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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평점 :
도서관에 가면 미처 출간된 지도 몰랐던 책들과 만나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이번 주말에도 <별들의 흑역사>라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만났던 ‘패전사’와 비슷한 궤적의 책이 아닌가 싶더라. 실패한 전쟁에서 배우는 교훈이라고나 할까.
똥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비밀 독립군이라는 말로 온갖 조롱을 받으며 기세 좋게 출발한 임팔 작전을 망친 ‘영웅’ 무다구치 렌야다. 태평양 전쟁 당시 남양군도과 여러 곳에서 프로 삽질러의 전형을 보여 준 숱한 일본군 똥별 장군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다구치의 활약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3개 사단 자그마치 10만 여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인도의 임팔을 공략하고, 중국을 지원하는 연합군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된 작전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는 그런 작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급이었고, 그 다음은 아라칸 산맥과 이라와디-살윈 강 같은 엄청난 규머의 강 같은 지형이었다. 연합군에 비해 치중 부대에서 차량이 아닌 우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일본군에, 무다구치는 물소의 등에 짐을 지워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고 여차하면 그 물소를 잡아먹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상을 했다. 하지만 물소가 기존의 소나 말처럼 부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게다가 험준한 지형에서 통제를 따르지 않다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무다구치는 1944년 전인 2년 전에 이미 비슷한 작전을 구상했다가 보급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점을 들어 작전 계획을 취소한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2년 뒤에는 무슨 심정의 변화가 생겼는지 임팔 작전 강행에 나서게 된다. 2년 전에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급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던 무다구치는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지의 풀을 먹을 것을 주문했다고 하던가. 그들이 그렇게 환호작약하던 ‘황군정신’만으로는 영국군의 중화기와 강력한 전차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초전에 31사단이 코히마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리기도 했지만, 영국군의 매서운 반격과 결국 18군의 발목을 잡게 된 보급 부족으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현지 사단장들의 판단으로 후퇴에 나서게 된다. 특히 31사단장 사토 고토쿠는 독단으로 철수명령을 내려 병사들을 후방으로 소개시켰다. 일본군 창설 이래, 첫 번째 항명 사건 1호로 기록된다. 극우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전선 기록에서는 무다구치와 사토와의 악연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둘이 구원으로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어쨌든 제대로 된 전략과 현지 지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충분한 보급 없이 무턱대고 전선에 뛰어 들었다가 대패한 일본 육군 최악의 무모한 시도가 바로 임팔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연출에 있어 무다구치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위의 상관들인 버마 방면군 사령관 가와베 마사카즈와 남방총군 대장 데라우치 히사이치도 조연으로 이른바 ‘백골가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임팔 작전에 앞서 시행된 하호 작전에서 하나야 다다시라는 똥별이 보여준 시대착오적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 전투를 적의 보급품을 뺏어서 하는 거라는 구시대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만주사변에서 이시하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지로의 대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엘리트 육군 출신으로 특무기관 소속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도 한몫 단단히 했었다고.
육군사관학교 그리고 육군대학 출신 엘리트였던 하나야 다다시는 오만에 쩔어, 자신보다 못한 경력의 인사들이라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무시했다. 상관도 안중에 없던 모양이다. 이런 일본군의 하극상이야말로 고질적 병폐였다. 심지어 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쳐들어가 기자와 사원들을 폭행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단장이라는 고위직 지휘관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급자들을 폭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온갖 구타와 폭언 그리고 무분별한 공격 강요로 애꿎은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심지어 작전이나 전투에 실패한 휘하 지휘관들에게 할복을 강요해서 “할복 사단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일본군 3대 오물에 비교해 볼 때, 하나야 다다시는 역량과 액션에서 조금도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눈길을 북아프리카로 돌려 보자. 어라, 그리고 보니 <패전사>에도 나오는 인물과도 겹치네. 마셜 원수에게 픽업되어 북아프리카에서 전차전의 귀신 롬멜과 상대하게 된 로이드 프레덴들의 이야기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쟁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던 미국은 서둘러서 전시 징병제를 실시해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많은 병사들이 모집되어 훈련이 필요했다. 로이드 프레렌들은 바로 이런 역할에 적합한 인사였다. 하지만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은 조건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상대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한 폰 아르님과 사막의 여우 롬멜이 아니었던가.
적정 시찰에 적극적이었던 롬멜과 달리 프레덴들은 안락한 후방에서 모호한 지시들을 내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제 막 전선에 투입된 경험이 일천한 미군 병사들이 역전의 롬멜 아프리카 군단병들을 상대할 수가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셜 장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연합군 간의 조정과 인사권 행사라는 점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해냈지만, 적어도 북아프리카 전선에 프레덴들을 투입한 것은 그의 치명적 실수 중의 하나였다. 시디부지드와 카세린 협곡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한 미군은 패전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곧바로 엘 궤타르 전투에서 독일군을 패퇴시킨다. 물론 조지 패튼이라는 맹장을 투입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최고의 수확은 장제스와 스틸웰 간의 심각한 갈등을 다룬 부분이었다. 정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의 만남은 중국 전선에서 대원수 장제스와 미국인 군사고문 조 “비니거” 스틸웰의 그것이었다. 일본의 거센 공격에 밀린 중국은 미국의 군사물자 원조와 장비 그리고 미군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인종주의자이자 장제스를 경멸했던 스틸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스틸웰은 장제스가 신편해서 애지중지 기른 정예 병력들을 전략 예비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목표였던 버마 탈환에 집중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해전에서 미군에게 잇달아 패배하고,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동남아의 전쟁 물자를 본국으로 후송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육로로 수송하겠다는 고육책을 내기에 이른다. 광대한 중국 대륙에 발이 묶인 일본군은 각처에서 저항을 이어가는 중국군을 격파하고, 인도차이나에서 중원을 가로 지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육로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5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대륙타통작전 이른바 이치고 작전을 시행했다.
중일전쟁을 통털어 최대의 병력을 동원한 이치고 작전으로 일본군은 기세를 잡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던 정저우, 쉬창 그리고 창더를 함락시켰다. 다만, 헝양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면서 간신히 한 숨 돌릴 수가 있었다. 화베이에서 팔로군을 상대하던 일본군들이 중국 중앙군을 상대하기 위해 이동해 버리는 바람에, 팔로군이 급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전 후, 곧바로 벌어지게 되는 국공내전에서 결국 장제스군이 패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런 위기를 대비해서 장제스가 길러둔 소중한 전략 예비대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버마 전선에 갈아 넣어 버린 것이 바로 스틸웰이었다. 오래 전,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월드워2에 실린 버마 철수작전을 찍은 사진들도 결국 스틸웰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여론전이었단 말이지. 비록 일본군에게 난타당하긴 했지만, 미국의 동맹국의 수장이었던 장제스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참모 격의 스틸웰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중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려고 한 점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마 전선에서 스틸웰이 선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장제스가 자신의 전략이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 스틸웰은 장제스를 암살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국부천도로 비록 대륙을 잃긴 했지만, 중일전쟁 당시 정예 관동군을 비롯한 일본의 대군을 중국 대륙을 묶어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장제스의 신원을 위해서도 저자는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중국전선을 망쳐 먹은 희대의 빌런 스틸웰이 서구 언론에 선전한 대로 과연 장제스는 대륙을 상실할 정도로 무능력한 인사였을까? 아마 장제스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중국의 항일전은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차 국공합작을 결렬시킨 1927년 4월의 상하이 쿠데타와 국부천도로 이어지는 국공내전 패전의 최고 책임자 역시 장제스였다. 공산군이 그랬던 것처럼, 장제스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본격적인 항일전에 나서기 전에 마오쩌둥의 홍군을 격멸해야 했다. 역사에서 이런 ‘했다면’이 무슨 소용이겠냐만.
한 수 잘 배우고 간다.
[뱀다리] 오탈자 감수에 좀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콜트 권총을 콜드로, 일본군을 본군 같은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아주 간단한 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