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쟁 - 인류사상 최대 단일전, 독일-소련 전쟁 1941-1945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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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타임라이프 <월드워2> 시리즈로 다져진 나의 세계전사 내공은 조금은 밀덕에 가깝지 않나 싶다. 예전에 절판된 리처드 오버리 작가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 중고서점에 나오면 사려고 등록해 두었는데 지난달에 대망의 재개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러시아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고, 지난주에 받아서 주말 내내 읽어서 독파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그동안 해당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서인지 진도가 쑥쑥 나가더라.

 

저자와 역자도 인정하듯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파시스트 집단을 패망에 이르게 한 승리의 원동력은 영미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었다. 독일군 전체 피해자의 80% 이상이 동부전선에서 나온 것을 보면 더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전쟁기계 독일군을 상대한 소련군의 피해는 그것을 초월했다. 그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리처드 오버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들이 맞붙은 독소전쟁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머리말에서 리처드 오버리 작가는 IBP 영화사에서 1997년에 만든 10부작 다큐멘터리에서 <러시아의 전쟁>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검색해 보니 다큐멘터리의 소제목과 책의 소제목들이 일치했다. 너튜브에서 27년 전의 자료를 검색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볼 수 있다면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논픽션의 시작은 1941년 독일 기갑부대의 매서운 공격으로 적도 모스크바가 함락 직전에 몰렸을 시기를 연상시키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191910월 반혁명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었다.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이들이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는 영웅서사는 이미 22년 전에 만들어진 사실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태어난 신생국가 소련은 압도적 독일의 위세 앞에 혁명을 지키기 위해 19183월 독일과 치욕스러운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제정 러시아 시절 유지하던 상당 부분의 영토들을 잃었다. 폴란드, 베사라비아, 몰도바를 비롯해 동부유럽의 지분의 상당 부분이 그에 해당했다. 레닌의 뒤를 이어 일국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하며 독재자의 자리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은 엔카베데 같은 비밀경찰을 동원한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소련 인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갖추고 있던 소련은 집단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방 세계를 따라잡기 위한 공업화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의 실시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대량 기아 사태를 초래했지만,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정권은 이런 부수적 피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들이 훗날 전시 경제체제에서 모든 면에서 자신들을 앞선 독일을 능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 스탈린이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있었다면, 반대편 파시스트 진영에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전설의 악당이 존재했다. 일단 국가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 체제는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그런 무엇이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악이었을까? 스탈린이 대숙청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고,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부상하던 1930년대 유럽 대륙의 이 두 악당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악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종주국의 리더 스탈린에게 손을 내미는 국가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는 독일을 필두로 한 세력들이, 그리고 동방에서는 내전에도 개입했던 일본의 위협이 가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안슐루스와 주데텐란트 합병 등으로 중부 유럽의 질서를 깨는 행동을 서슴지 않자,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은 즉시 견제에 나선다. 문제는 히틀러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뮌헨까지 날아가서 결국 체코를 내주는 대가로 평화를 샀다.

 

독일에 대한 서방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이에 손을 내민 게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과 폴란드 분할 등으로 강철의 독재자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며 유화정책을 구사했다. 이에 소련의 지도자는 대량의 곡물 수출 같은 경제적 보상으로 화답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히틀러는 소련을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소련의 광활한 대지는 게르만 민족을 위한 레벤스라움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모든 걸 의심하던 소련의 지도자를 철저하게 기만한 히틀러는 대군을 동원해서 결국 1941622일 이른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 격멸에 나섰다. 소련 침공 작전이 발동되기 전까지 숱한 정보들이 독일의 기습전을 예고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된다.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소련군은 전쟁 초기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독일 기갑부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1930년대 대숙청의 여파와 정치위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련 군인들은 전장에서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거듭했다.

 

독일의 3개 집단군은 각기 목표를 지니고 소련의 대평원을 휩쓸었다. 북부집단군은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 함락을, 중부집단군은 수도 모스크바를 그리고 남부집단군은 소련의 곡창지대이자 유전지대를 겨냥해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군은 바로 소련의 수도를 노린 중부집단군이었다. 이미 추축동맹국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발칸반도 작전으로 6주라는 소중한 작전 시간을 허비했고, 민스크-스몰렌스크 축선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중부집단군이 바로 모스크바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남부집단군을 지원하라는 군사 비전문가 총통의 명령에 따라 키예프 공략을 나서면서 소련의 수도는 결정적인 구원을 얻었다.

 

레닌그라드에서도 포위된 도시를 강력한 충격으로 일거에 함락시키지 않고 봉쇄를 명령하면서 결국 레닌그라드 포위 900일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북부집단군은 신속하게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전력을 중부집단군에 집중했어야 했다. 결국 오만한 독재자 스탈린은 만주 할힌골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사령관 대리로 임명하고, 군사 지휘의 전권을 주면서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수도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모스크바를 사수하는데, 독재자 스탈린이 후방으로 후퇴하지 않고 수도를 지키기 위해 잔류했다는 점도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

 

개전 초기, 압도적 독일의 공격에 소련 서부에 있던 공장과 설비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을 모두 안전한 우랄 산맥 너머 동방 축선으로 옮긴 것은 소련에게는 신의 한수 같은 결정이었다. 역시 독재국가답게 무지막지한 전시동원으로 인력과 자원을 갈아 넣으면서, 조금씩 전시 생산체제를 가동시켰다. 소련 시민들을 위한 소비재 생산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적과 싸우기 위한 전차와 항공기, 대포 그리고 탄약과 포탄 생산에 전념했다. 소련이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에서 미영의 무기대여법에 의한 원조 역시 큰 몫을 했다. 물론, 소련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면서 미영 연합군이 지원한 막대한 물량의 전쟁물자들 가운데 스팸과 스튜드베이커 트럭은 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독일군은 여전히 시대에 뒤쳐진 우마를 보급 수송에 사용했는데, 소련군은 미국에서 공여 받은 미제 트럭들을 사용해서 전장으로 필요한 탄약과 보급물자 그리고 예비병력들을 실어 날랐다.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62군을 위해 축차적으로 구원부대를 보내는 대신 천왕성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독일 최정예 부대라는 6군을 포위한다는 주코프의 신박한 전략이 등장했다. 물론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장이라도 점령될 것 같은 독재자의 이름을 딴 볼가 강의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독 안의 든 쥐 같은 신세였던 추이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62군은 악착같이 버텼고, 마침내 구원이 도착했다.

 

주코프 장군이 지휘하는 소련 야전부대가 스탈린그라드 북부 전선을 담당했던 루마니아-이탈리아군을 분쇄하고 강력한 두 개의 집게발로 스탈린그라드의 30만에 달하는 독일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현지 사수를 엄명한 미치광이 총통의 오판 덕분에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파파 호트와 만슈타인이 프리드리히 대장의 고립된 제6군 구원에 나섰지만, 몇 겹으로 둘러싼 포위망 돌파는 역부족이었다. 이 장대한 전투의 결과, 동방에서 독일이 승리할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이후에 이어지는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 그리고 1944년 소련군의 복수에 해당하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개전 당시, 실패의 이유를 곱씹고 1930년대 투하쳅스키 장군이 설계한 종심작전을 기반으로 한 제병합병 작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존의 소련군과는 달리 새로운 집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역시 전쟁에서 경험만한 게 없다는 진리일까. 그리고 전장에서 정치위원의 역할을 줄이고, 현장지휘관들의 판단을 중시하게 되면서 소련군의 사기는 고양되었다.

 

저자 리처드 오버리는 이런 점들에서 소련인들이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고, 독일과의 전투에서 파시스트 짐승들을 격멸하기 위해 자진해서 싸우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 사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독재자는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부역자 처벌을 필두로 해서 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을 갖은 이유로 숙청한다. 최고 전쟁영웅 주코프마저 한직으로 밀려날 정도니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했을지 모른다.

 

독소전 개전 3주년을 맞아 그나마 건재했던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겨냥해서 발동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은 독일에게 침략당한 자국의 영토를 모두 되찾는데 성공한다. 정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소련은 철저하게 주공 방향을 비밀로 감추는데 성공하고, 벨라루스 프리야트 습지대를 돌파해서 독일군 주력부대들을 차례로 분쇄했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이 그렇게 원하던 유럽대륙 제2전선을 연 미영 연합군이 노르망디 북부의 빌라 보카주에 갇혀 악전고투하는 동안, 주코프 휘하의 소련군은 엄청난 진군 속도로 지리멸렬한 독일군을 격파하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 비스와 강까지 도달했다.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르샤바에 있던 폴란드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폴란드 국내군이 봉기해서 독일군에 대항했지만, 빈약한 무기로 미쳐 날뛰는 나치 친위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바르샤바가 해방되면 공산주의 소련에 영향력 아래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며 선제적으로 봉기에 나섰던 폴란드 민족주의자 세력들은 나치에 의해 일소됐다.

 

스탈린이 일부러 폴란드 국내군의 봉기를 좌시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비스와 강에 도달할 무렵 소련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있었고 총통의 소방수로 알려진 발터 모델 원수의 우주방어로 결국 소련군의 공세를 멈추게 할 수가 있었다. 바르샤바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다음해 1월까지 기다려야했다.

 

결국 히틀러의 제3제국 패망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1943년과 1944년 잘 짜인 전략으로 전선에서 병력 감소를 최대한으로 줄인 소련군이, 파시스트 소굴 베를린 점령전투에서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승리의 트로피인 적국의 수도 점령을 위해 주코프와 코네프가 적극적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인명을 경시하는 소비에트 시절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졌고, 4년 전과 달라진 조국 수호를 위해 광신적 저항을 하는 독일군을 상대하게 된 소련군의 사상자 수가 격증하기 시작했다. 요새화된 정중앙 젤로 고지 전투에서 주코프가 고전하는 동안, 남부 전선 공략을 맡은 코네프가 보다 유리했다. 그래도 어쨌든 전쟁을 거의 주도하다시피한 주코프에게 적국의 수도 함락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던가.

 

천년왕국을 꿈꾸던 히틀러의 제3제국이 그렇게 몰락해 버리고, 이제는 전후 질서를 위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소련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어쩌면 제3제국의 멸망이 미래의 냉전 잉태를 예고하고 있었던 걸까. 전쟁이 끝나기 전, 영국의 처칠과 스탈린은 동부 유럽에서 각각 자국의 지분을 두고 경쟁했다. 처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자였던 스탈린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나마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종전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반공 노선의 트루먼이 후계자가 되면서 연합군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결국 자국이 해방된 나라들을 지배한다는 스탈린의 논리가 우세하게 되면서 동유럽이 스탈린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전에, 나치 전범들을 약식재판으로 처형하자는 미영의 의견에 스탈린이 반대하면서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전쟁 중에 폴란드에서 저지른 카틴 숲 학살 사건 같은 케이스는 아예 불문에 붙였다. 철저하게 나치 독일을 상대로 벌인 선전전에 불과했다. 결국 전범재판은 엔카베데를 동원해서 고문과 자백을 통한 재판 결과를 연출할 수가 없었던 소련의 쇼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단일전이라는 책의 표제처럼, 5년간 치러진 독소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많은 인명이 무고하게 살상되고,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도시의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 소련이 결국 독일을 무찌르고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최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소련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손실은 막대했다.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또 다른 막대한 강제 인력동원이 소요됐다. 나치 독일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었던, 소련의 전체주의 시스템이 바뀌리라는 희망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대조국전쟁의 승리로 소련 대중이 더 행복해지거나 부유해졌을까? 리처드 오버리는 독일과 소련 양국의 참전용사들의 전후 삶을 비교하면서 그렇지 않았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패자에게도 그리고 승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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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9-03 0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근본적인 원인이지요.프랑스 나폴레옹과 독일 히틀러의 침공으로 러시아 국민이 수천만명이나 사망했기에 러시아는 적성국과 국경을 맞대기보다는 완충지대를 두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레삭매냐 2024-09-03 14:10   좋아요 1 | URL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현재
러우전쟁이 떠올랐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나토는
더 이상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
을 지키지 않았죠.

푸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킨 원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요.

coolcat329 2024-09-03 0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부작 다큐 저도 보고 싶은데 없군요. ㅠㅠ
소련인민들이 스탈린체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독일과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거군요. 근데 스탈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더 강력해졌으니 참 ...

레삭매냐 2024-09-03 14:11   좋아요 1 | URL
아마 오래 전 자료가 그런지
다큐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너튜브 세상에서도 없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인민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했지
만 전후, 다시 조이기 시작했
죠.

지도자에게 다시 사기당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페넬로페 2024-09-03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소의 대명사 히틀러와 스탈린은 파고 파도 마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열악했던 러시아가 독일을 막아내고 재침공 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을 지금 사람들이 앓는 것 같아요 ㅠㅠ


레삭매냐 2024-09-03 14:13   좋아요 2 | URL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을 위한 일체의 소비재
생산은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오로지
전쟁 물자 생산에만 몰두해서 결국
파시스트 나치 독일을 패망시켰습니
다.

제정 러시아 이래, 국가 러시아는
짜르를 원하지 않았나라는 분석도
등장합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로마노프 집
안의 짜르들, 공산당 시절에는 스탈
린 그리고 지금은 푸틴.

욕하면서 지지하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
 
어부의 무덤 - 바티칸 비밀 연구
존 오닐 지음, 이미경 옮김 / 혜윰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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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동지 붉은돼지님의 포스팅을 읽고 나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미국 출신 변호사 존 오닐의 <어부의 무덤>이라는 책이다. 무려 로마 교회 초대 교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의 무덤을 찾는 바티칸 비밀 프로젝트라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했으니 또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지.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서 단박에 읽었다.

 

변호사 출신답게 내용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야기는 1939, 세계가 전화로 막 휩싸이기 직전 바티칸에서 비밀리에 텍사스 휴스턴으로 월터 캐럴이라는 젊은 사제를 파견했다. 그가 만날 사람은 석유시추로 거부가 된 조지 스트레이크라는 사람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스트레이크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그런 사업가였다. 어린 시절, 9달러를 벌면 2달러를 십일조로 기부했을 정도다. 정규 과정 없이 대학교에 진학해서 장액금으로 학교를 다닌 뒤, 그는 와일드캐터(석유를 찾아다니는 시추업자)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텍사스 콘로에서 어마어마한 석유의 바다를 찾아낸 뒤, 거부가 되었다.

 

그는 항상 신이 자신과 함께 했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언젠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사회와 종교단체 기부에도 아낌이 없었다. 이런 사실을 잘아는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월터 캐럴를 파견해서 바티칸에서 진행 중인 비밀 프로젝트에 재정 후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확히 실체를 모르는 프로젝트에 누가 자신의 재산을 아낌 없이 내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지 스트레이크는 달랐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 그렇다면 이 논픽션의 제목에 등장하는 "어부"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이자, 전승에 따르면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고 알려진 그 인물 베드로다. 갈릴리 어부 출신의 베드로는 격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이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일 정도의 그런 당당한 남자였다. 하지만 성경에도 나오는 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관헌에게 체포되어 간 다음,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의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그리고 승천 후에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도 바오로와 더불어 앞장 선 인물이다.

 

로마 교회에서는 이런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를 기념해서 그가 로마에서 네로의 핍박을 받아 순교한 자리에 나무로 만든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의 유해는 이미 발견되었지만 로마 교회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도 베드로의 유해와 묘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17세기 성 베드로 성당이 다시 지어진 뒤에도 그의 묘지를 찾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 밑에 그의 무덤이 있는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전에도 발굴 조사가 되었지만 그 때마다 이교도의 묘지였던 네크로폴리스의 일부만이 발견됐다. 그러던 차에 1939년 비오 12세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발굴조사가 시작되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비오 12세는 미국에 사는 조지 스트레이크의 후원을 받아 이른바 '사도 프로젝트'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변호사 출신의 저자 존 오닐은 상당히 보수적 인사로 보인다. 책의 상당 부분을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유럽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파시즘에 중립적 자세를 취한 바티칸 교황청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월터 캐럴을 비롯한 일군의 바티칸 사제들이 연합군 승리와 유럽, 특히 이탈리아 유대인 구제에 조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전후에도 조지 스트레이크와 이탈리아 사제들의 후원으로 이탈리아가 공산당에 넘어가는 걸 막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실 무솔리니 치하에서 부역한 우파들은 파시즘 독재에 철저하게 저항한 좌파 빨치산보다 대의명분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이탈리아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이탈리아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탈리아는 서구 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산당이 집권하는 나라가 됐을 지도 모른다.

 

책의 전반에는 이렇게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눈부신 활약이 그려지고, 후반에는 마구잡이식 발굴로 지하 네크로폴리스 발굴을 엉망으로 만든 안토니오 페루아 사제(훗날 바티칸 유물관리 고위직으로 승진한다)와 마르게리타 과르두치 여사의 한판 대결로 이루어진다.

 

전동장비나 현대적 설비 없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로 작업한다는 사도 프로젝트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발굴 초기인 1930년대만 하더라도, 현대식 고고학 발굴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상태였을까? 원래 발굴을 담당한 페루아 팀은 섬세한 유물/유해 수집과 사진 촬영은 고사하고, 사도 프로젝트 해결에 결정적 명문이 새겨진 "그래피티 월"을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가이우스의 전리품"을 찾을 수 있는 단서였던 명문에 문외한이었던 페루아의 결정적 실책이었다. 하지만, 금석문에 정통한 과르두치가 등장하면서 페루아 팀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과르두치의 후원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면서, 페루자의 공격은 집요해지고 수십년간 사도 프로젝트에 전념한 과르두치는 결국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만다. 하지만, 진실은 한 사람의 원한이나 사욕으로 뒤바뀌지 않았다. 결국 과르두치가 밝혀낸 진실이 다시 한 번 교황에게 인정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일단 책은 저자 존 오닐이 어디선가 말한 대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아무래도 존 오닐이 전문적인 (종교)역사학자가 아니다 보니 곳곳에서 빈틈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아쉬운 건 자신의 반공주의 성향을 보이는 점이다. 그리고 인물 위주의 묘사를 하다 보니, 발굴 과정에 보다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넓은 전문가의 조언이나 감수를 첨가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비전문가의 진실 탐사 프로젝트는 과연 흥미로웠다. 사도 프로젝트에 개입한 이들의 파란만장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세계대전 중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조지 스트레이크의 이야기도 다양한 인사이트의 원천이었다. 과연 성유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자 이제 다음 차례는 패트릭 J. 기어리의 <거룩한 도둑질>을 읽을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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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02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논픽션이군요!
재밌겠어요
그런데 별3개?!
아마도 발굴에 대한 내용때문인가봅니다.

레삭매냐 2024-09-02 15:08   좋아요 2 | URL
확실히 재미가 있어서 단박
에 읽긴 했는데...

좀 무언가 아쉬운 점들이 -
아마 비전문가의 역사 서술
이라 그런 게 아닌가 싶기
도 하구요.
 
푸른 밤
존 디디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NYT 독자 선정 금세기 베스트 100 가운데, 조앤 디디온이라는 작가의 <상실>이라는 책이 있다고 해서 냉큼 사서 읽기 시작했다.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제목이 말해주듯 40년을 갈이 산 배우자와 사랑하는 딸 퀸타나의 "상실"에 대한 글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고, 내용도 그냥 평범한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앤 디디온은 그야말로 평생 글쟁이로 '뉴 저널리즘'의 기수라고 불릴 정도로 평생 글을 쓴 대가였고, 그녀가 구사하는 상실의 이야기는 아직 진짜 "상실"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수용하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읽었나 보다.

 

나의 책읽기는 항상 컬렉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스레드를 통해 알게 된 베른트 하인리히 작가의 생태를 다룬 책들과 더불어 조앤 디디온의 책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전자는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조앤 디디온의 책이 수급이 쉬웠다고나 할까.

 

어제 중고서점에서 산 <푸른 밤>은 단박에 다 읽었다. <상실>과 달리 어제 만난 <푸른 밤>은 뭐랄까 일종의 리듬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리듬감 섞인 독서를 하게 되면 책의 진도가 쭉쭉 나간다는 걸 간만에 느낄 수가 있었다. 나에게는 어제 읽은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이 그랬다. 책의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푸른 밤>이 가볐웠고.

 

아무래도 조앤 디디온 작가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다 보니 <상실>은 좀 더디게 진도가 나갔는데, <상실><푸른 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서 작가 내면세계에 좀 더 침투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조앤 디디온은 3년 전인 2021년에 작고했다고 했다.

 

오랜 글쟁이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다 보니 조앤 디디온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아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변의 다이애나라는 친구 덕분에 1966년에 딸 퀸타나를 입양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직접 낳은 딸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더 퀸타나를 사랑했고 사춘기 딸의 고민을 함께 한 일련의 과정들이 그녀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문득 퀸타나 루가 어쩌면 저명한 저널리스트였던 엄마 찬스 덕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나 인형방에 영사기를 들여 놓자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선택과 버림받음에 대한 고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존과 조앤은 그 아이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퀸타나 루는 태어나면서 "버림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 아이가 버려지지 않았다면, 존과 조앤 부부에게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으리라. 과거의 어느 시점에 벌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후일 시점에서 하는 이런 고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마치 역사의 가정법처럼 말이지.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을 갑자기 잃고 나서, 딸 퀸타나마저 병상에서 힘겨운 투병을 하던 과정을 조앤 디디온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어쩌면 독자는 이런 글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게 된 상실에 대한 감정들이 전작 <상실>에서 넘실거린다면, 이번 <푸른 밤>에서는 상실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극복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덧없이 흘러가는 그런 무수한 시간들을, 모든 걸 파괴해 버리는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퀸타나가 자신의 생물학적 여동생 그리고 생모를 만나게 되는 사건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그리고 보니 조앤 디디온은 퀸타나를 데리고 투산에 촬영갔다가, 문득 퀸타나의 생모가 투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부로부터 퀸타나를 철저하게 차단하려고 했다는 자신의 시도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아이가 어려서 가졌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되뇌이면서 고민열차에 동참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사실들은 또 굳이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조앤 디디온이 무심결에 툭툭 던지는 미국 현대사의 한 장면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갓난쟁이 퀸타나를 데리고 무려 40만 명이나 되는 미군들이 싸우던 베트남에 가겠다는 생각이나, 책의 어디에서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 이루어졌을 때 바베이도스엔가 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중대 사건들이 우리네 일상 너머로 벌어지고 있더라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은 구간이다. 재개정판으로 만나보고 싶었지만, 중고책방에서 나의 선택은 제한적이었다. <마술적 사고의 해>도 마저 읽어야지. 우리는 원하지 않겠지만 "빛의 소멸"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읽기와 쓰기 역시 빛의 소멸로 나가는 하나의 스텝일지도. 그러고 보면 참 시간이 덧없다. 그렇지 않은가.

 

* 이 책으로 찰리 파커의 <Relaxin' at Camarillo>라는 곡도 알게 됐다.

지금 다시 들어도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다.

그런데 카마리요가 우리로 치면 "언덕 위의 하얀집"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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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02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한 걸 보고 바로 구매했는데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끝내 정리한 기억만 남았어요.

레삭매냐 2024-09-02 12:43   좋아요 1 | URL
저는 조심스럽게 전작인 <상실>과
함께 읽으면 좀 더 부드럽게 나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두 책이 서로 공명하고 뭐 그런 점
들이 있더라구요.

문제는 <상실>이 참 어려운 책이
라는 게 단점이라고나 할까요.
한 달 넘게 잡고 있는데 미처 다
못 읽고 있네요.

조앤 디디온 여사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감탄했습니다.
내추럴 본 글쟁이라고나 할까요.
 
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지난 6년 동안, 세 번이나 타리크 알리 작가의 <술탄 살라딘>을 읽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주문 내역을 찾아보니 나는 이 책을 두 번 샀더라. 13년 전에 한 번 그리고 6년 전에 중고서점에서 한 번. 아마 처음 산 책은 분실한 모양이다. 지난 3일 동안, 중고서점에서 산 <술탄 알라딘>을 다시 읽었다.

 

두 번이나 읽었던 기시감 덕분인지 책의 진도를 쑥쑥 나갔다. 그만큼 익숙하고 또 흥미진진하다는 이야기겠지. 나의 쇠락하는 기억력 덕분에 마치 새로 만나는 그런 책처럼, 또 새롭게 다가왔다.

 

파키스탄계 영국 작가 타리크 알리의 걸작 <술탄 살라딘>1181년 카이로에서 출발한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유대인 역사학자 그리고 술탄의 총애 받는 서기가 되는 이삭 이븐 야쿠브(야곱).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온 술탄은 이븐 마이문의 추천으로 이븐 야쿠브를 자신의 회고록을 쓸 서기로 발탁한다. 일찍이 동방원정에 나선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에게 호메로스 같은 저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고 하던가. 영웅의 일대기를 위해서라도, 중세 기사들을 시종하며 그들을 칭송하던 트루바두르 같은 이들이 필요한 모양이다.

 

타크리트 산골짜리 출신의 쿠르드 족 출신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은 서기에게 자신의 웅대한 꿈을 살짝 비친다. 그것은 바로 프랑크 족에게 90년 간 점령당한 알 쿠드스(예루살렘)를 탈환하겠다는 것이다. 이슬람이 최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프랑크 족의 알 쿠드스 점거는 신자들에게 치욕의 상장이었다. 하지만, 무슬림 세계 내부의 분열 때문에 단일대오를 형성해서 강력한 프랑크 족 기사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 아이유브와 그의 숙부 시르쿠가 섬기던 술탄 장기가 이미 프랑크 족에 대한 지하드를 시작했다. 에데사를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리던 장기는 환관에 의해 어이 없이 죽고 만다. 왠지 이름도 비슷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장비가 연상되는지. 이슬람의 두 보석 중의 하나라는 다마스커스의 지배자이자 장기의 후계자인 누르 앗 딘은 시르쿠를 이집트에 파견해서 분란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시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는 실권 없이 와지르들에게 휘둘리는 상태였다. 상시적 내부분열을 달고 살던 당대 무슬림들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공동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 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왕국의 아말릭은 해안 도시들을 제압하고, 무슬림 세계의 이러한 내부 분열을 이용해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조카 살라흐 앗 딘을 대동한 시르쿠는 이집트로 달려가 와지르 일당을 소탕하고 실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영광의 순간에, 시르쿠는 식탐 때문에 어이 없이 죽고 만다. 바로 곁에서 이것을 목격한 살라흐 앗 딘은 평생 검소한 식생활을 하게 된다. 병약한 살라흐 앗 딘을 주변인들은 무시했지만, 삼촌 시르쿠를 따라 다니면서 전쟁을 배우고 아버지 아이유브로부터 가장 중요한 인내심을 배운 살라흐 앗 딘은 이집트의 실제적인 지배자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그의 부상을 우려한 다마스커스의 누르 앗 딘은 그를 견제하기 시작하지만,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 아이유브의 현명한 대처로 시간을 번 살라흐 앗 딘은 결국 누르 앗 딘이 죽은 뒤 이슬람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로 부상한다. 누르 앗 딘 사후, 다마스커스에 도착한 살라흐 앗 딘은 알레포와 모술을 차례로 공략해서 정복하고 드디어 알 쿠드스 원정에 나서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더해 타리크 알리는 살라흐 앗 딘의 최측근에서 그에게 고언을 마다하지 않는 샤디라는 가상의 인물을 배치한다. 샤디는 사실 살라흐 앗 딘의 삼촌으로 술탄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그런 존재였다. 역시 가상의 인물인 이븐 야쿠브 역시 술탄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그의 삶을 양피지에 옮긴다. <술탄 살라딘>이 매력적인 전기소설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역사의 빈 공간을 타리크 알리의 상상력이 채운다는 설정이다.

 

단순한 역사라면 아마 이렇게까지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작가 타리크 알리는 술탄의 궁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술타나 자밀라/할리마 그리고 여러 환관들을 통해 이븐 야쿠브(아마도 본인의 페르소나)의 펜 끝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술탄이 공석일 때 이집트를 실제로 다스린 카디 알 파딜, 다마스커스의 행정가이자 문장가인 이마드 앗 딘 등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향연도 빼놓을 수 없다.

 

본격적인 알 쿠드스 해방전쟁이 시작된 다음에는 정치를 담당하던 문인들의 이야기에서, 술탄의 조카 타키 앗 딘이나 아미르 케우크부리들로 이야기의 중심이 넘어가는 전환도 인상적이었다. 본질적인 무력으로 이슬람 세계를 통일을 이룬 술탄은 알 쿠드스 해방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병사들과 아미르들을 끌어 모으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술탄은 툴루즈의 베르트랑이라는 항복한 기사나 첩자들을 통해 알 쿠드스의 내부 정보를 모으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인 하틴에서 기 왕와 샤티용의 레지날드가 이끄는 십자군 주력부대를 섬멸했다. <킹덤 오브 헤븐>에 나오는 이벨린의 발리앙이 지휘하는 한줌의 예루살렘 수비대 앞에 이슬람 전사들이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전략과 전술, 보급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 모든 면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수비대는 술탄 부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88년 전, 알 쿠드스를 점령한 십자군 부대는 무슬림들은 물론이고 유대인 콥트교도 가릴 것 없이 성 안의 모든 이들을 학살했다. 과거를 아는 이들은 살라흐 앗 딘에게 항복하기를 주저했다. 이길 방법은 없고, 항복해도 모두 죽게 된다면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살라흐 앗 딘은 복수심에 불타는 자기 휘하의 제장들을 만류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술탄의 위대함이 돋보였다. 술탄은 예루살렘 수비대에게 목숨도 살려 주고, 재산까지도 성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선언했다. 중세의 전쟁에서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신자들의 사령관이었던 살라흐 앗 딘은 그들에게 성지였던 알 쿠드스 해방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기독교도들이 성을 비우자, 살라흐 앗 딘은 가장 먼저 성에 들어가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살라흐 앗 딘의 최측근으로 유대인 이븐 야쿠브가 발탁되어 활약한 것처럼, 술탄 가신단의 많은 이들이 무슬림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능력만 있다면, 유대인이고 콥트 기독교도고 할 것 없이 술탄은 그들을 기용했다. 저자가 책의 어디에서 말하는 것처럼, 당대의 이슬람과 근본주의만 강조하는 현대의 이슬람은 전혀 다르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런 정치적 격변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소소한 개인들의 일상도 놓치지 않는다. 12세기 이슬람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술타나 자밀라는 술탄을 따라 알 쿠드스 해방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비극적으로 끝난 샤디의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할리마를 자신의 애인이자 제자로 삼은 자밀라의 행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가 이븐 야쿠브에게는 못할 말이 없다. 그만큼 신중한 그의 성격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이븐 야쿠브는 타리크 알리가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문득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을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영상화하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갑자기 술탄의 총애를 받아 최측근이 된 이븐 야쿠브의 기구하고 신산한 삶도 드라마 같지 않은가. 인간 살라흐 앗 딘의 매력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한 이븐 야쿠브는 어느 순간 오쟁이진 남자가 되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이븐 마이문에게 아내를 빼앗긴 남자라니. 그리고 보니 그전에 이븐 마이문이, 너무 술탄의 일에 빠져 가정과 아내 라헬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 한 사람도 이븐 마이문이 아니었던가. 비탄에서 이븐 야쿠브를 벗어나게 해준 것 역시 술탄과의 동행이었다.

 

이븐 야쿠브를 기다리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알 쿠드스가 해방된 다음에 벌어졌다. 역설적으로 알 쿠드스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았자면, 이븐 야쿠브 가정의 비극도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븐 야쿠브의 비극을 기점으로 해서 전기소설의 활기와 역동성은 사라지고, 차분하게 이븐 야쿠브가 카이로의 이븐 마이문에게 전하는 편지로 진행된다.

 

좋은 책은 세 번이나 읽어도 변함없이 좋았다. 그냥 우연히 지난 2월에 조금 읽다만 책 생각이 나서 펼쳤다가 삼독을 하게 됐다. 내가 같은 책을 세 번 이상 읽은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술탄 살라딘>은 처음으로 사독을 하게 되는 그런 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부디 타리크 알리의 나머지 이슬람 5부작도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돌기둥 여인>부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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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02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제 장바구니에도 재출간 알림 신청해놨는데,,, 5부작 모두 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4-09-02 15:09   좋아요 2 | URL
기회가 되신다면 이슬람 5부작
가운데 1편에 해당하는 <석류
나무 그늘 아래서>를 감히 추천
해 드리는 바입니다.

인생작이라 부를 만한 그런 작품
입니다.

과연 재출간 혹은 나머지 작품들
도 출간이 될런지... 젭알 되었으
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잉어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7
비키 바움 지음, 박광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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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처서였다. 폭염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낮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최악의 더위는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더위 핑계를 고만 대고, 이제 책을 읽을 시간이다. 네 개의 단편이 실린 비키 바움의 <크리스마스 잉어>를 읽었다.

 

비키 바움 작가의 책은 <그랜드 호텔> 이래 두 번째던가. <크리스마스 잉어>는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테마를 잡아 출간 중인 흄세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됐다. 오스트리바 빈 출신의 유대계 작가 비키 바움이 지난 세기 어느 순간들의 시대상을 담은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배치된 단편들의 역순으로 <백화점의 야페>부터 시작해 보자. 올해 17살 먹은 제화 수습공 출신의 프롤레타리아 청년 야페 플룬트가 주인공이다. 그의 삶의 배경은 초라하고, 변변한 기술마저 없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기술을 쌓고 있는 중이다. 가난한 청년이라고 해서 욕망마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세상의 온갖 상품들이 넘쳐흐르는 백화점에서 멋진 넥타이를 보고는 그걸 목에 매면 왠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망상, 아니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문득 그전 이야기에 등장한 신경증에서 광증으로 전이되는 피아노 교사의 이미지가 바로 떠올랐다.

 

돈 없는 청년에게 6마르크 짜리 넥타이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스로 마련한 1마르크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넥타이 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야페의 선택은 어디로 흐르게 되는 걸까. 청년은 백화점에 잠입해서 모두가 잠든 사이에 거사(?)를 치르기로 결심한다. 초반에는 그의 소망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총아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야페의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물질적 욕망에서 출발한 야페의 일탈은, 파괴 욕망으로 변질되고 결국 자신마저 날려 버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세 번째 이야기인 <굶주림>은 더 비극적이다. 예전에는 잘 나가는 집안의 규수였지만 지금은 쇠락해서 보잘 것 없는 연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미스 가브릴로프스키가 주인공이다. 미스 가브릴로프스키의 궁색함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녀의 유일한 벗은 죽은 약혼자가 남긴 스컹크 한 마리다. 아니 애완견도 아니고, 반려 동물이 스컹크라니. 이런 설정부터 혀를 차게 만든다.

 

돈 없는 이들이 아낄 수 있는 건, 음식이었다. 양배추 수프인가 만날 싸구려 음식만 먹던 미스 가브릴로프스키는 결국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된다. 너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찰해 주던 의사는 그녀에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해준다. 잘 먹고 건강을 챙기라고. 아니 미스 가브릴로프스키는 돈이 없다고. 그래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표현이 너무 역설적인가!) 피아노 교습을 가기 위해 타야 하는 전차비를 아끼느라 걸어 다니기 일쑤다. 도저히 건강을 챙길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란 말이지.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미스 가브릴로프스키가 세들어 사는 집 아들이 홍역에 걸리면서 그녀에게도 운이 트기 시작한다. 빌리의 홍역 간호에 자원하면서, 미스 가브릴로프스키 하루에 다섯 끼나 얻어먹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그녀가 빌리를 왕진하던 의사 에밀 쾨벨링을 자신의 연인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닥터 쾨벨링은 순전히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신경증에 호기심을 가졌을 뿐인데 말이다.

 

이번 이야기 역시 비극이라는 결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미스 가브릴로프스키는 오랫 동안 제자 빌리의 간호에만 치중하다가 기존의 피아노 교습을 받던 학생들을 모두 잃어 버렸다. 닥터 쾨벨링 역시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미스 가브릴로프스키의 광증에 가까운 신경증이 폭발해 버렸다. , 그것 참.

 

<>은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지도 않은 친칸 부인의 지극히 평범한 삶에 대한 간단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다. 작가는 빠듯한 예산으로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하는 친칸 부인은 번듯한 옷장을 하나 장만하러 나섰다가 비를 맞고, 폐렴을 앓다가 수백만 영겁의 파도 속의 하나의 파도가 되는 순간들을 잡아낸다. 친칸 부인이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기는 장면에서 왜 나는 저승사자가 연상되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어느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롯하게 그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욕과 만찬이라는 이번 흄세 시리즈의 키워드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은 역시 표제작 <크리스마스 잉어>였다. 잉어 요리가 제국 시절 오스트리아의 명절(크리스마스)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말리 고모의 등장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화가 사라지기 전, 좋았던 시절을 상징한다. 명절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렇게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나도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가족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한 시절을 보냈지만, 파편화된 핵가족 시대에는 그럴 일이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 곧 우리의 명절이 다가오는게 좀 아쉽다라는 느낌이다.

 

명절 만찬을 지휘하는 사령관으로 말리 고모는 잉어 쟁탈전에서도 유감 없는 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멋진 잉어를 공급해 주는 이가 나중에는 배척당하게 되는 유대계 상인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좋았던 시절은 1938년 안슐루스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웃의 이상한 독재자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더욱 크리스마스 잉어가 구하기 힘들어졌다. 이것은 뒤바뀐 시절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지적이다. 그렇다고 잉어 없는 크리스마스 명절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말리 고모가 명절에 보여주는 일종의 책임감은 마치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녹두빈대떡을 만들기 위해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 내리는 신성한 작업을 묵묵하게 수행하던 젊은 시절의 작은 아버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말리 고모가 어렵게 구해온 크리스마스 만찬 식탁에 오를 잉어 요리 후보를 욕조에 넣어 보살피게 되면서 라너 박사의 식구들은 잉어를 애착하기 시작한다. 요리를 하기 위해 잉어 아달베르트를 잡아달라는 말리 고모의 말에 전쟁터에서 적군과 사납게 싸우던 조카들이 차례로 꼬리를 내려 버린다. 누가 어느덧 가족 같이 되어 버린 아달베르트에게 먼저 포크를 내밀 것인가.

 

좀 더 고차원적 해석을 더해 보자면, 욕조에 갇힌 채 명절 식탁에 오르길 기다리던 잉어 아달베르트는 독일/오스트리아의 선량한 민중들이 아니었을까. 게르만 민족을 패전의 수치와 무지막지한 실업, 살인적 인플레이션에서 구할 민족의 지도자로 착각하고 칭송했던 독재자는 레벤스라움을 위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그들에게 파멸적 재난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순간의 판단착오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잉어>에서 뭐랄까 어떤 유쾌함을 기대했건만, 저자 비키 바움은 왠지 독자들에게 쓴맛을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리얼리티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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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8-24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눈길이 머물렀던 소설의 글을 읽고나니 더 관심이 가네요.

레삭매냐 2024-08-24 23:03   좋아요 2 | URL
흄세의 식욕과 만찬 키워드 픽업
이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4-08-25 10: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흄세 시리즈는 책 표지가 참 예뻐요. 근데 읽어본 책은 한 권도 없네요. 조르주 상드 책 표지가 너무 예뻐 사서 책장에 그림처럼 세워놨는데 볼때마다 좋습니다.

레삭매냐 2024-08-25 23:38   좋아요 3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흄세 시리즈의 표지는 가히 판타스틱
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드의 책은 예술이네요.

전 개인적으로 <폴과 비르지니>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레이스 2024-08-27 16: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뭔가 있을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네요.
흄세시리즈는 안사봤는데, 한권 사면 다 사서 꽂아놓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 그런 책일듯요
하지만, 그래도 요 책은 사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4-08-28 09:19   좋아요 3 | URL
세문 시리즈가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클만 하더라도, 나중에라도
사서 읽어야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다 절판되어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다른 버전으로
나오고 있긴 하지만요.

얇은 소설집이라 금방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