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9
제럴드 머네인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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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머네인. 정말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호주 출신으로 고로크라는 곳에서 거의 은둔자의 삶을 사는 그런 작가란다. 그런데,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고. 이런 마케팅이라면 또 책을 사서 보지 않을 수가 없지. 작년 가을에 산 책을, 을사년 소한 강추위가 불어닥친 와중에 다 읽었다.

 

호주 대륙의 "평원"에 대한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작가는 평원의 모처에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데 도움을 줄 대지주, 후원자를 기다린다. 아티스트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고대 로마에서 발원한 파트로누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는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하긴 그 위대한 미켈란젤로도 메디치 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런 걸작들을 생산해낼 수 있었을까 싶지만.

 

제럴드 머네인 작가는 거대한 평원이라는 이미지가 부여하는 풍경에 집착한다. 아니 소설 <평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모호하고 정의할 수 없는 평원의 풍경에 경도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후원자가 될 대지주들이 노골적인 예술가들의 평원 찬양을 환영하는 것도 아닌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그런 선수들을 원한다.

 

후원자인 대지주들과 화자로 대변되는 예술가들 간의 시소 게임을 보다가 문득 어려서 호주 배낭여행을 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그들에게 산은 세모꼴의 무엇이 아닌 그냥 지평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산은 거대하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48시간을 달려야 했지. 그래서 장거리 버스에는 운전사 양반들이 두 명 타고 있었다. 휴게소에 샤워실이 있는 것도 그 시절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던 석양을 등지고 이름도 모를 어느 휴게소에서 프렌치 프라이와 맥주로 끼니를 때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난 그 때, 장 자크 베넥스의 <베티 블루> 같은 대평원이 품은 황혼의 이미지라며 황홀해 하곤 했었지.

 

작가가 구사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내러티브를 따라가기가 사실 버겁다. 도대체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내가 읽을 바에 따르면(이조차 확신할 수가 없다) 결국 외부인들은 평원인들의 삶을 알 도리가 없다는 걸까. 여기에 시간이라는 개념까지 더해진다면 제럴드 머네인의 서사는 더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지 싶을 정도다.

 

평원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철저한 외부인인 화자가 평원인들 사이에서 과연 자신들과 동류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디까지나 한 명의 대지주에게 고용된 "클리엔테스"일 뿐이다. 다만 고대의 종속적인 관계와 달리 조금은 너그럽고 자유로운 상태의 피후견인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풍경에 집착하는 작가의 스타일로 봤을 때,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런 풍경의 일부분으로 보여진다. 후원인의 아내와 딸 그리고 그의 동료 지주들, 평원이라는 어떻게 봐도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공간을 채우는 요소라고나 할까. 단언할 수 없는 '시간'이 부여하는 공허함과 기억의 부재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소중하다고 생각될 법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흐르는 시간으로 구성된 세월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고.

 

몇 해 동안이나 대지주의 후원을 받지만, 화자에게 후원인은 어떤 성과를 내라고 특별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가끔 하는 발표도 연례행사 같은 의식으로 다가온다. 물론 화자도 그전의 실패했던 예술가들처럼, 평원의 이미지들을 카메라에 담고 후원인의 딸들을 자신이 구상하는 영화의 엔딩에 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필름이 들지 않은 카메라로 대지주와 가족들의 사진을 찍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설사 그런 빛의 흔적들이 남길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나중에 흑백으로 박제된 사진들의 이미지를 보고 무엇을 느낄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사진가가 의도한 이미지들이 자신의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것처럼, 작가의 글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이번에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을 읽으면서 하게 됐다. 길지 않은 소설을 읽다가 마치 소설의 주인공처럼 어디에선가 길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나는 어쩌면 기존의 정통적 서사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은 참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럴드 머네인의 내러티브가 너무 사변적이어서 내가 소설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기에, 빅토리아 주의 고로크(Goroke)에 산다는 작가는 너무 현지에 최적화된 그런 인물이 아닌가 싶다. <평원> 한 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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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1-12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예술가의 작품 모두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의도와 달리 해석이 되지요.^^
궁금하네요.
사진작가의 시선과 작업의 내러티브라!

레삭매냐 2025-01-13 08:52   좋아요 1 | URL
처음 만나는 작가라 그런지,
어떤 스타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완독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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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좀 뒤바뀌긴 했지만 4, 5권 그리고 10권을 먼저 읽고 나서 3권을 읽게 됐다. 순서 대로 읽으면 좋으련만 나의 책 수급이 여의치 않아 그렇게 되었다. 읽을수록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적 배경은 113812월 초순이다. 전편에서 치열한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슈루즈베리 마을 근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베네딕토 수도원에도 평화가 찾아 들었다. 하지만 정치적 후유증은 가시지 않았다.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소환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로버트 부원장은 마치 자신이 후계자라도 된 듯 거들먹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보좌역을 자처하는 제롬 수사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 말릴리 장원의 영주인 거베이스 보넬이라는 인사가 자신의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하고 남은 여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고 싶다며 수도원을 찾아왔다. 수도원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그런 조건이었다. 하지만 거베이스가 어느날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죽음에는 자유민 출신의 농도 앨프릭부터 시작해서, 사생아 메이리그, 의붓아들 에드윈 거니와 그의 어머니 리힐디스까지 용의자들로 넘쳐난다.

 

그중에서 제일 가는 용의자는 바로 에드윈 거니다. 원래 그의 어머니 리힐디스가 거베이스와 재혼할 때, 그는 에드윈을 자신의 자식으로 삼아 자신의 장원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베이스는 자신의 의사를 번복하고 대신 수도원에 자신의 영지를 상속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게다가 화해하겠다고 거베이스를 찾았다가 거하게 한 판 하고 나서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에 거베이스가 캐드펠 수사가 일명 "수도사의 두건"이라고 알려진 투구꽃으로 만든 치명적인 독에 살해당한 것이다.

 

스티븐 왕의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를 대신하는 행정관 윌리엄 워든은 처음부터 에드윈 거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표적수사에 나선다. 그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캐드펠 수사의 조언을 일절 무시해 버렸다. , 그전에 한 가지 빼놓은 점이 있다. 에드윈이 어머니 리힐디스는 오래 전, 캐드펠이 수사가 되기 전 애인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제롬 수사의 고언으로 캐드펠 수사는 사건 해결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금족령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손과 발이 묶인 상태에서 원격으로 마크 수사와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미스터리물에는 또 이런 맛이 있어야 제격이 아닌가 말이다. 캐드펠 수사는 독살에 사용된 독 앰플을 담은 병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예의 증거물 입수에 전력한다. 그리고 어느 다리에서 에드윈 거니가 강에 던진 게 독약 앰플이 든 약병이 아니라, 자신이 계부 거베이스와 화해하기 위해 만든 상감세공 상자였다며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수 있을 거라며 그 물건을 찾아달라고 캐드펠 수사에게 부탁한다.

 

행정관 윌리엄 워든은 에드윈 거니가 진범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추격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에드윈과 도플갱어처럼 닮은 그의 조카 에드위가 그의 역할을 대신하는 동안 에드윈은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손발에 묶였던 캐드펠 수사는 멀리 오두막에서 양치는 수사 바르나두스가 병에 걸려 그의 치료를 위해 파견나가고, 잠시 자유를 얻은 그는 말릴리 장원 근처의 웨일스 인근을 다니면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한다.

 

지금 우리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영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세에는 언어마저 다른, 별개의 국가였던 모양이다.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캐드펠은 재판에 참가해서 잉글랜드와의 전혀 다른 상속권을 행사하는 웨일스의 그것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거베이스 보넬의 죽음과 관련되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느냐가 관건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되는 되는 사람이 진범이라는 설정이다.

 

물론 지금처럼 과학수사와 사건 시간에 대한 추정이 어려운 가운데, 우리의 캐드펠 수사는 자신의 추리를 바탕으로 해서 진범을 지목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그런 시대적 상황까지 충분히 고려해서 만든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 부분은 소설의 핵심이니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지. 그러니까 패스하고, 엔딩에 다시 등장하는 헤리버트 수도원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무리하자. 사건이 다 해결되고 캐드펠 수사가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날, 마침 소환되었던 헤리버트 수도원장도 수도원으로 복귀한다. 그렇다면 모두의 예상처럼 노르만 귀족 출신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차기 수도원장이 되었을까? 절대 아니었다. 헤리버트 수도원장은 신임 수도원장으로 깐깐한 성격의 원칙주의자 라둘푸스 수도원장을 모두에게 소개한다. 로버트 부수도원장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셈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정말 통쾌했다.

 

성과 속을 오가면서 십자군 전사 시절 쌓은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난제들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캐드펠 수사의 인격에 반해 버렸다. 잇달아 발생하는 살인 사건으로 분노와 증오로 점철될 수 있는 사건들을 세속을 떠난 수도사의 입장에서 잘 마무리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형태의 복수를 낳을 수 있는 엄격한 법집행에 적정선에서 끊어내는 실력과 관용은 모두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눈이 내리기 전에 인근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6<얼음 속의 여인>을 빌렸어야 했는데 아쉽다. 내일이나 시간 내서 인근 도서관으로 대출하러 출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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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08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전에도 시리즈가 길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도 10권이나 나오네요. 전에도 재미있다고 듣긴 했는데,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다니 좋은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날씨가 계속 추워지고 있어요. 한파주의보라고 하니, 이번주 추울 것 같아요.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5-01-11 09:52   좋아요 1 | URL
날이 너무 춥네요 ^.^
그래도 오늘은 좀 날이 풀린다고
하니 빨래할라구요.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0년 전에
20권 정도 나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로 재개정판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죠.

5권씩 나오고 있는데, 두어번 더
나오면 완료될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읽으려구요.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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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애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가 우리의 곁을 떠난 지가 벌써 5년이 되었다. 다시 코비드19의 위력을 실감한다. 우리가 그런 시절을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 한 조각.

 

그리고 을사년 들어 처음 산 책이 바로 세풀베다가 들려 주는 달빛 고래의 이야기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부피는 얼마 되지 않지만, 상당한 울림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작년 말에 세풀베다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읽은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의 연장선이라고나 할까. 대지의 사람들, 마푸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번 책에서는 라프켄체(바다의 사람들)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니까 말이다. 이래서 한 작가의 책을 줄창 하나 보다.

 

그리고 보니 그의 어느 책에서 고래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었나.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의 화자는 아주 덩치 큰 달빛 향유고래다. 이름부터 무언가 멋지지 않나. 그냥 달빛 고래라고 불러야지. 왠지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는 라프켄체 원주민들의 전설의 재해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소설은 전적으로 달빛 고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대지도 마찬가지겠지만, 바다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들을 바다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래들도 모차 섬인가로 모인다고 했던가. 아니 라프켄체 사람들이 이생에서의 삶을 마치고 가는 곳이 모차 섬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고래 할아버지는 달빛 고래에게 비밀을 하나 들려준다. 고래 할머니들이 이생에서의 삶을 다한 이들을 등에 모차 섬에 간다고. 그리고 달빛 고래에게 미션을 하나 준다. 네 고래 할머니들의 호위 무사가 되라고.

 

달빛 고래는 인간들이야말로 유일하게 서로 종족을 죽인다는 걸, 해상전투를 통해 배우게 된다. 그들이 서로 보이는 분노와 증오의 원천이 무엇일까.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공존 대신 서로를 부수는 방식이 과연 올바른 걸까? 달빛 고래는 이해하지 못한다.

 

달빛 고래와 고래 할머니들 그리고 라프켄체들의 평화를 깨는 존재가 등장한다.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빌런의 역할이다. 물론 아무런 갈등의 전개 없이 그냥 심심한 서사도 많다. 하지만, 세풀베다는 다른 방식을 골랐다. 고래잡이 선원들이 이 소설의 악역을 맡았다. 사자를 모차 섬으로 인도하는 고래 할머니들을 무자비하게 작살로 공격하는 고래잡이 선원들. 이미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가 그들에게 무참하게 도살당하는 것을 보고 달빛 고래는 분노하지 않았던가.

 

그들을 유인해서 고래 할머니들과 떨어뜨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결국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달빛 고래는 모차 딕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고래잡이 선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은 작살은 훈장처럼 그를 따라 다닌다. 달빛 고래를 잡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달빛 고래는 바다에 지게 된다. 오랜 시간에 지나 달빛 고래가 죽는 순간, 그의 몸에는 백여개의 작살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달빛 고래의 꽂힌 작살은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의 상징이다.

 

소설에 삽입된 일러스트들은 정말 훌륭하다. 고래의 눈은 마치 심연에서 독자를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벽녘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가. 고래의 몸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안 인간들이 고래잡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고래의 몸에서 지방을 채취해서 어둠을 쫓는 빛의 광원으로 이용했다고. 용연향도 그들에게 귀중한 자원이었다.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고래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고, 그들을 잡아다 가마솥에 쪄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속이 시원한 걸까.

 

남쪽 세계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세풀베다 선생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어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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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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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전히 궤도에 오른 그런 느낌이랄까. 한 다섯 권정도 읽으니, 전직 십자군 전사 캐드펠 수사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축적됐다. 성도에서 캐드펠 수사와 싸웠던 무슬림 눈에는 그가 광신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전사로서의 본업을 그만 두고 수도사로 귀의한 뒤에는 정의와 자비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그의 다섯 번 째 이야기다. 아 참, 3권인 <수도사의 두건>도 곧 수배하는 대로 읽을 예정이다. 나머지는 내일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야지.

 

이번 편에서는 고대로부터 저주 받은 질병으로 간주된 나병에 걸린 나환자들의 이야기 조금 그리고 정략결혼으로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어느 귀족 소녀에 대한 에피소드다. 2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마크 수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아마 3편에 마크 수사가 등장하는 모양이다. 나환자들을 수용하는 병원도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베네딕토 수도회 소관이다. 그래서 병원장도 수도원에서 파견한 모양이다. 마크 수사는 나환자들을 돌보는데 거리낌이 없다. 나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귀족들의 혼례는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노년에 도달한 풍채 좋은 휴언 드 돔빌과 앳된 처녀 이베타 드 마사르가 혼례의 주인공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베타의 친척인 고드프리드 피카르와 그의 부인 애그니스가 순전히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어린 이베타에게 적당한 배우자를 찾아 주는 대신 호색으로 유명한 바람둥이 드 돔빌에게 시집보내는 것이다.

 

드 돔빌은 포악하기로 유명해서, 혼례 행렬 구경에 나선 나환자들에게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자신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고 길을 비키지 않는다고 나환자 라자루스에게 무례하게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던가. 한편, 그 드 돔빌을 수행하는 향사 가운데 조슬린 루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주군의 아내가 될 이베타를 사랑하고 있었던가.

 

피카르들은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젊은 향사를 처리하기 위해 그에게 모함을 씌운다. 결국 억울하게 누명을 쓴 조슬린 루시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조슬린은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언제나처럼 모든 사건을 캐드펠 수사가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라둘푸스 수도원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진중한 성격의 수도원장은 그에게 성무일과를 면제해 주고, 사건의 처리를 맡긴다. 날개를 단 캐드펠 수사가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를 능가하는 실력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혼례식에 등장해야 할 늙다리 신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그전에 수도원장은 이베타를 만나 정말 그녀가 드 돔빌과의 결혼을 원하는지 물었지 아마. 순수한 이베타는 조슬린 루시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결혼이라는 말을 수도원장에게 건넨다. 하긴 이베타가 자신이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카르들이 무슨 꼼수를 부려서 또다른 방식의 결혼을 추진할 진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는 다양한 갈등들이 소개되면서, 반드시 살인 사건이 하나 얹혀진다. 이번에는 드 돔빌이 혼례식 전날 말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사체로 발견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 앙심을 품고 금목걸이를 훔친 누명을 쓰고 또 도주한 조슬린 루시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과연 그가 범인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누가 진범일까?

 

캐드펠 수사는 주도면밀하게 사건 현장을 수색해서, 단서를 모은다. 과학 수사가 기본이 된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가 중세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캐드펠 수사의 액션은 남과 다른 변별력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대충 수사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슈롭셔의 행정 장관 프레스코트와는 다른 결의 사나이라고나 할까.

 

도망친 조슬린 루시는 나환자 무리에 합류해서 도주의 기회를 엿본다. 행정 장관이 그가 도주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물샐 틈 없이 막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 브라이어의 조력 없이 그는 슈루즈베리를 경내를 벗어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베타도 구해서 같이 탈출해야 한다. 그를 돕는 건, 캐드펠 수사와 동료 향사 사이먼 애귈런 뿐이다. 사이먼은 절대 조슬린이 그런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몰래 그를 돕는다.

 

캐드펠 수사는 자신만의 수사를 바탕으로 드 돔빌의 마지막날을 재구성하고, 그 날 죽은 귀족이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드 돔빌이 무려 20년이나 만난 정부로 손베리의 어바이스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는 어바이스의 사정을 듣고 나서 조슬린을 위한 증언을 부탁한다. 그런 와중에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번에는 어린 이베타를 압박하는 고드프리드 피카르가 희생자였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잇달아 살인 사건이 비슷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물론 진범은 소설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개인적으로 진범의 정체보다도, 나중에 밝혀지는 나환자 라자루스의 그것이 더 놀라웠다. 그렇지 이 정도 시리즈를 기획할 정도의 필력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인 셈인가. 그리고 보면 5편의 제목이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라고 할 정도라면 이번 편의 진짜 주인공은 드 돔빌-이베타-조슬린 루시가 아닌 라자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성경에도 나오는 라자루스(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긴 이의 이름을 라자루스로 정한 건 정말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드펠 수사와 함께 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중세 여행은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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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먼의 변호인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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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대여해서 읽게 됐다. 나중에 조금 후회했다. 이 책은 사서 읽었어야 했다고. 그만큼 재미있고 또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무려 변호사, 소설가, 각본가 그리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탕푸루이의 <바츠먼의 변호인>에서 작가는 현대 타이완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기본 줄거리는 훗날 해안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출신 압둘아들이 일가족 살인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나서, 국선변호인 탕바오쥐에게 조력을 받게 된다는 설정이다.

 

저자 탕푸루이는 어린 아이까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소설의 전면에 배치한다. 설상가상으로 범인은 이주노동자 출신 무슬림이다. 당연히 의사소통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피고는 법정에서 충분히 법적인 조언과 도움을 얻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검사 측에서는 면밀하게 수하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사실 여론재판적 성격에서 이미 압둘아들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의 피해자였다.

 

타이완 원주민 아미족 출신으로 자신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강력 사건의 가해자였던 탕바오쥐, 흔히 바오거 그리고 아미족 친구들 사이에서는 타카라라고 불리는 보신주의의 화신 같은 남자 퉁바오쥐가 국선변호인 자격으로 압둘아들 변호에 나섰다. 그의 사이드킥으로는 촉망받은 미래 엘리트이자 대체복무요원 롄진핑이 자원했다. 그리고 역시 인도네이사 출신 간병인 이주노동자 출신 통역사 리나가 압둘아들 구하기 트리오를 결성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신산하다. 매일 아침 새벽 출근길에 만나는 내가 사는 동네 물류센터에서 퇴근하는 피로에 젖은 그네들의 모습이 압둘아들과 리나에게서 보여졌다. 언어와 관습, 기후 등 모든 게 다른 환경에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탕푸루이 작가는 리얼하게 그려낸다. 특히, 세계 원양어업에서 큰몫을 차지한다는 타이완의 현실에 대한 르포르타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탕바오쥐들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감추어왔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대기업의 악랄한 착취의 단면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아미족 역시 원주민으로 주류 한인들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역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에게는 가혹한 착취를 일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저자는 가감 없이 드러낸다.

 

소설의 전반에서는 아무래도 타이완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질감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갔지만, 일단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니 책이 갑자기 너무 재밌어졌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탕푸루이 저자가 빌드업해둔 티키타카식 법정 드라마가 폭발하면서 도저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예전에 한 때 '묘보설림' 시리즈를 즐겨 읽었었지. 한참 뒤에 다시 만난 묘보설림 시리즈의 매력이 되살아난 그런 느낌이랄까.

 

또 하나 <바츠먼의 변호인>을 뜨겁게 달구는 쟁점 중의 하나는 사형제 찬반에 대한 논쟁이다. 사형제 존치가 결코 범죄율을 줄이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재판 과정에서 혹시라도 오심이 발생했을 경우 결과(사형)를 번복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이유로 롄진핑은 사형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중에 국민투표 결과로 밝혀지게 되지만 대중은 사형제에 찬성한다. 법조계에 투신하는 모든 이들이 롄진핑 같은 정의파는 아니겠지만, 또 이런 캐릭터가 없다면 소설이 재밌겠는가.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또 소설 전개상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압둘아들 구명에 나선 롄진핑과 리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계에서 이른바 썸타는 관계에까지 도달하지만, 진핑의 애인 리이룽과 그의 보수적인 아버지 롄정이의 개입으로 진핑과 리나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아니 진핑의 거짓말을 알게 된 이룽이 질투심에 불타 둘의 사진들을 공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진핑의 아버지 롄정이가 법조 집단의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일단의 집단을 대표하는 주자라면, 소위 MZ세대인 진핑은 반대편에 서 있다. 진핑은 아버지 롄정이가 수시로 구사하는 인맥을 동원한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는 롄정이가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범법도 자신의 재량 아래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은 사법 농단의 엄연한 현실에 대한 명징한 지적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아들 진핑의 압둘아들 변호인 선임을 막기 위해 재판관 배정에까지 개입하지 않았던가.

 

바오거의 아미족 친구 펑정민이나 롄정이가 작은 레벨의 빌런이라면, 슝펑 선업의 회장 훙전슝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다른 그레이트 빌런이다. 인신매매, 불법감금 그리고 심지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고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 거추장스럽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은 죄다 없애 버린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압둘 아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 훙전슝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협박은 물론이고 막대한 재력을 이용해서 정관계의 인사들, 심지어 총통까지 좌지우지하는 무시무시한 실력자다. 과연 이런 이들을 상대로 해서 바오거 트리오가 압둘아들 구하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훙전슝은 소설 <바츠먼의 변호인>의 전개상 꼭 필요한 빌런이다. 자신이 속한 재계는 물론이고,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정관계 더 나아가 사법계까지 조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악당이 아닌가. 이런 거악에 맞서는 끊임없이 선을 증명해야 하는 바오거 집단의 구성원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 악은 공공연하고 줄기차게 자신의 사악함을 만방에 퍼뜨리지만, 그에 맞서는 카운터 파트너들은 항상 패배의 연대기를 쓸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작은 목소리들이 모인 연대의 들불을 곳곳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헛된 소망이겠지만, 탕푸루이 작가가 바오거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들도 내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뱀다리] 표지에 배 밑으로 추락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이미지가 실려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소설의 발단이 된 사건이구나 싶었다. 정말 잘 만든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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