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 《뉴욕타임스》신디케이트 기고 최신 칼럼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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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과 관련되어서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 있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납치된 비행기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열렬하게 환호해대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모습이 미국 전역의 텔레비전을 통해 끊임없이 방송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느 미국인이 분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건 언론이 아니라 이제는 기업화된 미디어의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파간다였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미디어가 어쩌면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장면만을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걸까. 바로 이 시각에서 노암 촘스키의 국가와 권력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된다.

언어학자로 출발을 해서 행동하는 미국의 양심의 상징이 된 80세 노구의 학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 전략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부시행정부의 명분 없는 혹은 조작된 아젠다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은 미국에서 제2의 베트남이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이 세계의 악으로 규정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후에도 그들의 사실상의 목표인 중동의 에너지 자원 다시 말해 석유를 장악해서 하루가 다르게 미국에 반항하는 그룹들의 목줄을 죄겠다는 것이 바로 이라크 침공의 본질임을 촘스키 선생은 역설하고 있다.

이미 투키디데스가 2000년 전에 말한 대로, 강대국들은 무엇이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약소국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추구하는 지향점인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라크 침공 결과, 그런 대량살상무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부시 행정부의 날조가 드러나게 되자 이번에는 그 방향을 바꿔서 자신들이 지원하고 만들어낸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 민중을 구하고 아랍세계에 민주주의를 정착하겠다고 정책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런 주장 또한 현재 이라크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라크 사람들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침략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원하는 민주주의 선거 또한 이라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들이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차지하게 될까봐,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석유매장량 2위에 해당하는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주권국가 이라크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자신들의 안마당이라고 생각해온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제2재무부라고 불린 IMF를 통해 간섭과 “실력행사”를 해왔다. 하지만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해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그리고 브라질의 룰라 등 사회주의 좌파정부들이 속속 수립되면서 외세의 개입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물결이 흘러넘치고 있다. 메르수코르(남미공동시장)이라는 경제블럭화를 꿈꾸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자주적인 연대와 협력이 증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써, 베네수엘라의 에너지 자원 공유와 쿠바가 제공하는 의료진과 교사들 간의 협력체계가 빈곤과 질병 그리고 문맹에 대항하는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어서 촘스키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으로 눈을 돌린다. 중동에서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정착촌 건설강행과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버금가는 분리장벽 건설이 중동의 장기적인 평화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촘스키는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서구의 주류언론에 의해 테러조직이라는 악명을 달고 있는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현실세계에는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미국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의 2개 국가안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비협조와 거듭되는 UN권고안에 대한 위반과 폭력은 이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편 미국 내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안즈를 휩쓸어 버린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재난관리청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재정압박으로 사전에 대비를 하지 못했던, 아니 할 수가 없었던 연방정부에 상당 부분의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당시 폐허가 된 뉴올리안즈를 뉴스를 통해 본 미국인들은 아마 또 제3세계의 어디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일거라고 생각을 했다던가.

게다가 4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엘리트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수의 부유층과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들의 정치 쇼라고 촘스키는 진단하고 있다. 엇비슷한 정책으로 변별점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책 대결이 아닌 오로지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보고 결정을 내리게 되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촘스키가 제시하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안은 간단하다. 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미국식 패권주의가 아니라 대화에 기반한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면서 서로의 상충되는 이해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해결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의 근간이다. 물론 ‘여기에서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식의 사고 하에서는 그 어느 것도 해결될 수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의 격차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조만간에 그런 식으로 해결되리라는 보장 또한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하지만 촘스키 역시 철저하게 미국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조심스런 그러나 정신 나간 제안>에 나오는 이란을 제한적으로 무장을 시켜서 이라크를 침공하게 하자는 주장은 중화제국 이래 사용되어져온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현대판 버전이다. 그 근간에는 왜 이라크를 침공해서 지배하는데 있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흘릴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게다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인들이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역설을 하고 있는 점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잔영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1929년 이래 최악이라는 금융위기를 통해 지난 2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와 정부의 불간섭주의를 외쳐 대던 목소리들이 사그러들고 있다. 동시에 동아시아와 유럽의 경제블럭들은 하나의 초강대국이 그동안 누려왔던 지위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 나라는 왜 새로운 천년에는 기존의 지배와 복속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현대판 선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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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낭만적인 고양이 트렁크 - 세계 로망 도시를 고양이처럼 제멋대로 여행하는 법
전지영 글.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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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나의 착각 하나. 제목만 보고서 고양이와 함께 한 여행기인줄 알았다. 더 황당한 생각은 트렁크에 고양이를 넣어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하긴 요즘에는 하도 벼라별 여행서적들이 다 나오다 보니, 뭐든지 ‘생각대로 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각설하고 30대 특이한 경력의 싱글 여성이 자신이 가본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엄선한(책을 읽으면서 파악한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아마 자기 내키는 대로 고른) 6개 여행지가 차례대로 등장하게 된다. 교토-뉴욕-로마 그리고 시애틀-하와이-뉴질랜드 순으로. 그런데 왜 도중에 ‘그리고’란 접속사를 넣었는가 하면, 전반전의 세 곳은 나도 가봤기 때문이고 후반전의 세 곳은 미처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그런 분류를 해봤다. 역시 아무래도 가본 곳의 추억은 공유할 수 있기에.
 
이야기는 고양이로 시작을 해서, 고양이로 끝나게 되지만 여행 도중에 고양이를 끌고 다니진 않았다. 대신 지인들에게 탁묘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비행기 승무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지은이가 그린 일러스트에는 항상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나 같았으면 쉽게 디지털 사진으로 대체했을 사진이 들어갈 자리들을 그녀는 굳이 손이 많이 가는 일러스트로 대체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을 여타의 여행서적들과 달리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추론해 본다.
 
보통 독스타일이신가요? 혹은 캣스타일이신가요?란 질문을 들을 기회가 생기는데 양쯔와 세쯔의 주인장인 지은이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각 장의 말미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여행하는 법에서 지은이는 스프린트 여행자와 샤방 여행자로 여행자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고, 자신을 당당하게 샤방 여행자로 분류했다. 여행을 하면서 아무 것도 안할 자유나 여유가 있을까? 미술관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서 아침녘에 무위도식할 수 있는 여행자라면 그녀의 분류법에 따라 샤방 여행자로 무리지어질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지은이의 그런 샤방 여행자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도시가 바로 시애틀이었다. 어느 한 도시에 정주하는 이가 아닌 뜨내기 여행자로서 시애틀을 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별다방 커피가 아닌 동네커피숍에 커피를 즐기는 여유는, 아마도 베테랑 여행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아우라의 현현일 것이다. 그네들의 삶의 기운이 풀풀 피어오르는 시장구경을 하고, 유명한 맛집이 아닌 그냥 내키는 대로 들른 식당에서 만나게 된 고소한 해물튀김 맛은 우리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내추럴 본 자유인으로서의 (지은이의) 모습은 어쩌면 유랑생활의 발단이 되었던 비행기 승무원 생활이 구구절절하게 그려진 하와이 편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너나 할 것 없이 레이를 목에 걸친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지상의 낙원 하와이에서 안분지족하는 삶을 읽으면서 내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 공감하는 부분들이 꽤 많았는데, 단 한 가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로마 이야기에 등장한 미켈란젤로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더 낫다고? 개인적인 호불호겠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조각만큼은 미켈란젤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미켈란젤로만한 조각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과 조우했을 때의 그 흥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미켈란젤로가 최고다.
 
너무 멋진 일러스트들이 넘실대고, 촌철살인 스타일의 유머들이 곳곳에서 빛나고 있는 ‘고양이 트렁크’ 속으로 뛰어 들어보자! 참, 트렁크 안에 고양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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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로드 - 길 없는 길 따라간 세계대학일주
박정범.권용태.김성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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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아마 2008년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여행서적들이 쏟아져 나온 해로 기억이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면서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책들의 출간은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서적들이 범람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참신하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소재를 다룬 책들이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할 <캠퍼스 로드>는 다른 책들과 변별점을 이루고 있다.

세 명의 청춘들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영어권 나라들의 대학들을 찾아가 그 대학교 학생들과 교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사실 그들이 준비한 6개월간의 일정은 거의 세계일주 수준이었다. 아시아에서 출발을 해서 유럽 그리고 남미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커버하는 그들의 열정을 읽는 동안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는 항상 문지방에 발리 걸려 짧은 여정도 두려워하는데, 그들은 용감했다. 물론 원활하지 못했던 커뮤니케이션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붓글씨를 이용해서 각 나라 대학생들의 이름을 써주겠다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이벤트는 정말 참신했다. 붓글씨를 정말 잘 쓰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이 씌여진 화선지(?)를 들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각국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직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 사해동포주의의 일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물론 한 권의 책에서 무려 19개나 되는 대학들의 모습을 다 그려내겠다는 이들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조금은 버거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처음 작정했던 계획들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요즘 청년들이 보유한 불굴의 기개가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신자유주의 사고에 입각해서 보다 좋은 안정적이면서도 많은 보수를 받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최선이라는 사회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개인의 영달이 아닌 타인을 돕는 삶을 살기 위해 멀리 인도까지 가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개인적으로 일행이 했던 인도 캘커타의 칼리가트 하우스에서의 일일봉사가 최고의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태국에서는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꿈의 장소라고 알려진 카오산의 실제 모습을 현지 대학생들의 시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허상의 단면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고나 할까. 모든 일에는 좋고 나쁜 점들이 병존하지만, 그들이 상파울루에서 만났던 도나 빠울라 교수와의 일화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어쩌면 지루해질 수도 여행기의 단점들은 다양한 경험과 특히 현지 대학생들과의 다이내믹한 대화와 관계가 펼쳐지면서 상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그런 느낌이 들 겨를 없이 그들의 일정은 빡빡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들자면, 많은 사진들 가운데 세트로 실려 있는 작은 사진들이, 대개의 경우에 소개가 빠져 있었다. 저자들이야 실제로 가보고 경험한 곳들이니 사진들을 보기만 해도 척척 생각이 나겠지만 가보지 못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깊이가 좀 부족하지만, 4개 대륙 19개 대학교를 누비면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들의 포부와 노고는 그런 부족함들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무 이유가 없다, 젊어서 여행하고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견문을 넓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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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00배 즐기기 - 100배 즐기기 시리즈, City '08~'09 100배 즐기기
홍연주.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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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두 번 다녀왔다. 첫 번째 나와 파리의 만남은 2003년 그리고 2007년 회사를 그만 두고 잠시 틈을 내서 두 번째로 찾았다. 처음 가서 부지런히 다녀서 나름 파리의 명소들은 다 돌아 봤다고 생각했지만 또 막상 두 번째로 찾으니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두 번의 파리행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첫 번째는 첫 기착지여서 팔팔했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여행을 마무리할 시점이라서 처음만큼 의욕적이지가 않았다. 작년에 <파리 100배 즐기기>가 내 수중에 있었다면 좀 더 파리다운 파리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지은이들인 홍연주, 홍수연이 각각 16번 23번이라는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베테랑 유럽 전문여행가답게 오밀조밀하게 많이도 너무나 멋진 정보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낸 것 같다. 날씨로부터 시작을 해서, 복장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 부분을 보면서 나에겐 정말 추웠던 5월의 베를린 생각이 났다. 파리 명소 베스트 7에서는 첫 번째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역시 기본 코스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먹거리선에선 가장 먼저 마카롱 과자 생각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쁘렝땅 백화점에서 저걸 사먹었었지.

다음으로 여행자들의 시간에 맞춘 여행 코스들이 선보였고, 파리의 역사 그리고 영화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파리의 이모저모가 소개된다. 그런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꼭 필요한 정보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가면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요 부분은 다른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들이 많으니 가볍게 패스!

다음으로 파리 여행에 대한 기초 정보들을 제공해 준다. 빨래방 기억이 나는데 보통의 경우 민박집에 머물면서 빨래를 해서 그닥 어려움을 겪지 않았었다. 다만 니스에서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이용시간을 숙지하고, 동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젖은 빨래감들을 입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할지어다. 다음으로 파리 시내에서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첫 파리행에서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서, 표를 사지 못해서 쩔쩔 매던 기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런 정보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개선문으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파리 투어에서 내가 가보지 못했던 오랑주리 미술관(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었다)과 노트르담 대성당(왜 가지 않았을까?)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읽어 두었다. 세 번째로 파리를 찾게 되면 꼭 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 베르시에 있다는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에도 가보고 싶어졌다. 뭐 불어를 하지 못해서 얼마나 공감을 가질진 모르겠지만.

테마가 있는 여행코스에서는 역시 미술관의 도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는 파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 작은 미술관들의 경우에는 가보지 못한 곳도 많았는데 <파리 100배 즐기기>를 통해 다양한 미술관들의 존재를 알 수가 있게 되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그런 미술관들을 찾게 되는 재미를 느껴 보고 싶어졌다.

여행에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 소개 코너는 또 어떠한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군침이 자르르 흐르게 만드는 먹거리는 정말 눈이 다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좀 더 많이 먹거리들과 그 먹거리들을 파는 가게들에 정보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보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몇 번 들렀던 카페에서는 불어를 몰라 내내 맥주만 시켜 먹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줄줄이 이어지는 그 다양한 카페와 식당들의 소개를 급좌절을 경험했다, 난 도대체 파리에 가서 뭘 먹었던거지 하고 말이다.

책을 펼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338페이지부터 시작되는 “머스트 쇼핑 아이템”이었다. 역시 쇼핑에는 일가견이 있는 여인네들의 초이스라 그런지 정말 꼭 갖고 싶은 아이템들의 멋진 향연이 펼쳐졌다. 나중에 다시 한 번 파리에 가게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으리라 하고 굳은 결심을 다졌다. 게다가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지도와 상점들에 대한 다이제스트한 설명은 그야말로 거들 뿐. 엔터테인먼트 부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 부분이어서 이것도 살짝 패스!

마지막으로 역시 파리 시내뿐만 아니라 파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올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해 주는 센스란! 그중에서도 모네의 집과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와 몽 생 미쉘은 정말 꼭 가보고 싶다. 그런데 이런 코스를 돌려면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대미에는 파리에서 묵을 만한 다양한 가격대의 숙소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정말 합리적인 가격의 호텔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한인민박집을 골랐지만 아무래도 외곽에 있다 보니 시내 출입하는데 있어서 좀 어려웠던 기억이 났다.

<파리 100배 즐기기>를 읽는 내내 그야말로 파리행 ‘환상특급’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티 가이드를 읽게 되면 도지는 병이 다시 발발했나 보다. 어서 빨리 파리와의 세 번째 만남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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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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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글을 읽었다.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영화처럼>을 펴는 순간, 그야말로 ‘마하’의 속도로 책에 씌여진 글들을 읽어댔다. 그만큼 <영화처럼>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다. 책은 그야말로 ‘영화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금세기 초에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인정받게 된 영화는 그 소재 선택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 왔다. 어쩌면 그런 면에 있어서 문학과 필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않았을까. <영화처럼>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는 소설가로 첫 발표한 소설이 영화화되는 찰나에 어린 시절 같은 학교에 다녔던 용일과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든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는,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용일과 영화를 통해 친구가 된다.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자전거를 타고, 당대 최고의 쿵푸 영웅이었던 이소룡을 숭배하며, 알랭 들롱이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의 결말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모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들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는데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어릴 적 친구였던 용일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평범한 생활을 하던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고, 신예작가로 등단한다. 용일 어둠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키나와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정무문>에서는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자살한 남편의 죽음에서 빠져 나오는 미망인 고모토와 비디오 대여점 힐츠의 알바생 나루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주인공 고모토가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또 영화였다. 다음의 <프랭키와 자니>에서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데 나와 이시오카가 그 주인공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이시오카는 아버지의 의뢰인이 맡긴 보석금 3000만엔을 강탈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싱글 맘과 같이 사는 나 역시 이 계획에 공범으로 가담하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인 <페일 라이더>에서는 좀 언밸런스한 커플이 등장하게 되는데 부모가 이혼 위기에 처한 초등학생 유와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아줌마 라이더 나미가 그들이다. 동급생들의 위협으로부터 유를 구해준 나미 아줌마는 씩씩한 바이커로 유와 더불어 구민회관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고 라이드를 즐긴다. 예상치 못했던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통쾌했다.

도리고에 패밀리가 등장하는 마지막 이야기 <사랑의 샘>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화룡점정식 대미를 멋지게 장식해준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실의에 빠진 할머니를 위해 5명의 손자 손녀들의 좌충우돌 영화 상영 계획은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준다. 게다가 화자인 나 데쓰야의 로맨스도 부록으로 들어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작가의 짖궂은 데쓰야에 대한 강아지 비유는 정말 압권이었다. 마음에 드는 쓰카사는 데쓰야를 자신이 어려서 기르던 알래스카 맬러뮤트 닮았다고 하질 않나, 하마이시 교수는 영리하게 생겼지만 자신의 똥을 먹었던 시베리아 허스키를 닮았단다.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여전히 새로운 세대들이 우려가 되지만, 데쓰야-가오루로 대변되는 뉴 제너레이션들은 우리들은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로마의 휴일>은 세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정말 좋은 영화라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작가는 조용히 속삭인다.

8월 31일 일요일 <로마의 휴일>이 주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한 계절이(갈등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을(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 그렇고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맺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다시 한 번 마치 들줄과 씨줄이 얽힌 듯한 멋들어진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네시로 가즈키에게 찬사를. 아주 오래전에 본 <시네마 천국>으로의 두 번째 티켓을 받아쥔 기분이었다.

<영화처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는 상대방을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다. 그리고 곧 후회하는 모습들이 현대인들의 우유부단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마치 소설의 전개방식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씩 크레센도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결말은 아주 흡족하다. 그렇게 모두에게 행복이 나뉘어진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이, 그렇게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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