수용소>는 장편(?)인데도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확실히 축약본 아니더군요.

레삭매냐 2021-07-18 22:3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그렇다면 안심하고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7-18 09: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머를 품은 쏘비에트 리얼리즘!
제목이 호기심을 일으키네요.
몰랐던 작가와.!

레삭매냐 2021-07-18 17:47   좋아요 3 | URL
헌책방에 뜨길 기다렸는데
냉큼 가서 업어 왔습니다.

잠자냥님이 추천해 주신
<외국 여자>는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벌어
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네요. 다 재밌습니다 !!!

얄라알라 2021-07-18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두색 밀수 양말을 20년 신게 되는 상황설정이 참신하네요.
대박을 치고 요절이라니, 아쉽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그런 극적인 인생 굴곡 때문에 팬심이 더 커졌는지도 모르지만요^^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이 이름 어찌 기억할까요?^^일단은 [여행가방]이라는 책 제목으로 기억해놓고 갈게요. 덕분에 좋은 책 담아 갑니다. 감사드려요^^

레삭매냐 2021-07-18 19:58   좋아요 1 | URL
달랑 한 권만 나온 줄 알
았는데, 여러 권이 있더라구요.
이래서 닝겡이는 더 배워야
하는가 봅니다 ㅋㅋ

추천 받은 <외국 여자> 읽고
있는데 쏘비에트 시절과는
또 다른 스탈의 미국 생활기
가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지만지 책이라는 게 쩜...
 
신센구미 혈풍록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전부터 사냥하고 있던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오늘 다 읽은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이다.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미 책은 절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막 이 책을 구하고 그랬다는 건 아니다.

 

사실 작년 여름에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야에스><오다 노부나가>를 읽지 않고 또 작년 말 올해 초에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넥스트 레벨로 가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을 마쳤다고나 할까.

 

신센구미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한때 즐겨 보던 만화 <바람의 검심>을 통해 알게 됐다. 유신지사 켄신과 맞짱을 뜬 인물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캐릭이 바로 신센구미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였다. 실력 면에서 막부말 최강이었다는(말 그대로 전설일 지도 모르겠다) 켄신과 버금가는 고수가 바로 유신 지사들의 숙적 사이토 하지메였다. 나주에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의 경관으로 신분을 바꿔 켄신과 협력했지 아마. <신센구미 혈풍록>에도 사이토 하지메가 등장하는데 시바 료타로는 나중에 야마구치 하지메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1863년 교토의 미부 지역에서 아이즈 번의 지원을 받으며 일단 무사들로 결성된 신센구미는 테러리스트 집단이었다. 미토 번에서 개발한 존왕양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로닌 출신 사무라이들은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한 도막파에 대항해서 좌막의 선봉에서 상대 유진지사들을 암살하고, 교토의 치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갖은 폭력을 행사했다. 곤도 이사미 국장을 중심으로 한 오키타 소지 그리고 히지카타 도시조 3인방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신센구미 혈풍록>은 모두 15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센구미 대원들은 말로는 존왕양이를 주창하지만, 실제 그들의 본질은 스러져 가는 구질서를 지키려고 했던 이익 추구 집단에 불과했다. 엄격한 규율로 대원들을 처리하면서 배신자들은 색출해서 참수와 할복을 강요했다. 어느 번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던 실력 있는 로닌들이 다수 지원하고, 아이즈 번의 후원을 받으면서 교토에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막부 말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와 난세에 칼 한 자루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스러져 간 숱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기야말로 일본 (역사소설) 작가들이 센고쿠 시대와 더불어 가장 애정하는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에도 바쿠후 시절 같이 밋밋하고 아무런 일도 없는 그런 시절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당연히 구질서와 체제가 붕괴되고, 그 틈을 타 기존의 질서를 뒤엎어 버리려는 시도와 그것을 막으려는 반동 세력 간의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는 순간이야말로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도 등장한 이케다야 사건(낙양 동란), 금문의 정변, 사쓰에이 전쟁 등등을 다시 만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처음에는 과격한 방식으로 존왕양이를 주창했던 조슈 번과 경쟁하면서 아이즈 번과 협력해서 조슈 번을 몰아내기도 했던 사쓰마가 조슈와 동맹을 맺고 결국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메이지 정부군의 승리로 귀결된 도바 후시미 전투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신센구미가 가지고 있던 나무 대포 혹은 청동 대포로 서양에서 성능이 입증된 강선으로 만들어진 신식 대포를 상대로 무모하게 돌격하는 신센구미 대원들의 모습에서는 센고쿠 시대의 막무가내 정신이 연상되기도 했다.

 

신센구미는 대원들의 안위보다 조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상시적인 감찰로 대원들을 옥죄었다. 갖가지 죄목으로 내부 인사들을 숙청하는 건 기본이었고, 초대 국장이었던 세리자와 가모 같은 경우는 곤도 이사미와의 권력투쟁 와중에 암살되기도 했다. 일단 신센구미에 가입하면 탈퇴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수하를 이끌고 조직을 떠난 이토 가시타로의 암살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혈풍록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피바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출발해서 모욕을 당했다고 칼싸움을 벌이고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도주했다는 이유로 배를 가르는 등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의 인물들을 현대인의 시점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곤도 이사미만 하더라도, 도쿠가와 바쿠 시스템에서 모든 가치들이 생성된다고 믿었다. 그 가치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시바 료타로는 실존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신문 기자 출신 작가답게 마치 현장 리포트를 보는 듯한 그런 생생한 보고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고, 속도감이 넘치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불필요하게 피와 살이 튀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넘실거리지만, 그 또한 그 시대에 대한 하나의 스케치가 아니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뒤를 살펴보니 신센구미의 또 다른 주역 히지카타 도시조를 주인공으로 삼은 <타올라라 검> 3부작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혹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없단다. 중고로도 구할 길이 없고... 같은 하늘 아래 살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씨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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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14 17: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레삭매냐님 일본 무사 시리즈까지?!! ㅎㅎ 씨유순이라니 어쩐지 구수합니다.😊

레삭매냐 2021-07-14 19:28   좋아요 3 | URL
아주 오래 전, 고베 부근
아카시 대교가 보이던 타루미
인근의 숙소에서 어느 일본인
교수님하고 막말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 땐 진짜 아무 것도 몰랐었는데
이젠 좀 무언가 알 법하게 되었네
요.

요상하게도 제가 사무라이물을
좋아한답니다.

mini74 2021-07-14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저기 판매가 활발히 되는 거 사냥하심 안되나요. 그 쪽이 더 싱싱한데 ㅎㅎ
전 오다노부나가는 어릴 적 아버지가 대망? 읽은 이야기 해주셔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주신구라랑. 그때 기억이 나면서 아 재미있겠다. 그렇지만 절판? 도서관 검색 들어갑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7-14 19:29   좋아요 4 | URL
주신구라 썰은 일본 이야기에
빠지면 안되는 감초 같은 이
야기인가 봅니다.

<신센구미 혈풍록>에도 주신
구라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레어 아이템일수록 사냥하는
맛이 쏠쏠하지요 ㅋㅋ

새파랑 2021-07-14 19: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사냥꾼 vs 칼잡이 대결이군요. 바람의 검심 이야기는 너무 반갑네요. 어릴때 정말 좋아했는데 ^^ 레삭매냐님의 절판책 사랑은 👍

레삭매냐 2021-07-14 19:30   좋아요 4 | URL
루로우니 켄신은 아주 애장하는
만화라, 애니 버전도 DVD로 다
사서 모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으로 모았는데 지금
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절판될 책을 득템할수록 으쌰으
쌰하게 됩니다요.

붕붕툐툐 2021-07-14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프사와 ‘사냥‘이란 말이 절묘하게 어울리네용! 전 사무라이물 진짜 못 읽는 책 중 하나지만, 희귀템을 얻었을 때의 희열은 완전 공감합니다!!^^

레삭매냐 2021-07-15 11:05   좋아요 1 | URL
아니 사무라이 물이 얼매나 재밌는
뎁쇼 ~~~ ㅋㅋ

오랫동안 노려 오던 책이라 아주
흡족했습니다.

희선 2021-07-14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켄신 알지만, 예전에 텔레비전 만화영화는 한번 정도밖에 안 봤네요 짧은 건 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신선조 이야기 하니 <은혼>에 나온 게 생각기도 합니다 거기에서는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 히지카타 도시조 웃기기도 했네요 히지카타가 마요네즈 좋아하던 것도 생각납니다 은혼 끝까지 못 봤지만...

소설은 역사에 더 가깝게 썼겠습니다


희선

레삭매냐 2021-07-15 11:06   좋아요 1 | URL
제가 만화-애니 그리고 영화를
차례로 보았는데 역시나 그 순서
대로 좋더군요. 영화는 여엉...

<은혼>은 처음 들어 봅니다.
바로 검색 들어갑니다.

그렇게혜윰 2021-07-15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암튼 제가 모르는 책 많이 아셔 ㅋ 덕분에 괴물들...샀는데 출간전에 페이퍼 쓰셔서 그런가 땡스투 안 떠서 라로님께 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7-17 08:54   좋아요 1 | URL
알라딘 동지들에게 가면 그만이지요 :>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07-17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검심에서도 나오는 것 같지만, 최근에 본 은혼이 더 먼저 생각납니다.
은혼에서는 신선조 대신 비슷한 이름의 진선조라고, 경찰 비슷한 조직으로 나왔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재미있다고 하시니, 나중에 다시 출간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바 료타로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21-07-18 17:4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은혼을 언급해
주시네요.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날이 더우니 만사가 다 귀찮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amsh79 2023-03-0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는데 대망 두꺼운거 29권30권이 타올라라 검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