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빨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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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년 동안 읽겠노라고 도전하다가 실패했다가 어쩌다가 결국엔 다 읽고야 말았다. 게다가 이 책은 절판되어 이제는 구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중고 시장에서 쏠쏠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더라. 왠지 중고 책을 그 가격에 주고 사는 건 미친 짓인 것 같아 기다리다가 2권을 지난주에 알라딘 중고로 저렴하게 데려왔다. 물론 1권을 다 읽고 나서 2권은 모클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긴 했었지. 어쨌든 당장 읽지 않더라도 살 수 있을 때 책은 사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제이디 스미스의 기념비적인 데뷔작인 <하얀 이빨>20년 전에 발표되었다. 책의 출간에 대한 썰은 2권 말미 후기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 개인적으로 <하얀 이빨>을 대환장 파티의 연속으로 기대하고 접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나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미 그동안 숱하게 레이시즘과 다이아스포라 그리고 도무지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문화적 충돌을 다룬 책들을 만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폴 비티, 로힌턴 미스트리, 줌파 라히리 등등 <하얀 이빨>의 후속편 격인 책들에서 섭렵하다 보니 원조에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책 소개에서 살만 루슈디의 후계자 어쩌구라는 문구를 본 것 같은데, 공감이 가더라. 살만 루슈디가 전 세대의 조금은 진지하면서도 근엄한 스타일의 혼종 문화에 대한 소재를 다루었다면, 나름 신세대인 제이디 스미스는 보다 힙한 스타일로 문제에 접근한다. , 시작은 1975년의 첫날이다.


<하얀 이빨>은 기본적으로 아치 존스가 가장으로 있는 존스 패밀리와 사마드() 미아 익발아 대표하는 익발 패밀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2권으로 넘어가면서 샬펜 집안도 추가된다. 영국인 아치 존스와 사마드 미아는 2차 세계대전을 함께 겪은 전우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몬테카지노나 스탈린그라드에서 나치 독일군을 상대한 건 아니고, 전쟁 끝판에 잠시 전쟁맛을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들의 만들어진 무공(?)30년 동안 울궈먹기에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한 때 종군기자를 꿈꾸었던 아치 존스는 오늘날 인쇄소에서 종이접기로 벌어 먹고 사는 남자다. 그리고 전후 이탈리아에서 얻은 와이프와 30년 동안 잘 살다가 결국 파경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무허가 할랄 정육점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다. 그리고 뉴이어스파티의 끝물에서 만난 클라라 보든과 만나 3주 만에 결혼에 골인한다. 클라라는 교통사고로 윗니가 모두 날아가 버렸고, 고작 19살이었던가.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전주곡을 예고한다.


, 다음은 익발 집안으로 가보자. 사마드 미아는 방글라데시 다카 출신 이슬람교도로 3년 전인가 아내 알사나 베굼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주했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한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베테랑 용사인 사마드는 고향에서는 대학 출신의 나름 엘리트였으나 영국 런던의 윌즈던에서는 다른 할 일이 없어 친척 집에서 카레를 나르는 웨이터다. 알사나는 성인샵에 납품하는 요상한 옷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영국의 주류 백인들에게 파키라고 불리면서 가난하고 신산하기 짝이 없는 이민자들의 삶을 버텨간다. 백인들에게 인도 사람이나 파키스탄 사람이나 혹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구분은 전혀 필요 없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파키인 것이다. 대충 1970년대 영국에서 인종주의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시간은 십년 정도 건너 뛴 1984년이다. 아치 존스와 사마드 익발의 다음 세대인 아이리 암브로시아와 마기드-밀라트 쌍둥이가 등장한다. 당시는 마거릿 대처 아래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찍던 세상이었다. 허구한 날 옛 전우 아치 존스와 이슬람교도가 운영하는 아일랜드 식당 오코넬에서 죽치는 쿼지 이슬람교도 사마드 익볼 선생이 아이들의 담임인 백인 포피 버트존스 선생과 바람이 난다. 버트 선생님은 기이하게도 중년의 불구남자에게 무슨 매력을 느꼈던 걸까? 학교에서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행사에 반대하는 도발적인 의견을 제시한 엉뚱한 중년 유부남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이교도들이 득실대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에 살면서, 자식들이 고유의 전통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면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을까. 결국 예상한 대로 멋진 갈색 피부의 밀라트는 어려서부터 대마초와 육욕에 빠져 아버지가 바라지 않던 길을 가게 된다. 불륜을 저지른 사마드가 아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냐만. 방글라데시에서 데려온 아내 알시는 순종은커녕 서구 문물의 영향 탓인지 집안에서 육박전도 마다하지 않는 거친 인물로 묘사된다. 대개의 경우 알시의 승리로 귀결된다. 아 참, 장남 마기드는 더 이상 타락한 영국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방글라데시로 보낸다. 당시 인도아 대륙은 19841031일 시크 교도 출신 경호원의 인디라 간디의 암살로 온통 혼돈의 도가니였는데도 말이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두 대륙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게 바로 <하얀 이빨>이 주는 매력일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사마드 익볼 패밀리네 사연이 더 흥미로워서 그런 진 몰라도 못지않은 아치 존스와 클라라 보든 가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기술이 적었다. 1907년 킹스턴 대지진, 여호와의 증인으로 캠퍼스에서 흑인 소녀 클라라가 전도에 나선 일 정도가 기억에 난다. 아이리의 아빠가 될 뻔한 남자 친구 라이언 톱스의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윗니가 모두 날아갔다는 사실도. 클라라는 종교에서 이탈했지만, 예의 남자친구가 개종해서 충실한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지구 종말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도 흥미로웠다. 아이리인지 엄마 클라라가 다니던 학교에서 봉사활동의 일원으로 찾아간 백인 노인네 집안에서 듣게 된 하얀 이빨을 보고 총질해댔다는 사연에서 소설의 제목이 유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아치 존스-사마드 익볼 집안을 잇은 샬펜 가문의 등장도 만만치 않다. 아이리와 밀라트의 대마초 친구를 자처하면서 소설에 등장한 조슈아 샬펜(드마라에서는 젊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조슈아 역을 맡았다)이 짠하고 나타난다. 아버지 마커스 샬펜은 잘 나가는 유전학자로 미래쥐연구에 매진한다. 엄마 조이스는 페미니스트 출신 원예가로 학교에서 대마초 사건으로 징벌을 받게 된 밀라트와 아이리를 자기 집안에 선뜻 받아들인다. 샬펜 가는 너무나 모범적인 자기 자식들과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천하의 말썽꾼 밀라트를 환대하는 모습에서 이민자로 영국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익볼 가족의 그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니 어쩌면 제이디 스미스는 이런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성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도모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무언가 하나가 된다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각자의 문화와 습관을 지키면서 살자! 대신 서로를 존중하는 예의 갖추도록 하자. 뭐 대충 이런 식이 아닐까. 캐나다에서 살다 온 지인의 말에 의하면 캐나다가 그런 식의 삶의 양태를 추구한다고 하더라. 캐나다 역시 영연방 국가 중의 하나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다만, 대환장 파티급은 아닌 것 같다. 잔잔바리들의 향연 정도라고 해둘까 싶다. 영국 사회의 오픈마인드가 닫힌 마인드로 바뀌게 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특히 이슬람교도!)가 폭증하면서 밀라트 같이 삐딱한 녀석들이 급진주의자(KEVIN)의 물결에 동참하게 된다. 살만 루슈디가 개입된 <악마의 시>로 촉발된 사건도 빠지지 않는다. 샬펜 가문 출신의 조슈아는 PETA를 연상시키는 FATE 활동을 하면서 열혈동물애호가로 변신해서, 아버지 마커스에 반기를 든다. 마침내 익볼 브라더스가 상봉하고, 미래쥐를 대악마 샬펜의 손아귀로부터 구하겠다는 동물애호가들 그리고 세계 종말을 외치는 여호와의 증인들까지 가세해서 마커스 샬펜 박사가 자신의 DNA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는 19921231일의 발표장인 페레연구소로 몰려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을 해보니, <하얀 이빨>을 다룬 논문들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에 대해 할 말들이 많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결말 부분이 좀 아쉽긴 했지만, 사반세기를 아우르는 영국 이민사회에 대한 제이디 스미스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쓴 육성 리포트는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한 물적 착취에만 집중하느라 그들의 문화와 종교의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식민지 모국의 무관심은 인도아 대륙 사람들의 미묘한 차이를 무시하고 파키라는 단어에 뭉뚱그리는 그들의 언어폭력이 대변한다. 여전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부산물로 봐야 할까. 공생공영이라는 공동체 가치 대신 각자도생이라는 천박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가운데, 상대를 존중하는 대신 배척하는 근본주의의 뿌리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얀 이빨>을 읽기 전에 제이디 스미스의 <런던 NW>를 읽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온 뷰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온 뷰티>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작가의 에세이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에세이집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저러나 아직 대환장 파티는 도래하지 않았던가.


[뱀다리] 2권을 처음에 구하지 못해서 도서관에서 모클 버전으로 빌려다 읽고 있었는데 나중에 구간이 도착해서 비교해 봤다. 구간의 주석 부분에 수정할 부분들이 있었는데 왜 모클 버전에서 고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출판사의 게으름 탓인가. 고칠 의지가 있다면 내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시겠지 뭐. 아 참 이제 절판됐지. 그럴 필요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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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20-12-23 11: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은 사두어야 한다!

올해의 어느 순간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젠 그냥, 사둡니다.

레삭매냐 2020-12-23 12:59   좋아요 3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선언이십니다.
책은 미리 사두어야 한다!

어제도 그동안 중고서점에 뜨길
오매불망 고대하던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책을 수배했습니다.
역시나 기다리면 언젠가는 수중
에 들어 오는군요.

Falstaff 2020-12-23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은 자들이 하도 좋다고 설레발을 쳐서 기대가 과하셨나 봅니다. ㅋㅋㅋㅋ 반성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0-12-23 13:00   좋아요 2 | URL
무슨 말씀을요 ~~~
덕분에 좋은 책 만나 보았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온 뷰티>를 애정
합니다.

scott 2020-12-23 14:33   좋아요 1 | URL
지금 매냐님 리뷰 두번 정독하면서 이북 온뷰티로 갈아탐 ㅋㅋㅋ

레삭매냐 2020-12-23 14:39   좋아요 1 | URL
저의 허접한 리뷰로는 제이드 스미스
작가의 방대한 썰을 카바치기엔 역
부족으로 사료되옵니다.
몸서 읽어 보심이 ㅋㅋㅋ

단발머리 2020-12-2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30쪽 읽었는데 이 리뷰 한 문단만 읽고 건너뛰어서 댓글 답니다.
책은 사두어야 합니다! 2

레삭매냐 2020-12-23 13:01   좋아요 1 | URL
저두 책 출간 20년을 넘기지 않고
읽을 것을 다행으로 여기렵니다.

단발머리님의 후기도 기대해 보겠
습니다. 궈궈씽~

페넬로페 2020-12-23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도서관에 이 책이 있네요~~
도서관도 믿어봅니다^^

레삭매냐 2020-12-23 13:46   좋아요 2 | URL
유명한 책이라 아마 모든 도서관
에 비치되어 있지 않을까요 :>

페크pek0501 2020-12-23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책 부자가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이럴 때 참 행복해지죠.

책은 바로 구매해야 한다는 쪽에 한 표를 행사합니다. 나중에 구매하려 했던 책이 막상 구매하려니깐 절판되었던 걸 경험했거든요. 꼭 읽을 책이라 판단되면 바로 구매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굿~ 데이~~.

레삭매냐 2020-12-23 13:48   좋아요 2 | URL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책을 읽는 것이다.

라고 말한 분을 존경하는 바입니다.

다만, 읽지 않고 쌓아 둔 책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지요.

그래도 <광란의 오를란도>는 너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scott 2020-12-23 14:32   좋아요 1 | URL
절판 ㅜ.ㅜ
두분 말씀에 깊이 동감
먹는건만 쟁이는게 아니라 일고 싶은책들 그때 그때 쟁여두어야한다는것 ㅋㅋㅋ
´ε`

레삭매냐 2020-12-23 14:39   좋아요 1 | URL
그런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격이 비쌀 수록 쟁이기도 어렵고,
뭐 그렇네요. 글다가 절판되고 아띠.

페넬로페 2020-12-23 14: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도 몇 권 사놓고는 아직 읽지 못했어요~~
항상 이렇게 제가 모르는 작가와 더불어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맛있는 먹이 물어다 주는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의 입장에서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고
무척 설렙니다~~
레삭매냐님!
메리 크리스마스^^

레삭매냐 2020-12-23 14:42   좋아요 1 | URL
세풀베다 쌤들의 책은 나중에라도
읽게 되심, 바로 반하실 겁니다.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구요.
전 올해 쌤이 돌아가셔서 추모하며
다시 읽었네요.

아기새 표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페넬로페님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scott 2020-12-23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 ⁑͛⋆͛*͛ ͙͛(๑•﹏•)⋆͛*͛ ͙͛ ⁑͛⋆͛*͛ ͙͛
눈송이

레삭매냐 2020-12-23 14:44   좋아요 0 | URL
스캇트님도

메리 베리 해피 크리스마스 되세요!!!

유부만두 2020-12-24 0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님께 하얀 이빨은 너무 늦게 와버렸네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뽐뿌질한 서재이웃으로서 실망과 존경을 금할 수가 없어요. 읽으시면서 ‘애개‘ 하신거 아닐까...

레삭매냐 2020-12-24 09:00   좋아요 1 | URL
아마 십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
하고는 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작품에도 시의성이 그래서 중요한가
봅니다.
 
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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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산 책을 겨울에 읽는다.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었던가. 아니 해를 넘기지 않고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제목부터 수려하다, 무려 <레닌의 키스>란다. 지금은 영락해 버렸지만 한 시절, 세계를 주름잡았던 막스-레닌주의의 원조가 바로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가 아니었던가. 왜 레닌의 키스가 필요한지 27년 경력의 전 인민해방군 전사 옌렌커 선생이 말하는 소설 속으로 뛰어든다.

 

우선 소설은 전설부터 독자에게 시전해준다. 여말선초 같이 대단히 혼란스러웠던 원말명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우훠 마을의 전설이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 살던 부자가 박대한 호대해가 훗날 명나라 건국 시조 주원장의 눈에 들어 이주대신으로 변신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중원에 살 사람이 필요해진 홍무제는 호대해를 이주대신에 임명해서, 전제군주답게 강제 이주를 계획한다. 자신의 권력을 한껏 누릴 수 있게 된 호대해의 첫 번째 타겟은 바로 자신을 홀대했던 부자였다. 꼼수로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을 추려낸 뒤, 강제 이주 프로젝트는 가동된다. 그것은 마치 마오쩌둥의 실패한 인민공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리하여 생겨난 마을이 바로 고통 속의 즐거움이란 뜻을 지닌 서우훠 마을의 탄생이었다. 한편, 호대해를 잘 대해준 귀머거리 서우훠 할머니의 선행으로 이주대신은 그녀의 청을 들어준다. 그래, 서우훠 마을은 천하 장애인들의 집결지가 되었다나.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올해 69세의 마오즈 할머니다 십대 어린 나이에 홍군의 장정에 참여하기도 했던 혁명 원로 마오즈 할머니의 기백은 대단하다. 위세 높은 성에서 현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기도 하고, 바지까지 벗어젖힐 기세로 그들을 제압한다. 중국 고래의 전통을 대표하는 혁명 전사 출신의 마오즈가 할머니가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업둥이이자 임시노동자 출신의 현장 류잉췌가 버티고 서 있다.

 

류 현장은 대단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렇다 할 자원도 없고, 공장도 없는 솽화이현의 부흥을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이 인물은 덩샤오핑을 모델로 한 걸까.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자본)만 잘 잡으면 된다는 거 아닌가. 우선 남양 출신 사업가에게 읍소해서 솽화이현에 도로도 깔고, 상수도와 전기까지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한다. 배포가 커진 류잉췌 선생이 다음에 도모한 프로젝트는 거창했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으로 자신이 지배하는 솽화이현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단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의 애물단지가 된 레닌의 유해를 구입해서 솽화이현 훈도산에 레닌기념관을 설립해서 거기에 안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과연 러시아를 대신해서 전 세계 사회주의를 선도하는 국가의 현장다운 발상이 아닌가?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문학의 역병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발칙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옌렌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식 리얼리즘은 개혁개방의 물고를 타고 잠시 화려한 르네상스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국수주의적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쇠락해 가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바로 그 지점을 옌렌커 선생은 예리하게 타격하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 참 한국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스토리도 이어진다. 류현장과 눈이 맞은 마오즈 할머니의 딸 쥐메이는 서우훠 마을에서 듣도 보도 못한 딸 네 쌍둥이를 낳는다. 그러니까 류잉췌는 쥐메이의 딸 퉁화, 화이화, 위화 그리고 어얼의 생부인 것이다. 작가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자신의 대하소설을 위해 기기묘묘한 장치들을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 한편, 신사회의 대표선수인 류잉췌 현장은 구질서를 상징하는 마오즈 할머니의 권위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간다.

 

때 아닌 열설로 봄기근을 맞게 된 서우훠 사람들에게 구호 지원금을 준다는 명복으로 그동안 마오즈 할머니가 주관하던 사흘간의 축제를 자신이 가로채서 진행한다. 서우훠 사람들에게 일인당 55위안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하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과거 군주시절 황제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처세에 능한 스 서기는 막스-레닌-마오쩌둥 사회주의 지도자 반열에 당당하게 류잉췌 현장의 사진을 올려 현장의 눈도장을 찍기도 한다. , 이 지점에서는 현재 주석인 시진핑의 행로에 대한 풍자로 읽어도 될 정도다. 놀랍군 놀라워. 이런 신랄한 풍자와 해학의 무람없는 전개가 자신이 무려 반생을 보낸 인민해방군에서 옌렌커 선생이 쫓겨난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 출신 사업가 어머니의 장례를 빌미로, 레닌 유해 구입 프로젝트를 조기에 성취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 사업가에 사기를 당해 현장은 위기에 처한다. 조국 근대화 아니 서우훠 마을 근대화에 여념이 없는 류잉췌가 그만한 일로 기가 꺾일 인물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191명이 사는 서우훠 마을에 각종 기예를 지닌 장애인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들을 선발해서 묘기공연단을 만들어 전국 각지를 돌며,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 류현장으 끊임없는 도전에 그저 놀랄 지경이다.

 

한편, 오래전 혁명 전사로 서우훠 마을에 흘러들어 석공의 아내가 된 마오즈 할머니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채로 살아온 마을에 신사회 혁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원조(?)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마오즈 할머니(당시 71)67명으로 구성된 묘기공연단이 출발하는 날, 자신이 직접 만든 아홉 겹 수의를 껴입고 류잉췌 현장에게 서우훠 마을의 합작회사 퇴사를 겁박해서 추인 받는데 성공한다. 그녀가 경자년 홍사 출신으로 옌안 멤버였다는 점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커리어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실하게 주지시킨다.

 

송화이현 현성에 도착해서 실전 연습에 들어간 서우훠 출신 묘기공연단의 서커스에 가까운 쑈는 모두를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는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허풍이 난무하는 묘기공연단의 대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소설의 엔딩은 희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레닌보다 앞선 마르크스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류잉췌 현장의 레닌 유해 구매 프로젝트는 묘기공연단이 그야말로 전국 순회공연에서 돈을 긁어모으면서 현실화되어 가는 모양새를 갖춘다. 소외된 이들이 모여 살던 서우훠 마을 사람들은 대처에 나가 공연을 하고, 평생 만져 보지 못할 그런 엄청난 돈을 벌면서 이전의 천당 같은 세월을 잊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에게는 돈이 다발째 굴러 들어오는 지금이야말로 천당 같은 세월이었으리라. 모두가 그렇게 자본의 세례를 받아 초심을 잃어 가고 있는 동안에도, 홍군 전사 출신의 마오즈 할머니는 연말까지 공연을 마치고 합작회사 퇴사라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옌렌커 선생은 돈맛을 알게 된 사회주의 국가 출신 인민들의 타락상을 자신의 작품 <레닌의 키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서로를 위한다는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 이념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자신들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전개되었을 때의 비극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집어 삼킬지 알 수가 없었던 게 그들의 문제였다. 류잉췌 현장과 그의 부역자들이 도모하던 성공의 열매가 너무 달콤했던 것처럼, 그의 추락 또한 삽시간에 벌어졌다.

 

원말명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에, 민국 시절은 물론이고 장정, 항일투쟁, 해방, 신사회 건설, 대약진운동, 강철재앙, 대기근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지나 개혁개방의 시절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중국 현대사의 큰줄기들을 옌렌커 선생은 <레닌의 키스>라는 도발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제목 아래 녹여냈다. ‘문학의 역병이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민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지 묻는다. 마오즈 할머니로 대변되는 국가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장애 같은 불편함을 안고서라도 천당의 세월을 보내고 싶다고 온몸으로 항변한다. 모든 것을 혁명에 걸고 사람들을 선동했던 마오즈 할머니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수십 년을 애쓰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허무맹랑한 자신의 기획을 밀어 붙이던 기회주의자 류잉췌 현장의 추락은 희비극의 끝판왕다웠다.

 

700쪽이 넘는 대서사시에 잠깐 위축이 되었지만, 막상 몰입해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피니시라인에 서 있었다. 지난 4일 동안, 나와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서우훠 동지들이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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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15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폴스타프 님이 싫어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20-12-15 18:27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순전히 잠자냥님 덕분에 읽은 것으로 하렵니다.

scott 2020-12-15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만 갖고 있었는데 한국어판 700페이지! 레닌 키스, 레삭매냐님에 백오십 일번째 ㅋㅋㅋ

레삭매냐 2020-12-15 19:41   좋아요 4 | URL
최근의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웃기고 슬프고, 또 신랄한
풍자와 해학에 이르기까지...
옌렌커 선생이 계속해서 노벨
문학상 후보가 오르는지 알려
주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20-12-16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산 책을 요즘 읽는 페크도 있습니당~~~^^

레삭매냐 2020-12-16 13:07   좋아요 2 | URL
저도 몇 년 묵혀서 읽곤
한답니다.

올해는 그런 책들이 제법
많았네요.

쎄인트saint 2020-12-16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저도 올해안에 읽을생각이었는데..아무래도 내년으로 넘겨야할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0-12-16 17: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 판이었으나,
잠자냥님의 리뷰를 읽고서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야지 결단을 하고
읽었네요.

좋은 책은 내년에 만나도 좋으시
리라고 생각합니다.

scott 2021-01-09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옌레커가 새해 매냐님을
이달에 당선작으로 뽑히게 했음
추카~추카~

레삭매냐 2021-01-09 13:26   좋아요 1 | URL
제가 지난 달에 민 책은 <레닌의 키스>
보다 <니클의 소년들>이었는데 그것 참...

알 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초딩 2021-01-09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이 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멋져요~

레삭매냐 2021-01-09 13:27   좋아요 1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들 해주셔서 알게 되었네요 :>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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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해 마지 않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 드디어 출간됐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알게 된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은 나의 2020년 독서를 마무리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기대는 충족되었다. 윌라 캐더 여사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와 더불어 올해의 책으로 꼽을 것이다.

 

남부 플로리다에서 예전에 감화원으로 사용되던 니클 아카데미의 부트 힐에서 43구의 시신이 발굴된다. 그 중 7명의 시신은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부트 힐의 비밀묘지를 파헤친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생들처럼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지상으로 끌어 올린다.

 

소설의 화자는 엘우드 커티스. 플로리다 탤러해시 출신의 십대 소년은 할머니 해리엇의 엄한 교육 아래, 자식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도망친 부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한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대학에 진학헤서 고등교육을 받을 꿈을 키운다.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가 1962년에 사준 MLK의 선동이 들어 있는 레코드판을 들은 덕분이 아닐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1954년 브라운 재판으로 흑인들의 인권운동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짐 크로의 유령은 여전히 검둥이들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해리엇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자에게 제발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호텔 주방에서 짝퉁 백과사전을 걸고 덤빈 설거지 내기에서 호되게 뒷통수를 맞은 엘두드는 열세 살의 나이에 마르코니 씨가 운영하는 담배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아마 선량하고 성실한 엘우드의 평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링컨 하이스쿨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던 엘우드는 힐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학 수업도 받게 된다. 장차 대학에 진학해서 영국 문학을 전공해 보겠다는 엘우드의 꿈은 공짜 차를 한 번 잘못 탔다가 수렁에 빠져 버린다.

 

그가 얻어 탄 플리머스는 장물이었고, 아직 청소년이었던 엘우드는 교도소 대신 악명 높은 감화원 니클 아카데미로 가게 된다. 니클 아카데미는 이름만 아카데미였지, 입소한 소년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장소였다. 모욕과 폭력은 일상이었고, 특히 교정이라는 이름 아래 블랙뷰티를 동원해서 진행되는 화이트하우스에서의 구타의 종착지는 종종 부트 힐, 비밀묘지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니클에 도착한 엘우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프 삼총사의 학대에 시달리는 소년을 위해 나섰다가 미친개 소리를 듣는 학생주임 스펜서에게 호되게 매질을 당한다. 그것은 과거 노예제도가 횡행하던 시절의 폭력과 다름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살갗이 찢어지는 매질을 견디지 못한 엘우드는 기절하고 만다. 그리고 보통의 검둥이들처럼 현실을 받아 들이게 된다. 다시 한 번, 무자비한 폭력이 정의와 진실을 가리게 된다는 현실이 등장하는 비극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의 1/3 지점을 지나가는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비극의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 한창 미국 남부를 달궈져 가던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료 청년들과 인종차별과 인종분리정책을 반대하는 시위현장에 나서는 자유세계의 체험을 했던 소년 엘우드에게 니클은 가장 나쁜 의미에서 신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엘우드의 눈에 그들은 사악한 용과 싸우는 거리의 기사들이었다. 아니 이런 문학적 표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계대전 이후, 고결한 개혁의 물결이 사방에서 넘실거렸지만 그 때 뿐이었다. 여전히 간이식당에서 흑인들은 식사를 할 수가 없었고, 백인들에게 거리에서 길을 비켜 주어야 했다. 해리엇 할머니가 일하던 탤러해시의 리치몬드 호텔에 일하는 검둥이들은 있었지만, 손님으로서 검둥이들은 존재할 수가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미국의 현실은 달라졌을까? 지난여름, 미국 각지에서 벌어진 Black Lives Matter(BLM)운동을 보라.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과 법적 평등은 요원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짐 크로의 망령은 여전히 미국 사회를 활보한다.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해서, 사유를 조종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해리엣 할머니는 노인의 체험으로 후세에게 전달한다. 당시 현실도 그랬는데, 소년 감화원 니클 아카데미의 경우는 어땠을까.

 

명목상으로는 플로리다 주정부의 감시 아래 있었지만, 니클을 실제적으로 운영하던 하디 교장과 스펜서 일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니클은 그들에게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다. 인쇄소를 돌리면서 플로리다 주정부의 인쇄 업무를 독식하면서 25만 달러라는 거금을 챙겼고, 니클 소년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만든 벽돌은 잭슨 카운티 곳곳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짓는데 이용됐다. 그들의 부정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소년들에게 지원된 금품과 식품까지도 파렴치하게 횡령했다. 그들이 사방에서 저지르는 악덕과 부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그들은 KKK단의 후예로 가혹한 인종차별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한편, 클리블랜드 캠퍼스의 깡패 그리프는 백인 캠퍼스를 상대로 한 권투시합에 나설 대항마로 흑인 소년들의 우상으로 부상한다. 니클의 권투시합은 지역사회에서 초미를 관심사로, 흑인 소년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인종대결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그렇게 그리프란 녀석이 악행을 저질렀어도, 이번만큼은 모두가 일심단결해서 그리프를 응원했다. 백인 맞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바로 여기에 스펜서가 개입해서 승부조작에 나선다. 한 마디로 적당히 하고서는, 져주라는 주문이었다. 내기 도박에서 이기기 위한 백인들의 꼼수였다. 예상대로 결과는 비극으로 귀결된다.

 

니클의 상황에 절망한 엘우드는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자신이 그동안 기록한 것들을 기습감사(물론 사전에 니클에 통보되었다)에 나선 감사원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한 자료들을 넘긴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너무 위험하다며 절친 터너가 적극 말린다. 백인들의 선의에 기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하다는 걸 소년은 몰랐던 걸까?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양심과 격렬하게 갈등하면 장면은 소설의 백미였다. 엔딩에 포진한 반전은 왜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 왜 퓰리처상을 받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건 뭐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과연 이런 게 문학의 힘이란 말인가.

 

전작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 미국사회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종주의 문제의 기원을 저격했다면, 이번 <니클의 소년들>는 중간점검 정도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MLK의 메시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MLK가 투옥되지 않고 검둥이로서 순응의 삶을 살았더라면, 과연 그가 저항에 나서라는 말이 동족에게 먹혔을 지도 궁금했다. 니클의 최고 악당들인 스펜서나 얼이 천수를 누리며 전혀 반성 없는 삶을 살았다는 지적도 뼈를 때린다.

 

<니클의 소년들>로 올해 목표 독서 150권을 채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야말로 자유 독서시간이다.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나의 엘우드 친구가 그리던 자유도 이런 것이었을까. 진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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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13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는 뭐 당장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억해 두겠습니다.
150권이라니! 가열차고 알차게 읽으셨네요.
축하합니다. 내년도 좋은 책과 함께 보람찬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0-12-13 20:58   좋아요 2 | URL
아, 근데요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볼라뇨의 <2666>인가 하는 5권짜리 말입니다.
그건 낱권으로는 안 파는 건가요?
볼라뇨가 하도 좋다고 해서 괜히 관심이 가서 말이죠. ㅋ

레삭매냐 2020-12-14 06:42   좋아요 2 | URL
<2666>은 낱권으로 팔지 않습니다.

저도 일단 3권까지는 부지런히 읽었는데
여적 완독하지 못하고 있네요.

고 책하고 그렇게 좋다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여전히 숙제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0-12-13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래삭매냐님, 2020년 독서왕!

레삭매냐 2020-12-14 06:43   좋아요 0 | URL
고저 변변찮은 독서일 따름입니다.

han22598 2020-12-16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짱입니다. 많이 읽으신 것도 그렇지만, 좋은 책 먼저 읽으셔서, 다른 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좋은 리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0-12-16 09:43   좋아요 0 | URL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읽고 쓸 뿐이데 즐거워 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욱 열심히 읽고 쓰고 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2-24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

레삭매냐 2020-12-24 18:22   좋아요 0 | URL
강력합니다, 후회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
이연주 지음, 김미옥 해설 / 포르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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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팟캐를 통해 전직 검찰 출신 이연주 변호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저자의 육성을 들으면서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람은 곧 이루어졌다.


게다가 촛불혁명 이래 검찰 개혁이 시대의 화두가 된지 어언 두해 째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최근 사상 초유의 검찰 수장에 대한 징계가 시작되면서, 해당 사건이 모든 뉴스를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검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긴 하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도 퇴근길에 주진우 라이브를 들면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참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 개혁에 동의하면서도 다만 그 방법론과 절차 그리고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조직에서나 호루라기 불기(Whistleblowing;내부고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폐쇄적이고 상명하복식의 질서가 우선시되는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조리한 명령들이 넘실대는 조직의 실상을 깨닫고 저자 이연주 변호사는 1년 만에 조직을 떠났다. 저자의 동기였던 ‘그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조직을 떠나는 대신 조직에 남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수모에 가까운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킨 그 사람에게 빚진 마음으로 저자는 글쓰기에 나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갈라파고스라는 외딴 섬에 사는 새들은 모바일 시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들만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섬 밖의 일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오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전혀 없다.


어제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관련해서 업자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현직 검사들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색어에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 짜리 불기소세트가 떠 있기에 무언가 봤더니, 김영란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세 명 중에 밤 11시까지 넘어 술자리에 있던 한 명만 불구속 기소하고(그것도 형량은 무거운 뇌물죄를 피했다) 나머지는 불기소 처리를 한 것이다. 저자 이연주 변호사는 책에서 버마 전선에서 일본군을 파멸에 몰아넣었던 무다구찌 렌야를 소환한다. 그가 한국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비밀독립군이라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찰이 자기 조직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전직 대통령에는 포괄뇌물죄를 적용하는 기개를 선보였던 그들이 내부 범죄에 대해서는 케이크 자르는 플라스틱 칼만도 못한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늘 당장 공수처 개정법안이 통과될 예정인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부고발자가 바라본 조직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그동안 간간히 언론을 통해 접해온 검찰 내부의 문제는 심각했다. 그런데 내부에 있는 이들은 그런 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모양이다. 소수의 검사들만이 이래서는 시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올바른 소리를 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2012년 검란 이래, 내부 자정과 개혁을 주장해 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주장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것조차 어느 검사의 실수로 소나기 피하자는 식의 위장이었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이연주 변호사의 주장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미래의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준사법조직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검찰 개혁을 위한 더딘 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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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10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찰개혁이 사실 우리의 삶과 얼마나 상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검찰의 폭주는 군사 쿠테타에 비견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의 견제와 감시를 무력화하겠다는 그 기개를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두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검찰 아닙니까. 누구든 잡아 넣을 수 있죠. 삼성 이재용과 자신들만 빼고요.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를테니 이번에는 꼭 검찰개혁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더딘 걸음에 속 터지지만 ㅠㅠㅠㅠ 저도 레삭매냐님과 같이 박수를 보냅니다.
리뷰에도 박수를 보내고요! 짝짝 짝짝짝!

레삭매냐 2020-12-10 16:57   좋아요 0 | URL
저의 후진 리뷰보다 댓글이 더 반짝반짝
하는 것 같습니다.

책은 진짜 금세 다 읽고 나서, 무언가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다고 근 열흘
을 버벅거리다가 쓴 것이... 그렇네요.

왠지 검찰개혁에 나서는 출사표 같은
덧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0-12-10 17:2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리뷰 읽고 너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속마음토크 해버렸네요@@
저, 아무데도 안 갑니다^^

서니데이 2020-12-10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레삭매냐 2020-12-10 21: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여느 때처럼 또 읽고 쓰고 그러다
보니 한 해가 다 지나가 버렸네요.

램프의 요정이 결산 하나는 진짜
끝장나게 해주세요.
 
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주 전에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빌린 책들이 바로 델핀 드 비강의 책 <충실한 마음><고마운 마음>이었다. 착각으로 이렇게 책을 읽기도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다. 어떤 책이든 어떠랴, 그저 내 마음의 조금의 양식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잘못된 만남이긴 하지만, 프랑스 출신 델핀 드 비강이 그리는 가족 서사가 마음에 들기도 했으니까.

 

소설에는 모두 네 명의 화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보드카와 럼을 마시는 12살배기 테오 뤼뱅과 그의 친구 마티스 기욤, 마티스의 엄마 세실 그리고 테오와 마티스를 지도하는 엘렌 데스트레 선생님이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나도 술을 마시긴 하지만, 그건 대학생이 된 다음의 일이었다. 아니 그 전에도 한 번 마셨었던가. 그런데 이 녀석들은 고작 12살부터 술을, 그것도 맥주 같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술인 보드카와 럼을 즐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게 가족 소설이 시작된다.

 

테오의 어머니는 6년 전에 IT업계 종사자인 테오의 아버지에게 진절머리를 내며 이혼장을 날렸다. 그 후로, 테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오가는 떠돌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버지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때는 괜찮았지만, 실직하고 거의 폐인 같은 생활을 시작하면서 테오의 삶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술을 사기 위한 자금공급은 마티스가 맡았다. 친구 테오와 무엇이든 함께 하는 마티스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는데 친구 때문에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마티스의 엄마 세실의 판단이 맞는 걸까?

 

소설의 화자들은 두 개의 그룹을 나뉘어져 있다. 엘렌과 세실은 어른 측을 그리고 테오와 마티스는 아이들 측이다. 엘렌과 세실 모두 어릴 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우선 엘렌은 아버지에게 혹독하게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다. 처음 테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도, 바로 그런 엘렌의 경험에서 오는 촉이 작동한 덕분이었다. 학교 성적이 좋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보아 엘렌은 다른 이들보다는 좀 더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테오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체육복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준 체육 교사와 일전도 불사하는 엘렌, 그녀는 단순한 오지라퍼였을까. 그건 아니다.

 

, 이제 카메라를 세실에게 돌려 보자. 그녀는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남편 빌리암과 근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해온 가정주부다. 그녀의 일상은 평온했다. 남편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사랑과 전쟁급 스토리는 진부하니, 델핀 드 비강 저자는 빌리암을 다른 길로 유도한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블로그를 통해 호모포비아, 유대인 배척, 인종차별 그리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써온 Wilmor75라는 필명의 극우 키보드 워리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실은 남편이 과연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인가라는 회의에 사로잡힌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아들 마티스가 술에 취해 귀가한다. 문제는 그녀의 아버지가 넘치는 감수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구제불능의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한다면, 바로 빌리암은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남편의 일탈을 알게 된 세실은 어느 사교모임에서 남편의 위선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당연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기감이 조성된다. , 사교파티를 폭파시키고 돌아온 날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꼬마들을 발견하는 건 보너스 타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톨스토이 선생이 말했듯이, 모든 가정은 저마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꼭 이렇게 문제가 있는 가정들만 소설이 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 말이다. 하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그런 평범하기 짝이 일는 일상의 권태에 관심을 가질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어쩌면 다른 가정들은 저렇다,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위안으로 일상의 파고를 넘는 건 아닐까.

 

델핀 드 비강 작가는 긴장감 넘치는 결말로 독자를 유도한다. 하지만 고수답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대신, 슬쩍 독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선배 작가 스탕달이 남긴 말처럼 소설은 사회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델핀 드 비강의 소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반영한다. 하지만 판단은 그 사회를 혹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맡긴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마음 시리즈 다음 편인 <고마운 마음>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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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09 1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마음>도 좋았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낚시꾼 올림.

레삭매냐 2020-12-09 17:33   좋아요 2 | URL
파닥... 파닥... 오늘도 낚이여 갑니다.

집에 가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대망의 150권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