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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이 책을 내가 지난 3년에 걸쳐 읽었다고? 그건 아니지.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해서 질풍처럼 280쪽을 읽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잊고, 아니 한참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역전다방 <보불전쟁> 편을 보고 나서 바로 내달렸다. 역시 독서란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나 보다. <패주>는 20권에 달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엔딩에 해당하는 19편이고,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가져온 보불전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을 다루고 있다. 이제 첫 걸음이지만 왠지 에밀 졸라 읽기라는 숙제를 시작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소설 <패주>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보불전쟁(1870~1871)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이 추진한 독일 통일의 일보였던 보오전쟁(1866)부터 살펴봐야지 싶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대독일주의에 대항해서, 비스마르크와 몰트케는 프로이센 중심의 소독일주의 통일을 표방했다. 게르만 민족의 큰형님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후발주자인 프로이센이 단 7주만의 전쟁으로, 특히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간단하게 제압해 버렸다.
다음 장애물은 서방의 대국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훗날 괴제라 불린 제2제정 나폴레옹 3세의 치세였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독일 통일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수많은 독일 영방국가 중에서도 바덴과 바이에른과 특히 친했던 프랑스는 사사건건 프로이센에 행동에 제약을 걸었고, 보오전쟁 중에도 중립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 프로이센 육군 참모부의 몰트케는 특히 프랑스를 군사력으로 제압해야 독일 제국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보오전쟁의 승리로 게르만 민족의 패자로 등극한 프로이센의 군사적 위협이 점증하는 가운데,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레오폴트 대공이 유력한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지만 빌헬름 1세의 판단으로 고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는 개입하게 되면서,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비화되었다. 1870년 7월 13일,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문서로 스페인 왕위 계승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이른바 <엠스 전보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을 원하던 프로이센 군부를 자극하기 위해, 당시 총리였던 비스마르크가 해당 정보를 용의주도하게 수정해서 언론에 배포하면서,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당시 프랑스는 전 세계 각지에 정예 부대들을 파견해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떠밀리다시피 전쟁에 뛰어 들게 되었다. 알제리 식민지를 비롯해서 멕시코와 인도차이나에 프랑스 정예병들이 파병되어 있었다. 급박한 상황 가운데, 해외 파견군을 소환할 사이도 없이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 19일 프로이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여기까지가 에밀 졸라의 소설 <패주>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프로이센은 신속하게 3군 38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프랑스를 침공했다. 프랑스군은 약 25만 명을 동원해서 자국을 침공한 프로이센군 요격에 나섰다.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 주력 부대를 포위 섬멸하겠다는 명확한 전쟁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프로이센군과 달리 프랑스 군은 전쟁목표도 뚜렷하지 못한 오합지졸 군대였다.
이런 가운데 <패주>의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39세의 농부 출신 베테랑 군인 장 마카르 그리고 29세의 젊은 변호사 모리스 르바쇠르다. 에밀 졸라의 전작 <대지>의 주인공이었던 장 마카르는 사랑하는 아내 프랑수아즈와 땅을 잃고, 등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재입대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던 모리스 르바쇠르는 비슷한 이유로 자진입대했다. 솔페리노 전투에서 참전한 장의 전장에서의 경험을 풋내기 모리스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프로이센군이 메츠를 포위하고, 룩셈부르크를 지나 스당을 목표로 남진하는 동안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파리에서 벨포르로 다시 랭스로 오가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프로이센군은 정보전에서도 골리아트 같은 첩자들을 사전에 프랑스 영내에 파견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라인 계곡을 따라 군부대를 신속하게 기동시키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프리드리히 카를이 이끄는 프로이센의 주력 부대는 서전에서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해서 스당으로 나폴레옹 3세의 부대를 몰아넣고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지만, 당시에 대한 이런 전반적 이해와 사전 준비 없이 덤벼 들었다가는 낭패를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장과 달리,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운 모리스는 배낭과 소총마저 방기하려다가 장과 충돌을 빚는다. 하지만, 전장에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패주"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깨닫게 된다.
열혈 민족주의자 에밀 졸라는 프랑스 시민의 입장에서 프로이센군의 야만적 행위를 그대로 고발한다. 전쟁기계 같은 프로이센 부대는 무자비하게 적인 프랑스군을 소탕한다. 프랑스군 역시 만만찮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프로이센군의 그것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전쟁통에 장삿속을 채우던 푸샤르 영감의 용맹한 아들 오노레는 포병대를 이끌고 프로이센군에 대항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대포는 프로이센군의 대포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기껏 쏘아 올린 포탄들은 공중에서 폭발하거나, 적 진지에는 도달하지도 못했다. 반면, 프로이센군의 정확한 포격에 프랑스군의 산산조각이 났다.
모리스의 쌍둥이 누나 앙리에트의 남편 바이스는 바제유에서 로랑과 더불어 자신의 집을 사수하다가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되어 처형당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앙리에트는 야전병원에서 군의관 브로슈를 도우며 상실의 슬픔을 달랜다. 야전병원에서 팔다리를 잃은 숱한 병사들에 대한 에밀 졸라식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묘사는 정말 끔찍했다. 군의관들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들것에 실려 야전병원에 오는 병사들의 수에 비해 의사는 물론이고 클로로포름을 비롯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붕대와 약품들이 부족했다. 이미 패주하기 시작한 부대에게 원활한 보급물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프랑스군 역적의 용사 마크마옹 원수마저 전투 초기에 둔부 부상으로 전장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프랑스군의 패주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버렸다.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스당으로 패퇴한 나폴레옹 3세에게 항복 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재가 삼켜 버린 바제유와 일리고원에서의 일방적 학살 그리고 9월 1일부터 시작된 프로이센군의 시계처럼 정확한 포격에 나폴레옹 3세는 휴전을 구걸한다.
이에 비스마르크와 몰트케가 내건 조건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프랑스군의 무조건적인 무장해제와 포위된 모든 병력들을 포로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산발적인 프랑스군의 선전도 없진 않았지만, 이미 전쟁의 대세는 프로이센에게 기울어져 버렸다. 결국 나폴레옹 3세는 항복하고, 그 순간 프랑스 제2제정은 무너져 버렸다.
장과 모리스는 이주반도에 설치된, 이른바 미제르 수용소에 포로로 잡혔다. 프로이센군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점령지에서 식량과 인력을 징발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총살형에 처하겠다는 엄벌주의도 공포했다. 패주하는 가운데, 장을 구했던 모리스는 미제르 수용소에서 탈주를 시도하는 가운데 정강이 뼈에 총상을 입1은 장을 오직 우정의 힘으로 구해 탈출에 성공한다. 그 가운데, 106연대 소속 보두앵 중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장렬한 죽음과 배신 그리고 살인에 이르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에밀 졸라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모리스는 다리를 다쳐 같이 탈출할 수 없게 된 장을 누나 앙리에트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파리로 향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파리 코뮌>으로 향하게 된다. 스당 함락 이후, 곳곳에서 프랑스 대중들의 저항이 이어지는 가운데 프로이센군은 격렬하게 저항하던 메츠 요새를 점령하고, 오를레앙마저 제압하고 나서 드디어 파리를 포위했다.
극렬 공화주의자들은 파리를 적의 손에 내주는 대신 끝까지 저항할 것을 주장했다. 이미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파리를 탈출한 뒤, 남은 이들은 결사항전의 의미를 불태웠다. 프로이센군의 물샐틈없는 포위로 먹을 게 떨어진 파리 시민들은 그야말로 쥐까지 잡아먹으면서 최후의 저항에 나섰다. 한편, 제3공화정의 임시행정관 아돌프 티에르는 50억 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알자스 할양이라는 치욕적인 강화 조건을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파리에 머물고 있던 다수의 국민방위군들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파리에 잠입한 모리스는 국민방위군 소속으로 파리코뮌의 대의에 동조했다. 그리고 적의 수중에 파리를 내주기보다 차라리 모두 불태워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프로이센군와의 전투에서는 그렇게 무능했던 베르사유군은 내전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장은 베르사유군 소속으로 파리에 진입하게 된다. 이렇게 비극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소설 <패주>는 보나파르티즘에 젖어 있던 한 세대의 종언을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나폴레옹 3세 시절, 프랑스 제국은 산업화와 더불어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지만 내부적으로 곪아가던 제문제들이 보불전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일순간에 폭발해 버렸다. 괴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능력도, 삼촌처럼 전장에서 뛰어난 지휘관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지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파리 코뮌>이라는 방식의 더 큰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 대립을 유발했다.
그나마 에밀 졸라는 다시 프랑스 국가와 사회를 재건하는 적임자로 모리스 르바르쇠 같은 지식인 계급보다 장 마카르 같이 우직한 농부를 꼽았다. 에밀 졸라는 참담한 패전을 미화시키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재건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에밀 졸라가 <패주>를 발표한 1792년에는 여전히 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이라는 프랑스 근대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생존해 있었다. 다수의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에밀 졸라는 "시대의 종언"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유혈이 가득했던 보불전쟁 이후, 유럽 대륙에서는 전쟁이 사라져 버렸다. 1914년 새로운 전쟁이 유럽 대륙을 휩쓸기 전까지 세력 균형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 파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까.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