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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1950 -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20세기 마지막 대규모 상륙작전 ㅣ 세계의 전쟁 1
피터 데니스, 고든 L. 리트먼 지음, 김홍래 옮김, 한국국방안보포럼 감수 / 플래닛미디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인천 사람이다. 인천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래서 자유공원에도 많이 놀러 갔었다. 거기에는 무속 업계에서 군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국 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 참, 송도에는 인천상륙작전 기념관도 있지. 어려서 나에게 <아메리칸 시저>라는 별명의 맥아더는 대단한 영웅의 이미지를 안겨 주었다. 나중에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플래닛미디어에서 세계의 전쟁 시리즈의 첫 번째로 나온 <인천 1950>은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전선에 내몰린 유엔군/한국군을 위기에서 구해낸 전설적 영웅 맥아더가 구상하고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인천상륙작전의 이모저모를 그린 책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요즘 다시 보기 시작한 역전다방 한국전쟁 편을 보면서였다. 이미 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고, 중고서점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달려가서 샀다. 예전 같았으면 아예 살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지. 절판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재조명 덕분이라고나 할까.
1950년 6월 25일, 38도선을 돌파하면서 전면 남침을 시작한 인민군은 단 3일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했다. 남침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한국군은, 소련에서 지원해준 T-34 전차를 앞세운 인민군의 파상공세를 막지 못하고 연전연패해서 결국 한반도의 동남부까지 밀려나 버렸다. 그나마 미국이 중심이 된 유엔군이 신속하게 파병결정을 내리고,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8군 4개 사단을 주축으로 해서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 지원군이 속속 부산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인 군축에 돌입했다. 그 결과, 한국전쟁 당시 신속하게 병력을 모아서 파견할 수가 없었다. 태평양전쟁에서 맹활약한 미해병 1사단 역시 완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여단 편성을 해서 한국전선에 파견하게 됐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인천상륙작전에 알몬드 장군의 10군단 소속으로 해병대에 이어 인천에 상륙한 미보병 7사단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일본 홋카이도에 주둔 중이었다.
책에 따르면 맥아더가 구상한 크로마이트 작전, 인천상륙작전의 핵심은 바로 미해병 1사단이었다. 낙동강 전선에서 간신히 인민군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던 중에, 맥아더는 역발상으로 한반도의 허리에 위치한 부산에 이은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이자 서울로 가는 관문인 인천에 10군단을 파견해서 상륙 부대를 서울로 진공시키고, 인민군의 후방을 차단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미 합동참모부에 제시했다.
크로마이트 작전이 입안되던 시기만 하더라도, 한국의 운명이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였다. 미 합동참모부의 대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대규모 상륙작전에 위험 부담이 큰 인천이 아닌 군산 상륙이었다고 했던가. 하지만 맥아더의 뚝심으로 크로마이트 작전은 미군 수뇌부의 승인을 받아 진행되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세 역전의 발판이 되었다.
전쟁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항공작전에 나선 미공군의 맹활약에 힘입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인민군 부대들은 전투에 반드시 필요한 탄약과 식량 그리고 의약품 같은 보급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 두 달 간에 걸친 격전으로 그들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했다. 인천에 미해병대가 상륙하는 동시에 낙동강 전선에서 유엔군이 인민군 부대들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1950년 9월 15일, 해군의 전폭적 지원 아래 비교적 순조롭게 월미도를 비롯한 인천 상륙 지점에 상륙한 미 해병연대 전투단들은 인천 주둔 인민군들을 소탕하면서 진격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상륙작전 초기, 미해병 1사단의 주요 전략 목표 중의 하나는 김포 비행장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서 수송기에 의한 보급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부터 한반도의 제공권을 장악한 미 공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전투나 이후에 벌어지는 각종 전투들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전 초기에 성공적으로 교두보 확보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이후에 상륙한 보병 7사단 그리고 한국 해병1연대가 초반 무력한 대응을 보여주었던 인민군의 견고해지는 방어전을 잇달아 격파하면서 전속력으로 서울 해방에 나섰다. 나에게는 익숙한 지명인 부평이 예전에 애스콤 시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10군단장 알몬드와 해병 1사단장인 올리버 스미스 사이에 있었던 갈등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알몬드가 정치적 이유로 한국전쟁 개전 3개월 전에 서울을 해방시키기 위해, 해병대를 무리하게 서울 시가전에 투입하려고 했다는 점은 전쟁의 다음 단계인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반복되는 갈등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맥아더의 전쟁 지휘자로서의 빛나는 영광은 모두가 반대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서울탈환, 38선 돌파 그리고 평양 점령까지였다. 1950년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맥아더의 계획은 원래 방어에 나서려고 했던 30만 중공의용군이 한만 국경에서 미군과 대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방어 대신 적극적 공세에 나서면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역전다방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한반도에서 가장 방어에 유리한 평양-원산선에서 진격을 멈추고, 패주 중인 북한이 고사하는 작전으로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이 공세에 나서 운산전투나 군우리전투 등에서 미군과 한국군을 패퇴시키고 기세등등하여 결국 수도 서울을 다시 한 번 적에게 피탈당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역사에서 가정이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천 1950>은 아무래도 미국 저자의 시선에서 저술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천상륙작전 당시 한국군의 전적이나 활약에 대해서는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주공을 미 해병대 소속 두 개 연대전투단이 담당했다는 역사적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니까. 디테일이 부족하지만, 한국전쟁의 극적 대반전을 이룬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개요를 다룬 보교재로서는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