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5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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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 작가의 책은 이번 <미인도>가 처음이다. 나무옆의자 출판사에서 이번에 로맨스 소설, 장르 소설 부활의 신호탄으로 로망 컬렉션 시리즈로 5편의 소설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 다섯 번째 작품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국 문학의 위기 타령을 해대는데, 이렇게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 주는 작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학도 하나의 소비재라고 한다면, 독자라는 소비자가 작가들이 생산해 내는 책들을 꾸준히 읽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건 또다른 문제겠지만.

 

<미인도>를 처음 보면서, 미인 그림[畵]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미인들이 사는 섬[島]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인도> 바로 전에 읽은 <빨간구두당>처럼 기존 서사의 패러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시작된다. 황종민이라는 이름의 이십대 젊은이가 늙은이 모습을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그의 친구를 자처하는 또다른 늙은이가 단돈 4,000원이 없어 무전취식 대신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해장국집 주인장을 꼬신다. <미인도>의 화자는 박성우라는 이십대 남자로 자신을 대낮에 길에서 횡사한 황종민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시사철 봄날씨로 화창하고,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으며 여인들이 사는 환상의 섬을 다녀온 이들은 미인도라고 부른단다. 춘화를 수집하는 어느 노교수의 집을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한 내력으로부터 시작해서(이것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다), 어느 날 스키장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임사체험을 하다 깨어 보니 미인도에 도착해 있더라는 말이다. 현실계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솜씨가 아주 그럴싸하다.

 

전술한 대로, 미인도는 사시사철 날이 좋고 무릉도원 같은 곳인데다가 여인들이 사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현실세계를 택하는 남자들이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승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까. 작가는 소설의 갈등요소로 남녀 간의 치정을 부각시킨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미인도를 지배하는 구질서의 주인공 수영 아씨와 그녀의 권력에 도전하는 가희와 그녀의 추종자들 간의 권력 다툼 정도로 해둘까. 기묘한 점으로는 힘이 드는 허드렛일을 하는 남자 소경들이 있다는 점과 숲에 사는 할망구라 불리는 나이든 사람들이 있다는 점 정도라고나 할까. 다른 남자들 서넛 있지만, 여인네들과 지내는 낙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성우는 자신의 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이 섬에 사는 월화라고 생각하고 정념을 불태운다. 문제는 그녀를 선점한 현세의 친구 황종민이라는 존재다. 월화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수영 아씨의 권위에 도전하는 가희와 연합전선을 펴는 성우, 필연적으로 섬의 질서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미인도에 성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네들은 기존의 질서대로 잘 살았을까? 기존의 질서는 모름지기 시대가 바뀌면 전복되기 마련이 아닌가. 소설이 그리는 삶의 진실은 손에 닿을 듯 말듯 긴장을 고조시킨다. 물론 대단원에 가서는 모든 해답이 드러나게 되어 있지만.

 

무릉도원에 가서 며칠 보내다 현실 세계에 왔더니, 수십 년이 지났다는 서사의 기본 얼개는 여전히 유효하다. 순간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라는 경고일까.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다. 그런 고지식한 충고보다는 펄펄 뛰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에 대한 전아리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이야기들의 아귀를 척척 맞아 떨어지게 그렇게 설계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 <미인도>는 그렇게 내게 어느 가을날의 추억으로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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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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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병모 작가의 이름만 보고 그가 남자라고 생각했다. 무슨 상관이랴, 책 쓰는 데 있어 남자 작가인지 아니면 여자 작가인지. 사실 이번에 어디서 들어본 서사 혹은 동화들을 다룬 소설집을 구병모 작가가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적잖은 걱정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꼽으려 했던 최제훈 작가가 <나비잠>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구병모 작가의 신작을 게걸스럽게 읽으면서 든 생각은 판단유보라고나 할까.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이야기는 <카이사르의 순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유명한 성경구절을 필두로 삼은 이야기는 엄청나게 큰 순무를 경작하게 된 농부의 이야기다. 그냥 순무라면 아무 이상이 없겠지만,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은근한 응징의 서사가 숨어 있다. 고래로 모든 터부와 약속들은 깨지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깨지지 않은 터부와 약속은 서사의 기본 구조에 역행한다고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해서 얻은 순무를 황제에게 공납할 세금 대신 퉁치려는 얄팍한 수를 부렸던 농부 일가의 비극은 정체불명의 거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순간부터 잉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덧붙여서 남동생을 버린 소녀의 행위 역시 독자의 양심을 건드린다. 살기 위해 정신없이 숲으로(여기서 숲이란 무언가 상실하기 위한 아주 적절한 장소로 등장한다) 도망치는 도중에 동생의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마을에 도착한 소녀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아무도 예언을 듣지 않았던 카산드라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소녀의 예시를 듣지 않은 소녀 부모들 역시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구병모 작가가 풀어 놓은 동화 혹은 서사 비틀기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교하게 붙어 있기도 하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의 현대판 자본주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갑소녀전>을 보자.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좇아, 그리고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거리에서 죽은 시신에서 신발을 벗겨내어 신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에 놓인 화갑소녀는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화광 공장을 찾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화광 공장은 확실히 안락하지만, 서서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할 정도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전자회사의 반도체공장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가. 사람이 공장에서 사용되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판타지는 어쩌면 그렇게 현실을 닮았는지. 모두가 생존을 위한 재화를 획득하고 소모하기 위해(소모의 악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지만, 코너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의 법칙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직진할 따름이라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왜 여성은 자존감을 가지고, 존재에 대해 물으면 안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도발적인 대답이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에 들어 있다. 시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의 기본이 아닌가. 남녀 동등한 권리가 보장된 21세기라고 하지만, 사회의 여전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집안일을 배워 장차 참한 신부가 되라는 전래의 위선적 정언명령을 전면으로 거부한 농부의 딸이자 현학가 엘제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남편이 촘촘히 짠 그물이다. 단순함과 현실안주를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런 복잡한 논쟁과 토론은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지만, 엘제의 논리는 명징하고 거부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그런 말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남편의 방법은 폭력적일 수밖에(그물씌우기) 없다. 비겁한 남편은 장인인 엘제의 아버지에게 받은 결혼지참금이라는 조건 때문에 엘제를 처가로 돌려보내는 것도 거부한다.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결혼지참금 때문에 이혼을 거부한 남편은 노동 대신 한 줄의 독서를 선택한 아내 엘제를 가혹하게 응징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엘제의 탈출 방법은 스스로 녹아 사라지는 것일 수밖에.

 

수상쩍은 풋내기 의사의 비밀을 다룬 <헤르메스의 붕대>는 또 어떠한가. 어디서 본 듯한 서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일단 이 서사에서 기본 갈등은 마을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토박이 의사와 도시에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젊은 의사 혹은 수련의의 갈등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잘 나가던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촉망 받던 대학생활을 접고, 나무꾼 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다시 일어서서 의과 대학을 다니던 젊은이가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마을을 찾는다는 설정부터가 알력과 갈등을 예고한다. 의외에도 이 젊은이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에 기득권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장한 늙은 의사는 위기를 느낀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구조다. 그렇다면, 늙은 의사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 모두가 칭송해 마지않는 젊은 의사의 뛰어난 의술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로 서사는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젊은 의사가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제목인 상징하는 의술의 신 헤르메스가 준 더럽고 낡은 붕대가 바로 비밀이다. 대부분의 서사 구조에 등장하는 의외의 횡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는 주인공과 달리, 젊은 의사는 점진적으로 자신이 얻은 횡재를 사용하는 현명함을 보여준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그의 평생을 책임져줄 비법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덕분에 아니면 늙은 의사의 부질없는 오지랖 때문에 모든 것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과연 마을을 떠난 그 젊은 의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병모 작가가 다룬 8편의 판타지는 모티프로 삼은 기존의 동화와는 확실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현실과 판타지의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며, 짜내린 이야기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무의식이 의식의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구병모 작가 이야기의 행간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롯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이야기는 조각에 불과하겠지 아마. 글쓰기가 작가의 몫이라면, 행간을 읽어내는 건 언제나 그렇듯 독자의 몫이겠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12일~13일 오전 1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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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4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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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서경식 선생이 발표한 책에 실린 탓이다. 물론, 서경식 선생의 책은 읽어 보진 못했지만 그런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독서열을 불태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헌책방을 수소문해서 2007년에 초판으로 나온 책을 구해 읽었는데 역시나 기대이상이었다. 이 책은 1938년에 나온 프랑스 번역판을 저본으로 했다고 하는데,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삶 역시 소설에 등장한 만주 호랑이 ‘위대한 왕’만큼이나 파란만장하지 않았나 싶다.

 

러시아 제국 군인으로 출발해서, 만주 일대에 근무하는 동안 아마 저자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만주 호랑이(혹은 한국 호랑이)를 비롯한 만주와 아무르 일대의 동물들을 관찰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38점의 삽화나 소설에 기술된 세세한 부분들은 작가의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생생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동전과 탄피를 이용한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대신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쓰기 위한 자전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여느 인간이 등장하는 성장 소설에 나오는 피조물들이 그렇듯, <위대한 왕>의 주인공 왕 역시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태고적 원시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타투딩즈 숲에 새끼를 밴 어미 호랑이가 등장한다. 맹수들의 밤에 짝짓기를 한 어미 호랑이는 새끼를 낳기 위해 바위굴을 샅샅이 조사하고 가장 안전한 서식지를 골라 왕과 여동생을 낳는데 성공한다. 한 순간의 방심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미 호랑이는 잘 알고 있다.

 

어미 호랑이가 타이가에서 사는 방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은 태초 이래 원시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늑대가 숲을 울창하게 만든다는 글을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났다. 사람들은 포악한 늑대 무리가 인간과 숲에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사냥을 해서 늑대의 개체수를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에코 시스템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늑대가 사라지자 사슴을 비롯한 초식동물들이 급작스럽게 증가하면서 개울과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없어지자 숲이 파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주 타이가에 사는 최고의 포식자 호랑이도 아마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린 왕은 어미가 가르쳐 주는 대로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점차 장차 타이가의 군주가 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비단 주인공 호랑이에게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역시 타이가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검은담비와 하렘을 이끄는 늙은 사슴을 비롯해서, 모든 포식자들이 노리는 멧돼지 무리의 리더 ‘갈라진 귀’도 빼놓지 않고 차분하게 기술한다. 특히 멧돼지고기야말로 포식자의 별미라고 했던가. 누구나 좋아하는 먹잇감이 되어 잠시도 쉴 새 없이 이동해야 하는 피식자의 가련한 운명을 대표하는 선수로 당당하게 한몫을 차지한다. 물론, 작가의 관찰에는 인간의 무리도 빠질 수 없다. 훗날 왕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게 되는 타이가의 모피사냥꾼 인간들에게 왕은 그들을 수호하는 정령으로까지 받들어진다. 작가가 조심스럽게 배치한 타이가의 모든 법칙을 수용하는 퉁리 노인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본 서구인의 시선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반대로 왕/자연을 단순한 사냥감으로 보고 도전한 무분별한 러시아 군인들의 최후는 그렇기 때문에 더 비참하게 다가왔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타이가에서 가장 사나운 맹수인 왕과 곰의 사투가 아니었을까.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최근 인간세계에서 유행인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세밀하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왕과 곰의 사투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깊은 타이가 숲의 침묵 속에는 그렇게 삶과 죽음이 오가는 치열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수다쟁이 까치와 어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물어 나르며 숲의 곳곳에 정보를 전달한다. 한편, 왕이 처음으로 만나 짝짓기를 한 아무르 암호랑이의 비참한 죽음은 온갖 자원이 넘쳐흐르는 만주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한 러시아와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치열한 각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진장으로 펼쳐진 산림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철도가 놓여지고,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숲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숲에 평화롭게 지내던 동물들 역시 보금자리를 잃고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을 맞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총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없다면 자신의 안위조차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인간들이 어느새 무리를 지어, 왕에게 대항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유사 이래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퉁리 영감 같이 왕을 존경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인간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편리를 위해 개발해야 한다는 사고에 젖어 어쩌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멸망으로 인도할 지도 모르는 길에 들어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념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쫓아다녔다.

 

걸출한 호랑이 왕의 모험담으로 가득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고, 19세기말 제국주의 각축전으로 축약판으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자연의 경고로 접해도 좋을 <위대한 왕>을 읽으면서 오래전 이방인으로 눈으로 본 만주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착시에 빠지기도 했다. 간만에 느낀 강렬한 독서 체험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5일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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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코페르니쿠스 - 뿔 모던클래식 6
존 반빌 지음, 조성숙 옮김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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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룻만에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의 고전>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을
단박에 읽어 버렸다.

그리고 아울러 같은 램프의 요정 오프라인 부천점에서
구매한 존 반빌의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무심결에 잡
아 들었는데, 이 책 너무 재밌다. 아쉽게도 존 반빌의
책 두 권 모두 품절/절판의 운명인지라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사실 <닥터 코페르니쿠스>는 지난 번에 도서관에서 빌
리긴 했지만, 펴보지도 못하고 반납했었다. 그런데 며
칠 전에 산(어떤 책들은 꼭 그렇게 사야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책은 일단 한 번 가속이 붙기 시작하니
손에서 뗄 수가 없구나 그래.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존 반빌이라는 아일랜드는 어떻게 이렇게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거의 펴보지도 않은 새책에 가까운 수준이라 더 놀랍
다. 아마 책의 가치를 제대로 못 본 이가 판 걸까.
그나저나 웅진 뿔에서는 왜 근간이라고만 하고 존 반
빌의 다른 작품인 <케플러>와 <뉴턴 레터>를 내지 않
았을까, 아쉽다.



내일 모레 출발하는 늦은 여름휴가 때, 이 책을 다 읽
고 나면 그의 부커상 수상작인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를 데려갈 생각이다. 깊어가는 가을, 읽을 책들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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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셀프 포트레이트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외 글,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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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진을 찍는가? 특정한 시점의 기록을 위해 혹은 과거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재미로? 오래 전에 사진 찍기를 즐겼다. 그저 사진 찍기만 하고 현상과 인화는 디피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하는 법까지 배우고 나니 사진 찍기가 또 다르게 다가왔다. 로버트 카파처럼 결정적 순간을 담을 시간과 공간에 가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저 선인들이 남긴 결정적 순간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사진 찍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찍기 이유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미국 출신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대량의 미현상 롤필름들이 발견되면서, 그녀의 사진들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말루프가 그녀의 미현상 필름들을 사들이면서 세상에 그녀가 남긴 사진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현상하지 못한 네거티브들이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오랫 동안 현상을 하지 않아도 사진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날로그 시대의 필름들을 하나하나 현상하고 인화해서 다시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 아날로그 필름의 아우라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지도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이번에 윌북에서 출간된 <비비안 마이어 셀프포트레이트>는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말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진들은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비비안 마이어 자신을 피사체로 삼아, 그녀가 아끼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왠지 그녀의 셀프포트레이트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없고, 뚱한 표정이다. 어떤 사진들은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것도 있다. 후대에 존 말루프가 아니었다면, 비비안 마이어가 사후에 지금 세간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의 입소문을 탈 수 있었을까. 전설은 당대에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세대를 건너 뛰어 창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비비안 마이어의 케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거시사가 유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미시사가 역사 서술 분야에서 대유행인 것처럼, 예전에는 결정적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야말로 좋은 사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에 담긴 정보들을 보노라면 소소하지만 일상의 풍경을 담은 그녀의 사진 속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때때로 장소 불명, 시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도 많이 있지만 시카고와 뉴욕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당대의 찰나들을 매혹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로 그 지점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에 롤을 말고 바닷가에서 선탠을 하는 어느 여성의 사진, 자동차 윈도우가 올라가고 있는데 그 사이로 코가 꿰어서 더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연출된 고양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보니 고양이가 코가 꿴 자동차 유리창에도 비비안 마이어의 반사된 모습이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사진첩을 넘겼는데 다시 보니, 편집자의 그런 묘수가 숨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모든 공간이 그리고 순간들이 포획의 대상이었나 보다. 코믹 북스토어의 거울에서도(요즘은 가게마다 사진 찍지 마시오 정책이 일반화되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전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 놓인 재떨이의 둥근 부분도 모두모두 그녀에겐 좋은 피사체였다. 요즘처럼 자동초점 카메라로 순간 포착이 쉽지 않았을 텐데 비비안 마이어는 용케도 그런 순간들을 잘도 짚어냈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사진에 담긴 "Here's a real eye opener"란 표현이야말로 다시 재평가를 받게된 비비안 마이어 작품에 대한 편집자 존 말루프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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