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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트로츠키 1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우연히 알게 된 <무지갯빛 트로츠키>라는 유사 역사만화를 읽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책인데, 해당 게시글에는 만화로도 충분히 역사를 알 수 있다는 논쟁이 부록으로 딸려 있더라. 어떤 사람은 만화 대신 책을 읽으라는 충고를 해주고 있었고, 반대 논쟁자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을 떠나, <무지갯빛 트로츠키>는 일본의 극우적 시선이 담긴 아주 위험한 책이라는 점을 먼저 알고 접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은 아버지 후카미 게이스케와 몽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움보르트다. 만주사변의 원흉이자 하극상의 달인 이시와라 간지와 작전의 신이라는 허울 좋은 별명으로 불린 츠지 마사노부가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때는 1938년, 중국 만주를 장악하고 있던 관동군이 운영하던 건국대학에 편입된 움보르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그야말로 소설처럼 전개된다.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순식간에 만주를 장악했던 것처럼, 1937년 노구교 사건으로 중국 전역을 단기간에 장악하겠다는 일본의 야심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의 격렬한 저항으로 무산되었다.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도 함락시켰지만, 공간을 내어 주고 시간을 번다는 전략으로 장제스는 일본군을 중국 대륙이라는 수렁에 빠뜨려 버렸다.
귀신 참모가 아닌 일본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이후의 거의 모든 전역에서 망신을 산 츠지 마사노부가 등장한다. 노몬한 전투와 과달카날에서의 처참한 패전의 이면에는 츠지 마사노부가 빠짐 없이 등장한다. 오래 전, 소련의 스탈린과 갈등하던 레프 트로츠키를 기용해서 소련의 분열을 유도하겠다는 이른바 <트로츠키 계획>이라는 게 존재했다. 하지만, 이미 용도 폐기된 이 전략으로 중일전쟁의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것이 이 만화에 등장하는 츠지 마사노부의 계획이다.
만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만주국의 대부격인 이시와라 간지의 오족협화라는 슬로건도 훗날 대동아공영권으로 포장되는 프로파간다의 시발점이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오족 간의 평등과 평화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관동군을 필두로 한 일본군은 어디까지나 해방군이 아닌 철저한 침략군이었고, 독일 나치의 레벤스라움처럼 만주 역시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협동과 공존의 장소가 아닌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식민지일 따름이었다.
이시와라 간지 같은 고위직 장성들이 무슨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일선의 일본군들과 일본 관리들은 내지 운운하며 만주인들과 몽골사람들을 차별했다. 그리고 항일연군이라는 이름으로 관동군에게 저항한 자무츠(이명 손일문)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특무 출신 쿠스베 카네치키 같은 악질 관헌들이 그들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주인공 움보르트 역시 쿠스베에게 잡혀 고문당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움보르트는 최근 10년간에 대한 기억상실(참 편한 기법이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로 아버지 후카미 게이스케를 비롯한 모든 기억을 잃어 버렸다. 건국대학에 다니면서 미래의 일본군 부역자로 훈련을 받기도 하다가, 또 중국 비적단에 소속되어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다가 다시 몽골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위만군 소속이 흥안군의 일원으로 노몬한 전장에 배치되기도 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대의 풍운아 같은 모습으로 연출된다.
사실 애장판 1-2-3편 모두 마지막 권에 등장하는 노몬한 전투를 위한 워밍업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선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식의 저자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게 선한 일본인들이 많았다면, 왜 그런 일본 제국군의 막무가내식 침략전쟁과 확전을 막지 못했단 말인가.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은 막부 말 개항 이래, 전쟁의 수혜로 성장한 국가다. 일본의 다수 시민들은 전쟁이 자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계속된 전쟁으로 국가 재정과 인명이 손실 되도 '콜래트럴 데미지'라고 생각하고 받아 들였다.
한국에서 선전한 내선일체나 만주경영에 도입한 오족협화는 모두 빚 좋은 개살구였다. 모든 민족 위에 침략자인 일본인들이 상위 계급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들은 그들을 위한 이등 시민 혹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움보르트의 동포인 몽골 사람들 역시 땅을 일본인들에게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진정한 협력을 갈구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대세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미국과 영국에게 아부하기 위해 만주 어딘가에 독일이나 소련에서 배척된 유대인들을 위한 자치주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시키겠다는 독일의 계획만큼이나 허황된 플랜일 따름이다. 아무리 만화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말이다. 우선 만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유대인들이 오려고 할 것인가. 온다고 하더라도, 열강의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던 지역을 이방인들에게 누가 넘겨준단 말인가.
사실 움보르트라는 존재는 만주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에 비해 사소한 그 무엇이다. 그럼에도, 만주국과 관동군에 연루된 많은 이들에게 움보르트는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것 또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개 만주군 휘하 흥안군 소속의 소위가 아무리 노몬한 전장에서 맹활약을 펼친다고 해도, 소련의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압도적 기계화 부대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츠시 마사노부의 주장대로, 1938년 장고봉 전투에 이어 1939년 노몬한에서 소일 양군이 크게 한바탕 붙었지만 적군(red army)을 35년 전에 상대한 러시아 제국군으로 과소평가했다. 이 또한 관동군 지휘부의 적정에 대한 판단착오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본군이 동원한 전차는 소련군의 중전차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소련 기계화병단을 상대하는 일본군의 전략과 전술 모두 문제투성이였다.
앳된 몽골소년대를 노로 고지 전투에 투입해서 숱한 인명이 갈려 나가는데도, 관동부 지휘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몬한 주전장을 맡은 고마츠바라 미치타로의 일본군 23사단은 전투 경험이 일천한 이선 부대 정도였다. 정예 7사단이나 2사단을 투입하자는 의견은 무시되고 오로지 정신력만 강조하는 일본군 특유의 허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 움보르트의 연인 여화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장면도 스토리의 개연성을 파괴한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야스히코 요시카즈 작가가 과연 이야기를 어디로 인도할까 싶었는데, 원대한 시작과 달리 엔딩은 좀 허무했다. 애장판의 끝마다 달려 있는 후기 역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주관적인 견해겠지만, 난 그런 글들이 하나 같이 일본의 위성국 만주국의 기원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명백한 침략전쟁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배상과 사과를 외면하는 입장과 궤도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입어도, 무수히 얻어맞아도 불사조처럼 살아남는 움보르트의 신상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이 정도면 뭐 거의 히어로급 전사가 아닌가 말이다. 움보르트 개인의 노력으로 일본의 위성국으로 만주에서 존재했던 만주국의 성격이 바뀐단 말인가. 계속해서 언급되는 오족협화 타령에 어느 순간 질려 버렸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유사 역사에 대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야스히코 요시카즈 작가가 <무지갯빛 트로츠키>를 위해 당시 시대사 고증에 공을 들인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문제는 과연 어떤 시각에서 일본이 중국에서 폭주하던 시절을 그리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그들의 침략을 미화하고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당시 침략전쟁에 나선 일제의 실체와 본질을 "그래도 당시에 선한 일본인이 있었"고 나름의 오족협화를 추구했다라는 방식으로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근 1세기 전의 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역사전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