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부드러움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 / 북스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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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조각들>을 읽고 나서 바로 내리 달렸다. 이번에는 마리옹 파욜의 <돌의 부드러움>이다. 알라딘 이웃님의 포스팅을 보고 나서 아마 도서관으로 냉큼 달려가 빌린 책이다.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파욜 작가의 책이 두 권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연말에 연간 독서 권수를 늘려 보겠다는 아주 얄퍅한 계산도 들어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냐만서도.

 

<돌의 부드러움>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아버지가 폐를 한쪽 잃고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던가.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가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그런 무기력한 존재로 변신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시절 절대자로 군림하던 이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배우자로서 그리고 자식으로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어디까지가 정답일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을 해 보니, 돌아가실 즈음해서 치매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던 손주도 못 알아보시고, 며느리도 못 알아보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같이 지내던 사촌 동생이 임종까지 했다고 했던가.

 

아버지가 코부터 시작해서 입술 그리고 눈까지 잃어 가는 과정을 작가는 차분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상실의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아마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냥 경황 중에 그 모든 게 지나가길 바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실감은 아주 나중에 그렇게 찾아오길 바랄 뿐.

 

흰 옷 입은 병사들의 등장은 아빠를 돌보는 파욜 가족에게 위기로 작동한다. 파욜 가족은 속수무책이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결국 그들은 결정한다, 그들 스스로가 흰 옷 입은 병사들이 되어 아빠를 호위하기로.

 

왕좌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아빠가 곧 삶의 무대에서 퇴장할 거라는 걸 가족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기에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쿠데타를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갖가지 변명거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세월이 사람의 모난 성정을 다듬어 준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정이 둥글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자고로 나이와 술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니까 말이다. 내 젊은 날의 모습과 지금의 그것은 너무도 다를 테니까.

 

이건 여담으로, <돌의 부드러움><관계의 조각들>보다 3,000원이 싸다. 그 차이는 어쩌면 프랑스문화원의 도움차이 때문이려나. 분량도 두 배 정도 되고, 글밥도 더 많은데 싼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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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3 00: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덩치크고 뾰족한 말투로 항상 상처를 주었던 돌, 그 돌이 작가 아버지네요 그돌이 아버지에 병마 일수도 있고 ㅜ.ㅜ

레삭매냐 2021-01-03 12:46   좋아요 3 | URL
오! 중의적인 해석~
고저 놀랍습니다...

페넬로페 2021-01-03 0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죽음앞에서는 모두가 나약해지죠~~
본인도 우리들도요^^
왜 죽는걸 다 알연서도
그렇게 나쁘게 행동할까요?

레삭매냐 2021-01-03 12:48   좋아요 4 | URL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모름지기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의도적
으로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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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빌린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5>가 신축년 첫날에 내가 읽은 책이었다. 부제는 <열도의 게임>, 제목만 딱 들어도 어느 나라 이야기인 줄 바로 알겠지? 그렇다 바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썰이다.

 

5권의 전반부는 중국 강남 지방에서 열전으로 진행되던 태평천국의 난의 엔딩에 대한 이야기다. 천경(난징)에 버티고 있던 사이비 종교 지도자 천왕 홍수전에 이어 실질적인 2인자로 뛰어난 전략가였던 이수성은 당시 중국의 관문이었던 상하이 정복에 연연한다.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던 열강의 용병 형식으로 구성된 상승군(Ever Victory Army:ETA 바스크 독립운동 단체냐는 짤이 등장한다! 대단하다)과 증국번의 제자이자 중앙 관료 출신의 이홍장이 지휘하는 회군이 장발적군의 전략 거점인 쑤저우를 포위하자, 성내의 태평군 배신자들이 지휘관 담소광을 죽이고 관군에 투항한다. 그렇다고 이홍장의 회군이 반란군을 용서했을 리는 만무했다. 이홍장은 상승군 지휘관 고든의 안전 보장 약속을 무시하고 태평군 1만 여명을 모조리 학살했다.

 

태평군의 반란은 쑤저우 함락을 계기로 해서 망조의 징후를 보였다. 천경으로 복귀한 이수성은 증국전이 지휘하는 상군이 태평군에게 박살난 강남대영을 회복하고, 순차적으로 천경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186461일 천왕 홍수전이 사망하고, 719일 난징이 상군의 공격으로 함락되면서 십 수 년을 끌어온 태평천국의 반란은 종결된다.

 

천경이 상군에게 함락되던 당시, 탈출했다가 포로로 잡힌 이수성은 증국번에게 마지막 공작에 나선다. 한족 출신 관료인 증국번이 멸만흥한의 기치를 앞세워 앞선 왕조였던 명나라의 선례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당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증국번이 혹할 만한 제안이었지만, 증국번은 냉정하게 자신의 처리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나라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조정의 지배력은 강고했다. 중국 침탈에 열을 올리던 열강 역시 빈사의 사자 형태의 청나라 조정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증국번은 이수성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대신 그는 반란의 실질적 지휘자 이수성이 자술한 기록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에게 유리한 기록들을 첨삭하는 방식으로 태평천국의 난을 종결지은 것은 불문가지다.

 

다음 무대는 막말의 일본이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도래한 것은 1853, 에도 막부가 들어선 지 250년이 되던 해였다. 어느 정권이나 말기가 되면 내부모순의 폭발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막부 정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본의 경우에는 내적 요인에 앞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열강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되면서 근대화에 내몰렸다고나 할까. 제국주의 팽창 시대, 개항에 이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다음 수순은 열강에 의한 속국 내지는 식민화였다. 물론 후자가 더 좋지 않은 경우겠지만.

 

한편, 막부의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는 미일 수호통상조약(1858)의 비준을 위해 방미사절단을 미군함에 태워 파견한다. 이 중에는 다이로가 신임하는 오구리 다다마사가 타고 있었는데, 핵심 문제는 환전 비율 문제였다고 한다. 그 외에 일본 호위함으로 간린마루도 파견했었는데 그 배에는 해군 전습소 출신의 후쿠자와 유키치도 탑승했다고 전한다. 미국에서 선진 문물을 보고 배운 방미사절단이 귀국할 당시, 일본 정가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그런 상태였다. 18603,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가 존왕양이를 기치로 든 무사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중앙 막부의 권세가 개항을 계기로 쇠퇴하면서, 각지의 웅번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 이래, 에도에 적대적이었던 서남부의 번들이 군제개혁과 산업 진흥을 바탕으로 막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중에서도 모리 가의 조슈 번과 시마즈 가의 사쓰마가 존왕양이 이데올로기의 선봉이었다. 그 외에도 도사 번의 도사 근왕당 그리고 미토 번의 탈번 낭인들과 텐구당도 존재했다.

 

막부의 수장인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고작 15세의 병약한 쇼군이었다. 조슈나 사쓰마처럼 자신들의 실력을 키운 도막파 번들에 대항해서 등장한, 고메이 국왕을 얼굴마담으로 하고, 여전한 권력은 쇼군이 행사한다는 공무합체론은 막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조슈의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나가이 우타가 제시한 항해원략책도 막부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었다. 개국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개항파들의 이상을 양이마저 아우르는 존왕의 대계로 삼자는 원대한 구상(물론 말로만!)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다음에 등장한 캐릭터는 바로 사쓰마의 권력자인 시마즈 히사미쓰다. 오랜 기간 권토중래하던 히사미쓰는 이복형 나리아키라가 죽은 뒤, 섭정의 자격으로 권력을 쥐게 된다. 사망한 형의 유지를 이어 받아, 부국강병책을 구사하면서 존왕양이파인 정충조 지사들을 중용했다. 히사미쓰는 유배 중이던 유신삼걸 중의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도 해배시켰다. 지역에서 충분히 실력을 키웠다고 판단한 히사미쓰는 번사들을 데리고 교토로 상경해서 조슈 번이 좌지우지하고 있던 중앙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다. 역시 난세에는 무력이 최고라는 걸, 사쓰마 해적들이 증명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 다음 수순으로는 쇼군 상경, 조슈 번내의 이념 투쟁(좌막 개항, 도막 양이) 등등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1863년 하반기, 사쓰마 번사들이 철수하고 좌막파 아이즈 번이 교토에 도착하지 않은 동안 조슈 번에서 풀어 놓은 존왕양이 타이틀을 내건 지사들이 테러를 자행하면서 교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에도 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렇게 경계하던 통제받지 않은 사무라이들이 날뛰는 그런 시절이 온 것이다.

 

고메이 국왕과 에도 막부가 꿈꾸던 공무합체는 동상이몽이었다. 전자는 국왕이 다스리는 시스템을 원했고, 후자는 지금 이대로 막부 시절을 외치는 보수주의의 신봉자들이었다. 개항을 요구하는 열강의 압력에 막부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슈와 사쓰마의 양이지사들은 극렬한 저항에 나선다. 특히 조슈 번은 다른 번들은 몰라도 자신들만이라도 양이전쟁을 치르겠다는 기백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에 간몬 해협 양측에 포대를 설치하고, 서양 함선들의 자유로운 항행을 봉쇄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원명원 방화라는 실력을 보여 주었던 열강은 조슈 번에 화력시범으로 응징에 나섰다. 이웃 사쓰마도 나마무기 사건을 책임을 묻기 위해 영국에허 함대를 파견해서 번의 중심인 가고시마를 참교육시켰다. 영국 함대의 가고시마 포격으로 시내의 중요한 시설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교토에서는 사쓰마, 아이즈 그리고 왕실이 중심이 되어 조슈 번을 몰아낸 8·18 정변이 기획되고, 그에 맞선 조슈 번의 역습인 <금문의 변> 등이 잇달아 발생한다. 그야말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각 집단 간의 합종연횡이 무시로 이루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교토의 정쟁에 참가한 조슈, 사쓰마, 도사, 아이즈를 비롯한 막부는 모두 존왕양이라는 그럴싸한 대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는 천하의 대권을 잡기 위한 명분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앞줄에 내세우고 싶어하던 고메이 국왕은 단지 바지사장일 뿐이었다. 국왕을 앞에 내세운다는 게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도움이 되는지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슈 번사들은 무리를 해서 교토로 진격해서 국왕을 포로로 잡아 양이전쟁에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막부에서는 병약한 이에모치를 대신해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가 서남의 말썽꾸러기 조슈를 정벌하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꾸미고 있었다로 5권은 끝난다.

 

일본 막부말의 시대상은 작년에 만났던 센고쿠 시대의 그것만큼이나 격렬한 정치투쟁의 무대였다. 어느 누구도 상대를 압도할 만한 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열되는 외세의 침략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밑으로부터는 끓어오르는 250만 하급 사무라이와 고케닌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는 가운데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연합과 배신이 이어지는 배신의 드라마 같은 역사에 굽시니스트 선생은 방점을 찍는다. 어쩌면 올해는 그 시대를 다룬 책들을 만나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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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권 신미양요 까지 나왔네요. 일본사 만만치 않게 복잡한데 저도 만화로 습득을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02 17:50   좋아요 1 | URL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을 넘나 들며
종횡무진 구사하는 19세기 스토리가
무지 헷갈리네요.

여긴 태평천국인가 아니면 막말 조슈
인가 그것도 아니면 삼정의 문란에
시달리는 조선 땅인가. 쿵야~!

일단 재미 면에서는 짱입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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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외출을 마친 뒤, 집에 와서 쉬다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나섰다. 아무래도 기한 내에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반납도 하고 <사브리나>라는 그래픽 노블을 빌리러 갔다. 폐관 20분 전에 부리나케 도착했다. 빌릴 책들을 에코백에 담고서 신착도서 코너를 돌아보았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7>이 눈에 띄어서 빌려왔다. 원래 목표했던 <사브리나>보다도 이 책에 더 관심이 가더라.

 

내가 일본의 무진 전쟁에 대해 처음으로 들은 건, 18년 전인 2002년 여름 첫 번째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 때 한참 <바람의 검신>에 빠져서 막부말의 격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슈에서 시고쿠로 넘어가는 아카시 대교가 보이는 다루미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숙소에서 만난 일본 청년 그리고 다음날 세미나에 참가할 예정이라던 교수님과 내가 사서 쟁여둔 비루를 마시면서 대담을 나누다가 처음으로 보신전쟁(무진전쟁)이니 세이난전쟁이니 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듣게 됐다. 그리고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때 추억이 굽시니시트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바로 소환되었다.

 

이번 여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 이야기를 읽었는데, 겨울에는 어떻게 해서 265년 역사를 뒤로 하고 에도 막부가 망하게 되었는지 읽게 됐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모양이다. 9권이나 나온 시리즈 중에서 7번째 권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일단 시작은 1866년 에도 막부의 두 번째 조슈 정벌이 실패로 끝나는 지점이다.

 

1864년 교토 금문의 변으로 쇼군이 이끄는 막부는 조슈 번을 조정의 적으로 규정했다. 1차 조슈 정벌이 자그마치 15만 대군을 동원한 막부군의 승리였다면, 두 번째 조슈 정벌은 모리 가문이 이끄는 조슈 번의 승리였다.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과 일왕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권력쟁투가 치열해지고, 계속되는 내전으로 쌀값이 폭등하는 등 막부군이 조슈 번을 상대로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막부군이 판정패 당한 셈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일본 천하를 지배하던 막부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기세가 오른 조슈 번은 정벌이 끝난 다음 해인 18674후회의를 통해 정치적 해결을 도모한다. 그들이 노린 것은 아직 권력기반을 다지지 못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압박하면서 권력분점과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막부 타도였다. 비록 막부 내 반대파들의 준동으로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쇼군 요시노부는 도사 번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가 제안한 대정봉환(천하의 대권을 조정에 반환하는 것)을 심사숙고한 끝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앙숙이었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이 연합한 삿초동맹(1866)이 목표하고 있던 도막 출병의 명분을 무산시키고, 결국 막부가 신정부에서 종래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요시노부가 마냥 바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계책을 성공시킨 것을 보면 말이다.

 

한편, 사쓰마 번 출신의 핵심 브레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협력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와쿠라 도모미(거의 요과 급으로 묘사된다)는 교토 내의 자파 번사들을 동원해서 왕정복고의 쿠데타에 나선다. 사이고의 사주를 받은 사쓰마 번사들이 애도 성내에서 방화와 총기난사를 저지르자, 막부가 진압에 나서면서 비로소 무진전쟁의 서막이 시작된다.

 

일단 교토에서 오사카로 후퇴한 쇼군 요시노부는 병력을 동원해서 교토의 도막파를 상대하게 된다. 서전은 도마 후시미 전투였는데, 신정부군보다 월등한 병력으로 진압에 나선 막부군이 패전을 거듭하면서 서부 일본 전역이 신정부 편에 서게 된다. 기존의 질서를 신봉하던 막부군은 수만 많았지 실제로는 오합지졸의 병세였다. 이에 비해 신정부군의 주력이었던 사쓰마 군단은 병력은 적었지만, 웅번 출신의 병사들로 조직과 훈련에서 막부군을 압도했다.

 

서전에서 기세장악에 성공한 신정부군은 쇼군 요시노부가 도주한 에도 정벌에 나선다. 어디선가 세키가하라의 복수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250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게 도요토미 가문을 중심으로 한 서군이 일패도지했자면, 이번에는 반대로 그 때 패배한 모리 가문과 시마즈 가문을 중심으로 한 삿초동맹군이 복수에 나선 셈이라고나 할까. 동정에 나선 신정부군은 이렇다 할 전투도 없이, 천하의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 쇼군 요시노부의 판단 아래 에도 성에 무혈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막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좌막파(친막부파)의 저항은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우선 에도 인근 보소반도의 조자이 번의 번주 하야시 다다타카는 탈번한 뒤, 유격대로 변신해서 신정부에 저항했다. 보통의 경우 나중에 벌어진 아이즈전쟁처럼 보통의 경우, 번 전체가 저항군으로 변신하는데 조자이 번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였다.

 

원래 도쿠가와 가문의 원류였던 마쓰다이라 가문의 가타모리는 교토 수호를 담당했던 좌막파의 거두였다. 신정부군의 강력한 탄압으로 좌막파들은 동북지방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신군이라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 정도의 역량을 지니고 있던 효웅 다테 도큐간류[독안룡]의 후예가 이끄는 센다이와 가타모리의 아이즈 그리고 쇼나이 번을 상대로 한 아이즈전쟁으로 무진전쟁이 절정에 도달한다.

 

전국을 장악한 신정부군은 대의명분과 병력 그리고 사기에서 저항에 나선 구막부군을 압도했다. 화력에서도 막부군은 신정부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쇼나이 번이 선전했지만, 동북전쟁의 맹주인 센다이보다 반란의 중심인 아이즈 타도가 신정부군의 최종 목표로 정해지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속도로 굴러가 버렸다. 그 와중에 아이즈 사족 집단이 무사도 타령을 해가면서도 서구에서 도입한 후장식 최신식 소총과 암스트롱포 같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신정부군에게 옥쇄 돌격하거나 집단자결을 하는 장면에서는 훗날 태평양전쟁에서 벌어질 비극의 전주곡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화에서 전혀 배운 게 없었구나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굽시니스트 선생의 도움으로 무진전쟁 이후, 아이즈전쟁과 막부 잔당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하코다테전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좌막파들이 신정부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북해도까지 독일에 할양할 의향이 있었다는 점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아니 그렇다면, 북해도의 영토적 가치가 그렇게 없었다는 말일까?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전의 향방에 관심이 없었던 서구 열강, 그 중에서도 도이칠란트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하마터면 북해도가 에조란트가 될 뻔했다는 가설은 확실히 쇼킹했다.

 

그 외에도 훗날 일본 해군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는 도고 헤이하치로가 해군 사관으로 등장해서 또 다른 문제적 인간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해적 활동을 동경하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 히데노리가 아이즈전쟁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검신>에도 나오는, 훗날 경찰 후지타 고로로 변신한 신센구미 조장 사이토 하지메도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사실상 무진전쟁의 핵심은 아이즈전쟁이었고 그 후에 치러진 하코다테전쟁은 한줌 남은 좌막파 잔당들의 활극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던 막부의 몰락은 예정된 결과였다. 무엇보다 철저한 계급사회를 추구했던 막부는 체제의 중심이었던 250만 명에 달하는 하급 무사계급의 신분상승이나 자산축적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그들이 존양왕이라는 유교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타도 막부에 나서자 그들을 제압할 방법이 좌막파에겐 전무했다. 무력으로 그들을 압도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재력을 키운 조닌(상인) 계급을 필두로 한 민권의 향상으로 더 이상 막번 시스템은 유효하지 않았다.

 

굽시니시트 작가는 바로 이런 격변의 시기였던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초기의 상황을 특유의 드립과 언어유희를 이용해서 도출해낸다. 게다가 저마다 체제와 군주에 대한 신념 혹은 충성으로 무장한 지사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가 스러지길 반복한다. 그들이 빚어낸 각본 없는 역사 드라마를 짚어낸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또 도서관에 달려가서 다른 시리즈를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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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뷰티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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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이 아닐까. 2005년에 발표된 제이디 스미스의 세 번째 소설 <온 뷰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신세대 작가답게 제이디 스미스는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아버지(하워드 벨시 교수)의 고향 런던에 머물던 아들 제롬 벨시가 보낸 이메일로 출발한다. 거주지 문제로 곤란을 겪던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 같은 집안의 가장 몬티 킵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집의 아름다운 딸인 빅토리아, 비와 사랑에 빠진다. 왠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범이 떠오르지 않는가.

 

영국의 별 볼 일 없는 집안 출신의 하워드 벨시(백인)는 뉴욕에서 30년 전에 플로리다 출신의 아내 키키 시몬즈(흑인)을 만나면서 운이 트인다. 하워드는 처갓집 덕을 톡톡히 본 사내로 장모로부터 호시탐탐 노리던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까지 차지하고 인근 웰링턴 대학의 종신직 교수자리까지 획득하면서 빛나는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이다. 부수적으로 한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110KG를 넘는 과체중의 아내 몰래 가족의 친구이자 동료 교수인 클레어 맬컴과 하워드는 바람을 피웠다.

 

한편, 제롬이 저지른 원수의 딸 빅토리아의 불장난은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제 딴에는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런던으로 날아갔던 벨시 교수님은 봉변에 문전박대를 당한다. 지금까지 두 권의 책(<런던 NW>까지 포함한다면 세 권)을 통해 만난 제이디 스미스는 가족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에 천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벨시 집안과 킵스 집안이라는 서로 상이하고, 적대적인 특별한 두 가족의 비교를 통해 시대상을 구현해 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하워드, 키키, 제롬, 조라 그리고 레비로 구성된 벨시 가족은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가족의 전형이다. 아버지는 웰링턴 대학에서 학생들로 가득한 강의를 수행하는 인기 교수다. 비록 렘브란트 연구에서 최근에 숙명의 라이벌 몬티 킵스에게 밀리고 있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속칭 먹물이다. 키키 또한 간호사로 일하면서 세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젊어서는 대단히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제롬은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에 다니는 수재 청년이다. 조라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웰링턴 대학에 다니는 재기발랄한 대학생이다. 주말마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주급 35달러를 벌기 위해 버진 메가 스토어에서 CD를 파는 알바를 뛰는 레비도 소설을 다채롭게 하는 캐릭터 중의 하나다. 하워드의 부정으로 벨시 패밀리에 파국의 전조가 보이지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아 보였다.

 

서사의 중심에 떠들썩한 벨시 가족을 배치한 제이디 스미스는 대척점에 조용한 킵스 가문을 등장시킨다. 영국에 있던 킵스 가족은 몬티 경이 미국 웰링턴 대학으로 부임하면서 한판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 동료가 된 하워드 벨시 교수에 대한 킵스의 비판은 매섭다. 아카데믹한 차원에서 본다면 킵스 교수의 승리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보수주의자인 킵스는 마이너리티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며 반대한다. 자신의 여동생 빅토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하워드를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섰던 매력적인 청년 마이클은 런던의 증권가에서 일하는 소프트 엔지니어란다. 짜증날 정도로 매력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비는 조라에 버금가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는 킵스 부인.

 

영원할 것만 같았던 벨시 집안의 행복은 하워드와 키키의 결혼 30주년 파티를 정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발단은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하워드의 외도 때문이었다. 클레어와 3주 간의 불장난을 없던 일로 하고 다시 가정으로 복귀하고 싶어하는 하워드를 키키는 온 몸으로 거부한다. 제롬으로 촉발된 스토리는 조라와 레비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그런 느낌이다.

 

외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 냉랭한 집안의 분위기를 개선해 보고자 제롬이 주선해서 보스턴 커먼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를 들으러 간 벨시 가족은 거리의 시인 혹은 스포큰 워드의 달인 칼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랩이 현대 미국이 발견한 새로운 형태의 시라고 믿는 레비와 칼은 연락처를 교환한다. 한편, 조라는 클레어 맬컴 교수의 소수 정예 강의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클레어가 개인적인 이유를 자신을 내친다고 생각하고 당돌하게 학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가리 위한 카무플라주일 뿐 실상은 자신이 쫓는 욕망의 발현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워드는 아내 키키에게 동료 어스킨 교수처럼 젊은 학생들이 아닌 오십대의 클레어와 바람을 피우지 않았냐고 항의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그가 부부의 오랜 친구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 아니었던가. 늙다리와 관계한 게 변명거리가 되냐며 키키에게 가혹한 되치기를 당한다. ‘허영의 시장에 나선 시인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의 명성을 떨친 쾌락주의를 다룬 시에서, 자연주의 시인으로 변신한 지금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항상 젊은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지만, 이미 그 시절을 보내 버린 중년 교수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다만, 버스스탑에서 스포큰 워드 대결을 보며 학문적 분석을 시도하는 노력을 가상해 보였다.

 

어느 순간 제롬은 소설의 중심부에서 도태되어 버렸다? 아니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지? 대신 조라와 레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당돌한 아가씨 조라는 자신의 주변에서 조우하게 되는 거리의 시인이자 능력자 칼을 애써 외면한다. 먹물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직 실력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타인을 재단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을 비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칼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 그리고 보니 레비의 초대로 벨시 부부 30주년 파티에 초대되었던 칼은 하워드에게 불청객 취급을 받았었지. 이런 식으로 제이디 스미스 작가는 인화성 강한 갈등 요소들을 곳곳에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주급 35달러를 벌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비용으로 쓰고 싶은 계획을 세운 레비는 케임브리지의 버진 메가 스토어에서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창업주가 이룬 엄청난 성취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레비가 만난 돈벌이 현장의 현실은 그가 품은 이상과 전혀 달랐다. 미국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도 나와서 일하라는 명령에 십대소년은 반발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조직해서 쿠데타를 시도한다. 레비 같은 소년들이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매니저의 협박에 가까운 말에 레비는 폭발한다. 이것은 어쩌면 레비의 계급적 각성일 지도 모르겠다.

 

전작 <하얀 이빨>의 화려했던 디지키언 스타일 대신 제이디 스미스는 집중과 선택을 통해 먹물 집안의 허위와 위선을 까발리는 작업을 선보인다. 무대를 자신이 나고 자란 영국 대신 미국으로 했다는 점도 신선했다. 이방인으로 관찰한 미국 사회의 단면을 해부한 적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전반전을 지나 후반전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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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25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0-12-25 21: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연휴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네요.

이뿐호빵 2020-12-25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렬한 책 표지에서 그냥 읽고 싶어졌습니다ㅋ
좋은 후기에 더~~ 호기심이 생겨 무조건 챙겼습니다ㅋ

이제 곧 지나겠지만, 크리스마스 즐겁게 마무리 하세요~~~

레삭매냐 2020-12-27 09:25   좋아요 1 | URL
전 개인적으로 제이디 스미스 작품
중에 제일 나은 것 같다고 생각되네요.

감사합니다 ~

mini74 2020-12-26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는 예쁜데 내용은 먹물들의 위선이라니 ㅎㅎ 아. 읽고 싶어집니다. 쌓인 책이 한가득인데 ㅎㅎ 래삭매냐님도 즐거운 연말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0-12-27 09:28   좋아요 2 | URL
책 표지는 정말 잘 뽑은 것 같더라구요.

쌓인 책은 언제고 읽게 되실 테니,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저도 이번달에 램프의 요정에서 준 적
립금 때문에 책을 한 권 질렀네요 그것 참.
한 권 정도는 공짜로 얻지 않았나 싶더
라구요.

2020년도 이제 달랑 5일 남았네요.
즐거운 연말되세요 ~~
 
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지음,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그림, 최정수 옮김 / 마농지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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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의 원동력은 즐거움이다그리고 한 부스러기의 지식과 성찰이면 족하다프랑스 출신 피에르 크리스탱의 <조지 오웰그래픽 노블 역시 읽으면서 즐거웠다그리고 사회주의자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조지 오웰의 족적을 따라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였다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 비하르의 모티하리라는 곳에서 1903년 6월 25일 태어났다구글맵으로 찾아보니 모티하리는 네팔에 가까운 곳이다에릭이 한 살 되던 해그의 어머니는 영국으로 이주했다영국에서 보낸 시골 생활은 그다지 기억할 만한 게 못되지 않았나 싶다그리고 곧 이어 시작된 악명 높은 대영제국 학교생활은 더더욱 그랬다.

 

에릭의 부모들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사립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에 에릭을 진학시킨다가난했던 블레어 가족은 아들의 학비를 절반가량 감액 받았던 모양이다부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체벌이 일상화되었던 영국 교육 시스템에서 어린 에릭은 교장 선생에게 줄창 타작의 대상이 되었다채찍이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았던 걸 보면 말이다.

 

사립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했는지에릭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튼스쿨에 입학해서 제국주의 영국의 번영을 위한 재목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교육을 받는다물론 그곳은 속물들의 천국이었다이튼스쿨을 졸업한 에릭 블레어는 옥스브리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대신특이한 경력을 시작한다그는 버마 주재 경찰에 자원했다. 1922년 아시아로 가는 긴 여정에서 영국식 자본주의 허상을 목격하게 된다그야말로 배 위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거들먹거리던 항해사가 승객들에게 제공된 케이크를 슬쩍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에 반감을 품고 있던 그는 버마(현재의 미얀마현지에서 사람을 해치고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죽이면서 식민 지배의 위선과 허위를 깨닫게 된다. 5년 정도의 버마 생활은 마친 그는 다시 본국으로 향한다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버마 일기>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고 한다예의 책도 나의 서재 어딘가에서 실컷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파리의 호텔에서 접시닦이를 하는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기도 했던 모양이다호텔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었다노동에서 제외된 지배인 계급을 필두로 해서요리사는 상위 계급이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접시닦이는 그야말로 불가촉천민 같은 그런 존재였다파리에서의 이런 경험과 런던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훗날 <파리와 런던에서의 따라지 인생>을 저술했다고 한다아마 이 즈음부터 글쓰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모양이다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한 에릭 아서 블레어는 조지 오웰로 자신의 필명을 정하고저명한 출판사에 자신의 저술들을 발송하고 퇴짜 맞기를 거듭한다역시나 위대한 작가들 역시 하루아침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은 아니고 수차례 뻰찌를 먹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 장인 <블레어가 오웰을 창조하다>에서는 보수당 아나키스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조지 오웰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930년대 영국 노동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르포르타주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나도 이 책은 읽었는데역시나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다. 1936년 6월 8일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한 조지 오웰은 월링턴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바다 건너 대륙의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었다행동하는 양심이었던 조지 오웰은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아내 아일린과의 허니문도 채 즐기도 못한 채결혼한 지 6개월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조지 오웰은 전국노동자연맹(CNT)의 일원으로 공화파에 가담하려 했으나 현지의 사정으로 인해 통합노동자당(POUM)의 전사로 최전선에 투입된다.

 

조지 오웰의 그래픽 바이오그래피에서는 정확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당시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의 쿠데타군에 맞서 싸운 노동자 농민의 군대는 오합지졸로 규율도 없었고 변변한 무기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같은 서방 국가들은 공화파의 대의에는 공감했지만대두하는 파시즘 세력과 일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에 필요한 무기 지원 같은 실질적 원조는 꺼렸다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세계대전에 앞선 시험장으로 스페인을 무대로 삼아 콘도르 군단 같은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한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오직 소련의 스탈린만이 공화파를 지원했다조지 오웰은 전선에서 내셔널리스트들을 상대하다가 목에 관통상을 입고 후방인 바르셀로나로 후송된다그리고 그곳을 장악한 스탈린 일파가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벌이는 것을 보고 아내 아일린과 함께 귀국을 결심한다.

 

귀국해서 조지 오웰은 비로소 작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만개하기에 이른다서평기사에세이는 물론이고 소설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글들을 발표했다결핵에 걸린 그가 마라케시에 가서 요양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흥미로운 사실이었다이 때 그는 소설 <숨 쉬러 나가다완성했다조국 영국이 파시즘에 맞서 싸운 2차 세계대전에서 자원했지만결핵후유증으로 현역은 아니고 국민방위군 중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BBC 방송의 선전담당을 맡기도 했다. 1944년에 아내 아일린과 함께 조지 오웰은 리처드 호레이쇼를 입양했다.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발표된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의 대표작으로 스탈린 치하의 사회주의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로 그에게 대대적인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같은 해 3월 아내 아일린을 잃은 조지 오웰은 누이동생과 아들 리처드와 함께 주라 섬에서 마지막 걸작인 <1984>를 집필했다죽기 전 해인 1949년 11월에 <1984>를 발표한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 21일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예전부터 조지 오웰의 전작에 도전해야지 하며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이번에 그의 그래픽 노블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전작도전의 의지가 불타올랐다이미 올해는 다 가고 열흘 정도 남았으니 내년 연간 독서 프로젝트로 잡아야 하나 싶다그래픽 노블에서는 연도를 다루지 않아위키피디아로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가 들었다하긴 그런 것도 독서의 재미가 아니었던가일단 집에 가서 조지 오웰의 책들이 뭐뭐가 있는지 검토부터 해봐야겠다굳이 없는 책들을 사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소장하지 않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봐야지이 참에 <동물농장>과 <1984>도 다시 읽어야 하나가장 먼저 도전하고 싶은 책들은 <숨 쉬러 나가다>, <버마 일기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다우선 이 책들부터 찾아야겠다어디에 있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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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은 ♥입니다 특히 조지 오웰은 ㅋㅋ 특히 프랑스 출신 작가들에 그래픽 노블 소장가치가 100% 조지오웰에 버마 이야기부터 읽었는데 파리 런던도 좋았어요 유트브에 오웰에 관한 다큐가 많으니 매냐님 천천히 오웰속으로 ^ㅎ^

레삭매냐 2020-12-24 10:30   좋아요 1 | URL
넵, 저도 왠지 유럽 스타일의 그래픽
노블 작풍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는데...
사들여야 하나요 ㅋㅋ

바로 <버마 시절> 읽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흥미롭네요.

mini74 2020-12-24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보곤 만지작거렸던 책이에요. 정말 그래픽노블은 내용이나 그림이 제대로인거 같아요. 아. 물욕이 ㅠㅠ

레삭매냐 2020-12-24 13:07   좋아요 2 | URL
책의 말미를 보니 알라딘에서 펀딩으로
제작한 책인 것 같더라구요 :>
리뷰가 많아서 헉! 했었는데 이유가 있
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사제껴야 하나 어쩌나 고민
중이네요.

2020-12-2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12-24 21:53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에 도서관에 만화 신청
했다가 까인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다행히 저희 도서관에는
그래픽 노블의 진가를 알아 보
시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2020-12-24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12-24 21:54   좋아요 2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조지 오웰의 책들
을 제법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착각이었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시작했답니다. 이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무섭지
않나 싶네요.

우선 <버마 일기>부터. 흥미진진
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12-24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레삭매냐 2020-12-25 15:48   좋아요 0 | URL
네...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와 함께 즐거운 성탄절 보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scott 2020-12-25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 늦게 라도 눈이 소복 소복 내리길 바라며 ㅎㅎ
매냐님 방에 눈사람 놓고 가여 ㅋㅋ
ᒄ₍⁽ˆ⁰ˆ⁾₎ᒃ♪♬

레삭매냐 2020-12-25 15:49   좋아요 1 | URL
아! 눈 !!!

어려서는 눈 오는 게 좋더니만
이제는 눈 치울 생각에 그만...

낭만은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모양입니다.

2022-10-19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9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