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무의도에 다녀왔다.

작년엔가 무의대교가 생긴 다음에 한 번 갔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체증과 협소한 주차장 때문에 엄청 고생한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적한 평일을 이용해서 다녀왔다.

사실 목적지는 원래 마시안이었으나, 가는 길에 무의도 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 보이기에 바로 고고씽.

 

그리고 내비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덕분에 잠시 삼천포로.

목적지는 하나개 해수욕장.

 

여전히 여기저기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 도로공사가 완성되면 들어가는 길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여전히 흙먼지 풀풀 날리며 차를 달렸다.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잠시 속도를 줄이는 건 센스.

 

예전에 주차장이 있던 곳은 공사 중이었다. 안쪽에 있는 주차장에 가니 차들이 그닥 많지 않아서 비교적 편리하게 주차 성공.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바닷가로 향하는데, 텐트며 돗자리는 안된다고 한다. 평소에 텐트 치면 하루에 만원이라고. 낙후된 방갈로 공사도 한창이었다. 화장실도 새로 만들어진 것 같고. 곳곳에 돗자리를 편 사람들은 있어서 우리도 돗자리만 깔고 허겁지겁 사온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바닷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쓰레기 수거함은 정말 요긴했다. 하긴 경포대에도 그렇게 쓰레기통들이 많은데 닝겡들은 싹 무시하고 모랫 속에 파 묻곤 했었지.

 

남은 컵라면 찌꺼기를 벽돌 위에 올려 놓으니, 바닷가의 난폭자 갈매기들이 달려 들어서 모조리 처리해 주었다. , 고맙기도 하여라. 옆 자리에서는 아예 노래방용 대형 새우깡 봉지를 들고 와서 갈매기들에게 풀어 주었다. 우리도 고깔콘과 초코칩 쿠키로 갈매기들에게 플렉스해주었다.

 

자 이제 모종삽을 들고 해루질 고고씽. 사실 바닷가에 가면 이 재미로 가는 게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궁평항과 달리 하나개 해수욕장은 모래뻘이라 단단하고 발도 쑥쑥 빠지지 않는다. 바람이 좀 차서 그런지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난번 궁평에 갔을 적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밤게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새로 본 종은 바로 우렁이, 아니 골뱅이였다. 녀석들이 모래 위를 유유자적하게 거닐고 있었다. 좀 쬐만한데 이 녀석들이 크면 우리의 술안줏감이 되는 덩치 큰 녀석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물이 들어오는 바닷가 저 멀리까지 나갔더라.

 

해가 좋아서 그런지 얼굴이며 팔 다리가 온통 쌔까맣게 탔다. 잡은 녀석들은 오기 전에 모두 다시 방생해 주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멀리까지 나가셔서 우렁이들을 제법 많이 생포하셨더라. , 꼬맹이 소라도 하나 잡았구나. 게들은 돌 틈에 숨이 있었다. 그 녀석들도 몇 마리 생포했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정비도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몽둥이로 얻어 맞은 것처럼 피곤했다.

 


[뱀다리] 돌아오는 길에 무의도 초입 교차로에 있는 카페뮈에서 아이스 라떼(단가 6,000)를 한 잔 사서 흡입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원두가 좋은 것인지 최고였다. 그래서 또 즐거웠다. 나이스 설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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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4 09: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의도도 다리가 연결되었나 보네요. 한번 가보고 싶네요 ~~ 마시안 해변도 좋던데 ㅋ

레삭매냐 2021-05-04 10:13   좋아요 3 | URL
무의대교가 2019년 4월 30일에
개통되었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배로만 들어갈 수가 있었대요.

제가 두 곳 다 가보니, 마시안보다
무의도 하나개가 더 좋았습니다.

미미 2021-05-04 10: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진 예뻐요!! 대야 컬러도 바다색ㅋㅋ날 좋은 때 잘 다녀오셨네요~흐린 날이라 더 보기 좋아요! 😊

레삭매냐 2021-05-04 10:13   좋아요 3 | URL
바다 사진도 좀 찍었어야 했는데
제 핸드폰 카메라가 거의 망가져서
리...

어제는 쨍쨍 오늘 비가 좍좍 허 참.

mini74 2021-05-04 10: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맑고 예뻐라 하면서 사진도 보고 글도 읽고. 그리고 커피 물 올리러 갑니다. 마지막 사진보며 그래 커피!!! 무의도. 하나 알아갑니다 *^^*

레삭매냐 2021-05-04 10:14   좋아요 4 | URL
어제는 날이 한 몫했답니다.

날 좋을 때 바닷가는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커피도 단가가 좀 있긴 했지만
최근에 마셔본 커피 중에 단연
쵝오! 다시 마시고 싶을 정도예요.

페넬로페 2021-05-04 10: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평일에 가는 여행이 최고인 것 같아요.
차 밀리지 않고 한적하고^^
무의도는 가보지 않았는데~~
궁평항이 반갑네요~~
몇년 전.전 가족이 모여 그곳으로 놀러갔었거든요**
저도 빨리 커피 마셔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5-04 10:29   좋아요 3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차 막히는 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첨에 무의도 갔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궁평항은 집에서 가차워서 자주
간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수도권 차박의 성지라고 하더라구요.
그나저나 주차장이나 좀 멋들어지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오는 날엔 역시 커피죠.

coolcat329 2021-05-04 1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어제 다녀오셨군요. 어제 정말 날씨 짱이었습니다. 사진도 예쁘고, 커피가 비싼데 맛은 좋나보군요. 평일에 가야하는군요.ㅠㅠ

레삭매냐 2021-05-04 11:36   좋아요 3 | URL
네 반다시 평일에 가셔야 합니다.

인천시 공식 리포트에 의하면
주말에는 입도 차량이 평일에
비해 1.4배가 늘어 난다고 하
네요. 지옥이 연출되지요...
현재 난장판인 도로 공사는
2024년인가 완성 예정이라는 쿨럭...

섬이 좁아서 감당이 되지 않는
그런 차량수이지요.
 



지난달에는 모두 15권의 책들과 만났다.

물론 읽다가 만 책들도 제법 된다. <블러드랜드>는 리뷰대회 참전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당연히 리뷰대회도 참전하지 못했다.

가뿐하게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더라.

 

, 부수적인 수입으로는 바실리 그로스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삼십 년 전에 나온 <코미짜르>를 구해서 읽었다. 대단했다. 부디 <삶과 운명>이 번역되길.

 

4월에는 아민 말루프의 책들을 세 권을 읽었다. 공쿠르상에 빛나는 <타니오스의 바위>가 그의 대표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사마르칸드>도 좋았던 것으로.

 

제발트의 책을 읽다가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거 트라우마가 보통이 아니다. 발저의 책들이 난해하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더라.

 

그동안 벼르던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도 책바다로 대여해서 읽었다. 어제는 디노 부차티의 다른 책이 있다는 정보를 키루스 브로를 통해 듣고 다시 책바다에 신청해 두었다. 공공도서관에는 거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대학도서관에 요청을 했다. 수원대-아주대-인하대 순서로 일단 잡아 두었다.

 

독서기록장에 오래된 책은 아예 검색 및 기입할 수가 없어서 <파키스탄 행 열차><코미짜르>는 직접 스캔한 책표지들을 줄여서 욱여 넣었다.

 

뭐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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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02 01: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매니악한 책읽기란거 아시죠? ㅎㅎ
여기 알라디너 분들이 대체로 베스트셀러 이런것과 관계없이 읽으시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레샥메냐님 거의 최고수준입니다. 덕분에 훌륭한 작가들을 더 많이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에요. ^^

레삭매냐 2021-05-02 08:47   좋아요 3 | URL
오오, 지난 달에 만난 <마니>가
maniac 의 원조라고 하더라구요.
이것도 인연이네요 ㅋㅋㅋ

책을 만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관성 때문에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1-05-02 06: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돌이님 의견과 동감입니다. 책표지 줄여 우겨넣으시고~ㅋㅋ 👍

레삭매냐 2021-05-02 08:48   좋아요 3 | URL
예전에는 하나하나 다 그랬었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책기록 앱들이
생겨서 그렇게까지는 ㅋㅋ

두 개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새파랑 2021-05-02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최고수준 인정~~ !! 매번 레삭메냐님의 리뷰를 즐겁게 보는데 품절이거나 어려운 책들이어서 범접할 수 없는 ㅎㅎ 저도 언젠가는 이렇게 책을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02 08:51   좋아요 3 | URL
품절 절판 도서를 만나게 되면
왠지 도전의식이 마구 샘솟아
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는 옛날
책들은 모두 보존서고로 가던지
아니면 제적 처리하는 것 같더라구요.

범접할 수 없는 새파랑님의 독서에
늘 감탄하고 있답니다.

미미 2021-05-02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번 달도 기대됩니다! 저 어제 아민 말루프 의 책 한권 빌려왔음요.^^*
어떤 책인지는 읽어내면 공개할께요.ㅋㅋ
레삭매냐님 아니었음 알지 못했을 소설들, 특히 구하지 못한 책들도 알게된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워요! <코미짜르>재발간 되고 <삶과 운명>꼭 번역되어 나오길!!

레삭매냐 2021-05-02 14:46   좋아요 1 | URL
그거슨... <동방의 항구>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ㅋㅋ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그리고 <스탈린그라드>는 젭알
좀 출간해 주었으면 하는 격렬한
바람이 있습니다.

초딩 2021-05-02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달력은 북모리 쓰세요? 마땅한게 뭔지 찾다가 몰라서 유보해둔 상태에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02 14:48   좋아요 2 | URL
저는 잉크라는 앱 달력을 사용
한답니다.

램프의 요정 라이벌사의 앱이라
고 하는데... 나름 갠춘한 것 같
더라구요 :>

mini74 2021-05-02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석매냐님은 새로운 책을 찾는 보고? 저는 모르는 작가와 책들 소개 많이해 주시고 또 책 추천도 해주시고. 저도 항상 고맙습니다 ~

레삭매냐 2021-05-02 21:52   좋아요 0 | URL
언제나 세상은 참말로 넓고,
우리의 인식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숙연
해집니다.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티모시 스나이더의 <블러드랜드>를 통해 바실리 그로스만이라는 작가를 알게 됐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삶과 운명>은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아 정말 30년 전에 나온 그의 책인 <코미짜르>라는 책부터 먼저 만나 보게 됐다. 1990년대에 이미 바실리 그로스만의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번역은 예상했던 대로 발번역이었고, 오탈자의 수준은 심각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한글 번역으로 바실리 그로스만의 책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대만족했다.

 

1967년에 그로스만의 이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너튜브에서 검색해 보니 흑백영화로 1918-1922년 사이에 벌어진 러시아 적백내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너튜브로 러시아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감상이 가능하다. 이제 너튜브는 거의 전지전능한 어떤 것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의 주인공은 85KG의 냉철한 코미짜르, 그러니까 볼셰비키 인민위원 바빌로바다. 공간적 배경은 우크라이나다.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대항해서 일어난 백러시아 반군과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블러드랜드에서도 나치 독일과 사회주의 소련이 가장 치열하게 다툰 전장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와 지하자원 그리고 인민들이 지닌 생산력은 이데올로기 전쟁의 각축장인 셈이다.

 

가장 먼저 바빌로바가 한 일은 동네 생과부와 눈이 맞아 탈영한 혁명 영웅 예펠린을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즉결 처형한 것이다. 코미짜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온갖 속박으로부터 인민들을 해방시키는 혁명이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서사부터 바빌로바는 역설적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이제 곧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라는 사실이다. 처음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코미짜르 동무는 아이를 지우기 위해 별 짓을 다해 봤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이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바빌로바의 상관들은 그녀의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그녀를 베르디비치(그로스만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을에 사는 유대인 예핌 가정에 보내 몸을 풀게 한다. 문제는 양철공 예핌네 집에 방이 달랑 하나 있고, 또 아이들이 무려 6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코미짜르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방을 징발해서 코미짜르가 머물게 한다. 물론 보다 부유하고 여유 있는 집에 바빌로바를 머물게 할 수도 있었지만, 보안유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덜 가는 예핌네 집이 선택된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코미짜르와의 동거는 재앙이었다.

 

나머지 서사는 피도 눈물도 없던 코미짜르가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의 존중함을 깨닫고, 혁명 대의 아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던 밑바닥 인민들의 삶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설정으로 구성된다. 사실 이 부분은 좀 신파조의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치열한 적백내전과 볼셰비키 혁명을 막기 위해 간섭에 나선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소련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과정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스탈린 집권 시기에 의식해서인지 레닌과 스탈린 못지않게 볼셰비키 혁명 와중에서 큰 공을 세운 트로츠키에 대해 악평을 서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혁명사에 대해 아는 바가 일천한 지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장한 예언자라는 별명으로 불린 레온 트로츠키가 내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체제 친화적 작가에게 이렇게 폄하를 당해도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역시 러시아 혁명사에 대한 공부를 좀 해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너튜브의 도움을 좀 받아야지 싶다.

 

훗날 소련을 침공했던 나치 독일에 대한 증오 때문에 적백내전 당시에는 아직 일렀던 히틀러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내전 초기에 코사크 부르주아지를 중심으로 한 백러시아군의 반격이 매서웠던 모양이다. 아이의 아버지인 키릴도 결국 그들과의 전투 중에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 신무기에 풍족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백러시아군은 볼셰비키 붉은 군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소설에서도 패배를 거듭한 바빌로바 부대는 결국 베르디비치를 백군에게 내주고 전술상 퇴각을 해야만 했다.

 

바빌로바는 결국 갓난쟁이를 예핌과 마리아 가족에게 맡기도 절망적 전투에 나서야했다. 바빌로바가 느끼던 내적 갈등은 귀대명령을 받고 떠나야 하는 시점에서 정점을 찍는다. 투철한 혁명전사로서의 아우라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아들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성애가 그야말로 폭발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바실리 그로스만이 치밀하게 설계한 설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소비에트 문학의 정수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소설의 곁가지를 장식하는 프리스토냐와 나탈리아의 로맨스 역시 덧없게 느껴진다. 프리스토나야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나탈리아는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의 포로가 되어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된다. 자신에게 신세계를 약속한 프리스토냐는 징병되어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홀로 남은 나탈리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지극히 협소했다. 결국 비장하게 자결하는 나탈리아. 그녀 또한 혁명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전장에서 전사한 바빌로바의 아들은 예핌과 마리아의 자식으로 유대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코미짜르에게 혁명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든 유대인 예핌은 혁명이 러시아의 유대인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약속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천시 그리고 푸대접은 사라지지 않았노라고 강변한다. 전장으로 출발을 앞둔 코미짜르는 진실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예핌과 논쟁에 나서지만,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모두 죽고 난 다음에, 혁명의 과실이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면 지금의 투쟁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에 바빌로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바실리 그로스만은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 <코미짜르>의 엔딩은 다가올 비극의 전조처럼 각인되면서 끝을 맺는다. 전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바빌로바의 눈에 가스실로 향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면 아마 그 즈음에 성인이 된 바빌로바의 아들 역시 다른 유대인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다는 암시일까.

 

편역되어 소개된 <코미짜르>는 마치 연극 무대에 올릴 한편의 희곡을 보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앞뒤 표지에 실린 각각의 사진 역시 1967년 작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소품 스타일의 <코미짜르>만으로는 아무래도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을 가늠할 수 없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뱀다리1] 노토전쟁이 무언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러시아-오스만터키 전쟁의 한자식 표기였다.

[뱀다리2] 소설의 말미에 오스만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뱀다리3] 원래 이 리뷰는 북리뷰에 실으려고 했으나, 알라딘에서 팔지 않는 책이라고 해서 그러니까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록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페이퍼로 옮기게 되었다. 알라딘은 모든 책을 커버한다, 단 자신들이 파는 책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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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27 11: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어떻게 구하셨나요? 헌책방?

레삭매냐 2021-04-27 13:03   좋아요 3 | URL
넵 맞삽니다. 서울책보고 공씨책방에서 주문
해서 읽었습니다.

30년 전 번역이라 아주. ‘허지만‘이 웬 말입
니까 그래.

미미 2021-04-27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알라딘 관계자가 보고 또 출판사 관계자와 솰라솰라 하게되어 재출간 되길 바랍니다!! <삶과 운명>번역도요! 제발! <러시아의 역사>사놓고 방치?중인데 서둘러야겠어요.ㅠㅇㅠ너무모름🤔🧐

레삭매냐 2021-04-27 13:04   좋아요 1 | URL
이거이 편역이라 과연 제대로 번역
이 되었는 지도 궁금하더라구요.

바실리 그로스만이 헷갈렸는지 적백
내전기에 히틀러의 파시스트 타령도
나오고...

여튼 바실리 그로스만의 저작들이
하루빨리 번역되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원래는 이번 주에는 열심히 티모시 스나이더의 <블러드랜드>를 읽고 나서 나도 리뷰 대회에 참전하고자 했으나... 다 틀려 버렸다.

 

지난주에 인천에 갔다 오면서 데불고 온 책들에 그전에 도서관에서 <블러드랜드>와 같이 빌린 책들 그리고 <블러드랜드>를 통해 알게 된 바실리 그로스만의 편역책 <코미짜르> 마지막으로 앤터니 비버의 <아르덴 대공세 1944>에 빠져 <블러드랜드>는 결국 못 읽을 것 같다. 절망적이군 그래. 호기롭게 시작은 하였으나...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그린 이태리 작가 파올로 코시의 <메즈 예게른>을 근 1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을 읽었으니 리뷰도 써야 하는데... 어제 <사피엔스> 그래픽 노블 리뷰를 쓰고 진이 빠져서 일단 보류 중. 빨리 쓰지 않으면 결국 못 쓰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써둬야겠다 나의 기록을 위해서.

 

내가 애정하는 작가 마누엘 푸익의 몇 권 되지 않는 국내 출간도서 중의 하나인 <천사의 음부>는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첫 10권 중에 하나로 나온 책이다. 아마 그 시절에 사둔 것 같은데 여적 안 읽고 버티고 있었다, 놀랍군. 책이 다 바래졌더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절판이 되었다고. 그 책을 산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역시 나의 기대작은 바로 히틀러의 마지막 발악이었다는 <아르덴 대공세 1944>. 밀덕들의 추앙을 받는 앤터니 비버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책들은 비싸고, 그래서 바로 절판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을 적에 사두어야 한다. 냉큼 주문장을 날렸다.

 

소련이 혼자서 다 싸운 2차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달을 즈음, 영국과 미국은 결국 스탈린이 그렇게 목 놓아 외치던 제2전선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서부 유럽 해방에 나섰다. 일단 상륙작전은 성공했지만, 연합군의 진격을 지지부진했다. 아마 스탈린이 동부전선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궤멸시키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더 큰 위기에 봉착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말썽쟁이 조지 패튼이 이끄는 미 3군의 노도와 같은 진격이 시작되고, 팔레즈 포위전으로 서부 전선의 독일군들이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마침내 독일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보급이다. 파리를 필두로 해서 독일군의 점령 하에 있던 각지를 해방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진격에 꼭 필요한 연료와 방대한 양의 물자 부족은 연합군 진격에 큰 문제를 유발했다.

 

패튼의 전차부대와 몽고메리의 영국군 앞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라인 강 정도였다. 저자가 정치군인이라고 매도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전쟁의 승리보다는 그동안 유럽대륙에서 나치 독일에 홀로 맞서 싸운 영국군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아마 전후 유럽의 새로운 질서 개편에 있어 영국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동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후방의 든든한 보급과 물자수송을 위해 보다 안전한 항구 확보보다 오로지 진격 레이스에서 라이벌 패튼을 이기겠다는 오만에 가득했던 영국 육군 원수 몽고메리는 대담한 도박에 나서는데 그게 바로 노르망디 상륙 이래 놀고만 있던 연합군 1공수전단을 좀 써먹어야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마켓가든 작전>이었다. 영국의 붉은악마 1공수, 미국의 82공수 101공수사단을 동원해서 네덜란드로 향하는 일련의 다리들을 점령하고 영국 전차부대를 투입해서 전쟁을 194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내겠다는 몽고메리의 야심찬 계획을 정치군인 아이젠하워는 승인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연합군 공정부대들이 목표로 한 다리들이 너무 멀었다는 점이다. 영국군 전차부대가 중요 목표인 아른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려 104KM를 돌진해야했다. 게다가 연합군 정보부는 작전 목표 부근에서 휴식과 재정비하고 있던 독일 두 개의 SS기갑사단의 존재를 무시했다. 영국의 붉은 악마들은 악전고투 끝에 아른험 대교의 일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재정비를 마친 독일군 기갑사단들이 출동하면서 결국 전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몽고메리의 도박이었던 마켓가든 작전은 엄청난 사상자 수만 남기고 실패했다.

 

독일군은 비록 팔레즈 포위전에서 엄청난 수의 피해를 입긴 했지만, 연합군의 상륙예정지롳 예상했던 파드칼레를 지키던 15군이 성공적인 철수를 해서 네덜란드 방어에 나서고, 마켓가든 작전을 저지하면서 전선을 교착상태로 접어들었다. 한편, 연합군은 벨기에의 중요한 항구인 앤트워프를 장악하고, 독일군들이 항구를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기뢰나 갖가지 장애물들을 제거하면서 비로소 물자보급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다음 전투의 무대는 아헨이었다. 아헨이 갖는 정치적 중요성은 대단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헨이 독일 본토의 도시라는 이유에서였다. 히틀러 총통의 절대 사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예사단이라는 친위대 부대들이 앞 다투어 미군의 공세를 앞두고 동쪽으로 철수하는 장면은 베어마흐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여기까지 내가 읽은 것들을 정리해봤다.

 

앤터니 비버 작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팔레즈 포위전, 마켓가든 작전 그리고 아헨 전투와 휘트르겐 숲 전투까지 다룬 다음에 본격적인 아르덴 대공세 썰을 풀 모양이다. 서두가 길기도 하구나. 하긴 그런 전반적 상황들을 이해해야 어떻게 해서 히틀러가 마지막 도박에 나서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그나저나 앤터니 비버의 최신작이라는 <아른험>(2018)도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충성스러운 밀덕들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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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4-26 10: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매번 느끼는건데 어쩜 이리 레삭매냐님의 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신지~~
책에 대한 내용보다 오늘은 호모 북럽쿠스(제가 붙여봤어요 ㅎㅎ)에 대한 칭송입니다👍👍

레삭매냐 2021-04-26 11:1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호모 북럽쿠스 !!!

아마 요즘 낙을 붙일 곳이 책 밖에
없어서 더더욱 덕후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mini74 2021-04-26 1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예전에 다큐 본 기억이 나요. 레샥매냐님 글이 더 재미있어요 소련이 혼자서 다 싸운 ㅎㅎㅎ책이 많이 비싸보입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1-04-26 19:02   좋아요 3 | URL
2차세계대전 미군 사망자가 405,399명
인데 소련군 사망자 수는 적게 잡아도
8백 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밀리터리 관련 책들은 하나 같이 비싸더
라구요... 아마 소수의 밀덕들을 타겟으로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2021423일 불금 저녁, 만국의 책쟁이들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나에게 온 책은 바로 바실리 그로스만의 <코미짜르>라고 쓰고 <인민위원>이라고 읽는 바로 그 책이었다.

 

나는 <삶과 운명>을 기대하고 있건만, 그 책은 언제 번역돼서 국내에 출간될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만나야겠다 싶어, 서울책보고에 주문장을 날렸다. 그리고 오늘 도착했다.

 

책의 상태는 아주 메롱하다. 지난 번 아민 말루프의 <사마르칸드>의 상태에 만족해서 더 그런 걸까. 책은 갈색으로 변색되었고, 책의 겉투리도 아주 나달나달하구나. 아 슬프다.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코미짜르>199028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래서 이렇게 책의 상태가 후진 걸까? 출판사는 세진출판사, 단가는 2,800. 내가 산 가격은 라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돈 3,000원이니 정가보다 200원 비싸게 산 셈이다. , 배송료 3,000원을 잊어 버렸군.

 

선전은 볼셰비키의 나라답게 아주 자극적이고 선동이 넘쳐흐른다. 탄압과 수난의 작품이라니! 당장 집어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이 친구는 한 번 딱 읽고 나서 보내는 것으로. 아 고민이다. 일단 책의 컨텐츠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련다. 오늘은 전세계 만국 책쟁이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맹그는 바로 그 책의 날이 아니던가.

 

, 인천 집에 들러서 쟁여온 몇 권의 책들이 있는데 고 녀석들의 영롱한 자태도 공개해 보련다. 다만, 당장은 귀찮아서 추후에 보여 드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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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3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에 59000원 한 권 있네요. (쩝) 메롱이면 어떻습니까 득템하신거예요.
표지 글귀들 저도 매우 혹하네요!😳 도서관에 있어야 하는데..!!

레삭매냐 2021-04-24 09:32   좋아요 1 | URL
지금 한창 읽고 있는데, 편역이라고
하네요. 아니 정본도 아니고 편역이
라니오...

너무 오래 전 책이라 아마 도서관에
는 비치되어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21-04-23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4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4-23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 포스만 봐도 선배님격인 책인데 ˝메롱˝하다고 표현해주시니, 혼맥하다가 그 귀여운 표현에 웃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1-04-24 09:34   좋아요 3 | URL
어제 저녁으로 포장 족발을 사다
먹었는데 어찌나 비루가 생각나던
지요 ㅋㅋ

저희 동료는 제가 추천한 그롤쉬
비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하
더군요.

바람돌이 2021-04-24 00: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피에젖은 땅에 잠깐 소개됐던 책 같네요. 이런 책을 진짜 찾아내서 기어이 득템하시다니 정말로 책의 날 책쟁이 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상자는 당연히 레샥매냐님!!!

라로 2021-04-24 06:34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의견에 찬성!!! 알라디너들이라도 상을 드려야 할 듯요!!^^

레삭매냐 2021-04-24 09:35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피에 젖은 땅>은 못 다
읽고 결국 반납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블러드랜드의 개념과 바실리
그로스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부족
하지만 짧고 강렬했던 그런 독서였습
니다.

책쟁이의 날 상!!!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04-24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책의 날 기념 24시간 full 책읽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레삭매냐 2021-04-24 09:36   좋아요 2 | URL
책의 날 트웨니포 아워즈 릴레이
독서, 이런 거 하면 재밌을 것 같
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