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아침의 책들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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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 가서 빌릴 적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5년 전에 나온 책인데 절판되었다. 그러니까 살 수도 없는 그런 책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인가.

 

우연히 알게 된 스가 아쓰코 여사가 구사하는 잔잔바리 이야기들에 빠져 생전에 5권을 발표했다는 스가 여사의 책들을 섭렵 중이다. 아마 최근에 나온 <트리에스테>까지 끝낸다면 내 마음대로 선정한 이달의 작가로 불러도 될 듯 싶다. 갑자기 의기충천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스가 여사는 평생 책과 더불어 산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상인 출신 아버지는 이미 1930년대 유럽 여행을 할 정도의 댄디한 그런 메이지 남자였다. 그리고 훗날 유럽의 파리와 로마로 유학길에 오르는 딸에게 자신이 갔었던 곳을 가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바람난 아버지의 전적 때문인지, 딸은 아버지와 계속해서 불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리 오가이의 사전을 읽어 보라는 아버지가 알고 보니 독서 고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작가는 가감 없이 작고하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족이란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참 무서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을 내가 샀었던가. 아니면 산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 그리스의 걸출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자니, 기억은 자의적으로 왜곡되고 수정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택쥐페리와 <어린 왕자> 편에서는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에 나선 작가에 대한 단상들 그리고 공중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놀라운 시선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스가 여사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불편해지는지 모르겠다. 근로봉사로 학교 공장에서 혹시 연합군을 상대할 총탄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라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 좀 화끈하게 반성하면 안될까.

 

그런 면에서는 뒷부분에서 일본 군부에 의해 철저하게 개스라이팅당해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등장하기도 해서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기도 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도 백장미단 같은 저항운동이 존재했지만, 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전쟁 중에 어떤 저항운동을 전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자신이 한참 공부하던 시인의 저작을 보고 전율했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리고 보니 나는 아버지의 책장에서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책들이 죄다 종서에다가 왠 놈의 한자가 그리 많은지 난 옥편을 찾아가면서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이 김찬삼 씨의 세계일주기를 더듬더듬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을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그런지 오토바이를 끌고 나선 저자의 세계여행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막상 내가 해외여행을 하다 보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 다만 파리에 처음 갔을 적에, 버스 안에서 에펠탑이 보이기 시작할 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대학 시절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주인공 카타리나 베닌카사에 대한 전기를 읽고 나중에 시에나에 갔을 적에, 카타리나의 연고지를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인물과 공간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연결시키는 글쓰기야말로, 모든 에세이 작가들이 추구하는 로망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스가 여사의 글쓰기는 고수다운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정말 그동안 있는 지도 몰랐던 클로드 모르강 작가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라는 책은 스가 여사의 소개로 알게 됐다. 다행히 국내에도 소개된 책이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이와나미문고 시리즈로 소개된 모양이다. 그리고 일본 군부가 시키는 대로 맹종한 자신들의 빈곤한 정신에 대해 반성하는 장면을 읽고 조금은 스가 여사와 화해했다고나 할까. 인간답게 살기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도달하는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아 당장 중고책방에 달려가서 사다가 도대체 어떤 책인지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집 근처 창업센터인가에 미미 여사의 <신이 없는 달>과 이 책 두 권을 들고 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선선하니 책읽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낮인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여름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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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통행증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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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미 여사 책읽기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9년 전에 내리 5권을 읽고 나서, 쉬다가 이달 들어 3권을 잇달아 읽었다. 그동안 책들이 많이 나와서, 이번 추석에는 도서관에서 미미 여사의 책들을 왕창 빌려다 읽어야지 싶다.

 

에도 시대는 물론이고 현대 일본의 지명에 대해 좀 더 안다면, 미미 여사가 구사하는 에도 마치 이야기에 좀 더 몰입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나 구글맵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조 후카가와나 간다니 하는 지명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어쨌든 미시마야 시리즈 7번째 책인 <영혼 통행증>에는 세 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미시마야 흑백의 방에는 괴담을 들고, 그집 도련님인 청자 도미지로에게 들려 주고자 찾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마치 도미지로가 듣는 괴담을 바로 옆에서 듣는 격이라고나 할까. 미미 여사는 지상중계하듯이 이야기의 결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이고 재밌어라.

 

흑백의 방 규칙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철저하게 화자의 실명이나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에 대한 익명성을 보장한다. 화자는 말하고, 청자는 잊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도미지로는 반지에 한 컷 정도 그림을 그리고 오동나무 상자에 봉해둔다. 스타일도 참 멋지지 않은가.

 

첫 번째 이야기인 <화염 큰북>의 화자는 오카지 번 출신의 헌헌장부 사무라이 나카루마 신노스케, 고신자다. 전근대 시대, 화재는 다이묘가 다스리는 번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재앙 중의 하나였다. 일본 건물들의 대다수가 목재로 만들어졌으니, 불이 나면 삶의 거처인 집과 재산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 번주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화재 진압에 있지 않았을까.

 

오카지 번의 자랑하는 보물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화염/화마를 제압할 수 있는 혹은 경고를 해주는 큰북님이었다. 어느날, 이 큰북님이 절도당하고 훼손당하는 오카지 번으로서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고산지의 큰형님인 미남자 류노스케가 큰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번주 오카지 가지에몬은 자신이 신뢰하는 무사들을 데리고 오보라케 연못의 터주님을 알현하러 출동한다. 나카무라 가문의 나이 어린 신노스케와 그의 형수 요시를 대동하고서.

 

어렵게 도착한 오보라케 연못에서 털북숭이 터주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신물은 터주님의 손톱 조각을 하나 받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예의 손톱으로 새로운 큰북님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놀라운 비밀은 오보라케 연못의 터주님에 대한 것이다. 번에 사는 이들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카무라 신노스케도 그런 임무가 주어진다면 과연 마다하지 않을 것인가? 누군가를 책임질 필요가 없는 총각 고산지로서는 당장에라도 두렵지 않지만, 나중에 일가를 이룬 다음에는 또 다른 상황이 되지 않을까?

 

주군의 가문과 영지민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을 바치라는 명이 떨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겠다는 신노스케의 비장한 결심이 지나가 버린 사무라이 시대에 대한 하나의 그리움 혹은 아쉬움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두 번째 이야기 <한곁같은 마음>에서는 에도 마치에서 꼬치경단을 만들어 팔던 소녀 오미요 집안을 소재로 삼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도미지로 도련님은 다른 건 몰라도, 맛난 음식에는 사족을 쓰지 못한다. 한 마디로 미식가라고나 할까. 자기만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인심을 후하게 쓴다. 자신의 용돈을 들여, 미시마야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을 먹게 되면 사다가 제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 오타미는 자비를 들여 둘째 아들의 선행을 지원하기도 한다나.

 

오미요의 작고하신 아버지 이사지는 요릿집 '마쓰후지'의 촉망 받는 미래의 요리사 후보였다. 그리고 어머니 오나쓰는 고아이긴 했지만, 뛰어난 미모로 접대 하녀로 활약했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이 커플은 이사지가 폐병으로 더 이상 주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서 불행의 테크트리를 타게 된다. 그리고 마쓰후지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고급 요릿집이라는 성격마저 변질되게 되었다. 그전에 요릿상에 정갈한 음식을 내놓았다면, 유곽화되면서 여인을 상에 올리게 되었단다.

 

출중한 미모를 지녔던 오나쓰는 이름마저 나쓰에로 바꾸고, 병든 지아비를 부양하기 위해 색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리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세 명의 사내아이들을 낳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모두 이사지를 닮았다. 하지만 나쓰에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자, 새로운 요릿집 안주인 오토미는 이사지 일가를 내쫓을 궁리를 하게 된다. 오갈 곳 없게 된 오나쓰들은 예전에 마쓰후지에서 일하던 오산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여장부 같이 당찬 기세의 오산이 수레를 끌고 와서 오나쓰 가족을 구조했다.

 

그리고 노점상으로 그나마 먹고 살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오나쓰의 손님이었던 남자가 등장해서 행패를 부리고 쌍둥이 같다고 생각했던 삼형제들의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나쓰 가족들은 드디어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좀 사는 집의 자식이지만 고급 음식 대신, 노점상에 파는 꼬치경단 같은 음식도 아무런 거리낌 없는 도미지로의 인격을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요건 좀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싱거운 느낌의 인스톨이지만, 미미 여사가 구사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알싸한 맛을 지닐 수는 없으니까라고 생각하고 접어두자.

 

마지막 이야기인 <영혼 통행증>이야말로 이번 시리즈에서 미미 여사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갑을 연상시키는 고희 나이의 세련된 복장을 한 깃토미 씨가 등장해서 반세기 전, 자신의 부친이 운영하던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던 영혼 마을의 뱃사공과 봉인이 풀려 이승으로 나온 미나모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준다. , 그전에 처서 맞이 수박 타령도 했던가. 그리고 깃토미 씨는 준비해온 유카타를 흑백의 방 청자 도미지로에게 입어달라는 정중한 부탁도 했지 아마.

 

주인공 깃토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오카메의 손에 양육됐다. 보통의 경우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알려졌는데, 깃토미의 경우는 달랐다. 오카메 할머니는 깃토미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인정사정 할 것 없이 곱자로 응징했으니까. 하지만 훗날 깃토미의 새어머니가 되는 입이 거친 오타케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발도술처럼 곱자를 뽑아낸 오카메가 깃토미를 후드려 패려고 하는 순간, 오타케가 나서서 폭력을 무마시켰다. 여기서 발도술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웃기는지 잊어버릴 것 같지가 않다. 오카메에게는 곱자가 쌍절곤 같은 거였나.

 

어쨌든 오카메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카메야 여관이 그럭저럭 운영되던 가운데 영혼 마을의 뱃사공이라는 시치노스케가 등장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모든 망자들이 화혼이 되어 성불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저승에 가지 못하고 어떤 문제로 이승에 미련이 남은 노혼, 원혼들이 문제다. 시치노스케도 그런 원혼을 달래지 못해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혼들이 괴물이 되어 난동을 부리게 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화혼이나 성불은커녕 영원한 저주의 고통에 시달릴 판이다.

 

깃토미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나모 역시 그러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사람 좋은 깃토미 씨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어 억울하게 죽은 미나모, 아니 아오이 씨의 죽음을 신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시치노스케에 따르면, 결국 미나모는 성불했다고 한다. 스스로는 위험에 내어 주는 희생정신으로, 아오이 씨는 원한을 풀 수가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느닷없이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가 이제 막 임신한 오치카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업에 대해 말하자, 분노한 도미지로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오치카의 행복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도대체 이 미스터리한 작자의 정체는 뭐지. 훗날의 무언가를 대비한 미미 여사의 거대한 떡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편에서 내가 뽑은 키워드는 희생과 헌신이다. 주군과 영지인 그리고 가족을 위해 개인의 안위는 언제라도 내던질 수 있다는 나카무라 신노스케, 폐병으로 병석에 누운 남편 이사지를 위해 색을 팔았던 오나쓰, 할머니 오카메의 손주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던 오타케 그리고 아오이 씨의 원한을 풀기 위해 스스로 요괴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던 깃토미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어떤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멋진 서사의 힘이 아니던가.

 

미시마야 흑백의 방 청자는 이헤에와 오치카를 거쳐 도미지로로 바뀌었다. 너무 오래 전에 오치카 시절의 이야기들을 읽어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조금은 부족한 듯한, 노련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도미지로 스타일의 청자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연휴에 예전에 사기만 하고 읽지 못한 미시마야 시리즈를 찾기 위해 책방 정리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그 책들이 어디에 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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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저편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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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책을 만나는 경로도 다양하다. 미미 여사의 미시마야 시리즈를 읽다가 책 뒤편 후기에 마포 김 사장님이 추천한 <일몰의 저편>을 알게 됐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미리보기 서비스로 좀 읽다가 아 이거다 싶어서 바로 도서관에 들러서 빌려다 읽었다. 재미 하나는 정말 끝내주지 싶다. 그리고 물론 창작과 검열 그리고 요즘 뜨거운 이슈인 '정론'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중년의 작가 마쓰 유메이는 어느날 소환장을 하나 받게 된다. 그리고 총무성 문화국 문예윤리위원회라는 거창한 단체에서 발송한 몇월 몇일(629일 월요일이었나?)까지 어디로 출두하라는 명령조의 소환장이다. '약간의 강습'이 있을 거라는 고지에 사소하지만 주변 정리를 한다. 문제는 고양이 곤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키지 않지만 예전에 동거하던 가네가사키 유라는 친구에게 부탁하려고 전화했는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빡센데 이거.

 

도대체 자신이 왜 이바라기 현 근처의 외딴 바닷가 시치후쿠진하마 요양소에 가야 하는지 따지다가 자신을 데리러 온 니시모리와 한바탕하고 벌점 1점을 부과 받는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자신이 받는 벌점 처분은 치명적인 후과를 초래한다. 엄격한 규칙에 적용되는 요양소에 입소한 마쓰 유메이는 B98이라는 수인 번호와 유사한 번호를 부여 받고, 구류 생활을 시작한다.

 

당연히 휴대폰의 와이파이나 연락은 되지 않고, 방에는 전기 콘센트도 하나 없다. 요양소의 다다 소장과 면담하게 되면서 자신이 어떤 일로 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성애 소설 작가인 마쓰 유메이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강도 높은 창작물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의 그런 작풍을 혐오하던 이가 일년 반 전에 통과된 헤이트스피치 법에 따라 고발을 했고 그 여파로 마쓰 유메이가 이곳에 "교정"을 위해 온 것이다.

 

여기서 순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 들였다면 소설 <일몰의 저편>은 진행되지 않았으리라. 철저하게 통제되는 요양소 운영이 극도의 반발심이 생긴 마쓰 유메이는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결과 벌점이 추가로 4점이나 발생하면서 구류 기간이 7주로 연장됐다. 물론 그에 수반된 물리적 폭력은 기본이었다.

 

요양소에서는 마쓰 유메이의 왜곡된 창작욕을 고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사육을 전개한다. 우선 물과 음식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그렇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마쓰는 단것의 유혹에 너무 약하다. 나중에 다다 소장이 원하는 대로 작문을 하면서, 그가 제공하는 달달한 제로콜라의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19금 수준의 성애 소설을 주로 쓰던 마쓰 유메이에게 다다 소장은 무언가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그리고 노벨문학상에 필적할 만한 그런 작품을 생산할 것을 주문한다. 작가는 아니지만 소설 소비자로서 나도 이 장면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니 왜 다다 소장으로 대변되는 일개 국가 기관이 창작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지? 나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거대한 통제의 단면을 읽을 수가 있었다. 사회에 반한다는 이유로 낯 뜨거운 성애 소설부터 시작해서 검열을 시작한다면 다음 차례는 뻔하지 않은가. 반사회적 성향의 글이나 반역을 도모하는 그런 부류의 글에 대해서도 문예윤리위원회는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실제로 요양소에 수용된 작가들 중에는 그런 이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A45라는 이름의 익명의 누군가가 철저하게 감시되는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접근해서 요양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과연 A45는 믿을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좌절한 작가들이 잇달아 투신하면서 수용된 이들은 연대책임으로 중식을 거르는 벌까지 받게 된다.

 

수용소의 인질이 된 마쓰 유메이는 생존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엄마의 카레라이스>라는 그동안 자신이 구사해온 작풍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을 연상시키는 연재물로 다다 소장의 환심을 산다. 그랬더니만, 바로 자신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말이다. 시원한 얼음이 단긴 제로 코카콜라의 유혹은 작가로서 비굴함을 초월하는, 육신의 평안을 달래주는 그 무엇이었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일몰의 저편> 대부분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에 기반한다. 당연히 우울한 색조를 띨 수밖에 없다. 요양소에서는 수용자들의 교정이 아닌, 그들의 투신을 종용한다. 멀쩡한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미치지 않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사회와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외부의 도움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고 끊임없이 자신은 갱생한 순수한 작가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증명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비록 사회에서 성애 소설 작가이긴 하지만, 나름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싶은 마음이 마쓰 유메이를 통해 불쑥불쑥 폭발시킨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을 노벨문학상 작가 정도의 수준이 아닌 포르노 소설 작가로 설정한 건 작가의 신의 한수였다. 아마 누구라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요양소에 갇혀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분개하지 않을까? 하지만 마쓰 유메이는 그런 작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런 속세에 어울리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자유이며 표현의 자유라는 대전제 가운데 무슨 글을 쓰든지 간에 그건 자유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던진다. 그리고 다다 소장으로 대변되는 국가나 단체에 의한 일체의 (자기)검열을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만약 이런 사회가 도래하게 된다면 실제적 검열보다도, 억압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기검열이 이루어진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제임스 설터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존경과 사랑, 칭찬 그리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작가들이 마쓰 유메이처럼 핍박받는 시절이 온다면 과연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인가?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배치된 <전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형의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은 자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존의 자아를 유지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 안락한 일상과 삶의 편리함 등등.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이 원하는 글을 썼을 때, 과연 자신은 즐거울 수 있을까? 문득 그것조차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아주 조금 들었다. 잠시 마쓰 유메이에게 내 자신을 투영했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일몰의 저편>은 마포 김 사장님의 추천대로 소설이 품고 있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재밌어서 더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었다. 미미 여사의 책을 읽다 말고 시작했는데, 먼저 다 읽어 버렸다. 그것 참. 조금 남은 미미 여사의 <영혼 통행증>도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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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9-11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의 제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늘만 넘기면 이 무서운 더위도 꺾일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4-09-11 13:45   좋아요 1 | URL
쓰고 싶은 걸, 마음 대로 쓰는 자유!
무언가가 두려워서 마음껏 쓰지
못하니 답답하기도 하구요.

내일하고 모레 비가 온다고 하니
말씀해 주신 대로 더위가 가시길
기대해 봅니다. 너무 덥네요.
 
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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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뒤져 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이전까지) 미미 여사의 책을 읽은 게 무려 9년 전이었다. 그 시절에 미미 여사의 에도 마치 이야기에 빠져 중고책방을 돌며 책들을 컬렉션했다. 그리고 5권을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읽는 속도가 사들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제 <청과 부동명왕>을 읽는 와중에 도서관에 들러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빌렸다. 책의 순서 그런 건 없다. 그냥 미미 여사의 책이니까 읽는 것이다. 저녁에도 다시 한 번 동네 도서관에 들러서 비교적 신간들을 쟁여 오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열람실이 닫혀 있더라. 내 이럴 줄 알았다.

 

오늘도 중고서점에 들러서 미미 여사의 책을 사려다가 아주 잘 참았다. 내가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다 읽는 바람에 독서의 맥이 끊겨 버렸다. 그전에 사둔 미미 여사의 책들은 상자에 쌓아 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책탑을 허물 자신은 없고. 천상 내일 도서관에 가서 빌려야겠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미시마야 흑백의 방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인스톨이다. 기타기타 시리즈라고 하는데, 문고상 기타이치와 가마지기 기타지가 주인공인 모양이다. 전작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올해 16살 난 기타이치가 독립해서 문고를 제작해서 파는 행상이 된 모양이다. 이래서 좀 더 체계적인 독서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말이지.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볍게 몸풀기 스타일에 해당하는 표제작과 모모이 도시락 가게 일족의 변사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이세야의 주인장 겐에몬이라는 사람이 그려준 보선 그림이 불임 부부에게 특효라는 소문이 나고, 그 그림을 얻은 이들이 오래 기다리던 아이들을 가지게 되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경원시하던 겐에몬의 명성이 치솟기 시작한다.

 

문제는 어느 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 변사를 당하면서 겐에몬에게 모아지던 칭송이 비난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보선 그림에 분명히 있던 아기를 안은 변재천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에도 마치 시대의 괴담과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미미 여사는 잘 자라다가 변사한 자식들에 대한 상처를 안은 부모들을 마음은 물론이고, 이제 막 센키치 대장의 후계자로 한 걸음을 내딛은 기타이치의 성장까지 한꺼번에 아우르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낸다. 풋내기 오캇피키(탐정 역) 후보자인 기타이치는 문고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발품을 팔아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 사건을 풀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사실들은 그대로 묻어 두는 게 때로는 필요하다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는 좀 싱거운 방식으로 매조지가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도시락가게 모모이 일가 변사 사건은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기타이치가 단골로 삼은 모모이 가게의 어린아이인 오하나까지 포함한 일가족이 독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기타이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답게 비극의 현장을 직접 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센키치 대장의 유지를 떠받들어, 마쓰바 부인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미래의 오캇피키가 되고자 하던 기타이치는 검시관 구리야마 슈고로의 도움으로 모모이 일가가 부자라는 독에 독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모모이네 안주인인 오쓰네에게 직접거리던 히사주라는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고문 끝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지만, 결국 고문 후유증에 죽고 만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히사주의 죽음으로 모모이 일가의 비극에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끝내려고 하지만 구리야마와 기타이치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기타이치는 결정적으로, 범인은 언제나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는 조금은 진부한 말대로 거동이 수상한 여인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녀는 등에 은행잎 모양의 별난 문신을 하고 있었다.

 

기타이치는 억울하게 죽어간 모모이 가족의 신원을 위해 느티나무 집의 에이카님에게 부탁해서 거수자 여성의 용모파기를 작성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대략 몽타주 작성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보소 반도 구자키 마을 출신의 한지로가 등장해서 거수자의 정체를 밝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기타이치는 거수자를 체포해서, 관할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가 거수자의 동귀어진식 공격으로 용궁으로 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한다. 이 정도 액션은 기대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에도 마치 시대를 지배하던 바쿠후 시스템의 관리들은 사회 불량배들이나 전과자들을 오캇피키로 고용해서 사회 안정을 도모했던 모양이다. 이이제이식 방법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태평성대라고 하지만, 이런 위태로운 방식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일찍이 센키치 대장은 말했다(282). 그것은 마치 흑선의 내항으로 시작되는 서구열강의 서세동점의 시대에 대한 미미 여사식 경고장이 아니었을까. 쇼군을 정점으로 구축된 겉으로는 무척이나 견고해 보이던 지배계급 시스템이 외부의 강력한 충격으로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래된 관습이니 그대로 두자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의 해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모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노름패 히사주를 고문해서 자백을 받고, 진범 추적과 체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미미 여사의 이미 균열하고 있던 태평성대의 이면을 자신만의 텍스트를 통해 그대로 드러냈다.

 

미스터리 시대물에 이런 시대정신까지 아우르는 미미 여사는 소설적 재미와 역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사냥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래서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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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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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미미 여사의 책을 읽었다. 한 때 미미 여사가 구사하는 에도 시대물에 빠져서,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면서 일단 중고책방에서 작가의 책을 구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잠시 멀리했었다. 우리 책쟁이들의 세계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가 또 잠시 시들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내게는 미미 여사의 시대물이 그러하다.

 

일본 시대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19세기 에도를 중심으로 해서 펼쳐지는 진기한 괴담 이야기가 매혹적이다 못해 유혹적이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에도 미시마야라는 주머니 가게에는 흑백의 방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전에는 오치카라는 여성이 청자였는데, 시집가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녀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미시마야의 작은 도련님인 도미지로다. 24살 정도의 청년으로 생과자를 좋아하는 먹보 미식가로 보인다.

 

정갈하게 차려진 도코모나 앞에서 조금 세상 경험이 없어 보이는 도미지로가 이야기꾼들이 펼쳐 보이는 세상의 기담에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것인가? 재미나고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렇다면 그들은 현대 소설가들의 전신이 아니었을까. 문득 서사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야기를 써서 돈까지 번다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까? 소설에서는 우리의 도미지로가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물론, 집안이 유복하여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르주아지 상인 집안의 청년이라는 점도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미미 여사의 <청과 부동명왕>에는 모두 네 개의 인스톨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멧돼지를 닮은 우린보 님을 메고 와서 출산이 임박한 오치카의 순산을 기원하는 기담으로 출발한다. 동천암이라는 곳에 소외받은 여성들을 위해 일종의 구호소를 차린 오나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오나쓰 역시 어머니와 자기 형제들을 돌봐주던 이모를 잃고 불화를 빚던 아버지 곁을 떠나 독립한 에도 시대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의지결연한 여성의 전형이다.

 

마을에서 품삯을 받고 허드렛일로 돈을 벌고, 쇠락해 가는 암자 부근의 땅에 콩을 심어 보지만 쇠 기운 때문에 작물이 자라지 못한다. 진부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행상 로쿠스케가 밭에 청과를 심어, 쇠 기운을 빼내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부유한 집안에서 내쳐진 오사요가 동천암에 합류하고, 미미 여사는 그야말로 19세기 판 여성 연대의 저력을 보여준다.

 

오치카가 산기를 느끼면서, 미시마야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출산은 여성들의 전투라는 말과 함께, 도미지로도 비록 꿈에서나마 우린보님을 닮은 청과들을 수확하면서 전설에 나오는 악당 지네와 한 판 대결을 벌인다. 그리고 나중에 오치카가 매화꽃을 닮은 어여쁜 고우메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두 번째 인스톨인 <단단 인형>에서는 번주를 섬기는 다이칸이 번주 휘하의 백성들을 위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면 어떤 비극이 벌어지게 되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찰로 다가온다. 아무리 에도 시대가 태평성대라고 하지만, 무사 계급을 필두로 한 고착화된 계급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미미 여사식 비판이라고나 할까.

 

참 흑백의 방의 규칙 중의 하나는 화자가 굳이 실제 지명이나 인명을 말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한 익명성에 대한 보장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야기를 한 사람도, 이야기를 들은 청자도 모두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는 잊는 것이 대원칙이다. 물론 이 모든 걸 바로 옆에서 그야말로 녹취하듯이 기록한 미미 여사에게는 예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전 설화의 경우에서처럼, 터무니없어 보이는 전승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기록에 남길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상인이었던 자신의 현조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도미지로와 비슷한 또래의 몬자에몬은 가감 없이 들려준다. 선량한 다이칸이 영지를 다스릴 적에는 문제가 없지만, 악당 같은 다이칸이 백성들을 수탈하기 시작한다면 힘없는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장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사와야에서 일하던 몬이치/이치몬은 사부 격에 해당하는 유지(유 씨)를 따라 미쿠라무라 마을로 향한다. 기존의 사람 좋은 다이칸 대신 도아쿠 단조라는 악인이 다이칸의 자리에 오르면서 전국에서 유명한 된장을 만들고, 인형 두레를 하던 미쿠라무라 마을에 비극이 시작되었다. 압정과 수탈을 위해, 기존 거래처인 이사와야와의 거래를 끊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마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했다.

 

동행했던 유지마저, 무사들의 창에 살해당하고 몬이치는 길잡이 도비자루와 목숨을 건 탈출을 시작한다. 결국 도아쿠 단조의 악행에 세상에 알려져 그는 다이칸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미쿠라무라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유지를 사모하던 절세미인 오빈은 몬이치에게 답례로 흙 인형, 단단 인형을 하나 만들어서 선물해 준다.

 

3촌 정도 되는 크기의 자그마한 단단 인형은 일찍이 몬이치가 삼엄하게 포위된 미쿠라무라 마을을 탈출하면서 네 번이나 간이 녹아 내릴 뻔한 위기를 감안해서, 몬이치 가문을 네 번의 위기에서 구해줄 거라는 예언이 전해졌다. 그 예언을 이루고 단단 인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게 큰 줄거리다. 마지막으로 단단 인형의 활약으로 몬이치 가문을 구할 적에는 마치 한 편의 닌자 드라마를 보는 듯한 쾌감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렬했던 세 번째 인스톨인 <자재의 붓>이 가장 인상 깊었다. 화공 에이쇼가 소유하게 된 자재의 붓이 모든 화의 근원이었다. 이 붓을 들게 된 화공들은 그야말로 영감에 넘쳐 걸작들을 잇달아 생산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창작이라는 짐을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아티스트들의 한계를 뛰어 넘게 만들어주는 마리화나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다만, 자재의 붓은 소유자에게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제공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상상 이상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게 문제였다.

 

에이쇼의 부인을 필두로 해서, 딸과 아들 며느리 그리고 자기 집안에서 일하는 이들이 변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친구의 도움으로 저주 받은 붓을 봉인하는데 성공하지만, 에이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붓을 봉인해서 맡긴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리는 이야기다. 전에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반 장 정도의 종이에 그림으로 그리던 도미지로는 충격을 먹게 된다. 한 때 자신 역시 화공을 꾸지 않았던가. 도락으로 취미면 되지, 화공을 직업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된 걸까. 뭐랄까 미미 여사는 안분자족하는 일상의 삶에 대해 만족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과 부동명왕>의 대미는 <바늘비 내리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직원들을 데리고 출타한 마시마야의 이헤에와 오타미를 대신해서 도미지로가 형님이자 마시마야의 후계자 이이치로가 가게 업무를 맡고, 도미지로는 지원에 나섰다가 정강이 부상을 입고 만다. 아직은 덤벙대는 도련님이라는 신호일까. 흑백의 방 수호격인 오카쓰는 2대 청자가 된 도미지모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부상당해 심심하기도 하던 차에, 유카타노구니 출신으로 심한 사투리를 쓰며 오른팔이 없는 사나이 몬지로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스스로를 이것이라 칭하는 몬지로는 버려진 아이였다. 그리고 종이가게 사환으로 일하다가 수양 소개상을 하는 센조에게 픽업되어 어린 나이에 하자마무라 마을로 떠나게 된다.

 

미쓰루기야마 산을 중심으로 한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하자마무라 마을은 야마와타리라는 산새 새끼의 알껍질과 깃털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알껍질은 폐병에 특효인 치료제로 그리고 깃털은 훌륭한 방화복을 만드는 재료로 외진 하자마무라 마을의 보물 같은 존재다. 이 마을에 투입된 몬지로는 2살 어린 나나시와 도다이소라파트너가 되어 야마와타리 둥지에서 알껍질과 깃털을 채취하는 일을 시작한다.

 

<바늘비 내리는 마을> 역시 첫 번째 인스톨인 <청과 부동명왕>과 마찬가지로 에도 사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소외된 아이들에 위한 구호소적인 성격인 지니고 있는 하자마무라 마을의 비밀을 풀어내준다. 다만 그 주체가 누군가라는 미스터리는 최후에 배치해 둔 채로 말이다.

 

근래 최악의 불경기로 예년 같은 추석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간만에 다시 만난 미미 여사의 기담 시리즈는 여전히 흥미롭고 재밌었다. 태평성대로 알려진 에도 시대에도 보통 사람들을 옥죄는 사회 시스템과 계급제도의 부조리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래도 없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와 상부상조로 그럭저럭 사람 살만한 그런 세상이었다고 미미 여사는 <청과 부동명왕>을 통해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런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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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09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쁜 돌(?)을 읽으셨네요!

레삭매냐 2024-09-09 10:25   좋아요 0 | URL
언제 마지막으로 미미 여사의 책
을 읽었나 기록을 찾아 보니...
세상에나 9년 전이었네요.

9년 만에 다시 만나는 미미 여사!
말씀해 주신 대로 예쁜 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