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클럽 잔혹사
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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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출판계가 아주 난리가 났다. 좋은 일이다. SNS에서는 관련 피드가 넘쳐 흐른다. 그러다 예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책이 소개된 기사를 만나게 됐다. 모두들 한강 작가의 책에 정신이 팔린 동안, 나는 바로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시백 작가의 <사자클럽 잔혹사>를 읽었다. , 나도 교보문고에 들러서 한강 작가 품절 사진 하나는 찍어야겠다. 기념비적이지 않은가.

 

아주 살짝 삼천포로 빠질 뻔 했구나. 이시백 작가의 소설집 <응달 너구리>를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읽지는 않고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도서관에서 <사자클럽 잔혹사>를 빌리면서 같이 빌렸다. 국가에서 지정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책이라 아주 숭악한 책이 아닐까 싶었지만, 책의 실체는 너무 재밌었다. 아니 너무 재밌어서 블랙리스트에 올렸나?

 

책의 화자는 사자클럽 4기생 송영탁이다. 이 친구는 어려서 김신조 사건의 후유증으로 심한 말더듬증이 생겼고,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얼벙어리 취급을 받았다. 국민 총화단결을 강조하는 독재정권 밑에서 자란 영탁과 사자클럽 친구들은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시절을 겪었다. 저자가 묘사하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에는 묘한 환멸과 깊은 혐오가 배어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그 시절이 좋았노라는 타령을 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게 어딨나 그래. 학교는 영탁에게 아주 뜨거운 맛을 선사해 주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하나 같은 우악스럽고 학생들을 그야말로 공깃돌 가지고 놀 듯이 대하는 그런 폭력교사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웠던 건, '자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뺨때리기였다. , 그건 나중에 사자클럽 회원들끼리 하는 거였나. 뭐 크게 다르지 않으니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주인공 영탁이 팝송에 물들어 가는 장면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왜냐구? 나도 그랬으니까. 어디에서고 위로를 얻을 수 없었던 우리 청소년들은 학업 대신 다른 해방구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팝송이었다. 사실 그 시절에 가요는 너무 구려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소설에서 나오듯, 아이들이 트로트를 신나게 불러대는 것도 그렇고... 물론 영탁도 그랬지만 나중에 가서는 팝송으로 전향해서 다른 치들처럼 기타도 배운 모양이다. 나는 연주에는 아예 젬병이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 , 영탁의 아버지는 아들이 기타 치는 모습에 격분하셔서 바로 기타 대가리를 부수어 버리는 쾌거를 보여 주시기도 하셨다.

 

동네 양아치들을 원수처럼 여기라는 사자클럽 선배들의 강압에 영탁과 무리들은 서울 근교의 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체력을 기른다. 아니 이러니 어느 세월에 공부를 한다니 그래. 그런데 문제는 영탁들이 양아치 적군들과 싸우면서 점점 더 그들을 닮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거리에서 보면 양아치들과 전투를 벌이는 이들 역시 양아치로 보이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유비무환'을 국시로 삼고, 빨갱이들을 원수로 여기라는 프로파간다에 젖어 있던 영탁들에게 7-4 공동성명은 충격 그 잡채였다. 각자의 정권 유지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 따위는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알게 무엇인가 말이다. 같은 해에 유신이 선포되는 그야말로 롤로코스터 같은 사건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사자클럽 깡패 영탁이 사실은 문학소년이라는 점도 작가가 예비한 하나의 클리셰이가 아닐까. 워즈워스를 인용해서 서정 넘치는 대필 연애편지를 쓰던 영탁은 첫사랑 보경을 다른 친구에게 빼앗기는 실연의 아픔도 겪게 된다. 뭣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의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어라.

 

그렇게 다사다난한 청소년기를 지나쳐온 영탁이 대학에 가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려 경찰의 프락치로 변신한다. 그 출발이 사회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기른 장발족 모양 때문이었던가. 국가가 대중들의 사고와 모양새 그리고 입는 옷까지 규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전체주의적 통제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대놓고 앙시앵 레짐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주제로 삼은 작가는 우회하거나 돌려까지 않고 정면도전장을 내던진다. 점점 왜 이 책이 블랙리스트라는 영광스러운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 같다.

 

시점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영탁에게 대형교회로 변신한 친구 성제는 사자클럽 회원으로서의 자신을 모습을 한껏 분칠한 자서전에 가까운 무언가를 대필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그에 따르는 금전적 대가는 물론이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홍비서와 불륜을 저지르는 영탁의 처 미연은 알고 보니, 소싯적에 운동권 여학생이었단다. 과거를 꼭꼭 숨기고 있던 공수부대에 입대했던 사자클럽 친구는 빛고을에 끌려가 애먼 민간인들에게 총을 쐈단다. 또 다른 친구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극우 어버이 연합의 전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뭐 이거 정상인 사람들이 하나도 없나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사자클럽 잔혹사>는 이야기 보부상을 자처하는 작가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문학이라는 방식의 프레임에 욱여넣은 환멸과 혐오의 다른 표현이다. 낄낄 거리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문득, 너무 적나라한 현실의 그것과 대면하면서 웃음기가 가신다. 너무 리얼리스틱해서 말이지. 어쩌면 저자가 묘사하는 그런 시절들이 현재가 아닌 과거라서 그렇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를 게 없긴 하지만.

 

어쨌든 책은 너무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쓴맛이 입 안에 맴도는 그런 느낌이랄까. 바로 이시백 작가의 <용은 없다><응달 너구리>를 저글링하듯이 번갈아 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후자에 좀 더 집중할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산 <응달 너구리> 책은 도대체 어디에 쳐박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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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10-14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시백 작가 책들은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개운하지 않은 맛이 맴돌죠.

레삭매냐 2024-10-14 22:44   좋아요 1 | URL
지금 <응달 너구리>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네요.
개운하지 않은 그런 맛!
격렬하게 공감합니다.

그레이스 2024-10-16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찾으셨군요
며칠전 한강 책 찾느라 책장을 다 뒤졌는데...
다른 책들 발견하곤 아! 이책이 여깄었네! 하는 제게 엄마 또 시작이라고 하는 딸들...ㅋㅋ
일상입니다.
결국 소년이 온다 한권은 못찾았습니다.
이시백!
검색하러 고고!

레삭매냐 2024-10-16 17:23   좋아요 2 | URL
단군 이래 문학계의 벼락 같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장안의 지가가 오른
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하나
틀리지 않네요.

이시백 작가의 책들 아주
재미집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0-16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를 보고 만화책인줄 알았습니다ㅎ 리뷰를 보니 재밌어보여서 읽어보고 싶네요^^

이시백작가, 덕분에 새로운 작가 알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4-10-16 19:00   좋아요 1 | URL
아주 야생이던 시절에 대한
파란만장한 리포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언젠가 교회 집사님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이시백 작가, 대단한 필력이
더군요.

페넬로페 2024-10-18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들어본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는 작가는 박시백이었어요.
소설가 이시백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필력이 대단하다시니 관심 가지겠습니다^^

레삭매냐 2024-10-19 00:5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도 자꾸만 박시백 작가
하고 헷갈리게 되더라구요 ^^

아주 유쾌한 작가여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콩고 -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 같은 여행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리스티앙 페리생 지음, 톰 티라보스코 그림,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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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읽은 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콩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었다. 현대 콩고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파트리스 루뭄바에 대한 책도, 요사스러운 선생이 쓴 로저 케이스먼트의 역사소설도. 그런데 정작 콩고 자유주를 가혹하게 착취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에 대한 평전은 아직 읽지 못했다. 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크리스티앙 페리생의 <콩고>는 알고 보니 절판된 책이었더라. 이런 책이 다 있었구나 싶었다. 1890년 벨기에 선박회사에 고용된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강을 항해한 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콩고 항해 경험은 훗날 <어둠의 심연>의 토대가 되었다.

 

내가 그래픽 노블은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책에 비해 빨리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읽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두뇌에게, 이미지로 전달되는 게 더 수월하다는 점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반대로,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가 나의 자유로운 사유를 제약하고 어떤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

 

조지프 콘래드의 본명은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1857~1924). 몰락한 폴란드 귀족 출신으로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의 베르데치프에서 태어났다. 콘라트의 아버지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로 정치활동 때문에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주를 해야했다. 1865년과 1868년에 차례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읜 콘라트는 외삼촌보브로프스키에 의해 양육됐다.

 

16세에 학업을 중단한 콘라트는 마르세이유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1878610일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콘라트는 영국에서 이등항해사와 일등항해사 자격을 취득하고 동양에서 6년 동안 선원일을 했다. 그리고 188672일 영국 귀화신청을 하고 다음달인 8월에 영국 시민이 되었다. 11월에는 일반선장 자격시험도 통과했다. 당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영국 상선에서 복무 커리어는 4년 뒤, 콘라트 벨기에 회사와 계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브뤼셀에서 알베르 티스와 3년 장기계약을 맺은 콘라트는 레오폴드 국왕의 사적 소유지인 콩고 자유주로 증기선을 모는 선장 자격으로 출발이 예정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르그리트 형수에게 이별을 고하고 콩고에서 개발과 원주민 해방이라는 위대한 문명화 작업에 뛰어 들었다.

 

테네리페와 마지막 정착지인 가봉의 리브르빌을 거쳐 콩고의 거점도시인 보마와 마타디를 거쳐 킨샤사에 이르는 험난한 일정이 시작된다. 콩고 항해는 처음부터 양심가인 콘라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프랑스의 적이라고 간주하고 원주민들에게 대포를 갈기는 모습에 콘라트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마타디에서 절대 누설안되면 비밀이라고 신신당부 받은 게 바로 상아 집적소라는 사실에 콘라트는 충격 이연타를 받는다. 아프리카 코끼리를 살육하고 상아를 얻어내는 게 그들이 말하는 문명화 작업이란 말인가. 1890613일 마타디에 도착해서는 로저 케이스먼트와 만나 안면을 트기도 했다고 전한다. 훗날 케이스먼트는 콩고 자유주의 비참한 현실을 서구사회에 알린 케이스먼트 보고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벨기에 지배자들은 마구잡이로 현지인들을 징발해서 강제노역을 할당했다. 철도 부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병에 걸린 백인 지배자들을 등에 지고 운반하는 역할도 맡겼다. 길도 없는 정글에서, 무작위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마을에서 현지 사람들을 강제로 붙잡아다가 노역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태형을 가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나중에 서구 사회에서 산업화의 여파로 고무 수요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돈이 되는 고무 사업을 위해 벨기에 당국은 정말 악질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현지인들을 착취했다.

 

심지어 콩고에 배치된 벨기에 인력들은 본국의 엘리트 계급이 아니었다. 엘리트 계급이 무더위와 말라리아에 시달리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 머나먼 콩고까지 올 리가 없지. 대신 서민 계층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콩고에서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항해 중, 콘라트 일행 중에 하나가 대구경 총을 쏘겠다고 나섰다가 뒤로 나자빠지는 장면은 콩고를 지배하던 이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콩고는 계몽의 빛을 전파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오로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동유럽의 강한 억센트를 가진 콘라트는 영국 시민이지만 여전히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특히 콩고에서 친프랑스적 성향의 벨기에 사람들에게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부선장으로 내륙 항해 증기선의 부선장이 되어 선장 라스무스와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다른 선원과는 육탄전도 벌였다. 나름 배를 잘 몰던 조타수 필리프가 불의의 사건으로 태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게 되자, 콘라트를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그러는 동안 필리프는 정글로 도주해 버렸다. 그 결과 무리를 하다가 결국 쓰러진 라스무스를 대신해서, 콘라트는 능숙한 솜씨로 모래톱을 피해 배를 운영했다.

 

현지 문화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벨기에 식민주의자들과 현지인들의 충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별것도 아닌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로, 현지인들이 가진 귀중품들과 거래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시도는 정당한 거래가 아닌 사기였다. 현지에서 사망한 사람을 위해 거대한 하얀 십자가를 증기선 꼬리에 달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문화다원주의 시대에는 절대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해골로 장식된 오두막의 그것을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총으로 쏴서 박살내 버렸다. 그 결과가 모든 원주민들에게 전파되어, 콘라트 일행은 목적지로 가는 동안 다른 부족들과 식량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백인들은 그나마 비상식량을 먹으며 견딜 수 있었지만, 자신들을 도와주던 현지인들은 쫄쫄 굶는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지배자들에게는 관심 사항이 아니었겠지만.

 

결국 콘라트는 상류 기지인 스탠리 폴스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들어 있던, 훗날 <어둠의 심연>에 쿠르츠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 '클랭'과 만난다. 쿠르츠는 처음에는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에 그리고 나중에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커츠 대령으로 변주를 거듭하게 된다. 18851115,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 모인 서구 열강 12개국은 아프리카 분할에 합의했다. 여기서 최대 수혜자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이었다. 콩고 자유국의 실효 지배자로 인정받은 레오폴드 왕은 콩고 내륙의 카탕가까지 지배할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항해 중에 말라리아에 걸린 콘라트는 계약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189012월 보마에서 아프리카를 떠나게 된다. 마타디에서 로저 케이스먼트와 만나, 콩고의 내장을 빼먹고 있는 용맹하지도 않고, 악랄한 스탠리 부류의 인간들을 만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떠나는 그를 보며, 케이스먼트는 언젠가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증언하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무려 15년 전에 읽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 당시에 쓴 리뷰를 찾아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다. 역시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나. <어둠의 심연>의 자양분이 된 콩고 여행에 대한 그래픽 노블을 읽고 나니, 무언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은 말로는 계몽의 빛을 검은 대륙의 '가장 방대하고 가장 빈 곳'에 채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설명했지만,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 강을 항해하면서 목격했다시피 모두가 거짓이었다. 처음 그들의 관심은 상아였고, 그 다음에는 고무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콩고에 사는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폄하하고, 그들의 노동력 착취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맹위를 떨치던 시절 조지프 콘래드가 보여준 한계 역시 명확하지만, 콩고의 비참한 현실을 문학을 통해 서구 사회에 알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폴란드 출신 이방인이 쓴 작품이 걸작 영문 소설로 손꼽힌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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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0-08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이 이런 배경에서 나온거군요. 항상 관심가는 책을 알려주시는 레삭매냐님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4-10-10 20:15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미처
몰랐네요. <어둠의 심연>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만났더라면
좀 더 깊이 있는 독서가 되지 않았
을까 싶습니다.
 
삼국지톡 7 삼국지톡 7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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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행사인 도서관에 방문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히샴 마타르의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들고 갔지만 정작 읽지는 못하고 다른 책들 구경하고 빌리고 그랬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이달부터 관외대출 도서의 수를 7권에서 10권으로 늘렸다. 그리고 그 혜택을 바로 받기 시작했다. 신난다.

 

삼국지 코너에서 발견한 게 바로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이었다. 그전에도 살짝 맛을 본 지라, 어떤 이야기가 있나 싶어서 바로 대출신청을 했다. 아니 그전에 좀 읽다가(한 백쪽 정도) 밥 먹으러 갈 시간이 되어 일단 빌렸다.

 

훗날 거의 천하를 집어 삼킨 조조도 그 시절에는 한낱 군웅에 불과했다. 연주에 자리잡은 조조는 서주대학살(193-194) 사건으로 자신의 책사였던 진궁에게 배신을 당한다. 바로 이웃한 서주에서 유비가 도겸에서 서주 자사 자리를 날로 먹으려던 걸 참을 수가 없어 요격에 나선 동안, 진궁은 여포와 장막을 이용해서 조조를 배신하고 본진털이에 나섰다. 연주의 두 개 요점인 연주성과 복양성을 모두 점령해 버렸다.

 

아마 이 때가 조조의 최대 위기가 아니었을까? 나중에 위왕의 자리에 오른 다음에는 천하의 절반을 집어 삼켜 그의 권력은 공고해졌고, 이런 시절 같은 위기는 오지 않았다. 본거지를 털린 군주가 과연 다시 무력을 동반한 권력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진궁은 조조가 천하에 평화를 가져올 인물이라 생각하고 그를 섬겼지만, 서주에서 백성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 버렸다. 자신의 근거지였던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마 조조가 본진을 비웠을 때, 장막-여포-진궁의 배신에 백성들이 가담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만이 이렇게 간웅으로서의 이미지를 착착 쌓아 가고 있을 때, 서주에서 유비는 반대 이미지를 쌓는데 성공한다. 무력을 쓰지 않고 그러니까,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던 도겸이 스스로 서주자사의 인을 자신에게 건네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후한말 같은 난세에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군사력을 위한 병사들의 수도, 설사 병사들의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먹이고 무장시킬 쩐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럴 때, 유비에게 등장한 구세주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미축이었다. 서주 인근에서 부자로 이름을 날리던 미씨 집안의 가독이었던 모양이다. 미축은 든든한 지원과 더불어 유비에게 자신의 여동생 미영란을 시집 보내 매부로 삼으려고 한다. 문제는 유비가 이미 감소혜라는 처자와 혼인한 유부라는 사실이었다. 연의와 정사를 오가다 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한편, 조조의 수하 순욱과 정욱은 사력을 다해서 동아와 견성 그리고 범현 세 곳의 근거지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본거지를 잃은 조조는 진궁의 계교에 다시 한 번 빠져 복양성 탈환전에서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전위의 활약으로 살아나는데 성공한 조조는 권토중래의 시간을 갖는다.

 

기주에 웅거한 실력자 원본초는 이런 아만의 위기를 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줄 것을 제안한다. 아만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처지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만의 책사 정욱은 절대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진언한다. 게다가 기주의 원본초가 서주의 유비와 연합하려는 정황에 대해서도 보고한다. 대신, 자금과 군량을 얻기 위해 황건적 잔당을 습격하자는 역제안을 날린다. 어쩌면 훗날 아만의 청주군단으로 유명해진 전설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정욱의 제안대로, 황건 잔당을 토벌하고 이 와중에 호치장군으로 알려진 허저라는 용장도 얻는다.

 

가히 삼국지 최고의 전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여포는 모사 진궁의 진언을 따르지 않았다가 어렵게 얻은 연주성과 복양성을 차례로 조조에 손에 넘겨주고, 다시 한 번 오갈 데가 없어진 여포를 데리고 서주의 유비에게 투항한다. 삼국지 초반, 조조에게 이런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 진궁 말고 또 누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여포가 진궁의 진언대로, 연주성과 복양성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조조 일당을 요격했다면 조조가 중원을 제패하는 일 따위는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자 이제 아만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카톡은 강동의 드넓은 양주로 이동한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렸던 손문대의 유아 손책이 원술의 부대를 지휘해서 이 지역 최대 호족이었던 육씨 집안과 2년 간의 사투를 벌이고 중이었다. 한나라의 뼈대 있는 원씨 집안 출신의 원술은 손책 집단을 거의 자신의 강아지 다루듯 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손문대에게도 그랬지만, 원술은 자신의 부하에게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육씨 집안을 제압하면 여강태수 자리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지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 손책에게도 다시 한 번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어느 군웅 집단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할거 하기에 앞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필요했다. 이미 약관의 나이 손책에게는 아버지 대부터 충성을 다하던 황개와 정보 같은 노장들이 존재했다. 그 다음 선수로는 자신과 동갑내기 공근 주유가 등장한다. 언젠가 삼국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교수님이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주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적벽대전 이후 공명에게 너무 발리는 바람에 요절했다지 아마.

 

이 때 12살이었던 육씨 집안의 가독 육손을 용서해서 휘하에 두고, 관우를 잡고 형주를 공략하게 되는 흙수저 십대 소년 여몽도 주유에게 맡기는 인재 픽업의 빌드업을 손책은 열심히 구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울러 오나라의 기틀이 되는 손권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해 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형님을 잘 만난 부잣집 도련님 정도의 이미지랄까.

 

이야기는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 동탁 사후 잔당이었던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충고대로 장안에서 후한의 마지막 천자 헌제 유협을 옹위하고 권력을 농단한다. 이각과 곽사는 서로 못 잡아먹을 것처럼 그렇게 싸우다가도, 또 위기가 닥치면 서로 연합해서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그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쨌든 헌제는 이각과 곽사로부터 탈출해서 낙양으로 향한다. 천자가 자신들의 수중에서 탈출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권력 행사도 끝이라는 걸 알게된 이각과 곽사는 전력을 다해 천자의 탈출을 막지만, 이번에는 조조가 한 발짝 더 빨랐다.

 

정사에서는 이각-곽사-장제 연합군에게 동승과 양봉 천자군이 대패하고 장안에서는 일대 아수라장이 벌어지는데, 이를 <삼보의 난>이라고 부른다. 삼국지톡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상술되어 있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한 연주자사 조조에게 헌제는 무향후로 봉하고 녹상서사, 사례교위 그리고 대장군에 봉했다(196). 이로서 조조는 일개 군웅에서 천자를 품은 조정의 대신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대의명분이라는 차원에서 조조의 선점 효과는 대단했다.

 

마지막으로 서주의 유비에게 간 여포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비는 자신은 서주를 품을 그릇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포와 진궁 집단에게 서주를 양보하겠다는 쇼를 연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전후사정을 고려한다면, 유비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자신이 무력으로 여포에게 대항해서 서주를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종이 문서 외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었던 1,800년 전 당시에 현대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카톡으로 마치 당시 상황을 중계하는 방식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삼국지가 현대에 이런 식으로 변개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캐릭터 이미지가 너무 비슷해서, 특히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라지는 조연들에 대한 확실한 개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내가 캐릭터들에 너무 비중을 두지 않고 대충대충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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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4-10-16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점을 낮게 주셨네요ㅠ? 요즘 삼국지에 관심이 많아서 삼국지톡도 궁금한데 볼만한가요?

레삭매냐 2024-10-16 19:00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
너무 서사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들의 변별력이 너무
떨어져서 만화에 집중력이 떨어지
더군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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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스가 아쓰코 여사의 책들을 읽었나? 지난달에는 5권의 책들을 섭렵했다. 대미는 가장 최근에 나온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이었다. 코르시카 서점 이야기는 나름 재밌었는데, 보다 본격적인 작가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이번 책에서는 무언가 동어반복과 가정사의 나열로 좀 관심이 시들해진 느낌이다.

 

표제작에서는 왠지 작가의 오기가 발동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움베르토 사바, 이방인이 이탈리아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겠냐는 일종의 비아냥을 남편 페피노의 친구에게 들은 작가는 결국 움베르토 사바의 활동 무대였던 트리에스테를 찾는다. 원래는 작고한 남편과 함께 했었어야 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왠지 모를 지식인의 오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파리와 로마에서 유학한 일본 출신 지식인은 이탈리아 지식인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는다. 나도 충분히 배운 사람인 만큼, 그들만큼 움베르토 사바의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나라면 그냥 그렇지 뭘 했을 텐데. 사람마다 어떤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니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넘어가야 하나.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이 그 나라에서 나고 자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알고 있는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남편 페피노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고 난 뒤, 저자는 결국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으로 귀국한다. 문득 나를 작가에게 대입해 본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고. 오기로라도 그곳에 남아서 무언가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주변에 지인들도 많고, 특히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같은 이들과의 교류도 할 수 있는데 말이지.

 

일본 출신의 부유한 저자는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 계급 철도원의 아들 하지만 '일급 지식인' 주세페 리카와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밀라노에 신혼집을 차린 그들에게 가난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젊은 시절의 스가 아쓰코 여사는 어쩌면 그걸 낭만이라는 포장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소소한 서사를 확장시켜 나간다. 스가 여사가 만약 귀족 가문으로 시집가서 넘사벽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누가 관심을 가졌을까? 그냥 살롱에서나 가능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개미취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결국 시어머니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꽃이나 나무가 다른 나라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그리고 시어머니의 작은 텃밭이 전후 곤궁했던 이들 채소나 푸성귀를 직접 재배해서 가족의 식탁에 올렸다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 같이 그렇게 다가온다. 어제 보령의 석탄박물관에 가서 본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풍로에 대한 설명을 꼬맹이에게 해주니, 이해는커녕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더라.

 

리카 패밀리의 비극에 대해서도 저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촉망 받던 맏형이 전후 병으로 죽고 누이도 죽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페피노도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제일 못난 것처럼 보인 알도만이 살아서 자식도 낳고 잘 살았다. 알도의 아들이 카를로 그리고 그의 아내가 실바나였다. 아니 내가 왜 이 집안 식구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거지.

 

막내로 집안 형제들을 잃은 알도는 아들 카를로가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랬지만, 어디 자식들이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하는 적이 있었던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군대를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어라, 어딘가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네.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알도는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이탈리아 정예부대라는 알프스 부대, 아니 낙하산 부대에 들어갔다가 다리 부상을 당해 얼렁뚱땅 그렇게 제대하고 야간 경비원이 됐다. 외국 출신 큰어머니 입장에서 왠지 많이 부족한 조카에 대한 단상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애잔하기도 했다.

 

평생 산 사나이로 사신 카를로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도 심금을 울린다. 어중간하게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로브레크너는 진짜 산사람이었다. 산에서 내려 오려면 한 나절을 그리고 다시 올라가려면 두 배는 족히 걸린다고 했던가. 말수도 많지 않고, 내외도 많이 하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또 속정 깊은 그런 사람이었다. 페피노를 잃은 스가 아쓰코 여사에게 자신이 직접 밀조한 그라파를 타인의 손에 의해 건네주는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ㅇ우리 식으로 하자면, 오다가 주웠다 정도랄까. 그 안에 배인 정성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참 귀중한 선물이었겠지.

 

생전에 많은 자신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스가 아쓰코 여사의 책들을 잇달아 읽은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소화낼 수 있는 이상을 허겁지겁 삼킨 모양이다. 다섯 권의 책들에서 중첩되는 이미지들도 있고 또 헷갈리기도 한다. 내가 이걸 여기서 읽었던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가. 어쨌든 저자가 구사하는 이야기들을 내가 다 판단하고 수용할 수는 없겠지. 그저 내가 필요한 부분들을 받아들일 뿐. 그래서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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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10-03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가 아쓰코는 기억나는 책은 없는데,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요.
일본 작가가 이탈리아 이야기를 써서 그런지, 중역된 책을 읽는 느낌도 조금 들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10-05 21:40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책들 섭렵하고 나서 이 책
을 집게 되니 좀 질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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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지난 3년에 걸쳐 읽었다고? 그건 아니지.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해서 질풍처럼 280쪽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잊고, 아니 한참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역전다방 <보불전쟁> 편을 보고 나서 바로 내달렸다. 역시 독서란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나 보다. <패주>20권에 달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엔딩에 해당하는 19편이고,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가져온 보불전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을 다루고 있다. 이제 첫 걸음이지만 왠지 에밀 졸라 읽기라는 숙제를 시작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소설 <패주>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보불전쟁(1870~1871)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이 추진한 독일 통일의 일보였던 보오전쟁(1866)부터 살펴봐야지 싶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대독일주의에 대항해서, 비스마르크와 몰트케는 프로이센 중심의 소독일주의 통일을 표방했다. 게르만 민족의 큰형님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후발주자인 프로이센이 단 7주만의 전쟁으로, 특히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간단하게 제압해 버렸다.

 

다음 장애물은 서방의 대국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훗날 괴제라 불린 제2제정 나폴레옹 3세의 치세였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독일 통일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수많은 독일 영방국가 중에서도 바덴과 바이에른과 특히 친했던 프랑스는 사사건건 프로이센에 행동에 제약을 걸었고, 보오전쟁 중에도 중립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 프로이센 육군 참모부의 몰트케는 특히 프랑스를 군사력으로 제압해야 독일 제국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보오전쟁의 승리로 게르만 민족의 패자로 등극한 프로이센의 군사적 위협이 점증하는 가운데,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레오폴트 대공이 유력한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지만 빌헬름 1세의 판단으로 고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는 개입하게 되면서,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비화되었다. 1870713,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문서로 스페인 왕위 계승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이른바 <엠스 전보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을 원하던 프로이센 군부를 자극하기 위해, 당시 총리였던 비스마르크가 해당 정보를 용의주도하게 수정해서 언론에 배포하면서,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당시 프랑스는 전 세계 각지에 정예 부대들을 파견해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떠밀리다시피 전쟁에 뛰어 들게 되었다. 알제리 식민지를 비롯해서 멕시코와 인도차이나에 프랑스 정예병들이 파병되어 있었다. 급박한 상황 가운데, 해외 파견군을 소환할 사이도 없이 나폴레옹 3세는 1870719일 프로이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여기까지가 에밀 졸라의 소설 <패주>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프로이센은 신속하게 338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프랑스를 침공했다. 프랑스군은 약 25만 명을 동원해서 자국을 침공한 프로이센군 요격에 나섰다.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 주력 부대를 포위 섬멸하겠다는 명확한 전쟁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프로이센군과 달리 프랑스 군은 전쟁목표도 뚜렷하지 못한 오합지졸 군대였다.

 

이런 가운데 <패주>의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39세의 농부 출신 베테랑 군인 장 마카르 그리고 29세의 젊은 변호사 모리스 르바쇠르다. 에밀 졸라의 전작 <대지>의 주인공이었던 장 마카르는 사랑하는 아내 프랑수아즈와 땅을 잃고, 등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재입대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던 모리스 르바쇠르는 비슷한 이유로 자진입대했다. 솔페리노 전투에서 참전한 장의 전장에서의 경험을 풋내기 모리스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프로이센군이 메츠를 포위하고, 룩셈부르크를 지나 스당을 목표로 남진하는 동안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벨포르로 다시 랭스로 오가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프로이센군은 정보전에서도 골리아트 같은 첩자들을 사전에 프랑스 영내에 파견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라인 계곡을 따라 군부대를 신속하게 기동시키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프리드리히 카를이 이끄는 프로이센의 주력 부대는 서전에서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해서 스당으로 나폴레옹 3세의 부대를 몰아넣고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지만, 당시에 대한 이런 전반적 이해와 사전 준비 없이 덤벼 들었다가는 낭패를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장과 달리,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운 모리스는 배낭과 소총마저 방기하려다가 장과 충돌을 빚는다. 하지만, 전장에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패주"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깨닫게 된다.

 

열혈 민족주의자 에밀 졸라는 프랑스 시민의 입장에서 프로이센군의 야만적 행위를 그대로 고발한다. 전쟁기계 같은 프로이센 부대는 무자비하게 적인 프랑스군을 소탕한다. 프랑스군 역시 만만찮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프로이센군의 그것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전쟁통에 장삿속을 채우던 푸샤르 영감의 용맹한 아들 오노레는 포병대를 이끌고 프로이센군에 대항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대포는 프로이센군의 대포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기껏 쏘아 올린 포탄들은 공중에서 폭발하거나, 적 진지에는 도달하지도 못했다. 반면, 프로이센군의 정확한 포격에 프랑스군의 산산조각이 났다.

 

모리스의 쌍둥이 누나 앙리에트의 남편 바이스는 바제유에서 로랑과 더불어 자신의 집을 사수하다가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되어 처형당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앙리에트는 야전병원에서 군의관 브로슈를 도우며 상실의 슬픔을 달랜다. 야전병원에서 팔다리를 잃은 숱한 병사들에 대한 에밀 졸라식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묘사는 정말 끔찍했다. 군의관들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들것에 실려 야전병원에 오는 병사들의 수에 비해 의사는 물론이고 클로로포름을 비롯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붕대와 약품들이 부족했다. 이미 패주하기 시작한 부대에게 원활한 보급물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프랑스군 역적의 용사 마크마옹 원수마저 전투 초기에 둔부 부상으로 전장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프랑스군의 패주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버렸다.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스당으로 패퇴한 나폴레옹 3세에게 항복 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재가 삼켜 버린 바제유와 일리고원에서의 일방적 학살 그리고 91일부터 시작된 프로이센군의 시계처럼 정확한 포격에 나폴레옹 3세는 휴전을 구걸한다.

 

이에 비스마르크와 몰트케가 내건 조건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프랑스군의 무조건적인 무장해제와 포위된 모든 병력들을 포로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산발적인 프랑스군의 선전도 없진 않았지만, 이미 전쟁의 대세는 프로이센에게 기울어져 버렸다. 결국 나폴레옹 3세는 항복하고, 그 순간 프랑스 제2제정은 무너져 버렸다.

 

장과 모리스는 이주반도에 설치된, 이른바 미제르 수용소에 포로로 잡혔다. 프로이센군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점령지에서 식량과 인력을 징발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총살형에 처하겠다는 엄벌주의도 공포했다. 패주하는 가운데, 장을 구했던 모리스는 미제르 수용소에서 탈주를 시도하는 가운데 정강이 뼈에 총상을 입1은 장을 오직 우정의 힘으로 구해 탈출에 성공한다. 그 가운데, 106연대 소속 보두앵 중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장렬한 죽음과 배신 그리고 살인에 이르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에밀 졸라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모리스는 다리를 다쳐 같이 탈출할 수 없게 된 장을 누나 앙리에트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파리로 향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파리 코뮌>으로 향하게 된다. 스당 함락 이후, 곳곳에서 프랑스 대중들의 저항이 이어지는 가운데 프로이센군은 격렬하게 저항하던 메츠 요새를 점령하고, 오를레앙마저 제압하고 나서 드디어 파리를 포위했다.

 

극렬 공화주의자들은 파리를 적의 손에 내주는 대신 끝까지 저항할 것을 주장했다. 이미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파리를 탈출한 뒤, 남은 이들은 결사항전의 의미를 불태웠다. 프로이센군의 물샐틈없는 포위로 먹을 게 떨어진 파리 시민들은 그야말로 쥐까지 잡아먹으면서 최후의 저항에 나섰다. 한편, 3공화정의 임시행정관 아돌프 티에르는 50억 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알자스 할양이라는 치욕적인 강화 조건을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다수의 국민방위군들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파리에 잠입한 모리스는 국민방위군 소속으로 파리코뮌의 대의에 동조했다. 그리고 적의 수중에 파리를 내주기보다 차라리 모두 불태워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프로이센군와의 전투에서는 그렇게 무능했던 베르사유군은 내전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장은 베르사유군 소속으로 파리에 진입하게 된다. 이렇게 비극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소설 <패주>는 보나파르티즘에 젖어 있던 한 세대의 종언을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나폴레옹 3세 시절, 프랑스 제국은 산업화와 더불어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지만 내부적으로 곪아가던 제문제들이 보불전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일순간에 폭발해 버렸다. 괴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능력도, 삼촌처럼 전장에서 뛰어난 지휘관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지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파리 코뮌>이라는 방식의 더 큰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 대립을 유발했다.

 

그나마 에밀 졸라는 다시 프랑스 국가와 사회를 재건하는 적임자로 모리스 르바르쇠 같은 지식인 계급보다 장 마카르 같이 우직한 농부를 꼽았다. 에밀 졸라는 참담한 패전을 미화시키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재건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에밀 졸라가 <패주>를 발표한 1792년에는 여전히 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이라는 프랑스 근대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생존해 있었다. 다수의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에밀 졸라는 "시대의 종언"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유혈이 가득했던 보불전쟁 이후, 유럽 대륙에서는 전쟁이 사라져 버렸다. 1914년 새로운 전쟁이 유럽 대륙을 휩쓸기 전까지 세력 균형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 파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까.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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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0-01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계기가 있어야 하는것!
에밀졸라 읽다가 멈췄는데,,, 다시 읽어야할 계기? 레삭메냐님 리뷰가 .?

레삭매냐 2024-10-01 22:25   좋아요 2 | URL
제 부족한 리뷰가 그레이스님
의 독서에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에밀 졸라 고고씽~입니다.

초란공 2024-10-01 1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제르미날 읽고 있었어요~!!! 정리해보려면 오래 걸릴 듯 합니다 ㅜㅜ

레삭매냐 2024-10-01 22:26   좋아요 1 | URL
저도 정말 오래 전에 <제르미날>
쟁여 두었는데...

루공 마카르 총서, 분발하겠습니다.

닷슈 2024-10-01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

레삭매냐 2024-10-01 22:26   좋아요 2 | URL
역전다방 <보불전쟁> 편을 보고
읽으니, 더 재밌었습니다.

페넬로페 2024-10-01 1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와 쿠포의 외동딸인 나나가 불행하게 죽는, 소설 <나나>의 마지막 부분이 1870년 보불전쟁이 시작되는 거더라고요.
패주가 그렇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배경설명해주셔서 읽기 전 도움 많이 되었어요^^

레삭매냐 2024-10-01 22:30   좋아요 3 | URL
아 그랬군요. 에밀 졸라 샘의 책들은
잔뜩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고 뻐팅
기다가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가장 두껍다는 <패주>로 졸라 샘
스타트를 끊었네요.

부족하지만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울프강 2024-10-08 0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레삭매냐님이 쓰신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타 하나가 유독 눈에 띄는군요.
중간에 ˝프랑스군 역적의 용사 마크마옹 원수마저 전투 초기에 둔부 부상으로...˝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역전의 용사를 잘못 쓰신거죠?
역전과 역적은 문맥상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거든요. (^_^)

젤소민아 2024-11-0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님~~. ‘패주‘를 언젠가는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