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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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왜 주인공의 이름이 프란체스코였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시시 출신의 가난한 자들의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프란체스카라고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니, 주인공의 젠더는 여성이지만 그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또 다른 까칠한 성격의 주인공은 남성이 아니었던가. 조금 이해가 되는 명명이었다.

책의 표지를 보면, <내 안의 특별한 악마> 옆에 달린 부제로 “PASS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수줍게 달라붙어 있다. 이 단어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열정’이라는 뜻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자, 그럼 이제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열정과 수난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주인공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왼쪽 팔뚝에 종기가 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종기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사람의 낯짝을 닮은 종기(인면창이라고 불린다)는 원래 자리에서 프란체스코의 은밀한 곳으로 위치이동을 해서 그녀와 수년간에 걸친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만이면 좋다, 도저히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프란체스코에게 온갖 폭언에 독설을 퍼붓는다. 그럼 이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프란체스코의 대처방식은? 그녀가 이름 붙인 이 인면창인 고가 씨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고 사실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녀는 고가 씨의 말에 수긍을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독특한 발상을 착안한 작가 히메노 가오루코는 <내 안의 특별한 악마>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소녀의 기도”, “세레나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리고 “백조의 호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피아노 소품들을 제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녀가 독설가 고가 씨의 입을 빌려 내뱉은 이야기들은 모두 섹스와 관련된 말들뿐이다. 그녀에게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남녀 간의 관계는 바로 그 섹스로 귀결이 된다. 선남선녀가 만나서 무슨 짓거리를 하던 간에 마지막 종착지는 빤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뻔뻔한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갯짓으로 상념들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자신의 연애사는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프란체스코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개조해서 치바 최고의 러브호텔로 만들어서 청춘남녀들에게 제공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이 참 재밌었다.

그리고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이미지는 작년 여름에 아주 재밌게 봤었던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호타루의 빛>에 나오는 여주인공 ‘건어물녀’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연애는커녕 에로에는 젬병인 주인공, 그 주인공을 계몽하는 역할을 맡은 고가 씨와 부쬬(부장)의 그것 또한 거의 유사했다.

어쨌든 <내 안의 특별한 악마>는 재밌다. 다만 지난 천년에 나온 책이 우리에게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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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고라 -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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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주제로 다룬 책들 가운데, 흔히 눈에 띄는 제목이 몇 개 있다. 경성과 조선이 바로 그 키워드이다. 이름 역시 조선조 왕들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이한 작가의 <조선 아고라>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화 이전의 왕정국가 조선과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으로 민회나 재판이 열리곤 했다는 아고라, 다시 말해서 의사소통의 장으로써의 개념이 만나 한 권의 책이 나왔다고 하니 호기심이 증폭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부제로 달린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이라는 타이틀은 나의 궁금증에 그야말로 타는 불길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이 책에서는 모두 다섯 개의 조선왕조를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들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개국 이래 한양(지금의 서울)으로의 천도 논쟁, 세종 조의 공법(조세제도) 논쟁과 현종 대의 벌어진 조선 최대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었던 두 차례의 예송논쟁 마지막으로 정조가 주도한 문체반정 논쟁이 그것이다.

모름지기 논쟁이라 하면 어느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눠지기 마련이다. 하늘 아래 사람들의 얼굴 모양만큼이나 각각의 생각들이 다른 만큼 한 가지 사안을 놓고 보는 시각도 그만큼 다르기 마련이다. 한 나라의 도읍을 정하는 논쟁이나 국가의 기틀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세제도를 세우는 논쟁에 있어서, 찬반논쟁은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두 개의 논쟁은 주도자이자 결정권자였던 태종과 세종의 성격 차이만큼이나 다른 진행양상을 보여 준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염원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모토대로 고려조의 수도였던 개경(오늘날의 개성)에서 한양으로의 천도는 500년 이상 한 국가의 수도였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인 만큼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아버지 이성계에 못지않게 뚝심이 있었던 태종 이방원은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반대하는 대신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천도를 강행한다. 의견은 듣되, 자신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과연 찬반논쟁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등장하는 세종 시절의 공법논쟁은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가 된다. 거의 대신들을 반협박하다시피 해서 진행시켰던 천도논쟁과는 달리 조선조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세종은 신하들의 의견에, 백성들의 의견까지 종합을 해서 기존의 손실답험법을 대신한 새로운 형태의 공법제도를 추진한다. 모든 반대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수렴해서 진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계속해서 흉년이 되면서, 공법제도의 형태는 갖추어졌지만 시행에 있어 적잖이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기도 했다. 결국 토지의 질과 풍흉에 따른 전분9등급제와 연분6등급제로 17년간의 긴 논쟁 끝에 공법제도가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토지제도로 정착이 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 국사 시간에 얼핏 들었던 조선 초기의 조세제도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전율을 느꼈다. 당시엔 무조건 외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젠 무얼 외우라고 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현종 치세의 예송논쟁이다. 조선시대의 고질로 인식이 된 붕당정치의 폐해, 다시 말해 당파싸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상례(喪禮)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효종이 승하하면서, 인조의 계비였던 장렬왕후가 기년복(1년 상복)을 입어야 할지 아니면 3년복을 입어야 할지에서 비롯된 논쟁의 중심에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서 있었다.

문제는 효종(봉림대군)이 인조의 적장자인 소현세자를 대신해서 왕위를 계승했다는 점이었다. 이상주의자이자 타협이라고는 몰랐던 성리학에 충실했던 송시열은 효종이 인조의 차자(둘째 아들)였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년설을 주장했다. 그 누가 뭐래도 타협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은 모두 송시열의 주장을 정설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허목이나 윤선도와 같은 인물들은 효종 정통설을 주장하며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상소로 인해 주류 서인들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단락되었던 예송논쟁은 15년 뒤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승하하면서 다시 촉발된다.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었던 현종은 서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신하들이 모두 기년복(1년)이 아닌 대공복(9개월)을 입어야 한다고 처음의 주장을 정정하자,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두 번째 예송논쟁을 격발시킨다. 예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유교국가 조선에서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와 절대군주였던 국왕의 첨예한 대립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논쟁은 정조 이산이 주도했던 문체반정논쟁이었는데, 상당한 관심을 끌면서도 이전에 소개된 논쟁들과는 달리 찬반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정통 보수주의자였던 “꼰대” 정조 자신의 개인적 취향이 많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소설체에 반해서 전래의 경학에 근거한 고전적 스타일로 돌아가자는 정조 임금 자신의 외로운 투쟁이었다.

저자 이한 씨는 친절하게도 각론에서부터 시작해서 각 논쟁마다 어떻게 해서 시작이 되었고, 주인공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으며 자세한 진행과정과 그 후기에 이르기까지 아주 멋진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특정한 문제에 있어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소통을 하고 보다 나은 방법에 도달할 수는 없는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봤다. 무릇 논쟁이라 하면, 그런 소통을 통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타협을 하고 가능한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역사 속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매도는 물론이거니와 인신공격과 악의적인 모함도 서슴지 않는 장면들이 보였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런 소모적인 모습들에서 오늘날 우리의 정치현실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자고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좋은 롤 모델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세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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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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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사놓고서도 한 동안 읽지 못한 채 나의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책을 손에 집어 올리는 순간 레오와 에미가 글로 빚어내는 사랑과 질투, 시기, 증오 그리고 의심으로 복합된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렇다, 잡지 구독을 끊기 위해 레오 라이케에게 에미가 보낸 이메일이 계기가 되어 그 둘은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언제나 모든 사랑의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관계의 발단이 된다. 레오는 언어심리학자고, 에미는 웹디자이너란다. 직업 따위가 무엇이 중요한가. 그 둘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위태롭게 지속되는 이메일을 통해 쉴 새 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레오는 최근의 전 애인이 되어 버린 마를레네와의 관계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 유부녀인 에미는 ‘완벽한 가정생활’ 가운데서도 그녀만의 ‘외부세계’를 원한다. 그렇게 그 둘은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조심스런 탐색전에 나선다. 온라인을 통한 익명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단계가 있다. 그건 바로 직접적인 대면.

레오보다 에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제로 만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한편, 옛 연인에게 버림 받은 레오는 새로운 현실세계에서의 관계 대신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외부세계’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화성에서 온 여자는 현실을 원하고, 금성에서 온 남자는 자신만의 환상만을 원한다. 에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이 두 명의 환상적인 메일 파트너들은 글로 만든 유토피아 속에서 어떠한 구속 없이 자유롭게 유영한다.

독일 출신의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는 현실세계에서 누구나에게 일어날 법한 일을 가지고 이메일 대화체를 이용해서, 멋진 판타지를 구축해냈다.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레오와 에미의 대화들은 어쩔 때는 초단위로 또 어쩔 때는 며칠씩 걸리는 상호작용을 거쳐 서로에 대한 감정들을 점증시킨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들은 불가피하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거다.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다.

물론 몇 번이 아슬아슬한 만남의 위기들이 스쳐 가지만, 작가는 뻔뻔하게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곳곳에 멋진 부비트랩들을 설치해 두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미가 레오에게 자신의 본심과는 달리 소개시킨 미아다. 메일을 쓸 때나 혹은 쓰지 않을 때 그리고 모든 순간마다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만날 수가 없다. 아니 그 후의 결말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이기적인 사랑의 속성상, 상대방의 감정보다는 내가 만든 상대방에 대한 환상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이야기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조금은 급작스러운 결말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누구나 친밀한 소통을 원하면서도 타인과의 소통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 속에, 훅하고 입김으로 불어 버리면 날아가 버리고 말 것 같은 가냘픈 사이버 사랑의 칼날 같은 긴장감과 애절함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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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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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대해 마지않던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과 만나게 되는 기쁨을 바로 이 책 <임페리움>을 통해서 갖게 되었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가설 하에 썼던 <그들만의 조국>과 <이니그마> 혹은 <아크엔젤>과 같은 다른 여타의 작품들에서 팩션이라는 픽션 장르에 대한 심오한 내공을 보여 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로마 시대 그 중에서도 공화정 말기 격변의 시대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대개 공화정 말기를 배경으로 한 책들이 카이사르-폼페이우스 그리고 크라수스의 삼두를 주인공으로 다루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의 그늘에 있던 마르쿠스 툴리오 키케로를 로버트 해리스는 <임페리움>으로 시작되는 로마 3부작의 메인 캐릭터로 삼았다. 다른 삼두처럼 유서 깊은 귀족적 배경이나 혹은 최고의 군사적 위업 혹은 최고의 부를 가지지도 못한 지방 출신 기사 계급의 키케로가 성공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시기적절한 행운으로 로마 최고의 지위인 집정관(consul:콘술)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과정이 이 책을 통해 소개가 되고 있다.

국가로서 로마는 고대사회에서 제한된 민주주의 방식이긴 하지만 해마다 선거를 통해 국정을 운영할 두 명의 집정관과 그 휘하의 법무관들 그리고 다수의 공직에 봉사할 인재들을 선출해냈다. 게다가 드물게 법치주의 원칙을 적용시키며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왔다. 원로원 의원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에 의한 재판은 필연적으로 많은 수의 변호사들을 필요로 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그리스에 유학하면서 수사학과 웅변술을 마스터한 키케로가 정부가 개인에게 부여한 공적이며 정치적인 힘(임페리움)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 소설에서 키케로와 짝을 이뤄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실존했던 키케로의 가노(家奴)인 티로다. 티로는 그가 전래의 속기술을 체화시켜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자신만의 방법으로 키케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티로가 키케로와 상하관계에서 점차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인물로 진화되어 가는 과정을 알 수가 있다.

키케로는 시칠리아의 하급정무관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전직 시칠리아 총독이었던 가이우스 베레스의 재판을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던 원로 호르텐시우스를 상대로 해서 승리로 이끌어 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후에는 폼페이우스와의 정치적 결탁을 통해 조영관과 법무관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로마 중앙 정치무대에서 두각을 들어내기에 이른다. 집정관을 향한 그의 불타는 야망이 책의 2부 “집정관” 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로버트 해리스가 <임페리움>에서 채택한 팩션 장르는 실제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가 주류로 헸단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정적으로 그려져 왔던 키케로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로마 최고의 영웅으로 알고 있는 카이사르는 상대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역사학적 관점에서 볼 적에도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그동안 로마 당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패악한 황제로 그려졌던 제정 두 번째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나 도미티아누스와 같은 황제들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지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가 있겠다.

이 책을 보면서 재밌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어쩌면 그렇게 역사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반복될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당시 지중해를 휩쓸던 해적들이 로마의 외항인 오스티아를 습격하면서 시작된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결국 폼페이우스가 비상대권을 얻게 되고, 국가의 정상적인 법치 위에 초법적인 존재로서 군림하게 되는 과정은 9-11 이후, 공황 상태에 빠졌던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졌다. 또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서도,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되풀이되는 금품 관권선거 모습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로버트 해리스는 당시 로마시대의 풍습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철저한 고증을 통해 로마 공화정 당시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게다가 키케로의 개인 비서인 티로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개개의 주인공들과 상황에 대한 탁월한 묘사는 팩션과 픽션 사이의 간극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주인공 키케로는 정말 얽히고설킨 정치권력 세계에서 변변한 재산이나 혹은 신분상의 유리한 위치 없이 오로지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시기적절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서, 심지어는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정적과도 필요하다면 대국적인 견지에서 연합해야 한다는 정치적 도박사로서의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로버트 해리스는 모름지기 정치가란 어떠해야 한다는 정치가의 전형을 <임페리움>을 통해 유감없이 그려 내고 있다.

<임페리움>에 이어 계속해서 출간될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 시리즈 3부작에서 정치가로서 키케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 벌써부터 많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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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종교 문화
안점식 지음 / 죠이선교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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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이선교회에서 출간된 안점식 교수님이자 목사님의 <세계관 종교 문화>을 읽으면서, 현대 교계 지도자들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 책은 성경을 근본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만 유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들이 아닌 독자들에게 과연 텍스트로서의 성경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따로 진행되어져야할 것이다.

서론에서 저자는 행동양식, 가치체계 그리고 세계관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존재하는 실재를 보는 안경으로 세계관을 설명할 수가 있다. 세계관은 인구수만큼이나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세계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렌즈’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다. 모든 세계관은 문화 속에서 형성된다. 존재와 인식을 위한 도구로서 세계를 이해하는 틀로서의 철학, 행동강령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예배와 같은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 종교가 있다.

또한 궁극자(신),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계관들이 분류되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계몽주의와 진화론의 의거한 잘못된 낙관적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리주의와 실용주의 사상들은,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역사의 진보에 따른 이상사회의 도래를 예언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결국 실패할 수 없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의 샤리아에 의거한 원리주의와 유교사상의 성인과 철인에 의한 왕도정치 역시 인간성의 현 주소를 잘못 파악함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 사실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모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상황인 죽음과 고통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인간의 타락한 죄성으로 인한 인식 능력의 부재로 인해, 권력(힘)과 재물(물질)이 사회의 원동력이자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면서 성경에 근거한 성경적 세계관보다는 세속주의가 득세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게다가 맘몬(mammon)으로 대변되는 물질만능주의가 한국 사회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되면서, 기존의 기복적인 샤머니즘 사상들과 결합된 혼합주의는 성경적 세계관의 본질적 핵심에 저해요소로써 작용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아울러 유교적 전통으로 인한 수직적 권위주의와 성공만능주의에 대한 비판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이런 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십자가의 도를 다시 세울 것을 주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말씀한 복음에 근거해서 타락하기 전의 옛 자아를 되찾고, 진리검증의 단계를 거쳐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세우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세속화되어 십자가의 도에서 멀어진 한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읽고 행동강령으로 삼아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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