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종소리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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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시작한 <베네치아의 종소리>가 추월해 버렸다.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인가 싶었었는데, 스가 아쓰코 여사의 이탈리아-유럽 시절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성장기의 이야기들로 반전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적에 아쓰코 여사는 일본의 전형적인 부르주아지 가정의 수혜자가 아닌가 싶다. 책의 곳곳에서 자신은 전후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후에 그렇게 유럽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자체가 아무에게나 허용된 일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로마 시절, 한국에서 온 김 씨는 결국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쓰코 여사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갔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카티아라는 독일 친구는 어쩌면 아쓰코 여사의 인생행로를 이탈리아로 인도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니 그녀가 프랑스 시절 소르본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노동사제가 주관하는 미사에도 참가하고 또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분위기에 편승해서 샤르트르 순례도 나섰다는 체험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아카데믹한 언어 말고, 실제 생활에서 원어민을 따라 가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아쓰코 여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와 있던 아쓰코 여사가 이탈리아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관심도 없는 사회학 전공을 조건으로 이탈리아로 갔다고 했던다. 멀쩡한 방송국 일 대신, 다시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말이지. 아무리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29세의 적지 않은 또 새로운 환경과 나라 그리고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인생은 결국 자신이 책임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바람난 꼰대 아버지가 뭐라고 하더라도, 아쓰코 여사는 자신만의 삶을 꿋꿋하게 살지 않았던가. 미션스쿨에서 엄격한 수녀님들과 함께 야구를 즐기기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에 계속해서 도전하는 모습은 결국 그녀를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고 또 그 다음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밀라노에서 페피노를 만나 결혼도 하지 않았던가.

 

사실 전작들인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등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든 생각이 과연 페피노는 어떻게 죽었는가 그리고 그의 병명은 무엇인가 등등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슬픈 과거를 꽁꽁 사매고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아주 약간의 단서만 남길 뿐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다. <베네치아의 종소리>에서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석달 뒤에 죽었다라는 실마리로 그녀의 고통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추론해 볼 뿐이다.

 

전쟁 중에 큰이모집에 피난 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람 좋은 그 집의 장남 긴이치 사촌오빠는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필리핀 전선에 파견되었다가 병사했다고 했던가. 시집간 나오 언니와 같이 친정에 와 있던 어린 카즈가 병으로 죽는 과정도 슬펐다. 전시에 근로봉사대로 동원되어 공장에 가서 강제 노동을 했다는 체험도 아쓰코 여사는 들려준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보다 더 한 일도 겪지 않았던가.

 

작가가 구사하는 어떤 죽음의 이미지(남편 페피노의 사망으로 귀결되는)<아스포델 들판을 지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페피노의 큰형과 누이가 결핵으로 돌아 가셨고, 철도원이었던 시아버지마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이런 변고를 목격한 페피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래도 이방인 아쓰코 여사와 결혼해서 건강을 되찾아 가나 싶었지만, 그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타향에서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인연들은 기꺼이 손을 내주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그런 인연들은 삶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네 삶은 그런 것이다.

 

코르시아 서점이 1960년 말, 서점의 정체성을 두고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그리고 이방인인 자신은 중립을 지키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노라고. 그 이면에는 이방인이라는 방패 뒤에 숨고 싶은 그런 마음이 엿보였다. 그전에는 나치 독일이 지배했던 나라의 언어인 독일어를 배우는 게 좀 꺼려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렇다면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침략 전쟁에 대해 독일처럼 처절한 반성을 했었나?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렇게 일본 지식인들은 과거사에 대해 인색한지 모르겠다.

 

비슷한 경험으로는 2007년 봄, 잘츠부르크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다 만난 일본 친구에게 여행에 목적에 대해 물으니 자기가 정한 '평화 순례'라고 하면서 아우슈비츠 등지를 여행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유럽도 좋지만, 자국이 직접 연관된 필리핀의 마닐라나 731부대가 주둔했던 하얼빈 혹은 바탄 반도를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언어 구사의 부족과 첨예한 이야기로 저녁 식사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아 패스했던 기억이 난다.

 

19366개월 여정으로 유럽 대륙을 누빈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베네치아의 종소리>는 마무리된다. 가장 가까운 혈육에 대한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바람난 아버지는 가족들을 저버리고, 바깥으로만 돌았다. 그런 가운데 자신과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을 홀로 키우는 작고하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심정과 아버지가 재력으로 베푼 일그러진 사랑이 빚어내는 양가적 감정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9월 들어 매일 같이 한 권씩 책을 읽고 있다. 이제 한계에 도달했나.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마구 책을 씹어 먹듯이 읽고 있는 건가.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은 쉬엄쉬엄 읽어야지 싶다. 뭐 또 읽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나 스스로에게 추석을 맞아 선물한 미미 여사의 신간 <청과 부동명왕>이 도착했다고 한다. 주말에는 미미 여사를 영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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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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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름이 물러서지 않은 가을이지만, 어쨌든 나의 독서열을 마구 타오른다. 어제 도서관에 상호대차로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내>를 신청했는데 거의 바로 도착했고 빌려서 이틀 만에 완주했다. 그만큼 재밌다는 말이겠지.

 

오래 전 대체역사를 다룬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구했는데, 그 책은 미처 읽지 못했다.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내>는 우연한 기회에 너튜브로 드라마 시리즈 요약본을 보고서 책이 너무 궁금해졌다. 결국 어제 빌려서 보기 시작했는데, 드라마와 원작 소설은 큰 틀만 유사하고, 큰 간격이 존재했다. 드라마 버전이 좀 더 큰 스케일로 진행되고, 소설은 뭐랄까 좀 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했다고 할까.

 

<높은 성의 사내>1962년 미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1945430일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연합군을 쓸어버리고 미국의 동부까지 점령해 버렸다. 러시아에서는 슬라브족을 우랄산맥 저편으로 쫓아냈다. 나치 독일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독일의 파트너였던 일본은 미국의 서부 해안지역을 점령해해서 태평양연안공영권을 지난 15년 동안 운영해왔다.

 

그렇다면 미국에 살던 백인 원주민들은? 1947년 치욕스러운 조건부 항복을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일본 지배계급에 복종하는 2등 신민의 지위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서부와 동부 중앙에는 로키산맥연방이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사는 상황과 너무 다른 그런 이질적 세계에 대한 스케치가 이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와 같은 점이나 다른 점을 찾게 되는 부작용을 경험했다. 드라마가 독일과 일본이 패망하고 미국-영국-러시아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2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밝힌 필름을 추적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소설은 미국 내의 레지스탕스 운동보다 1947년 종전 이래, 타국의 지배를 받고 순응하면서 사는 미국인들의 삶에 방점을 찍은 느낌이다.

 

일본이 지배하는 서부연방의 수도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골동품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골동품상 로버트 칠던, 일본 무역대표부의 다고미 노부스케, 전쟁에 참전한 퇴역 군인 프랭크 프링크 그리고 그의 아내 줄리아나 등이 엮어 나간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FDR(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암살당해 죽고, 아프리카의 롬멜이 영국군을 카이로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가 스탈린그라드에서 주코포의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결국 미국과 영국을 항복시킨다는 그런 가상의 설정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1962년 기술의 독일 제3제국은 달은 물론이고 화성과 금성까지 식민지로 만들 정도의 우주 공학이 발전되어 있지만 텔레비전 기술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군정장관으로 미국에 부임한 롬멜은 1949년에 대사면령을 내려 유대인들까지 동원해서 재건 사업에 몰두한다. 서부연방을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일본 제국은 독일 나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정한 방식으로 미국인들을 대했다고, 로버트 칠던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적 자존심까지 내려 놓은 건 아니었다. 지배계급의 젊은 인텔리인 폴과 베티 가소우라 부부에게 묘한 질시의 감정과 동시에, 매력적인 폴의 아내 베티를 유혹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들... 그리고 진품이 아닌 가품으로 드러난 자신의 판매 물품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리뷰를 쓰다 보니,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보다 이렇게 단선적인 생각들만 쓰게 되는 기분이다. 게다가 2대 총통 마르틴 보르만이 죽으면서, 독일에서는 총통 후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요세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그리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나치 악당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베를린의 템펠호프 공항에서 도미한 스웨덴 기업가 행세를 하는 바이네스(루돌프 베게너 대위)가 추진하는 이른바 <민들레 작전>도 엉성한 느낌이다. 결국 세계 정복을 위해 독일과 일본이 한 판 붙는다는 거지.

 

무엇보다 일본인 다고미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인 프랭크가 주역에 심취해서 허구헌날 산가지로 일상의 점괘를 치는 설정은 웃겼다. 과연 서양 사람들이 도()와 오(:깨달음)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프랭크와 에드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은세공품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폴 가소우라의 모습에 어쩌면 그런 역설적인 의미로 풍자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드라마에서 필름을 찾는 데 비중을 두었다면, 소설에서는 독일이 지배하는 영내에서는 금지된 호손 아벤젠의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소설 속의 소설이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이 또한 흥미로운 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조 치나델라와 함께 호손 아벤젠 수배에 나선 프랭크의 전처 줄리아나가 전화번호부에서 쉽게 찾아낼 정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오토 스코르체니가 이끄는 독일 특수부대들이 습격해서 눈엣가시 같은 아벤젠을 없애 버리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

 

<높은 성의 사내>를 읽고 나서 되는 대로 적다 보니, 감상이 파편화되고 그만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무려 62년 전, 작품이다 보니 소설의 구조나 전개 면에서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동시에 나치 독일과 일본의 전쟁 승리라는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오롯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들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뱀다리] 그래도 책의 어디에선가 만난 너새네이럴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는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못 말리는구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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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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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독성 독서의 대상은 이번 가을 일본 출신 스가 아쓰코 작가에 가서 꽂힌 모양이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필두로 해서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불이 붙었다. <코르시아>를 읽다 말고, 도중에 도착한 <트리에스테>도 만나고 뒤죽박죽이다. 결국 <베네치아의 종소리>까지 읽어야 그나마 속이 시원하게 되겠지.

 

저자에 따르면 밀라노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의 출발은 반파시스트 이탈리아 저항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등단 시인이자 선동가 그리고 가톨릭 좌익 사제로 알려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와 카밀로가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바로 코르시아 서점이었다. 책을 파는 공간인 코르시아는 밀라노에 내노라하는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문학 문화 정치 등에 관심이 이들이 모이는,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역설한 문화진지의 거점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극장 상영이라는 유통 과정을 필요로 하듯이, 온라인 서점이 없던 전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책들은 책방/서점을 통해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세상만사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또 토론하던 곳이 바로 코르시아였다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작가와 출판사가 책을 만들어도, 세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은 이들이 모여 책에 대해, 작가에 대해 그리고 연관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책쟁이들이 꿈꾸는 대동세상의 이상적 모델이 아니겠는가.

 

그 시절의 코르시아 서점에 모이는 인간군상들의 묘사가 부러워서 그만 멀리 나간 것 같은 느낌이 퍼뜩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을.

 

자신과 정치성향이 다르더라도, 밀라노 부르주아지들과 귀족들은 견해가 다르더라도, 일종의 살롱 문화를 통해 그들을 포용하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그들 내면세계의 꺼풀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19세기 산업화의 수혜를 받은 자본가 계급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그 너머에서 황금접시와 빛나는 크리스털 식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주눅 든 가난한 유학생의 모습이 남다르게 보이지가 않았다.

 

교회에서는 눈엣가시 같았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를 영국 런던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매사에 자신넘치고 성당에서 <인터내셔널가>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투롤도 신부가 스가 아스코 일행을 이끌고 런던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핍박받은 사제이자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그의 위상은 더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코르시아 서점에서 멀어지고, 신앙 공동체를 세우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좀 씁쓸했다.

 

스가 아쓰코가 하도 알레산드로 만초니 타령을 해대서 결국 그의 책 <약혼자들>을 구해서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소개됐었다는 것도 놀랍고, 절판되어 이제 구할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전자책으로는 구할 수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스가 아쓰코 여사의 전작도 그랬지만, 한 때 열심히 읽었던 다카노 히데유키의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도 일본에 표류 중인 다양한 군상의 친구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물론 아쓰코 여사의 책에 실릴 정도라면 최소한 에리트레아 출신의 양탄자 행상 미켈레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에리트레아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끌려 와서 사육제에 참가하게 되고, 이름도 잊은 미켈레가 어느 추운 날 석탄이 떨어졌다고 저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양탄자 행상으로 변신해서 코르시아 서점을 찾아왔다고 했던가. 이 정도 수완과 뻔뻔함 정도는 기본으로 장착해야 험난한 타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을까. 여기 나오는 미켈레의 이미지는 왠지 오래 전 영화 <파니 핑크>에 등장하는 선무당 오르페우스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미켈레가 아쓰코 여사에게 커피를 사겠다는 제안으로 더 오래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그런 일화로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독일인 청년과 사랑에 빠진 딸 덕분에 졸지에 부모의 원수 국가의 사위를 맞게 된 헝가리계 유대인 가브리엘레(피슈타) 시포슈 씨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가 보다. 피슈타의 딸 니콜레타는 자신의 유대인 가계를 몰랐다. 고지식한 독일 청년 베르트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삶에서 결혼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버렸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니콜레타는 결혼을 강행했다. 서로 다름에도 그 둘은 어찌어찌해서 삶을 영위해 나갔다. 전후 세대인 니콜레타와 달리, 히틀러가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난 베르트는 어쩌면 히틀러 유겐트 대원이었지도 모르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베르트의 외모가 총통과 닮았다는 점이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복잡한 생활을 이어가던 니콜레타와 베르트의 이야기. 그리고 목숨을 걸고 조국이었던 사회주의 국가 헝가리를 탈출한 뒤, 이탈리아에서 치과의사로 변신해서 10년 만에 다시 일어서는 괴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피슈타 아저씨는 자기 집에서 좌파 이야기가 나오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렇게 인간사 속에 녹아든 과거 그리고 정치적 이야기들이 끝없이 명멸한다.

 

코르시아 서점의 또다른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출판쟁이 가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코르시아 서점은 책 판매와 문화진지 역할 말고도, 좋은 원고들을 찾아 책으로 만들기도 한 모양이다. 바로 그런 책의 편집을 맡은 이가 바로 가티였다. 하지만 이 인간, 언제부터인가 넋을 놓고 산다. 그리고 이런 가티를 걱정한 서점 동지들이 저자를 지목해서 말해 보라고 한다.

 

맛 좋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포르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대화해 본 결과, 가티 인생 일대의 문제로 고민이 많아서란다. 그건 바로 아버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또 동생까지 생길 판이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노총각 가티가 아이를 가져도 믿을까 말까인데 일흔도 넘은 노인네가 자식을 보게 생겼다니.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책으로 옮기지 않고 배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여동생' 그라치아가 태어나고, 새엄마(?) 리나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하러 나섰다. 그런데 계속해서 애인을 갈아 치우던 바람둥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브리엘레 카레티의 이야기도 왠지 가티의 아버지의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아쓰코 여사의 후배에 해당하는 싼마오 생각도 났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책을 발표한 작가 말이다. 외국에 나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이방인 문필가들의 비슷한 어떤 하나의 패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멸하듯이,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 역시 문을 닫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1960년대 말, 문화혁명의 여파로 부르주아지 계급과 좌파 세력 간의 갈등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책의 말미에 아쓰코 여사의 친구 루치아 피니의 편지로 저간의 사정들이 밝혀진다. 코르시아 서점은 한 때, 젊은 레지스탕스 영웅들의 이상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짐으로 작동하게 된 점을 지적했을 때는 참 아쉬웠다.

 

그리고 뒤늦게 일본에 도착한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의 부고 소식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코르시아 서점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진짜 이런 이상적인 서점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가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불가능한 미션이라는 느낌이다.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기에 더 부러웠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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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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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대개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지난주엔가 일본 출신 번역가이자 작가인 스가 아쓰코를 알게 됐다. 아마 이번에 새로 나온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하다면, 작가의 전작들을 읽으면 된다. 우선 가장 가까운 중고서점에 품절된 <밀라노, 안개의 풍경> 재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람처럼 날아가서 샀다. 그리고 <러시아의 전쟁>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읽기에 돌입했다.

 

파리와 로마 유학을 했다는 자칭 롬바르디아 사람 스가 아쓰코에게서 왠지 모를 시오노 나나미의 향기가 났다. 나나미 씨가 극우 인사였다는 걸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 완독을 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서사하라에서 호세와 로맨스를 나누었던 대만 출신 작가 싼마오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니 연배로 보면 어쩌면 스가 아쓰코는 그들에 앞선 코스모폴리탄 선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구사하는 이야기는 마치 밀라노의 안개처럼, 베네치아의 물결처럼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밀라노 코르시카 서점에서 일하던 페피노와 만나 결혼하고, 롬바르디아인으로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문장을 읽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가 아쓰코의 이야기들은 미스터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가 아쓰코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거구의 순박한 노총각 안토니오가 죽은 남편의 장례식에 등장해서, 운구 중인 관에 반쯤 시든 금작화를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소소해 보이는 무심한 이야기들로 독자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 다음, 이렇게 한단 말이지.

 

작가의 아버지에게 들은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가봤던 나폴리 생각이 절로 났다. 그 시절 나의 여행은 항상 무계획이었다. 그래서 로마 민박집에 여권을 두고 아무 생각이 나폴리 그리고 내친 김에 카프리섬까지 갔다가 소렌토를 돌아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뿔싸, 로마행 마지막 기차가 출발했다고 한다. 미치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폴리의 싸구려 호텔에라도 가서 자자 싶었지만 여권이 없다고 해서 모든 호텔에서 거절당했다. 그래서 결국 나폴리 중앙역 부근의 경찰서에 들어가 쪽잠이라도 자려고 했는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나폴리 중앙역 앞에서 박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 와중에 내 가방을 노린 누군가가 머리에 베고 있던 가방을 빼가려다 나에게 걸렸다. 날 보고 씩하니 웃고 그냥 갔던가. 어쨌든 나는 나폴리를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걸까.

 

나와는 다른 관습과 생각 그리고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매일 같이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내가 관심을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고, 또 스가 아쓰코처럼 유학생활도 하고 그러는 게 아닐까. 내가 그럴 수 없다면, 작가 같은 선배님이 쓴 글이 이렇게 반가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폴리의 좁은 골목 정중앙에 떡하니 의자를 내놓고, 사설통행세를 걷던 동네 아줌마의 패기가 부럽기도 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이중주차를 한 어느 차주 때문에(전화를 네 번이나 했으나 받지 않았다) 결국 관리사무소까지 가서 인터폰으로 방송해서 겨우 풀려날 수가 있었는데, 푼돈을 아줌마에게 쥐어주고 골목을 지나가야 했던 트럭 운전사 아저씨 같은 그런 기분이었을까.

 

아무래도 저자가 지식인 계급이다 보니, 보통의 여행자들과 달리 이탈리아 지식인들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 중 동맹국이었던 나라 출신 여성은 환대받지 않았을까. 전쟁 중에 실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마리아 보토니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마 마리아 보토니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작고한 부군 페피노를 만날 일이 없었을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스가 아쓰코의 문학적 오딧세이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단 말인가.

 

우리들의 인연들은 그렇게 한 순간의 인연에서 출발해서 영원으로 갈 수도, 또 그렇지 않고 단발성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엽서라는 통신수단으로 마리아 보토니와의 갸날픈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이 신기했다. 그리고 보니 지난 천년에 체코 여행 중에 나에게 엽서를 보내준 사찌에 나카무라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시절 참 재밌는 친구였는데 말이지. 자신의 나라에서 잘 살고 있겠지 싶다.

 

평범한 보통 사람인 줄 알았던 마리아 보토니가 알고 보니 레지스탕스 영웅이었다. 직장 상사의 부탁으로 빨치산 대장을 숨겨주었다는 혐의로 독일 수용소까지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실제 영웅이 바로 마리아 보토니였다. 아니 이 정도는 되어야, 글감으로 써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둘러 봐도, 내 주위에는 그런 영웅 레벨에 올라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의 어디선가 등장한 안토니오 타부키의 <인도 야상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어 나도 그 책 가지고 있는데 싶어서 어제 찾아서 첫 몇 페이지를 읽었다. 5년 전에 읽은 책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썼다는 <만초니가 사람들> 그리고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이거 알고 보니 무서운 책이었구만 그래.

 

시인 움베르토 사바가 쓴 시들에 대해, 누군가가 이방인인 스가 아쓰코가 알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다는 에피소드는 좀 씁쓸하게 다가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또 삶에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시리즈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주말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코르시카 서점의 친구들>도 빌렸다. 바로 읽어야지. <트리에스테의 언덕길>도 어젯밤에 이런저런 쿠폰 때문에 주문했다. 이렇게 알라딘 쿠폰 지옥에 시달리게 될 줄이야.



어제 저녁에 책 읽다 말고 잔뜩 쌓인 쿠폰을 해결하기 위해 주문한

스가 아쓰코 작가의 신간은 바로 오늘 도착했다.

번개배송의 파워.


[덧붙임] 이탈리아 유수의 회사인 올리베티 사에서는 해마다 한 권씩 고전 명작들을 선정해서 멋진 디자인의 양장본을 만들어 배포했었다고 한다. 삽화도 가득 넣어서 말이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부럽더라. 독서 문화가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한국에서도 그런 멋진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재력과 기획력을 갖춘 회사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선진국이 괜히 문화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도 아울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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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쟁 - 인류사상 최대 단일전, 독일-소련 전쟁 1941-1945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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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타임라이프 <월드워2> 시리즈로 다져진 나의 세계전사 내공은 조금은 밀덕에 가깝지 않나 싶다. 예전에 절판된 리처드 오버리 작가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 중고서점에 나오면 사려고 등록해 두었는데 지난달에 대망의 재개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러시아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고, 지난주에 받아서 주말 내내 읽어서 독파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그동안 해당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서인지 진도가 쑥쑥 나가더라.

 

저자와 역자도 인정하듯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파시스트 집단을 패망에 이르게 한 승리의 원동력은 영미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었다. 독일군 전체 피해자의 80% 이상이 동부전선에서 나온 것을 보면 더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전쟁기계 독일군을 상대한 소련군의 피해는 그것을 초월했다. 그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리처드 오버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들이 맞붙은 독소전쟁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머리말에서 리처드 오버리 작가는 IBP 영화사에서 1997년에 만든 10부작 다큐멘터리에서 <러시아의 전쟁>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검색해 보니 다큐멘터리의 소제목과 책의 소제목들이 일치했다. 너튜브에서 27년 전의 자료를 검색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볼 수 있다면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논픽션의 시작은 1941년 독일 기갑부대의 매서운 공격으로 적도 모스크바가 함락 직전에 몰렸을 시기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191910월 반혁명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었다.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이들이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는 영웅서사는 이미 22년 전에 만들어진 사실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태어난 신생국가 소련은 압도적 독일의 위세 앞에 혁명을 지키기 위해 19183월 독일과 치욕스러운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제정 러시아 시절 유지하던 상당 부분의 영토들을 잃었다. 폴란드, 베사라비아, 몰도바를 비롯해 동부유럽의 지분의 상당 부분이 그에 해당했다. 레닌의 뒤를 이어 일국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하며 독재자의 자리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은 엔카베데 같은 비밀경찰을 동원한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소련 인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갖추고 있던 소련은 집단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방 세계를 따라잡기 위한 공업화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의 실시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대량 기아 사태를 초래했지만,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정권은 이런 부수적 피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들이 훗날 전시 경제체제에서 모든 면에서 자신들을 앞선 독일을 능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있었다면, 반대편 파시스트 진영에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전설의 악당이 존재했다. 일단 국가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 체제는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그런 무엇이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악이었을까? 스탈린이 대숙청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고,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부상하던 1930년대 유럽 대륙의 이 두 악당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악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종주국의 리더 스탈린에게 손을 내미는 국가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는 독일을 필두로 한 세력들이, 그리고 동방에서는 내전에도 개입했던 일본의 위협이 가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안슐루스와 주데텐란트 합병 등으로 중부 유럽의 질서를 깨는 행동을 서슴지 않자,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은 즉시 견제에 나선다. 문제는 히틀러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뮌헨까지 날아가서 결국 체코를 내주는 대가로 평화를 샀다.

 

독일에 대한 서방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이에 손을 내민 게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과 폴란드 분할 등으로 강철의 독재자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유화정책을 구사했다. 이에 소련의 지도자는 대량의 곡물 수출 같은 경제적 보상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히틀러는 소련을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소련의 광활한 대지는 게르만 민족을 위한 레벤스라움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모든 걸 의심하던 소련의 지도자를 철저하게 기만한 히틀러는 대군을 동원해서 결국 1941622일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 격멸에 나섰다. 소련 침공 작전이 발동되기 전까지 숱한 정보들이 독일의 기습전을 예고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된다.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소련군은 전쟁 초기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독일 기갑부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1930년대 대숙청의 여파와 정치위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련 군인들은 전장에서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거듭했다.

 

독일의 3개 집단군은 각기 목표를 지니고 소련의 대평원을 휩쓸었다. 북부집단군은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 함락을, 중부집단군은 수도 모스크바를 그리고 남부집단군은 소련의 곡창지대이자 유전지대를 겨냥해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군은 바로 소련의 수도를 노린 중부집단군이었다. 이미 추축동맹국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발칸반도 작전으로 6주라는 소중한 작전 시간을 허비했고, 민스크-스몰렌스크 축선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중부집단군이 바로 모스크바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남부집단군을 지원하라는 군사 비전문가 총통의 명령에 따라 키예프 공략을 나서면서 소련의 수도는 결정적인 구원을 얻었다.

 

레닌그라드에서도 포위된 도시를 강력한 충격으로 일거에 함락시키지 않고 봉쇄를 명령하면서 결국 레닌그라드 포위 900일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북부집단군은 신속하게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전력을 중부집단군에 집중했어야 했다. 결국 오만한 독재자 스탈린은 만주 할힌골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사령관 대리로 임명하고, 군사 지휘의 전권을 주면서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수도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모스크바를 사수하는데, 독재자 스탈린이 후방으로 후퇴하지 않고 수도를 지키기 위해 잔류했다는 점도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

 

개전 초기, 압도적 독일의 공격에 소련 서부에 있던 공장과 설비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을 모두 안전한 우랄 산맥 너머 동방 축선으로 옮긴 것은 소련에게는 신의 한수 같은 결정이었다. 역시 독재국가답게 무지막지한 전시동원으로 인력과 자원을 갈아 넣으면서, 조금씩 전시 생산체제를 가동시켰다. 소련 시민들을 위한 소비재 생산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적과 싸우기 위한 전차와 항공기, 대포 그리고 탄약과 포탄 생산에 전념했다. 소련이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에서 미영의 무기대여법에 의한 원조 역시 큰 몫을 했다. 물론, 소련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면서 미영 연합군이 지원한 막대한 물량의 전쟁물자들 가운데 스팸과 스튜드베이커 트럭은 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독일군은 여전히 시대에 뒤쳐진 우마를 보급 수송에 사용했는데, 소련군은 미국에서 공여 받은 미제 트럭들을 사용해서 전장으로 필요한 탄약과 보급물자 그리고 예비병력들을 실어 날랐다.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62군을 위해 축차적으로 구원부대를 보내는 대신 천왕성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독일 최정예 부대라는 6군을 포위한다는 주코프의 신박한 전략이 등장했다. 물론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장이라도 점령될 것 같은 독재자의 이름을 딴 볼가 강의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독 안의 든 쥐 같은 신세였던 추이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62군은 악착같이 버텼고, 마침내 구원이 도착했다.

 

주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소련 야전부대가 스탈린그라드 북부 전선을 담당했던 루마니아-이탈리아군을 분쇄하고 강력한 두 개의 집게발로 스탈린그라드의 30만에 달하는 독일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현지 사수를 엄명한 미치광이 총통의 오판 덕분에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파파 호트와 만슈타인이 프리드리히 대장의 고립된 제6군 구원에 나섰지만, 몇 겹으로 둘러싼 포위망 돌파는 역부족이었다. 이 장대한 전투의 결과, 동방에서 독일이 승리할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이후에 이어지는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 그리고 1944년 소련군의 복수에 해당하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개전 당시, 실패의 이유를 곱씹고 1930년대 투하쳅스키 장군이 설계한 종심작전을 기반으로 한 제병합병 작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존의 소련군과는 달리 새로운 집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역시 전쟁에서 경험만한 게 없다는 진리일까. 그리고 전장에서 정치위원의 역할을 줄이고, 현장지휘관들의 판단을 중시하게 되면서 소련군의 사기는 고양되었다.

 

저자 리처드 오버리는 이런 점들에서 소련인들이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고, 독일과의 전투에서 파시스트 짐승들을 격멸하기 위해 자진해서 싸우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 사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독재자는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부역자 처벌을 필두로 해서 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을 갖은 이유로 숙청한다. 최고 전쟁영웅 주코프마저 한직으로 밀려날 정도니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했을지 모른다.

 

독소전 개전 3주년을 맞아 그나마 건재했던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겨냥해서 발동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은 독일에게 침략당한 자국의 영토를 모두 되찾는데 성공한다. 정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소련은 철저하게 주공 방향을 비밀로 감추는데 성공하고, 벨라루스 프리야트 습지대를 돌파해서 독일군 주력부대들을 차례로 분쇄했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이 그렇게 원하던 유럽대륙 제2전선을 연 미영 연합군이 노르망디 북부의 빌라 보카주에 갇혀 악전고투하는 동안,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엄청난 진군 속도로 지리멸렬한 독일군을 격파하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 비스와 강까지 도달했다.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르샤바에 있던 폴란드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폴란드 국내군이 봉기해서 독일군에 대항했지만, 빈약한 무기로 미쳐 날뛰는 나치 친위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바르샤바가 해방되면 공산주의 소련에 영향력 아래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며 선제적으로 봉기에 나섰던 폴란드 민족주의자 세력들은 나치에 의해 일소됐다.

 

스탈린이 일부러 폴란드 국내군의 봉기를 좌시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비스와 강에 도달할 무렵 소련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있었고 총통의 소방수로 알려진 발터 모델 원수의 우주방어로 결국 소련군의 공세를 멈추게 할 수가 있었다. 바르샤바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다음해 1월까지 기다려야했다.

 

결국 히틀러의 제3제국 패망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1943년과 1944년 잘 짜인 전략으로 전선에서 병력 감소를 최대한으로 줄인 소련군이, 파시스트 소굴 베를린 점령전투에서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승리의 트로피인 적국의 수도 점령을 위해 주코프와 코네프가 적극적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인명을 경시하는 소비에트 시절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졌고, 4년 전과 달라진 조국 수호를 위해 광신적 저항을 하는 독일군을 상대하게 된 소련군의 사상자 수가 격증하기 시작했다. 요새화된 정중앙 젤로 고지 전투에서 주코프가 고전하는 동안, 남부 전선 공략을 맡은 코네프가 보다 유리했다. 그래도 어쨌든 전쟁을 거의 주도하다시피한 주코프에게 적국의 수도 함락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던가.

 

천년왕국을 꿈꾸던 히틀러의 제3제국이 그렇게 몰락해 버리고, 이제는 전후 질서를 위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소련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어쩌면 제3제국의 멸망이 미래의 냉전 잉태를 예고하고 있었던 걸까. 전쟁이 끝나기 전, 영국의 처칠과 스탈린은 동부 유럽에서 각각 자국의 지분을 두고 경쟁했다. 처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자였던 스탈린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나마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종전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반공 노선의 트루먼이 후계자가 되면서 연합군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결국 자국이 해방된 나라들을 지배한다는 스탈린의 논리가 우세하게 되면서 동유럽이 스탈린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전에, 나치 전범들을 약식재판으로 처형하자는 미영의 의견에 스탈린이 반대하면서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전쟁 중에 폴란드에서 저지른 카틴 숲 학살 사건 같은 케이스는 아예 불문에 붙였다. 철저하게 나치 독일을 상대로 벌인 선전전에 불과했다. 결국 전범재판은 엔카베데를 동원해서 고문과 자백을 통한 재판 결과를 연출할 수가 없었던 소련의 쇼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단일전이라는 책의 표제처럼, 5년간 치러진 독소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많은 인명이 무고하게 살상되고,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 소련이 결국 독일을 무찌르고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최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소련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손실은 막대했다.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또 다른 막대한 강제 인력동원이 소요됐다. 나치 독일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었던, 소련의 전체주의 시스템이 바뀌리라는 희망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대조국전쟁의 승리로 소련 대중이 더 행복해지거나 부유해졌을까? 리처드 오버리는 독일과 소련 양국의 참전용사들의 전후 삶을 비교하면서 그렇지 않았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패자에게도 그리고 승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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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9-03 0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근본적인 원인이지요.프랑스 나폴레옹과 독일 히틀러의 침공으로 러시아 국민이 수천만명이나 사망했기에 러시아는 적성국과 국경을 맞대기보다는 완충지대를 두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레삭매냐 2024-09-03 14:10   좋아요 1 | URL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현재
러우전쟁이 떠올랐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나토는
더 이상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
을 지키지 않았죠.

푸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킨 원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요.

coolcat329 2024-09-03 0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부작 다큐 저도 보고 싶은데 없군요. ㅠㅠ
소련인민들이 스탈린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독일과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거군요. 근데 스탈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더 강력해졌으니 참 ...

레삭매냐 2024-09-03 14:11   좋아요 1 | URL
아마 오래 전 자료가 그런지
다큐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너튜브 세상에서도 없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인민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했지
만 전후, 다시 조이기 시작했
죠.

지도자에게 다시 사기당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페넬로페 2024-09-03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소의 대명사 히틀러와 스탈린은 파고 파도 마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열악했던 러시아가 독일을 막아내고 재침공 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을 지금 사람들이 앓는 것 같아요 ㅠㅠ


레삭매냐 2024-09-03 14:13   좋아요 2 | URL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을 위한 일체의 소비재
생산은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오로지
전쟁 물자 생산에만 몰두해서 결국
파시스트 나치 독일을 패망시켰습니
다.

제정 러시아 이래, 국가 러시아는
짜르를 원하지 않았나라는 분석도
등장합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로마노프 집
안의 짜르들, 공산당 시절에는 스탈
린 그리고 지금은 푸틴.

욕하면서 지지하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